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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놓고 니네들 가소롭다

부산이 서울보다 살기가 않좋다. 사투리쓰면 촌스럽다. 지방대출신이 서울에 와서 출세했다. 등등등.

 

이런 개소리들은 수차 들어봤다. 물론 그들은 표면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보다 한발 앞서기만 하면 이렇게 공격한다. 설사 앞설 것 같아도 이렇게 경계한다. 

 

자기가 하는 일, 자신의 주변 사람들, 저기의 부모, 자기의 출신대학, 자기의 정신과 생각, 주위에서의 인정. 요런 것들을 무기로 사람을 조지기 시작한다. 특히 오늘은 학벌에 대한 얘기다. 나도 대가리에 똥만 차서 지방대 밖에 못갔는데, 서울에 돈2000만원을 갖다바치면서 소위 명문대 간판을 하나 달기는 했다. 그게 사실은 좆같은 거다. 얄량하게 노무사라는 자격증에 공부좀 했다고 학위를 얹으면 장사가 잘될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고, 3학기부터 심각하게 나는 다른 학교로 옮길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쨋든 간에 나는 이 대학을 잘 왔고, 본교생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나는 간신히 이 대학을 버티면서 졸업까지 할 것으로 예상은 되지만 짧지만 긴 2년 반의 시간을 깡그리 개무시때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때 내가 우리 대학원에서 똥폼잡고 무시때린 일은 없나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학에서 간판따고 간 사람의 경우에는 이런 비난을 많이 듣는 편이다. 나는 그런 비난따위에 개의치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안오면 되는 것이고, 오면 열심히 하면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니는 사람도 실망하고, 밖에 있는 사람들도 이러하니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 대학에 다니는 사람의 잘반이 이 대학의 문턱을 넘는 대학을 다닌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모르겠다.

 

서울대, 연고대, 이대 등등 내노라하는 대학에서 우리 대학원에 와서 공부하는데 나는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 다니는지 궁금하지고 않으며, 관심도 없다. 그런데 꼭 밖에 있는, 우리 대학원을 다니지 않는 서울대, 연고대, 이대 등의 출신들이 우리 대학원을 밟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조간부입장에서는 우리 대학원이 개량화된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그것도 우리 대학원에 와서 개량화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노무사들 중 학벌이 좀 된다는 사람은 학벌컴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이 가는 대학원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단 경력이 좀 되면 시험치고 돈만 알뜰히 부으면 다닐 수 있는 대학원으로 생각하니깐 그러하다.

 

모두 자기가 잘난 맛에 살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비난 받지 않고 싶어서 사회의 일정한 틀 속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을 자기는 벗어난 듯이 이야기 한다. 나는 그게 웃기다는 것이다. 한 서울대 출신이 나는 학벌에 대해서 그런 우월감 이런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말하는 족족히, 그리고 풍기는 냄새가 그런 우월감을 느낄 수 밖에 없으면 그건 나만의 컴플렉스 때문인가?

 

재차 말하건데, 나는 누가 서울대건, 연대건, 고대건, 이대건 간에 이 따위 생각을 하는 작자들에 대한 실력을 인정하기 앞서 인간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비판하고 싶은 것이다. 지방대에 시골출신이라고 얏보는 관념들이 있는 한은, 또한 그들이 그것을 부인하면서도 행동과 말 속에서 나타나는 못된 습성을 버리지 않는 한은 그들과 내가 함께 이 세상에서 같은 지향을 바라며 살 수 없다.

 

머리가 나쁘고 수능이나 학력고사 잘 못친 것이, 공부를 좀 덜한 것이 죄가 된다면 일단 우리 부모부터 죽어야 한다. 자기들 부모가 얼마나 잘났는지 몰라도 이렇게 죽을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똑똑히 새겨야 할 것이다. 학벌이라는 것은 결국 조금 안다는 것을 가지고 소소한 권위에서 시작하여 말단의 권력으로, 그리고 뭉치면 집단적 이기주의로 똘똘말린 권력의 중앙부로 진입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제발 좀 착하게 좀 살아보자. 내가 누군가를 밟으면 언젠가는 나도 밟히기 마련이다. 밟히면 결국 누군가는 일어선다. 많이 밟을 수로 언제가는 밟은 사람은 영원히 일어나지 못한다. 이 광대무한한 우주에는 자기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나로 인해 고통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할 수 있다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우주의 징검다리를 왕래해야 한다.

 

200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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