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새 책_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

 

조건준씨가 쓰고, <매일노동뉴스>에서 발간하다.

 

조건준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찾아보시고. 노동운동이 갇혀있는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은, 응당 고객를 끄덕이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임없는 사회비평서와는 거리가 좀 있고, 자기비판서에 가까우나 비판의 울타리에 갇혀있지 않다. 물론 갸우뚱하는 부분도 있지만.

 

경기장 일어서기. 경기를 구경하던 관중 속에서 한 사람이 더 잘보려고 일어서게 되면 너도나도 일어서게 된다. 미쿡발 서브프라임 사태. 우리의 부동산, 주식바람. 큰 차이 없음이다.

일부만 일어서기. 경기장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일어설 수 없는 자들이 있다. 양극화, 빈부격차의 문제다. 사회안전망에 대한 깊은 고려, 필요하다.

또하나, 트리클 다운. trickle down. 부자 감세가 경제를 살려 모두를 잘살게 하는 논리. 말 안된다. 노동운동도 조직 노동자들의 선도투쟁으로 근로조건을 확장하면, 후발 노조에 그 떡고물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 앞서간 놈들만 많이 먹고, 뒤따라간 놈들은, 체력저하, 목마름...결국 노조 대오에서 이탈.

 

현재로선 생각나는 건 이게 전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단협해지 잔혹사

기고예정인 글이라, 퍼 담으지 마셈..^^;; 부탁드림~OTL. 

 

1. 기억. 기억의 뭉치들이 사가(史家)의 손을 거치면 역사가 된다. 대서방에서 전입신고를 대행하던 시대가 끝나고 인터넷 한 방으로 모든 걸 쫑내는 이 시대에, 역사는 꼭 사가의 손을 거칠 필요는 없는 법. 모두가 기록하고 생각을 담으면 역사가 된다. 역사의 본질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대로 기억해내고 읽어내면 현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현재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변화무상한 자신의 ‘현재’ 삶을 제대로 드리블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토록 신종 독재망령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이유, 사실 과거를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탓 아닐까. 

 

2. 진화론의 본좌 ‘다윈’. 올해 딱 200살 잡쉈다. 다윈하면 그의 복음서 ‘종의 기원’과 이꼬르 관계가 성립한다. 인류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 없었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요, 고무줄만 남은 빤스, 되겠다. 그러나 필자, 이 진화론이 북반구 조선 민중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음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현생 인류의 탯줄을 따라가 보면, 결국 우린 영장류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가. 허나 우리 민족 중 일부는 이러한 영장류의 유전자와 다른 유전자가 짬뽕되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가설되시겠다. 그리도 어마어마했던 사건, 사고들은 상처로 남아 기억으로 남을 법 한데도, 얼마 안가서 다 잊어먹는 기억력 자진삭제 현상이 단순히 핸드폰, 네이게이션, 닌텐도 때문만은 아니며, 필시 역사적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 증거가 바로 ‘삼국사기’다. 이 책의 저자, 김부식 선생께서는 조선 민중의 시조(始祖) 중 알에서 부화한 분이 있음을 간증하고 있는 바, 분명 조선 민중의 일부 무리들 중에는 ‘조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을 역사적으로 증명할 토대를 제공하셨다.

 

하여 본인의도에서 초연하게 열반하사 가스불에 올려둔 액체 음식을 열분해하여 비결정성탄소, 소위 재로 만드는 일이 허다하거나 돌려서 따는 병따개를 굳이 도구나 이빨 등 신체의 일부를 이용하여 개봉하는 개탄스러운 사태에도 뿌듯해 마지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통상 ‘닭대가리’나 ‘새대가리’라고 별칭을 부르는 것이 이냥저냥 붙여진 것이 아닌, 역사적 맥락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하지만, 여기까진 애교다. 정작 이 시국에 그 서슬 퍼런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유전적 귀책사유, 논할 성질 아니다. 문제는 망각이 아니라 인식이다. 평생 동안 본인 해당사항 없는 감세정책에 환영하고, 지구 표면의 일부분의 면적도 소유 못한 자들이 대운하에 흥분하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시츄에이션일 뿐이다.

 

3. 스물 한 번의 세기를 반복하면서 좌회전을 하든, 우회전을 하든 우리 역사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고, 상승과 하락 그리고 보합의 차트를 그리며 여기까지 왔다. 노동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로 우리는 조금 더 전진할 수 있는 에너지와 약간의 후퇴를 감내하고 양보하는 지혜를 얻었다. 하지만 이번 정권의 후진 속도는 가히 오바이트가 쏠릴 정도라 하겠다.

 

여하간 그 후진의 역사가 다시 노동에서 반복되고 있다. 역사가 수직으로 진보하든 나선형으로 진보하든 간에 노동은 항상 21세기에도 어김없이 탄압을 받으며 두산의 ‘배달호’, 한진의 ‘김주익’ 등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 몇 년 전 노조와 노동자들에게 ‘때려버린’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노동의 역사를 한 세기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저항했고, 노동자 자신과 노동조합을 지켜냈다.

 

4. 그러나 한 세기 전으로 되돌아간 노동의 역사를 업데이트 하기 위한 노력도 잠시, ‘단체협약 해지’라는 신종 최루액을 쏘아대며 자본이 공세를 퍼붓고 있다. 노사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격론과 고성을 주고받으며, 때론 파업과 직장폐쇄라는 맞짱을 떠가면서 어렵사리 노사 양손 맞잡고 맺은 단체협약. 이걸 없었던 걸로 하겠단다.

 

더구나 ‘생존의 등기부’를 말소하겠다는 사용자들의 맨 앞줄에는 ‘정부’가 있다. 교육청, 시청, 공공기관 등 앞다투어 얼굴에 단체협약 해지라는 철판 깔고 용접질을 하는 이 정부의 노사관계 인식이 다시 노동의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5. 단체협약 해지, 노조법에 근거가 있다. 해지해도 합법이다. 노조도, 사용자도 할 수 있다. 다만 노조법 제32조 3항의 내용은 이렇다. 사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끝나고도’ 기존 단체협약이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까지 계속 유지되거나 새롭게 갱신된다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별도로 규정하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노조나 사용자가 생각하는 해지일로부터 6개월 전에 상대방에게 통보하면 6개월 뒤 단체협약의 효력은 소멸된다. 무단협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시는 상식으로는 무단협 상태가 되어도 임금, 근로조건 등에 대한 규범적 부분은 유지되지만, 조합활동과 관련된 사항인 채무적 효력은 소멸된다고 아실테다.

 

허나 이는 독일이 단체협약법 제4조 제5항에 ‘단체협약상의 법규범은 그 종료 후에도 새로운 단체협약, 사업장 협정 또는 근로계약으로 대체가 될 때까지 계속 효력을 가진다’는 아름다운 조문을 삽입하기 전, 써먹었던 논리들이다. 다소 억지라고 생각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학자들이 애써 만든 자구논리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 입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근데 우리는 1998년 노동법을 개정해 단체협약 해지와 관련된 조항을 신설하여 문제를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6. 생각해 보시라. 단체협약 해지를 할 노조가 몇이나 되겠는가. 노조 실력부족으로 인해 견디지 못할 정도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치자. 이 경우 유효기간이 지나면 해방된다. 그리고 단체협약 새롭게 체결하면 그만이다. 굳이 해지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통상 단체교섭이라는 것이 기존의 단체협약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므로, 노조는 기존의 단체협약을 바닥에 깔고 시작한다. 노조 스스로가 해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단체협약의 해지권을 활용할 이유는 사용자에게 있는 셈이다. 근데 이 해지권, 그리 빈번하게 사용치 않았다. 노사의 힘이 대등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노사의 신뢰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까지 앞장서서 단체협약 해지를 독려하는 마당에, 노사간 신뢰, 이젠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7. 더구나 현행 노조법 하에서는 무단협 상태가 되면 노조의 활동을 제약하는 효과를 가져와 노조가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단체협약 해지라는 것이 해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정의 변경이나 중대한 사유가 발생하는 등 기존 단체협약을 유지하는 것이 노사에게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온다면 모를까, 여태까지 그런 사례는 접신을 해야 파악할 정도로 흔하지 않다.

 

결국 단체협약 해지는 노조에 있어서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어, 노조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게 되고 그 결과 노사관계는 파탄에 이르기 일쑤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옵션으로 사장님 명성과 인간성에도 흠집이 날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고.

 

8. 기억하자. 일자리 창출 운운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시대를 열 것처럼 장담하던 이 정권의 노동에 대한 인식의 끝은 ‘배반’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가 담대하게, 때론 장렬하게 피흘리며 목숨을 댓가로 얻어내었던 노동의 권리를 어찌 삽 한자루와 바꿀 수 있겠는가.

 

87년 이전 살기 위해 투쟁했고, 98년 외환위기까지 살아내기 위해 투쟁했으며 오늘날에 비로소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했음을 그들이 기억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우리의 기억이다. 분명하게 기억하자. 그 기억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좀 배워라.

안올릴려고 했으나. 차마. 감동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정치는 이렇게 하는 거다. 역시 감동적 기사에, 그 분에게 반했다.

니뮈, "땀 좀"흘리는게 대수라고....겸손함을 표하기까지 하는 저 분의 강렬뽀스.  

 

씨바 언제부터 니들이 정치를 머리로 했냐. 민주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간에 좀 배워라. 저 정도쯤은 되야 공천 줄 자격이 있지. 어휴...한심하다, 한심해. 맨날 몸싸움에서 밀리고 말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1. 기분이 무지 꿀꿀하고 찝찝해서....얘네들 같은 밴드 하나 만들어 보는 것이 소원. 킹스턴 루디스카 보다 좀 더 발랄한...여튼 배고파도...음악하고 싶다오.~ㅠㅠOTL

 

2. 공부는? 실전에 도움 안되는 건,별로 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숙련의 단계를 넘어서면, 순수학문도 기동성을 가져야 한다. 법학이 여지껏 '간지법학'이었다면, 지금은 '기동법학'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나.

 

1-1. 여튼 잠시 잠이 와, 음악을 들으니, 악보 한 줄 안 본지 참 오래됐다. 한 곡을 끝까지 쳐본지도 오래다. 더구나 집구석에 일렉기타가 썩어가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소선, 쌍용차 가다_동영상 첨부

급히 전화가 왔습니다. 쌍용차, 안가면 안되겠다고. 

저도 2차 파업을 막 마친 상태라, 고단하긴 했지만.

유가협 어머니 두 분과 이소선 어머니를 모시고 평택으로 갔습니다. 고고!!

 

 

11시 기자회견, 주변은 기자들과 시민사회, 노동단체의 원로와 활동가들이

전경들과 구사대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홍희덕 의원께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홍의원님께서 단식중이라는 말씀을 들으시고, 어머니께서는 단식을 그만 두라 종용하십니다.

살아야 싸울 수 있다, 밥도 먹고, 힘을 내야 싸울 수 있다고 하시자,

"단식하기 위한 준비는 미리 다 배워서 하고 있으니 염려 마시라"고 하십니다.

홍의원님은 "이 단식은 결국 우리들을 위한 것이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철조망에는 박노해 시인의 '이 땅에 살기 위하여'가

거친 글씨로 나일론 천에 쓰여져 있었습니다.

마음이 뭉클하고, 절박함이 느껴지기 더할 나위 없는 글귀들이었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쌍용차 동지들의 얘기였기 때문입니다.

 

 

기자회견은 시작되었고, 그에 맞춰 구사대도 저들의 아가리로

우리들의 기자회견을 방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마이크를 몇 백개나 모은 정도의 엄청난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인도로 나오게 되면 연행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기자회견 도중에도 인도로 올라가라고 경찰은 도발하였습니다.

앉아계신 분이 어머니시네요.

 

 

쌍용차 노조의  한 조합원 동지의 아내 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조합원 동지와 직접 전화 통화를 하셨고,

그와 같이 투쟁하는 동지들께 영상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아래 동영상, 보시길~)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음에 멀리 공장 옥상에서

우리들을 지켜보는 조합원 동지들에게

손을 흔들고 소리를 치면

멀리 보이는 조합원 동지들도 손을 흔들어 줍니다.

갑자기 눈물이 나는데, 참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동지들이 쌍용차 조합원 동지들입니다.

우리들과 직접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서로 마음으로 주고 받는 수신호로 교신합니다.

하지만 쌍용차 동지 가족들과 함께 손을 흔들며,

그들의 투쟁을 영원히 지지합니다.

"사랑합니다. 승리하세요. 돕겠습니다. 당당하세요"

 

 

이소선 어머니, 쌍용차 동지들께 힘내라, 살아서 싸우라 전하십니다.

 

요기를 누르시라!!

 

*동영상은 널리 퍼뜨려 주세요. 쌍용차 동지들도 볼 수 있도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갈림길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버린 고미영.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갈림길에 섰을 때 주저라는데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하는데는 한 가지 이유만 있으면 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파업

파업을 해도 도저히 그들은 교섭에 나오질 않는다. 더 위력적 수단은 무엇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대운하와 물고기

 

1. 아버지 생신이라...부산에 다녀왔다. 영도 태종대길을 간만에 걸으니, 신혼여행 때 올레길을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몇 장 사진을 담아왔다.

 

고향이라고 늘 편안하기는 한 것도 아니다. 사실, 비록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가족들이 모두 갈아타기는 했지만, 노무현에게 진 정치적 부채, 있더라.

 

밤늦게까지 이어진 '명박이 씹기'는 토론이 아닌 토의에 가까웠다. 삼촌, 숙모, 고모, 고모부 할 것 없어 모두 이 지긋지긋한 '독재 망령'에 이견이 없는 듯. 하지만, 이건 우리 집안의 이야기일 뿐, 여전히 부산이라는 곳은 한나라당이라는 유령, 아니 실체가 힘을 뻗치고 있는 곳임은 분명하다.

 

나의 어머니, 이보임씨는 이미 유치원계, 초등학교계, 성당 모임 등 모두다 '끊었다'. '수준 이하'의 사람들과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이유다. 아버지 생신에 참가하신 삼촌께서도 '수준 이하'의 사람들, 아니 '꼴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정을 떼려고 애쓰고 계셨고. 명박이 덕분에 인간관계 많이 정리되고 있다.

 

2. 늦은 밤, 부산에서 올라와 집에서 싸온 먹거리를 냉장고에 옮기려다, 그만 냉장고 정리라는 초강수를 두는 바람에 이토록 늦어졌다. 글쓰기에는 그리 맑은 정신은 아니나, 내일이면 까먹을까봐, 몇 자 올려둔다.

 

예전에 우리 집은 매년 밀양 고래천(지금은 수몰되어 밀양댐 물 밑에 가라앉아 있다.)에 여름휴가를 갔다. 근 10년은 가지 않았나 싶다(언젠가는 그 때 기억을 한 번 정리해 올려볼까 하나). 여하간, 그 때 기억 중 흥미로웠던 것 중에 하나가 물고기 잡기였다. 흐르는 강에 그물을 쳐 놓고 아침에 걷으러 가면 피래미나 쏘가리 새끼, 버들치 등 온갖 잡다한 고기가 걸려 있었고, 매운탕을 해먹기 바빴다. 그 맛이란. 아. 몇 년 동안 꽁치 통조림에 밥을 쓱싹쓱싹 비벼 먹던 그 시절은 끝나고 아버지께서 준비한 그물로 채집수렵의 일환으로 획득한 물고기를 먹었다는 그 때 그 낭만.

 

난 단양에 귀농한 후배집 앞 마당에 흐르는 작은 시내 속 산천어(정보화 마을이 한창일 때, 노무현씨가 풀어논 산천어가 새끼를 치고 수도 늘어난데다 꽤나 살이 쪘다.)를 보면서 언젠가 저 놈을 내 입으로 갖다 넣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겨울 낚시로 그 놈들을 잡아보려고 했으나, 실패. 후배 아버지께서는 그 산천어가 '관상용'이 된 지 오래라 하셨다. 이미 야생성을 가지게 된 터라, 강원도 화천에 풀어놓은 산천어들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예전에 밀양에서 사용한 그물.

 

아버지께 여쭈었다. 그물이 어딨냐고. 어디에 쓸 건지 물어보는 건 당근 빠다인셈이고. 그리고 단양 얘기하면서 그물을 치면.....45도 하늘을 보며 군침을 돌리며,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순간.

 

"그냥 좀 나둬라. 물고기는 물고기 대로 살게끔. 내 생각은 아예 거기도 물고기를 잡지 마라고 써붙여놓았으면 한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먹을 것이 만푸장으로 있는데도, 굳이 그물쳐서 그 물고기를 잡아 먹을 필요가 있나. 있는 것도 남기는데 왜, 굳이 잘 살고 있는 물고기를 잡아가지고 먹을려고 하느냔 말이다. 예전에 캐나다에 갔을 때(동생이 캐나다인과 살고 있다.), 그 사람들은 (양팔을 벌리며) 이 만한 물고기를 잡아도 다 놓아주고 손맛만 보고 가더라. 나는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한다." 

 

겸연쩍기도 하고, 괜히 말을 꺼냈다가, 그래도 달라는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올라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괜한 소리를 했다 싶더라. 아무 생각없이 꺼낸 말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환경, 환경 하면서 이 정부 뿐만 아니라 '개발'이란 말만 나오면 개(게?)거품을 문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환경을 뒤집어 엎고, 파내고 이런 건 원론적으로 반대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건데. 한 편으로 보니 그게 골수에서 나오는 본능은 아니고, 그저 머리로 반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거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대운하 파고 지랄 발광을 하는데, 그 논리 중 경제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이건 내 전공이 아니므로, 상식적으로 '환경'의 문제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문제니깐, 그렇게 설득하고 내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었으나, 그물 게이트 한 방으로, 내가 반대는 쉽게 외치나, 정녕 생명에 대해서는 몸으로 느끼고 있는 바가 없는 놈이구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물론 대운하와 그물 게이트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나, 정부의 비판과 본인의 소신 혹은 철학 간 숨어있는 함정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사실 정신과 몸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현상을 너무나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다. 간만에 내가 생각이 없는 놈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니, 내일부터 조금 분주해 질 것 같다.

 

뱀발: 블로그 왼쪽 어디서 갖다붙여논, 물고기들 보니, 숙연해진다. 저건 먹고 싶어 올린 건 아닌데 말이다.

 

고향 영도 사진 몇 장 올려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파도가 강하게 일더라.

 

 

태종대를 걷다보면 등대가 나온다. 등대를 새로 보수해 이쁘기는 하나,

예전에 비해 많이 인공적이기는 하다.

바다 아래 쪽에는 해녀들이 해삼, 멍게 등을 판다.

 

 

아줌마들, 무한도전에 나온 바 있다. 누가 와도

저렇게 손을 흔들며, 호객을 한다. 정겹다.

 

 

나의 아내와 아버지. 꽤 친한 것으로 사료된다.

 

 

 

바다 반대편..흑백으로 한 번 찍어봤다. 날씨가 우중충.

근데 얇게 빛이 하늘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木鷄

사장새뀌와 싸우고 있으니, 때론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건 당연하나, "木鷄(목계)"를 몇 번 쓰고 나니 조금 기분이 나아지구료.

 

"望之似木鷄矣, 其德全矣"

 

허나,  木鷄를 쓸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 말을 삼성의 이병철이 경청(傾聽)이라는 말과 함께 금과옥조로 새긴 말이라는 점이다. 반대쪽에서 싸우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같이 쓰기 싫다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생각_01

1. 김규항, 간만에 블로그에 들러봤다.

 

난 여전히 그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지만, 그의 글이 좋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물론 나에게는. 왜냐면, 그가 문자화하는 생각들의 '장렬함'에 질려 버려서다. 문장 몇 개 톡 잘라, 예시문을 올리기는 좀 그렇지만. 쉽게 말하자면 아마도 그가 쓰는 문장의 결이 답답할 정도로 조밀한 나머지 생각의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여튼 무한 '퇴고'로 인한 것이라 본다.  

 

최근에 들어서 현장을 기록하는 글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처음에는 잘 읽히지 않다가, 동공이 글자를 따라가면서 그려내는 현장의 영상이 머리 속에 그려지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히기 시작한다. 매일노동뉴스의 "현장을 가다"가 대표적이다. 또한 오도엽의 글도 그렇다.

 

김규항의 글들이 시사프로그램이라면, '현장을 가다'와 오도엽의 글은 다큐멘타리다.

 

뱀발: 근데, 김규항의 블로그에 옵션인지는 몰라도 일상사진들이 올라와 있더라. 당장에 드는 저급한 나의 느낌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난 이런 사람들과 놀아요'. 설명을 붙이면 나쁜 뜻이 담길까봐, 그만둔다.

 

2. 전태일 기념사업회가 이전한다. 내일은 집들이. 오시라. 누구나 오시라. 참고로 음식은 이렇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거 있잖아, 음식 그거 여기저기 흩어놓고 묵는 거"...... 뭘까요? 켁~ㅋㅋ

 

어제 대화 내용.

 

 "너 언제 올거야? 근데 기념사업회 있잖아. 그거 뭐꼬, 집들이 하그등. 금요일날 꼭와. 니 하고 그 사람하고, 박팀장하고. 그 날 음식을 많이 준비해가꼬 남을 거 같으니까 꼭 와"

 

"근데, 음식이 남을까봐 부르는 거야, 아님 보고싶어 부르는 거야?"

 

"음식이 남을까봐지. 하하하(혼자만 웃으심)"

 

"안가"

 

"저번 때 고생했으니깐 내가 진짜 맛있는 거 사주께"

 

"갈께요"

 

"응. 금요일에 꼭 와"

 

"몇 신데"

 

"오후 3시부텀 8시까지. 그 양반 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죠"

 

"네"

 

가끔씩, 할매, 귀엽다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