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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사상가였던 볼테르. 그는 자신과 견해가 다른 한 사람의 변호를 맡으며 이렇게 말했다."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목숨을 다해 지키겠다."
볼테르의 이 말씀이 사람이 되심을 알았던 많은 이들은 이 말을 이곳에도 붙이고 저곳에도 갖다 붙이고 지지고 볶고 디빘다가 폈다가 쪼대로 가지고 놀았다. 예전에 언론사 세무조사때 이회창이 한 신문과의 인너뷰에서 이 말을 인용한 것을 보고 나는 볼테르가 무덤에서 기어나와 '학'을 뗄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하간, 그렇다.
어젠가 법관 159명의 서명이 담긴 '대법관 임명'에 대한 법관들의 연판장이 돌면서, 오늘 아침 식당에서 읽은 몇 개의 신문들(찌라시라 맞다.)의 보도는 과간이 아니었다. 그 중에 하나인 즉은,(물론 이러한 법관들의 행태를 싫어하는 신문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그 깊은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이번에 의견을 냈던 판사들 중 특히 그 핵심 수괴인 '박재완' '정진경''박시환'판사 등이 함께 꾸민 공작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1988년 진보적 성향의 소장 판사들의 법이론 연구모임으로 발족된 '우리법연구회'에 소속된 판사들인데, 여기에는 이번에 대법원 자문위원회 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온 강금실 법무장관도 여기 창립멤버였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결국 모종의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결국 정부와의 케넥션을 넌지시 암시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는 정당하지 못하다. 쉽게 말하면 노무현과 코드를 같이하는 강금실을 통해 노무현이를 까보겠다는 심사다.
(인간 노무현이와 대통령 노무현이는 엄연하게 다른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또한 이번 문제는 노무현이가 최종적으로 대법원장의 임명제청권에 거부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있다. 중앙일보 등의 일부 보수신문들을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자에게 중대한 결함이 없는 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아까운 지면에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노무현이를 까는 건 둘째치고라도 지금 문제의 핵심은 그것을 누가 주도했는가 혹은 배후가 누구인가(웃기고 자빠진 짬뽕류 코메디 커넥션이다.)보다는 정작 대법관의 임명과정이 너무나 비민주적이고, 비현실적이고 권위적이며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법의 테두리를 수호하는 이들이기에 더욱더 나에게는 요주의 대상이지만, 대법관의 임명에 있어서는 문제가 다르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최근 대법원의 판결들이 지나치게 어느 한쪽에 편중된 판결, 특히 노동판결에 있어서는 가히 이 나라의 판사는 자본가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게중심을 잃고 있다. 결국 이는 법의 잣대를 안정성과 정의라는 양날의 검을 가지고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첫 단추가 바로 대법관의 임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날 대법관의 임명과정에서 극단적 판결을 서슴없이 자행했던 일부판사들의 대법관 임명은 결국 시민단체들이 대법원장을 선거로 통해서 뽑자라는 획기적인 주장을 통해 초고속 스피드의 호소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이에 이번 파동이 사실 우리 전체 사회의 균형을 맞추는, 특히 법적용의 가장 중요한 핵심 고리인 최종심급의 대법관 임명과 관련된 문제라고 볼 때, 좌우가 공히 이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고 이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일부 언론은 이에 대해 불편한 심사를 내색하고 만거 같다. 그들은 결국 159명의 판사들을 뽀루퉁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결국 그들의 말글마저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견해, 필지와 다르다고 말할 권리를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를 음해하고 왜곡하려고 하는 것이다. 말하지 않는 것이 악(wickedness)이라면 말한 것을 왜곡하는 것은 불법(Rechtswidrig)이다.
언론의 행태가 저의 중심으로만 간다면 결국 근대말기부터 형성된 '말한 권리'는 결국 인민의 지탄을 받기 마련이다. 쉽게 말해서! 보도는 제대로 하고 추측성 기사는 가슴에 담아두라는 얘기다. 그런 얘기는 술 한잔 마시면서 하는 게 최고라른 걸 왜 모르나?
2003.08.15 09: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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