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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수습할 때 ‘수’자는 짐승 수(獸)자 거든

 

수습할 때 ‘수’자는 짐승 수(獸)자 거든

- 서울행법 2008. 1. 18. 2007구합13968 부당해고구제재심신청기각판정처분취소 -


사건의 재구성

한국영재아카데미아학원의 김중기 원장실 앞. 이명백(가명)은 한 숨을 쉬고 노크를 한다.

“원장님, 저 명백이예요.”

“어, 명백이 왔어? 앉아. 야, 근데 너 수학강의 좀 해봤어?”

“제가 예전에 토피아 학원에 있을 때 수학을 맡았는데요. 고등부 수학은 껌이예요.”

그래도 학원장을 안다는 게 큰 도움이다. 이제 매달 이명백의 수중에 월 200만원이 떨어지게 되었으니. 여하간 내일부터 출근하란다. 몇 일이 지나 학원장이 이명백을 불러, 이력서를 내보라고 한다. 그러나 이명백은 학원장에게 이력서를 주지 않았고, 몇 일이 더 흐른 뒤 학원강의가 시작되었다.

이명백은 초등부 2개, 중등부 2개, 고등부 1개 반을 맡아 1개월 동안 학생유치를 위해 무료강의를 시작했다. 한 달 후. 모든 강의를 유료로 전환한 뒤, 고등부 1개 반이 폐강되는 일이 발생되었다. 수강신청자가 없었기 때문. 처음과 다르게 학원장은 이명백에게 학원생 관리와 학생부일지를 작성하라고 다그쳤고, 보강수업까지 요구했다.

얼마 후,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학원장은 이명백에게 학생부일지 작성과 보강수업을 빼먹었다는 등 별에 별 이유를 들어 학원을 나가라고 지시한 것이다. 불과 ‘69일’만의 일이었다.

이미 학원장은 이명백의 경력을 토피아 학원에 문의해 확인했고, 토피아 학원측에서는 고등부 수학까지 담당할 수 있는 정도의 경력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학원장은 결국 사기죄로 이명백을 고소하기로 맘먹는다. 더구나 고등부 1개 반의 폐강이 이명백 때문이라며, 결국 이명백을 학원 밖으로 내쫒았다. 그리고 학원장은 이명백을 ‘사기죄’로 고소까지 하게 되었지만, 이명백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명백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들의 감정싸움은 점점 법정싸움으로 비화되게 되는데…….


판사님의 문학적 상상력에 관하여

이 사건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2006부해136), 중앙노동위원회(2006부해1010) 모두 이명백의 손을 들어준다(이 사건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이 학원이 5인 이상 사업장인가의 여부이고, 또 하나는 해고의 정당성 문제이다. 첫 번째 쟁점은 판결문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왜? 사안에 비해 해고라는 조처가 과도하다는 이유다.

그러나 행정법원은 입장이 달랐다. 근로자측 패소. 법원은 ‘시용(試用, 참고로 우리 판례상 ‘수습’과 시용은 구분이 안된다)’이란 걸 들고 나와, 이명백이 ‘시용근로자’이기 때문에 해고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필자, ‘급당황’했다. 잠시 ‘실용’이 아닌지 확인해봤다. 아, 시용, 맞다. 좌심방 우심실 안정시키고 나서, 판결문을 쓴 판사들의 이름을 찬찬히 점검했다. 민중기, 원익선, 정욱도 판사. 마침, 하나 걸렸다.

이 세 분들은 ‘이색적’인 행정판례들로 신문에 여러 번 오르내린 적이 있다. 얼마 전 이런 기사가 떴다. 지난 1월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이 노원구청에 납골당 설치 신고서를 제출했지만 학교보건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이 신고는 반려된다. 천주교측은 노원구청의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이 과정에서 법원은 학교보건법의 관련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심사해달라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다. 바로 이 사건의 주심판사가 원익선 판사였는데, 당시 결정문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음이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볼 수 없는데도 정작 우리는 죽은 이들의 공간을 먼 세상으로 떠난 이들만을 위한 자리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중기 판사도 이 결정문을 보고서는 ‘흡족’했다고 하고, 필자도 흡족하긴 하지만. 한편으로 아름다운 말로 속을 뒤집는 판결이 나올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느닷없는 시용(試用)논리

여하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먼저 ‘시용’이라는 건, 정식으로 채용하기까지는 ‘아리까리’한 부분이 있으니깐, 일단 시간을 좀 두고 해당 근로자의 능력이나 적격성을 지켜보겠다는 거다. 그러니 사용자는 보통 1-3개월 동안 시용기간을 두고 해당 근로자가 ‘영 아니다’ 싶으면 시용근로자에 대해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처럼 통상해고보다는 쉽게 사람을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이 시용제도의 잇점이다.

근데 시용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다면 정식채용으로 보는 것이 대법원(대판 1984.1.24. 83도2068 등)의 일관된 입장 아닌가. 이 사건에서 징계대상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법원은 이명백이 ① 입사시 구두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점, ② 능력을 검증받는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③ 입사이후 해고까지 불과 2개월 남짓 근무했다는 점, ④ 이 학원은 이명백이 입사 후에 개원한 소규모의 신설학원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이 학원과 이명백과의 근로계약을 ‘시용계약’으로 보았다. 더구나 법원은 이러한 근로계약에 대해 ‘통상의 근로계약에 대한 것보다 낮은 수준의 기대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관심법까지 행하셨다. 이렇게 판결하면 ‘흡족’한가? 이번에는 아니다. 

이 사건 사실관계에서 눈알에 식염수를 됫병으로 갖다부어도 ‘시용’이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추정할만한 건덕지도 없다. 이 판결문 전체에 ‘시용’이라는 단어는 판결문 말미에 딱 4번 나온다. 그게 전부다. 시용계약에 대한 명시적인 내용도 없고, 취업규칙에도 시용이라는 말이 나오지도 않으며, 시용에 관한 관행도 나타나지 않는다.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다는 말

독자 분들도 판결문을 보셨겠지만, 해고사건의 패소판결문, 맨 마지막에는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하여 어쩌구저쩌구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사회통념이 뭔가? 통념이라는게 일반적으로 고개가 앞뒤로 끄덕여지는 뭔가인데, 이 사건이 언급한 통념에 대해서는 고개가 좌우로 끄덕여진다. 사회통념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사기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1심, 2심, 대법원까지 지네들 사회통념이 다 다르다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나. 결국 ‘통념’은 판사들의 주관적 ‘관념’에 불과하다. 판사들의 주관적 관념이 사회통념을 지배할만한 근거라도 있으면, 좋다, 그걸 사회통념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처럼 ‘있지도 하지도 않은 계약’을 법원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놓고, 이를 가늠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더구나 논리전개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판결문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낱글 몇 자를 판결문에 박아넣기 보다는 정확한 사실관계와 명확한 법적 논리라는 씨줄과 날줄로 소송당사자를 빼도 박도 못하게끔 치밀하게 엮어놓을 때이다.


수습, 인턴, 견습, 시용이라는 굴레

얼마 전 M본부의 TV 드라마에서 “수습할 때 ‘수’자는 짐승 수(獸)자거든. 따라서 군대로 치면 군견이나 군마에 해당돼. 고로 수습동안은 인간이 아니라는 얘기지”라는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 수습, 인턴, 견습, 시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많은 근로자들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불이익을 감내하는 경우, 적지 않다. 고용안정이라는 에덴동산에 들어가기 위해 장미덩쿨에 찢어지고 베이는 이들을 보호하는 것 또한 노동법의 임무다. 노동법이 말랑말랑했으면 하고 바라는 분들께는 큰 짐이 되는 이야기이나, 이것이 약자보호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노동법의 알파요, 오메가란 사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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