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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라고 만만히 보지 말라
- 대판 2007.12.28. 2007두5011.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
아줌마의 본령은 ‘무대뽀’와 ‘배째라’다. 적어도 앞뒤 가림 없이 들이대는 것이 무대뽀라면 그냥 ‘몰라’하고 버티는 게 배째라다. 버스에서 양말 신는 건 애교다. 지하철에서 ‘좌우로 밀착’을 온몸으로 행하사 홍해바다를 가르듯 2호선 은빛 좌석을 찬란하게 열어재끼는 생활기적은 더 이상의 전도가 필요 없는 대목. 최근에는 투기는 아니라며 땅만 사랑했노라는 아줌마나 유방암이 아닌 것이 기뻐 오피스텔을 선물 받은 아줌마의 등장은 ‘권력형’ 무대뽀와 배째라의 출현을 예고해 기존의 ‘줌마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 기존의 무대뽀와 배째라 정신을 뚝심과 근성으로 승화시킨 ‘정통 스탠다드 엑셀런트 케이스’ 되겠다.
이 사건은 이렇다
이 사건, 대법원 사건답다. 소송관련 당사자만 25명. 원고는 수원시장. 피고는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죄다 ‘피고측 보조참가인’이다. 즉, 대법원 판결 정본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은 ‘아줌마들’. 현정, 영란, 순애, 기순, 순자, 숙자, 상희, 미순, 금숙, 춘자, 옥임, 미경, 미숙 등등. 아줌마, 맞다. 행여 ‘처이’가 계셨다면 사과드린다.
사실관계, 고맙게도 너무 간단하다. 아줌마들은 수원시내 구청 및 동사무소 청사관리원 등으로 일했다(지방노동위원회 초심판정을 보면 사용자가 ‘동장’인지, ‘수원시장’인지도 다퉈졌다). 이들은 2001년 이전부터 상용직으로 고용되어 근무하여 왔다. 길게는 16년 동안 근무한 아줌마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고용이 유지되는 관행이 있었기 때문. 소위 ‘자동갱신’. 철밥통은 아니더라도 ‘스댕밥통’은 되었다는 말인데. 여하간 수원시는 ‘비정규인력 상용직 감축계획’에 따라 아줌마들을 해고하고 2001년 1월 ‘일시사역인부’라는 이름의 계약직으로 다시 재고용한다. 그러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에서 ‘지침’이 내려왔다. ‘일시사역인부’의 상시고용을 금지하라고. 수원시야 행정자치부가 까라면 까는 수밖에. 수원시는 근로계약기간이 종료되었다는 이유로 아줌마들의 재고용을 거절한다. 결국 아줌마들, 정부의 지침으로 인해 스댕밥통이 찌그러지면서 지방노동위원회부터 대법원까지 숨찬 법정 투쟁을 시작한다. 얼마 전 이랜드 아줌마들도 그랬지만, 정작 그들이 투쟁하는 이유는 스댕밥통 때문이 아니라 장기간 쌓아놓은 신뢰와 그들의 자존심이 찌그러졌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의의
이 사건의 고갱이는 두 가지다. 첫째는 정부의 지침과 경영상 해고문제이다. 종래의 판례는 경영상 해고를 다툼에 있어 정부가 예산삭감, 구조조정 등 지침을 내리게 되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대판 2002. 7. 9. 2000두9373 등). 정부예산이나 정부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의 경우에는 정부의 지침을 피할 수 없다는 점, 법원도 왜 고민이 없었겠나. 그러나 냉면 면발이 한 입에 끊어지듯 지침 한 방에 밥줄이 묶음채로 끊어지는 사태를 막는 최후의 보루는 법원이다. 적어도 경영상 해고를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24조가 있는 한, 경영상 해고에 대한 판단은 엄격히 이뤄져야 한다. 이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행정자치부의 강력한 지침’이 내려진지 얼마 되지 않아 고용 중지의 통보가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도 근로기준법 제24조의 적용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둘째, 반복 갱신된 근로계약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의 여부. 이 사건의 경우, 지속적인 고용관계를 장기간 유지한 점, 일부 아줌마들은 2003년경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61일 내지 75일을 일하기로 했지만 150일 이상 근무하거나 계약서를 아예 작성하지 않은 채 계속 근로를 제공한 점 등을 들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판례 법리는 ‘연세대 한국어학당 사건(대판 1994.1.11. 93다17843)’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법원은 여전히 이 판례 법리를 적용하는 데는 인색하다. 그래도 이번 사건에서는 이 판례법리, 대법원이 과감하게 한 번 쏴주셨다.
옵션 하나. “기장갱반 형사기근”. 앞서 소개한 판례와 유사한 판례가 워낙 귀해 공인노무사 시험 공부할 때 위 판례를 이렇게 외워두었다. “ ‘기’간을 정한 근로자라 할지라도 ‘장’기간에 걸쳐서 그 기간의 ‘갱’신이 ‘반’복되어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는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다”. 참고로 중간 중간 기억이 안나는 부분은 ‘기간’을 넣어주면 연결된다는 점, 기억하시라.
과연 고용보장조치가 경직적인가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떴다. 2007년 세계은행(IBRD)이 178개국의 기업환경을 조사해 봤는데 우리나라가 기업환경 여건 30위, 고용분야 131위, 노동경직성은 동아시아 평균보다 2배 높게 나타났단다. 아무리 그래도 선진 노사관계, 선진 노동시장을 얘기하는데 동아시아와 우리랑 비교하는 건, 좀 밸이 꼴린다. 그리고 기사가 의도하는 수가 너무 약지 않는가. 이런 수치를 가져다 쓰는 사람들은 우리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게다. 그래도 우리나라, 그리 뭔가 심각한가 싶어 ‘세계은행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봤다.
‘2008 기업환경보고서’, 일단 뭘 보고 쓰긴 썼더라 이거다. 내용을 살펴봤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보고서의 평가기준에는 고용난이도, 근무시간 유연성, 해고난이도, 고용경직성, 비급여 노동비용, 급여 대비 해고비용 등이 제시되어 있었다. 일단 점수는 1점에서 100점까지. 1위는 당연 미국. 비급여 노동비용이 8점인 것을 빼면, 모든 항목이 ‘0’점이다. 아, 깬다. 이게 선진국이란다. 근데 유럽 쪽으로 가보니, 더욱 황당하다. 해고난이도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독일, 그리스, 프랑스 등이 40점인데, 우리나라도 40점이다. 일단 이 모든 나라들은 미국에 비해 60점이 모자라므로 후진국 대열에 들겠다. 다음은 고용경직성. 일본과 스위스가 17점, 그 외 이탈리아(38), 오스트리아(37), 네덜란드(42), 노르웨이(47), 스웨덴(39), 독일(44), 프랑스(56) 등은 우리나라(37)와 더불어 투자위험 국가라고 할 수 있겠다.
복직에 대한 희망마저 빼앗지 말아야
앞서 고용경직성, 해고난이도 운운하면서 외국인의 투자를 무기로 근로자들을 위협하는 논리, 그 이면에는 이번 사건과 같은 해고의 최대 피해자들 중 많은 수가 아줌마들과 같은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 묵묵히 일해온 이들에게 해고는 형벌과 다름없다. 지난 십 수 년간 저항 없이 일해오던 그들에게 해고는 그들을 인생의 벼랑에 내모는 일이다. 아줌마들은 그 형벌의 부당함을 2003년 지방노동위원회를 시작으로 대법원까지 근 5년을 싸웠다. 결국 국가가 아줌마들을 ‘투사’로 만든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다시 복직이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이 ‘개길 수 없도록’ 만든 법적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부당해고에 대한 벌칙이 삭제되었다는 말씀. 설사 소송에서 이겨도 복직을 시켜주지 않으면, 여태까지 들락거렸던 법원이 아닌, ‘천막’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법상식에 비춰볼 때,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다. 당연한 판결을 받는데 몇 년씩 걸리는 비극이 그나마 ‘승소’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줄 수 있을까. 그나마 이번 판결로 노동법이 아줌마들을 껴안아 줄 수 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격언, 아실게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에서는 깨어있는 것만으로는 보호받지 못한다. 싸워도 절반만 보호되는 현실. 나머지 절반을 위해 이 땅의 아줌마들은 다시 또 싸울 것이다. 갑자기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그렇다. 태초에 아줌마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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