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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0
    전임자 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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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4/28
    맞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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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9/03/23
    법이 보호 못하면 누가 보호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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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11/26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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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11/04
    발전노사에 ‘발전’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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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뎐(傳)

매일노동뉴스 2010년 8월 11일자에나 나오려나. ㅋㅋ

 

전임자 뎐(傳)

 


-  창원지방법원 2010.7.23. 2010노127.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위반 -

 

주연 - 이 사건의 주연, 전임자. 근로자 신분이나 사장님 하명하신 일을 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소임을 다하는 자다(이 글에서는 ‘유급전임자’만 의미한다). 국법은 이들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으나 세간에서는 이들을 ‘놀고먹는 자’라 칭하면서 갖은 모략을 펴 그 수를 줄이려 하고 있다. 이들이 고초를 겪는 것은 근래의 일이 아니다. 2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야사의 기록에서도 전임자의 삯을 주지 않으려고 한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1990년 3월 29일자 동아일보

 

사또1, 2, 3 - 권영문 1964년생(용띠), 홍예연 1978년생(말띠), 1984년생(쥐띠).

 

장면 하나 - 2009년 12월. 바야흐로 당시는 전임자 문제로 전국이 들썩거렸던 때이도다. 전국경제인연합이라는 한 도당이 ‘판례를 통해 본 노조전임자의 행태’라는 해괴망측한 사발통문을 저잣거리에 뿌렸다. 이 도당은 전국에 분점을 두고 있는 방사형 조직으로 주로 ‘호모 에코노미쿠스’ 출신의 보부상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당의 우두머리들은 국법을 어겨 여러 번 포도청에 끌려가 하옥된 적이 있으나, 조정과 내통하여 방생된 자도 있다. 또한 상황이 위중한 경우, 제중원에서 안대를 제공받아 착용한 후 굴렁걸상에 앉는 묘책으로 곤장이나 옥살이를 모면하기도 하였다.

 

장면 둘 - ‘일요일 경성’급 찌라시들은 이 사발통문을 널름 주워 받아 백성들에게 알리기 시작한다. 헤드라인 보소. 섹시 아니 음탕하기 짝이 없도다.
“파업하면 조합원 ‘무노무임’…노조전임자는 꼬박꼬박 월급(한국경제)”
“노조 전임자, 파업 중에도 알뜰히 자기몫 임금 챙겼다(뉴시스)”
“노조 전임자, 조합원 이익 나 몰라라(이투데이 경제)”

개벽세상 최고의 남사당, 마이클 잭슨이 부릅니다. “당신들은 언론이 아니야”, You are not alone!

 

장면 셋 - 국법은 사장이 전임자에게는 급여를 지급해서는 안되며, 또한 이를 지급하는 사장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도록 정해 두었다. 졸렬함이 작렬한다. 그게 무슨 뇌물인가. 전임자 급여지급이 부당노동행위가 된다면 국법의 조문도 사장이 ‘지급해서는 안된다’고 해야지, 전임자가 ‘받으면 안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 되려 저들은 불법으로 주고 받았으면서.

 

허나 정치의 기본은 후안무치(厚顔無恥)라, 안면에 철판 대고 가스용접한 자들만이 할 수 있기에 전임자 급여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손사래를 친다면 할 말 없다. 골품에서 밀리는 우리가 깨방정을 떨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찌 되었건 어떤 사장님께서 파업기간 동안 전임자에게 지급하지 않은 급여 때문에 의금부로 압송된 이 사건. 의금부의 입장은 ‘메롱’에 가깝다. 전임자는 근로제공의무가 없고 사장님도 임금지급의무가 면제되는 ‘휴직상태’라고 하면서도(대판 1996. 12. 6. 96다26671.), 출근을 안하면 ‘무단결근’이 된다고 하고(대판 1993. 8. 24. 92다34926.).

 

사장님이 단체협약 등에 따라 전임자에게 일정한 급여를 준다고 하더라도 그건 ‘임금이 아니’라고 하면서(대판 1998. 4. 24. 97다54727.), 전임자에게도 파업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단다(대판 2003. 9. 2. 2003다4815, 4822, 4839.). 이런 전차로 전임자들은 뒤통수가 얼얼할 수밖에.

 

잠시 한 박자 쉬자 - 이토록 안팎으로 전임자를 달달 볶는 이유가 뭘까. 두 가지다. 첫째, 노조의 동맥을 끊어 놓기 위해서다. 전임자 없는 노조, ‘야채인간’ 상태지 뭐. 둘째, 전임자들이 뭔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업운동가들의 완장 기득권 사라져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그거지 뭐. 이 둘을 찰반죽하면 결론은 버킹검. 노사관계의 파트너로 인정 안하겠다는 거다. 국민들이 뽑으면 뭐하나, 맘에 안들면 대통령도 끌어내리는 마당에 전임자가 뭐 대수인가. 완장 중독에 걸린 이들이 용식이의 것을 찾아주려는 야무진 배려는 십분 이해하지만 왜 중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경영일선에 귀환한 분의 ‘왕관 기득권’은 벗기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2010년 5월 3일자 동아일보 사설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 - 법원은 ‘파업으로 인하여 일반 조합원들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된 마당에 노동조합 전임자들이 자신들의 급여만은 지급받겠다고 하는 것은 일반조합원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결코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법적 근거는 얇기만 하다. 찰지게 요약하면 이런 거다.


전임자에게 급여를 주는 이유는 생활상 불이익이 있을까봐 ‘임금 대신 주는 것’이므로 일반 조합원 보다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 조합원 보다 유리하게 처우하는 것은 노사합의의 의도를 뛰어 넘는 것이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대판 2003. 9. 2. 2003다4815, 4822, 4839.).
 

근데 이 법원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의 당사자는 사실 ‘이랜드 노조’의 전임자들이었다. 배재석(당시 노조 위원장), 이남신(당시 노조 사무국장), 홍윤경(당시 노조 교육홍보실장) 이 세 사람의 급여가 문제된 것이었다. 일반조합원들은 파업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도 불구하고 노사합의로 생계비 78만원(소득세 22만원 제외)을 이랜드 측으로부터 보전받지만 위 세 사람은 제외된 것이다. 그리고 이 소송이 제기되었다. 만약 이 세 분들이 한 몫 챙기려 한 것이라면 깨알 같은 증거를 가져오기 바란다.

 

연대정신도 판결로? - 법원은 법리가 아닌 ‘훈계’로 이 판결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일반 조합원들이 임금을 못 받는데 전임자가 급여를 받는 것은 ‘결코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꾸지람만 있을 뿐이다. 판결문의 자모음을 하나하나 분해해 빨고 말리고 탈탈 털어봐도 논리적 근거는 함량 미달. 좋다, 그 의도가 ‘연대정신’에 기반을 둔 것이라 치자. 반대로 일반 조합원들이 ‘우리는 괜찮으니 전임자 임금만은 지급하라’고 한다면? 그 때도 법원은 안 된다고 버틸 건가.
 

연대정신을 법원이 판결로 말해줘야 아는 건가. 하기야 법원에서 말해 준 때도 있기는 했다. 1920년대 독일의 제국법원이 영역설(領域說)이라는 법이론 개발의 옵션으로 연대성이론을 덧붙였을 그 때. 아득하다. 그러나 독일은 이 이론, 1980년대까지만 사용하고 버린다. 진짜다. 뻥 안치고. 책 소개해줘? 사볼텨? 저자는 쿠르트 비덴코프(Kurt H. Biedenkopf). 책 제목은 Die Betriebsrisikolehre als Beispiel richterlicher Rechtsfortbildung, 우리말로 대충 ‘법관의 법형성 사례로 보는 경영위험론’ 정도? 아님 말고. 이 책 독일 아마존에서 25유로면 산다. 배송비 빼고 약 38,000원. 오죽 했으면 읽도 보도 못한 책을 소개하랴.
 
엔딩 - 이 나라 조정은 전임자에게 ‘근로시간면제자’라는 작위를 하사하시어 연간 1천 시간에서 3만 6시간 동안 종속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시겠다 하시나니. 이는 현재 실세인 남인의 수장도, 재임 중이신 국왕께서도 포졸 복무에서 면제되신 경험을 바탕으로, 50평 미만부터 1만 5천 평 이상의 대지에서 일하는 백성들을 어엿비 너겨 만든 것이니 이를 두고 어찌 ‘동방면제국가’라 칭하지 않을 것인가.
 

‘친백성’이라면 ‘일하는 백성’이 최우선 아닌가. 국법이 허락하여 일하는 백성들이 그네들의 조직을 만들었다고 이토록 천시하고 홀대하는 이유는 뭔가. 이들이 모반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가. 오히려 그들은 ‘영포회’를 만들지 않았던가. 아무리 친백성 정책 떠들어봐야 쌍용차 노조진압의 공로자가 서울경찰청장이 되는 마당에, 오해와 불신은 ‘삽’시간에 번져간다.

 

이미 이 나라, 국왕께서는 단기 4342년 5월 여드렛날 케이비에스 ‘시사 360’에서 ‘4면이 바다’라 천명하신 뒤, 조선에는 동해?남해?서해, 그리고 지도상 표기되지 않은 ‘오해’가 생기게 된 바. 어획량은 고사하고 온 나라 비린내로 진동하니, 일하는 백성들은 ‘고해’에 빠진지 벌써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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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니깐

앞서 물수제비 어뢰가, 사실이라니깐.

http://blog.jinbo.net/laborman/?pid=634

 

 

 

하나더.

 

"근데, 아저씨...왼쪽에 있는 건 뭐예요?"

 

 

다시다랑, 미원이랑...다시다는 두개씩이나.ㅠㅠ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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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립의 보루, 대한민국

4월 14일자 매일노동뉴스 기고글입니다.

 

정치적 중립의 보루, 대한민국

- 대전지방법원 2010. 2. 25 2009고단2786 국가공무원법위반,

2009고정2259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2009고단4126(병합) -

 

 

호떡판결 - 2번에 걸친 전교조의 ‘시국선언’. 전주지방법원은 ‘무죄’, 인천지방법원은 ‘유죄’,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은 ‘유죄’, 이 사건 대전지방법원은 ‘무죄’, 청주지방법원은 ‘유죄’. 다음 번엔 서울중앙지방법원 차례인데, 선수들, 부담이 크겠다. 법원들마다 조리법이 달라 여러 번 뒤집기를 반복한 탓에 사건의 본질이 기름기로 범벅이 된 것 같다. 그나마 이 사건 판결이 비교적 담백하고 찰지다. 이 사건 판결 전문을 읽노라면, 잠언집을 읽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큰집, 조인트 - 교사와 판사 모두 공무원. 한 그룹 소속에 계열사만 다를 뿐. 한쪽은 시국선언으로 ‘큰집’을 가니 마니하고 있고, 또 다른 한 쪽은 법원 개혁이다 뭐다로 ‘조인트’ 까이고 있으니. 정말 이 시점에서 필자의 항정살과 아롱사태를 도려내는 심정으로 시국선언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지금은 곤란하다. 독자들이여,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국가공무원법 - 이 법은 공무원이 정당이나 정치단체를 결성 또는 가입하는 것을 금지한다. 또한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전교조 시국선언은 여기에 걸린 게다. 검찰과 일부 판사들은 시국선언이 집단행위이고, 정치적 목적을 가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호떡 속 흑설탕 되시겠다.

 

앞으로는 교사뿐만 아니라 공무원인 검사, 판사들도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에는 계모임, 생일잔치, 야유회, 골프회동 등도 포함될 수 있으니 공무 외의 일에 집단적으로 모이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계모임은 자제하고 CMA나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고, 본인생일은 고독을 잘근잘근 씹으며 홀로 자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시국선언 - 시국선언의 과정과 내용은 간지나게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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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18.
 제1차 시국선언(서명교사 17,189명),「교사 시국 선언 6월 민주항쟁의 소중한 가치가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 됩니다」라는 제목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명박 정권의 독단과 독선적 정국운영에서 비롯…….현 정부가 국정을 전면 쇄신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줄 것을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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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22.
 전교조 소식지인 ‘교육희망’, 서명교사 17,189명 명단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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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26.
 교육과학기술부가 제1차 시국선언과 관련하여 전교조 간부 88명을 검찰 고발, 시?도교육청에 중징계 등의 조치를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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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
 「전교조, ‘민주주의 수호교사선언’ 추진」이라는 제목으로 “표현의 자유보장,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철회, 교육복지 확대, 경쟁만능 교육정책 중단” 등을 내용으로 하는 2차 시국선언을 조직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시국선언문 초안과 함께 전교조 홈페이지에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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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19.
 “전교조는 시국선언의 정당함을 확인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고발 및 징계를 철회하기 위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기자회견문을 낭독, 28,634명의 교사명의로 된 ‘민주주의 수호교사 선언’이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 ‘대통령의 자세전환’을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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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19.
 ‘7. 19. 제2차 범국민대회’의 사전행사인 ‘교사?공무원 시국선언 탄압 규탄대회’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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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3.
 전교조 홈페이지에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사 28,711명의 명단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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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국선언이라고 해서 읽어보니 거창한 것도 아니더라. ‘선생님표’ 논술답안 정도로 무난. 정치적 목적, 의심된다면 판결전문과 자유기업원에서 나온 ‘전교조 비평(김정래 저)’이라는 책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가격은 1만원. 책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전교조의 이념과 운동 비판(신중섭 저)’이라는 삐라류의 서적이 5천원에 판매되고 있다. 이 봄날, 한국소설에 싫증났다면 간만에 흥미진진한 공상 추리소설을 한 권 읽으시길.

 

부모 마음 - 이 사건, 판사들도 법관의 입장이 아니라 ‘부모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게다. 법리는 무슨. 당장에 선생님들이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대통령의 자세전환’을 척추신경외과학적인 충고가 아닌 마이크를 쥐고 서울시내가 쩌렁쩌렁 울리게 지도편달을 했다고 하니 부모 마음 무너질 수밖에.

 

더구나 직립보행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딩들의 부모들은 앞날이 깜깜할 수밖에. 학교를 어찌 보낼꼬. 더구나 전교조 선생님들한테 걸리면 공부는 거의 절단 난다고 봐야 하지 않는가. 지난 1월에 발표된 ‘교원 노조와 학업 성취도의 관계’라는 연구에서 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는가. 전교조 교사가 많을수록 수능성적이 낮다고.

 

정치적 중립 - 내가 봉사활동을 했던 곳의 아이들이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그날 사회자인 개그맨 박수홍씨가 ‘우리나라 대통령의 별명 아는 어린이’를 찾자 한 아동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미친 소요”. 당근 박수홍씨는 사색이 되었고, 재빨리 ‘얼리버드, 일찍 일어나는 새죠’라고 수습한 적이 있었다. 정보가 팔팔 끓어 넘치는 21세기에 초딩들 또한 자신의 고유한 정치색이 있더라.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중립이라는 가치는 사실 몰가치다. ‘난 중립’이라고 말하는 자 중에 홍어 냄새 안나는 사람 없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저울에 온 몸을 달고 살아야 하는 검사들을 보라. 정치적 중립을 위해 사람을 무리하게 기소하고, 별건수사까지 해야만 하는가. 정치적 중립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만 요구해도 족하다. 노동자인 말단 교사나 공무원들에게까지 기계적인 중립을 요구하는 이유가 어느 쪽에 편들지 말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 그 정도가 지나친 게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노조를 만들어 가입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노조는 분명히 당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조는 법까지 만들어 인정해 주시면서 시국선언은 안된다, 노동운동은 안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방정식이다.

 

선진국들 - 정치적 중립이라는 걸 우리 기준으로 놓고 보면 선진국들의 사정은 심각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교원노조가 오바마 후보에게 5천만 달러, 우리돈으로 600여억원이 되는 정치자금을 시원하게 쏘신 바 있다. 이건 삼척동자의 숙부님께서도 아시는 바이다. 일본 또한 공무원의 정당가입 및 후원/ 모금, 거주지 외의 선거운동까지 허용한다. 참고로 일본은 사회당, 공산당 모두 존재하는 나라다. 아, 말세다.

 

근데 이 두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거의 제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십자인대 쌍으로 끊긴다. 풀썩. 그나마 우리나라 검찰이 민주노동당에 가입?정치자금을 납부해온 전교조 교사들과 공무원들을 조사 중에 있으니 다행이다. 결국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대한민국이었다는 말씀이었네. 그래서 이토록 난리를 치는 구나. 아시아의 스위스, 대한민국. 중립 인증! 브라보!

 

글로벌 스탠다드 - 조선 반도의 상황이 그들과 다르고 할지라도 정치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넌센스다. 이런 건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르면 안 되나. 허나 불리하면 법치주의, 유리하면 글로벌 스탠다드, 지겹다, 지겨워. 군사독재 시절, 선거에 공무원들 동원했던 기억은 그들에게는 그저 추억인가. 허나 글로벌 스탠다드, 각하께서 난 못해, 이러면 죄다 잡혀가야지 뭐.

 

적어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눈물 흘린 공무원들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할 게다. 그들의 눈물을 감식하여 눈물에 함유된 정치적 목적과 희석된 정치적 중립을 꼭 증거로 제출하기 바란다. 또한 투표도 중립적으로 하시고, 회식도 중립적으로 하시고, 잠도 중립적으로 주무시길 바란다. 요즘은 가글을 해도 당최 입안이 상쾌하지가 않다.

 

표현의 자유 - 표현의 자유, 기본권의 노른자다.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자유를 표현할 권리다. 그 자유의 정점에 있는 것이 정치적 자유다. 정치적인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자웅동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 중립이라는 논리다.

 

표현할 권리를 상실한 자가 무엇을 주장한다는 말인가. 물론 시대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미네르바’가 새장에 갇히고, 'PD수첩'의 PD는 기소되고 수첩은 압수되었다. '연아'를 포옹하려다 미수에 그친 장관님의 스타일을 구겨도 잡혀간다. 다음부터는 장관님의 포옹에 카메라를 끄고 지그시 눈 감으라.


공익 - 공권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위헌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구체적’인 위험을 발생하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이 가능하다. 하지만 시국선언이 초/중/고딩들의 발육과 성적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되었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게다가 선생님들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 또는 반대한 흔적도 없다.

 

극우 본좌급의 양갑, 조갑제씨와 서정갑씨의 홈페이지를 반나절 내내 뒤져봐도 유력한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전교조의 시국선언으로 공익을 훼손당했다고 주장할 이는 따로 있을 게다. 2009년 ‘국립’ 서울대학교의 교수 124명이 정부의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며 시국선언을 했을 때 ‘깽판’을 친 이들이 기억난다. 정규 교과과정을 마친 자식들을 이미 사회로 방생하사 이 땅에 좌파 포함한 괴뢰들과 외로이 싸우고 계신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활동가 할아버님들이다. 한편 얼마전 이들에 대항해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기치 아래 ‘대한민국자식연합’이 출범했다. 대한민국은 이토록 중립적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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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 팬클럽에게 한 수 배우자

1월 6일자 매일노동뉴스 기고글입니다.

 

동방신기 팬클럽에게 한 수 배우자
- 서울중앙지법 2009.10.27 2009카합2869. 전속계약효력정지가처분 -

 

새해  명박력(歷)으로 3년차 되겠습니다. 덕담? 자격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내용?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갑자기 웬 높임말? 이번 호만 서비스, 되겠습니다. 덕담 앤드 내용 대신.
작년, 돌아보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전 국민을 삼재의 도가니탕에 입수케 하사 대통령 두 분마저 다이하시고, 한 해 동안 흘린 눈물은 지난 해 강우량 보다, 아니 4대강 보다 더 많았을 겁니다. 올해로 삼재 끝,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무대포 정신  서민표방 분식사랑 오뎅덕후 이명박 대통령께선 얼마 전 국민들을 위하여 아랍에미리트까지 납셨습니다. 그 분 영업 스타일이 이렇습니다. 헤이 존슨? 유....유 존슨? 나 미스터 리야. 그냥 걸어가, 뚜벅뚜벅 걸어가 그냥. 계약 다 되어 있는 거 알거든. 국민들만 모르니까. 이게 그 분 특유의 ‘무대포’ 정신입니다만. 근데 영업만 그리 하시지, 노동자들에게도 그러시더군요. 노동자는 어디 서민 아닙니까? 지난 해 철도노조 파업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때도 뚜벅뚜벅 걸어가셨지요. 철도공사로. 불법파업이라시니. 게다가 밥통 타령. 지겹습니다.

 

노동조합  2008년 기준 남한의 노동조합 조합원 수는 필자 포함 도합 1,665,798명으로 집계되었고요. 노조 조직률은 10.5%입니다. 한국노총의 전체 조합원 수는 72만여 명이고요. 민주노총은 65만여 명입니다. 남한의 기업별 노조 조합원과 산별노조 조합원은 각각 78만여 명입니다.  

 

동방신기 팬클럽  뜬금없이 웬 동방신기? 정초의 상상력이 한 해를 풍성하게 합니다. 여하간 ‘카시오페아’, 동방신기의 대표적인 팬클럽입니다. 회원 수는 79만여 명입니다. 물론 진성회원 수에 대한 의심도 있겠지만 그건 노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전속계약  영웅재중(23살), 시아준수(22살), 믹키유천(23살) 이 세 친구가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습니다. 이 가처분의 상대방은 그 유명한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대표이사는 김영민씨인데, 사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이수만’씨입니다. 여하간 위 친구들은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 동안의 연습생 시절을 거치고 스타급에 오른 남부럽지 않은 영혼들인데. 문제는 에스엠과의 전속계약이 너무 길었다는 것과 다른 계약을 통한 자유로운 연예활동이 제한당해 왔다는 겁니다. 소위 ‘노예계약’. 최초계약은 데뷔음반 출시일로부터 10년, 1차 부속합의에 따라 13년으로 연장되어 연예활동의 모든 권리가 에스엠 측에 상당한 정도로 종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이러면 영웅재중?믹키유천 36살, 시아준수 35살까지 아이돌로 남아야 됩니다. 군대 갔다 오면 2년씩 더 더하면 됩니다). 참고로 ‘보아’는 15년. 얘도 참 안됐다 싶습니다. 군대도 고작 2년인데. 그것도 싫다고 탈영하는 얘들도 있는데.

 

에스엠  에스엠(SM)? ‘이수만’의 S와 M을 따왔다는 설, Star Museum의 약자라는 설 등등. 여하간 총자산 730억. 계열사만 9개. 얘네들 워낙 유명하니깐 요기까지만.
영웅재중, 시아준수, 믹키유천 이 세 친구들이 에스엠과 맺은 전속계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계약을 해지하려면 총투자액의 3배 및 잔여 계약기간 동안 일실이익의 2배를 보상하도록 말이죠. 허나 에스엠측이 계약을 위반했을 때에는 아무런 배상조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 친구들이 계약을 해지하겠다 한 겁니다. 근데 사장님, 장기 전속계약, 이렇게 항변합니다. 업계 특성상 신인발굴 및 투자에 따른 위험, 내가 감수해야 한다, 경쟁업체의 무임승차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 현지 에이전트와 7년간 계약을 했기 때문에 장기계약은 부득이 하다, 수익분배 조건도 전례 없이 빵빵했다 등등.

 

법원  판사가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해도, 부담 안될 리 없겠지요. 79만 명의 팬클럽이 사법부의 안티가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고조선 이후 최고의 안티팬을 확보한 국민 왕비호, 사법부. 아찔. 상상만 해도 뒷골에 220볼트 전류가 흐릅니다. 어찌되었든 법원은 에스엠측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위 세 친구들에게 부당한 부담을 지운데다 경제적 자유와 헌법상 직업선택과 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더구나 이들의 전속계약이 민법 제103조에 따라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며 더 이상 신뢰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법원은 가처분의 효력에 대해 전속계약 전부를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 세 친구의 독자적인 연예활동을 보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사건의 노른자위, 되겠습니다. 사실 중요한 건 다음부터입니다. 

 

불매운동  소송에 들어가자 ‘카시오페아’, 고민 끝에 결단합니다. 불매운동 돌입.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된 찌라시 쫙 깔립니다. 불매운동 사유는 분명했습니다. 가처분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돌연 콘서트 일방적 취소, 그에 따른 일본 중국팬들에 대한 큰 피해(티켓, 차 대절, 숙소, 항공권 등), 콘서트 취소에도 앨범을 판매하는 모순된 처사, 팬클럽에 대한 부적절한 대우, 그리고 전속계약의 부당성. 특히 전속계약의 부당성, 이렇게 주장합니다. ‘동방신기가 단순히 에스엠의 수익창출 도구로 소모’되고 ‘비전 또한 바랄 수 없기에 더 이상 에스엠의 절대적인 소비자가 되어줄 수 없다’고. 소위 ‘우리 오빠 건드리지 마’라는 오빠국수주의를 넘어서 ‘소비자의 권리’로 무장하여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에스엠에 조직적으로 대항하게 됩니다.

 

1996년  이소선 어머니께서는 자주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3일만 집에서 안나와봐라,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거 다 실현될 수 있다,고 말이죠. 파업만능주의,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동의 권리를 빼앗는 일에 노조가 싸우지 않는다는 건 팬클럽 보다 못한 일입니다. 얼마 전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1996년 당시에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이 법을 날치기하려는 걸 막기 위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함께 맞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은 무엇을 하고 있고, 한국노총은 어디 갔나요? 보신 분 있으면 연락주세요.

 

비교  미디어법, 절차는 위법하나 법률은 유효하다고 합니다. 철도 파업도 마찬가집니다. 적법하기는 하나 결국은 불법파업이라고 말이죠. 철도노조 위원장이 구속되었습니다.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노동자들은 탄원서 한 장 써보았습니까? ‘카시오페아’는 동방신기의 전속계약에 대해 부당성을 주장하며 12만 명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우리 166만 조합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집단적 노동관계의 중추신경인 전임자·복수노조 문제.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은 결국, 중추신경에 보톡스 바늘을 꽂았습니다. 바늘이 척수를 헤집기 전까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과연 무엇을 했습니까? 78만여 조합원들의 미래가 달려 있는 산별노조 교섭권을 제대로 인정조차 않는데 양대 노총은 정치권만 탓하고 있을 겁니까? 1996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연대 투쟁”. 그 때를 기억하는 이유는 ‘총파업’보다 ‘연대’에 있기 때문입니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아니 천막 비닐만 나부끼고 있습니다. 쩝.

 

미래  작금의 노동정책이 ‘무대포’라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을 허망하게 물러서게 만드는 게, 노동조합의 미래, 노동운동의 갈 길은 아닐 겁니다. 우리의 문제를 또 다시 노동자가 될 다음 세대에게 떠 넘겼습니다. 하지만 79만 명의 동방신기 팬클럽은 동방신기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였습니다. 많은 수가 청소년, 20대 청년인 그들은 에스엠에 대항하여 ‘소비자에 대한 책임이행 및 처우개선’, ‘부당한 계약조항 시정’을 걸고 1, 2차 불매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들도 언젠가는 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모이게 될 상상을 해보지만, 그들에 비해 우리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새해 서비스 1  동방신기 가처분 사건을 맡은 임상혁 변호사는 지난 12월 한 언론지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요. 전속계약의 문제가 재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라는 기자의 질문에 임 변호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파업을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면서 미국에서는 제작자와 연기자 간에 단체협약을 맺는다는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실제로 2008년 미국 배우조합 SAG(영화 한편당 20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는 ‘윌 스미스’씨도 조합원이라네요.)는 미국영화방송제작가연합과의 단체교섭이 결렬되면서 파업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자가 임변호사에게 묻습니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요?’
“배용준, 장동건이 움직이면 돼요.”
뜨악. (숨 고른뒤 두 손을 모은 채) 필자는 이 말이 가능하다는 얘기로 해석하겠습니다.

 

새해 서비스 2  연예인들의 노동조합 참여도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88년 서울방송연예인노조가 출범했고요. 초대 위원장은 드라마 ‘대조영’ 에서 연개소문의 노비로 등장했던 탤런트 박경득씨가 취임했었습니다. 1989년에는 전국예능인노조가 출범했습니다. 초대 위원장은 ‘갈대의 순정’을 부른 가수 박일남씨였습니다.
서울방송연예인노조는 한국방송연기자노조로, 2006년에는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조로 명칭과 더불어 조직형태를 산업별 노조로 전환하였습니다. 13개 지부 중 가수지부는 2005년에 만들어졌다네요. 전국예능인노조는 1999년 연맹으로 전환하여 현재까지 별도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동방신기 또한 이들 노조에 언제든지 가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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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협해지 잔혹사

기고예정인 글이라, 퍼 담으지 마셈..^^;; 부탁드림~OTL. 

 

1. 기억. 기억의 뭉치들이 사가(史家)의 손을 거치면 역사가 된다. 대서방에서 전입신고를 대행하던 시대가 끝나고 인터넷 한 방으로 모든 걸 쫑내는 이 시대에, 역사는 꼭 사가의 손을 거칠 필요는 없는 법. 모두가 기록하고 생각을 담으면 역사가 된다. 역사의 본질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대로 기억해내고 읽어내면 현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현재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변화무상한 자신의 ‘현재’ 삶을 제대로 드리블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토록 신종 독재망령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이유, 사실 과거를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탓 아닐까. 

 

2. 진화론의 본좌 ‘다윈’. 올해 딱 200살 잡쉈다. 다윈하면 그의 복음서 ‘종의 기원’과 이꼬르 관계가 성립한다. 인류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 없었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요, 고무줄만 남은 빤스, 되겠다. 그러나 필자, 이 진화론이 북반구 조선 민중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음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현생 인류의 탯줄을 따라가 보면, 결국 우린 영장류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가. 허나 우리 민족 중 일부는 이러한 영장류의 유전자와 다른 유전자가 짬뽕되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가설되시겠다. 그리도 어마어마했던 사건, 사고들은 상처로 남아 기억으로 남을 법 한데도, 얼마 안가서 다 잊어먹는 기억력 자진삭제 현상이 단순히 핸드폰, 네이게이션, 닌텐도 때문만은 아니며, 필시 역사적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 증거가 바로 ‘삼국사기’다. 이 책의 저자, 김부식 선생께서는 조선 민중의 시조(始祖) 중 알에서 부화한 분이 있음을 간증하고 있는 바, 분명 조선 민중의 일부 무리들 중에는 ‘조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을 역사적으로 증명할 토대를 제공하셨다.

 

하여 본인의도에서 초연하게 열반하사 가스불에 올려둔 액체 음식을 열분해하여 비결정성탄소, 소위 재로 만드는 일이 허다하거나 돌려서 따는 병따개를 굳이 도구나 이빨 등 신체의 일부를 이용하여 개봉하는 개탄스러운 사태에도 뿌듯해 마지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통상 ‘닭대가리’나 ‘새대가리’라고 별칭을 부르는 것이 이냥저냥 붙여진 것이 아닌, 역사적 맥락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하지만, 여기까진 애교다. 정작 이 시국에 그 서슬 퍼런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유전적 귀책사유, 논할 성질 아니다. 문제는 망각이 아니라 인식이다. 평생 동안 본인 해당사항 없는 감세정책에 환영하고, 지구 표면의 일부분의 면적도 소유 못한 자들이 대운하에 흥분하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시츄에이션일 뿐이다.

 

3. 스물 한 번의 세기를 반복하면서 좌회전을 하든, 우회전을 하든 우리 역사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고, 상승과 하락 그리고 보합의 차트를 그리며 여기까지 왔다. 노동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로 우리는 조금 더 전진할 수 있는 에너지와 약간의 후퇴를 감내하고 양보하는 지혜를 얻었다. 하지만 이번 정권의 후진 속도는 가히 오바이트가 쏠릴 정도라 하겠다.

 

여하간 그 후진의 역사가 다시 노동에서 반복되고 있다. 역사가 수직으로 진보하든 나선형으로 진보하든 간에 노동은 항상 21세기에도 어김없이 탄압을 받으며 두산의 ‘배달호’, 한진의 ‘김주익’ 등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 몇 년 전 노조와 노동자들에게 ‘때려버린’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노동의 역사를 한 세기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저항했고, 노동자 자신과 노동조합을 지켜냈다.

 

4. 그러나 한 세기 전으로 되돌아간 노동의 역사를 업데이트 하기 위한 노력도 잠시, ‘단체협약 해지’라는 신종 최루액을 쏘아대며 자본이 공세를 퍼붓고 있다. 노사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격론과 고성을 주고받으며, 때론 파업과 직장폐쇄라는 맞짱을 떠가면서 어렵사리 노사 양손 맞잡고 맺은 단체협약. 이걸 없었던 걸로 하겠단다.

 

더구나 ‘생존의 등기부’를 말소하겠다는 사용자들의 맨 앞줄에는 ‘정부’가 있다. 교육청, 시청, 공공기관 등 앞다투어 얼굴에 단체협약 해지라는 철판 깔고 용접질을 하는 이 정부의 노사관계 인식이 다시 노동의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5. 단체협약 해지, 노조법에 근거가 있다. 해지해도 합법이다. 노조도, 사용자도 할 수 있다. 다만 노조법 제32조 3항의 내용은 이렇다. 사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끝나고도’ 기존 단체협약이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까지 계속 유지되거나 새롭게 갱신된다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별도로 규정하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노조나 사용자가 생각하는 해지일로부터 6개월 전에 상대방에게 통보하면 6개월 뒤 단체협약의 효력은 소멸된다. 무단협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시는 상식으로는 무단협 상태가 되어도 임금, 근로조건 등에 대한 규범적 부분은 유지되지만, 조합활동과 관련된 사항인 채무적 효력은 소멸된다고 아실테다.

 

허나 이는 독일이 단체협약법 제4조 제5항에 ‘단체협약상의 법규범은 그 종료 후에도 새로운 단체협약, 사업장 협정 또는 근로계약으로 대체가 될 때까지 계속 효력을 가진다’는 아름다운 조문을 삽입하기 전, 써먹었던 논리들이다. 다소 억지라고 생각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학자들이 애써 만든 자구논리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 입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근데 우리는 1998년 노동법을 개정해 단체협약 해지와 관련된 조항을 신설하여 문제를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6. 생각해 보시라. 단체협약 해지를 할 노조가 몇이나 되겠는가. 노조 실력부족으로 인해 견디지 못할 정도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치자. 이 경우 유효기간이 지나면 해방된다. 그리고 단체협약 새롭게 체결하면 그만이다. 굳이 해지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통상 단체교섭이라는 것이 기존의 단체협약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므로, 노조는 기존의 단체협약을 바닥에 깔고 시작한다. 노조 스스로가 해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단체협약의 해지권을 활용할 이유는 사용자에게 있는 셈이다. 근데 이 해지권, 그리 빈번하게 사용치 않았다. 노사의 힘이 대등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노사의 신뢰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까지 앞장서서 단체협약 해지를 독려하는 마당에, 노사간 신뢰, 이젠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7. 더구나 현행 노조법 하에서는 무단협 상태가 되면 노조의 활동을 제약하는 효과를 가져와 노조가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단체협약 해지라는 것이 해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정의 변경이나 중대한 사유가 발생하는 등 기존 단체협약을 유지하는 것이 노사에게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온다면 모를까, 여태까지 그런 사례는 접신을 해야 파악할 정도로 흔하지 않다.

 

결국 단체협약 해지는 노조에 있어서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어, 노조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게 되고 그 결과 노사관계는 파탄에 이르기 일쑤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옵션으로 사장님 명성과 인간성에도 흠집이 날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고.

 

8. 기억하자. 일자리 창출 운운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시대를 열 것처럼 장담하던 이 정권의 노동에 대한 인식의 끝은 ‘배반’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가 담대하게, 때론 장렬하게 피흘리며 목숨을 댓가로 얻어내었던 노동의 권리를 어찌 삽 한자루와 바꿀 수 있겠는가.

 

87년 이전 살기 위해 투쟁했고, 98년 외환위기까지 살아내기 위해 투쟁했으며 오늘날에 비로소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했음을 그들이 기억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우리의 기억이다. 분명하게 기억하자. 그 기억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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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직원 살인유기사건

*화요일(19일)자 매일노동뉴스 판례리뷰, 미리 올려 둔다.

 

 

동료직원 살인유기사건
- 대구지판 2009. 4. 22. 2008구단3482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취소 -

 

1. 불황으로 인해, 장문의 판결문을 골라 쓸 수가 없었다. 오로지 민족중흥의 역사적 망령을 떠올리며 필자만의 우국충정으로 조금이나마 지면을 줄이는 결단 아닌 결단을 했다는. 물론 짧은 판결만 찾아다니는 하이에나라는 비판, 무섭지 않다. 되려 필자가 ‘수고가 많다’라는 칭찬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급흥분된다. 마침, 하나 걸렸다. 짧디 짧은. 그러나 오싹한. 하드코어 엽기호러 사건. 노동사건 치고 영 안습인데. 급흥분 모드, 급격히 진정된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대구의 한 섬유공장. 야근을 하게 된 A씨. 어제는 월급날. 작업이 흥이 난 것일까. 다른 동료들이 모두 집에 간 뒤에도 작업장에는 A씨와 B씨가 남아 있었다. 물론 B씨는 작업 때문에 남아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때문에 그 날 야근이 A씨 인생의 마지막 노동이 될 줄이야. 새 아침을 맞이하는 건, 이 날 이후 A씨에게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다. 동료의 지갑을 털기 위해 B씨는 둔기로 A씨의 머리를 내리치고 흉기로 목 부위를 수차례 찔러버렸기 때문이다. 월급날 받은 돈으로 추정되는 지갑 속 128만원. 이것만 남기고 B씨는 A씨의 주검을 작업장에 있던 원단과 비닐로 싸 벽돌을 매단 후 지하 집수조에 던져 버린다. 그의 영혼까지.

 

2. 이 사건, 우울하다. 20대의 젊은 아들 때문에 A씨의 아버지가 이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한편 패소했다는 점에서. 그 아비의 마음, 이해가 가는가. 억울하고 또 원통하지 않겠나. 조선, 세종은 형사사건 지침서인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출판하시며, 가라사대 ‘원(寃)통함이 없게(無)하라’고 했다. 또한 정약용 선생은 ‘흠흠신서(欽欽新書)’라는 형사재판 실무해설집을 펴내시며, 이르노니 재판받는 사람을 연민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고 두려워하라 하셨다.

 

이건 판사의 개인기와 무관한 포지션의 문제다. 판사가 원래 잘 나서 이 양반들께 따박따박 혈세로 월급 꽂아주는 것이 아니다. 살인, 폭행, 강도, 강간, 성추행, 간통, 사기 등등 세상에 추잡스러운 일들은 그들이 처리해야 몫이라는 점에서. 판사라는 직업이 생각만큼 그리 고상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일동 기립’의 예(禮)를 다했고, 판사‘님’짜를 붙였던 건, 그들이 내리는 판결이 곧 정의가 되고, 백성들에게는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직접 안아달라고 했나. 저 잘난 푸른 기와에 자리를 틀고 있는 삽옹께서 새벽시장 할머니의 배추 몇 포기를 사다주고 목도리 하나 둘러주며 생색내는 위문공연이 아니라, 진정 위로가 될 수 판결을 내려달란 얘기다.

 

3. 이 사건, 슬프다. 아내 혹은 남편, 가족보다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동료의 손에 목숨을 빼앗겼다는 점에서. 하루 24시간 중, 우리들은 그 3등분 중 한 조각 시간의 파이를 직장 동료와 함께 나눈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 분노하면서도 슬프기 짝이 없다. 동료라는 사내가 흉기를 들고 노린 게 고작 지갑뿐이었다면, 인권이고 나발이고 진정 용서가 안 되는 거다. 성장률 0% 시대에, 생계형 지갑털이범이라도, 목숨까지 털어가는 건, 내 정신이 허용 못하겠다.

 

허나 더욱더 슬개골이 무너지듯 나를 좌절케 하는 것은, A씨를 죽인 직장 동료가 카자흐스탄 출신의, 젊디젊은 20대에, 불법체류자인 이주노동자였다는 점이다. 그들이 우리 경제에 피와 살을 뿌려가며 무엇을 했는지 안다. 그래서 그들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맘몬이 지배하는 이 한국 땅에, 탐욕에 빠지고 물질에 현혹되기도 하는 그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물론 이들은 소수다. 하지만 잔인하고 엽기적인 사건에 그들을 혐오하며 이주 노동자 모두들 싸잡아 ‘고 홈’을 외치는 야박한 사람들도 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과연 128만원에 타인의 영혼을 절단케 하는 용기, 어디서 나온 걸까. 용서는 안되지만 우리도 우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처음 한국땅 밟으며, 꿈꾼 미래가 무엇일까. 황금마차에 현찰 싣고 고향 돌아가는 거 아닌가. 근데 그건 애초부터 안된다는 걸 깨닫는 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불법체류에, 도망 다니며, 때로는 맞아가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실망감과 분노심을, 적개심을 가지면서. 말이 좋아 ‘고 홈’이지, 결국 ‘겟 아웃’.

 

4. 사건으로 돌아오자. A씨의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 산재신청을 했다. 유족급여와 장례비를 사장님 대신해 국가가 책임지라고. 이 사건 법원은 직장 동료에 의해 사망한 경우, 그것이 직장 안의 인간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하여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고 전제하였다. 하지만 A씨의 아들이 하던 업무가 사회통념상 가해행위를 유발할 수 있지도 않으며, 작업이 종료되어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도 않았고, 직장 안의 인과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도 아니라고 ‘간단히’ 판결했다. 판결문이 짧은 것도 불황 탓인가.

왜 이런 결론이 도출되었을까. 법원은 이 사건의 전제를 ‘사적 관계’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단정 짓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무상’ 혐의를 인정치 않는 것이다. 그런데 더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데 있다. 판례는 직장 동료의 가해행위로 인해 사상한 경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데에는 인색하다. 피해자나 가해자의 행위가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가를 엄격히 따지기 때문. 극단적인 예. 회식 중 동료가 죽통을 날렸는데 그 이유가 업무 얘기로 마찰이 있었다면 업무상 재해, 사적인 이유면 파출소로. 이런 건 엄격한 게 아니라 오버라고 한다.

 

5. 업무관련성이라는 건, 고무줄처럼 탄력적인 도구개념이다. 그게 탄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법원리가 그렇게 만들어 놨다. 사회법원리, 국가가 ‘니네 뒤는 내가 봐준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직장 동료의 가해에 대해서는 업무관련성이라는 걸, 좀 넓게 볼 수도 있지 않나. 이 사건도 그렇다. 야근을 한 직원들이 대부분 퇴근한 이후, 작업장 내를 먼저 둘러봤어야 했다. 근태관리는 출근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퇴근 때에도 똑같이 적용되므로, 일과종료 이후 사업장 내 안전?시설관리와 잔류자의 확인 등이 필요했다.

 

아무리 계획된 범죄라고 할지라도 사업장 내 A씨와 B씨만 남아있었고, A씨가 사망한 이후 집수조안에 사체가 유기될 때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임에도 회사의 관리?감독자 등에 의해 제지를 되거나 포착되는 일이 없었다면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근로자의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인적?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필요한 조치는 사용자의 의무이기 때문이다(대판 2000.5.16.99다47129).

 

더구나 동료에 의한 사상사고를 개인의 ‘재수없는 일’로 치부되도록 노동법이 팔짱끼는 꼬라지는 못 봐주겠다, 이거다. 나아가 동료에 의한 사상사고가 업무상 재해일 경우, 근로복지공단이 가해 근로자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하는 건 안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인데(대판 2004.12.24.2003다33691). 가해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도 사회법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사업장 내에서 동료에게 살해당한 경우도 당연히 사회법원리에 의해 보호되어야 하지 않나.

 

마지막으로. 노동법에 위로받을 수 없다면, 헌법이 위로해 줄 방법을 찾아보자. ‘범죄피해자구제제도’. 이 제도는 범죄행위로 사망하거나 심하게 다친 피해자가 범인을 알지 못하거나 범인이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해줄 돈이 없어 범죄피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 국가가 피해자나 유족에게 구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올해에는 범죄피해자구제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유족구조금이 현행 1,000만원에서 최고 3,000만원으로. 피해자 유족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A씨의 아버지께서는 대구지방검찰청 범죄피해자구조심의회에 찾아가 보실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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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좌파 판사”가 있다

법원에 “좌파 판사”가 있다

- 2009. 2. 24. 2008구합35835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

 

1. 자동판매기의 원리. 뭐를 뽑을까 확인한다. 가격대? 종류? 일단 정해지면 동전을 넣는다. 다음,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생각한 것을 누른다. 그리고 1-2초 후 자판기의 구강으로 손을 집어넣어 상품을 꺼낸다. 자, 이 원리를 응용해 보자. 골치 아픈 사건이 있다. 가격대, 종류 등을 고려해 판사에게 사건을 넘긴다. 그리고 재판중이라는 빨간 불이 들어오면 재판 시작한다. 원고와 피고는 생각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몇 달, 혹은 몇 년 후 판결문을 손에 넣게 된다.



2. 요즘 법원, 판사들 힘들겠다. 대법관이 재판개입 했니 어쩌니 하고 있으니. 사건배당을 어떻게 했건, 위헌심판제청이 우찌 됐든 간에, 윗선에서 까라면 까야 되는 알밤법칙. 이젠 사법부에선 안 먹히나 봐. 그 이유인고 하니, “젊은 좌파 판사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라는 삐라가, 인터넷에선 애국 누리꾼들이 소위 ‘좌파 파르티잔’, ‘좌빨’ 작위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법부 인사들을 지목하고 제보에 나서고 있으니. 실로 비통하도다. 나라의 안보가 이렇게 뻥 뚫려 있었다니. 그게 또 사법부라니. 그 동안 국정원은 왜 이 왕건이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오호 통재라.

 

3. 가끔 자판기에 동전이 걸린다. 해결방법, 통상 손이나 발로 약 2-3회 정도 가격을 하면 자판기 소화불량이 해소된다. 작금의 사태도 마찬가지. 원리는 같다. 근데, 판결이 나오기 까지 뭔가 걸려 있어 몇 대 꽝꽝 쳤는데, 어라, 왜 안 나와. 약발이 안 듣는데. 약한가? 그건 좀 아닌 거 같고. 이 고장의 원인은 뭔가. 그럼 좌파 판사? 삐라와 제보가 사실이란 말인가. 정녕 이들이 존재한단 말인가.

 

4. 이 사건, 본지 이 꼭지에서 십계명처럼 다뤘던 ‘근로계약 만료로 인한 해고사건’이다. 말머리를 장황하게 늘어뜨린 건 꼭 이 사건과 연관성이 있어서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나라의 안보와 구국의 심정으로 과감히 필자가 사법부의 ‘좌빨’을 검증하는 일선에 서서 본 판례 또한 부검을 실시하고자 한다.

이 사건, 병원측이 병원에 고용된 약사를 짜르기 위한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다. 이 병원에선 모든 직원이 1년 계약을 체결하면 스트레이트로 쭉 계약이 갱신되었단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전문직종 특히, 약사들의 경우 아니꼬우면 아쉬울 거 음따, 이런 태도로 이직이 잦아 약사 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거다. 어찌 됐든 간에 매년 계약이 갱신된 거니깐, 계약만료일에 맞춰 나가라고 한 건 문제없다는 말씀이겠다.

게다가 이 약사의 의약품 조제실수, 이건 환자 생명직결 사항. 행여 야채인간이나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상조회사 서비스를 본인의사와 무관하게 받을 수도 있는 일. 봐주기는 곤란하고. 웬걸, 병원에서 지각까지? 또한 재고 확인하랬더니, 시간 없고 사람 없다? 개기냐, 무슨 배짱이냐. 결국 병원측, 약사 까운 강제탈의, 불가피했다는 얘기.

 

5. 자, 여기서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을 소개해 본다. 어떤 판결을 내릴지 예상해 보시라.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행정법원 제13부(정형식, 장찬, 허이훈). 이 팀은 최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욕도 어지간히 비벼 드신 걸로 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를 취소해달라는 집행정지신청 또한 ‘출국을 못하게 된다고 해서 최 대표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하는 용단을 보이셨다. 최근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뉴스9’에 대한 주의조치 처분이 부당하다는 방송제재 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도 ‘KBS가 자사를 옹호하는 정치권이나 단체의 입장만 중점 보도하고 반대 견해는 거의 전하지 않았다’고 기각판결을 내렸다. 마지막 굳히기 하나. 몇 년 전이기는 하지만 정형식 부장판사가 형사부, 그것도 형사 제13부에 계실 때 북한에 몰래 다녀와 인터넷에 김일성을 찬양하는 간증수기를 올린 민주노동당 당원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한 바 있다. 이쯤이면 대충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되시나?

 

6. 서울행정법원 제13부 판사들은 이 사건을 이렇게 판단했다. 1년 계약이 형식에 불과한 것이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간이 계속 연장되었기 때문에 일단 계약직이 아니란다. 게다가 이 약사가 국소마취제 처방을 잘못하는 등 의약품 조제에 있어서도 실수가 잦았고, 의료사고도 생길 수 있었다는 병원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증거 불충분일테고.

의약품 재고지시를 인원과 시간부족을 이유로 거부한 것도 환자치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출근시간에 있어서도 오전 10시까지 출근인데, 자주 지각을 했다는 건 인정하면서, 업무에 차질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측의 해고가 정당하지 않다, 결론이 이렇다. 약사, 승소. 조금 실망스러운가? 왜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7. 판결문 자판기에 문제가 있다며, 원인을 좌파 판사들로 지목하는 발상, 놀랍다. 더 놀라운 발전은 친북과 좌파를 분리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북, 쓰고는 싶어도 명예훼손 걸릴까봐. 더구나 판사님인데. 인간은 더디게 진화하긴 하는가 보다.

판사는 법정에 제출되는 증거들로 사실관계 규명과 법리적용을 하는 존재다. 그건 헌법이 그렇게 규정지어 놓았다. ‘자유심증주의’라고. 물론 판사도 사이보그가 아닌 한 보수적일 수도, 진보적일 수도 있다. 그건 삶의 태도다. 삶의 태도는 자신의 철학이고 그게 간접적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법리’라는 필터를 통과해야만 판결문에 옮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판결을 했다고 좌파고, 우파고 할 수도 없거니와 개인의 신념이나 생각과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을 삐라 신문들은 기억하기 바란다.

 

8. 앞서 몇 가지 판결례만 가지고 이 판사들 되려, 우파적인 사람들로 단정 짓지도 말지어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의 판결례 몇 가지만 소개하면, 얼마 전 한국외대 노조가 파업 중에 징계는 부당하다고 낸 소송사건이 있었다. 이 재판부는 ‘징계에 따라 노조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고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단체협약 조항에 근거해 징계는 부당하고, 학교측 징계를 부당노동행위라고 보았다. 또한 노동조합 전임자가 회사측의 인사이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된 것에 대해 ‘회사의 전출 명령을 따르지 않고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실적부진을 이유로 해고하는 것도 부당하다, 지나치게 높은 업무능력 평가기준으로 시용근로자를 해고하는 것도 부당하다, 2005년 현대차 취업비리 사건에 연루된 조합원을 회사명예 실추로 해고한 것도 부당하다, 부장이나 점장 등 2차 평정권자로부터 직원들의 노무관리를 위임받은 ‘과장급’ 직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노조의 단체교섭위원으로도 활동할 수 있어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쯤이면 슬슬 두뇌를 좌우로 도리도리하면서 혼란스러울 찬라에, 굳히기 하나 들어가면 또 관점이 변할지도 모른다. 이 재판부가 6.25전쟁에 참전했다 북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던 중 부상을 입은 노인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청구소송에서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는데. 또 좌파 냄새 나냐? 그건 니네들 코가 문제야. 코가.

 

9. 판사가 판결로 말하든, 성대로 말하든 간에 이들에게 어떠한 개입과 간섭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정권교체기에는 늘 그 독립성이 문제되어 왔다. 이건 몇 몇 판사들의 문제가 아니다. 판결문 자판기 고장, 소위 사법부 파동이 일어난 대부분의 이유는 사법부 내부 관료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좌파, 우파 이게 문제가 아니라. 결국 언론, 정치꾼들이 좌파 판사 들먹이는 건 대법관 옹호의 외피를 둘러쓴 채, 정권유지 차원의 계산된 로그값이다.

본 사건도 이 재판부를 색안경을 끼고 봤다면 결과가 뻔할 것이다. 그러나 판결로 말할 수 있는 입을 봉하고 멀쩡한 판사를 좌파로, 꼴통으로, 반동으로 몰아간다면 기대할 수 있는 정의는 없다. 더 나아가 사법부의 신뢰. 내부의 개혁, 중요하다. 그러나 더 기본은 양심과 소신을 걸고 판결할 수 있는 판사를 괴롭히지 않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판사 개인의 양심과 소신을 대내외의 압박으로 짓뭉갠 결과가 우리 역사에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으로 남지 않았던가. 여전히 문제의 대법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처신했다고 하지만, 이건 청와대의 ‘법과 원칙’이라는 삽언과 다를 바 없다. 불현듯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음성이 아련하게 들려온다. “히틀러의 만행은 당시 합법적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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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보호 못하면 누가 보호해주나

법이 보호 못하면 누가 보호해주나

- 울산지방법원 2008. 12. 10. 2008가합XX30. 근로자지위확인 -

 

1. 새해다. 복 받자, 보다는 남은 복이라도 뺏기지 마시라. 남은 복 지키는 다이제스트. 대통령 말 믿고, 주식 사지 말 것. 정부 대책 발표 때마다 집값, 떨어진다. 기다려라. 대책 안 나올 때까지. 감세한다고, 술빨 세우지 마시라. 감세분의 누적분, 언젠가 새 정부의 증세로 이어진다. 모아두라. 덕담 끝. 지난 12월 말, 국회는 재활용센터, 아니 쓰레기집하장을 방불케 했다. 이 글이 독자의 손에 쥐어져 읽혀질 시점이면, 반대편 손에는 ‘촛불’을 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지난 한 해, 조선백성들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국가 원수에게 ‘공약 불이행’을 허하노라며, 촛불 문화제까지 열어준 바 있다. 그러나 이를 뿌리치시며, 청와대에 홀로 앉아 큰 삽 옆에 끼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얼리버드 변신하사 근태관리 애쓰시다 주마등 같이 공사현장 뇌리스쳐 공약관련 불문하고, 평소 꽂힌 아이디어 12월말 무더기로 법안처리 강행하사, 다시 촛불 들게 하네. 어찌됐든 MB정부 최대수혜, ‘양초공장’임은 분명하네.



2. 이 사건, ‘근로자성’과 관련된 것인데(사건번호의 ‘XX’를 처리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 판례의 원천 줄기세포는 ‘제일씨티리스 사건(대판 1994. 12. 9. 94다22859)’.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되기 위한 요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 판례가 현재까지 근로자성 판단의 금과옥조, 되겠다. 굴비처럼 엮인 열 몇 개의 기준은 ‘소림18동인’과 견주어도 별반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이 판례의 기준에 따라 근로자가 되었다가도 다시 근로자가 아닌 자로 유체이탈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기준을 적용하는 판사의 해석독점에서 기인하는 바다. 그러나 이 사건, 근로자성이 인정된 사례이다. 어떻게?

 

3. 근로자성 문제, 이건 사실 근로자 아니면 자영업자라는 이원 방정식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불거질 문제다. 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이 거리에서, 법정에서의 투쟁을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뭐니뭐니해도 자영업자라면 ‘자영’을 하도록 둬야지, 종속관계에서 일하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일시켜 먹었으면, 당연히 종속한 대가로 노동법을 준수할 의무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사업자등록증’을 핑계로 당신 원래 자영업자야, 하고 ‘레드썬’을 수십 번 외친다고 근로자가 자영업자가 될 수는 없다. 얄팍하게 노동법의 그물을 피해가면서, 종속관계의 이점을 죄다 챙기는 업계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별도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있는 규제의 그물도 앞으로 죄다 찢어 발겨질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 하기는 어렵겠다.

 

4. 다시 사건으로 유턴. A회사와 용역계약을 맺어 물류배송을 담당하는 B회사. B회사와 위․수탁계약을 맺어온 A씨. A씨는 물류배송과정에서 고객과 마찰이 생겨 A회사가 수차례 주의를 주었음에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B회사를 통해 배차정지, 그리고 위․수탁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이게 그냥 계약해지인가, 아니면 해고인가가 이 사건에서 다퉈진 것이다. 부당해고를 다투기 이전에 근로자성 문제, 짚고 넘어가야 한다.

A회사는 이 양반이 ‘지입차주’라고 주장하지만. A씨는 ‘근태관리․징계․휴가통보․매월 기본수수료 및 수당 지급․업무 평가후 인센티브 및 견책조치’ 등에 있어 A회사의 직접관리 모드 아래 있었다. 법원은 A사와 A씨 간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다. 앞서 나열한 바와 같이 제반 지휘․감독을 B회사가 아닌 A회사가 실질적으로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포인트. 한편, B회사는 형식적으로 독립된 사업자 지위를 가지고는 있지만, ‘바지사장’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판례에서는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B회사는 A회사와의 관계로만 볼 때 ‘노무대행기관’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 판례에서 B회사의 실체를 밝히는데는 주력하고 있지 않아 자세한 것을 거론하기는 어려울 성 싶다.

 

5. 여기서 다룬 판례는 사실, 사안이 비교적 명백해 앞서 언급한 ‘금과옥조’에 넣으면 바로 답을 토해내는 사례이다. 지방법원의 노고를 치하할 사안까지는 아니라서 별도로 가타부타 덧붙일 말, 없지만. 지난 정부 때부터 근로자성 문제, 꽤 오랫동안 쟁점이 되어 온 것이 사실. 진전이래 봐야 2008년 7월부터 경기보조원(캐디)·학습지교사·레미콘운전자·보험설계사가 산재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는 정도. 물론 대법원도 최근 들어 몇 가지 판단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의 변화조짐은 보인다(대판 2007.1.25. 2005두8436 등). 그러나 근로자와 자영업자 간에는 노동법이 미리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종류의 고용형태와 그에 따른 문제점이 계속 드러나고 있으나, 이후 대책은 없는 실정. 법이 스스로 가랑이를 찢어도 별 수 없고. 보호법 마련이 요구된다. 이 겨울, 대리운전․퀵서비스․택배 종사자들에게 부는 칼바람을 노동법으로 막아줄 수는 없을까.

 

6. 특수형태 고용종사자인 경기보조원에게 산재보험적용의 길이 열린 이후, 이런 일이 있었다. 골프카트가 뒤집혀 척추가 접힌 경기보조원, 산재적용을 못 받는단다. 회사측이 미리 경기보조원들에게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받아뒀기 때문. 이런 짓이 가능한 이유, ‘갑’의 압력이 먹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영업자처럼 ‘자영’할 의사도, 권력도, 힘도, 돈도 없는 ‘종속적’ 지표를 보여주는 물증. 한편, 특수형태 고용종사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률(68.5%)이 높단다. 왜냐, 업주의 압력도 있거니와 일반 근로자들의 경우 사업자 전액부담인 산재보험료를 업주와 반반 부담하기 때문. 또한 당연가입이 아니라서 가입 안할 수도 있다는 말. 결국 사회보험제도로는 근로자성에 따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반증. 결국,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

7. 사용자들이야, 당연히 규제의 틀을 벗어나려고 한다. 규제의 틀을 벗어나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규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 영역을 찾아다니기 마련. 그 영역이 바로 특수고용직이라는 형태의 사각지대다. 허나, 정부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법(공정거래법, 약관법, 하도급법 등)의 질서를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에게 갖다 대잔다. 이런다고 당사자의 지위가 대등하게 되나. 안된다. 이것도 본질과 무관하다. 경제법은 상인들간의 공정한 자유시장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법이기 때문에 근로자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결국 근로자성이 강한 직업군일수록 노동법 범주에, ‘어떤 부분’을 ‘어느 수준’으로 보호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문제해결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

 

8. 학철부어(涸轍鮒魚). 수레바퀴가 지난 간 물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그걸 본 놈이 수로를 내어 너를 살려줄테니 기다려 보라고 한 장자(莊子)의 우화. 지금 정부가 하는 꼴이 딱 이 꼴이다. 특수고용직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 등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면, 정부는 운하를 파게되면 사정이 나아질테니 기다려라, 이 식이다. 주제와는 얘기가 좀 멀어지지만, 말머리에서 밝혔듯 정부의 공약이라는 게 죄다 있는 놈들의 편향이고, 근로자와 근로자의 언저리에 걸쳐 있는 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들이다. 그러니 집권 만 1년이 안되는 상황에서 취약계층의 최소안전망을 망가뜨리는 건, 이들을 우습게 보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도 각종 법안들을 세트로 묶어, 온갖 규제완화 조치와 함께 버무리고 으깨면, 국민들이 모를 것 같은가. 다 안다. 그래서 절망할 필요가 없다. 새해, 해 뜨기 전에, 국민들이 촛불로 세상을 먼저 밝히고 있지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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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 인천지방법원 2008. 10. 23. 2008나7734. 임금 -

 

연말이 다가온다. 실물경제가 추위를 타면 체감경기는 얼어붙기 마련. 가뜩이나 오른 기름값에, 보일러를 켜놓고 출근했다 까맣게 잊고 집에 돌아와 대문을 여는 순간 몰려드는 훈훈한 기운. 몸은 따숩지만 마음은 얼어붙는 이율배반적 정신상태. 이러한 상태는 필자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예산절감이다 뭐다 지방자치단체들도 허리띠를 조이고는 있지만, 허리띠 아래로 처지는 뱃살은 어쩌지 못하는 형편인 듯. 올 연말에도 보행자들을 보우하사 굳이 안하셔도 되는 보도블럭 교체행사가 시작되고 있는 한편. 같은 지방자치단체 소속의 환경미화원들은 교통사고로 죽고 다치는데도 공상처리는 잘 안되고. 생명보험사들마저 이들을 받아주지 않고. 게다가 예산절감 이유로 환경미화업무를 외주화하겠다고 하고. 과연 이 나라의 정부는 길바닥에 뿌리는 돈을 사람에 쓸 생각은 없는 것인가.

 

당사자들의 주장

청소부 아니, 환경미화원 김씨. 인천 계양구 소속이고, 노조 조합원이다. 이 사건의 키워드는 ‘통상임금’, ‘단체협약’. 그런데 이 사건 판결문만 보면 ‘통상임금’이라는 말 때문에 상당히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이 사건 원심 또한 그런 것 같고. 여하간 김씨와 계양구청의 주장을 그림으로 정리해 설명해 보자<그림_1>.

 

이 사건은 기말․정근수당, 체력단련비, 명절휴가비를 계산함에 있어 계양구청이 ‘협약상 통상임금’만을 적용했다는데서 시작된다. 김씨는 ‘법정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기말․정근수당, 체련단련비, 명절휴가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계양구청은 이들 수당이 법정수당이 아닌데다, 이 수당들을 지급할 때 기준임금은 ‘협약상 통상임금’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협약상 통상임금’은 노사가 합의한 것으로 법정수당이 아닌 협약상 수당(비법정 수당)을 지급할 때, 근속가산금․정액급식비․교통보조비․급량비․위생비 등은 제외하여 기준임금을 정한 걸 말한다.

 

오해의 여지

쟁점을 정리하면. 기말․정근수당 등 비법정 수당산정에 대해서도 법정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의 문제. 다시 말하면 법정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별도의 기준을 노사합의로 정해 비법정 수당을 산정해도 되는가의 여부다. 우선 이 판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경미화원의 통상임금 판례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2007년 11월 29일, 대법원은 정액급식비, 교통보조비, 근속가산금 등이 근로기준법 소정의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결정을 하였다<그림_2>.

 

자료: 한겨레, 2008년 7월 22일자

 

이 사건의 배경은 이렇다. 환경미화원의 임금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환경미화원 인부임 예산편성기준지침’에 의해 정해진다. 그런데 행자부가 그 ‘지침’상 법정 통상임금을 산정하는데, 몇 가지 수당을 쏙 빼놓은 것이었다. 이러면 각종 법정수당(연차․해고예고수당․시간외․야간․휴일 수당 등)의 액수가 줄어든다. 차액이 발생하기 때문. 이걸 환경미화원들이 대법원에까지 들고 가야했다. 통상임금 다시 산정하라고. 대법원은 환경미화원들의 손을 들어준다. 이후로 대법원 판결에 힘을 얻는 각 지역 환경미화원들은 적극적으로 체불임금 소송을 제기한다. 액수만 해도 엄청난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의 김씨도 그러한 분 중에 한 분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환경미화원들의 법정수당은 법정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되,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수당들은 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과 이 사건은 본질이 다르다. 대법원 사건은 법정 통상임금에 관한 것이고, 이 사건은 협약상 통상임금, 즉 ‘기준임금’에 대한 것이다. 이 사건 법원에서도 김씨 아저씨가 주장하신 각종 수당들이 ‘법정 통상임금’에는 죄다 포함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오해는 이 사건에서 노사가 합의한 ‘근속․기말․정근수당, 체력단련비, 명절휴가비를 제외한 통상임금’이라는 단체협약의 문구에서 시작된다. 우리 김씨 아저씨께서 오해하시고 계신 부분을 원심도 오해했고.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지 않은’ 기말․정근 수당 등의 기준임금을 법정 통상임금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이는 회사가 알아서 정할 수도 있고, 노사가 합의해서 정할 수도 있다. 다만 법정 통상임금에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고정적 수당을 빼는 노사합의는 ‘무효’다. 그러나 앞서 대법원 판결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법원에서도 이러한 수당들을 산정하기 위해 일부 수당을 제외하여 ‘기준임금’을 정하는 노사합의는 허용된다는 것이다. 법정수당에는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요행히도 계양구청은 법정수당 및 퇴직금에 대해서는 정기적․일률적인 모든 수당을 법정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지급했더라 이거다. 이 사건은 ‘통상임금’이라는 용어가 사건의 독해력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김씨 아저씨께는 미안한 결론이 내려졌지만.

 

쓸자, 쓸자, 세상을 쓸자

곳곳에 울그락 불그락 물든 낙엽들. 무수히 떨어진다. 가을의 향수가 어느 순간 ‘웬수’가 돼 버린다. 환경미화원들의 성수기. 가을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 아니, 생각해 보면 늘 성수기다. 매일매일이 성수기인 그들에게 이 사회는 어떠한 대우를 했는가. 환경미화원도 국회의원이 되는 마당에, 우리 환경미화원들의 대우는 열악했다.

십 수 년간 일해 오면서, ‘월급’봉투를 손에 쥔 건 불과 3년 남짓. 그전엔 모두 일급제. 그것도 여태까지 정부의 잘못된 기준으로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 게다가 광주의 한 지방자치단체는 환경청소노조에 덜 받게 된 임금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요구하질 않나. 환경미화업무를 외주화하겠다고 으름장을, 아니 실제 외주화를 하고 있지 않나. 거리가 일자리인 그들을 거리로 내몰겠다는 이율배반적 발상. 거리를 쓸면서 늘 하루하루 가슴을 쓸어내릴 환경미화원들을 생각해보면, 세상에 쓸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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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노사에 ‘발전’이 있는가

발전노사에 ‘발전’이 있는가

- 서울행정법원 2008. 3. 11. 2007구합32030. 부당징계및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판정취소 -

 

날씨, 무진장 덥다. 더운 날씨에 깨알 같은 판결문을 읽는다는 것도 곤욕이다. 주제도 무겁다. 마음이 급하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의 정확한 사실관계는 판결문을 읽어보십사 부탁드린다. 엑기스만 뽑겠다. 원고, 한국산업발전노동조합(이하 ‘발전노조’), 그리고 본 ‘사건명’이 주제어가 되겠다. 덧붙이자면 노조가 임시총회 개최를 위해 사측에 협조를 요청했음에도, 사측은 고개를 저었다. 좌우로, 도리도리. 왜? 조합활동이 ‘취업시간 외’에 이루어져야 하고, 그 때가 ‘전력성수기(7월)’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임시총회는 개최되었고 조합원들은 임시총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징계를 먹었다. 왜? 근무지 이탈. 임시총회가 정당하게 개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칙

예외

① ‘노동조합의 활동’이거나 노동조합의 활동이라고 볼 수 있어야 함.

일부 조합원이 노동조합의 묵시적인 수권 혹은 승인을 받았다고 인정할만한 사정이 있다면 조합활동으로 인정(대판 1992.9.25. 92다18542)

② ‘근로조건 유지․개선’과 ‘조합원의 단결’을 위한 것일 것.

왜곡·과장된 점이 다소 있다 하더라도 주된 목적이 타인의 권리침해가 아니라 단결권 강화라면 정당성이 인정(대판 1997.12.23. 96누11778)

③ 조합활동의 시간적 범위:

“취업시간 외”

가. 취업시간 중에 조합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취업규칙․단체협약․관행․사용자의 승낙 등이 있어야 함.

나. 사용자의 승낙 없이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궐석임원의 선출, 노조의 존속여부 및 조직변경에 관한 결정, 정당한 쟁의행위의 결의 등 중대하고 부득이한 사유가 존재해야 함(대판 1994.9.30 94다4042).

④ 조합활동의 장소적 범위: “사업장 밖”

사업장 내의 조합활동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시설관리권’을 침해해서는 안됨.

법원의 논리전개

우선 대법원이 제시하는 정당한 조합활동의 기준은 다음 <표>로 서비스 했다. <표>에 정리된 원칙은 대법원의 일관된 스탠스다(대판 1992.4.10. 91도3044.). 물론 학자들 간에는 다소 이견이 있지만 판례 논리를 지지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자, 다시 사건으로 돌아오자. 임시총회가 조합활동이라는 사실은 별도의 설명 없이 패스. 역시 문제는 ③이다. 법원은 위 임시총회가 ③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으므로 정당한 조합활동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시했다. 왜냐? ‘사용자의 승낙’이 없었고, 또한 취업시간 중에 임시총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단체협약’의 규정도, 그러한 ‘관행’도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법원은 ③ 나.의 판례에 따라 임시총회를 취업시간 중에 개최해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급박한 사정없음이 법원의 결론이다. ‘단체교섭 진행상황의 보고와 의견수렴, 하반기 사업계획 수립 등’은 급박하지 않다는 게 법원의 설명인데. 법원은 1년 동안 교섭이 공전된 상황을 급박하지 않은 ‘널널한 상황’이라고 본 것이다. 더구나 임시총회 개최일이 민주노총 주최의 ‘한미 FTA 저지 총파업 결의대회’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결의대회와 임시총회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판결문이 눈을 감고 있다. ‘한미 FTA 체결을 반대하는 동영상 시청’만이 언급될 뿐이고.

 

왜 단체협약에 임시총회를 규정하지 않았을까

법원은 임시총회에 관한 사항이 취업규칙․단체협약에 규정되어 있지 않아, 취업시간 중 임시총회 개최는 정당한 조합활동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기존의 대법원 입장에 충실히 따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이건 넌센스다. 노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최하는 총회개최에 관해 노사가 합의할 내용이 무엇이란 말인가. 발전노조의 ‘단체협약서’에는 ‘총회’라는 단어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발전노조는 이런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짱구란 말인가.

여기에 숨은 함정이 있다. 판결문만 따라 읽다보면 법원의 논리가 촘촘한 ‘그물’처럼 짜여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원은 그 그물을 ‘바다’가 아닌 ‘바닥’에 던진 것 같다. 먼저 임시총회는 노조법 제18조에 규정되어 있다. 법원이 제시하는 ‘단체협약서 제11조’에 총회 관련 내용이 없는 이유는 이것이 노사의 협조대상이 아니라 법률상 노조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임시총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임시총회라고 할지라도, 임시총회는 일반적인 조합활동과 성격을 달리하는 ‘의사결정’의 절차이자 조직의 기관이다. 이러한 이유로 노동조합 대표자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임시총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법률이 규정하고 있다. 별도로 단체협약에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 또한 발전노조의 ‘조합규약’에도 임시총회는 정기총회의 규정을 준용하고 있어 취업시간 중 임시총회 개최를 일정부분 예상하고 있다. 아니면 맥주, 쏜다.

 

형평의 저울이 기울어서는 안 돼

우선 딱 까놓고 사용자가 승낙 안하면 임시총회는 개최 못하나? 임시총회가 무슨 직장회식인가. 게다가 발전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사측은 노조가 업무의 정상가동을 전제한다면 노조의 임시총회 개최에 응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헌법상 단결권과 사용자의 노무지휘권이 조화롭게 양립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이 사건에서 노조가 임시총회 개최에 관해 3회에 걸쳐 사측에게 협조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합리적인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임시총회 요구를 거부한 것은 ‘권리남용’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발전노조의 경우에는 전국적인 산별노조 조직이라는 점, 조합원들이 일근제가 아닌 교대제로 근무하기 때문에 휴무를 따로 정하여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다는 점 등이 고려되어야 했다.

그러나 임시총회로 인해 업무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아 피해가 발생했다든가 하는 실질적인 내용심사에는 아무 언급은 없고, 사용자의 노무지휘권 발동이 정당하다고 하는 당위론적 설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임시총회=단합대회?

또한 법원은 관행의 존재에 있어서도 종래 ‘교섭력 제고를 위한 조합원 단합대회 등’이 휴무일에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임시총회와 단합대회를 동가치로 판단하고 있다. 단합대회에서 의사결정을 하나. 또한 임시총회에서 축구나 족구한 사례가 있으면 가져오라. 2차, 쏜다. 더구나 앞서 법원의 논리라면 급박한 사정이 있을 경우, 단합대회도 취업시간 중에 개최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하다면 근거를 가져오라. 마지막으로 노래방, 쏜다.

 

발전 노사관계의 불신

발전노사는 2002년 대규모 파업 이후, 힘겨운 노사간․노노간의 갈등을 겪어왔다. 그러나 발전노사가 그 이후로 진전되고 나아졌나.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여전히 사측의 태도는 전근대적 노사관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실적 배후가 이번 사건과 같이 ‘협조 한 방’에 끝날 것을 법정에까지 끌고 들어온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발전노사를 들쑤셔 놓는 것은 정부와 언론도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는 점이다. 파업이라는 단어에 피부발진과 땀띠 반응을 일으키는 보수신문들은 2006년 발전파업에 대해 굵은 견고딕체로 ‘명분 없는 파업’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잉크가 아깝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니 정부의 태도 또한 더욱 가관이었다. 파업이 왜 명분이 없냐고 주장했는고 하니, 노조가 ‘임금․복지’와 관련된 내용이 아닌 ‘정책적 내용’을 요구한 것은 ‘노사의 교섭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걸 누가 얘기했는가 하면, 당시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차관이란다. 지네들이 발전산업 기본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그게 경영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니깐 정책적 요구를 하는 것이고, 정부도 대화의 장에 나오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게 명분이 없단다. 이것만이 아니다.

더욱 가잖은 것은 지네들이 말하는 ‘임금․복지’ 등에 대해서 발전노조가 입을 다물고 있었냐 하면 그렇지도 안다. 당연, 요구하고 주장했다. 이때 정부의 요직마다 자리를 꿰차고 있는 관계자씨 등장. 산업자원부의 관계자씨가 한다는 소리가 이렇다. “전력관련회사 중 가장 고임금을 받고 있는데다 복지 수준도 최고 수준인 발전회사 노조의 파업은 명분이 없다”. 그럼 명분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관계자씨, 제발 좀 알려달라. 이러한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는 한, ‘발전’노사의 ‘발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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