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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어려운 일은 있었지만, 시간이 해결해 준 것 같다.
살면서 레테의 강, 망각을 통하는 일이 가장 고마운 일일 수 있다.
몇 일,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또한 신문을 본다.
오래전에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사는 게 힘들어지니깐,
선배들이 이런 얘기를 한다.
"힘내라." "괜찮을 것이다"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수잔손탁의 '타인의 고통'을 돌이켜 보면, 나의 독법이 정확한지는 몰라도
불쌍하다, 측은하다는 표현들은 결국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적어도 나는 그러한 상태있지 않다는 것이므로,
그러한 타인의 고통을 즐길 수 있는 심적 상태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점.
결국 선배들의 이야기도 뜯어보면, 그런 것이다. 더구나,
좋은 학벌을 가지고 사는 놈들이, 떠벌이는 이야기에 별 관심은 없으나,
결국 군대를 피해 병역사업체에서 일하면서 시간과 돈을 세이빙하고,
비교적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서,
자신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네, 하고 자빠져 있다는 점이다.
더욱더 큰 문제는 그들이 가족과 타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 젊은 날, 무용담을 버무리면서도, 결국 지 가족, 지 부모 하나
진보적인 후보에 동그라미 하나 찍어주는 것 마저도,
포기하는 그들이, 시간이 지나, 그들의 부모를 위로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일정하게 부모와의 타협을 시도한다는 점은,
여전히 불편하다.
벌거벗고 드듯한 노천탕에 드러누워 온 몸을 동여매고 눈밭 위에
개설매를 끄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이게 위로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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