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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청소부 김씨, 그를 만날 때

- 인천지방법원 2008. 10. 23. 2008나7734. 임금 -

 

연말이 다가온다. 실물경제가 추위를 타면 체감경기는 얼어붙기 마련. 가뜩이나 오른 기름값에, 보일러를 켜놓고 출근했다 까맣게 잊고 집에 돌아와 대문을 여는 순간 몰려드는 훈훈한 기운. 몸은 따숩지만 마음은 얼어붙는 이율배반적 정신상태. 이러한 상태는 필자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예산절감이다 뭐다 지방자치단체들도 허리띠를 조이고는 있지만, 허리띠 아래로 처지는 뱃살은 어쩌지 못하는 형편인 듯. 올 연말에도 보행자들을 보우하사 굳이 안하셔도 되는 보도블럭 교체행사가 시작되고 있는 한편. 같은 지방자치단체 소속의 환경미화원들은 교통사고로 죽고 다치는데도 공상처리는 잘 안되고. 생명보험사들마저 이들을 받아주지 않고. 게다가 예산절감 이유로 환경미화업무를 외주화하겠다고 하고. 과연 이 나라의 정부는 길바닥에 뿌리는 돈을 사람에 쓸 생각은 없는 것인가.

 

당사자들의 주장

청소부 아니, 환경미화원 김씨. 인천 계양구 소속이고, 노조 조합원이다. 이 사건의 키워드는 ‘통상임금’, ‘단체협약’. 그런데 이 사건 판결문만 보면 ‘통상임금’이라는 말 때문에 상당히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이 사건 원심 또한 그런 것 같고. 여하간 김씨와 계양구청의 주장을 그림으로 정리해 설명해 보자<그림_1>.

 

이 사건은 기말․정근수당, 체력단련비, 명절휴가비를 계산함에 있어 계양구청이 ‘협약상 통상임금’만을 적용했다는데서 시작된다. 김씨는 ‘법정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기말․정근수당, 체련단련비, 명절휴가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계양구청은 이들 수당이 법정수당이 아닌데다, 이 수당들을 지급할 때 기준임금은 ‘협약상 통상임금’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협약상 통상임금’은 노사가 합의한 것으로 법정수당이 아닌 협약상 수당(비법정 수당)을 지급할 때, 근속가산금․정액급식비․교통보조비․급량비․위생비 등은 제외하여 기준임금을 정한 걸 말한다.

 

오해의 여지

쟁점을 정리하면. 기말․정근수당 등 비법정 수당산정에 대해서도 법정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의 문제. 다시 말하면 법정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별도의 기준을 노사합의로 정해 비법정 수당을 산정해도 되는가의 여부다. 우선 이 판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경미화원의 통상임금 판례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2007년 11월 29일, 대법원은 정액급식비, 교통보조비, 근속가산금 등이 근로기준법 소정의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결정을 하였다<그림_2>.

 

자료: 한겨레, 2008년 7월 22일자

 

이 사건의 배경은 이렇다. 환경미화원의 임금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환경미화원 인부임 예산편성기준지침’에 의해 정해진다. 그런데 행자부가 그 ‘지침’상 법정 통상임금을 산정하는데, 몇 가지 수당을 쏙 빼놓은 것이었다. 이러면 각종 법정수당(연차․해고예고수당․시간외․야간․휴일 수당 등)의 액수가 줄어든다. 차액이 발생하기 때문. 이걸 환경미화원들이 대법원에까지 들고 가야했다. 통상임금 다시 산정하라고. 대법원은 환경미화원들의 손을 들어준다. 이후로 대법원 판결에 힘을 얻는 각 지역 환경미화원들은 적극적으로 체불임금 소송을 제기한다. 액수만 해도 엄청난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의 김씨도 그러한 분 중에 한 분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환경미화원들의 법정수당은 법정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되,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수당들은 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과 이 사건은 본질이 다르다. 대법원 사건은 법정 통상임금에 관한 것이고, 이 사건은 협약상 통상임금, 즉 ‘기준임금’에 대한 것이다. 이 사건 법원에서도 김씨 아저씨가 주장하신 각종 수당들이 ‘법정 통상임금’에는 죄다 포함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오해는 이 사건에서 노사가 합의한 ‘근속․기말․정근수당, 체력단련비, 명절휴가비를 제외한 통상임금’이라는 단체협약의 문구에서 시작된다. 우리 김씨 아저씨께서 오해하시고 계신 부분을 원심도 오해했고.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지 않은’ 기말․정근 수당 등의 기준임금을 법정 통상임금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이는 회사가 알아서 정할 수도 있고, 노사가 합의해서 정할 수도 있다. 다만 법정 통상임금에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고정적 수당을 빼는 노사합의는 ‘무효’다. 그러나 앞서 대법원 판결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법원에서도 이러한 수당들을 산정하기 위해 일부 수당을 제외하여 ‘기준임금’을 정하는 노사합의는 허용된다는 것이다. 법정수당에는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요행히도 계양구청은 법정수당 및 퇴직금에 대해서는 정기적․일률적인 모든 수당을 법정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지급했더라 이거다. 이 사건은 ‘통상임금’이라는 용어가 사건의 독해력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김씨 아저씨께는 미안한 결론이 내려졌지만.

 

쓸자, 쓸자, 세상을 쓸자

곳곳에 울그락 불그락 물든 낙엽들. 무수히 떨어진다. 가을의 향수가 어느 순간 ‘웬수’가 돼 버린다. 환경미화원들의 성수기. 가을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 아니, 생각해 보면 늘 성수기다. 매일매일이 성수기인 그들에게 이 사회는 어떠한 대우를 했는가. 환경미화원도 국회의원이 되는 마당에, 우리 환경미화원들의 대우는 열악했다.

십 수 년간 일해 오면서, ‘월급’봉투를 손에 쥔 건 불과 3년 남짓. 그전엔 모두 일급제. 그것도 여태까지 정부의 잘못된 기준으로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 게다가 광주의 한 지방자치단체는 환경청소노조에 덜 받게 된 임금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요구하질 않나. 환경미화업무를 외주화하겠다고 으름장을, 아니 실제 외주화를 하고 있지 않나. 거리가 일자리인 그들을 거리로 내몰겠다는 이율배반적 발상. 거리를 쓸면서 늘 하루하루 가슴을 쓸어내릴 환경미화원들을 생각해보면, 세상에 쓸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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