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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대책, “뭐했어?”
1. “해봤어?”
논쟁이 시작되고 어느 정도 논리의 살갗이 벗겨지고 나면 감정의 뼈가 드러난다. 대표적인 경우가 “해봤어? 해봤냐고”라고 하면서 감정을 배팅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 말을 할 때에는 자신은 해봤다는 전제에서 쨉을 던져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웬간한 맷집으로는 버틸 수 없는 반격이 시작된다. 주로 21세기 들어서 이런 방법을 잦게 사용하시는 분이 이명박 장로님이신데. “해봤어?” “가봤어?”를 연발하시는 그 분의 이면에는 과도한 경험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 강준만 교수의 지적. 경험주의의 탯줄을 타고 올라가면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동종업계 데카르트와는 용호상박이다. 이 양반, 이런 얘기 했다. ‘푸딩을 증명하는 방법은 푸딩을 먹어보는 것이다’.
자,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경험주의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은 그저 선택사항일 뿐. 한 마디로 푸딩은 먹고 싶은 놈만 먹어라는 거다. 남보고 먹어보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얘기. 하지만 이명박 장로님과 정부는 우리에게 푸딩을 계속 먹어볼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 푸딩이 바로 ‘비정규직법’. 그것도 계약기간을 연장(폐지)해서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이미 그 푸딩, 먹고 있다. 필자인 저에게도 “해봤어?”라고 물으신다면, “해봤다. 왜?”라고 대답해드릴 수 있겠다. 비정규직 푸딩을 먹어본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는 이렇다. “먹을 거 못된다”
2. A씨와 B씨, 과연 누구인가
필자,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부탁받았던 내용은 이렇다. 비정규직 기간연장, 100인 미만 사업장 차별시정제도 유보, 정권초기 공언했던 정규직 전환시 중소기업 지원 등. 어지간히도 주문하셨다. 죄송하지만, 지면의 절반은 노동정책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추적하는데 할애하려고 한다. 왠지는 읽어보시면 알게다.
먼저, 노동부가 12월 1일자로 내놓은 「보도자료」부터 살펴보자. 이 「보도자료」의 알곡은 ‘기간제 근로자 다수도 사용기간 연장․폐지 희망’한다 이거다. 싸움을 걸려면 제대로 웃통 까고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이 정부에 들어서는 일단 멀리서 돌멩이를 하나 던져 간을 본 후, 뒤통수를 친다는데 있다. 공기업 선진화도 그렇고, 한반도 대운하도 그렇다. 이미 11월 29일, 언론에서는 비정규직법의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대상업무를 확대한다는 내용을 의원입법으로 추진한다는 노동부의 종합대책문건이 공개됐다. 그러나 당일 노동부는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은 정부안도 없을뿐더러, 의원입법도 추진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근데 생뚱맞게도 3일 뒤, 노동부는 “12월 2일(화) 조간부터 사용해 주십시오”하고 A4 7장이나 되는 「보도자료」를 뿌려놓는다. 이 「보도자료」에서는 비정규직법 ‘기간제한 폐지’에 34.3%가, ‘3∼4년으로 계약기간 연장’에 대해서는 23.4%가 찬성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도합 기간연장과 폐지가 57.7%. 또한 ‘2년으로 기간을 제한한 것이 기간제 근로자에게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도움이 안 된다’는 부정적 응답이 60.9%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 보도자료가 언론에 나간 뒤인 12월 4일, 또 ‘해명자료’를 내놓는다. 설문조사의 기본인 신뢰도와 표본오차가 없다는 지적과 비판 때문이었다. ‘신뢰도 95%, 표본오차 ±2.46%’라고 늦게나마 밝히지만. 원하던 수치가 나오니 급하긴 급했나 보다. 통계를 모르시거나.
어찌되었든 간에 비정규직 계약기간을 현행 2년보다 연장(폐지)해야 한다는 다분히 의도로 설계된 이 설문 결과, 수소가스를 담고 하늘을 나는 ‘삐라’와 뭐가 다를까.
더구나 필자는 이 조사에서 조사대상, 조사방법, 그리고 데이터 샘플링을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을 가진다. 왜냐하면 다음 조사결과 때문이다. 홍희덕-민주노총(19세 이상 전국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3.1%, 한길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년 고용 후 정규직 전환에 찬성한 응답은 14.7%에 불과했다. 또한 현행대로 2년 고용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이 45.8%, 현행보다 1년이 줄어든 1년 고용후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응답은 33.4%로 나타났다. 같은 문제에 두 조사의 다른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실마리는 노동부 「보도자료」의 앞머리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냄새가 난다는 증거다.
이 「보도자료」에서 설문조사 결과보다 먼저 소개하고 있는 두 개의 ‘사례’. 먼저 A씨의 사례. A씨는 계약직이라도 조금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루속히 법을 개정해달라고 노동부에 건의했다는 스토리다. 요건 애교. 문제는 두 번째 사례. 소리 내어 읽어보자.
“B씨는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정규직 전환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사부에서는 그간 근속기간이 2년을 넘었다는 이유로 다음 계약은 갱신하기 어렵다고 통보했다. 이에 B씨는 ’07.7월 법 시행 이후 갱신계약을 체결한 때로부터 2년이 지나야 법이 적용된다며 근무할 수 있게 더 계약을 갱신해 줄 것을 인사부에 요청했다.”
자세히 읽어보면 B씨의 회사, 비정규직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잘 아는 B씨가 2007년 7월까지라도 계약갱신을 요청한 것이다. 이 사례는 비정규직 기간제한의 문제를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수작일 뿐,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보도자료」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이 설문조사 결과라면 객관적인 수치만 내놓으면 된다. 그러나 「보도자료」의 ‘사례’는 고약한 의도가 엿보일 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내놓을 「보도자료」의 수준도 아니다. 이 사례를 기자가 그냥 배끼면 ‘기사’가 된다. 결국 이걸 노린 거다. 어쨌든 필자가 볼 때는, A씨는 몰라도 B씨는 가공의 인물이다. 아님, 말고. 만약 어디서 퍼왔으면 출처라도 밝히기 바란다.
그러나 더욱 괘씸한 것은 정부안도 없고, 의원입법도 할지 안할지 모른다고 발뺌해놓고선 결국 지네들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있는 꼴 때문이다. 이 정부에선 거짓말은 예사다. 마음 속에 십계명을 새기기 바란다. 십계명, 몰라? 하느님이 돌로 제본까지 떠서 모세에게 주신 ‘기본처세 다이제스트’. 그리고 하나더. 시간되시면 노동부 열린게시판을 꼭 찾아보시라. 무슨 얘기들이 오가는지 말이다. A씨와 B씨 말고도 C, D.....Z씨 의견까지 꼼꼼히 살펴보라 이거다. 참고로 저는 2008년 1월부터 최근까지 다 검색 “해봤어”
3. 비정규직과 대운하
현 정부는 직접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다. 잠수함처럼 수면 아래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어뢰를 꽂을 준비만 한다. 정책에 대한 논의과정도 생략하는 건 다반사고, 툭툭 쨉만 던지니 일일이 대꾸하는 일도 지친다. 촛불들고 대화 좀 하자고 거품 물고 소리쳐봤지 않나. 불리하면 모른다로, 애정을 가지고 봐달라고 이러고 있으니. 결국 ‘슬그머니 전략’으로 일관할 것이 뻔하다. 말로 안되면 제대로 꽝하고 한 번쯤 박아야 하는데. 자제한다. 그래도 몇 가지 지적할 건 분명히 해야겠다.
앞서 노동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정규직 전환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일자리가 더 중요’하단다. 왜? 기업들이 2009년 7월까지 2년이 경과한 기간제 근로자들을 더 이상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더 이상 고용을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을 보호하사, 화끈하게 법개정을 해서라도 기간제로 1, 2년 더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잔말말고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라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감사하겠냐는 거다.
노동부가 우려하고 예측하는 2009년 7월 비정규직의 일자리 대란, 이게 과학적인 연구와는 거리가 있다. 비정규직 법시행 1년을 평가하는 연구보고서들에서 최근 임금 일자리의 증가폭 둔화가 비정규직법 때문이 아닌 ‘경기침체’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100인 이하 사업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신규채용이 감소하는 것도 비정규직법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노동부가 11월 12일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그렇다.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향후 기간제 근로자의 일부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을 가진 기업이 66.5%로 나타난다. 또한 비정규직 활용이유도 ‘탄력적 인력운용(25.5%)’, ‘정규직 채용 전 시범적으로 활용(21.5%)’ 등으로 나타나 ‘인건비 절감(4.1%)’의 이유 보다 높게 나타난다. 이런 결과에 기반해 볼 때, 노동부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 사회보험료 감면 등 기업부담을 줄이고, 노무도급 억제를 위한 규제 등을 통해 비정규직법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최근 경기침체로 기업이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보호법’이 누굴 보호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정부의 환각상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2009년 7월 10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도 차별시정제도가 적용되는 것을 유보하자는 이야기도 들린다. 중소기업에 대해 차별시정제도를 유보하면 고용이 증가하고 기업부담도 적어질까. 앞서 노동부의 「보도자료」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에서 100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차별시정제도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적은 상황을 반영’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면 당연히 차별시정제도를 유보해본들, ‘효과없음’이다. 자기들이 얘기하고 자기들이 뒤집고. 무슨 자학개그도 아니고.
다음으로 지적할 것이 ‘파견대상 업종’을 확대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도 딱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일단 간을 보는 게다. 현재 32개로 제한돼 있는 파견업종을 풀면 고용도 늘고, 골칫거리인 비정규직 문제나 위장도급의 문제도 일거에 해결된다는 것이 노동부의 생각인 것 같은데. 이건 현 정부 정책과 비슷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최근 경기침체가 심각해지니 한반도대운하 카드를 꺼내는 것과 뭐가 다른가. 전국을 파 헤집는 ‘삽행’이 일시적으로 고용과 경기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대운하가 완공되면 국민의 ⅓은 드넓은 대운하를 바라보며 우울증에 걸리거나 수맥으로 인한 질병의 증가로 다시 고용과 경기는 침체될 것이라고 본다. 필자가 하는 말이 택도 없는 소리면, 파견대상 업종 확대도, 대운하도 모두 말도 안되는 소리다. 원인이 되는 문제부터 다스려야지, 눈앞에 보이는 효과만 쫒아가려니깐 욕을 먹는 거다. 게다가 불법파견, 제대로 단속하고 있나. 위장도급, 불법파견에 대한 감독소홀은 결과적으로 사용자의 이익으로 귀결된다. 이걸 합법적으로 용인하겠단다. 감독행정에 신뢰가 없는데, 노동계가 이런 법개정에 동의하겠냐는 거다. 파견업종 확대는 중간착취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특히 저질의 일자리만 늘어나는 결과가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 기다려보라. 일자리 양극화가 우리들을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 실로 걱정된다.
4. 현장, “가봤어?”
12월 17일, 한 취업정보업체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직장인(967명)들은 재취업시 다시 비정규직으로 일할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74.7%가 ‘절대 비정규직으로 취업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 이유 중 1순위 응답이 ‘정규직과의 차별(36.9%)’. 한편 구직자(685명)들은 올 하반기 취업이 어려울 경우 비정규직이라도 취업할 의향에 대해 72.1%가 ‘그럴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우울하다. 36.4%가 ‘당장 생활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이미 정부는 2천 6백명의 대학 졸업자를 행정인턴으로 선발해 1년 동안 1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단 1년. 매월 26억. 인천의 45억짜리 분수대 하나만도 못한 예산이다. 더구나 공공기관 인력감축을 못박아두고 행정인턴이라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모순적인 태도에 대해 슬개골이 주저앉는 좌절감을 느낀다. 안정된 일자리의 보호, 차별받지 않는 노동, 이러한 것들이 단지 이들만의 문제일까. 노동시장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현 세대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와도 약속하는 것이다. 외주, 계약해지 등으로 노사갈등과 장기간 파업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 구조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노사갈등의 주인공으로, 장기파업의 참여자로 동참할지 모른다. 한 가족 내에서도 고용형태가 달라지고 있는 지금, 노동정책이 사회안전망이 아닌 지뢰밭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가 단순히 노동시장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지위의 문제, 인격의 문제로 변이되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신뉴딜정책이라고 떠벌이는 너덜한 정책은 그만하자. 지금이야말로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가 어렵고, 고용이 불안정하며, 사회 불안정 요인이 커지고 있는 이때, 노동의 현장으로, 생활경제의 밑바탕으로 내려와 함께 경험해보라. 근데 한 숨부터 나온다. 언제 현장에 가보기는 “가봤어?”, 그럼 정부는 여지껏 “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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