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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 끝났다… "종전 MOU 타결, 19일 서명"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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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 입력 2026.06.15 08:10

  • 수정 2026.06.1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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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호르무즈 즉시 개방, 해상 봉쇄 해제"

이란 "밤부터 모든 전선에서 전쟁 영구 중단"

2·28 미·이스라엘 선제공격 후 106일만 합의

이란 "적은 모든 목표서 패배…위대한 승리"

미국과 이란이 14일 이란전쟁의 종전 합의를 담은 양해각서(MOU)를 타결하고 19일 스위스에서 공식 서명한다. 지난 2월 28일 비핵화 협상 도중 이란에 대한 미·이스라엘 '불법' 선제공격을 계기로 시작된 지 106일 만이다.

양국과 중재국 파키스탄에 따르면, 이날부터 즉시 이란이 봉쇄해온 호르무즈 해협은 재개방되고, 이란에 대한 미군의 해상 봉쇄도 해제될 예정이다. 또한 레바논을 포함해 현재 전투가 벌어지는 여러 전선에서 전쟁도 영구 중단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 06. 11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호르무즈 즉시 개방, 해상 봉쇄 해제"

세계를 향해 이 사실을 맨 먼저 알린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 기준으로 이날 오후 5시30분쯤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 이슬람공화국과의 합의가 지금 마무리됐다. 모두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날은 트럼프 대통령의 80세 생일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이로써 나는 통행료 없는 (toll free)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전적으로 승인하는 동시에, 미 해군의 해상 봉쇄 즉시 해제를 승인한다"며 "세계의 선박들은 엔진 가동을 시작해 석유가 흐르도록 하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 기준으로 14일 오후 5시30분쯤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 이슬람공화국과의 합의가 지금 마무리됐다. 모두 축하한다!"고 밝혔다. 2026. 06. 14 [트럼프 계정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중재국인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도 X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집중적인 협상 결과, 미국과 이란 간 평화 합의가 타결됐다"며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공식 서명식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샤리프 총리는 "합의에 따라 양측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 작전의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종료를 선언했다"고 소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란 외무부의 카젬 가리바바디 차관도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가리바바디 차관은 이날 이란 국영 TV를 통해 레바논을 포함한 여러 전선에서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전쟁 및 군사 작전 종료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합의에 따른 이란의 의무 이행은 오는 19일부터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면서,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이 60일간 진행될 것이며 "상대측의 위반 행위"가 있을 경우 이란 정부도 자체적으로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가리바바디 는 또한 "사악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격해온 적은 모든 목표에서 패배했으며, 이란은 이번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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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원지검 1313호 현장검증, 확인해야 할 4가지 쟁점

차 오전 7시] '연어 술파티 위증 사건' 본격 시작... 쌍방울 관계자는 왜 술을 샀나

26.06.15 06:48최종 업데이트 26.06.15 06:48

<오마이뉴스>는 8일부터 2주 동안 열리는 이화영 전 경기도평화부지사 사건 국민참여재판을 매일 오전·오후·저녁 등 세 차례 이상 연속보도한다(omn.kr/2il9y). 또한 연어 술파티 의혹을 둘러싼 핵심 혐의가 다뤄지는 2주차 때는 매일 재판이 끝난 뒤 오마이뉴스 법조팀 유튜브채널 '서초동 시끌법정'에서 재판 상황을 해설할 예정이다(www.youtube.com/@ohmynewsLAT).[편집자말]

수원지검 전경. 김종훈

오늘(15일) 예정된 수원지방검찰청 1313호실 현장검증은 단순한 장소 확인 절차가 아니다. 이화영 국민참여재판의 핵심인 '연어 술파티 위증 사건'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비교적 단순한 위증 사건으로 설명하려 한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국회에서 "술이 제공됐다"고 증언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국회에서 언급한 날짜가 2023년 6월 18일 또는 6월 30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날짜에 소주가 제공되지 않았다면 위증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쟁점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 전 부지사의 국회 증언은 특정 날짜를 단정한 진술이 아니었다. 그는 일기처럼 적어둔 기록이 사라져 정확한 날짜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 기억을 더듬어 "6월 18일 아니면 6월 30일일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장검증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날짜를 붙잡고 위증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수원지검 1313호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가 사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쟁점은 네 가지다.

첫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둘째, 쌍방울 관계자가 술을 샀나.

셋째, 왜 술을 샀나.

넷째, 결국 이재명을 겨냥했나.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이 사건의 출발점은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이다. 그는 수원지검 조사 과정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방용철 전 부회장, 안부수 전 아태평화교류협회장 등 관련자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 자리에서 진술을 맞추는 듯한 대화가 오갔다고 주장해 왔다. 이른바 '진술세미나'가 있었고 외부 음식이 제공됐고, 심지어 연어회와 소주까지 제공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검찰은 이를 부인한다. 특히 수원지검은 2024년 4월 공식 자료를 통해 "검찰청사에 술이 반입된 바가 없어 음주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쌍방울 관계자가 음식조차 반입한 사실이 일체 없다", "음주 장소로 언급된 검사실은 식사 장소로 사용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나온 법무부 특별점검과 서울고검 인권침해점검 TF의 결과는 달랐다. 두 기관은 2023년 5월 17일 수원지검 1313호 검사실 또는 영상녹화실에서 외부 음식과 술이 반입됐고, 이 전 부지사와 김성태 전 회장 등이 소주를 마신 정황이 있다는 취지로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 대검 과학수사부의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도 있다. 이 전 부지사의 관련 진술은 '진실'로 판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거짓말탐지기 결과가 진실과 거짓을 직접 판별하는 절대적 증거가 아니라고 말한다. 검찰 주장대로 거짓말탐지기 결과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결과는 검찰이 피고인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 제출하는 증거가 아니다. 피고인인 이 전 부지사 측이 자신의 진술 신빙성을 방어하기 위해 제시할 수 있는 자료다. 다시 말해 '이화영의 주장이 명백한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데 의미가 있다.

수원지검은 검찰 스스로 실시한 과학수사 절차에서 '진실' 취지 결과가 나왔는데도 이를 전면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현장검증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2023년 5월 17일, 쌍방울 관계자는 정말 술을 샀나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쌍방울 법인카드(끝자리 1084)의 결제내역2023년 5월 17일 오후 6시 34분과 6시 37분, 수원지검 앞 편의점에서 각각 1만2100원과 1800원이 결제됐다.오마이뉴스

두 번째 쟁점은 더 구체적이다. 쌍방울 관계자가 술을 샀는지 여부다. 이 부분은 이미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 상태다.

2023년 5월 17일 저녁, 쌍방울 법인카드 끝자리 1084번 카드가 수원지검 앞 편의점에서 사용됐다. 오후 6시 34분 1만 2100원, 오후 6시 37분 1800원이 결제됐다. 특히 1800원 결제가 당시 편의점 소주 한 병 가격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법무부는 편의점의 상세 결제 내역, 이른바 밴딩 자료를 통해 두 건 모두 소주 구입과 관련됐다고 확인했다.

구체적으로 1만 2100원 결제는 소주 3병, 생수 3병(2+1행사상품), 담배 1갑, 비닐봉투 1장. 3분 뒤 1800원 결제는 소주 1병이다. 특히 생수 3병과 소주 4병이라는 구성은 '소주갈이' 의혹과 연결된다. 생수병에 소주를 옮겨 담아 외부에서 보기에는 물처럼 보이게 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현장검증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은 물리적 가능성이다.

수원지검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서 소주갈이를 한 뒤 140m 정도 떨어진 수원지검까지 바로 올 수 있는지, 이를 김 전 회장 수발을 담당했던 쌍방울 이사 박상웅씨가 실제 소주 등을 전달받을 수 있는 시간이 들어맞는지 여부다. 또 수원지검 2층 로비에서 13층 검사실까지 이동하는 절차는 어떠했는지, 그 과정에서 검색이나 제지가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여기서 김 전 회장을 지속적으로 수발했던, 쌍방울 이사 박상웅씨의 출입기록이 핵심으로 등장한다.

박씨는 2023년 5월 17일 오후 6시 32분 15초 수원지검 13층에서 퇴실했고, 6시 41분 04초 다시 13층에 입실했다. 약 9분의 공백이다. 공교롭게도 이 9분 사이에 수원지검 앞 편의점에서는 소주 결제가 이뤄졌다. 오후 6시 34분 1만 2100원, 오후 6시 37분 1800원. 박씨가 13층에서 내려온 시각과 소주 구매 시각, 다시 13층으로 올라간 시각이 절묘하게 맞물린다.

물론 이것만으로 박씨가 소주를 직접 반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장검증은 바로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절차다. 9분 안에 가능한 일인지, 불가능한 일인지 배심원들이 직접 봐야 한다.

왜 술을 샀나

세 번째 쟁점은 더 중요하다. 소주를 왜 샀는가다. 현재까지 공개된 법인카드 내역과 법무부 확인 내용 등을 종합하면, 쌍방울 관계자가 2023년 5월 17일 수원지검 앞 편의점에서 소주를 구입한 정황은 상당 부분 확인된다. 끝자리 1084로 끝나는 쌍방울 법인카드를 가진 관계자가 그날 왜 검찰청 앞 편의점에서 소주를 샀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 술이 누구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준비됐느냐를 따져야 한다.

2023년 5월 17일은 우연한 날이 아니다. 이날은 이화영 전 부지사, 김성태 전 회장, 방용철 전 부회장이 수원지검에 있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 같은 날 같은 공간에 있었다.

법무부는 김 전 회장이 구속 기간 총 184회 검찰에 출정했고, 김 전 회장 조사 때마다 쌍방울 관계자들이 수원지검 1313호실에 상주하듯 드나들었다는 취지의 교도관 진술을 조사보고서에 담았다. 박상웅씨 등은 김 전 회장에게 커피나 물을 가져다 주고,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수행비서 같은 역할을 했다고 적시했다.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일반 피의자 조사에서 회사 관계자가 검찰청사 안 검사실을, 심지어 '참고인' 출입증을 들고 수시로 드나들며 피의자를 보조하는 일이 가능한가. 구속 피의자가 원하는 외부 음식이 반복적으로 제공되는 일이 통상적인가. 공범들이 한 공간에 모여 식사를 하고 대화하는 구조가 적절한가.

이 전 부지사의 주장은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공범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세미나를 하듯 진술을 맞추는 분위기가 있었으며, 검찰의 회유와 압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외부 음식과 소주는 그 분위기를 만드는 장치였다는 것이다.

▲증언대에 선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대북 송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지난 4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종합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남소연

김성태 전 회장이 5월 17일 당일 수원구치소에서 지인을 접견하며 한 발언도 주목해야 한다. 김 전 회장은 "오늘 중요한 날", "결전의 날"이라는 취지로 말하고, "소주라도 한잔 먹고 이야기하면 편할 판"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구체적으로 김 전 회장은 "세상은 태풍이 오면 태풍을 피할 수가 없다"라면서 "태풍 속에 안 들어가야 되는데, 이미 태풍 속에 이미 들어가 버린 것 어떻게 하냐. 그 흐름을 내가 만들어야지. 이제는. 그렇게 노력을 해야지. 우리가 흐름을 만들어야지"라고 말한다. 이어 "반전시킬 수 있는 뭔가 노력을 해봐야지"라면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그는 "소주라도 한잔 먹고 이야기하면 편할 판인데"라는 말을 한다.

"나도 고민무지하게 돼 인마. 사실 엄청난 도박이야. 만약에 저것들이 기소해 가지고 유죄 나오면 1년 6월 이상인데. 스타트가. 예를 들어서 지금 이화영이도 마찬가지 아녀. 오늘은 나온다고 지가 하니까. 소주라도 한잔 먹고 가서 이야기하면 편할 판인데. 내가 변호사한테 이야기해 봤으니까."

김 전 회장은 "물 있잖아. 물은 좀 있잖아. 석수같은 거"라고 지칭한 뒤 "한번 이야기해 보라구 해. 흉금 없이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면 좀 어떠냐. 뭔 말인지 알지"라고 당부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소주는 진술을 끌어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 도구였을 수 있다. 더구나 "물에 담아 준비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있었다면, 이는 검찰청사 반입을 염두에 둔 준비였다고 볼 여지도 있다.

현장검증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그래서 단순한 동선만이 아니다. 실제 김 전 회장의 말대로 이뤄졌는지를 따져야 한다. 결국 소주가 왜 필요했는지. 소주가 진술세미나 의혹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봐야 한다. 이 점이 현장검증에서 확인해야 할 핵심 쟁점이다.

결국 이재명을 겨냥했나

마지막 쟁점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이화영 전 부지사의 위증 사건으로 제한하려 한다. 하지만 이 사안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검찰청사 안에서 구속 피의자들과 공범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외부 음식과 술이 제공됐으며, 그 자리에서 특정한 방향의 진술이 만들어졌다는 의혹이다. 그 특정 방향이 당시 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있다면 더더욱.

이 전 부지사 주장은 명확하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서 이재명을 엮기 위해 김성태 등의 진술이 만들어졌고, 검찰은 그 과정에서 회유와 압박을 했다는 것이다. 외부 음식과 소주, 각종 편의도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만약 이 전 부지사 측 주장처럼 검찰청사 안에서 공범 간 진술 조율과 회유·압박이 실제로 있었음이 확인된다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수사와 기소 과정 전반을 둘러싼 중대한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현장검증이 더 중요하다. 이번 현장검증은 수원지검의 기존 설명과 법무부·서울고검 TF의 판단 가운데 어느 쪽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화영 #김성태 #소주갈이 #쌍방울 #수원지검

프리미엄 이화영 국민참여재판, 끝장 연속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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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해체" 거론하기 전에 부실 작동 이유 살펴야

이준일 시민기자

profyi@korea.ac.kr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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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제도적 결함에서 비롯

법관 중심 제도와 1인 상임위원 제도가 문제

선관위 내부 감독체계 제대로 작동 안한 탓도

총리가 부정선거 세력처럼 '해체' 편승 안 돼

헌법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혁 모색을

서울 송파구선관위가 지방선거가 치러진 3일 잠실7동 제2투표소로 이송한 것으로 추정되는 투표용지 상자를 이틀 뒤에 촬영한 사진이다. 이 상자 겉면에 적힌 '투표용지 인쇄 매수'는 총 1900매였다. '박스 1개 중 1번'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 투표소의 선거인 수는 3856명으로 파악됐다. 서울동부지법 김지연 부장판사가 10일 오후 증거로 보전하려고 했는데 이 상자는 사라진 뒤였다. 송파구선관위는 법원 통보를 받기 5시간쯤 전에 폐기업체가 수거해 갔다고 뒤늦게 밝혔다. 2026.6.5 연합뉴스

지난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유례 없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까지의 보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91개 투표소에서 7194장, 서울에서만 4206장의 투표용지가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다. 11일 김민석 국무총리는 선거권 침해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국민의 목소리를 빌어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해체까지 언급했다.

투표율을 엄밀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선거인(유권자) 숫자만큼 투표용지를 인쇄하지 않는 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예상하지 못한 투표용지의 부족으로 투표용지를 추가적으로 인쇄하여 배부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상황도 이해할 수는 있다. 이전에도 투표시간 막판에 투표자가 몰리면 투표시간을 연장했던 선례도 있다.

물론 선관위의 안일한 대처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선관위가 탄생한 배경을 되돌아보면 섣부른 선관위 해체론, 그것도 국무총리가 직접 언급한 선관위 해체는 매우 부적절하다. 오히려 선관위가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 설치된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작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할 시점이다.

선관위는 부정선거에 저항하여 일어났던 4·19혁명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설치된 헌법기관이다. 1960년 헌법(제3차 개정헌법)은 헌법기관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편제에서도 제5장 정부와 제7장 법원 사이에 중앙선관위를 위치시킴으로써 그 헌법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중앙선관위 전체 위원 9명 가운데 3명은 대법관 가운데 호선하며 위원장도 대법관인 위원 가운데 호선하도록 규정하였다. 중앙선관위원장을 대법관이 맡는 전통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960년 헌법 제75조의2

① 선거의 관리를 공정하게 하기 위하여 중앙선거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위원회는 대법관 중에서 호선한 3인과 정당에서 추천한 6인의 위원으로 조직하고 위원장은 대법관인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③ 중앙선거위원회의 조직, 권한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써 정한다.

표제에 ‘통치기구’라는 불편한 용어가 등장한 1962년 헌법(제5차 개정헌법)에서 중앙선관위는 국회, 정부, 법원에 이어 제4절에 편제되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2명, 국회에서 선출하는 2명, 대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하는 5명으로 구성되었다. 중앙선관위의 구성에서 대법원의 역할이 강화되었으나 중앙선관위원을 반드시 법관 중에서 선출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대법원에서 선출되는 중앙선관위원을 법관 중에서 선출하는 관례는 유지되었다. 중앙선관위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강조되었으며 중앙선관위의 규칙 제정권이 부여되어 독립성도 강화되었다.

 

1962년 헌법 제107조

① 선거관리의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2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2인과 대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하는 5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③ 위원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연임될 수 있다.

④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⑤ 위원은 탄핵 또는 형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의 관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⑦ 각급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ㆍ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전대미문의 국가기관을 설치한 1972년 헌법(제7차 개정헌법)에서 선관위는 중앙선관위와 각급 선관위로 조직되어 이전보다 체계성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법률에서 선관위를 중앙선관위와 각급 선관위로 조직하고 있었다. 중앙선관위원은 9명으로 유지되었지만 이 가운데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여 임명하고, 국회에서 선출된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한 3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였다.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위원의 숫자가 3명으로 축소되었으며 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됨으로써 중앙선관위는 행정부 의존성이 강화되어 독립된 헌법기관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972년 헌법 제112조

①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게 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9인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대통령이 임명한다.

③ 제2항의 위원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④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⑤ 위원의 임기는 5년으로 한다.

⑥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⑦ 위원은 탄핵 또는 형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⑧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관리ㆍ국민투표관리 또는 정당사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⑨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ㆍ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중앙선관위의 구성과 관련하여 1980년 헌법(제8차 개정헌법)은 1972년 헌법을 거의 그대로 따랐으나 위원장을 위원들이 직접 서로 협의하여 선출하는 방식(호선)으로 개정되어 독립성을 회복하였다. 현행 헌법인 1987년 헌법(제9차 개정헌법)에서도 중앙선관위의 구성은 위원의 임기만 6년으로 연장되었을 뿐이고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대법원장이 법관 중에서 중앙선관위원을 지명하는 관례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1980년 헌법 제115조

①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③ 위원의 임기는 5년으로 한다.

④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⑤ 위원은 탄핵 또는 형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관리ㆍ국민투표관리 또는 정당사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⑦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ㆍ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1987년 헌법 제114조

①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③ 위원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

④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⑤ 위원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관리ㆍ국민투표관리 또는 정당사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으며,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내부규율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⑦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ㆍ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중앙선관위와 각급 선관위로 조직되는 선관위는 헌 법개정 없이는 폐지할 수 없는 헌법기관에 해당하며 독립된 국가기관이므로 중앙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나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계엄군의 중앙선관위 침탈은 위헌적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내려진 바 있다.

 

헌재 2025. 2. 27. 2023헌라5

“제3차 개정헌법 이래로 우리 헌법이 선거관리사무를 행정부로부터 기능적ㆍ조직적으로 분리하여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부여한 것은, 선거관리기구가 대의민주제에서 요청되는 독립적ㆍ중립적 선거관리라는 헌법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외부 권력기관, 특히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선거관리사무를 행정부가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헌법적 결단이 헌법체계에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헌재 2025. 4. 4. 2024헌나8

“피청구인(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예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중앙선관위 청사에 무단으로 들어가 선거관리에 사용되는 전산시스템을 압수ㆍ수색하도록 하였다. 이는 선관위의 선거관리사무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자 선거가 지니는 본래의 민주정치적 기능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로서, 선관위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하고자 하는 우리 헌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헌법의 위임을 받아 제정된 〈선거관리위원회법〉에 따르면 선관위는 중앙선관위와 함께 4개 종류로 구분된다. 중앙선관위뿐만 아니라 각급 선관위의 위원으로 법률에서 정한 최소한의 법관이 포함되어야 하며 법관을 우선하여 위촉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성방식이 선관위를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설치한 헌법의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헌법 어디에도 선관위원의 자격을 법관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독립적 헌법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구성단계에서부터 법관의 비중이 높다. 정치적 지향성이 강한 입법부나 행정부보다 사법부가 선거관리에서 상대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여기까지는 납득할 수 있지만 권력분립 원칙의 관점에서 보면 현직 법관이 독립적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위원으로 임명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법원장이 중앙선관위원을 지명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으나 현직 법관을 선관위원으로 임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제2조(설치) ① 선거관리위원회의 종류와 위원회별 위원의 정수는 다음과 같다.

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9인

2. 특별시ㆍ광역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 9인

3.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 9인

4.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 7인

제4조(위원의 임명 및 위촉) 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이 경우 위원은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쳐 임명ㆍ선출 또는 지명하여야 한다.

②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고 정당원이 아닌 자 중에서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한 사람과 당해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법원장이 추천하는 법관 2인을 포함한 3인과 교육자 또는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 중에서 3인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한다.

③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그 구역 안에 거주하는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고 정당원이 아닌 자 중에서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한 사람과 법관ㆍ교육자 또는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 중에서 6인을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한다. 다만, 정당이 추천하는 위원은 선거기간개시일(委託選擧는 제외한다. 이하 같다) 또는 국민투표안공고일후에는 당해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할 수 있다.

④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그 읍ㆍ면ㆍ동의 구역 안에 거주하는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고 정당원이 아닌 자 중에서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한 사람과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 중에서 4인을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한다. 다만, 읍ㆍ면의 구역 안에 군인을 제외한 선거권자가 없는 경우에는 그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그 읍ㆍ면ㆍ동을 관할하는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의 구역안에 거주하는 국회의원선거권자 중에서 이를 위촉할 수 있다.

⑤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와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이 될 법관과 법원공무원 및 교육공무원은 거주요건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며 법관을 우선하여 위촉하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위원들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상임위원이라는 점이다. 중앙선관위의 상임위원은 호선이 원칙이지만 관례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 가운데 한 명이 상임위원이 된다. 선관위는 의결기구이며 이를 집행하는 기구로 사무처를 두는데 중앙선관위의 사무처에는 사무총장과 사무차장, 시ㆍ도선관위의 사무처에는 사무처장을 둔다. 이러한 사무처를 감독하는 권한을 상임위원이 갖는데 현실적으로 상임위원 한 명이 사무처를 감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무처에 대한 효과적인 감독을 위해서는 상임위원의 숫자를 증원할 필요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제6조(상임위원) 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에 위원장을 보좌하고 그 명을 받아 소속 사무처의 사무를 감독하게 하기 위하여 각 1인의 상임위원을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상임위원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③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의 상임위원은 당해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 중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고 선거 및 정당사무에 관한 식견이 풍부한 자 중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명하되 상임위원으로서의 근무상한은 60세로 한다.

1. 법관ㆍ검사 또는 변호사의 직에 5년 이상 근무한 자

2. 대학에서 행정학ㆍ정치학 또는 법률학을 담당한 부교수이상의 직에 5년 이상 근무한 자

3. 3급 이상 공무원으로서 2년 이상 근무한 자

제15조(사무기구 등) 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사무처를 둔다.

② 사무처에 사무총장 1인과 사무차장 1인을 둔다.

③~⑨ 생략

⑩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에 사무처와 필요한 과를 두며 처장은 2급 또는 3급, 과장은 4급 또는 5급인 일반직국가공무원으로 보한다.

⑪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에 사무국 또는 사무과를 두며 국장은 4급, 과장은 4급 또는 5급인 일반직국가공무원으로 보한다.

덧붙여,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투표시간과 관련하여 원칙적으로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데 대기자가 있는 경우에 번호표를 부여하여 투표하게 해야만 한다. 투표시간은 법률에 고정되어 있지만 투표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투표시간 안에 도착하여 투표를 마치지 못한 유권자에게는 투표시간을 연장하여 투표권을 보장한다. 투표권의 보장을 위해서 투표시간의 조정은 허용된다는 뜻이다.

 

공직선거법

제155조(투표시간) ① 투표소는 선거일 오전 6시에 열고 오후 6시(보궐선거등에 있어서는 오후 8시)에 닫는다. 다만, 마감할 때에 투표소에서 투표하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는 선거인에게는 번호표를 부여하여 투표하게 한 후에 닫아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사태와 관련하여 국가의 선거업무를 방해할 목적으로 고의나 과실로 투표용지의 부족을 초래했다면 형법상 직무유기죄에 해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의 직무유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가기능을 저해하고 국민 피해를 야기할 구체적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대법원 2022. 6. 30. 선고 2021도8361 판결

“직무유기죄는 구체적으로 직무를 수행해야 할 작위의무가 있는데도 이러한 직무를 저버린다고 인식하고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성립한다. 이때 직무를 유기한다는 것은 공무원이 법령, 내규 등에 따른 추상적 성실의무를 게을리하는 일체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의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할 구체적인 가능성이 있는 경우만을 가리킨다. 따라서 공무원이 태만이나 착각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경우 또는 직무를 소홀하게 수행하였기 때문에 성실한 직무수행을 못한 데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직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국민의 참정권, 특히 선거(헌법 제24조)이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청구된 경우에 문제가 되는 집단은 투표시간 안에 도착하였으나 투표용지의 부족으로 정해진 투표시간을 넘어 투표한 유권자들 또는 지연된 투표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투표를 포기한 채 돌아간 유권자들이다.

전자의 경우에 투표할 시간이 지연되어 선거권의 행사를 방해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권 자체가 박탈된 것은 아니므로 헌법재판소가 선거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는 단정할 수 없다. 문제는 후자로 투표할 수 있는 시간의 지연으로 대기표를 받고도 기다리지 못해 투표를 포기하여 사실상 선거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선거권 침해를 확인할 개연성이 높다.

다만 투표용지 부족사태로 인한 선거의 효력, 즉 재선거 실시 여부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소청이나 선거소송으로 다투어야 하며 이 문제를 헌법소원으로 다투면 보충성 원칙 위반으로 각하될 수 있으며 굳이 선거소송의 헌법 위반 여부를 다투려면 최근에 도입된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219조(선거소청) ①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거에 있어서 선거의 효력에 관하여 이의가 있는 선거인ㆍ정당(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에 한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또는 후보자는 선거일부터 14일 이내에 당해 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을 피소청인으로 하여 지역구시ㆍ도의원선거(지역구세종특별자치시의회의원선거는 제외한다), 자치구ㆍ시ㆍ군의원선거 및 자치구ㆍ시ㆍ군의 장 선거에 있어서는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에, 비례대표시ㆍ도의원선거, 지역구세종특별자치시의회의원선거 및 시ㆍ도지사선거에 있어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소청할 수 있다.

제222조(선거소송) ②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거에 있어서 선거의 효력에 관한 제220조의 결정에 불복이 있는 소청인(당선인을 포함한다)은 해당 소청에 대하여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이 있는 경우(제220조제1항의 기간 내에 결정하지 아니한 때를 포함한다)에는 해당 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인용결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인용결정을 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피고로 하여 그 결정서를 받은 날(제220조제1항의 기간 내에 결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10일 이내에 비례대표시ㆍ도의원선거 및 시ㆍ도지사선거에 있어서는 대법원에, 지역구시ㆍ도의원선거, 자치구ㆍ시ㆍ군의원선거 및 자치구ㆍ시ㆍ군의 장 선거에 있어서는 그 선거구를 관할하는 고등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국가공동체의 의사를 그 구성원이 직접 결정하는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자격을 분명하게 확정하기 위하여 국민주권으로 구체화되며 국민주권을 구현하는 방식으로서 대의제 체제에서 선거권은 대표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필수적 요소다. 선거권에 대한 제도적 침해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투표용지 숫자에 대한 추정의 실패로 선거권에 대한 사실적 침해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무회의장에서 국민 참정권 침해 문제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6.6.11 연합뉴스

그렇다고 하더라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일부의 주장처럼 부정선거로 몰아가거나 심지어 부정선거에 따른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의 구성에서 법관중심 제도와 1인 상임위원 제도와 같은 제도적 결함에서 연유하였으며, 더욱이 선관위 내부의 감독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선거권이 침해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상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정파적 주장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나 여당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정권에 부담이 될 것을 염려하여 부정선거론자의 주장에 편승하여 선관위 해체론을 옹호하지 않아야 한다. 선관위 해체는 헌법 개정으로만 가능하며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선관위를 설치한 헌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선관위의 개혁을 모색해야 한다.

이준일 시민기자 profyi@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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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김정은, 시진핑 만나 '뽕 뽑으려던' 계획 성공…아주 대박을 쳤다"

[정세현-박인규의 정세토크 시즌 2] '대한민국' 부르는 북한에 "우리도 '조선' 불러야…그래야 바늘구멍이라도 찾을 수 있어"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6.06.14. 10:09:31

북한에 7년만에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비핵화를 포함해 북한 핵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북핵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 분위기도 마련되지 않는 가운데 비핵화가 점점 더 불가능한 과제가 돼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 고문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으로 "북한은 외교적,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났고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유리한 패를 하나 확보했다는 분석도 있다"라며 "시진핑의 방북으로 북한의 전략적 위상이 대단히 커졌다. 이런 측면이 아주 확실하게 드러난 것 같다"고 총평했다.

박 고문은 "북한 입장에서는 2013년도 이후, 특히 2019년도 이후에 어떻게 보면 약간 소원했던 조중(북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으로부터 큰 경제 지원을 받을 수있게 된 것이 소득이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중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고려하고 북한에 국빈 방문한 것 같다는 관측을 내놨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 및 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 끝나면 다시 인도-태평양 전략을 기반으로 중국 견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 전 장관은 "이렇게 되면 중국은 한반도가 미국의 대중 압박 견제의 전선에서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하거나 위상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예상했다고 본다"라며 "미국의 대중 압박을 완화시키거나 상쇄시킬 수 있는 레버리지나 카드로 북한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한 역시 중국의 방문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정 전 장관은 "아주 융숭하게, 국빈 방문 중 최고급으로 대접을 한 것 같은데 김정은이 시진핑한테 지금 뭘 좀 받아 내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말하자면 소위 '요구 물품 리스트'가 엄청나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라며 "거하게 대접해서 시진핑으로부터 소위 '뽕 뽑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핵 보유국 승인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장관은 시 주석이 북핵을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어쩌면 트럼프보다 훨씬 더 무게감이 있는 승인 내지 인정이 됐다. 쉽게 말해서 김정은은 대박이 난 셈"이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북중 간 밀착이 강화되면서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을 더 이상 바라볼 이유가 없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제재 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면서 어느 정도 해결했고 경제 문제도 중국에 의존하면서 남한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남한이 북한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이 필요로 하고 중국이 그걸 뒷받침을 못하는 아이템은 있을 것이다. 이걸 찾아야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이를 찾기는 어렵다. 정부보다는 민간을 앞세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라며 최근 제주도가 신장 투석기 및 한라봉 묘목을 보낸 것과 같이 북한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우선 알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민간 루트를 통해서 계속 물줄기를 올려보내면서 그들의 수요를 충족하고 그를 통해 군사 상황을 안정적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평화 공존의 출발점"이라며 "민간 차원에서 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야의 물자를 지원해 주면서 군사적으로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틀을 짜고 이후에 공동 성장을 구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대담은 지난 10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왼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

박인규 :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7년 만에 북한에 국빈 방문했다. 중미, 중러 정상회담 직후에 이뤄진 방문이었는데 공동선언이나 발표가 없긴 하지만 양측에서 나온 보도를 보면 소통을 강화하고 협력을 심화시키며 조중(북중) 간 신시대를 만들어가겠다고 한다.

시 주석의 방북 전에 일부에서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시 주석이 중재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또 중국 두만강을 통한 동해 출해권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는데 공개된 것은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2024년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도움을 주면서 조로(북러) 관계가 좀 강화됨에 따라 조중 관계도 더 중시되는, 즉 중국과 북한이 중러 간 관계를 이용해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은 외교적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났고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유리한 패를 하나 확보했다는 분석도 있는데, 시 주석이 7년 만에 국빈 방문한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정세현 : 7년 만의 방문을 부각시키는 분석들이 있는데 시간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고려하고 움직인 것 같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미국이 간접적으로 개입돼 있고 이란 전쟁에는 직접적으로 개입이 돼 있어서 현재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 태평양 전략을 통한 대중 압박이 조금 소강상태인 상황이다. 그런데 시진핑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전쟁들이 모두 해결되면 미국이 다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미국이 전쟁에 묶여 있지만 끝나면 다시 인도-태평양 전략을 가지고 또 중국을 압박해 들어올 텐데, 이렇게 되면 한반도가 미국의 대중 압박 견제의 전선에서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하거나 위상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예상했다고 본다. 미국의 대중 압박을 완화시키거나 상쇄시킬 수 있는 레버리지나 카드로 북한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북한이 당장은 러시아로부터 석유도 지원받고 식량, 무기 기술까지도 받고 있지만 중국이 보기엔 이건 오래 못간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전쟁 끝나면 이것도 같이 끝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북한이 다음 10차 당 대회인 2030년까지 밀고 나가야 할 '경제발전 5개년 계획'뿐만 아니라 2024년부터 2033년까지 추진중인 '지방발전 20×10 정책'도 있어서 많은 원부자재를 투입해야 하는데, 중국이 볼 때는 지금 북한은 원부자재가 턱없이 부족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지금 어려울 때 북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면 그 다음에는 북한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최소한 북한을 중국 편으로 좀 더 가깝게 끌어다 놓게 되면 중국이 미중 갈등 상황에서 좀 더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 때와 다소 협조의 강도가 다른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한국이 계속 이대로 가게 하기 위해 중국으로서는 북한이라는 카드를 대(對) 한국 외교에서도 쓸 수 있을 것으로 본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렇게 하려면 북한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북한은 공항 영접부터 시작해서 김일성 광장에 사열대 만들어 놓고 대대적인 군중 집회 형식의 환영회를 하는 등 엄청 준비를 많이 했더라. 아주 융숭하게, 국빈 방문 중 최고급으로 대접을 한 것 같은데 김정은이 시진핑한테 지금 뭘 좀 받아 내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말하자면 소위 '요구 물품 리스트'가 엄청나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하게 대접해서 시진핑으로부터 소위 '뽕 뽑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원을 보니까 시진핑은 그걸 들어줄 준비를 해가지고 왔더라. 경제 분야는 북한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국방 분야는 자기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데리고 간 것처럼 보였다. 중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 김정은으로서는 안보 분야에서 중국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두만강으로 나갈 수 있는 출해권 문제다.

▲김정은(오른쪽) 북한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의 회담이 지난 8일 금수산 영빈관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게 경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안보 차원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일단 북극항로 개발에 있어서 군함의 보호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측면이 있고,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대만 문제를 가지고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헌법을 개정하는 등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계산도 있어 보인다.

시 주석이 <로동신문>에 게재한 기고문이 북한 방문 당일인 8일에 게재됐는데 여기에 "군국주의부활을 꾀하고 지역의 안전과 안정에 위해를 주는 모든 야욕과 책동을 반대해야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군국주의의 부활을 추구하는 일본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군대를 파견하는 등의 행동을 할 때 이를 뒤에서 잡아당기려면은 두만강 하구와 동해 쪽에서 군함이 움직여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본토에서 출항시켜서 일본 쪽으로 가는 것보다는 동해 쪽으로 나가면 일본을 뒤에서 괴롭힐 수 있다. 그런 군사적인 필요도 이번 방북 배경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시진핑이 2027년 10월 열리는 당 대회 때 4연임을 달성하기 위해 대만을 점령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건 미국의 국방부 주변의 군산복합체와 연결된 싱크탱크에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시나리오다. 무기 시장을 계속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런데 시진핑이 먼저 대만을 건드리지 않을 경우 중국이 어쩔 수 없이 군사 행동으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미국이 자극할 수는 있다. 그런 식으로 중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때 주한미군을 포함해서 미국이 대만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북한이 중국 편에 서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분란을 야기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계산을 중국이 했을 수도 있다. 이건 우리가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북중 정상이 국경 지역의 통상구(通商口)를 전부 전면 재가동하기로 했는데 이는 훈춘이나 도문, 신의주와 단둥 등 접경지역에서의 무역 등 경제활동을 열어주겠다는 뜻이다. 통상 차원에서 완전히 북중 관계를 복원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런 활동을 보장해 주면서 두만강 하구로의 출해권을 받아내는 합의를 했을 수 있다.

지난해 북한에서 중국의 훈춘을 거쳐 러시아 하산으로 넘어가는 자동차 다리 공사를 했는데 이걸 중국이 용인해줬다. 따라서 러시아도 북한도 중국의 두만강 출해권을 보장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인규 : 시진핑의 방북으로 북한의 몸값이랄까 전략적 위상 등이 대단히 커졌다. 이런 측면이 아주 확실하게 드러난 것 같다.

그런데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도 못 끝냈고 이란 전쟁에서도 발목이 잡혀 있어서 일각에서는 그나마 할만한 북한 핵 문제를 건드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일종의 중간 조정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또는 관측 등이 있었다.

정세현 :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중재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이미 건너게 됐다. 트럼프는 취임 초에 김정은과 북한에 대해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라며 핵 보유를 인정했고 심지어 더 만들 필요는 없다는 얘기까지 한다는 것은 이제 동결·축소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국무부나 국방부 쪽 관리들은 아직도 비핵화 노래를 부르고 있고 한국이나 일본은 여기에 동조해서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 3국이 계속 기존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는데, 중국 입장에서 볼 때는 "쟤들 아직도 헛짓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이 비핵화 요구한다고 북한이 이를 들을 상황은 이미 지났다. 이미 북한이 핵을 50~60개 가지고 있다고 있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없애나.

이번 시진핑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도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처럼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중국이 인정을 한 게 됐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를 이야기했는지, 이야기를 했다고 하면 시진핑이 뭐라고 대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진핑이 방북하기 전날인 7일 김여정 부장 담화를 보더라도 북중 회담에서는 비핵화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어쩌면 트럼프보다 훨씬 더 무게감이 있는 승인 내지 인정이 됐다.

박인규 : 조중 회담에서 비핵화를 당면 목표로 내세울 수는 없으나 동결을 전제로 한 북미 관계 정상화 정도까지는 이야기가 됐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정세현 : 지난해 6월 4일 취임 이후 첫 일본 방문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이 그해 8월 21일 <요미우리 신문>과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 해법을 '동결 → 축소 → 비핵화' 3단계로 제시했었다. 이를 미국에서 일리 있다고 받아들이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을 중국이 의식했다면 "사실 그거밖에 방법이 없어" 하는 식으로 중국은 입장을 정했다고 본다.

그동안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쌍중단'과 '쌍궤병행'을 이야기했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지와 한미 연합 군사 연습을 중단하는 것이고 쌍궤병행은 비핵화 협상과 정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쌍중단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됐다. 해봤자 소용이 없어진 셈이다. 이제 북한이 핵실험이 아닌, 핵을 생산하는 상황 아닌가.

박인규 : 그럼 중국 입장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이걸 동결하는 정도까지도 추진할 생각도 없다는 것인가?

정세현 :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을 가지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떨어지고 통제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 1기 집권 때 이미 북한의 여섯번째 핵실험까지 끝나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핵실험을 하지 말라고 해봐야 의미가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쌍중단은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쌍중단, 쌍궤병행도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이제 중국으로서는 핵 문제는 얘기를 꺼내지 않은 채 북한이 핵을 가진 것을 사실상 인정해주고 북한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여서 미국과의 세력 다툼에서 중국이 좀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낫지 않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중국의 동해 출해권 문제에서도 상당 부분의 양해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정세현 : 가능하다고 본다. 보도를 보면 중국은 지금 북한이 필요로 하는 걸 다 주겠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의료 부문, 보건 부문도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북한이 20×10 정책을 통해 공장만 짓는 것이 아니라 보건소나 병원 봉사소 같은 것도 지으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실제 이게 효과가 있으려면 MRI, CT, 엑스레이 등 장비와 주사기, 청진기 등 자재도 들어가야 하는데 북한은 이런 수요를 감당할 능력 없다.

제주도 오영훈 지사가 지난해부터 북측과 접촉해서 인도적 지원을 한다고 하던데, 여기에 신장 투석기가 포함돼 있다. 이거 아마 북한 측에서 달라고 했기 때문에 줬을 것이다. 북한이 영양 상태나 위생이 좋지 않아서 신장 나쁜 사람 숱하게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신장 투석을 해야 할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을 때 이 자재를 보장할 수 있는 곳은 제주도보다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로부터 받고 보니 북한 내부의 여러 군데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신장투석기뿐만 아니라 치료용 또는 검사용 자재 장비 등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중국이 지원해주면 김정은은 이거 받아서 인민들의 일상생활과 건강보호 수준을 높여줬다고 하는 찬사를 받을 것이다. 이걸 중국이 보장해 주겠다고 했을 수 있다.

시 주석이 <로동신문> 기고 글에 옛날 이야기를 잔뜩 써놓더니 가는 날에 중조 우의탑에 헌화를 하고 중앙당 간부 학교를 들렀다. 중조 우의탑은 과거를 잊지 말자는 것, 중앙당 간부 학교를 들렀다는 것은 앞으로 사회주의 혈맹으로서의 동지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자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이 이념적으로 한 편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상징성이 크다고 본다. 쉽게 말해서 김정은은 대박이 난 셈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지난 9일 평양 모란봉 기슭에 있는 조중(북중) 우의탑을 찾아 꽃바구니를 진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동행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한미 필요 없어진 북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박인규 : 두만강 하류를 통한 출해권이 단순히 경제문제가 아니라 군사적 측면의 투사라는 부분이 중국이 원하는 것이었고, 합의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는 2013년도 이후, 특히 2019년도 이후에 어떻게 보면 약간 소원했던 조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으로부터 큰 경제 지원을 받을 수있게 된 것이 소득이 될 것 같다. 그러면서 전략적 지위도 높아졌는데 그렇다면 북한이 이런 상황에서 굳이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그런 상황이라면 남한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세현 : 이번 시진핑 방북을 통해 북중 관계가 긴밀해지고 북한이 중국의 품을 떠날 수 없도록 딱 묶어두고, 여기에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시권 내에 들어오지도 않고 하면 북한은 미국과 관계개선에 별로 의지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2018년 6월에 있었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했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다른 말로 북미 수교인데 이미 트럼프에게 뒤통수 맞은 적 있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트럼프를 만나봐야 그 약속이나 합의가 언제 또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이란 전쟁을 보면서 트럼프에 대한 불신도 커졌을 것이고.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 다리를 놓을 필요도 없지만, 이걸 성사시켜서 챙길 수 있는 이득이 없다. 오히려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미국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설치되면 중국 입장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인중(人中)의 비수(匕首)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이 우리와 거리를 두고 담장을 높이 쌓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 관계도 좀 개선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거기서 바늘 구멍이라도 뚫리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한 때 했었는데 이번 일로 그 꿈은 접어야 될 것 같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 문제가 좀 힘들었는데 이번에 조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풀린다고 보면 미국 또는 남한과 무엇인가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려는 배경에는 제재 해제라는 목적도 있었다. 그게 상당한 인센티브였는데 이번에 국경 지역의 통상구를 전부 전면 재가동하기로 했으면 북미관계 개선도 크게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이미 북한이 '러-우 전쟁'에 병력을 파병하여 석유나 식량, 무기, 현금 등이 들어오고 있다면 러시아도 유엔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있는 셈이 된다. 사실상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무너진 상황에서 시진핑의 방북으로 더 크게 제재의 벽이 무너졌다. 그러면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제재 해제를 기대할 필요도 없어진 셈이다.

동시에 남쪽으로부터의 대북 지원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고. 그동안 남북 관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실질적으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지원이나 비료 등을 지원하면서 남북관계를 끌고 나갔는데 이제 그런 갈증 내지는 수요를 중국이 상당한 정도로 들어주면 우리가 딱히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박인규 : 1995년 쌀 지원에서 시작해서 2016년 개성공단 폐쇄 때까지가 말하자면 남한의 대북 지원이 일정한 레버리지를 발휘하던 시대였는데 그게 끝난 것 같다.

정세현 : 그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이재명 정부가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이라는 표현을 썼던데 공동 성장은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걸 중국이 해버리니까 우리의 대북 레버리지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그래도 북한이 필요로 하고 중국이 그걸 뒷받침을 못하는 아이템은 있을 것이다. 이걸 찾아야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이를 찾기는 어렵다. 대북지원경험이 있는 민간단체들이 제3국에서 북한측 인사들과 만나 뒤지다시피 하면 길이 보일 수 있다.

지난 4~5월에 제주도가 신장투석기와 부자재를 북한에 보냈는데, 이걸 참작해서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북한의 수요를 조사하라고 하고 정부는 그걸 뒷받침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바늘구멍이라도 뚫고 싶다고 하는데, 여기에 정부가 나서서 뚫으려고 하지 말고 민간을 앞세우는 게 나을 것 같다. 선민후관(先民後官)으로 가보자는 것이다.

민간 루트를 통해서 계속 물줄기를 올려보내면서 그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그를 통해 군사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것이 평화 공존의 출발점이다. 평화공존에 돈 안들이고 무슨 일이 되겠는가? 퍼주기?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전쟁준비 하는 것보다는 돈이 적게 들 것이다.

박인규 : 상징적일 수는 있지만 국호 문제도 있다. 이제 저쪽에서는 우리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고있지 않나? 그래서 우리도 그러면 아예 체제에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정식 명칭은 서로 불러주고 적대적이지 않은 두 국가로, 좀 실무적이고 '쿨한' 단계로 넘어가는 게 낫지 않나?

정세현 : 옛 이름 버리고 새 이름 지어서 호적에 올리기까지 했는데 자꾸 옛날 이름 부르면서 같이 놀자고 하면 되겠는가? 정부가 북한의 국호를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1991년12월 남북 총리급 회담에서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 이후에 6.15 정상회담, 10.4 정상회담, 4.27 정상회담, 9.19 정상회담 전부 다 남북이 각자 자기 정식 국호 써가면서 회담도 하고 합의서와 공동성명도 발표했었다.

다만 그때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라는 전제하에 그렇게 해왔는데, 지금은 북한이 통일을 하지 말자면서 남북이 두 국가로 살자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나오지 않나? 이번 3월에 헌법 개정까지 해버렸기 때문에 특수관계를 복원하자는 얘기는 할 수가 없게 됐다. 또 북한은 정전협정에 근거한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규정해버렸다.

북한이 이처럼 나가버렸는데 우리 혼자 옛날로 돌아가자고 해봐야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상호주의 차원에서 우리도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길게 부르기 싫으면 조선이라고 불러주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그나마 남북 접촉이나 대화의 바늘구명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990년대 탈냉전 초기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Butros Butros-Ghali)가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국제정세는 아직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고 했었다. '차가운 평화'라는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남북이 일단 '차가운 평화'라도 구축한 다음에 '뜨거운 평화'를 꿈꿔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각각 정식 국호로 교신하고 접촉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남북 접촉과 대화는 백년하청(百年河淸)격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의 이름에서도 '한반도'라는 용어를 계속 쓸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또 남북 평화공존도 한조 평화공존, 아니면 아예 국호 빼고 평화공존과 공동성장 정도로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미중 관계가 바뀌면 중국의 대북 지원은 또 줄어들 수 있다. 국제 정치에서 영원한 것이 어디 있나? 지금은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도, 한미관계도 그렇지 않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물론 2020년 12월 제정된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때문에 남북 간 왕래나 교류는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의 사례처럼 고속 성장을 하면 그 때는 그들도 문화적으로 남한에 별로 떨어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남한 문화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경제수준이 올라가면 대중문화도 바뀌게 돼 있다.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이게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이냐는 문제도 있는데, 북한도 빨리빨리 하는 성질이 있어서,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소강사회 건설까지 43년이 걸렸지만 북한은 10여 년이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재명 정부 때 다그치면 안 된다. 지금은 북한 경제 규모가 한국 경제 규모에 비해 6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지만 격차는 좁혀질 수 있다. 다음 정부 때까지 10여 년 정도 기다리면 달라질 수도 있다.

박인규 : 지난해 9월 김정은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을 때는 딸인 김주애(이름 추정)가 동행하면서 후계자 승인을 받으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정세현 : 시진핑이 부인인 펑리위안과 같이 평양에 오지 않았나. 이건 김주애 말고 리설주 나오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 것 같다.

북한이 정말 김주애를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게 하려면 군인들과 행사를 갖고 계속 장군들이랑 가까워지게 해야 한다. 김정은이 잘못되어 권력 공백 상태 생기면 그때 권력 장악할 수 있는 건 결국 총을 가진 사람들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오래전에 한 말이 있다. "권은 총구(銃口)에서 나온다"고.

이재호 기자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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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자식에게 '따' 당하면서도 섬에 다닌 섬에 미친 남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박섬 밀물 ⓒ 이재언

대한민국에는 약 3,400개의 섬이 있다. 그중 사람이 살아가는 유인도는 446개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섬은 관광지로 알려진 몇몇 장소를 제외하면 낯선 공간이다. 누군가는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섬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섬들을 평생 기록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전국의 유인도를 세 차례나 직접 답사하고, 남한은 물론 북한의 섬까지 조사하며 한반도 섬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 온 섬 연구자이자 탐험가, 이재언(74) 선생이다.

어린 시절 가출 소년으로 서울의 뒷골목을 떠돌았던 그는 어떻게 대한민국 섬 연구의 산증인이 되었을까. 전남 노화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와 섬에 바친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사라져 가는 섬의 기억을 기록해 온 그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섬은 그에게 연구가 아니라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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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항에는 바다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초여름 햇살이 항구를 비추고 정박한 어선들 사이로 갈매기 울음 소리가 퍼진다.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한 남자의 시선은 먼 수평선 너머를 향하고 있다. 그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는 아마도 또 다른 섬이 있을 것이다. 섬 전문가 이재언 씨. 그를 만나기 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은 섬에 미친 사람입니다."

섬을 기록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는 가진 것을 털어 배를 샀다. 그리고 직접 선장이 되어 30년 넘게 전국의 유인도를 누비며 섬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역사로 남겼다.

"다른 것은 다 버려도 섬은 버릴 수 없습니다."

재산도, 명예도, 편안한 삶도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섬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섬은 지도 위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그에게 섬은 한 사람의 인생이고 한 공동체의 역사이며 바다 위에 남겨진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토이기 때문이다.

▲죽도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에있는 아기고래 형상의 섬 ⓒ 진재중

목숨을 건 항해, 섬을 향한 외길 인생

"아내와 자식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섬을 다녔습니다. 인생을 걸었고, 목숨도 걸었습니다."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섬에 대한 집념이 함께 담겨 있었다. 주말과 휴일은 물론 명절에도 섬으로 떠나는 일이 많았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은 늘 섬이 차지했다. 집에서는 늘 "또 섬에 가느냐"는 핀잔을 들었지만 그는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섬을 다닌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거센 파도와 싸워야 했고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작은 배 안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 위험한 바닷길을 건너야 했던 적도 있었고 통신이 끊긴 무인도에서 구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때로는 식수와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며칠을 버텨야 했고 파도에 휩쓸릴 뻔한 아찔한 순간도 수없이 겪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뒤에는 파도와 싸워온 세월이 묻어났다.

▲맹골도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 ⓒ 이재언

▲거문도전남 여수시 거문도 삼산면 소재의 섬 ⓒ 이재언

대청도 조각바위와 전망대 ⓒ 이재언

"섬이 싫어 떠났지만 결국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재언 선생의 삶은 역설적이다. 섬이 싫어서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평생을 섬과 함께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목포에 나갔습니다. 전깃불이 반짝이는 도시와 기차, 자동차, 시장과 극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결국 어머니가 숨겨둔 돈을 들고 목포를 거쳐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15세 소년은 명동과 충무로 거리에서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직업소년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신문 배달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는 당시를 "인생의 밑바닥"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시절의 경험은 훗날 섬을 바라보는 시선의 밑거름이 됐다.

말도선착장 ⓒ 이제언

교회에서 시작된 섬에 대한 사명감

서울에서 생활하던 그는 교회를 다니면서 삶의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떠나온 고향 주변의 작은 섬들이 생각났습니다. 노화도 주변에는 한두 가구만 사는 작은 섬들이 많았어요. 그 섬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신학교에 진학한 그는 1989년 낙도 선교사로 고향에 파송됐다. 2톤짜리 어선을 타고 14개의 작은 섬을 돌며 선교와 복지 활동을 시작했다. 전기도, 병원도, 우체국도 없는 섬들이 많았다. 그는 그곳에서 섬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선교를 위해 갔지만 점차 섬 자체에 매료됐습니다.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바닷가를 뛰놀던 소년은 성장한 뒤 바나바선교회 소속 섬 선교사로 활동하게 된다. 선교를 위해 찾았던 섬들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섬마다 역사와 문화가 달랐고, 주민들의 삶에는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동거차도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주인공 ⓒ 이재언

조선의 바다 정책과 대항해 시대가 준 충격

그가 전국 섬 탐험을 결심한 또 다른 이유는 역사였다.

"조선은 오랫동안 바다를 경계의 공간으로 바라봤습니다."

조선시대는 왜구의 침입과 외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해상 활동을 제한하는 해금정책을 시행했고, 일부 섬은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켜 비워 두는 공도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변방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바다를 통한 교류와 해양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유럽은 대항해 시대를 맞아 바다를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 인식했습니다. 바다를 통해 세계를 연결하고 교역망을 확대하면서 경제와 과학,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결국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도 달라졌다. 우리는 오랫동안 바다를 막아야 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바다가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이자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장보고와 청해진의 역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조선의 폐쇄적인 해양 정책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콜럼버스, 마젤란 등 대항해 시대 탐험가들의 이야기는 그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

"그들이 범선을 타고 세계를 탐험했다면, 나는 동력선을 타고 대한민국의 모든 섬을 탐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재언 선생은 그 생각을 단순한 꿈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직접 배를 마련해 선장이 되었고, 수십 년 동안 파도와 바람을 벗 삼아 전국의 섬을 찾아 나섰다. 수많은 섬을 오가며 사람들의 삶과 역사, 문화와 자연을 기록한 그의 여정은 대한민국 섬 탐험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흑산도 섬주민들과 섬탐방을 준비하는 주인공 ⓒ 이재언

전국 유인도 446개를 세 번이나 답사하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모하게 보였다. 섬을 연구하기 위한 전문적인 지리학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역사를 전공한 학자도 아니었다. 항해 전문가도 아니었으며, 넉넉한 연구비나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부족한 조건을 핑계로 삼지 않았다. 직접 현장을 찾아 배우고 기록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평생을 바쳐 대한민국의 섬을 기록하는 길을 걸어왔다. 1991년 첫 탐사를 시작으로 전국의 섬들을 하나씩 찾아 나섰다. 백령도와 울릉도, 흑산도, 홍도, 추자도, 마라도까지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후 더 큰 배를 마련해 두 번째 탐사를 진행했고, 세 번째 탐사에서는 사진작가들과 함께 전국의 섬을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행정선을 타고 섬을 답사하는 이재언 작가 ⓒ 이제언

죽음의 위기를 넘긴 섬 탐험

섬 탐험은 늘 위험과 함께했다. GPS도 없던 시절, 지도 몇 장에 의지해 항해하던 그는 수차례 사고를 겪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안개였습니다. 암초를 피하기 어려웠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배가 고장 나 해양경찰의 도움을 받은 일도 여러 번이었다. 2012년에는 신안군 압해도 인근에서 암초에 충돌해 배가 침몰할 뻔했다.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 생활까지 경험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위험과 고난을 떠올리면서도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살아남았으니 지금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수많은 풍랑과 위기를 견뎌낸 세월이었지만, 그의 말에는 후회보다 감사와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대청도 고목나무 바위를 담는 주인공 ⓒ 이재언

섬의 가치는 관광이 아니다

"사람들은 섬을 휴양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미래 자산입니다."

이재언 선생은 섬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국가와 바다, 역사가 만나는 중요한 공간으로 바라본다. 그에게 섬은 영토를 지키는 전초기지이자 해양 생태계를 품은 터전이며, 수산업을 떠받치는 기반이고 우리 역사가 남아 있는 현장이다. 독도와 백령도는 국가 안보와 영토 주권의 상징으로, 소안도는 항일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기억된다. 또한 이름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많은 무인도들은 새와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핵심 서식지로서 해양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고 있다.

그는 섬을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삶의 터전이자 미래 세대에 남겨야 할 자산으로 본다.

독도 성문 ⓒ 이재언

하늘에서 기록하는 섬의 역사

"드론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을 보여줍니다. 섬의 진짜 아름다움을 기록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최근 그는 드론을 활용한 섬 기록 작업에 더욱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과거에는 배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다니며 섬의 모습을 기록했다면, 이제는 드론을 통해 섬 전체의 지형과 해안선, 마을의 변화, 무인도의 생태 환경까지 입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특히 드론 촬영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과 암반지대, 갯바위, 무인도 등을 한눈에 보여주며 섬의 숨겨진 모습을 기록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의 풍경은 단순한 관광 사진이 아니라 섬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중요한 기록물이 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수천 회의 드론 비행을 통해 전국의 유·무인도를 촬영해 왔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해안선의 모습, 개발로 인해 변화하는 마을 풍경, 사라져가는 어촌의 흔적 그리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인도의 원형까지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영상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학술 연구와 문화유산 보존, 관광 콘텐츠 개발을 위한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위험도 적지 않았다. 강한 해풍과 갑작스러운 돌풍,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변화로 인해 지금까지 여섯 대의 드론을 바다에 잃어버렸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장비가 파도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드론 한 대를 잃는 것은 아깝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섬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풍경은 변하고, 사라진 것은 다시 촬영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드론은 단순한 촬영 장비가 아니다. 섬의 현재를 미래에 전하는 기록 도구이자, 후손들에게 남겨줄 소중한 역사 기록유산이다. 오늘도 그는 드론을 띄워 바다 위를 날며, 지도에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작은 섬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섬의 풍경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서다.

드론을 띄워 섬의 지형과 해안선을 기록하고 있는 이재언 소장. 그는 드론을 활용해 전국의 섬을 촬영하며 섬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 자원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이제언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섬, 북한의 섬을 기록하다

"북한의 섬은 지금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섬입니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의 탐험은 남한에만 머물지 않았다. 최근에는 <북한의 섬> 1·2권을 출간하며 북한 전역에 분포한 1,045개의 섬을 연구하고 정리했다. 평생 섬을 찾아다니며 현장을 직접 확인해 온 그에게 북한의 섬 연구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로 뛰는 탐험이 불가능했다. 직접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었다. 그는 위성사진과 항공사진, 오래된 지도와 문헌자료를 하나하나 대조하며 섬의 위치와 역사, 지형과 환경을 추적해 나갔다. 수년간의 자료 분석 끝에 북한 섬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을 책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편에는 늘 아쉬움이 남아 있다.

"남한의 섬은 직접 걸어보고 냄새를 맡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북한의 섬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사진과 자료만으로는 섬의 진짜 모습을 모두 담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섬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다. 바람의 냄새와 파도 소리,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까지 함께 기록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북한의 섬을 연구하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점은 현장을 직접 밟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언젠가 자유롭게 북한의 섬을 찾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온다면 책 속의 섬이 아닌 실제 섬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제가 기록한 북한의 섬은 미완성입니다. 언젠가 직접 그 섬에 서서 바람을 맞고 해안선을 걸으며 진짜 북한의 섬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아직은 갈 수 없는 섬. 그는 오늘도 자료 속 북한의 섬을 들여다보며 언젠가 그 땅을 직접 밟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오면 반세기 넘게 이어온 그의 섬 기록은 비로소 한반도 전체의 이야기로 완성될 것이다.

▲무송정 섬강원 고성군 현내면 마차진리 233-4, 금강산콘도 앞 섬, 남한에서 촬영할 수 있는 마지막 섬이다. ⓒ 진재중

섬은 나의 운명입니다

"저는 섬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 말 속에는 반세기 넘게 섬을 찾아 바다를 누벼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족과 함께해야 할 시간보다 섬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파도와 싸우며 섬을 기록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과 가족들에게 남은 미안함도 있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섬은 나의 운명이고 사명입니다. 앞으로도 섬을 기록하고 연구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섬의 가치를 알리고 싶습니다."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언젠가 5톤급 탐사선을 마련해 청소년들과 함께 전국의 섬을 찾아다니며 섬의 역사와 문화, 자연생태를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다. 섬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우리 삶과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금구도 강원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에 있는 섬으로 화진포해변에서 조망이 가능하다. ⓒ 진재중

바다의 내일을 향한 끝없는 항해

항구를 떠나며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섬, 아직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가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산을 오르며 평생을 보내고, 누군가는 강을 따라 세상을 배운다. 그러나 이재언 선생은 평생 섬을 따라 살았다. 섬을 찾아 바다를 건너고, 섬을 기록하며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겨 왔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단순한 답사 기록이 아니다. 섬에 깃든 삶과 기억 그리고 우리 바다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늘도 그는 새로운 섬을 향해 눈을 돌린다. 바람이 부는 곳, 파도가 닿는 곳 그리고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으로...

섬은 그의 운명이었고, 기록은 그의 사명이었다. 그리고 그가 평생에 걸쳐 써 내려온 섬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해양문화사의 소중한 기록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섬과 관련된 서적을 펴낸 이재언 연구원 ⓒ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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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행동이 될 때, 당신들은 우리 곁에 숨 쉰다"

35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거행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6.13 23:47
  •  
  •  수정 2026.06.14 01:29
  •  
  •  댓글 1
 
13일 오후 서울시청 동편 도로에서 거행된 35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 유가족들이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스스로 빛이 되어 이 땅 위에 꿈 하나 찍어 놓은 이들이 제단을 가득 채우고 내려다보고 있다.

35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가 주최하고 전국민중행동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추모연대)가 주관한 '35회 민족민주열사· 범국민추모제'가 거행된 13일 오후 서울시청 동편도로 앞 제단.

한줄에 85분의 영정을 세워놓은 8단의 제단에는 노동하는 민중이 주인되고 해방되는 민주주의를, 자주적이며 통일된 세상을 꿈꾸던 680여 위의 영정이 모셔졌고,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조성우(1.18), 김용섭(3.16), 권오헌(4.25), 김태식(5.16), 이천재(6.9), 이장욱(7.21), 임승헌(8.6), 박순자(11.4), 노수희(11.6), 이형진(11.23), 황현승(12.15) 선생을 비롯한 29위의 영령이 새로 안치됐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 15일 이후 4.19혁명을 지나 5.18민중항쟁, 87년 6월항쟁, 그리고 2016~2017년 국장농단세력을 몰아낸 촛불혁명과 2024~2025년 내란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요구하는 빛의혁명으로 계승되는 80여 년의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이들이 하나뿐인 목숨을 이 거룩한 제단에 아낌없이 바쳤다.

그뿐이랴. 외세를 배격하고 부패한 봉건왕조를 개혁하여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일어섰던 1894년 동학농민항쟁으로부터 3.1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역사속에 수 많은 이들이 씨앗을 뿌리듯 온몸을 던져 역사를 전진시켜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낮 1시 송현공원 앞에 모인 참가자들은 가신 이의 영정을 가슴에 들고 광화문사거리와 세종로-서린호-개풍로를 거쳐 범국민추모제가 열리는 시청 동편 도로까지 행진하는 동안 못다 이룬 꿈에 대해 그 이들과 대화하며 왔으리라. 

오후 3시 정각에 열린 범국민추모제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미리 제단에 안치한 영정 앞에서 영령들을 맞이하기 위한 예술의례로 시작했다.

진보대학생넷 권율,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허명진 학생이 힘차게 결의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열사정신계승청년학생실천단'(열정단)을 대표해 진보대학생넷 권율,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허명진 학생이 힘차게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민족민주열사들은 예속과 분단에 맞서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항한 분들"이라며, "우리는 열사들의 정신이 미래세대에 계승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민주유공자법 제정으로 민주열사들은 국가적 예우의 대상이 되고, 열사 정신은 국민적 가치로 거듭나게"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나아가 열사정신 계승을 위해 각 영역에 민주열사 정신을 기억하는 사업을 전개하며, 이들의 사회적 명예회복이 더욱 넓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고난의 시기에 해방을 위해 민중과 함께했던 민족민주 열사들의 끈질긴 투쟁을 다시금 기억하며 제국주의와 수구 보수세력들의 탄압, 민주주의 후퇴에 맞서 다시 투쟁할 것"이라며, "지금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한 민주열사·희생자들의 투쟁을, 또 열사의 죽음과 희생뒤에 이어진 유가족들의 투쟁과 열사를 기억하는 동지들의 끝없는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모든 침략전쟁 반대한다! 세계평화 실현하자! △열사정신 계승하여 자주적 주권 수호하자! △12.3내란·외환 청산하고, 사회대개혁 실현하자!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 국가폭력에 의한 열사들의 의문사 진실규명하라! △비정규직 철폐하고 평등세상 실현하자! △노점단속 특별사법경찰 해체하고 노점산ㅇ 생계보호 특별법 제정하라! △강제철거 중단하고 선대책 후철거 순환식 개발 시행하라!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실현하자! △농민주권시대 열어가자!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하고 역사정의 실현하자! △성차별·혐오정치 끝장내고 평등세상 건설하자! △미국 패권위한 한미동맹 해체하고 전쟁 화근 주한미군 철거하자! △내란 토대 반민주 반통일 반인권 악법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대회사를 통해 "오늘 우리가 열사들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는 반헌법 수구세력과 그 배후 미국에 맞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고 사회변혁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12.3내란에 가담한 공안기관 해체, 반민주·반인권·반평화 국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비롯한 역사정의 수립 △비정규직없는 평등한 노동세상, 차별과 혐오가 사라진 인권광장, 농민과 노점상, 장애인 등 사회적 약사가 존중받는 평등사회 실현 △관세폭탄과 패권유지를 위한 한미동맹 반대, 군사적 대결과 적대를 강제하는 주한미군 몰아내는 투쟁, 분단 극복을 위한 국가보안 폐지 투쟁 등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오영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상임대표는 영상으로 대회사를 보내왔다.

열사들의 뜻을 계승하는 현재의 과제에 대해 양경수 위원장은 극심해지는 불평등, 양극화 문제 해소와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평화를, 윤일권 의장은 식량주권 수호와 국민의 안전한 먹을거리 수호, 농민이 정당하게 대우받으며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을 실현을 제시했다.

정영이 회장은 평등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누구나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욱 굳건히 연대하고 행동하겠다고, 오영철 대표는 21년전인 2005년 3월 16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였던 이현준 열사를 소환해 장애인의 '완전한 자립생활'과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는 장애인 기본권임을 강조했다. 

 '리벰버 1996' 송승연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리벰버 1996' 송승연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1996년 김영삼 정권의 대선자금 공개와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벌이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희생된 노수석 열사를 비롯한 8명의 열사를 기리는 '리벰버 1996' 송승연 공동대표는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반값등록금' 의제와 '무상교육' 담론은 민주주의를 한반짝 더 진일보시키기 위해 청춘의 삶을 바쳐야 했던 당신들의 눈물과 피땀이 서린 결실"이라며, '장현구, 노수석, 진철원, 권희정, 황혜인, 오영권, 박동학, 김하영' 열사의 이름을 불러냈다.

송 대표는 "우리들이 여전히 부끄러운 것은 아직까지 당신들의 죽음이 민주화 기여도에 저울질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다는 것"이라며, "민주유공자법은 단순한 법조문 한 줄이 아니라 당신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우리의 약속이자, 제대로 기억하고 예우하겠다는 살아남은 자들의 엄중한 책임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민주유공자법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억이 행동이 될 때, 비로소 당신들의 뜻이 우리 곁에 살아 숨 쉴 것임을 믿는다"며, "우리의 오늘과 내일속에 당신들의 이름을 영원히 새기겠다"고 말했다.

 김동국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동국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동국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지난 4월 20일 경남 진주 BGF로지스 진주물류센터 앞 화물연대 집회에서 물류센터를 나오던 화물차를 막아서다 숨진 고 서광석 열사를 추모하며 "서광석이 지키고자 했던 안전운임제를 지켜내고,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쟁취하며, 더 이상 노동자가 권리를 요구하다 목숨을 잃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6년째 국회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장기 농성을 하고 있는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지난 3월 30일 법사위 통과에 이어 제22대 국회에서 이 법이 꼭 통과될 수 있도록 하자며, 유가족들을 단상에 올라오도록 해 추모제 참가자들에게 인사했다.

민중의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중의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영령맞이 예술의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영령맞이 예술의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송현공원에서 범국민추모제 대회장인 서울시청 동편으로 이동하는 참가자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송현공원에서 범국민추모제 대회장인 서울시청 동편으로 이동하는 참가자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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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스페이스X 상장으로 '조만장자' 눈앞…극우 영향력 더 키울까

2022년 트위터 인수해 혐오표현 감시 반대 '돈으로 관철' 전력…최근 벨파스트 반이민 폭동에도 기름 부어

김효진 기자 | 기사입력 2026.06.12. 20:21:14

12일(이하 현지시간) 상장을 앞둔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엑스(X)가 기업공개(IPO) 공모가를 주당 135달러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일론 머스크가 세계 첫 조만장자 등극을 눈앞에 뒀다. 재계 입지를 바탕으로 세계 극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머스크의 힘이 불어난 재산을 바탕으로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스페이스X는 성명을 내 기업공개를 통한 자사 주식 5억5556만주에 대한 매각 가격을 주당 135달러로 결정해 12일부터 나스닥 시장과 나스닥 텍사스에서 종목코드 'SPCX' 종목 코드를 사용해 거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조달 금액이 750억달러(약 113조7000억원)에 달하고 기업가치는 1조7700억달러(2683조원)으로 평가 받게 된다.

이는 종전 최대 조달 기록인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의 294억달러(44조5800억원)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아람코의 상장 당시 기업 가치는 1조7000억달러(2579조원)로 평가됐다.

공모가 기준 머스크가 보유한 스페이스X 지분 가치는 8660억달러(1315조6300억원) 가량으로 평가된다.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이 이사회 의장인 머스크는 회사 지분 거의 절반을 갖고 있다. 미 CNN 방송을 보면 머스크는 전기차업체 테슬라 CEO로서 이미 2730억달러(414조원) 가량 주식 및 스톡옵션을 보유 중이라, 스페이스X 상장과 함께 보유 자산 평가 가치가 1조달러(1518조원)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미 경제지 <포브스>의 실시간 억만장자 명단을 보면 12일 오전 1시15분 기준 세계 1위 부자 머스크 재산은 9826억달러(1491조원)로 추산됐다. 이는 뒤따르는 2~5위 부자들인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2927억달러),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2700억달러),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2515억달러),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2301억달러)의 자산을 다 합친 수준이다.

'재무 지표 아닌 머스크 공상과학 상상력에 투자'…고평가 경고도

상장 뒤 스페이스X 주가가 오를 경우 이 회사 보유 지분만으로도 머스크 자산 평가 가치가 1조달러를 넘길 전망인 가운데, 공모가가 이미 '일론 프리미엄'으로 고평가 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투자자들이 실적과 재무 상황보다 머스크의 '공상과학 소설 같은 상상력'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기업공개 전문 분석업체 르네상스캐피탈의 선임전략가 맷 케네디는 "테슬라와 마찬가지로 스페이스X 또한 일론 머스크에 대한 투자"라며 "시가총액이 1조5000억~2조달러에 달한다면 기존의 모든 기업 가치 평가 방식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이는 '일론 머스크 프리미엄'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적절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리서치사 모닝스타는 9일 스페이스X의 주당 가치를 공모가의 절반도 안 되는 63달러로 평가하기도 했다. 업체는 이러한 평가가 "회의적 시각"이 아닌 "수학적 근거"에 기반했다고 설명했다.

모닝스타 주식분석가 니콜라스 오언스는 스페이스X가 최신 로켓 스타십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우주 데이터 센터 상용화에 매우 성공적일 가능성을 7%로 봤다. 스페이스X는 올해 1분기 43억달러(6조5300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마이클 필드 모닝스타 수석주식전략가는 스페이스X 기업공개 관련해 "우린 이 사업이 특히 스타링크 부문에서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다고 믿지만 가치 평가의 상당 부분이 특히 인공지능(AI) 부문을 포함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미지의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극도로 투기적인 평가가 이뤄졌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옥스팜 "머스크 재산, 전세계 하위 46% 재산 합친 것보다 많아"

상식을 뛰어 넘는 수준의 자산가 탄생 전망에 경계의 목소리도 크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머스크의 재산은 전세계 가장 가난한 인구 46%, 38억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아질 것"이라며 "머스크가 하루에 100만달러씩 써도 1조달러를 다 쓰는 데 2740년이 걸린다"고 짚었다.

단체는 스페이스X가 정부 사업을 통해 성장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극단적 부의 집중은 초부유층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경제 규칙을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 온 수십 년간의 억만장자 친화 정치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당선' 대선보다 세 배 불어난 자산…영향력 원천 될 것"

재계 입지를 기반으로 미국 정치를 넘어 전세계 극우 세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머스크가 불어난 재산으로 이를 강화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소셜미디어(SNS)의 혐오 표현 감시를 비난해 온 머스크는 그의 재력을 바탕으로 2022년 대표적 소셜미디어 기업 트위터를 인수해 절반 이상의 인력을 해고했다. 이 과정에서 혐오 표현 감시 인력이 대폭 줄었다는 보도가 나왔고 관련 자문 위원회도 해산됐다.

머스크는 이후 트위터 사명을 엑스(X)로 바꾸고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며 이번 주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일어난 반이민 폭동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그는 영국 극우 활동가 게시글을 공유하며 "반복적으로 큰 소리로 시위"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지난 8일 벨파스트에서 수단 출신 30살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40대 남성에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하자 극우 활동가들은 사건 영상 등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뜨려 선동에 나섰다. 이후 벨파스트에서 반이민 폭동이 일어 차량과 건물이 불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많은 관계자들이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콘텐츠 감시가 거의 사라지며 활동가들이 선동적 콘텐츠를 게시하는 게 훨씬 쉬워졌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가 영향력을 행사한 2024년 미 대선 당시 그의 자산은 3500억달러(531조원) 수준이었는데 이제 세 배로 불어나게 됐다며 "이러한 부는 향후 수년 간 그가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엑스(X) 상징과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모형. ⓒ로이터=연합뉴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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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메운 “부정선거 재선거”…성조기 흔들며 ‘윤어게인’ 구호도

고경태기자

  • 수정 2026-06-13 01:04

[현장] 12일 밤 잠실 개표소 시위

주말 앞두고 시위대에 젊은 층 유입 늘어

“윤석열이 대통령 해야” “사전투표 폐지”

12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 모인 시위 참가자들이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외치고 있다. 고경태 기자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참가자들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같은 구호를 끊임없이 외쳤다. ‘부정선거’로 시작해 ‘수개표’로 끝나는 하나의 구호가 완료되는 시간을 계산해보니 7초 안팎. 1분에 8번, 1시간이면 500번 가깝게 구호를 반복하는 셈이었다. 30분이나 1시간에 한 번씩 제창하는 애국가가 그나마 분위기를 전환해 줄 뿐, 어떠한 공연도, 연설도, 시위 안내도 없었다. 지겨워할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12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모인 시위 참가자들에게선 그런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는 지난 5일부터 개표가 마무리된 6·3 지방선거 투표함의 반출을 막기 위해 경기장을 봉쇄하는 시위가 8일째 이어지고 있다.

초반 양상은 지금과 달랐다. 지난 주말(6∼7일)에는 잠실 투표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참정권 침해’의 문제로 접근하려는 청년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특정 정치세력의 개입을 거부하며 오직 ‘재선거’만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8일을 기점으로 ‘부정선거’라는 단어가 구호 맨 앞에 등장하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여야 합의에 따라 2014년 제6회 지방선거부터 전면 시행된 사전투표를 폐지하고 ‘당일투표’만 진행하자는 주장도 이때부터 구호에 스며들었다.

이와 함께 성조기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12일 현장에서는 대형 성조기 여러 개가 시위 대열 앞뒤에서 휘날렸고, 한 손에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든 참가자도 적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성조기를 왜 들었을까. 빨간 ‘마가(MAGA,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모자를 쓴 40대 여성은 한글과 영어로 된 ‘한미연합 수사 요청’ 손팻말을 들고 시위 대열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백날 부정선거만 외치면 뭐해? 이제 이걸 넘어서야 해요. 이재명 부정선거에 대해 한미공조 수사 요구로 가야 해요. 트럼프의 입에서 부정선거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성조기 들고 트럼프를 움직여야 한단 말이야.”

시위 대열 끝에서는 선글라스를 쓴 70대 남성이 주변 사람들을 불러모아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난하고 있었다. “조희대가 탄핵당할까 봐 이재명한테 설설 기고 있잖아. 빨리 이재명 끌어내고 박근혜 대통령부터 잔여임기 채운 뒤, 그다음엔 윤석열 대통령이 하게 해야 해. 청년들 저거 평화시위 갖고 안돼. 혁명으로 가야지.” 그는 허리춤에 찬 작은 가방에서 장난감 권총을 꺼내더니, 총구에 태극기를 꽂고 사격 시늉을 했다. 그의 말을 듣던 주변 이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12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 모인 시위 참가자들이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외치고 있다. 고경태 기자

시위 본 대열에선 구호만 외쳤지만, 대열 구석구석에서는 이처럼 열변을 쏟아내는 이들이 있었다. 핸드볼경기장 진입로에 붙은 수백장의 대자보와 스티커에는 “이재명 퇴진”, “윤석열이 옳았다” 등 정치적 구호가 주를 이뤘다.

날이 저물면서 시위대 규모는 더욱 불어났다. 핸드볼경기장 앞으로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면서 광장이 빽빽해졌다. 한 70대 노인은 “낮엔 어르신이 밤엔 젊은이가 지킨다. 재선거 불사하라”고 적은 도화지를 들고 있었는데, 실제로 밤이 되자 젊은 층의 유입이 두드러졌다. 가족 단위로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온 이들부터 연인, 부부, 친구끼리 태극기를 흔들며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치다 서로 인증사진을 찍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반면 맨 뒤에서 혼자 조용히 태극기만 흔드는 이도 있었다. 한 20대 남성은 “오늘 처음 왔는데 분위기가 어색하다”며 “현장이 궁금해서 나와봤는데, 주말에 또 올지는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들의 ‘부정선거 재선거’ 주장이 대중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중앙선관위의 관리 부실을 지적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와 별개로 ‘부정선거’ 주장에 거리를 두는 이들은 시위대 내부에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다만, 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따끔한 비판도 있었다. 이날 저녁, 한 20대 여성은 이런 글을 도화지에 적어 흔들고 있었다. “북한보다 한심하다. 대한민국 선관위야. 한 탈북자 왈.”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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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용 지부장 끝내 병원행…정부 방관에 쓰러진 홈플러스 단식자 6명

  • 기자명 김준 기자
  •  
  •  승인 2026.06.12 17:26
  •  
  •  댓글 0
 
   
 

이송되는 순간에도 “단식 이어갈 것”
“두통과 위경련으로 움직이지 못 해”
“메리츠, MBK가 보증한 1천억 원만”
“홈플러스, 그걸로 신뢰 회복 어려워”

누적 단식 99일, 4차 단식 30일을 맞은 안수용 홈플러스 지부장이 쓰러져 병원에 이송되고 있다. ⓒ 마트노조
누적 단식 99일, 4차 단식 30일을 맞은 안수용 홈플러스 지부장이 쓰러져 병원에 이송되고 있다. ⓒ 마트노조

안수용 홈플러스 지부장이 누적 단식 99일 만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안 지부장은 극심한 두통과 위경련, 복통을 호소하면서도 진통제를 먹으면서 주변에 이를 숨겨온 것으로 전해진다. 4차 단식이 시작된 이후 안 지부장까지 총 여섯 명이 쓰러졌지만, 정부의 약속도, 메리츠의 금융지원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안수용 지부장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누적 단식 99일, 4차 단식 30일 차다. 노조 측은 12일, “최근 안 지부장의 맥박이 40까지 떨어졌다가, 94까지 치솟는 등 건강 수치가 극도로 요동쳤고, 두통과 위경련, 복통으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결국 119를 통해 긴급 후송 조치됐다”고 밝혔다.

안수용 지부장은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정부여당이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져, 중단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누적 단식 99일, 4차 단식 30일을 맞은 안수용 홈플러스 지부장이 쓰러져 병원에 이송되고 있다. ⓒ 마트노조
누적 단식 99일, 4차 단식 30일을 맞은 안수용 홈플러스 지부장이 쓰러져 병원에 이송되고 있다. ⓒ 마트노조

노동자들이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가고 있다. 지난 20일 차에는 조합원 2명이, 26일에는 조합원 3명이 병원에 이송됐다. 이들은 모두 두통과 속 쓰림 통증 등을 앓았고, 시야가 좁아지거나 안면 근육이 떨리는 현상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농성장에서는 아직 김현원 강서지회장과 정연성 반여지회장이 단식 30일 차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손상희 수석부지부장과 최철한 사무국장 역시 단식 9일 차를 맞이하며 버티고 있다.

 

마트노조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태는 정부의 철저한 방관이 낳은 연쇄적인 ‘반인도적 사태’”라고 규정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정부 역시 이 비극의 주범”이라고 분노했다. 또한, “우리는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이행하라 촉구했을 뿐”이라며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홈플러스 정상화 약속을 즉각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정치권과 금융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 경청통합수석실도 아직 답이 없으며, 메리츠금융도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홈플러스 측은 12일, “메리츠금융이 검토 중인 1,000억 대출로는 현재 진행 중인 점포 폐점 절차를 마무리할 수 없으며 상품 공급 재개도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앞선 11일 “MBK파트너스의 연대보증 금액인 1,000억 원 범위에서 대출이 가능하다”고 전한 메리츠금융 측에 난색을 보인 거다.

홈플러스 측은 “2천억 원의 긴급 운영자금이 확보될 경우 점포 효율화와 상품 공급 정상화, 더 나아가 협력업체 신뢰 회복이 가능해져 회생 계획 이행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며 “결단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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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의 구속 이후…'디지털 무법자들' 뒷배는 누구인가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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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6.06.12 19:25

  • 수정 2026.06.12 19:30

  • 댓글 0

김세의 구속으로 돌아보는 사이버렉카의 해악

여성 혐오와 관음증적 프레임의 잔혹한 구조

'보수우파 대변자' 자처해 극우 유튜버 정체성

5·18 왜곡하고 조국·이재명 등 정치인도 표적

"민주당 성비위 취재 막으려 구속" 음모론까지

'정의 구현'을 내세운 지독한 디지털 마녀사냥

황색언론의 공모와 보수권력의 끈끈한 카르텔

사법부는 무능·방조…구조적 토대 뜯어고쳐야

얼마 전, 대표적인 '사이버렉카'인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 김세의 대표의 구속은 너무나 뒤늦었지만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김세의는 이번에 고 김새론 배우가 미성년자 시절부터 동료 배우인 김수현 씨와 교제하며 성관계를 맺었다는 등의 악의적인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카카오톡 대화 화면을 조작하고, 음성 파일까지 짜깁기하여 가공해 낸 범죄 수법이 밝혀졌다. 이는 디지털 기술을 악용한 악질적 기만행위였다. 사실 가세연과 김세의라는 존재가 우리 사회에 끼친 해악은 이번 사건에만 그치지 않으며,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구조적이고 뿌리 깊은 문제였다.

대중적 이슈가 된 사건을 자극적으로 다루거나, 검증되지 않은 폭로를 통해 막대한 조회 수 수익 및 후원금을 벌어들이는 유튜버들을 이른바 ‘사이버렉카’라고 부른다. 뻑가, 구제역, 카라큘라 등의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가세연은 그 수많은 디지털 포식자들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파괴적인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건모, 이선균, 쯔양, 한예슬, 김새론… 이들의 무차별적인 사생활 침해와 마녀사냥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린 피해자들은 당장 기억 속에 떠오르는 사람만 해도 이렇게 많다. 슬프게도 이들 중 일부는 저들의 잔인한 돌팔매질과 사회적 조리돌림 속에서 이미 세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고(故) 김새론의 사망 원인이 배우 김수현의 채무 압박 때문이라는 등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 김세의 가로세로연구소 대표가 26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6.5.26. 연합뉴스

가세연이 대중을 선동하는 방식은 집요하면서도 잔혹했다. 이들은 특히 여성 연예인들을 표적으로 삼아 혐오와 모욕, 비방을 일삼으며 가학적인 괴롭히기를 즐겼다. 대상이 된 여성의 과거사나 사생활을 현미경 들이대듯 파헤치고, 이를 선정적으로 소비하도록 유도하며 관음증적 대중 심리를 자극했다.

더구나 가세연은 단순한 연예계 가십을 다루는 사이버렉카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들은 스스로를 '보수 우파의 대변자'로 자처하는 극우 유튜버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기에, 정치인과 그 자녀들, 나아가 역사적 비극의 희생자들까지 서슴지 않고 자신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괴롭혀 왔다.

가세연은 조국 몰이에 앞장서며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사모펀드를 통해 중국 공산당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을 유포했고, 그의 자녀인 조민 씨에 대해서도 '빨간색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비방을 퍼부었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해서도 '어린 시절 소년원에 다녀왔다'라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김혜경 여사의 낙상사고가 발생했을 당시에는 이를 '부부싸움으로 인한 폭행 결과'라는 식의 악질적인 프레임으로 왜곡해 헛소문을 퍼뜨렸다.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서도 '북한군 개입설'과 '간첩 배후설'을 지속적으로 유포하며, 국가적 비극의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가장 기가 막히는 지점은, 이들이 자신들의 추악한 코인 장사와 인간 사냥을 툭하면 '정의 구현'이나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포장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들이 생산해 내는 파편화된 정보, 조작된 가짜뉴스, 맥락을 거세한 프레임 속에서 타깃이 된 인물은 순식간에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인간쓰레기, 추악한 위선자, 혹은 악녀로 둔갑해 버렸다.

 

김세의 가로세로연구소 대표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이렇게 디지털 단두대 위에 제물이 올려지면,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분위기에 휩쓸린 무수한 대중이 몰려들고, 그들은 수많은 댓글과 악플을 달며 디지털 조리돌림의 집단 광기에 동참하게 된다.

표적이 된 사람은 만신창이가 되어 사회적 낭떠러지로 밀려나게 된다. 일부 피해자들은 결국 그 절벽 끝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이러한 약탈적 방식은 이들이 설령 '피해자를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울 때조차 본질적으로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먹방 유튜버 쯔양과 관련한 사안에서 가세연 김세의가 보여준 행태가 이를 증명한다. 당시 김세의는 ‘구제역을 비롯한 협박 범죄자들을 고발하고 처단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쯔양에게 그 어떤 양해나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피해자가 과거의 아픔 속에서 필사적으로 숨겨온 비밀과 사생활을 대중 앞에 무차별적으로 폭로해 버렸다. 쯔양이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자 김세의는 거꾸로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말고 까불지 말라”며 안하무인격으로 협박을 가했다.

즉, 이들에게는 피해자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단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해자에 대한 응징과 신상공개가 피해자를 위한 길이자 '정의 구현'이라고 말하는 사이버레커들의 주장에는 현실성이 없다. 이들의 목적은 피해자의 회복이 아니다."(유호정, '사이버레커와 여성폭력 사건들 – 정의 구현에 활용된 성폭력')

고 김새론 배우의 비극적인 사례 역시 이와 비슷하다. 김새론의 음주운전은 잘못이었지만, 가세연을 비롯한 사이버렉카들과 황색언론들은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그녀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부정하며 끝없는 비난과 극단적인 혐오를 부추겼다. 그 잔인한 돌팔매질 끝에 김새론 배우가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곧바로 또 다른 표적을 찾아 눈에 불을 켜고 나섰다. 저들이 새로 조준한 타깃은 '김새론이 미성년자일 때부터 사귀었으며, 나중에는 그녀에게 돈을 갚으라고 강요하여 죽음으로 몰고 간' 것으로 지목된 동료 배우 김수현 씨였다. 가세연은 또다시 '김새론을 위하여'라는 명분을 앞세워, 밑도 끝도 없는 의혹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조롱하는 가로세로연구소 김세의(오른쪽) 씨와 강용석 변호사(가운데), 김용호 전 기자(왼쪽). 2026.5.26. YTN 보도 갈무리

이 과정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김새론의 과거 사생활과 신상 정보들은 또다시 무덤에서 파헤쳐져 대중 소비용으로 선정적으로 전시됐다. 고인은 죽어서도 온전히 눈을 감지 못하고, 그 시체마저 저들의 추악한 유튜브 코인 장사에 끌려다니며 철저하게 도구화된 셈이다. 이번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둔 상황에서도 김세의가 보인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내가 베트남과 필리핀 현지까지 직접 날아가 민주당 정치인들의 성비위 의혹을 취재하고 있었는데, 정권과 수사기관이 그것을 막기 위해 나를 표적 구속하려 한다'는 황당한 음모론을 펼쳤다. 자신이 위선적인 권력자들의 비리를 캐며 '정의를 구현'하다가 부당한 정치적 탄압을 받는 순교자인 양 포장하는 상투적인 수법이었다.

그런데 김세의 구속 앞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우리는 이 야만적인 디지털 폭력 산업이 유지될 수 있었던 배후와 토대를 직시해야 한다. 이 현상 안에는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세 가지 핵심적인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첫째, 사이버렉카와 기성 족벌·황색언론의 추잡한 공모 관계다.

이번에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류 언론들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온 유튜버 김세의가 구속됐다'며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고 김새론 배우가 '관심 종자'로 낙인찍혀 사회적 매장을 당할 때, 고 이선균 배우가 '좋은 인상 뒤로 마약이나 일삼던 타락한 연예인'으로 뭇매를 맞을 때 이들 족벌언론과 황색언론들은 팔짱만 끼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사이버렉카들이 배설해 놓은 자극적인 루머를 '네티즌 의혹 제기' 등으로 포장해 기사화하며 먹잇감을 던져주었고, 대중이 더 잔인하게 물어뜯을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었다. 사이버렉카의 목소리를 제도권 언론이라는 더 거대하고 신뢰도 높은 스피커로 전파하며 그 파괴력을 증폭시킨 주범이 바로 그들이었다.

사실 사이버렉카의 행태는 기성 황색언론들이 수십 년간 클릭 수 장사를 위해 보여온 악질적인 보도 행태를 벤치마킹하여 가장 극단적이고 야수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것일 뿐이다. 사이버렉카들이 터뜨리는 선정적 ‘이슈’들을 가장 부지런히 퍼나르던 대표적 족벌언론 조선일보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 씨를 '건폭(건설현장 폭력배)'으로 몰아 마녀사냥하며 윤석열 정권과 함께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는 '건설노조가 동료의 분신을 방조하고 기획했다'는 반인륜적인 가짜뉴스를 조작해 고인을 두 번 죽였다. 그들은 여전히 양회동 열사와 그 유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사이버렉카의 심각성은 지난 이선균 비극 당시에 문화예술인들의 기자회견에서도 제기됐다/ '오마이TV' 동영상 갈무리.

둘째, 사이버렉카 및 극우 유튜버들과 보수 우파 권력 집단 간의 끈끈한 정치적 카르텔이다. 이러한 공생 관계는 특히 윤석열 정권 시기에 극에 달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부터 대표적인 극우 유튜버(사이버렉카)들이 빠짐없이 대거 초청받았다.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이 이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은 정권 내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가세연의 김세의는 이러한 권력의 뒷배를 믿고 2023년과 2024년에 연거푸 집권 여당이었던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로 도전했다. 당시 국민의힘 박성중 최고위원 후보자를 비롯하여, 대표적인 친윤석열계 핵심 실세였던 윤상현 의원 등이 김세의의 최고위원 출마 선언식에 참석하거나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셋째, 경찰과 검찰, 그리고 사법부라는 국가 제도권의 철저한 방조와 무능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들 디지털 무법자들이 타인의 피눈물과 고통 위에서 거대한 코인 장사를 하며 폭리를 취하는 동안 이를 방치해 왔다. 사이버렉카와 극우 유튜버들의 행태가 날이 갈수록 추악해지고 야수적인 수준으로 진화해 갔음에도, 단속이나 수사 움직임은 찾기 어려웠다.

김세의와 구제역 같은 사이버렉카들이 막장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스스로 '범죄의 물증'과 녹취록들을 자해 폭로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겨우 마지못해 수사에 착수하는 시늉을 냈을 뿐이다. 법원을 비롯한 사법부의 태도 역시 소극적이기만 했다. 예컨대 가세연이 조국의 자녀 조민 씨를 타깃 삼아 지속적으로 괴롭혔을 때, 법원은 '조민이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는 가세연의 주장은 허위 사실이지만 무죄'라고 판결했다.

'조민은 공인의 자녀이고, 이 문제는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는 논리였는데, 사이버렉카들에게 '공익'이라는 면죄부의 날개를 달아준 판결이었다. 물론 간혹 벌금형 등의 처벌도 있었지만 저들이 올리는 수익이 벌금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상황에서 아무런 의미나 효과가 없었다. 사법 제도의 무능 속에서 사이버렉카 산업은 갈수록 비대해졌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커지는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악의적 허위조작정보 유포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추진하여 국회 본회의 통과 및 공포를 완료했다. 하지만, '진보적' 지식인과 언론 단체들마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말하면서 그것을 반대하며 막아서기 일쑤였고, 뒤늦게 가까스로 통과된 상황이다.

단지 상징적인 사이버렉카가 한 명이 구속되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디지털 병폐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사이버렉카들이 이토록 야만적인 방식으로 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떼돈을 벌면서도 오랫동안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법과 제도를 비웃듯이 피해갈 수 있었던 구조적 배경을 낱낱이 밝혀내고, 그 토대를 뜯어고치는 일이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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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공동체를 파괴할 자유가 아니다

이병권 인문연구가

lbkwo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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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6.06.12 07:10

  • 수정 2026.06.1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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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에 대해 묻다 ②]

'자유'는 보편 절대적인 권리라는 오해와 무지

극우의 혐오, 시민을 동등한 주권자로 인정 안해

민주공화정은 공동체 전체의 자유를 지향해야

민주주의 파괴 세력에까지 무제한 관용은 안돼

 

민주주의는 대등한 시민들이 형성하는 공론장의 바탕 위에서 작동한다. 극우의 혐오는 다른 시민들을 종등한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극우세력은 혐오와 조롱, 음모론과 역사왜곡조차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 합니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곧바로 이렇게 되묻습니다. “표현의 자유도 없느냐.”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는 과연 처음부터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권리였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자유를 마치 애초부터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권리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들여다보면 자유는 언제나 제한적이었습니다. 자유는 공중에 떠 있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권력과 재산, 신분과 정치적 지위 위에서 규정돼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대에서 가장 큰 자유를 누린 존재들은 결국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은 흔히 민주주의의 기원처럼 이야기됩니다. 특히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429) 시기의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황금기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러나 당시 아테네 전체 인구는 약 25만~30만 명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실제 정치 참여권, 즉 정치적 자유권을 가진 성인 남성 시민은 약 3만~4만 명 수준에 불과했던 것으로 평가됩니다(Mogens Herman Hansen, 『The Athenian Democracy in the Age of Demosthenes』, 1991). 여성과 노예, 외국인 거류민(metics)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실제 민주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인구는 전체의 10~15% 수준에 불과했던 셈입니다. 당시 민주주의는 이미 존재한다고 이야기됐습니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불리는 체제조차 여성과 노예, 외국인을 민주주의 바깥에 남겨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세 유럽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유는 귀족과 성직자, 도시 특권계층에게 제한적으로 허용됐습니다. 농노와 평민 다수는 영주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고, 자유로운 이동조차 제한됐습니다. 당시 자유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특정 신분에게 부여된 특권에 가까웠습니다.

1215년 영국의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역시 흔히 자유와 권리의 상징처럼 이야기됩니다. 실제로 이것은 이후 입헌주의와 근대 자유주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준 문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권을 제한하고 귀족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습니다(Encyclopaedia Britannica, “Magna Carta”). 농민과 빈민, 여성의 자유를 위한 문서는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자유가 확대된 것일까요.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피렌체 공화정 또한 비슷했습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는 『로마사 논고(Discourses on Livy, 1531)』 등에서 피렌체와 이탈리아가 외세로부터 독립한 공화정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군주 개인의 권력보다 공화정 체제가 더 안정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공화정 역시 오늘날의 보통선거를 기반으로한 민주주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15세기 피렌체 인구는 약 6만~9만 명 수준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길드(guild)에 소속된 남성 시민 중심의 극소수였습니다(John M. Najemy, 『A History of Florence 1200–1575』, 2006). 특히 메디치(Medici) 가문이 피렌체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는 금융과 상업자본을 기반으로 한 올리가르키(oligarchy·소수 거대재산 소유 지배그룹) 성격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공화정 역시 왕과 귀족 중심 질서를 제한하려는 시도였지만, 오늘날처럼 일반 시민 전체의 평등한 정치참여를 전제한 체제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역사 속 자유는 대부분 모두의 자유가 아니라 ‘누군가의 자유’였습니다. 왕은 왕의 자유를 말했고, 귀족은 귀족의 자유를 말했습니다. 상인은 시장의 자유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 바깥에 놓인 사람들은 여전히 배제돼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유의 역사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자유의 확대 과정에서 누가 배제됐고, 누가 침묵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유 개념에 대한 가장 오래된 왜곡 가운데 하나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유를 보편적 가치처럼 포장하면서 실제 역사 속 차별과 배제의 구조를 지워버리는 순간, 자유는 현실의 권력관계를 감추는 언어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 근대 자유주의는 누구의 자유를 확장했는가

근대 자유주의는 분명 역사적으로 중요한 진전이었습니다. 절대왕정과 신분제를 제한하고, 개인의 권리와 재산권, 계약의 자유를 보호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 1689)』에서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생명·자유·재산(property)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사고였습니다. 왕의 절대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한 한계는 존재했습니다.

근대 자유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말했지만, 실제로는 재산을 가진 시민의 자유에 더 가까웠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토지와 재산, 교양을 가진 사람만이 정치적 자격과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강했습니다. 여성과 빈민, 노예와 식민지 민중은 완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사회계약론 역시 현실에서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계약이라기보다 일정한 재산과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원리라고 주장되었습니다. 여기서 자유란 곧 정치적 권리이고, 한 사회집단에서 시민(사람)의 기준을 판별하는 수단으로 인식된 것입니다.

 

자유는 처음부터 모든 인간에게 허용된 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민들이 오랜 시간 권력과 특권에 맞서 확장해온 역사적 산물이었다.

프랑스혁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랑스혁명은 절대왕정과 신분제를 무너뜨리고 시민의 자유 확대를 추구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혁명 직후 등장한 1791년 헌법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세금을 납부하는 ‘능동 시민(active citizen)’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습니다(Encyclopaedia Britannica, “French Revolution”). 혁명에 참여했던 여성과 노동자 다수는 정치 참여에서 배제됐습니다. “자유·평등·박애”를 외쳤던 혁명조차 현실에서는 재산과 계급의 장벽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실제 프랑스에서 오늘날과 같은 보통선거 기반 시민권 체계가 점차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혁명 이후 오랜 혼란과 왕정복고, 제국체제를 거친 뒤인 제3공화정(1870~1940) 시기에야 이루어졌습니다(Eric Hobsbawm, 『The Age of Revolution: Europe 1789–1848』, 1962).

미국 역시 비슷했습니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미국 사회는 오랫동안 노예제를 유지했고, 여성과 흑인, 원주민은 정치적 권리에서 철저히 배제됐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격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자유를 말했지만 동시에 600명 이상 노예를 소유했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인식한계나 위선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자유주의 자체가 안고 있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습니다. 초기 자유와 독립을 주장했던 미국 건국세력에게 흑인과 여성은 과연 자신들과 동등한 시민으로 인식됐을까라는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특히 미국이 오늘날과 같은 보편적 참정권 체계에 가까워진 것은 사실상 20세기 중반 이후였습니다. 여성 참정권은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를 통해 보장됐고, 흑인의 실질적 참정권 역시 1965년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확대됐습니다(U.S. National Archives). 그 이전까지 미국 남부에서는 문해력 시험과 인두세(poll tax), 인종분리 정책 등을 통해 흑인 유권자들의 권리가 광범위하게 제한됐습니다. 즉 미국 역시 오랫동안 ‘모두의 자유’를 실현한 사회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 자유는 어떻게 시민의 권리가 되었는가

그러나 역사는 단순히 지배계층의 자유만 반복해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권리를 확대해온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왕과 귀족, 자산가들에게 집중돼 있던 자유를 시민 전체의 권리로 확장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19세기 이후 노동운동과 여성참정권 운동, 식민지 해방운동과 시민권 운동은 바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위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배제돼 있던 사람들이 스스로 쟁취해온 것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 요구가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1838년부터 전개된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은 보통선거와 비밀투표, 노동자 계층의 정치 참여 확대를 요구했습니다(Britannica, “Chartism”). 당시 영국 의회는 여전히 지주와 자산가 중심 구조였고, 상당수 노동자들은 선거권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당시 민주주의는 이미 존재한다고 이야기됐습니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여성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국 여성참정권 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1928)는 “말이 아니라 행동(Deeds, not words)”을 외치며 여성의 정치 참여를 요구했습니다.

미국 역시 여성들이 수십 년 동안 거리 시위와 단식투쟁, 체포와 탄압을 감수한 끝에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를 통해 여성참정권을 보장받게 됩니다(U.S. National Archives). 미국 흑인들의 시민권 운동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은 독립 이후 오랫동안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했지만, 흑인 다수는 투표권조차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1960년대 흑인 시민권 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폭력과 탄압에 노출됐고, 일부는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는 “어디에서든 정의가 훼손되면 모든 곳의 정의가 위협받는다(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고 말했습니다(“Letter from Birmingham Jail”, 1963).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미국 애틀랜타에서 연설하고 있다. 1960년 자료 사진 [AP=연합뉴스]

1965년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이 통과되기 전까지 미국 남부의 많은 흑인들은 문해력 시험과 인두세, 각종 행정장벽 때문에 사실상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U.S. National Archives).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 역시 자유를 둘러싼 끊임없는 배제와 확장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이러한 문제는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법적으로는 자유로운 노동계약이 존재했지만, 실제 노동자들의 삶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 1845)』에서 당시 맨체스터 노동자 거주지역의 참혹한 현실을 기록했습니다. 하수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빈민가에서는 전염병이 반복적으로 확산됐고, 아동노동과 하루 14~16시간 노동이 광범위하게 이뤄졌습니다.

노동자들은 법적으로는 자유로운 시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생존을 위해 노동을 강요받고 있었습니다. 형식적 자유는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 자유는 여전히 불평등했습니다. 굶주림 속에서 맺는 계약은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 계약인가. 이 질문은 이후 노동권과 사회권 논의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의 개념은 새로운 층위로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자유는 더 이상 단지 왕권으로부터의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게 됩니다. 경제적 종속과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차별과 배제로부터의 자유, 정치적 참여의 자유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들어 자유의 문제는 개인의 권리를 넘어 국가의 독립과 주권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식민지 지역에서 자유는 단순한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정치·경제 질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인도의 독립운동, 알제리의 반식민지 투쟁, 베트남 독립운동, 중남미 민족주의 흐름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특히 중동 산유국들에게 자유의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역시 단순한 에너지 위기만은 아니었습니다.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 통제권을 서구 강대국 중심 질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국가적 자율성과 주권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Daniel Yergin, 『The Prize: The Epic Quest for Oil, Money & Power』, 1991).

반대로 냉전 시기 미국의 중남미 개입은 “자유세계 수호”라는 명분 아래 타국의 민주주의와 주권을 침해한 사례로 비판받아 왔습니다. 1953년 미국 CIA와 영국 MI6은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그(Mohammad Mosaddegh, 1882~1967) 정부 전복에 개입했습니다. 모사데그는 영국계 석유회사의 국유화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CIA declassified documents / Stephen Kinzer, 『All the Shah’s Men』, 2003). 1973년 칠레에서는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08~1973) 정부가 군사쿠데타로 붕괴됐고, 이후 피노체트 군사독재가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직·간접 개입 문제는 이후 미국 상원 처치위원회(Church Committee) 보고서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논란이 됐습니다(U.S. Senate, Church Committee Reports, 1975). 즉 ‘자유’라는 이름은 때로는 타국의 자유와 주권을 제한하는 명분으로도 사용돼왔던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자유는 결코 고정된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는 시대마다 다른 층위로 확장돼왔습니다. 왕권으로부터의 자유, 귀족 특권으로부터의 자유, 자본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식민지배로부터의 자유, 국가폭력으로부터의 자유, 혐오와 차별로부터의 자유까지. 자유의 역사는 결국 “누가 인간으로 인정받는가”를 둘러싼 투쟁의 역사와 연결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현대사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을 기본으로 합니다. 헌법 1장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 민주주의는 결코 자동으로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은 현재의 1987년 헌법체제를 만들기 위해 해방 이후 40여년 이상을 독재정부에 맞서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국가폭력과 검열, 독재와 혐오정치의 위험 속에서 자유를 지켜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는 또 다른 위기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조롱, 5·18민주화운동 왜곡, 제주4·3 음모론, 이태원 참사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된 혐오와 냉소는 단순한 인터넷 문화 현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공동체의 슬픔은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타인의 고통은 밈(meme)과 놀이문화로 소비됩니다. 시민적 공감 능력은 냉소 속에서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극우정치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시민적 연민과 공감 능력을 약화시키고, 끊임없이 혐오와 조롱, 피해의식과 음모론을 확산시키며 공동체 내부의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우리는 자유의 또 다른 본질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유는 언제나 권력과 함께 존재해왔다는 사실입니다.

■ 민주공화정은 왜 자유를 ‘공동체’와 연결했는가

재산과 경제력의 확대는 곧 자유의 확대와 연결됐고, 반대로 경제적 종속은 자유의 제한으로 이어졌습니다. 절대왕정이 추구했던 왕의 절대적 자유 역시 결국 권력과 재산, 군사력을 독점할 자유에 가까웠습니다. 그것은 시민과 상공업자, 신흥 자본가 계층이 요구했던 경제적 자유와 권한 확대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결국 절대왕정은 시민혁명의 도전에 무너졌습니다.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자유가 아니라 특정 권력집단과 엘리트, 거대자본, 국가기구가 자신들의 권력을 무제한적으로 행사할 자유를 추구한 체제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결국 시민 공동체 전체의 자유를 짓밟고 파괴했습니다.

 

민주공화정에서 자유는 단순한 방임이 아니라 서로를 시민으로 인정하며 공론장을 유지하는 책임과 함께 발전해왔다.

오늘날 극우가 말하는 ‘표현의 절대적 자유’ 역시 이러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자유라기보다 자신들의 혐오와 조롱, 허위정보와 폭력적 선동까지 제한 없이 행사하려는 자유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공론장을 희화화하고,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며, 자신들의 주장만을 절대화하는 정치.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러한 정치체제를 전체주의 혹은 파시즘이라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공화주의(democratic republicanism)의 자유 개념은 근대 자유주의가 강조했던 “간섭받지 않을 자유”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자유를 국가권력의 간섭이 없는 상태로만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특정 권력과 지배로부터 시민이 예속되지 않고,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며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상태를 더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자유는 공동체 바깥에서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시민 공동체 속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공화주의(republicanism) 전통은 고대 로마 공화정의 시민 개념과 공공선(res publica) 사상에서 출발해 르네상스 시기의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근대 시민혁명기의 루소(Jean-Jacques Rousseau)를 거치며 발전했습니다. 이후 미국혁명(1776)과 프랑스혁명(1789)을 통해 민주공화정은 역사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시민 전체가 공동체의 주권자라는 원리가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현대 민주공화정은 여기서 다시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에 가깝습니다. 20세기에 들어 보통선거와 여성 참정권, 노동권과 사회권이 확대되고, 파시즘과 세계대전, 식민지 해방과 냉전의 경험까지 거치며 민주공화정은 선거제도의 문제를 넘어 시민 공동체 전체의 공존과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문제로까지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Discourses on Livy, 1531)』에서 공화정의 핵심을 시민적 참여와 공동체의 자율성 속에서 찾았습니다. 그에게 자유(libertà)는 개인 욕망의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외부 권력과 내부 전제정으로부터 공동체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공화주의의 핵심은 결국 “누가 공동체의 주권자인가”라는 질문에 있습니다. 왕이나 귀족, 특정 재산계급이 아니라 시민 전체가 정치공동체의 주권자라는 인식이 공화주의 전통의 핵심이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신분과 재산의 여부를 넘어 시민의 의사와 주권 자체를 공동체의 정당성 근거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자유주의의 역사적 성과 자체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근대 자유주의는 절대왕정과 신분제를 제한하고 인간을 ‘권리를 가진 개인’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언론·출판·종교의 자유와 시민권 확대 역시 자유주의의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그것은 인류사적으로 거대한 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유의 역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유는 재산을 가진 일부 시민만의 권리로 남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성과 노동자, 흑인과 식민지 민중, 사회적 약자들 역시 스스로를 인간이자 시민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유의 범위는 왕권으로부터의 자유를 넘어 차별과 빈곤, 식민지배와 국가폭력으로부터의 자유까지 점차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자유주의를 부정하기 위해 등장한 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주의를 더 민주주의적으로 확장하려는 흐름에 가까웠습니다. 문제는 자유주의 자체가 아니라 자유를 공동체와 분리된 개인 욕망의 문제로만 축소할 때 발생합니다. 특정 계급과 권력집단의 독점적 자유가 아니라 시민 공동체 전체의 자유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 바로 여기에 민주공화주의의 핵심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자유를 공동체의 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민 공동체가 붕괴하면 자유 역시 가장 먼저 무너진다고 보았습니다.

이 문제를 수백 년 전 가장 강하게 제기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장 자크 루소였습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 1762)』 첫머리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L'homme est né libre, et partout il est dans les fers)”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권력의 간섭만 줄인다고 자유가 완성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공동체의 법과 정치 형성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스스로 입법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가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루소가 말한 자유는 개인 욕망의 무제한적 해방이 아니라 시민이 공동체의 주권자로 살아가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이를 “일반의지(general will)”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공동체 전체의 공공선(common good)을 함께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시민적 의지가 민주공화주의의 핵심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 연합뉴스

이것은 중요한 차이입니다. 근대 자유주의가 “국가가 개인을 간섭하지 말라”는 방향에 가까웠다면, 민주공화주의는 “시민이 공동체의 주권자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방향에 더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와 책임은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시민 공동체 자체가 무너지면 자유 역시 유지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 역사 속 민주주의 역시 이러한 문제와 반복적으로 충돌해왔습니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Weimar Republic, 1918~1933)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 헌법 가운데 하나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보통선거, 사회권 보장도 상당 부분 제도화돼 있었습니다.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은 여성 참정권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선거권을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이마르공화국 내부에서는 극단적 혐오 선동과 음모론 정치, 반민주주의 운동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특히 나치당(NSDAP)은 민주주의 제도를 이용해 민주주의 자체를 공격했습니다. 1928년 총선에서 2.6% 득표에 불과했던 나치당은 대공황 이후 급속히 세력을 확대해 1932년 7월 총선에서는 약 37.3%를 득표하며 제1당으로 성장했습니다(Richard J. Evans, 『The Coming of the Third Reich』, 2003).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선거와 대중선동, 언론과 선전, 거리폭력과 혐오정치를 결합해 민주주의 내부에서 권력을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잡은 뒤에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와 정당정치, 언론과 시민사회를 파괴했습니다.

바이마르공화국의 실패는 민주주의가 자유를 부정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에게까지 민주주의적 관용을 무제한 허용했을 때 어떻게 붕괴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역사적 사례였습니다. 독일 법철학자 카를 뢰벤슈타인(Karl Loewenstein, 1891~1973)은 이러한 경험을 분석하며 「전투적 민주주의와 기본권(Militant Democracy and Fundamental Rights)」(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937)에서 “전투적 민주주의(militant democracy)”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반민주주의 세력에 대해 일정 수준의 자기방어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독일 기본법(German Basic Law) 제21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정당에 대해 위헌정당 해산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은 전후 바이마르 붕괴의 경험을 반성하며 혐오선동 제한과 나치 상징 금지, 그리고 연방헌법수호청(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 BfV) 체제를 발전시켜왔습니다. 이것은 검열국가의 논리가 아니라 시민 공동체 자체가 무너지면 자유 역시 유지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에 가까웠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민주주의는 선거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공론장과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정치환경은 오히려 이러한 공론장을 빠르게 해체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SNS 알고리즘은 사실보다 감정을 더 빠르게 확산시킵니다.

긴 설명보다 짧은 분노와 혐오가 더 강한 정치적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2021년 공개된 ‘페이스북 파일(Facebook Papers)’은 플랫폼 알고리즘이 분노와 극단적 콘텐츠에 더 높은 반응을 보이며 사용자 체류시간과 광고수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The Wall Street Journal, 2021.9.14).

오늘날 권력은 금지와 검열만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 공포와 조롱을 끊임없이 증폭시키며 정치적 행동 자체를 조직합니다. 극우의 문화전쟁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공동체의 슬픔은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타인의 고통은 밈(meme)과 놀이문화로 소비됩니다. 시민적 공감 능력은 냉소 속에서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공화정의 공론장은 조금씩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어떻게 자유를 유지할 수 있는가. 공동체 자체가 붕괴되고 시민적 신뢰가 사라진 공간에서 자유는 과연 지속될 수 있는가. 표현의 자유는 공동체를 파괴할 자유인가, 아니면 시민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유인가.

민주공화정은 3권분립이라는 국가 구조의 문제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시민이 서로를 동등한 주권자로 인정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자유와 권력이 특정 지배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 공동체 전체의 정당성과 공공선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원리 말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극우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혐오와 조롱, 허위정보와 폭력적 선동까지 무제한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은 의견 차원의 갈등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시민을 동등한 주권자로 인정하는 민주공화정의 기본질서 자체를 흔드는 행위입니다. 자유는 공동체 바깥에서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시민적 신뢰와 공론장이 무너진 공간에서 자유는 결국 가장 큰 목소리와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집단의 특권으로 변질됩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자유를 보장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자유가 유지될 수 있는 시민 공동체 자체를 지키려는 정치철학입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바로 이 문제를 조금 더 본격적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왜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로 보았는가. 동시에 그는 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자유”까지 허용하지 않았는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왜 공론장과 시민적 세계(common world)를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으로 보았는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 )는 왜 민주주의를 시민적 의사소통과 공론장의 문제로 이해했는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왜 권력이 단순한 검열이 아니라 담론과 문화, 일상 속에서 작동한다고 분석했는가. 다음 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이러한 현대 정치철학의 논쟁을 보다 구체적으로 따라가보려 합니다.

이병권 인문연구가 lbkwo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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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이라는 사탕, FTA에 이은 제2의 대국민 사기극을 경계할 때

  •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6.12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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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안보분야 차관급 협의채널은 제2의 ‘워킹 그룹’?

한미 FTA는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완전히 당했다. 포장은 번지르르했다. 세계 최대 시장을 무관세로 열어 선진 통상국가가 된다, 국민소득이 크게 오르고 한국 경제는 비약한다, 엄청난 말잔치였다. 그리고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기도 전에 미국은 알짜배기 건더기를 이미 하나씩 뽑아먹고 있었다.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건강보험 약가제도 현행 유지,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완화,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이었다. 정부는 선결조건이 아니라고 우겼다. 미국은 입장료처럼 챙겼다. 경제동맹이라는 이름의 FTA는 한미동맹처럼 일방적인 약탈이다.

2006년 7월 24일 당시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은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약제비 적정화 방안 논의를 두고 자신이 “죽어라 싸우고”(fighting like hell) 있다고 했다. 복지부는 효과와 가격을 따지고 건강보험이 돈을 대줄 만한 약만 선별해서 보험 목록에 올린다는 정책을 추진했다. 비싸기만 하고 효과가 뚜렷하지 않은 약에는 건강보험 돈을 함부로 쓰지 말자는 얘기였다. 미국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반발했고 김현종은 그들을 위해 죽도록 싸웠던 것이다. 국민 앞에서는 미국에 맞서는 행세를 하던 자가 미국 앞에서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지금 한미 안보분야 공동팩트시트가 같은 길로 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 미끼는 핵잠수함이다. 거기에 우라늄 농축,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라는 단어가 붙었다. 한국이 드디어 핵 주권을 확보하는 것처럼 들린다. 사실은 아주 하찮은 요구사항이다. 핵잠은 기술을 달라는 것도, 소형 원자로를 지어달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원자로에 들어갈 저농축 우라늄을 제공해 달라는 요구일 뿐이다. 농축과 재처리도 20% 이하의 저농축에다가 특수한 방식의 재처리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팩트시트는 그러한 과정을 지지한다고만 했다. 약속한 것이 아니다. 웃기고 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약속한 것은 광범위하다. 경제 분야에는 2000억 달러 전략투자, 1500억 달러의 조선 투자에 미국은 원래 0%이던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15% 관세를 매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협상으로 죽었어야 했을 한미 FTA가 미국만을 이롭게 하는 틀로 버젓이 되살아났다. 안보 분야에서는 한국 국방비를 GDP의 3.5%까지 증액하기로 했고,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장비 250억 달러 어치를 구매하기로 했으며, 주한미군에 330억 달러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더 큰 것이 합의문 안에 몸을 숨기듯 도사리고 있다.

한국 언론은 핵잠을 본다. 작년 10월 29일 경주에서 열린 2차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모두 공개발언으로 요구한 사항이라는 시각적 요인도 있다. 그러나 한국이 “핵잠 승인”이라는 한 줄에 흥분할 때 미국은 표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다. 안보 이슈만 해도 미국은 한반도 방위의 한국 책임 강화, 전작권 반환을 둘러싼 줄다리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국방비, 무기구매, 대만해협, 한미일 군사망을 한 묶음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우리가 핵잠과 원자력에 한눈을 파는 사이 미국은 한국을 중국을 겨냥한 미군의 전진기지로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숭미파들이 미국의 내심과 요구를 좇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국가안보실장 위성락의 언행은 세밀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2025년 12월 그는 미국을 방문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만나 한미정상회담의 후속 협의에 착수했다. 핵잠에 관한 미국의 약속을 채근하기 위해서였다. 귀국 뒤 그는 핵잠 협력에 관해 한미가 ‘별도 협정’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했고, 미국 실무대표단이 이른 시기에 한국에 와서 사안별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농축·재처리도 같이 논의한다고 했다. 미국 원자력법상 군용 핵물질 이전 문제가 걸려 있어 ‘별도 협정’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나왔다. 우리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2026년 2월이 되자 말이 달라졌다. 위 실장은 우리가 대미투자 입법을 지연하고 있어서 핵잠, 농축, 재처리 등 안보 분야 후속 논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안보협상팀이 지금쯤 한국에 와 있어야 하는데 지연되고 있다고도 했다. 결국 미국은 통상, 기업, 관세, 법률, 플랫폼 규제까지 한 상 위에 올려놓고 한국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4월에는 쿠팡이 나왔다. 위 실장은 쿠팡 문제가 한미 안보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마치 우리가 쿠팡을 잘못 다뤄 미국이 화내고 있음을 두둔하는 발언이었다.

 

한미동맹이란 미국이 휘두르는 만능의 압박 장치다. 국무부 정무차관 앨리슨 후커의 6월 1-3일간 방한은 그 압박 장치가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명목상으로는 한미 공동팩트시트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협의의 발족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대 우리가 핵잠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 때 미국은 한국을 어떻게 자기들 입맛에 맞게 통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후커 차관의 일행에는 국무부, 백악관 NSC, 에너지부, 국방부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위 실장과 조현 외무장관 외에 주한미군사령관과의 별도 회동도 가졌다.

후커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다.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NSC에서 한반도와 아시아를 다뤘고, 싱가포르·하노이·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에도 관여했다. 북한을 연구한 사람이자 한국 압박의 내부 문법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앞으로 챙길 사안은 한국의 꿈이 아니라 미국의 장부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국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매, 한미일 군사협력, 중국 견제, 정보통제, 비확산 관리가 후커의 관심사다. 이번에 발족한 차관급 협의채널은 문재인 정부 시절 ‘워킹 그룹’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단단히 경계해야 한다.

미국은 핵잠과 원자력 협력을 공짜로 주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한국의 핵잠을 중국 견제를 위한 그들의 무기로 이용해 먹을 거라는 말이다. ‘별도 협정’이 만들어지면 거기에는 연료 공급 조건만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운용 조건, 검증, 정보공유, 작전협력, 비확산 의무, 미국의 승인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따라붙을 공산이 크다. 한미 FTA 협정문 곳곳에 미국 기업의 권리가 박혔듯, 안보판 협정문 곳곳에는 미국의 군사적 권리가 박힐 것이다. 전작권도 쉽게 내주지 않을 것이다. 전작권을 쥐고 있어야 한국을 계속 갖고 놀 수 있다.

미국의 큰 그림은 오래전부터 같았다. 한국을 일본과 함께 대중국 전진기지로 세우는 일이다. 조선협력은 미 해군 재건과 연결된다. 핵잠 협력은 중국 잠수함 추적망과 연결된다. 한미일 군사협력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군사동원 체계와 연결된다. 한국 국방비 증액은 미국 방산업체의 매출과 연결된다. 한국의 숭미파는 그것을 알면서도 국민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핵잠과 원자력이라는 말로 눈을 후린다. 그 사이 미국이 원하는 모든 것을 챙겨줄 것이다. 김현종이 한미 FTA로 미국의 요구를 위해 “죽도록 싸운” 것처럼 누군가는 다시 미국의 큰 그림을 위해 “피터지게 싸울”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진짜 대한민국을 하겠다면 여기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미국과 협상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미국을 정확히 보고 협상해야 한다. 핵잠을 얻는 대신 군사주권을 더 잃는다면 그건 성과가 아니다. 농축·재처리 문구를 얻는 대신 대중국 전진기지 역할을 떠안는다면 그건 원자력 주권이 아니다. 원자력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승인권이 더 촘촘해진다면 그것은 독립이 아니다. 국민 앞에 장부를 펴야 한다. 무엇을 받는가. 무엇을 내주는가. 누가 이익을 보는가. 어느 전선에 끌려가는가.

이번 지방선거의 패배도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진보진영은 외교안보의 자기 언어를 만들지 못했다. 국힘을 응원하는 숭미세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한미동맹은 정책이 아니라 신앙이다. 그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정부내 숭미파들의 준동 역시 경계할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참모진의 재정비다. 워싱턴의 표정부터 살피는 사람들, 한국 국민의 이익보다 미국 관료의 문장을 더 무서워하는 사람들, 핵잠이라는 장난감 하나에 나라 전체를 미국의 군사 전진기지로 만들려는 사람들은 이제 몰아내야 한다. 한미 안보분야 공동팩트시트 협력은 자주의식을 가진 인사들이 들여다보아야 할 사안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보판 한미 FTA가 된다. 한 번 속으면 실수다. 같은 방식으로 두 번 속으면 공범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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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송병준 99칸 별장터, 온누리교회로 넘어갔다

정미칠적 송병준 일가 추적…배기성 역사독립군과 용인 양지면 현장을 가다

정미칠적 송병준 용인 양지면 99칸 별장터, 지금은 온누리교회 부지

영화지 연못과 정자 터만 폐허로 남아…표지석엔 의병 공격 대상지

아들 송종헌 반민특위 옥사, 사위 구연수에 외손자는 초대 한은 총재

2026-06-12 07:18:17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 친일파 송병준이 99칸 별장을 짓고 영화를 누리던 자리다. 그 큰 별장은 사라졌다. 물 빠진 연못과 무너진 정자 터, 녹슨 쇠다리만 남았다. 너른 부지에는 지금 온누리교회가 들어서 있다. 뉴탐사 역사탐사팀이 역사독립군 배기성 강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영화는 누렸으되 남은 건 폐허뿐

배기성 강사는 별장터에 서서 송병준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완용과 송병준은 누가 더 나쁜 친일파인지 서로 1등이라고 다툴 수 있는 유일한 같은 급"이라고 했다. 조중응, 이병무 같은 정미칠적도 친일에 부역했다. 그러나 배기성 강사는 "이완용과 송병준은 수괴급"이라며 둘을 따로 떼어 놓았다.

연못 이름은 영화지다. 빛날 화에 영화로울 영을 썼다. 한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그 위에 정자가 놓였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호리병 모양 연못을 채웠다. 지금은 물이 빠져 석축만 드러난다. 섬으로 건너가던 다리는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배기성 강사는 "태어나서 처음 와봤다"고 했다. 친일파가 대대로 누린 영화의 자취가 폐허로 가라앉아 있었다.

표지석이 가리키는 일진회

별장터 한쪽에는 표지석이 서 있다. 적힌 글귀는 이렇다. 이곳은 친일 세력의 거점이자 일진회 지역민의 집합소였다. 1907년 8월 24일 양지에서 용인 의병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였다. 일본군은 송병준 별장으로 도주했고, 일제는 순사 수십 명을 배치해 의병 공격에 대비했다. 별장이 친일의 소굴이었던 탓에 의병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됐다.

배기성 강사는 송병준과 일진회를 떼어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일진회는 한일자, 곧 조선과 일본은 하나라는 뜻을 내건 친일 단체였다. 송병준이 사실상 만들었다. 다만 회장 자리는 이용구에게 넘겼다. 배기성 강사는 "내가 만들었는데 내가 회장을 하면 모양이 안 난다며 이용구를 바지회장으로 내세웠다"고 전했다. 1904년 양지 현감을 지낸 송병준은 이 일대 풍광에 반해 99칸 별장을 지었다. 정미칠적으로 자작 작위를 받았고, 경술국치에 기여한 공로로 백작에 올랐다.

교회로 넘어간 땅, 남양주로 옮겨진 별장

별장 부지는 손바뀜을 여러 번 거쳤다. 6·25 때는 피난민이 모여 살았다. 전쟁 뒤에는 상이군인 수용소가 됐고, 1950년대 중반에는 전쟁고아원으로 쓰였다. 1970년대 초에는 한 권사가 저택을 사들여 기독교 수양관을 차렸다. 1990년대 들어 저택을 허물고 온누리교회가 들어섰다. 마지막에는 한 신자가 이 땅을 사들여 교회에 기부했다. 송병준에게서 직접 받은 땅은 아니다.

별장이 통째로 사라진 것도 아니다. 기와집 일부가 경기 남양주 평내 궁집으로 옮겨져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용인집이라 부른다. 용인에서 온 집이라는 뜻이다. 헐릴 뻔한 한옥을 옮겨다 놓은 것이라 비교적 깔끔하게 보존돼 있다. 건물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표지석 하나, 옮겨진 한 칸이라도 남은 게 그래서 다행이다.

부평 캠프 마켓과 빼앗긴 땅

배기성 강사는 송병준의 출발을 민영환의 식객으로 짚었다. 을사늑약 뒤 민영환이 자결하자, 송병준이 칼을 빼들고 유족을 겁박해 인천 부평 땅을 빼앗았다고 했다. 그 땅이 미군기지 캠프 마켓이다. 송병준 후손은 캠프 마켓을 비롯한 2500억원대 땅을 돌려달라며 반환 소송을 냈다. 결과는 패소였다.

배기성 강사는 이 소송의 뒷이야기를 직접 들었다고 했다. 최용규 전 의원과 홍경선 보좌관이 일본 홋카이도 땅까지 뒤져 반환 불가 의견을 재판부에 냈다고 했다. 배기성 강사는 "홍경선 보좌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밝혔다. 인천 부평에서는 시민단체가 친일 재산 환수 운동을 벌였다. 용인에서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별장터가 교회로 넘어갔다. 두 도시의 길이 갈렸다.

끊기지 않은 그림자, 아들과 사위

송병준의 아들 송종헌도 아버지의 길을 걸었다. 배기성 강사는 송종헌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종을 곤장으로 때려죽였다고 전했다. 한양에서 돌아오던 송종헌에게 고개를 돌린 그 종의 부인을, 송종헌이 장총으로 쏴 죽였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1927년의 일이라고 했다. 송종헌은 광복 뒤 반민특위에 체포됐고, 1949년 옥중에서 뇌졸중으로 죽었다.

사위 구연수에게로 그림자는 이어진다. 배기성 강사는 구연수가 명성황후 시해의 마지막 가해자라고 주장했다. "죽이고 나서 자기가 죽인 걸 덮으려고 기름을 뿌려 시신을 불태웠다"고 했다. 구연수의 아들이자 송병준의 외손자가 구용서다. 구용서는 초대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 장관, 초대 산업은행 총재를 지냈다. 배기성 강사는 "친일파는 자기 역사를 지우려고 자신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역사를 지운다"며 "그래서 우리 일제강점기는 그 자체로 거대한 공백"이라고 했다.

송병준의 마지막도 배기성 강사의 설명으로 들었다. 송병준은 1921년부터 1924년까지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다. 그 무렵 박헌영, 김단야, 강달영, 조봉암 등 민족주의 성향 기자들과 부딪쳤다. 조선총독부가 기사 문제로 압박하고 기자들은 굽히지 않으니, 송병준이 화병으로 쓰러졌다는 것이 배기성 강사의 이야기다. 송병준은 1925년 뇌경색으로 죽었다. 배기성 강사는 "송병준도, 아들 송종헌도 뇌경색으로 죽었다. 천벌"이라고 했다.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용인시장에는 국민의힘 이상일 후보가 당선됐다. 더불어민주당 현근택 후보는 떨어졌다. 배기성 강사는 현근택 후보가 됐다면 별장터를 민족반역자 다크투어 거점으로 만들기로 했고, 자신을 현장 진행요원으로 임명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다고 했다. 이상일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그 구상은 사라졌다. 6월 6일 현충일, 이재명 대통령은 친일 부당재산 환수를 다시 꺼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16년 만에 부활을 예고했다. 송병준이 영화를 누리던 연못은 오늘도 물이 빠진 채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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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내홍에 경향신문 “정청래 책임지고 이 대통령 당무개입 말아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6/12 07:58
  • 수정일
    2026/06/12 07:5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아침신문 솎아보기] 한겨레 “여권내부 편가른 감정공방, 우려 키워”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 대통령 선거 진단 민심과 다른 방향”

기자명조현호 기자

  • 입력 2026.06.12 07:33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지방선거 평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민주당

6·3 지방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당 대표 사퇴 요구가 분출하는 등 내홍이 더욱 번지고 있다. 민주당 의총장에서는 정청래 대표 사퇴론이 제기됐고, 국민의힘은 최고위 회의와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 목소리가 나왔다. 여당 갈등을 두고 경향신문은 정청래 대표가 책임질 것이 있으면 책임지고, 이재명 대통령도 당무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선거결과의 책임이 대통령과 정부를 포함한 여권에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청래 사퇴 촉구한 비공개 의원총회 여권 내부 갈등 격화

더불어민주당이 11일 비공개로 연 의원총회에선 6·3 지방선거 책임론을 둘러싸고 정청래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중앙일보는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비공개 의총에서 재선 장철민 의원은 “정 대표가 당 대표에 다시 도전할 의사가 있다면 오늘이라도 사퇴해야 중립성이 유지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초선 임미애 의원도 “이재명 대표 시절의 전당대회 재출마 사례를 보면 사퇴한 뒤 60일 안에 선거를 치렀다”고 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정 대표는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토론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사퇴 요구를) 잘 들었다”고만 했다. 연임 도전에 대해서도 “각자 알아서 판단하라”며 말을 아꼈다.

서울신문은 3면 기사에서 “정청래 대표를 향한 당내 사퇴론 분출은 만족스럽지 못한 6·3 지방선거 결과와 계파 갈등 양상이 뚜렷한 8월 전당대회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라며 “여기에 정 대표의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는 발언이 친청계 당권파와 친명계 비당권파의 팽팽한 긴장 관계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라고 썼다.

국민의힘 개혁성향 의원 모임인 ‘대안과 미래’는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며 “장 대표가 진정 스스로 ‘보수’라 생각한다면 이제 그만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재준 청년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지도부에 정식으로 제안한다. 우리 모두 사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 대표가 임명한 조광한 최고위원이 “철없는 소리를 공개적으로 하는 건 정치적으로 굉장히 미숙한 것”이라고 반격하며 설전을 벌였다.

경향신문 “정청래 책임지고, 이 대통령 당권개입 말아야”

경향신문은 사설 <볼썽 사나운 여권 내부 갈등, 자중하고 할 일 해야>에서 “격전지 패배라는 뼈아픈 결과의 책임을 따져보자는 것이라지만, 집권여당이 민심에 대한 성찰보다 내부 권력 다툼에 몰두하는 듯한 모습은 우려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친명 친청계 공방을 두고 경향신문은 “양측의 공방은 청와대의 전당대회 개입 논란과 맞물리면서 당을 사분오열의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다”고 봤다.

유럽 순방 환송행사에 정 대표를 배제한 채 김민석 국무총리를 부른 이 대통령의 ‘김민석 낙점론’이 당권 경쟁의 도화선이 됐다. 정 대표가 10일 최고위에서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고 한 말이 이 대통령에 대한 불만으로 비치자 친명계는 “대단한 실언” “대통령 협박”이라며 정 대표 사퇴론으로 이어졌다. 경향신문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여론조사 지지율 동반 하락을 두고 경향신문은 “선거 결과를 성찰하지 않고 네 탓 공방을 벌이며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다툼에 몰두하는 여권에 대한 민심의 경고로 읽힌다”라고 우려했다.

▲경향신문 2026년 6월12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정청래 대표를 향해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를 거쳐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어 “이 대통령 역시 불필요한 당권 개입 논란으로 집권 2년차 국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지 말아야 한다”라며 “대통령이 당권 경쟁에 개입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건전한 당·청관계는 물론 국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정 대표와 이 대통령 모두를 질타했다.

한겨레 “여권내부 편가른 감정공방, 우려 키워”

한겨레는 사설 <격화되는 여당 당권경쟁, 국민에 책임 있는 모습 보여야>에서 “국민의 눈에 정권 출범 1년을 갓 넘긴 집권당이 보여야 할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지방선거 결과가 아무리 실망스러워도 정밀한 진단과 평가 없이 여권 내부에서 편이 갈려 감정적 공방을 벌이는 듯한 모습은 국민의 우려를 키운다”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 국민이 바라는 건 당권경쟁 탓에 집권 세력으로서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면서 특히 여론 흐름이 예사롭지 않은데, 국민의힘이 오차범위 내에서 민주당을 앞선 결과도 나온 점을 들었다. 한겨레는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못 한 국민의힘 지지율이 12·3 내란 전 수준을 회복한 것에 대해 여권은 각별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동아일보 “선거결과 책임 대통령 정부 포함 여권에 있어”

동아일보는 사설 <민심의 경고 인정한다면서 집안싸움만 요란한 與>에서 “이런 여당의 집안싸움은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것 같은 어정쩡한 선거 결과 이후 그 책임론을 둘러싼 공방이 두 달 뒤 전당대회를 앞둔 당권 다툼으로 비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선거 결과의 책임은 우선 여당과 지도부에 있을 수 있지만 포괄적으론 대통령과 정부를 포함한 여권에 있다고 진단했다. 동아일보는 “민심은 여당인 민주당에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이길 곳, 이겨야 할 곳에서 패배한 이유”라며 “지금은 여당이 집안싸움이나 할 때가 아니다. 당장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어처구니없는 국민 참정권 훼손 사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서울신문도 사설에서 “8월 전당대회까지 여당의 내홍이 깊어진다면 국정 동력은 점점 더 떨어질 것”이라며 “여당과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전직하했다. 순방길의 이 대통령이 깜짝 놀라 사과 메시지를 올렸다. 그래놓고 권력다툼에 골몰한 당정의 모습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불문가지다. 선거 민심의 경고를 두렵게 들었다면 이럴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 대통령 선거 진단 민심과 다른 방향”

이상렬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은 12일자 ‘이상렬의 시시각각’ 칼럼 <6·3 선거,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벙>에서 “정치도, 경제도 진단이 맞아야 올바른 처방이 나오는 법이다. 이 대통령은 공소취소 특검에 대해 ‘안 할 수는 없다’, ‘법과 상식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그 ‘법’과 ‘상식’을 여당이 마음대로 다룬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논설위원은 부동산에 대해 보유세 부담을 높이겠다고 한 것을 두고 “시장에선 세금 전가와 매매가·전월세 급등을 우려한다”라며 “모두 선거에서 확인된 민심과는 아주 다른 방향”이라고 비판했다.

이 논설위원은 “민심과 반대로 가는 정권의 고집은 결국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다”라며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실패도, 윤석열 정권의 의대 증원도 그런 경우다. 진심으로 ‘국민은 하늘’이라고 생각하는 정권이라면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쓴소리했다.

이 대통령 지지율 57%까지 하락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지방선거 전보다 9%포인트 하락한 57%로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지난해 10월 다섯째 주(56%)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라는 분석이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8∼10일 전국 성인 남녀 1001명을 조사해 11일 발표한 6월 2주 전국지표조사(NBS, 무선전화 면접 100%,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57%, 부정 평가는 33%로 집계됐다. 직전 조사인 5월 셋째 주 조사보다 긍정 평가는 9%포인트 하락했고, 부정 평가는 9%포인트 상승했다.

김민석 “이런 선관위라면 해체하는 게 낫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경찰이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7곳을 압수수색했다.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중앙선관위와 서울시 선관위, 송파·서초·강남·광진·동작구 선관위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및 직무유기 혐의로 동시에 압수수색하고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노태악 전 위원장, 허철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주요 관계자도 피의자로 압수수색영장에 적시됐다.

국민일보는 1면 기사에서 “경찰은 종로구 서울시 선관위 사무실에서 투표용지 인쇄 계획서와 관련 회의록, 예산서 등을 확보했다”라며 “선관위 서버에도 원격 접속하는 식으로 관련 자료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보도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선관위가 이런 식이라면 해체돼야 한다는 국민 목소리가 틀림없이 있다”며 “선관위가 정말 위부터 아래까지 대오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철환 중앙선관위원장 직무대행은 대국민 입장문에서 “송파구 내 146개 투표소별 투표용지 분배에 실패한 것이 뼈아픈 실수였다”며 “실제 송파구 전체로 보면 투표용지가 4만2000여 매 남았다”고 밝혔다.

선관위 낱낱이 파헤치고 책임물어야

경향신문은 사설 <선거관리 믿기 힘든 총체적 부실, 낱낱이 파헤치고 책임 물어야>에서 “6·3 지방선거 관리가 투표용지 부족은 물론 선거인명부 누락, 개표 결과 중복 반영 등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의 관리 시스템이 이런 지경이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존재의미에 회의가 들 정도”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사법당국과 국회는 이번 선거 시작부터 끝까지의 관리실태를 낱낱이 파헤쳐 그 진상을 국민 앞에 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라며 “부실 선거관리에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과 동시에 국가선거 시스템을 재설계한다는 각오로 선관위의 운영 방식과 선거관리 체계를 바닥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한겨레도 사설 <무능·방만함 부르는 선관위 체계 뜯어고쳐야>에서 선관위가 투표용지 최소 인쇄 기준을 하향 조정하는 결정을 사무총장의 전결로 처리했다는 것을 두고 “투표용지 관리는 선관위의 핵심 업무 가운데 하나인데, 선관위원들을 패싱하고 사무총장이 최종 결정했다니 어이가 없다”라고 질책했다.

중앙선관위는 현직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헌법기관인데도 조직은 법과 원칙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직원들의 근무 기강해이를 두고 한겨레는 “전국 단위 선거 때마다 선관위 직원 휴직자가 늘어났다가 선거가 끝나면 감소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사설 <이번엔 투표 결과 누락…해도 해도 너무한 선관위>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관리 부실 실태가 점입가경”이라며 전북과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투표소별 개표 결과가 잘못 입력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는 점을 들었다. 전북선관위에 따르면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1동 제3투표소의 개표 결과가 제1투표소의 것으로 오인돼 1, 3개표소 모두 제3투표소의 결과를 반영하는 오류가 발생했다. 누락된 1투표소 유권자는 1104명이었다. 중앙일보는 “당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차이였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허술함에 말문이 막힌다”라며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제도를 무너뜨리고 국민의 참정권을 훼손한 사태의 진상은 명백히 규명되고 일벌백계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중앙일보 2026년 6월12일자 사설

한국일보도 사설 <갈수록 태산인 선관위의 선거 관리 부실 행태>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한 선거관리 실태가 점입가경이라며 “선관위가 관리할 능력도, 체계도 갖추지 못한 채 선거를 치른 셈”이라고 질타했다. 한국일보는 “선관위를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나라에 큰 사달을 낼 것임이 명백해졌다”라고 촉구했다.

법무부 검찰미래위는 “공소취소용” 의혹

법무부 검찰인권존중미래위원회(‘검찰미래위’)가 그제(10일) 첫 회의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이 위원회는 지난 4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서울고검 인권침해점검TF가 ‘연어 술파티’ 의혹 등을 조사했지만 의혹을 해소하기엔 미흡했다며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별도 위원회 구성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중앙일보는 사설 <법무부 검찰미래위,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 포석인가>에서 “위원회가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사건들이 적정한지, 위원회 멤버 구성은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법조계에선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를 염두에 두고 법무부가 명분 쌓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할 정도”라고 의심했다.

검찰미래위의 움직임을 두고 중앙일보는 첫 회의에서 1차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7개 사건 가운데 대장동·위례 비리 의혹,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사건 등 이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건이 4건이라는 점을 들었다. 중앙일보는 “검찰미래위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고 공소취소를 위해 무리한 결론을 낸다면 거센 여론의 반발에 부닥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조선일보도 사설 <‘李 사건 공소취소’ 주장한 사람이 李 사건 조사 위원이라니>에서 “위원회 이름과 달리 이 위원회는 이재명 대통령 사건을 재조사하는 목적”이라고 규정했다. 위원 7명을 두고 이 신문은 민변 회장 출신인 위원장이 “검찰 수사권 폐지”를 주장했던 사람이며,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변호인,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핵심 멤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지낸 교수 등 대부분 친정권 성향 인물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신문은 “이런 특검, 이런 위원회가 무슨 결론을 내린들 누가 공정하다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개인정보보호위, 쿠팡과 계열사에 과징금 6246억 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11일 쿠팡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 및 법적 근거 없는 개인정보 수집 등에 대해 과징금 6246억8100만 원과 과태료 1680만 원 부과와 함께 시정명령, 공표 및 공표 명령 등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개인정보위는 또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의 개인정보 수집·이용 및 민감정보 처리 제한 위반을 확인하여 과징금 2억4800만 원을 부과했다.

개인정보위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인증 서명키 관리 및 접근통제 소홀 등 기본적인 안전관리 체계 미흡으로 약 3755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정보주체 권리 침해의 경우 쿠팡에서 타사 웹·앱에 접속한 회원 약 1117만 명의 온라인 활동기록을 무단수집하여 DB에 저장하는 사실을 확인했다고도 했다. 쿠팡 측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관련기사

“기득권의 위선” … 2030, 민주당에 등 돌린 이유

국민일보는 1면 기사 <“기득권의 위선 … 2030, 민주당에 등 돌렸다”>에서 “더불어민주당은 6·3 지방선거 핵심 격전지 서울의 핵심 패인 중 하나를 2030세대의 이탈로 보고 있다”라며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현역 국회의원 및 청년 기초의원 12명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우는 아이 떡 하나 주는 식’의 청년 정책에 대한 실망감, 극우 프레임화에 대한 모멸감 등이 청년세대의 분노 기저에 담겨 있다고 11일 분석했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 2026년 6월12일자 1면

국민일보에 따르면, 의원들은 청년세대 상당수가 민주당을 ‘위선 가득한 기득권 정당’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초선 의원은 “우리가 검찰·사법·언론 개혁 등을 통해 기득권을 해체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런 개혁이 오히려 민주당의 기득권을 강화하려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산 격차가 극대화된 사회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마저 붕괴한 주체로 정치권을 인식하고 있으며, 여당이 된 민주당을 그 주류로 본다는 의미라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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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유도 윤석열 계엄세력 엄중 처벌하라"

평화연대 등 시민단체, 12일 이적죄 1심 선고공판 앞두고 촉구

  • 기자명 서영빈 기자 
  •  
  •  입력 2026.06.12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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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위한 전쟁유도 범죄, 재판부는 중형을 선고하라"

시민단체들이 내란세력과 관련해 재판부에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여인형, 김용대 등 내란세력의 일반이적죄, 직권남용과 관련된 사건의 1심 선고 공판을 앞두고 이들에 대한 엄중한 판결과 중형 선고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자주통일평화연대(평화연대)를 비롯한 4개 시민단체는 11일 오전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재판부의 엄중한 판결과 중형 선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재희 파주주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으킨 일반 이적죄의 피해자가 곧 접경 지역 주민이라며, 이번 재판에서 중형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민은 "재판부는 갈등할 게 아니라, 여론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며 "검찰은 30년 최고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그 30년을 온전히 선고해야 된다고 접경 지역 주민은 주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윤석열 정권이 쿠데타 시도 직전에 벌인 대북 삐라 사건, 평양에까지 드론을 날린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윤석열 같은 전쟁광들이 간혹 불장난을 치면 지금이라도 전쟁은 벌어질 수 있고 그 화마는 전 대한민국을 뒤덮을 것"이라며 "대한민국에서 전쟁 참화, 평화 위협 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엄벌을 받는다는 경종을 울리는 재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문 낭독 모습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윤석열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퍼포먼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윤석열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퍼포먼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전지예 평화주권행동평화너머 공동대표는 2024년 12.3 계엄의 본질은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외환죄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세계가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고, 미중충돌의 격전지인 우리나라는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외환죄를 엄벌하지 않는다면 내란세력, 전쟁세력이 이 위기를 이용해 다시 날뛸 것"이라며 "무엇보다 (재판부의) 엄중한 처벌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김덕진 한반도평화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이 대북 전단에 왜 집착했는가를 지적하며,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게 하려던 의도가 있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무인기를 보내 전단을 살포해 위기를 만들고 국민들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몰아가려고 했던 대통령이 이 나라를 3년이나 지배했다는 것이 너무나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만행에 사법부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자화견문 낭독이 끝난 이후에는 감옥에 갇혀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그린 포스터를 향해 '엄중처벌'이 적힌 대형 의사봉을 치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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