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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5. 8일.

 

결국 이소선을 택했다. 그리고 홍삼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갔다(요즘 당뇨가 좀 더 심해졌고, 다리가 자주 아프다고 한다). 사실 한동안 못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오늘은 가야지 하며 친구놈과 이 날을 벼루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에게도 전화가 와 함께 어머니를 찾았다.

 

역시 어머니께서는 '오늘 오지 않으면 절대 안보겠다'고 하면서 이내 내뱉은 말씀 뒤고 나를 안아주시며, 이렇게 말했다.

 

" 너 장가가나"

 

이미 한동안 찾아뵙지 못한 이유. 다섯 글자에 모두 응축되어 있는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역시 세월이 부여한 통찰력과 직관력 앞에서 항상 나는 벌거벗은 자이다.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뭣이나 된 듯.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인간다움을 찾을 수 있다.

 

전순옥의 눈치를 보며, 에세 담배를 태우시다가 이내 나에게 담배를 권하는데, 내가 안핀다고 하니 어머니는 왜 안피냐고 물었다. 나는 '전순옥에게 욕 안먹을려고 안 핀다'고 하니, 웃으며 '비겁하다'고 하시는게 아닌가. 사실 전순옥만 없었으면 나는 맞담배질을 했을 것이지만.

 

하기야 작년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전순옥이 병원에 있던 어머니를 감시한 일이 있다. 이전에도 병원에서 답답하다며 탈출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우려되어 나랑 같이 감시차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찾아가니, 내 손을 잡고 1층 어딘가로 데려가더만, 주머니에서 담배 한개피와 라이터를 돌돌말아 둔 것을 꺼내 한 개는 나를 주고, 한 개는 당신이 피우시는데. 걸리면 우리는 직살나게 욕먹는다고 빨리 피고 올라가자고. 전순옥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다. 항상 딸인 그녀를 어머니는 "그 여자"라고 칭한다. 결국 나도 그 여자의 감시를 피해 어버이날 기념사업회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다. 참, 담배로 얽힌 이야기가 한 두개가 아니니.

 

뱀발. 어느 인터넷 신문 기자가 인터뷰를 따서 갔고, 그것이 활자화되어 나왔는데, 그걸 나에게 주시며 읽어보라고 했다. 몇 마디 전하려는 찬라에 어머니의 사위이신 임삼진 선생이 오셨다.  그리고 우리는 기가 막힌(?) 노조 이야기와 쇠고기 협상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얘기가 끝날 때쯤 사위가 쥐어주는 몇 푼을 받으신 어머니는 날래 유가협으로 가셨다. 친구분들이 계시는. 그들과 함께 먹고 자시는 일에 익숙하신터라. 사람들이 북적한 곳을 워낙에 좋아하시는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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