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홉살 인생, 나는 아직 아홉살?

위기철의 소설이 원작이다. 난 소설은 읽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았는데, 불편했다. 불편한 이유는 - 어릴 때 기억들이 다른 사람도 비슷하겠지만 - 뭔가 숨겨진 것이 들켜버리는 감정때문 일 것이다.

 

이 영화에는 백여민, 장우림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러면서도 오금복과 신기종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이다. 영화는 여민이와 우림이의 감정의 굴곡이 느슨하면서도 팽팽하게 연결된다. 여민이 뒤에는 여민의 깊은 뜻을 아는 든든한 기종이가 있고, 우림이와 여민이와의 미묘한 감정 속에 금복이는 질투심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여민이를 늘 생각한다.

 

어릴 때의 감정은 어른들이 말하는 머리에 피도 안마른 사랑보다 더욱 숭고하고 아름답다. 그들의 사랑은 물신에 찌들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덕보려는 생각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지는 어른들의 사랑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치 기름지고 야무지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에리히 프롬이 자본주의에서도, 공산주에서도 사랑은 없다는 '사랑의 기술'이 전하는 핵심교지를 다시 되돌아보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사랑이 그 때의 사랑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다시 돌아가는 것도 부질없다. 오직 지금 내가 벗어나야 할 것은 바로 모든 애욕과 물욕이다. 사물을, 세계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은 결국 자격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어떤 것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으면서 그저 행할 뿐일때,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나의 옆에 기대어 있을 것이다.

 

우림이와 여민이는 결국 사랑에 있어 우리들의 스승이다. 그러나 결코 닮을 수 없는 스승이다. 안타깝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회용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익숙한 일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랑은 새롭지만 항상 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주고 받는 것에 익숙하며 계산이 앞서기 마련이다. 모든 것을 다 주는 사람은 어머니 밖에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이 숭고하지만 결국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학습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주는 자체에 감사해하고, 받는 마음 또한 감사해야 한다.

 

우림이가 마지막에 서울에 떠나면서 여민이에게 보낸 안경은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것은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여민이의 어머니를 위해서 선물한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여민이의 두 번째"기 되어도 기분나쁘지 않다고 하는 우림이의 마음 씀씀이도 너무 고왔다.

 

뱀발: 이 책을 읽지 못한 사람들 중 돈이 없어 사보지 못하겠다면 다음 주소를 눌러주세요.

http://cyimg9.cyworld.nate.com/common/file_down.asp?redirect=%2Fh25901%2F2005%2F8%2F5%2F17%2F%BE%C6%C8%A9%BB%EC%C0%CE%BB%FD%2Etxt

        책은 기본적으로 사서 보는 겁니다.

     

2005. 8. 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