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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어디서 긁어온 것이고 하나는 송동현의 그림이다. 송동현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니, 아주 젊은 사람이더라. 그러나 젊으나 아직 설익다는 느낌이다. 그의 동양화(나는 이런 표현도 솔직히 맘에 안들지만)풍은 젊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좋지만 시선을 끄는 본능에 메시지가 깊게 스며들진 않는다.
오히려 위에서 긁어온 그림은 송동현의 것과 느낌이 다르지 않으나, 부처가 주는 일반적인 위엄, 존엄 혹은 자비, 풍요로움과는 다르다. 친근한 부처는 부처가 원래 의도했던 것이다.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라는 화두처럼이나 부처는 매일매일 좋은 부처인 것이다. 근엄한 불상이나 탱화에서 느낄 수 있는 부처의 이미지는 사실 왜곡된 것이다.
다시 송동현의 이야기.
그러나 송동현의 그림은 앞으로 가능성이 크다. 동양화에 서양적인 내용을 담은 잡탕식이 아니라 잡탕이 바로 새로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공허하기 보다는 휑하다.
작년까지는 봄이 되면 왔다보다 했는데, 올해는 유독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다. 구멍 뚫린 가슴에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가버리는 바람은 시린 이에 찬 물을 붓는 느낌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왜일까. 술을 마셔도 친한 놈들을 만나도 본래의 마음이 회복되지 않는다. 여자 때문인가. 가끔씩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문제를 그 쪽으로 옳겨놓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생각이고.
다른 방도를 찾을 필요가 있다. 본래의 공부에 충실하거나 아니면 더욱 의미있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 새로운 일을 찾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분명히 이 휑한 느낌이 사회적 현상과 무관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개인적인 사정에 가깝다고 본다. 그래서 '휑함'을 '계기'로 바꿔볼 생각이다. 잘 될는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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