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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식 무거움이 가슴을 짓눌러온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 외쳐도 쉽게 외마디 언어가 나를 위로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분명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일 것이다. 그건 몸이 증명할 것이므로 크게 심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들이, 다가올 미래에 어떤 확신을 주지 못해서 생기는 마음의 짓눌림은
만만하게 극복하기 어려운 것 같다.
술을 마시고, 아무리 떠들어도, 내가 내 입으로 구사하는 언어와 그 언어를 구사하게 끔
하는 사고의 언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더욱 더 과거에 대한 성찰만으로는
다가올 미래에 충분히 대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제는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를 통제해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야 그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난 주 한겨레 색션 18도에서 읽은 글과 생각
1. '스피박의 대담'이라는 책이 나왔다.
스피박은 어렵다. 난해하다. 내가 이해하는 한 스피박은 '자기성찰'을 가장 중요한 자기 사상의 핵심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에드워드 사이드와 비슷한 맥락이 있다. 여하간 스피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해체철학에 대한 기본 이해가 필요한데, 그것까지 공부할 필요성을 못느낀다.
다만 그의 대담 속에서 한국의 페미니즘이 '고급'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 차베스와 관련된 책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3. 레너드 삭스의 '남자아이 여자아이'는 서평이 흥미롭다. 그래서 돈주고 사고 싶은 욕구가 있다. 여자아이의 청력과 남자아이의 시각적 특징, 이런 것들은 의학적인 것이다. 의학적인 근거는 귄위를 가지고 있어서 반론을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다.
4. 정공채 시인의 1979년작 '정공채 시집있습니까'. 제목이 아주 재미있고 발상이 독특하다. 인간에게 있어 해학이라는 급소를 찌를 때 만큼이나 자극적이고 흥분되는 것은 없다.
5. 우석훈 칼럼이 참신하다. 군대에 유기농 급식을 주장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을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 더욱 참신하다. 맞는 말이다.
6. 크레이스너와 잭슨 폴락. 아프지만 천재적인 만남. 만남이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고무됐다. 만남이 그냥 시시한 둘 이상의 결합이 아닌 '사건'이 될 때 강력한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난 사건,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만난 사건, 추사가 초정을, 초정이 연암을 만난 사건, 그리고 조영래가 전태일을 만난 사건"
몽고가 고려를 침입했을 대 고려인들은 무식하게 8만자가 넘는 글자를 목판에 새긴다. 그런데 그 8만자가 넘는 글자 중에 오타가 없다(오타가 있다는 놈도 있다. 그러나 근거가 없다.). 오자 하나를 용납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오타를 용납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때문이었고, 그 시대적 상황을 순종할 수 없었던 장인들의 정성 때문이 아닐까.
오타가 없다는 것은 글쓰는 사람에게는 아주 기본적이며 중요한 것이다. 오타는 글자 한자가 틀리는 문제를 넘어서 생각의 방향과 진로에 영향을 준다. 배가 제대로 가기위해서는 조타수의 역할이 중요한 것과 같다. 특히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공부를 한자 한자 새겨듯이 해야한다. 한자라도 틀리면 목판을 바꿀 수 밖에 없다는 정신으로 공부해야 한다. 8만개의 번뇌를 새겨넣은 대장경판 제작과정은 자신의 역사와 자유를 포기하고 십 수년간 칼 끝에 모든 정신을 집중한 결과이다.
대장경판에는 모든 번뇌와 자유가 함께 녹아있다. 공부의 끝은 없으나 한 덩이씩 마무리를 하다보면 고통스러웠던 과거가 묻어나는 논문이나 보고서가 오랜 동안 뿌듯함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이십대라면 데모 현장에 열심히 나가는 게 중요하다. 방패에 찍히고 곤봉에 맞으면서 현실을 몸으로 통증으로 체험하는 게 중요하다.”
http://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7007&ar_seq=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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