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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분노가 있다. 그러나 그런 분노는 쉬이 삭히게 마련이다. 주변에서도 만류한다. 정작 중요한 분노는 삶의 가치와 철학을 의미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화를 다스리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 분노가 있다.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분노. 물로 나에 대한 분노는 늘 존재한 것이므로 내가 날을 세우고 항상 반성하게끔 하지만 내가 참을 수 없는 분노는 그렇게도, 그렇게도 아무 생각없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준 사람들이 버젓이 결혼해서 잘먹고 잘산다는 사실이다.
내 대학원 동기인 형이 있다. 노조간부 10년하고 이제는 가정에 충실하리라 자신도 형수도 소원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형수는 자궁암이고, 아버지는 췌장암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욱 가정에 충실하게 되었단다. 그 잘난 가정에 충실하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하단다. 휴가도 내어 형수와 잠시 수술전에 여행도 다녀온다고 한다. 나는 해줄게 없어 하얀 봉투에 돈 10만원 넣었다. 그리고 겉봉에는 이렇게 썼다.
"형수요. 형님 신경쓰지 말고 맛난 것 드시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나도 용서할 수 없고, 나도 용서받을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살 것이고 또한 구차하지 않겠다. 다만 나를 건드리지 말아달라.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 나를 건드리지 말아달라. 누가 준 고통을 내가 함께 감내하기 힘들다. 특히 그를 알면 더더욱 나는 감내하기 힘들다. 왜냐면 나는 그들을 심판할 자격도, 혹은 그들의 가족을 해할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와 관계없는 고통을 내가 왜 져야 하는가. 누구도 나를 돕지 않으며 나의 앞길을 앞가림해주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기 길을 스스로 가는 것이다. 의지하는 것도, 동정하는 것도 결국 자기의 길을 지체할 뿐 시간 낭비일 뿐이다. 다만 내가 타인의 고통을 같이 짊어지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한 것만 나는 책임을 지고 싶다. 가증스럽게 떠들고 싶지도 않으며, 그들을 앞에 앉혀놓고 불편하게 위태롭게 비판하고 싶지도 한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할 것은 고통받은 자들은 왜 그들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인가! 왜! 왜! 왜!
200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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