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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많은 시련이 닥치게 됩니다. 거기에 그것을 잘 극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질펀하게 말하면 독한 국물이 줄줄 흐르는 놈과 물러 터져 질질 흐르는 놈이 있다는 말이죠. 더군다나 힘들 때 잔머리 굴려 요리조리 피하는 사람과 그대로 정면으로 ‘꽝’하고 현실과 맞붙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만 약아도 두 다리 정도야 뻗고 살 수 있습니다. 근데 그걸 못해서 힘들게 사는 분들, 제 주변에 몇 명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래도 제 소신 하나 붙들어 쥐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지요. 이번 호는 그 분들 중 한 분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제 친구 이야깁니다.
이 친구, 왕고집으로 세계적인 사람입니다. 일단 제 스스로 지켜야 겠다고 하는 건, 목숨 걸고 지킵니다. 목숨, 참고로 저는 목숨 여러 번 끊겼다가 살아난 사람입니다. 헌데 그 친구 목숨, 여지껏 단 하나였습니다. 대단한 뚝심의 소유자라는 말이죠.
횡단보도 파란불은 기본,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쓰레기통 없으면 집에까지 들고 갑니다. 요건 약과죠. 쓰레기를 아예 줍습니다. 육교에 소쿠리통에 돈 넣는 것도 취미입니다. 젓가락, 복주머니, 복조리 파는 외국 젊은 이들, 무슨 청각장애인 기부함을 들고 있는 할머니, 지하철이나 서울역에서 차비달라는 사람. 다 줍니다.
술 취한 사람, 길거리에 누워 있으면 집에까지 보내줍니다.
지하도에 할머니, 봇짐을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신문지 뭉치를 들고 갑니다. 당연히 그냥 갈 수 없지요. 일단 그 친구, 양 손에 봇짐과 신문지 들고 계단을 오릅니다. 어린이가 길 물어 봅니다. ‘자, 다 왔어요. 빨리 들어가세요.’
여기까진 좋다. 착하다고 해두자. 문제의 발단은 이 친구 30살 먹고도 직장이 없다는 사실. 그래서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서 빠지지 않았죠.
어느 날, 술자리에 그 친구가 왔습니다. 친구들은 그 친구를 도마 위에 얹어놓고선, 요리 뒤집었다 저리 뒤집었다, 엎었다가 매쳤다가, 끼웠다가 뽑았다가 난리도 아닙니다. 그러다 ‘천사논쟁’, 일어납니다.
“니가 천사가? 뭐 할라꼬......참나.”, “그냥 니는 목사나 스님해라.” “그거 다시 수능봐야 돼서 안된다카니깐.”
“점마 보면 내는 술맛 떨어진다” “마셔, 마셔” “니는 술도 안묵나?” “빨리 장가가야지” “부모님 좀 생각해라”. 이 모든 이야기, 그 친구 위해서 한답시고 하지만 사실 면박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아, 술? 안먹는 친구입니다. 그냥 친구들이 몰아쳐다는 잡소리에 그냥 광대뼈를 들었다 내렸다 할 뿐 미동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이런 얘기 듣는 동안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술자리가 끝나고 먼저 일어나 집으로 간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밤 12시가 다되어서야 술집을 나섭니다. 계산? 물론 돈도 없는 녀석이 계산을 해뒀습니다. 친구들은 그냥 그런모양이다, 하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1년 정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1년 뒤 그 친구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몸을 다른 이에게 기부하고 말이죠. 그리고 친구들은 매년 그 친구와 고등학교 때 노래를 불렀던 그 곳에 모여 그 친구를 회고합니다. “그 때 잘해 줄 껄”하고 후회하면서 말이죠. 지금은 제 친구들, 열심히 봉사활동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마지막을 지키려는 것처럼.
“남 돕는 기 피해주는 기 아이면 내는 그거 하는 기 부끄럽다는 생각 않안다. 사람들도 알끼다. 그렇게 저거들도 하고 싶어도 부끄러버서 몬한다는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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