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조선의 ‘비핵화’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6.24 07:01
  •  
  •  댓글 0
 
 

조선은 핵보유국이다. 오래된 ‘핵 가질 결심’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이 아니다. 미국의 전술핵은 1958년부터 한국에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의 핵은 미국의 핵위협, 적대정책, 체제전환 압박, 군사계획, 금융봉쇄가 장기간 누적된 결과물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6자회담에 일말의 기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은 작계 5029에 따른 주한미군의 대북 압박 강화, 전략적 유연성에 기초한 한국의 전초기지화, BDA 자금동결 등을 보면서 기대를 접었다.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판을 바꾸는 것만이 조선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

 

조선은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했다. 팀스피리트 훈련과 IAEA의 특별사찰 요구를 탈퇴 이유로 들었다. 6월에는 미국과의 협상 끝에 탈퇴 ‘효력 발생’을 유보했다. 1994년 봄 조선이 영변 원자로에서 사용후 연료봉을 꺼내 재처리할 가능성이 커지자 펜타곤은 군사옵션을 검토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미국은 10월 조선은 제네바합의를 체결한다. 조선은 영변 5MW 원자로, 재처리시설, 50MW, 200MW 흑연감속로 건설을 동결한 다음 최종 해체하기로 했고 미국 측은 KEDO를 통해 경수로 2기와 연간 중유 50만 톤을 제공하기로 했다.

2001년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 재검토에 들어갔고 2002년 조선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미국의 핵태세 검토와 선제공격 분위기로 조선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해 경계심을 높였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한 후 조선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를 조선이 시인했다고 주장했지만 조선은 부인했다. 11월 KEDO는 중유 제공을 중단했고, 12월 조선은 제네바합의로 동결됐던 원자로와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하고 IAEA 봉인과 감시 장비를 제거했다. 제네바합의의 붕괴다.

조선은 2003년 1월 NPT 탈퇴를 선언했고, 2월에는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7월에 조선은 8,000개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미국 측에 통보했다. 이때부터 조선은 ‘핵 억제력’을 공공연히 거론하기 시작했다. 제네바합의가 막고 있던 플루토늄 경로가 다시 열렸고, 북핵은 협상 카드에서 실제 무기화 단계로 더 가까이 이동했다. 2003년 8월 중국 주재로 첫 6자회담이 열렸다. 조선은 불가침조약, 관계정상화, 경수로·중유·식량 지원을 요구했고, 그 대가로 핵시설 폐기와 미사일 시험, 수출 중단을 제안했다.

이 무렵 한국이 대북정책에서 지렛대를 행사하려 하다가 미국의 동맹 교육에 압살당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3년 9월 25일 유엔총회 계기에 윤영관 외무장관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회담한다. 언론 폭로에 따르면 윤 장관은 파월 장관에게 “미국이 북핵문제에서 양보하지 않는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검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한다. 파월은 “그것은 동맹국 간에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어설픈 전략으로 개망신한 사례다. 이라크 파병 거부 따로, 대북 입장 완화 요구 따로 했어야 했다.

한미연합사는 한반도 전쟁 발발시 미국이 병력 약 69만 명까지 증원한다는 작계 5027에 이어 2004-5년 당시 조선 정권 붕괴, 쿠데타·내전, 대규모 탈북 등 급변사태에 대응한다는 차원의 작계 5029를 작성하려고 시도했다. 아울러 미국은 주한미군의 증원과 역내 출동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중국은 반발했고 2004년 11월 라오스 개최 ASEAN+3 때 노 대통령은 원자바오 총리에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생각은 전혀 달랐다.

조선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단순한 병력 조정으로 보지 않았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한미군을 한반도와 동북아 어디에나 투입할 수 있는 기동군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보았다. 2005년 5월 조선중앙통신은 미국 고위관리들의 발언을 들어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비상사태 때 세계 각지의 미군을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게 하는 구상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에게 그것은 감군이 아니라 압박의 방식 변경이었다. 병력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더 넓은 전장과 더 큰 규모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정확한 평가였다.

조선은 2005년 2월 “핵무기를 제조했다”고 공개 선언한다. 5월에는 영변 원자로에서 8,000개 폐연료봉 인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고, 6월에는 재처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은 협상 입지를 높였다. 핵무기 보유 선언은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향후 핵실험의 예고였다. 그 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고, 조선은 모든 핵무기와 기존 핵프로그램 포기, NPT와 IAEA 안전조치 복귀를 약속했다. 미국은 한국에 핵무기가 없으며 조선을 핵무기로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했다. 또 에너지 지원,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평화체제 논의 원칙이 들어갔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 나흘 전 미 재무부는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애국법 311조에 따른 ‘주요 자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BDA가 조선 정부기관과 전위회사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했고, 위조 달러·마약·위조 담배 등 불법 활동을 용이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약 2,500만 달러의 조선 자금이 동결됐다. 미국 입장에서는 핵 협상과 별개의 불법금융 차단 조치였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체제의 해외 결제망을 겨냥한 금융 봉쇄로 받아들였다. 이 조치가 9·19 합의의 이행 동력을 빠르게 잠식했다.

2005년 11월 5차 6자회담이 열렸지만, 조선은 BDA 동결자금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고 협상은 진전되지 않았다. 2006년 4월 김계관 부상은 미국이 BDA 동결을 풀면 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BDA는 단순한 돈 2,500만 달러 문제가 아니었다. 조선이 보기에 이는 미국이 9·19 합의로 관계정상화, 상호존중 약속을 하면서 그 배후에서는 조선을 타격하기 위한 덫을 놓고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니 조선이 얻은 결론은 분명했다. 핵을 포기하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핵을 포기하는 순간 협박당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2006년 10월 3일 조선 외무성은 “앞으로 안전성이 확고히 담보된 조건에서 핵시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한다. 동시에 선제 핵사용 금지, 핵이전 금지, 한반도 비핵화 노력도 언급했다. 조선은 핵실험을 단순 군사행동이 아니라 “억제력 입증”이자 “협상 지위 상승”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드디어 10월 9일 조선은 풍계리 인근에서 1차 지하 핵실험을 실시한다. 조선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과시한 것이다. 6자회담은 이후 재개되지만, 이제 협상은 “핵개발 방지”가 아니라 “이미 핵실험을 한 조선의 핵능력 동결·폐기” 문제로 성격이 바뀐다.

2007년 9월 말 다시 6자 회담이 열렸다. 10월 3일 채택된 6자회담 합의서는 조선의 일반적인 핵 비확산 약속을 문서화했다. 10월 3일 김정일 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은 하루 종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회의 중간에 김계관이 노무현에게 최근 6자회담의 결과를 브리핑했다. 최종 선언문에는 2007년 12월 31일까지 조선과 미국이 해야 할 의무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이 폭파되었고 북조선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한다는 발표도 있었지만 6자회담의 합의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

결국 조선은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으로 전 세계에 자신이 핵보유국임을 선포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조선은 2017년 9월 3일 ICBM 장착용 수소탄 실험을 마침으로써 총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완료했다. 할 때마다 핵 능력의 고도화를 선보였다. 인도와 파키스탄 역시 1974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총 6기의 핵장치를 폭발시킴으로써 전 세계에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조선이 몇 번의 ‘핵 콘서트’를 더 해야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인가.

이런 형국에 조선의 비핵화라는 어휘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대화의 ‘문턱’에 올리든 먼 훗날의 ‘출구’라면서 지금 올리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먼 훗날’의 일이라면 그 때 가서 말할 일이다. 지금 누가 미국, 러시아, 중국의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는가. ‘먼 훗날’의 일이라면 그 때 가서 모든 핵보유국들의 비핵화를 말하면 된다. 비트겐슈타인의 『트락타투스』 마지막 명제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지금의 의제는 핵전쟁 방지, 군비통제, 그리고 평화체제일 뿐이다.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재심 무죄 8건' 임휘윤…간첩조작 묻자 "쓸데없는 소리"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다른 기사 보기사회

  • 입력 2026.06.25 09:20

  • 수정 2026.06.25 09:22

  • 댓글 0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임휘윤 편

김제 출신으로 TK들 차지하던 공안·강력부장

1981년 학림사건 안강민·김경한과 공판 진행

박동운 재일간첩 고문조작 "기억 자체가 없다"

김태홍 조작 사건 "그 말이 그 말 아니오" 억지

송씨 일가 간첩단 핑퐁재판의 또다른 주역

최양준, 오주석, 김장호 등 모두 재심에서 무죄

초원 복집 사건을 도청 사건으로 본말 뒤집어

승승장구 검찰 인생, 이용호 게이트로 마감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임휘윤(任彙潤, 1944~2021) 항목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그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했던 말이었다. 2018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가 박동운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에 대해 물었다.

"한 분은 사형 선고 받으시고 한 분은 10년 선고 받으셨는데, 그분들 사건에서 전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임휘윤의 대답은 이랬다.

"전혀, 기억 자체가 없고 나는 정상적으로 처리했겠지."

그리고 "영장 없이 체포가 되고 고문이 있었는데"라는 후속 질문에는 "쓸데없는 얘기 말고 돌아가쇼"라고 쏘아붙여 인터뷰를 끝냈다.

이 한마디가 임휘윤이라는 인물을 가장 정확하게 압축한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재심 무죄 사건의 검사, 무려 8건이었던 사람의 마지막 말이 "돌아가쇼"였다.

 

임휘윤(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호남 출신으로 TK의 자리를 차지

임휘윤은 1944년 4월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1962년 이리(익산) 남성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1970년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이 동기에는 양승태(1948~ ), 김승규, 이종찬, 강재섭 등이 있다. 1973~75년 육군법무관으로 복무한 뒤 전주지검 검사로 시작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흥미로운 지점을 짚는다.

"TK 출신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는 서울지검 공안1, 2부장과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 대검 강력부장 등을 지냈다."

호남 출신이 TK 카르텔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는 것이 그가 얼마나 철저한 충성으로 인정받았는지를 보여준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냉정한 기술자'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이 떠오른다. 동독 슈타지의 일부 심문관들은 신념이 아니라 직업적 효율성으로 움직였다. 그들에게 피의자의 고통은 업무의 변수일 뿐이었다. 임휘윤이 제일교포 유학생으로 한국어 구사력이 완전하지 않았던 김태홍에게 사형을 구형하면서 보인 태도가 그렇다. 우리말이 서툰 김태홍이 자신이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옆자리에 있던 친구에게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인권 감수성이 거의 없는 임휘윤에게 그것은 일상적인 절차였을 뿐이다.

 

‘재일동포 간첩사건’ 김태홍씨 재심 무죄', 김민경 기자, 한겨레신문, 2017-06-15

1981년 학림사건, "쓸데없는 소리"의 시작

임휘윤의 반헌법 행위 첫 정점은 1981년 학림사건이다. 전민노련-전민학련 사건으로 이태복, 이선근 등이 무리한 고문 조작 수사를 당했다. 임휘윤은 안강민(1941~ ), 김경한(1944~ ), 박순용(1945~2026)과 함께 이 사건의 1·2·3심 공판검사로 관여했다. 피해자들은 검사 앞에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텐데 누가 책임 질래"라는 협박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2012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31년 만이었다.

 

“늦었지만 진실 밝혀져 다행”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두 번째) 등 ‘학림사건’ 연루자들이 7일 서울 명동 민들레영토 카페에서 진실화해위의 발표를 환영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81년 ‘학림사건’ 신군부가 조작했다”, 경향신문. 2009.07.07

박동운 사건, "기억 자체가 없다"

같은 해 임휘윤은 박동운 간첩조작 사건도 담당했다.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남파간첩이라는 가정에 가정을 거듭해 24년간 고정간첩 활동을 했다는 죄목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박동운은 사형, 무기징역을 거쳐 18년을 복역했다. 어머니와 동생, 작은아버지까지 옥살이를 했다. 2009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바로 이 사건에 대해 임휘윤은 30여 년 뒤 카메라 앞에서 "기억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2009년 11월 13일,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던 날. 오른쪽부터 피해자 박동운씨, 한등자씨. ⓒ 진실의힘 제공

김태홍 사건,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1981년 재일한국인 유학생 김태홍 간첩조작 사건에서 임휘윤은 35일간 보안사 불법구금 끝에 만들어진 자백을 그대로 받아 기소했다. 김태홍이 "북에 갔다 온 적은 있지만 간첩행위는 안 했다"고 항변하자 임휘윤은 "그 말이 그 말 아니냐"며 듣지 않았다. 김태홍은 우리말이 서툴러 자신이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옆자리 친구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15년을 복역했다. 2017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최종 무죄 확정 받은 재일교포 조작간첩 피해자 김태홍 씨.(뉴시스, 2013.11.23.)

송씨 일가, 핑퐁재판의 또 다른 주역

1982년 송씨 일가 간첩단조작 사건에서 임휘윤은 김경한과 함께 수사를 맡았다.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됐지만, 안기부와 검찰이 법원에 공작을 펴 끝내 유죄를 받아냈다. 임휘윤은 피해자 송기준이 안기부에서 한 진술을 부인하자 안기부 수사관을 다시 불러 "이 사람 또 부인한다, 이야기 좀 잘 해주지"라며 협박했다. 송기준은 평화박물관 면담에서 "임휘윤 검사 얼굴이 지금도 빤하지, 뭐. 꿈에도 자꾸 나오는데…"라고 증언했다.

 

1982년 '송씨 일가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인 송기복 씨가 2008년 10월 29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민변과 참여연대가 검찰 6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개최한 '검찰의 과거사 반성 촉구 및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증언하고 있다. 2008.10.29. 연합뉴스 자료사진

8건의 재심 무죄, 가장 많은 기록

임휘윤이 담당한 사건들, 학림사건, 박동운, 김태홍, 송씨 일가, 최양준, 오주석, 김장호, 함주명은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한겨레는 임휘윤을 "가장 많은 재심 무죄 사건의 검사"로 보도했다.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 본질을 뒤집다

검사로서 출세를 이어가던 임휘윤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의 선거법 위반 수사책임자였다.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선거에 개입한 이 사건에서, 임휘윤은 사건의 본질을 선거법 위반이 아닌 도청 사건으로 뒤집는 역할을 했다. 권력의 부정행위를 들춰내기 위해 도청 장치를 심은 이가 오히려 처벌 대상으로 몰렸다.

검찰의 꽃까지, 그리고 이용호 게이트로 추락

임휘윤은 1998년 대검 강력부장, 1999년 서울지검장, 2000년 부산고검장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1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사표를 제출하며 검찰 인생이 끝났다. 정치권 진출설이 돌았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임휘윤(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동독 슈타지 심문관들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신념이 없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념 없는 잔혹함이 더 무섭다. 임휘윤이 보여준 "기억 자체가 없다"는 태도는 신념의 부재가 아니라 책임의 완전한 외면이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임휘윤의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네"를 떠올렸다. 사형 선고와 18년 옥살이를 만든 사람이, 30여 년 뒤 카메라 앞에서 그 일을 "쓸데없는 얘기"로 치부했다. 그 무책임이 공안검찰의 가장 깊은 병폐였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호남 반도체 투자, '민심 달래기용 말잔치' 아니라면 3가지 지켜야

[반도체 특별과외] 용인 중단 없는 호남 반도체는 희망고문... 대만·유럽 팹까지 품는 RE100 허브 돼야

26.06.25 06:55최종 업데이트 26.06.25 06:55

반도체 팹 내부의 모습. 호남 RE100 반도체 산단에 필요한 건 전공정 팹(FAB)입니다.이봉렬

최근 언론을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 지역에 수백조 원을 투자해 전공정 팹(Fab·반도체 생산라인)을 포함한 반도체 제조 시설을 짓는 방안을 정부와 조율 중이라는 대형 속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반도체 특별과외 연재를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반도체 제조 시설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호남 RE100 반도체 산단'의 필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입장에서 무척 반갑고 가슴 뛰는 소식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인재도, 인프라도, 대기업 공장도 모두 수도권으로만 쏠리는 극단적인 일극 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 결과 지방은 소멸해가고 수도권은 과밀화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반도체 전공정 팹 하나가 들어서면 수만 개의 고품질 일자리와 수백 개의 협력업체가 함께 움직입니다.

호남에 대규모 반도체 거점이 조성된다면 청년 인구의 유출을 막고, 교육·의료·문화 인프라가 동반 성장하는 강력한 지역 경제 생태계가 구축될 것입니다. 지방 분권을 외치는 백마디 구호보다, 제대로 된 팹 하나를 지방에 세우는 것이 진정한 균형발전의 마침표가 됩니다.

여기에 더해 이미 닥쳐온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 즉 RE100 캠페인에 우리 기업들이 온전히 동참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이기도 합니다. 현재 애플, 엔비디아,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공급망 전체에 2030년까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하라며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전공정 팹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대표적인 전기 먹는 하마입니다. 현재 전력 부족과 송전 선로 포화 상태에 직면한 수도권에서는 청정 에너지를 조달할 방법이 전무합니다.

반면 호남은 대한민국에서 신재생 에너지 잠재력이 가장 풍부한 곳입니다. 전남의 해상 풍력과 전북 새만금의 대규모 태양광 단지는 청정 전력을 현장에서 곧바로 팹에 공급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호남 반도체 산단은 국가 탄소 중립 실현은 물론, 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반도체를 사지 않겠다는 글로벌 바이어들의 칼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이렇듯 중차대한 돌파구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닙니다. 여전히 '호남 RE100 반도체 산단'의 본질적인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떻게든 임기응변으로 상황만 모면하며 시간을 벌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팹 조성 과정에서 심도 있게 다뤄야 할 핵심 사안들도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습니다. 다음 주로 예상되는 공식 발표가 단순한 지역 민심 달래기용 말잔치나 먼 미래의 양해각서(MOU)로 끝나지 않으려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구조적 전환과 핵심 조건들이 명시되어야 합니다.

용인 산단 중단이 먼저… 시차 둔 투자는 안 하겠다는 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 2026-01-26연합뉴스

호남 반도체 산단이 단순한 말잔치로 끝나지 않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현재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조성을 과감히 중단하거나 전면적인 속도 조절에 나서는 것입니다.

기업이 동원할 수 있는 자본과 인력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수백조 원을 쏟아부으며 대규모 공장을 짓는 와중에 동시에 호남에도 전공정 팹을 올린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만약 이번 발표가 용인 산단을 다 짓고 난 후, 2030년대 후반이나 2040년대에 호남 투자를 시작하겠다는 식의 순차적 계획이라면, 이는 냉정하게 말해 시간 끌기용 카드이자 대국민 희망 고문일 뿐입니다.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보입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24일 관훈클럽 초청 관훈토론회에서 "용인에 짓기로 한 것을 짓지 않고 지방으로 간다는 차원이 절대 아니다"라며 논의 중인 지방권 투자는 용인 이전이 아닌 "새로운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관련 기사 : 김용범 "호남·충청 반도체 클러스터, 용인 짓기로 한 것 옮기는 것 아냐"). 이건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도권 집중을 막고 RE100 요구에 부합하려면 호남 산단이 지금 즉시 시작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타임라인이 빠진 발표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평택 P6 라인 완공 및 가동 이전에 호남 투자를 시작해야 하고,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 1공장(팹)을 지은 후 2공장으로 넘어가기 전, 바로 호남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가 경제의 리스크를 줄이고 에너지를 찾아 움직이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RE100 달성 목표 시기를 은근슬쩍 2050년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은 이미 '2030년'으로 데드라인을 못 박아두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발표에 명확한 타임라인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리스크 분산의 묘수

두 거인 기업의 투자 소식에 호남 지자체들이 제 살 깎아먹기식 유치 경쟁을 벌이거나, 반대로 특정 한 지역에 두 회사의 팹을 몽땅 몰아넣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반도체 팹을 지방으로 분산하려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지정학적·인프라적 리스크 해소에 있습니다. 과거 미국 텍사스 한파로 오스틴의 삼성 팹이 멈추거나 대만 지진으로 TSMC 라인이 멈췄을 때 글로벌 공급망이 어떻게 요동쳤는지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한 지역에 모든 시설을 몰아넣으면 전력, 용수, 가스 등 인프라에 가해지는 부담이 임계점을 넘게 되고,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나 사고 발생 시 국가 반도체 산업 전체가 마비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따라서 호남 내부에서도 철저한 분산 배치가 필요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시나리오는 한 회사는 전북에, 다른 한 회사는 전남·광주권에 배치하는 전략입니다.

전북은 새만금을 포함해 광활한 부지와 서해안의 풍부한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를 바탕으로 대규모 전공정 팹을 안정적으로 수용하기에 최적입니다. 전남·광주는 이미 앰코코리아를 비롯한 글로벌 후공정(패키징) 기업들의 기반이 탄탄하게 닦여있는 만큼, 이를 연계한 첨단 반도체 전·후공정 벨트를 조성하기 유리합니다. 양사를 전북과 전남으로 나누어 배치할 때, 인프라 과부하를 막고 호남 전체가 골고루 발전하는 상생의 시너지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K-반도체의 한계 깨기… TSMC·UMC와 유럽 팹까지 품어야

마지막으로, 이번 호남 반도체 산단 조성을 국내 대기업 두 곳만의 유치전으로 제한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 반도체는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이지만, 정작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자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등) 시장에서는 세계 점유율이 단 3% 안팎에 불과한 고질적인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이 한계를 깨부수기 위해 대만의 TSMC, UMC 같은 세계적인 파운드리 기업이나 인피니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같은 유럽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회사들의 팹을 호남으로 유치하는 글로벌 오픈 전략을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펼쳐야 합니다.

현재 대만과 유럽의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과의 지정학적 위기 분산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동남아(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와 미국, 일본 등지에 공격적으로 해외 팹을 짓고 있습니다. 그들이 새로운 부지를 선택할 때 가장 골머리를 앓는 핵심 요소가 바로 안정적인 재생 에너지와 정교한 제조 생태계입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전력·용수 인프라의 안정성, 숙련된 엔지니어 풀, 그리고 반도체 장비·소재 공급망의 성숙도 측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앞서 있습니다. 여기에 호남의 압도적인 재생 에너지 환경과 파격적인 세제 혜택, 인허가 특례 등 국가 차원의 딜이 결합한다면 글로벌 공룡 기업들을 끌어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해외 유수 기업들의 팹이 호남에 둥지를 트는 순간, 대한민국은 메모리 편중을 벗어나 명실상부한 세계 시스템 반도체의 허브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북극의 한기가 미국 텍사스까지 내려 오는 극심한 기후 변화의 시대입니다. 반도체 팹 분산배치야말로 반도체 산업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입니다.NASA

이번 호남 반도체 투자설이 단순히 지역 민심을 의식한 정치적 수사나 구두 선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못 박아둔 2030년 RE100이라는 데드라인은 이제 불과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용인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호남의 RE100 전공정 팹을 착공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정부와 대기업이 내놓을 발표문에는 '수백조'라는 화려한 숫자 뒤에 숨은 모호한 미래 대신, 용인 중단과 호남 즉시 시작이라는 구체적인 로드맵과 타임라인이 반드시 박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빠진 발표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번 발표가 대한민국 반도체의 대전환이자 진정한 국토 균형 발전의 위대한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현장의 노동자들과 지역 시민 사회, 그리고 언론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도체 #호남RE100반도체산단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고노(日) '미 중심+나토 확대', 에반스(호주) '미 없는 비강대국 주도'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6/25 09:32
  • 수정일
    2026/06/25 09: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26 제주포럼서 논한 '미국없는 아사이태평양의 미래' 

  • 기자명 제주=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6.24 23:28
  •  
  •  수정 2026.06.25 07:58
  •  
  •  댓글 0
 
'분열의 시대, 협력의 재구상'을 대주제로 삼아 24~26일 제주도 해비치호텔&리조트 제주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제21회 제주포럼.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진행한 '미국없는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 : 아시아 지도자의 시각(Asia -Pacific in the age of America First : Asian Leader's View)' 소주제 프로그램에 토론자로 나선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 군축리더쉽 네트워크'(APLN) 의장과 고노 타로 일본 중의원 의원 [사진-ㅌ홍일뉴스 이승현 기자]
'분열의 시대, 협력의 재구상'을 대주제로 삼아 24~26일 제주도 해비치호텔&리조트 제주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제21회 제주포럼.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진행한 '미국없는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 : 아시아 지도자의 시각(Asia -Pacific in the age of America First : Asian Leader's View)' 소주제 프로그램에 토론자로 나선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 군축리더쉽 네트워크'(APLN) 의장과 고노 타로 일본 중의원 의원 [사진-ㅌ홍일뉴스 이승현 기자]

세계 곳곳에서 빈번해지는 전쟁과 분쟁은 국제규범의 붕괴와 집단안보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며, 기존 국제질서의 구조적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우선주의' 시대에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에 대한 안보공약(Security Commitment)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는 것 자체도 직면한 도전이 만만치 않다는 걸 보예준다.  

'분열의 시대, 협력의 재구상'을 대주제로 삼아 24~26일 제주도 해비치호텔&리조트 제주와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제21회 제주포럼.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진행한 '미국없는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 : 아시아 지도자의 시각(Asia -Pacific in the age of America First : Asian Leader's View)' 소주제 프로그램에 호주 외교장관을 지낸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 군축리더쉽 네트워크'(APLN) 의장과 아베 총리시절 외무상과 방위상을 역임한 고노 타로 일본 중의원 의원이 토론자로 참가해 확연히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고노 타로 일본 중의원 의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노 타로 일본 중의원 의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노 의원은 "유럽은 미국없이 가는게 어렵긴 하지만 플랜B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로서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 필요한 것은 '플랜A+'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플랜A+'에서 '+'는 유럽을 의미한다. 

그는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나토를 태평양지역으로 확대해서 '나프토'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하면서, "일본과 한국,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등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국가들이 이를 조인함으로써 나토가 지역 조직이 아니라 글로벌 방위조직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서슴없이 주장했다.
 
특히 "일본과 한국의 경우, 경제 뿐만 아니라 안보에 있어서 미국이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 때문에 마주 앉아서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군사긴장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 나아가 나토 확장 계획까지 적극 끌어들이려는 일본 당국의 인식을 드러낸 것. 

지금 일본은 '국방비 증액과 방위산업 육성, 무기수출'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지금 방위산업을 너무 잘하고 있는 한국을 존경한다. 한일간에 방위산업 동맹을 키워 나가기 바란다"는 언급까지 나왔다.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중국이 남중국해에 이른바 인공섬을 건설하는 걸 사실상 용인한 것부터 트럼프 1기에서도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것까지 문제가 많으며, 이 때문에 지금 중국이 과거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 영내의 안전보장을 위해 미국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 고노 의원의 의견이다.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 군축리더쉽 네트워크'(APLN) 의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 군축리더쉽 네트워크'(APLN) 의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에반스 의장은 2003년 이라크전을 필두로 미국은 테러가 발생하는 원인을 제공하거나 스스로 저지르고, 무역전쟁을 촉발하고 빈부격차를 더 크게 만드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하면서 지금은 더 이상 희망과 협력과 꿈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남중국해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문제삼아 중국과 러시아에 그 원인을 돌리기도 하지만, 국제사회의 규칙과 다자주의를 무시하고 있는 미국도 그런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에서도 이제 미국의 동맹에 대한 약속, 미국이 옳은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은 사라진지 오래됐다"고 하면서 "일본, 한국, 호주, 인도네시아, 인도와 같은 비강대국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해 예전의 질서를 다시 복원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 우월주의는 대의를 잃고 멀어져가고 있다고 하면서, 이제 중국의 '굴기'에 대해 좀 더 이성적인 접근법을 취함으로써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전략적 안정'의 시작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주장이 미국과의 동맹을 버리자는 것은 아니며, '정보 인텔리전스'나 고부가가치 방위기술 등 필요한 혜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균형을 맞춰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의 동맹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다른 국가들과 협력을 통해서, 미국이 하지 않고 못하는 것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이다.

고노 의원이 '플랜A+'를 말한 반면, 에반스 의장은 지금과는 다른 '플랜B'를 강조한 것.

문정인 교수는 이를 두고 고노 의원은 '일본의 전통적인 현실주의자', 에반스 의장은 '미국식이 아닌 호주식 국제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고 촌평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청래 사퇴 ‘명·청 대전’ 본격화… 중앙일보 “권력다툼에 민생 소홀 없어야”

[아침신문 솎아보기] 정청래 사퇴, 사실상 당대표 연임 도전 공식화

동아일보 “2028년 총선 공천권 행사하는 만큼 갈등 격화 가능성”

한겨레 “상호 감정적 비방 대신 정책 중심에 둔 경쟁 이뤄져야”

증인 없는 한성숙 총리 후보 청문회, 경향신문 “정상 아니다”

기자명윤유경 기자

  • 입력 2026.06.25 07:10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정청래 대표 페이스북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당대표 연임 도전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25일 주요 신문들은 이 소식을 1면에 실으며 오는 8월17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여당 내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문들은 전당대회가 계파 간 권력다툼이 아닌 비전과 정책 경쟁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청래 연임 도전, 여당 내 갈등 가속화 전망

정 대표는 지난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당대표직을 내려놓는다”며 “오직 민심, 오직 당심만 보고 저의 길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과 자신의 관계를 “동지이자 전우”라고 표현하며 “정치적 운명공동체이자 한 몸 공동체”라고 했다. 그는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야당 탄압, 정적 제거, 이재명 죽이기에 맞서 이 대표의 가장 옆자리에서 함께 싸웠다”며 “이 대통령과의 의리는 누가 뭐래도 정청래가 맨 앞자리에서 지킨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 대표는 “이재명 정부는 중도 실용을 주창하지만 한시도 개혁의 과제를 멈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자신이 민주당의 정통임을 주장했다. 첫 외부 공식 일정으로도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아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택했다.

▲ 25일 경향신문 1면.

신문들은 정 대표의 연임 도전 가시화로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여당 내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향신문은 1면 기사에서 “6·3 지방선거 후 당 지도부 책임론, 지지율 하락 등으로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 대표가 연임 수순을 밟으면서 여당 내 갈등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진 기사에서도 “당내에서는 이 대통령이 SNS 글과 공항 환송 행사 미초청 등으로 정 대표에 대한 불편함을 여러 경로로 표현해온 만큼 정 대표가 집권 초기 안정적 당·청관계를 위해 불출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 역시 1면 기사 <정청래 연임 도전… ‘명청대전’ 시작됐다>에서 “정 전 대표가 친명계의 잇따른 불출마 요구에도 당권 연임 배수진을 치면서 여권 분열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며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되는 당 대표는 2028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는 만큼 갈등이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고 했다.

▲ 25일 조선일보 5면.

조선일보는 기사 <오전에 “李대통령과의 의리” 외친 정청래, 오후에 文 찾아갔다>에서 정 대표가 사퇴 발표 직후 문 전 대통령과 만난 것을 두고 “친노·친문 세력을 결집해 이기겠다는 노골적 메시지”라는 말이 나왔다며 “최근 친명·친청 갈등은 신주류 ‘뉴이재명’과 친노·친문 등 세력 간 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인데, 정 대표가 문 전 대통령과 ‘투샷’ 장면을 연출하자 불편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권력다툼에 민생 소홀 없어야”

전당대회는 정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 송영길 의원 간 3파전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당내에서는 친이재명계 중심의 지지층을 공유하고 있는 김 총리와 송 의원이 결국 단일화할 것이란 전망도 많다.

동아일보는 ‘명청(이 대통령과 정 대표) 대전’ 구도가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동아일보는 “정 전 대표가 사퇴 후 문재인 전 대통령을 찾는 일정으로 당권 레이스를 시작하는 등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과의 연대 구축에 나서면서 2028년 총선 공천권을 쥔 차기 당 대표를 두고 이른바 ‘반청(반정청래) 연대’와의 대결 구도가 격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고 했다.

▲ 25일 한겨레 1면.

한겨레 역시 1면 기사 <정청래 연임 도전장 ‘명·청대전’ 격해진다>에서 “청와대 친명계의 강한 반대 속에 정 대표가 ‘정면 돌파’에 나섬으로써 ‘명-청 대전’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어진 기사에서도 한겨레는 “당내 반정청래 인사들은 물론,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 대표 체제 연장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연거푸 밝힌 터라 전대는 ‘명-청 대결’ 구도로 굳어졌다”면서 “전대 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은 치명상을 입는 것이 불가피해진만큼, 경쟁이 사생결단식으로 전개될 우려도 제기된다”고 했다.

당내 계파싸움이 과열되는 가운데, 신문들은 이번 전당대회가 비전과 정책 경쟁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현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의 당 운영을 성찰하고 무엇을 쇄신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답을 찾아야 한다”며 “민주당은 국회 운영이나 선거 등에서 12·3 내란 극복을 위해 손잡은 정당들과 연합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회 과반 의석의 힘으로 검찰개혁·사법개혁 등 각종 개혁법안들을 처리했지만 그중에는 충분한 공론화와 여론 수렴이 이뤄졌는지 따져볼 것도 있다. 강성 당원들 의사에 따른 당 운영이 중도 확장과 국민통합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는지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작금의 양상을 두고 “2028년 총선 공천과 차기 대권을 겨냥한 계파싸움 이상으로 비치지 않는다”며 “이제라도 당권 주자들은 퇴행적 계파투쟁에서 탈피해 이재명 정부 중반기 집권여당의 청사진을 들고 생산적인 경쟁을 해야 한다. 이 대통령도 전당대회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줄 만한 언행은 삼가는 게 옳다”고 했다.

한겨레 역시 사설에서 민주당을 향해 “지방선거가 ‘절반의 승리’에 그친 원인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민생경제 어려움에 대한 깊은 고민은 보이지 않고 권력투쟁에만 매몰된 듯한 모습에, 지방선거 뒤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 지지율보다 낮게 나올 정도로 지지층과 국민들의 시선은 냉랭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상호 감정적 비방 대신 비전과 정책을 중심에 둔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특히 정 대표는 연일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외치고 있어, 보완수사권 문제를 당권 경쟁의 불쏘시개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보완수사권 문제는 당권이 아닌 오직 ‘국민’을 중심에 놓고 최선의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 25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여권의 정치적 에너지가 권력투쟁 격화로 낭비된다면 시급한 민생 과제 역시 뒷전으로 밀리지 말란 법이 없다”며 “지금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갓 지난 시점이다.

정권 초기야말로 국정 동력을 극대화해 대선 공약을 이행하고 국가적 과제의 초석을 다질 시기”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여권이 민생 안정이나 정책적 고민은 뒤로 미룬 채 내부 투쟁을 계속하는 것은 집권 세력으로서의 책임감을 망각한 행태”라며 “6·3 지방선거에서 민심이 보낸 경고를 무시할 경우 여권 전체의 지지율 하락은 가팔라질 것”이라고 했다.

증인 없는 한성숙 총리 후보 청문회, 경향신문 “정상 아니다”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25~26일 이틀간 열린다. 국민의힘은 한 후보자의 다주택·불법증축 논란, 한 후보자가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으로 주도한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에서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등을 이유로 지명 철회를 요구했고, 민주당은 ‘정치 공세’라고 맞서고 있어 양측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번 청문회를 두고 경향신문은 증인과 참고인 없이 진행되는 점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이 신청한 증인·참고인 11명을 민주당이 모두 반대해 한 명도 채택되지 않은 것이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증인 없는 청문회’는 정상적이라고 하기 어렵다”며 “야당이 정치적 공세를 위해 증인을 신청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당이 이를 원천 차단하겠다며 모든 증인을 거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 25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이재명 정부에서 증인 없는 청문회가 당연시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모두 국민에게 오만하게 비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후보자의 자료 제출을 강제하고 증인 채택을 의무화하는 등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관련기사

신광영 동아일보 논설위원도 오피니언 ‘오늘과 내일’에서 증인·참고인이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사태를 비판했다. 신 위원은 “증인과 참고인이 없는 한 후보자 청문회는 교차 확인 없는 일방적인 해명만 듣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1년 전 김민석 총리에 이어 한 후보자까지도 ‘증인 0명, 참고인 0명’ 청문회를 열게 됐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0년 이후 총리 후보자 중 이런 청문회를 하는 건 현 정부에서 지명된 두 사람뿐”이라고 꼬집었다.

▲ 25일 동아일보 31면.

신 위원은 “민주당은 지난 정부에서 맹탕 청문회를 막아야 한다며 후보자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처벌하는 법안까지 추진했다. 그래 놓고 정권을 잡고 나니 ‘후보자 철벽 방탄’ 정당으로 돌변했다”며 “여당은 살살하고 야당은 세게 하는 반쪽짜리 청문회지만 증인·참고인 신문은 그나마 최소한의 검증을 위한 ‘룰’이다. 이마저 없으면 공직 후보자들은 의혹이 쏟아져도 답변을 미루다 청문회 하루, 이틀만 버티자는 전략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뒤이어 “민주당이 지금처럼 청문회 문턱을 허물어뜨리면 지금의 야당이 나중에 정권을 잡았을 때 똑같이 검증을 회피하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며 “그때 가서 민주당은 무슨 염치로 여당과 싸울 것인가. 그 틈에 부적격자가 고위공직에 오르는 걸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만 속이 타들어 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알게 된 한국 극우와 미국 마가(MAGA)의 관계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6.06.23 10:00
  •  
  •  댓글 0
 
 

친일에서 뉴라이트까지, 극우의 역사적 계보
상업 생태계로 진화한 음모론과 여론조작
한미 극우의 수직 하청 구조와 순환 공작
외세의 이름을 빌린 명백한 내정간섭
신임 주한 미국 대사가 가져올 위협
민주주의 파괴 공작을 직시해야 할 시점

선거가 끝난 지 20일이 지났지만, 투표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부정선거’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윤어게인’ 세력과 극우 유튜버, 혐오를 조장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결합하면서 온갖 음모론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을 단지 ‘참정권 침해에 대한 저항’으로만 보면 본질을 빗겨간다. ‘부실관리’가 ‘부정선거’로 변질된 현 사태는 내란세력이 주축이 된 한국 극우가 미국 마가(MAGA)의 선거 불복 프레임을 그대로 이식한 정치 공작이라고 봐야 한다.

친일에서 뉴라이트까지, 극우의 역사적 계보

이들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극우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해야 한다. 이들의 뿌리는 해방 직후 청산하지 못한 친일·부역 세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반공을 생존 무기로 삼은 군사 독재 정권과 이들에 기생한 수구 기득권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전통적인 반공주의에 신자유주의의 약육강식 논리, 그리고 “일본 덕분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사상적 기둥으로 삼았다.

이 세력은 2017년 노재봉 전 총리를 좌장으로 삼아 '한국자유회의'를 결성하고, 촛불집회를 체제 전복 세력으로 규정하는 등 우익 이데올로기 공세를 주도했다. 이후 이들은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김영호(통일부 장관), 김태효(국가안보실 1차장), 김광동(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등이 바로 그들이다.

상업 생태계로 진화한 음모론과 여론조작

이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대중을 포섭하는 방식은 대단히 치밀하다.

이들은 2010년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미국산 소고기 파동과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으로 수세에 몰릴 때마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 정보기관을 동원해 대규모 댓글 공작과 심리전을 감행했다.

이때 개발된 혐오적 은어와 역사 조롱 콘텐츠는 온라인 공간으로 침투했다.

유튜브와 온라인 게임 채팅창을 통해 일종의 ‘놀이 문화’이자 반사회적 배설구로 가공된 극우적 서사는 10~20대 젊은 남성층을 서서히 물들였다.

과거에는 국가 권력의 비밀공작이었던 여론 조작이, 이제는 자극적 음모론을 유포해 막대한 조회수 수익을 올리는 ‘유튜브 가짜뉴스 산업 생태계’로 진화하여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미 극우의 수직 하청 구조와 순환 공작

최근 양상은 토착 극우 진영이 미국 마가(MAGA) 세력과 수직계열화된 하청 구조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더 구체성을 띤다.

미국의 극우 진영이 부정선거 음모론과 종교 탄압 프레임 등 상층의 논리를 개발하면, 한국의 극우 세력은 이를 그대로 수입해 광장 동원과 온라인 확산을 실행한다.

2023년 미국 마가 세력과 트럼프 주니어 등이 참석한 '빌드업 코리아' 행사에서 한국 측 대표가 미국 마가를 모델로 삼아 활동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이 수직계열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미국 부통령 제이디 밴스 등 마가 핵심 자금책과 연계된 '락브릿지 코리아' 네트워크에 국내 정·재계 인사 및 대기업 회장이 동참하고 있는 점 또한 이들의 결탁이 단순한 일시적 연대를 넘어 조직화된 구조임을 증명한다.

 

이와 관련해 이병권 인문연구자는 “한미 극우 세력은 국내외 이슈를 상호 복제하며 증폭하는 여론 생산 기제를 가동한다”면서 “한국 극우 인사가 특정 사안을 왜곡한 유튜브 영상을 미국 측에 전달하면, 미국 극우 매체는 이를 '한국 교회의 탄압 실상' 등으로 인용 보도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극우 세력은 다시 이 미국 방송을 들여와 '미국 주류 사회가 주목하는 진실'이라며 국내 여론을 호도하는 순환 공작 체계를 완성했다”라고 폭로했다.

외세의 이름을 빌린 명백한 내정간섭

이 수직계열화 구조의 연장선에서 나타난 현상이 바로 미국 리버티대 교수이자 전직 국무부 국제형사사법대사인 모스 탄(한국명 단현명)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국제감시단’의 활동이다.

이들은 민간단체임에도 마가를 통해 미국 현 행정부와 연계된 듯한 인상을 주면서 국내 선거 시기마다 입국해 사전투표소를 무단 방문하는 등 국내 극우 유튜버와 결탁해 부정선거 음모론을 유포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 현장에서 ‘선거 집단 불복’을 유도하며 법치 시스템을 교란하는 불법 행태까지 자행한다.

이러한 외부 세력의 개입은 단순한 참관을 넘어 주권 국가의 선거 시스템을 폄훼하고 여론을 왜곡하는 정치개입이자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의 퇴행적 극우 음모론을 권위 있는 국제사회의 시각인 양 포장하여 국내 정치 갈등을 증폭시키는 도구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신임 주한 미국 대사가 가져올 위협

더욱이 미 연방 상원 인준을 통과해 공식 부임을 앞둔 미셸 스틸 신임 주한 미국 대사의 존재는 이러한 우려를 가중한다.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 출신인 그는 과거 미국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극우 마가(MAGA) 진영의 부정선거론 기조에 동조해 온 인물이다.

미국 내 선거 제도를 부정한 전력이 있는 인사가 주한 미국 대사라는 공식 외교 직책을 맡아 한국에 부임하는 현실은, 국내 극우 진영의 부정선거 프레임에 강력한 외교적·정치적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미국의 공식 외교관 지위가 한국 내 선거 불복 선동 세력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파괴 공작을 직시해야 할 시점

이러한 내외 요인들이 고착화될 경우 향후 치러질 총선과 대선 등 국가의 중대 선거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

합법적인 투표 절차와 결과에 대해 ‘국제 감시단’이 외교적 권위를 빌려 조직적·지속적으로 불복을 선동함으로써, 선거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사회적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투표지 부족 사태를 부정선거로 몰고 가는 선동은 미국의 선거 불복 운동인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el)'의 논리 구조를 그대로 복제한 하청 정치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대중의 욕망, 약자에 대한 혐오, 근거 없는 공포와 굴욕감이라는 사대 심리 기제를 자극하여 정교분리의 헌법 원칙을 무너뜨리고 종교와 정치를 일치시키는 파시즘적 사회 구조를 지향한다.

민주주의의 허점을 파고들어 내부에서부터 시스템을 와해시키는 한미 극우 세력의 수직 하청 구조와 상업화된 여론 공작, 그리고 외부 민간단체와 외교 경로를 빙자한 정치 개입의 실태를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반도 유사시 미 지상군 1%뿐…한국, 자주국방력 이미 갖췄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6/24 07:55
  • 수정일
    2026/06/24 07: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권혁철기자

  • 수정 2026-06-24 07:04

전작권 환수, 오해를 넘어

1회 한국군의 능력은 부족한가

이재명 정부는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하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일 제77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장병들을 사열하고 있다. 청와대 누리집

이재명 정부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공약하고 빠르면 2027년 말까지 마무리하려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우리 돈 내며 방위를 책임질 건데, 전작권을 미국이 왜 갖고 있느냐”고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 쪽은 전작권 전환은 시기보다 조건 충족이 우선이라는 태도를 보이며 시기 역시 2029년 1분기(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군사령관)를 제시했다. 한-미 간 온도 차가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한국군은 아직 능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겨레는 6·25를 계기로 3회에 걸쳐 전작권 환수 쟁점을 짚어 본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내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 회수되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지키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이 “크게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해야 맞겠죠”라고 하자 안 장관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전작권 환수는 군사주권을 회복하고, 유사시 전쟁을 스스로 수행하는 능력을 지닌다는 의미를 띤다.

하지만 보수 쪽은 “한국군은 아직 능력이 부족하다”며 ‘신속한’ 전작권 환수가 아니라 ‘신중한’ 전환을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군은 미군에 견줘 북한을 감시하는 정보자산이 부족하고, 정밀타격 능력이 제한적이며, 지휘통제체계도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유사시 한국 방어에 투입되는 한미연합 전력 가운데 미군 전력은 거의 없다.

지상군은 99%가 한국군 전력이다. 해군은 95% 이상, 공군은 90%가량이 한국군 전력이다.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이 전쟁을 대부분 책임져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현재 2만8500명인 주한미군 가운데 육군은 1만8천명, 공군은 8천명이다.

특히 주한미군은 전쟁 초 직접 전쟁을 수행하는 데 투입되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전쟁 초기 주한미군 지상군의 상당수는 미국인 대피작전에 투입된다”며 “미군은 한반도 작전계획에서 미군 전력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내일 전작권을 회수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자신감은 “대한민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국방력을 갖추게 됐다”(지난해 10월 국군의 날 기념사)는 판단에 터잡고 있다.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 등의 자료를 보면, 북한의 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024년 기준 약 43조7천억원 수준인데 같은 해 한국의 국방 예산은 59조4천억원이었다. 한국의 국방비가 북한 전체 국가경제 규모보다 많다. 남북 국방비 격차는 430억7천만달러 대 16억440만달러로 26배(2018년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로 추정된다. 북한은 국방비를 전체 예산의 15.8%까지 배정해 “자위적 핵억제력과 전쟁 수행 능력을 끊임없이 확대 강화해 나가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 국내총생산이 북한의 59배(2024년 기준)라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

전작권 환수가 본격 준비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한국군에 투자된 순수 전력증강비(인건비 등 제외)만 누적 규모로 176조3천억원이다. 이 돈은 전장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감시정찰, 상대 전략·전술 목표를 즉각 타격할 수 있는 정밀타격, 모든 전력과 정보를 통합해 순간적인 결정을 할 지휘통제 능력 건설에 주로 투입됐다. 한·미가 2014년 조건부 전작권 전환 합의 때 설정한 기준으로 알려진 정보감시정찰, 정밀타격, 지휘통제 능력에 집중적으로 전력을 강화한 것이다.

한국군은 과거 미국 정찰위성, 정찰기 등 미국 정보자산을 통해 북한 움직임을 파악해야만 했다. 2012년 탄도미사일을 탐지하는 그린파인 레이더를 도입하기 전까지 한국군은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쏴도 미국이 정보를 주지 않으면 그 사실을 몰랐다. 독자적인 대북 감시망을 갖추지 못한 한국은 미국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세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은 현재 한반도를 2시간 단위로 체크할 수 있는 독자 군사 정찰위성 5기를 운용 중이다. 향후 초소형 위성 30~40여기가 발사에 성공해 정찰위성들과 상호 보완적인 운용을 하면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 등 북한군의 위협을 거의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한국군은 이미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4대를 미국에서 도입해 북한을 감시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국내 첫 전략급 무인항공기인 중고도 정찰용 무인항공기 양산 1호기가 출고됐다. 이 무인기는 고도 10㎞ 이상 상공을 비행하며 지상 목표물을 실시간 감시한다. 이성춘 동국대 북한학과 대우교수(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는 “우리 군이 전작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정밀타격 능력에서도 한국군은 현무-2, 현무-3, 현무-4, 현무-5 미사일,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타우러스 등을 확보했다. 지난해 말부터 일선부대에 실전배치한 현무-5는 탄두 무게가 8톤가량으로 북한의 지하 벙커를 파괴하는 고위력 탄도미사일이다.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한국형 3축 체계(킬 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 중 대량응징보복을 완성할 핵심 무기로 꼽힌다. 지휘통제(C2)도 한국군은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를 기반으로 군 정보관리체계(MIMS) 등을 통합한 전장관리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안규백 장관은 지난달 31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미 상·하원 의원들을 만나 “한·미 양국이 2020년 전작권 전환 조건의 94%가 이미 충족됐다고 합의한 것을 포함해, 우리 능력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014년 당시 합의한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정보감시정찰, 정밀타격, 지휘통제 능력에서 이미 독자적 운영 수준을 달성했다”며 “한국군이 확보한 이 능력들은 미국·영국·프랑스·이스라엘 등 경제력과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군사강국이 보유 가능한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한국군 일부에서는 무인기 위협 증가 등 전쟁 양상 변화, 극초음속미사일 등 북한의 새 무기 개발 등에 대응해 전작권 환수 조건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군이 드론을 막을 능력이 부족하고 북한이 초대형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 각종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등을 섞어 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방공망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예비역·현역 장성들은 미군과 같은 하드·소프트웨어를 지녀야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전작권 환수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뀌는 조건을 계속 따라가면 전작권 환수는 기약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겠다고 했을 때도 시기상조론이 나왔고, 그로부터 거의 40년 동안 우리 군 능력이 많이 향상됐음에도 계속 같은 얘기가 나온다. 전작권 전환은 조건이나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이고 정책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성재 구속영장 두 번이나 기각한 판사들과 이진관

김호경 에디터

haojing610@mindlenews.com

다른 기사 보기

  • 법조

  • 입력 2026.06.24 06:00

  • 수정 2026.06.24 06:10

  • 댓글 0

징역 25년에 법정구속…영장전담 판사들은 왜?

참여연대 "납득 못 할 이유로 두 차례나 기각"

김남근 "법무장관이 내란 불법 몰라? 말이 되나"

"박성재 비상식적 변명 받아준 영장 심사 분노"

박정호·남세진 판사 "위법성 인식에 다툴 여지"

"증거인멸 염려도 없다"…필사적일 만큼 감싸기

'통상적인 업무 수행' 논리, 결국 조희대 엄호?

반면 이진관 재판장은 '국헌 문란' 서릿발 판시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2025년 11월 13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왼쪽, 연합뉴스). 박 전 장관이 지난달 4월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뒤늦게 국민께 죄송하다며 오열하고 있다(서울중앙지법 법정 중계 화면 갈무리).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가 22일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법정구속까지 단행하자 불과 7~8개월 전 박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조차 두 번이나 기각했던 영장전담 판사들의 결정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박성재 내란중요임무 종사 25년형 선고, 당연하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박성재는 '위법성 인식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등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법원에 의해 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된 바 있다"면서 "박성재는 검사장 출신의 법조인이자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내란의 불법성을 인식하고도 합법의 외피를 씌우려 했다. 또한 합수부 검사 파견 지시, 출국금지 관련 지시 등으로 적극적으로 내란에 가담했다. 그럼에도 두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피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선고는 법기술을 활용하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판결이다. 재판부는 박성재가 당시 비상계엄 선포의 국헌문란 목적과 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및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했다"면서 "국가권력 행사의 적법 절차를 감시하며 국민의 인권을 지켜야 할 법무부 장관이 오히려 내란에 가담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조치들을 지시하고 증거인멸까지 시도했으니 중형 선고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고 밝혔다.

변호사이자 주요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던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법무부 장관이 내란이 위법한지 몰랐다니, 말이 되나? 그런데 용케도 이런 변명으로 구속을 면하고 재판을 받았다"면서 "일반 국민도 12·3 계엄이 불법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수십 년간 법조인 활동을 해 온 법무장관이 12·3 계엄의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라고 박 전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상기하며 거듭 개탄을 금치 못했다.

김 의원은 "법무장관 박성재의 내란 혐의 재판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5·18 광주항쟁과 같은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던 내란에 대한 분노에 더해 그의 뻔뻔함과 이러한 비상식적 변명을 받아주는 구속영장 심사 재판에도 분노했다. 게다가 (계엄 직후 법무부) 간부회의에서 감찰관과 인권국장은 계엄의 위법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까지 했다"며 "내란의 주요임무에 종사하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일관하자 재판부는 25년이라는 중형의 철퇴를 내렸다. '계엄의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교묘한 법리를 동원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다 결국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영장전담 판사들과 이진관 재판장의 판단을 비교했다.

 

2025년 1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대화하고 있다. 2025.1.22. 연합뉴스

물론 기소 전 단계에서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영장실질심사와 실체적 유·무죄를 가리는 본안재판이 절차 및 성격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내란에서 중요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끝까지 회피와 거짓으로 일관했던 박 전 장관을 두고 사건의 중대성, 범죄 혐의의 소명, 증거인멸 우려 등에 있어서 영장전담 판사들과 이번 재판부의 시각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상식적인 시민의 관점에서 '구속영장 기각'과 '징역 25년 + 법정구속'을 같은 사법부의 잣대라고 수용하기는 힘든 것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14일 서울중앙지법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 전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구속의 상당성(타당성)이나 도주·증거인멸 염려에 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15일 새벽 영장을 기각했다. 박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나 인식한 위법성의 구체적 내용, 객관적으로 취한 조치의 위법성 존부나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면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수사 진행, 피의자 출석 경과 등을 고려하면 도주·증거인멸의 염려보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앞선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박 전 장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헌 문란의 목적의식'을 공유한 내란 목적범임을 조목조목 입증하고 법무부 실·국장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킨 직권남용 혐의도 포함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장관의 휴대전화에서 구치소 수용 현황 관련 보고를 받은 데이터가 삭제된 점, 사건 이후 휴대전화가 교체된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 우려도 강하게 제기했다. 그럼에도 박 부장판사는 '박 전 장관이 당시 계엄이 불법인지 몰랐을 수 있고 증거인멸 염려도 없다"는 요지로 묵살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통상적인 업무 수행'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 박 전 장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에 내란 특검팀은 추가 수사로 증거를 보강해 약 한 달 뒤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지만 이번엔 서울중앙지법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똑같은 결정을 반복했다. 남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13일 박 전 장관을 상대로 영장실질심사를 하고 14일 새벽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종전 구속영장 기각 결정 이후 추가된 범죄 혐의와 추가로 수집된 자료를 종합해 봐도 여전히 혐의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어 불구속 상태에서 충분한 방어 기회를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 및 수사 진행 경과, 일정한 주거와 가족 관계, 경력 등을 고려하면 향후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법조인 경력이 무려 40년이며 '인권 보호와 법질서 수호'를 핵심 업무로 삼는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및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발표 내용이 불법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내란에 공모·가담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특검팀은 "앞선 구속영장 기각 당시 법원에서 의문을 제기했던 부분에 이견이 없을 정도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의미 있는 자료를 상당수 확보했고 이를 토대로 범죄 사실을 새롭게 추가했다"고 강조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들 영장 판사 덕분에 박 전 장관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국무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2025년 10월 .2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 소속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영장 기각 및 재판 지연 규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0.22. 연합뉴스

박정호·남세진 두 부장판사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비상계엄 두 달여만인 지난해 2월 동시에 인사 발령을 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4명(나머지 둘은 이정재·정재욱) 중 일원이었는데 이들이 돌아가면서 주요 피의자의 구속영장을 줄줄이 기각해 3대 특검 수사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팽배해 있었다.

이 가운데 박 부장판사는 이른바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IMS모빌리티 조영탁 대표와 모재용 경영지원실 이사, 오아시스에쿼티파트너스 민경민 대표에 대해 김건희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고, 삼부토건 주가조작과 판박이라는 웰바이오텍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를 받은 양남희 회장의 구속영장도 기각했으며, 내란 특검팀의 출석 요구에 세 차례나 불응하고 자택 압수수색 때는 아예 문을 걸어 잠근 채 특검의 영장 집행을 두 차례 연속 무산시켰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두고도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 등 구속 사유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면서 영장을 발부하지 않은 이력이 있다. 특검 사안은 아니지만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자손군'(댓글로 나라를 구하는 자유손가락 군대)이라는 극우 성향의 여론 조작팀을 운영하며 이재명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등 혐의가 중대하고 증거인멸 정황이 뚜렷했던 '리박스쿨' 손효숙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해 시민사회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남 부장판사는 '평양 무인기 의혹' 핵심 피의자인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에 대해 내란 특검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순직 해병 특검팀이 출범 이후 처음으로 모해위증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에 이어,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 수사를 집요하게 방해한 혐의를 받는 '친윤' 성향 김선규·송창진 전 공수처 부장검사의 구속영장을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둘 다 기각해 해병 특검팀의 수사에도 타격을 입힌 바 있다. 해병 특검팀은 활동 기간 통틀어 10건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이들 영장 판사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관한 단 1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9건을 모조리 기각했다.

박정호·남세진 두 부장판사가 특히 박성재 전 장관에 대해 거의 필사적일 만큼 '위법성 인식에 다툴 여지가 있다'는 궤변에 가까운 이유로 구속을 불허한 것은 결국 조희대 대법원장을 엄호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조희대 원장이 '내란의 밤'에 주재한 대법원 법원행정처 긴급 간부회의 자리에서 계엄에 따른 대책을 논의한 것 또한 '위법성 인식'이 없었던 '통상적인 업무 수행'임을 내세워 향후 조 원장을 겨냥할 수 있는 수사나 탄핵소추의 칼날을 비껴가려는 사전 포석이라는 관측이었다.

 

1월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이진관 부장판사가 발언하고 있다. 2026.1.21.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이진관 부장판사는 박 전 장관에게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과 위법성의 인식'이 있었다고 서릿발 같이 판시하면서 ▲박성재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목적 중 하나가 명태균 사건 무마와 군 병력 등을 동원한 국회 무력화라는 것을 인식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그 실체적·절차적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인식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에 동의 내지 적어도 침묵한 국무위원에 해당한다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후속 조치로 국회의 권능 행사를 강압에 의해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비상계엄 및 포고령의 위헌·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규정하고 각 항목별로 상세한 범죄 사실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피고인 박성재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더욱 무거운 의무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그 일원으로서 가담하기로 선택했다"며 "법무부 간부회의에서 12·3 내란의 위헌·위법성에 관한 여러 의견이 제기됐음에도 이를 끝내 묵살했고, 이에 따라 박성재가 수행한 임무는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의결된 후에도 계속해 이행돼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준엄하게 질타했다. '위법성 인식'에 대해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도록 판결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며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못박은 것이다.

김호경 에디터 haojing610@mindlenews.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28 총선 시뮬레이션] 민주당 이대로면 수도권 22곳 위태, 3곳은 재보궐 방어

지방선거 표심 총선 대입, 서울11·경기9·인천2 위태

수도권 22곳 민주당 패배 위험, 의석 격차 44석으로 벌어져

김민석·고민정 등 중진 지역구 흔들, 재보궐 3곳은 방어

대통령 "숙의" 당부에도 정청래 보완수사권 폐지 표몰이

2026-06-23 09:05:38
 

지난 3일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얻은 표를 2028년 총선 지역구에 그대로 옮겨봤다. 수도권에서만 22곳이 위태로웠다. 서울 11곳, 경기 9곳, 인천 2곳이다. 이 22석을 국민의힘이 가져가면 두 당의 의석 차이는 44석이 벌어진다. 그것도 수도권만 따진 결과다. 민주당이 승리를 자축하는 사이, 정작 표를 뜯어보면 안심할 형편이 아니다.

 

지방선거 표심, 2028년 총선에 그대로 옮기니

 

분석은 6월 3일 개표 결과에서 출발했다. 지역구 투표만 추렸다. 비례대표는 뺐다. 이 표를 2024년 총선 지역구 구도에 대입했다. 기준은 두 가지로 잡았다. 하나는 광역단체장 득표, 다른 하나는 기초단체장 득표다. 서울은 시장과 구청장, 경기는 지사와 시장, 인천은 시장과 구청장이 잣대가 됐다. 갑·을·병으로 쪼개진 지역구를 가려내려고 읍면동 단위까지 전수로 살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당의 양자 득표만 맞붙였다.

 

기준을 둘로 나눈 데는 이유가 있다. 광역만 보면 경기와 인천이 안전해 보인다. 추미애 경기지사가 큰 표 차로 이겼고, 인천시장도 민주당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는 국민의힘 양향자 후보가 워낙 약체였다. 그만큼 지사 득표가 부풀려졌다. 실제 총선 경쟁력은 기초단체장 득표에 더 가깝다. 두 기준을 겹쳐야 실상이 보인다.

 

겹쳐 보니 위험 지역이 22곳으로 늘었다. 서울은 시장을 오세훈에게 내주면서 열한 곳이 한꺼번에 위험권에 들었다. 경기는 지사 기준으로는 멀쩡하지만 시장 기준으로 내려가면 아홉 곳이 무너졌다. 인천도 두 곳이 흔들렸다.

 

당대표 후보 김민석의 지역구마저 흔들렸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영등포을이다. 당대표 경선에 나선 김민석 국무총리의 지역구다. 김 총리는 2024년 총선에서 50.6%로 가까스로 이겼다.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 표심을 대입하면 45.9%로 내려간다. 구청장 기준으로도 49.3%다. 총리로 일하느라 지역구를 챙기기 어려웠던 사정을 감안해도 불안한 수치다.

 

서울 강세 지역으로 꼽히던 곳들이 줄줄이 흔들렸다. 강동갑 진선미 의원은 51.1%에서 시장 기준 48.2%, 구청장 기준 46.6%로 어느 쪽이든 졌다. 광진을 고민정 의원은 52%에서 47.9%와 45.6%로 떨어졌다. 양천갑 황희 의원의 낙폭이 가장 가팔랐다. 50.8%에서 시장 기준 45.8%, 구청장 기준 43%까지 주저앉았다. 황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전략공천위원장을 맡았다.

 

같은 서울에서도 흔들리는 결이 갈렸다. 강동을 이해식, 중·성동을 박성준, 서대문갑 김동아 의원 지역구는 두 기준 모두 패배나 초접전으로 나왔다. 동대문갑 안규백, 영등포갑 채현일, 송파병 남인순, 광진갑 이정헌 의원 지역구는 한 기준에서 이기고 다른 기준에서 졌다. 어느 쪽이든 2년 전의 여유 있던 표차는 사라졌다.

 

흔들리는 발밑은 김 총리만이 아니다. 또 다른 당권 주자 송영길 의원의 연수갑도 위험권에 들었다. 연수갑은 박찬대 인천시장이 내리 3선을 한 강세 지역이다. 그런데도 시뮬레이션에서는 시장 기준 51.6%, 구청장 기준 47.8%로 나왔다. 당권 주자 두 사람의 지역구가 나란히 흔들렸다.

 

경기에서는 용인 일대가 도드라졌다. 용인갑 이상식, 용인병 부승찬, 용인정 이언주 의원 지역구는 지사 기준으로는 이기지만 시장 기준으로 내려가면 모두 졌다. 의왕과천 이소영 의원은 두 기준의 격차가 가장 컸다. 지사 기준 52.6%에서 시장 기준 44%로 8.6%포인트나 빠졌다.

 

재보궐로 막아냈지만 안심은 이르다

 

위험권 22곳 가운데 안산갑·하남갑·연수갑 세 곳은 6월 3일에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진 곳이다. 환산 수치와 별개로 실제 당선자가 이미 나왔고, 세 곳 모두 민주당이 지켜냈다. 안산갑은 김남국 의원이 55.45%로 국민의힘 후보를 16%포인트 넘게 눌렀다. 하남갑은 이광재 의원이 49.67%로 1363표 차 신승했고, 연수갑은 송영길 의원이 51.73%로 당선됐다.

 

하지만 세 곳 다 만만치 않은 후보가 버틴 자리다. 송영길은 5선에 인천시장을 지냈고, 이광재는 강원지사를 지낸 중진이다. 김남국도 인지도 높은 재선이다. 이런 후보를 걷어내고 정당 득표만 보면 바닥은 얇다. 실제로 세 곳의 기초단체장 표심은 모두 민주당 패배나 초접전이었다. 거물을 내세운 하남갑조차 표차는 1363표에 그쳤다. 2028년에 같은 무게의 후보가 다시 나서지 않는다면 이 자리들도 환산치가 가리킨 쪽으로 무너질 수 있다. 재보궐 승리로 위험 신호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잠시 가려졌을 뿐이다.

 

위기 신호에도 정청래는 보완수사권에 몰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청래 대표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다. 정 대표는 연일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앞세운다. 그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숟가락만 한 보완수사권이라도 주면 그 숟가락으로 칼을 만들어서 정권에게 언제 그 칼을 들이댈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검찰 개혁의 마침표는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라고도 했다.

 

정 대표 쪽은 딴지일보 게시판에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 찬반 투표까지 올렸다. 폐지에 동의하면 정청래, 반대하면 김민석이라는 구도를 짜려는 움직임이다. 전당대회를 보완수사권 찬반 투표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읽힌다.

 

정작 보완수사권 폐지는 이미 결론에 가까워졌다. 김민석 총리는 검찰개혁추진단에 "기본적으로는 폐지를 원칙으로 해서 폐지안을 기본으로 입장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송영길 의원도 폐지 쪽이다. 후보들 사이에 이견이 없는 사안을 정 대표 홀로 쟁점으로 키우고 있다.

 

대통령은 "숙의하라"는데, 정청래는 정면으로 거슬렀다

 

이재명 대통령의 뜻은 분명했다. 취임 1주년 회견에서 대통령은 보완수사권 폐지를 원칙으로 두되, 악용의 여지가 없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는 살펴보라고 했다. 대통령은 "이게 너무나 예민하고 또 많이 오염된 주제"라며 "정치적 슬로건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로 공을 넘겼다. "권한을 줬으니 책임도 지겠죠"라는 말도 덧붙였다.

 

악용 우려에는 비유로 답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안 되고, 구더기 생길 가능성이 있으면 그걸 다 찾아서 막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진리라고 밀어붙이거나 정치적 이익을 노리고 접근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풀 수 있다는 당부였다.

 

김민석 총리의 화법은 이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김 총리는 대통령의 입장을 네 가지로 정리해 충실히 전했다. 원칙은 폐지다. 다만 예외가 필요해 보인다는 고민이 있다. 국회에서 완전 폐지로 결론 나면 받아들이겠다. 그래도 숙의하라는 당부다. 그 뒤에야 "현시점에서는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본인 의견을 얹었다. 대통령을 우습게 만들지 않으면서 설득의 언어를 골랐다.

 

정 대표는 반대였다. 대통령이 숙의를 당부한 주제를 두고 "완전 폐지가 정답"이라고 못 박았다. 대통령의 고민은 지워졌다. 남은 것은 공격의 언어였다. 대통령은 집권 여당 대표에게 줄곧 공격의 언어가 아니라 설득의 언어를 주문해왔다. 야당 시절에는 창을 잘 쓰는 사람이 필요했지만, 집권 여당에서는 다른 생각을 품는 그릇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정 대표의 화법이 시원하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검찰을 단번에 부숴버리겠다는 의지가 또렷하다. 김 총리의 말은 그에 비해 좌고우면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차분히 따져보면 김 총리 쪽이 합리적이다. 명쾌함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뉴탐사는 6월 3일 지방선거 바로 전날에도 시뮬레이션으로 서울과 경남이 위험하다고 짚었다. 여론조사가 앞선다던 곳이었지만 결과는 경고대로 흘렀다. 이번 분석은 2년 뒤 총선이 지금 표심 그대로 치러진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그사이 변수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다만 지금 표만 놓고 보면 민주당이 박수 칠 상황은 아니다. 8월 1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서울시장 패배를 둘러싼 정청래 책임론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수도권 22곳의 표심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 수 있는 자리에 놓여 있다.

 

수도권 위험 지역구 22곳

2024 총선은 당시 민주당 득표율(%). 광역·기초는 2026년 지방선거 표심을 대입한 환산 득표율(%). 빨강은 민주당 패배, 주황은 초접전. 파란 칸은 6·3 재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져 민주당이 이긴 곳.
지역구 의원 2024 총선 광역 기준 기초 기준
서울 11곳 · 광역은 서울시장(오세훈) 기준
강동갑 진선미 51.1 48.2 46.6
강동을 이해식 54.5 48.0 47.3
광진갑 이정헌 52.5 52.2 49.6
광진을 고민정 52.0 47.9 45.6
동대문갑 안규백 54.3 49.5 51.3
서대문갑 김동아 53.9 50.0 49.4
양천갑 황희 50.8 45.8 43.0
영등포갑 채현일 56.7 49.6 54.0
영등포을 김민석 50.6 45.9 49.3
송파병 남인순 51.0 48.6 50.5
중·성동을 박성준 51.1 49.2 46.9
경기 9곳 · 광역은 경기지사(추미애) 기준, 기초는 시장 기준
안산갑 (재보궐) 김남국 55.6 60.4 50.0
안산을 김현 59.7 60.1 48.7
안산병 박해철 55.7 60.3 50.0
의왕과천 이소영 54.4 52.6 44.0
하남갑 (재보궐) 이광재 50.6 54.0 48.7
하남을 김용만 54.2 58.2 47.3
용인갑 이상식 53.4 55.2 46.2
용인병 부승찬 50.3 52.5 47.3
용인정 이언주 52.1 54.6 47.9
인천 2곳 · 광역은 인천시장(박찬대) 기준
연수갑 (재보궐) 송영길 53.2 51.6 47.8
연수을 정일영 51.5 51.2 47.3
파란 칸(안산갑·하남갑·연수갑)은 6·3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져 민주당이 모두 당선된 곳이다. 실제 득표율은 김남국 55.5%, 이광재 49.7%, 송영길 51.7%. 광역·기초 환산치는 정당 득표의 흐름을 보기 위한 값으로 보궐 결과와 별개다. 2024 총선 칸은 해당 지역구의 2024년 민주당 득표율이며, 당시 당선자는 안산갑 양문석·하남갑 추미애·연수갑 박찬대였다.
Copyright ⓒ 시민언론뉴탐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극화 지향 북중러 무시한 단극체제는 피해야..."

정동영, "통일이 청년들의 미래를 넓힌다"...2026 국제한반도포럼 성료

  • 기자명 통일뉴스 
  •  
  •  입력 2026.06.23 22:11
  •  
  •  수정 2026.06.23 22:12
  •  
  •  댓글 0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청년들과의 대화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청년들과의 대화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진행하는 '2026 국제한반도포럼' 2일차 세션이 23일 9시 30부터 열렸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여성 평화외교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4세션에서는 한정숙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이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한정숙 이사장은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 여성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남성이 전쟁을 하고 여성이 수습해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 법칙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생물학적 원리 아래서는 인류는 영원히 전쟁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여성의 평화 능력을 확장해서 전 세계 시민들이 폭력에서 평화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2024년 말, 내란 세력을 저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던 2030 여성에 주목했다. "한국의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은 빛의 혁명으로 내란을 저지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재확립하는 주역이 되었다. 이제는 2030 여성들이 평화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은 여성들의 참여 속에서 남북여성청년축제를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2030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평화농장 운영도 제안한다. 그래서 평화경제가 실현되는 꿈을 우리 함께 꾸어보자"고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여성 평화외교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된 세션2 토론회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여성 평화외교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된 세션2 토론회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토론 패널로 참가한 김수지 럿거스대학교 교수는 평화를 실현하는 데 있어 여성의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2016년 UN 여성기구 보고서의 내용에 따르면, 단순히 여성을 포함한다고 해서 평화와 협상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여성들이 그 과정에서 실제로 행사한 영향력에 있다. 다시 말해 평화프로세스에 포함된 여성의 수를 단순히 늘리는 것보다 여성의 참여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션4는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가 진행을 맡고, 한정숙 이사장과 김정수 한반도 평화포럼 부이사장이 발표를, 손미희 전 615여성본부 상임대표, 여지연 노스웨스턴대학교 교수, 김수지 교수 등이 토론 패널로 참여했다.

세션 5는 '북·중·러 삼각관계와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을 주제로 진행됐다. 이관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이 사회를 맡고,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과 김상범 교수가 발표를, 카브쉬 앤드리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페이 얀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연구원과 박소혜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연구교수가 토론을 맡았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데, 과거 그 어느 시기와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의 북중러 삼극관계는 대안적 국제 질서를 얘기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미국 주도의 단극, 유니폴라 국제질서가 아닌 멀티폴라, 다극화된 국제질서로 나가겠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브릭스라든지 상하이협력기구(SCO)라든지 유라시아 협력이라든지 글로벌 사우스와의 전방위적 협력, 이것이 이제 제도화된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는 과거의 진영 논리에 갇힌 채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하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대국 정치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도 어느 정도 관리하고 새로운 관계 모색이 필요하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블록화와 같은 것들을 피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어쨌든 북한이 이미 핵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 같은 강대국과의 관계를 계속 적대적이거나, 과거와 같은 진영 논리로만 접근하면 지역의 진영화가 가속하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김상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기존 평화 담론과 통일 정책을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탈민족주의적인 통일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 그리고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고민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반영해서 우리가 통일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미합동군사훈련과 관련한 북한의 강경한 대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보면 북한은 한미 핵협의그룹(NCG) 이후로는 한미 관계를 핵동맹이라고 하고 있다"고 하면서 "북한에서 오랫동안 고위직으로 활동했던 분들이 남한에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한미가 합동군사훈련을 하는데 북한이 대응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현실적인 부분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평양 참수작전같은 것들은 빼야한다는 것.

특별세션으로 운영된 청년과 통일부 장관의 대화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특별세션으로 운영된 청년과 통일부 장관의 대화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오후에는 '청년과 통일부 장관과의 대화'가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참석한 청년 패널이 남북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하면 정 장관이 현장에서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청년의 시각으로 통일부에 대북 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날 대화에는 동국대와 고려대 북한학과 재학생,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 박사수료생 등 국내 여러 대학생과 석박사 연구과정 학생등이 참석했다.

박우혁 동국대 북한학과 재학생은 "통일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를 위해 남북연합 방안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역대 정부의 공식적 통일 방안인 은 평화적, 단계적, 점진적 3원칙에 의해 진행된다. 1단계는 화해·협력 단계다. 싸우고 다투고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악수하고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면 다음 단계로 남북 연합으로 가자는 것이다. 남북 국가연합이다. 세번째로 법적, 제도적 통일은 그 다음 세대에게 맡기자는 것인데, 역대정부가 공식적으로 계승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평민당 대표였던 김대중 총재의 3단계 통일방안(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는 국가연합 단계로 명시돼 있었다. 이를 포괄하기 위해 남북연합이라고 두루뭉술하게 개념화했다. 좀더 분명하게 남북 국가연합 단계로 설정하고 갈 필요가 있다. 이게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속에서 통일부가 생각하는 남북연합의 발전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조상원 동국대 북한학과 재학생은 "현재 김정은 정권은 비정치적인 분야에서조차 우리와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분야로 접근해 북한과 대화를 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정 장관은 먼저 "결국 지금 중요한 것은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신뢰가 깨져 있다. 과거 1년에 몇 만명이 방북을 하고, 몇십만 명이 오고 가고 그랬다. 금강산관광을 200만 명이 다녀왔고, 개성공단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루 12번 들어갔다 나오고 했다. 남쪽의 엔지니어들이 2,000 명 가서 상주하고, 북쪽의 노동자 5만5,000 명이 옷도 만들고 화장품 케이스도 만들었던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황무지로 변해버렸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무너진 신뢰를 쌓아 올릴 것인가? 역시 '선이후난'(先易後難)이다.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접촉을 늘려가야 한다. 이를테면 이념과 체제의 차이를 넘어서서 대화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 또 얼마 전에 여자 축구팀도 오지 않았나. 종교, 문화, 체육, 학술 이런 쪽에서부터 하나씩 숨통을 틔워나가는, 대화의 길을 넓혀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승준 가천대 동양어문학과 재학생은 청년들이 통일보다는 일자리나 주거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며, "통일이 청년들의 일자리와 산업, 경제활동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정동영 장관은 이에 "우리는 80년 동안 해양으로만 진출했다. 바다로 보면 일본이, 미국이 있다. 동남아도 있다. 그러나 대륙으로는 막혀 있다. 북으로 가면 철조망과 지뢰밭이 있어 지나갈 수 없다. 2000년 6.15 정상회담 때 만난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합의한 것은 길을 다시 잇자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서 해양으로 가는 게 아니라 북을 거쳐서 만주,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유럽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한쪽으로는 해양으로, 한쪽으로는 대륙으로 갈 수 있다. 오늘까지도 북쪽은 막혀 있지 않는가. 이걸 뚫어내는 게 청년한테는 큰 의미가 있다. 무대가 달라진다. 배낭 매고 서울역 가면 베를린, 파리, 런던, 중앙아시아, 모스크바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면 청년들의 기회가 넓어진다. 미래가 넓어진다. 일자리, 주거가 거기서 열릴 수 있다"고 희망을 제시했다.

정 장관은 발언을 마무리하면서 "청년 일자리의 해법은 바로 통일이 된 뒤에 있는 게 아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단계에서, 남북 연합으로 가는 단계에서, 대륙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개성공단이 한 개 두 개 만들어지면서 청년의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특집] 전남도청 앞 미국인과 충장로 DJ의 잊지 못할 '5월 그 하루'

[내 이름은 원덕기: 광주 친구의 기억] DJ 이흥철씨와 팀 원버그의 인연, 죽은 친구 위해 46년 만에 꺼낸 LP판

26.06.23 06:48최종 업데이트 26.06.23 06:48

5·18민주화운동 46주년 및 위르겐 힌츠페터 10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 영화 <내 이름은 원덕기>를 제작하기 위한 펀딩을 진행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펀딩 참여자의 이름을 기재합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광주를 사랑한 팀 원버그(한국 이름 원덕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펀딩 바로가기 https://omn.kr/2i36q[편집자말]

충장로우체국 옆 음악감상실 DJ였던 이흥철씨는 그곳을 자주 찾았던 팀 원버그와 자주 교류했다. 두 사람은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옛 전남도청 인근에서 만났다. 팀 원버그의 요청에 따라 외신기자와의 인터뷰 자리에 갔던 이씨가 지난 3월 9일 당시 인터뷰가 이뤄졌던 장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강상우

항쟁 복판에서 그를 마주할 줄 몰랐다. 46년 전 그날, 충장로 음악감상실 DJ는 단골로 종종 만나던 그 미국인을 전남도청 앞에서 발견했을 때 곧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왜 못 도망갔지? 광주에서 나가야 되는데 저 양반이 왜 여기에 있지?'

그는 당연히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대뜸 "광주 외곽 지역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월 동지"가 됐다. DJ로 일하다 항쟁에 참여한 이흥철(당시 20세)씨와 미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러 광주에 왔다가 항쟁에 휘말린 팀 원버그(Tim Warnberg, 당시 25세)의 이야기다.

그날은 계엄군이 잠시 물러난 뒤인 1980년 5월 24일이었다. DJ로 일한 덕에 장비를 다룰 줄 알았던 이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로 방송 차량에 타 있었고 그래서 "광주 외곽 지역을 보고 싶다"는 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다. 쌓인 타이어 너머로 계엄군이 보이기도 했던 주요 대치 지역을 돌며 팀은 이씨에게 유창한 한국말로 "많이 다치고 죽었겠다"고 탄식했다.

팀과 헤어진 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도청 안에 머물던 이씨는 누군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이야기에 두려운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 팀이 있었고 그는 잠시 자신을 따라와 달라고 했다. 그렇게 도착한 인근 여관에는 외신기자들이 앉아 있었다. 신분이 드러날까 복면을 쓴 채 인터뷰에 응한 이씨는 불안감을 못 이기고 결국 중간에 자리를 떴다. 이씨는 "앞으로 이런 일로 나를 부르지 말라"고 했고, 팀은 나지막히 "미안하다"고 했다. 둘의 5월, 그리고 항쟁은 그렇게 끝나 버렸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5·18민주화운동 중인 1980년 5월 24일 촬영한 인터뷰 영상의 화면을 갈무리한 것. 영상 속 인물은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팀 원버그(Tim Warnberg, 한국 이름 원덕기)다. 5·18기념재단이 보관하고 있던 이 영상은 그 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으며, 항쟁 한복판에 있던 인물의 현장 인터뷰는 5·18 관련 기록물 중 이 영상이 유일하다.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동네 형" 같던 그 미국인

'원덕기'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팀은 1978년부터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광주에 머물다 5·18을 눈앞에서 마주했다. 그는 목격자에 머무르지 않고 들것에 실린 부상자를 옮기거나 광주 시민들을 보호하려다 계엄군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또 고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작고) 등 외신기자 통역을 자진해서 맡았고 5·18 직후 자료·증언을 동료에게 건네 북유럽 지역 외신보도를 이끌기도 했다.

특히 팀은 의사가 되려던 꿈을 접고 한국학 전공을 택해 영어권 최초 5·18 논문을 쓰기도 했다. 5·18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치·사회·문화 영역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던 그는 안타깝게도 1993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광주에 머물던 팀이 자주 찾던 음악감상실 DJ였다. 지난 3월 9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5·18 당시 낮에는 가두방송을 했고 밤에는 도청 상황실을 지켰다. 1980년 5월 27일, 이씨는 항쟁 마지막 날에도 방송을 한 박영순씨와 상황실을 지키다 계엄군에 끌려가 온갖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이씨는 여전히 46년 전 팀의 손에 이끌려 외신기자 앞에 섰던 때를 "미안한" 기억으로 갖고 있다. 그는 "팀이 광주의 참상을 외부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부탁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 더 (인터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팀은) 도망갈 수 있었는데도 솔선수범해서 광주를 위해 여러 일을 했다. 참 용감했던 사람"이라며 "나는 그를 오월 동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팀 원버그의 단골 음악감상실 DJ이자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흥철씨가 지난 3월 9일 광주 동구 충장로우체국 옆에 있던 음악감상실 자리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강상우

이씨가 일했던 '타박레 음악감상실'은 이제 건물만 남아 있고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와 함께 충장로우체국 옆 음악감상실이 있던 자리에 다시 섰다. 이씨는 "46년 전 이곳에서 DJ로 일할 때 손님으로 팀을 처음 만났다"며 "금방이라도 팀을 만날 것 같이 그때가 새록새록하다"고 옅은 웃음을 내보였다.

"팀이 평일 오후 타박레에 올 때마다 신청한 곡들을 빠짐없이 들려줬어요. 그게 인연이 된 거죠. 팀이 씩 웃으며 신청곡들을 적은 메모를 건네줬는데 그때마다 그 곡을 다 틀어줬어요. 고마워했던 팀은 저에게 음료를 건넸고 기분 좋게 같이 마시며 친해졌습니다."

이씨는 "처음에는 외국인이라 어색했지만,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팀의 한국어 실력에 금방 가까워졌다"며 "편안하게 자신의 일상과 생활을 공유했고 포용력 있게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설명해줄 때도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외국인이라기보다는 우리 한국의 '동네 형' 같은 스타일이었다"며 "(이흥철이라는 내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때는 발음하기 좋게 나를 '이홍철'이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팀이 한국 음식을 매우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비빔냉면을 특히 좋아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한국음식을 잘 먹더라고요. 매운 것도 잘 먹고. 특히 냉면을 좋아했어요. 서투른 젓가락질로 냉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 웃음도 나왔어요. 어린애들 젓가락질 하듯이 좀 부자연스러우면서도 (비빔냉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 매운데도 표시내지 않으면서 먹고 나서 '맵다'는 표정을 지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씨는 또 "사람마다 좋아하는 노래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라며 "팀은 그때도 우리나라로 치면 민중가요에 해당하는 밥 딜런(미국 싱어송라이터)이나 캔자스(미국 록밴드)의 노래를 자주 신청했다(두 가수 모두 평화, 반전 등을 주제로 노래 - 기자 말)"라고 추억했다.

미국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한국에 머문 팀 원버그(맨 왼쪽)가 한국인 동료들과 식사하는 모습. (AI로 화질 개선)록산 원버그 윌슨 제공

"동네 형"이 "오월 동지"된 그날

여느 광주 시민들처럼 두 사람의 일상은 5·18과 함께 무너졌고 서로의 얼굴을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했다. 1980년 5월 24일, 이씨는 계엄군이 전남도청에서 잠시 물러나면서 두고 간 차량을 타고 동료들과 광주 외곽 지역을 순찰했다. 전날 주남마을에서 계엄군이 민간인 탑승 버스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기에 나선 순찰이었다.

순찰을 마치고 전남도청으로 돌아온 이씨는 그곳에서 팀을 만났다. 이씨는 "그렇게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팀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한편으론 많은 시민 사이에서 팀을 보니 반갑기도 했다"고 전했다.

"처음엔 '왜 광주를 안 떠났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팀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싶었어요. 제가 눈 표시까지 더해 '별 일 없냐'고 물으니 '별 일 없다' 그러더라고요."

이때 팀은 이씨에게 "나도 외곽 지역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곧장 팀을 뒷자리에 태워 불탄 차 등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던 장소를 돌았다. 이씨는 "백운동 쪽과 쌍촌동 그리고 공단사거리, 지금은 농성광장인 곳을 돌아보고 처참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때 팀은 평소와 달리 말수가 적었다"며 "순찰을 돌 때 그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시민들이 많이 다치고 죽었겠다. 많이 아팠겠다'고 탄식했다"고 설명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촬영 테이프에 담긴 영상 갈무리. 항쟁 마지막 날인 5월 27일, 계엄군의 도청 재진입 직후의 모습으로 보인다.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이씨는 이날 팀과 헤어진 직후를 "하늘이 꾸중꾸중하고 비가 소름끼치게 부슬부슬 내린" 때로 기억하고 있다. 도청 상황실에 머물다 "누가 너를 만나러 왔다"는 한 동료의 말에 이씨는 "순간 겁이 났지만" 도청 밖으로 나갔다. 팀이 또 그곳에 서 있었다.

"어디 좀 같이 가자."

"어딜 가? 나 안 가고 싶은데."

"가보면 알아. 가까워. 바로 근처야."

평소 이씨가 알던 팀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이씨는 의아한 심정과 겁이 난 마음을 붙든 채 팀을 따라 도청 인근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외신기자들이 숙소로 쓰던 여관이었고 기자 대여섯명이 앉아 있었다.

지금은 건물 대신 '회화나무 작은숲공원'이 조성돼 있는 그 현장을 취재팀과 다시 찾은 이씨는 "평상시에 걸으면 2~3분 걸리는 길인데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던 나를 '네가 꼭 해줘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팀이 설득하느라 5분 이상 걸렸다"라고 설명했다.

"그때 여관들이 밀집된 골목으로 들어가서 한 여관의 2층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뭔 일이지' 조마조마했고, '왜 여기에 데리고 왔지?' 생각했어요. 노크를 하고 딱 문을 여니 독일·영국·일본 등 외신기자 대여섯명이 있었어요. '어떻게 외신기자들이 도청 근처까지 왔을까' 놀라는 저에게 그때서야 팀이 '기자회견'이라며 자세히 설명해줬어요."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촬영 테이프에 담긴 영상 갈무리. 팀과 이씨가 만난 전남도청 앞 모습이다.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당시로선 '신분이 알려졌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였기에 이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복면을 쓰고 있던 이씨는 "팀이 하도 설득해서 사진 촬영 없이, 익명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며 "날씨도 우중충한 것이 곧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아 마음이 싸하고 불안해 30분 정도 있다가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때 팀이 주선하고 통역한 인터뷰를 이씨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외신기자들이 '왜 복면을 쓰고 있냐'고 심각하게 묻더라고요. 헬기가 막 떠다니며 '폭도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얼굴을 가려야만 시민들이 자기 자신을 지키며 활동할 수 있다'고 답했어요. 또 외신기자들이 '앞으로의 계획',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먹고 사는 데 별 탈은 없는지' 등을 물었어요. 팀이 그 질문을 통역해 내가 편하게 느끼도록 물어봐주면 저는 내 눈으로 본 건 설명하고 그렇지 않은 건 말하지 않았어요."

외신기자들이 좀 더 인터뷰하길 원했지만 이씨는 불안한 마음에 여관을 나왔고 직후 "팀이 많이 미안해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제가 화를 내진 않았지만 '앞으로 이런 일로 나를 부르지 말라'고 단호히 이야기했다"며 "그때 '미안하다'는 팀을 향해 '나 갈란다'라고 말하며 좀 냉정하게 돌아섰다"고 말했다. 이씨는 "팀이 아니라면 따라가지도 않았을 텐데 그를 믿어서 따라갔었다"라며 "지금 생각해보면 팀이 광주의 참상을 밖으로 알리려고 정말 많이 노력한 것 같은데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팀은 자신도 용기를 내 카메라 앞에 섰다. 이씨와의 첫 번째 만남과 두 번째 만남 사이, 팀은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독일 제1공영방송)의 요청에 응해 전남대병원 옥상에서 그와 인터뷰했다. 이 영상은 46년 간 잠들어 있다 지난 5월 <오마이뉴스> 보도로 처음 공개됐다(관련기사 : [단독] 46년 만에 공개된 5·18 인터뷰, 힌츠페터가 촬영한 이 외국인의 정체 https://omn.kr/2i71h).

취재팀이 팀의 인터뷰 영상을 내보이자 이씨는 "원래 안경을 안 썼는데 색안경을 쓴 게 눈에 띈다"며 "(팀이) 그렇게 긴박했던 상황에서 인터뷰를 했다니 감회가 새롭다. (영상 속 팀과)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아 금방이라도 안부 인사를 건네고 싶다"고 말했다.

팀 원버그의 단골 음악감상실 DJ이자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흥철씨가 지난 3월 9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을 <오마이뉴스> 기자와 지나고 있다. 이곳은 팀과 이씨가 항쟁 중 만났던 장소다.강상우

"그곳에선 부디 아프지 않길"

마지막 날까지 도청을 지키다 상무대 영창으로 연행된 이씨는 석 달 후 석방됐다. 이씨는 "그해 가을 팀을 충장로 인근에서 다시 만났다"며 "그때 주변에 죽은 친구들이 많았는데 팀을 보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라고 회상했다.

"석방된 후 문득 팀이 떠올랐어요. '살아있겠지'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됐죠. 그러다 충장로우체국 쪽에서 팀을 봤어요. 그때 '살아있구나' 감격했죠. 그래서 '팀!' 하고 불렀더니 그 친구가 나를 보는 거예요. 포옹하고 손잡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눈을 보고 서로 이야기하는데 그때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죠. 팀도 아마 (항쟁 이후 한미 당국에 의해) 고초를 겪었을 텐데 그래서 제가 '괜찮아?'라고 물었고 팀은 '괜찮다'고 답했어요. 그 말에 그간의 고생이 모두 요약돼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후 이씨는 팀의 초대로 그의 다른 미국인 친구가 머물던 전남대 기숙사를 찾았다. 그곳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웃고 떠들다가 팀은 조심스레 이씨에게 "고생 많이 했지?"라고 물었다. 이씨는 "고생 많이 했다"고 짧게 답했다. 이에 팀은 "지금은?"이라고 재차 물었고 이씨도 앞서 팀이 그랬던 것처럼 "괜찮다"고 답했다. 이씨는 길지 않았던 이 대화를 두고 "항쟁을 함께 겪었기 때문에 긴 설명 없이도 서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해했고 서로 이해했다는 것 또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만남 후 두 사람은 다시 마주하지 못했다. 이씨는 일하던 음악감상실로 경찰이 찾아오는 일이 반복되자 "이리(지금의 전북 익산), 청주 등으로 여기저기 도망다녔"고 광주에 거의 머물지 못해 팀과도 만나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내가 살아있는 동안 팀도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씨는 6년 전 <오마이뉴스> 보도로 팀이 1993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다(관련기사 : 계엄군 곤봉에 맞은 미국인, 그가 광주를 위해 남긴 선물 https://omn.kr/1nj2u).

그는 "언젠가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청천벽력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팀이 광주에서 했던 일,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살 것"이라며 "그곳에서는 부디 아프지 않고 편안히 영면하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팀 원버그의 단골 음악감상실 DJ이자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흥철씨가 지난 3월 9일 광주 북구 자신의 음악카페에서 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꿈의 대화>가 담겨 있는 1980년 대학가요제 레코드판을 꺼내고 있다.강상우

"팀과 '꿈의 대화' 나누고파"

이씨는 전일빌딩, 옛 전남도청, 충장로·금남로 곳곳에서 인터뷰한 뒤 자신의 음악카페로 취재팀을 초대했다. 이곳에서 이씨는 "팀이 살아있었다면 광주 곳곳의 변화한 모습을 보여줬을 텐데 아쉽다"라며 "그때 참 젊었던 팀이었는데 어떻게 나이를 먹었을지도 상상해본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때 돌았던 외곽 지역을 다시 보여주고 싶어요. 많이 변했거든요. 복원된 도청도 보여주고 '너랑 나랑 같이 외신기자들 만났던 그곳은 공원으로 변했다' 그런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처음 만난 음악감상실은 지금 다른 가게가 됐다고도 알려주고 싶고, 냉면집에 다시 가서 옛날 생각하면서 같이 먹고 싶고… 내가 뭘 먹자고 하면 팀은 무조건 토달지 않고 '오케이'했으니까. 짓궂은 농담을 해도 다 받아주고 서로 웃었거든요."

한참 추억을 곱씹던 이씨가 몸을 움직였다. 팀을 처음 만난 그때처럼 이씨는 뮤직박스에 앉았다. 신청곡 메모를 건네던 팀과 이를 빠짐없이 틀던 '스무살 이흥철'은 더이상 없지만, 이씨는 이제 신청곡을 요청할 수 없는 친구를 위해 직접 노래를 골랐다. 그는 항쟁이 있던 그해 11월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꿈의 대화>(이범용·한명훈)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팀에게 <꿈의 대화>를 들려주고 싶어요. 현실에서 못하는 말을 꿈에서 마음껏 해보자는 노래잖아요. 지금은 세상에 없는 팀과 이 노래를 함께 들으며 '그동안 잘 지냈냐. 그 동안 어디에 가 있었냐' 꼭 물어보고 싶어요."

이내 레코드판이 돌아갔다.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 가만히 너에게 나의 꿈 들려주네

너의 마음 나를 주고 나의 그것 너 받으니 우리의 세상을 둘이서 만들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석양이 질 때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언덕에 올라

나지막이 소리 맞춰 노래를 부르자 작은손 마주 잡고 지는 해 바라보자

네가 제일 좋아하는 별들이 불밝히리 네가 제일 좋아하는 창가에 마주앉아

따뜻이 서로의 빈곳을 채우리 네 눈에 반짝이는 별빛을 헤리라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에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만의 꿈의 대화를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팀이 자주 찾았던 충장로우체국 옆 음악감상실의 DJ 이흥철씨가 친구였던 팀의 사진을 턴테이블 옆에 놓고 있다. 2026. 03. 09.강상우

<내 이름은 원덕기> 제작을 위한 펀딩

당신의 이름을 보태주세요. 오마이뉴스는 다큐멘터리 영화 <내 이름은 원덕기>를 제작하기 위한 펀딩을 진행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펀딩 참여자의 이름을 기재할 계획입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광주를 사랑한 팀 원버그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바로가기 https://omn.kr/2i36q

기획 소중한 취재 소중한·전선정·김화빈·이진민·유지영

촬영 강상우·이희훈 편집 콘텐츠팜 호미

CG 김수연 타이틀 김소설 음향 DMC 사운드 비전 내래이션 이승준

펀딩 기획 장유정·이기종·봉주영

영상 제공 5·18기념재단·루먼 형제(Ben&Sam Luhmann)

영상 번역 자문 로버트 그라찬

사진·자료 제공 고진석·나경택·서나래·유경남·변재원·안영주·록산 원버그 윌슨·데이비드 돌린저·폴 코트라이트·캐롤린 투르비필·케빈 페어뱅크스·로버트 그라찬·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외교사료관·박지원 의원실

촬영 협조 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전남대병원·전일빌딩245·국가보훈부·별밭·필로스팅하우스

제작 지원 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 동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고문 피해자에 "걱정 말라"더니 무기징역 선고한 판사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다른 기사 보기

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이재훈 편

'7일간 고문' 이장형 허위자백에 무기징역 선고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 판사가 격려금 줬다"

미문화원 점거농성 학생에 장문의 훈계문도

일반 형사사건은 딴판…"증거 없으면 무죄"

새벽 현장 검증, 11시간 30분 마라톤 재판

영천시장 폭발물 사건 사형 구형에 무죄 선고

"촌지·접대 너무 많다" 검사 포기 판사로 변신

현직 판사가 군법무관 공안교육 강사로 유일

농촌 전문가 변신 뒤 안기부 북풍공작에 등장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이재훈(李宰勳, 1942~2022) 항목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그의 두 얼굴이었다. 1985년 영천시장 폭발물 사건에서 그는 사형이 구형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새벽 3시 30분부터 현장검증을 시작하고, 11시간 30분 마라톤 재판을 열고, 대구에서 상경한 증인의 여비를 자기 돈으로 대신 내준 따뜻한 판사였다. 그런데 같은 시기, 같은 법정에서 그는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사건들에 줄줄이 유죄를 선고했다. 정영에게 무기징역, 이장형에게 무기징역, 윤정헌에게 징역 7년, 조일지에게 징역 7년, 이곤에게 징역 5년, 홍종열·변두갑에게 중형, 구명서에게 징역 15년.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됐다.

같은 판사가 한 사건에서는 진실을 찾아 11시간 30분을 버텼고, 다른 사건에서는 고문피해자의 절규를 "혼냈다"며 법정에서 끌어냈다. 이 이중성이 이재훈이라는 인물의 핵심이다.

 

이재훈(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42년 경북 상주 출생, 개명까지 한 사연

이재훈은 1942년 3월 15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65년 제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본명은 '장수(長秀)'였는데 사법시험에 한 번 떨어진 뒤 관상가와 작명가를 찾아가 "이름에 중절수(中切數)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재훈(宰勳)'으로 개명했다고 자신의 회고록에 썼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검사로 시작했다가 2년 만에 판사로 전직했다는 것이다. 회고록에서 그는 "검사는 도대체 무소불위였다"며 촌지와 접대가 끊이지 않는 검사생활에 대한 회의로 판사가 됐다고 적었다. 그런데 판사가 된 뒤에는 그 흔한 봉투조차 받지 못해 "판사로 옮기길 잘했다"고 무릎을 쳤다는 일화도 적었다. 이 솔직한 회고가 나중에 그의 법정 운영방식과 묘하게 겹친다.

 

이재훈(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선택적 정의'의 판사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나치 독일의 일부 법관들은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엄격한 증거주의를 지키면서도, 국가가 지정한 '적'(유대인, 정치범)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이중 시스템(dual system)"이라 부른다. 법이 두 개의 평행한 기준으로 운영된 것이다.

이재훈의 법정이 바로 이 이중 시스템을 보여준다. 일반 형사사건(영천시장 폭발사건)에서는 "완벽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라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러나 간첩사건에서는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 외에 아무 증거가 없어도 유죄를 선고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전기고문, 물고문, 성고문" 등을 시국사범들이 당했다고 언급하며 "무분별한 국가권력 앞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토로했다. 그러나 자신의 법정에서 같은 고문을 호소하는 피고인은 끌어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재훈(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84년 정영 사건, "걱정 말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재훈의 반헌법 행위의 첫 정점은 1984년 인천지법 부장판사로서 맡은 정영 간첩조작사건이다. 정영은 1965년 조개를 캐다 북한에 납북됐다가 돌아온 어민이었다. 안기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이 사건에서, 정영이 법정에서 "고문에 못 이겨서 그런 것"이라고 항변하자 이재훈은 그를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정영은 국정원과거사위원회 면담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남겼다.

"내가 막 소란을 피웠는데, 판사가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라 검사가 구형 놓은 거니까 너무 걱정 말고 있으라고, 그러더니 깎아서 깎아서도 무기로 떨어지더라고요."

판사가 직접 "걱정 말라"고 위로하고는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다. 안기부 보고서에는 이재훈이 정영을 "잘못을 반성치 않고 있어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기록돼 있다. 2011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27년 만이었다.

이 사건의 배석판사가 신평이었다. 신평은 훗날 부장판사가 봉투를 공공연히 받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언론에 폭로했고, 1993년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인천지법에서 봉투가 오가던 그 시절, 정영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정영 사건을 다룬 김성수 시민기자의 저서, '조작된 간첩들'(드림빅)

1985년 이장형 사건, 고문기술자가 "격려금을 받았다"고 진술하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85년 이장형 간첩조작사건이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이자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장형은 고문기술자 이근안(1941~2026)에게 7일간 잠을 안 재우는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한 끝에 허위자백을 했다. 이재훈은 1985년 1월 30일 이장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근안은 1999년 검찰조사에서 "이장형 사건에서 이재훈 부장판사로부터 격려금도 받았다"고 진술했다. 재판부가 고문을 묵인하는 정도를 넘어 고문을 조장한 것이다. 이재훈은 "그런 사람은 만나지도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장형은 15년 가까이 억울한 수형 생활을 하다 가석방됐고, 재심을 기다리던 2006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사망 10여 일 전 그는 "이근안 과거,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고 말했다.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고(故) 이장형씨(당시 74세)가 23년만에 간첩 혐의를 벗었다.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광만)는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피해자 이씨는 이미 고인이 된 후였다.(뉴스포스트)

1985년 서울미문화원 사건, 장문의 '훈계문'으로 자신을 드러내다

이재훈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85년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다. 함운경(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 김민석의 동료) 등 학생들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징역 7년을 선고하면서, 그는 판결에 앞서 장문의 '훈계문'을 직접 낭독했다. "피고인들의 주장만이 옳고… 폭력적인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훈계였다.

김민석은 항소이유서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그 법정훈계문은 훈계문을 빙자한 권력의사의 강제였다.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규탄 받는 상황에서 스스로 '시녀 선언'을 자청하는 경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을 금치 못하게 한다."

안기부는 이 재판 후 「농성사건 공판 대책보고」에서 이재훈을 "온순 단정, 국가관 확고, 방침 결정시 강력하게 추진하는 성격"이라며 좋은 평가를 내렸다. 재판이 끝난 후 이재훈은 해외연수까지 받았다.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사건 때의 함운경(나무위키)

현직 판사로 군 공안교육 강사, 유일한 사례

이재훈은 1986년과 1987년, 전두환 정권이 위수령·계엄령 발동에 대비해 실시한 군 법무관 '특별 공안교육'에 현직 판사로는 유일하게 강사로 참여했다. 자신의 미문화원 사건 판결 사례를 바탕으로 공안사건 처리방법을 가르쳤다. 사법부 독립의 원칙이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이재훈(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퇴직 후, 농촌운동가, 정치인, 그리고 '북풍공작'의 핵심인물

1990년 판사를 그만둔 이재훈은 농촌문제 전문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에서 안기부의 '북풍공작'(아말렉 공작) 핵심인물로 등장했다. 윤홍준의 허위 기자회견문 작성에 관여하고, 윤홍준이 구속되자 변호인을 맡았다. 사법부를 떠난 뒤 그가 손댄 일이 또 다른 공작정치였다.

이재훈은 1995년 출간한 회고록 『바지 벗은 판사』에서 자신이 재판한 숱한 간첩조작사건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윤정헌은 인터뷰에서 분노를 토했다.

"수사관보다 더 밉다. 서울대 법대 등을 나온 우수한 사람들인데 보안사의 조작을 그대로 추인했으니 그들도 공범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으로 출세하고, 변호사로 잘만 산다."

 

‘대선개입-북풍공작’ 이병기가 국정원장이라니, 진실의길, 2014-06-11.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나치독일의 '이중 시스템' 법관들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일반 사건에서의 공정함이 정치범에 대한 불공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재훈이 영천 기름집 사건에서 보여준 헌신은 그가 간첩조작사건에서 보인 침묵의 폭력을 결코 상쇄하지 못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이재훈이 정영에게 "걱정 말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하던 그 장면을 떠올렸다. 친절한 말투로 행해지는 국가폭력. 그것이 가장 알아채기 어려운 형태의 반헌법 행위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단계적 비핵화론의 허구…핵보유 현실 외면한 낡은 접근

  • 기자명 박재산 기자
  •  
  •  승인 2026.06.22 15:14
  •  
  •  댓글 0
 
 

조선의 핵능력은 이미 현실이 됐다. 국제 군축·안보 통계도 조선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은 여전히 조선을 핵개발 초기 단계의 국가처럼 다루고 있다. G7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는 ‘단계적 비핵화론’의 근본적 한계가 여기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에비앙 G7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에비앙 G7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대통령이 설명한 단계적 접근법은 북핵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기보다 목표를 나눠 접근하자는 구상이다. 우선 조선의 핵물질 추가 생산과 외부 이전을 막고, ICBM 기술 개발도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핵·미사일 능력의 추가 고도화를 차단한 뒤, 체제 위협을 낮출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 장기적으로 비핵화로 나아가자는 설명이다.

겉으로는 현실적 해법처럼 보인다. 당장 완전한 비핵화가 어렵다면 우선 동결부터 추진하자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제재 해제에 앞서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고, 지금은 핵동결을 먼저 요구한다. 적대관계 해소와 군사적 긴장 완화보다 조선의 핵능력 제한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현실적으로 보유하기 이전 단계에서 뭔가 가능한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못 해서 아쉽다”고 이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은 중요한 현실을 드러낸다. 미국도 한국도 조선의 핵능력이 이미 현실화됐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제 군축·안보 통계는 조선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분류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6년 연감에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조선, 이스라엘을 9개 핵무장국으로 분류했다. 또 조선이 약 60기의 핵탄두를 조립했을 가능성이 있고, 최소 30기를 추가 생산할 수 있는 핵분열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국제 반핵단체 ICAN도 전 세계 핵무기 지출 보고서에서 조선을 9개 핵보유국 중 하나로 포함한다. ICAN 보고서의 취지와 별개로, 이 분류 자체는 조선의 핵보유 현실이 국제 통계에서 하나의 사실로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은 2013년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천명했고, 2022년에는 핵무력정책 법령을 채택해 핵무력의 사명과 지휘통제, 사용조건을 구체화했다. 최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은 G7의 비핵화 공동성명에 대해 “비핵화는 최종적으로 종결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핵보유를 주권과 헌법의 문제로 규정한 것이다.

 

반면 한미는 핵작전 협의를 제도화하고 있다. 2023년 한미 정상은 워싱턴선언을 통해 핵협의그룹, NCG를 신설했다. 2024년에는 한반도 핵억제·핵작전 지침을 승인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제6차 NCG 회의에서는 핵·재래식 통합, 위기 시 핵협의 절차, 공동훈련, 전략적 메시지 등을 점검했다.

한쪽에서는 조선에 비핵화와 핵동결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 핵전력에 기반한 한미 핵작전 협의를 제도화하고 있는 셈이다. 핵위협이 줄어드는 환경이 아니라 핵대결 구조가 강화되는 환경이다.

이 조건에서 조선이 먼저 핵능력을 동결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현실성이 낮다. 핵동결은 단순한 기술 조치가 아니다. 조선 입장에서는 핵억제력의 현재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다시 전면에 올리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북핵 문제가 강조되면 대북 제재, 한미연합훈련 강화, 미국 전략자산 전개, 한미일 안보협력 확대가 뒤따른다. 이는 조선의 반발과 상응조치를 부르고, 한반도 긴장을 다시 끌어올린다.

그 비용은 한국이 떠안는다. 군사적 긴장은 코리아디스카운트로 이어진다. 기업과 자본은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계산하고, 국민은 전쟁위기의 부담을 떠안는다.

단계적 비핵화론은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접근처럼 포장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엄연한 핵보유 구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결이라는 이름으로 낡은 비핵화론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철지난 비핵화 구호의 변형이 아니라, 한반도 적대관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모두 실패했다"

2026 국제한반도포럼...美 조엘 위트 "비핵화보다 긴장완화에 더 집중해야" 

  • 기자명 서영빈 기자 
  •  
  •  입력 2026.06.23 01:31
  •  
  •  수정 2026.06.23 07:30
  •  
  •  댓글 0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과 제언'을 주제로 한 '2026 국제한반도포럼'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과 제언'을 주제로 한 '2026 국제한반도포럼'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위기의 시간이 교차하며 지나는 2026년, 긴장이 고조되는 현실에 대한 절박한 인식과 이를 타개할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22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막해 23일까지 진행되는 의 주제는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과 제언'이다.

국제한반도포럼은 통일부가 지난 2010년부터 16년째 이어오고 있는 국제학술회의. 올해는 한반도평화포럼이 주관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사진-통일부 제공]
정동영 통일부 장관 [사진-통일부 제공]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개회사에서 "2019년 2월 28일 하노이의 실패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실패였고 또 북한으로서도 대미정책의 실패였고 우리 정부로서도 역할의 실패로 귀결됐다"며 "뼈아픈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그때 만일 하노이 노딜이 아니고 협상이 이루어졌더라면 한반도의 시계는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어쩌면 다가오고 있을지 모를 한반도의 시간에 우리는 '실패해서는 안 된다' 하는 다짐을 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 각계 전문가, 특히 국제적인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시각이 필요하고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한반도평화포럼 상임고문 자격으로 한 환영사에서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진전과 후퇴를 반복했다. 지금은 북에 의해서 적대적 두 국가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럴 수록 우리는 인내심과 신중함을 잃지 않으면서 평화로 가는 교두보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동맹을 기본축으로 하면서도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도 유지하는 자발적 접근이 필요하다. 다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북핵 문제 해법 모색'과 관련한 특별좌담에는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사회자로 나서 패널로 나선 조엘 S. 위트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왕동 북경대학교 교수와 함께 '북핵문제 해법 모색'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북핵 문제 해법 모색'과 관련한 특별좌담에는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사회자로 나서 패널로 나선 조엘 S. 위트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왕동 북경대학교 교수와 함께 '북핵문제 해법 모색'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북핵 문제 해법 모색'과 관련한 특별좌담에는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사회자로 나서 패널로 나선 조엘 S. 위트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왕동 북경대학교 교수와 함께 '북핵문제 해법 모색'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1994년 북핵동결이라는 제네바 합의를 주도하고 북한 전문 매체인 38노스를 설립한 조엘 연구원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긴장 완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발적이든 아니든 핵전쟁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1973년 핵전쟁 방지 협정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엘 연구원이 언급한 핵전쟁 방지 협정은 1973년 6월 워싱턴 정상회담을 일컫는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워싱턴에서 만나 힘에 의한 위협과 무력 행사를 자제하기로 선언한 바 있다. 

조엘 연구원은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레이카비크 정상회담 이후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핵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으며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핵전쟁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길 수 없으며 결코 싸워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왕동 교수는 동북아시아의 안보 체제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며, "평화는 더 이상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북아시아는 상호 연결된 시대에 진입했다. 불안정하다. 어느 한 국가도 단독으로는 절대적인 안보를 달성할 수 없다. 한 국가의 안보 불안은 이웃 국가의 전략적 우려로 쉽게 전이될 수 있다. 군사적 긴장 고조, 확장억제 태세 강화, 미사일 대응은 상호 강화적인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저는 이것을 구조적 안보 딜레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딜레마가) 현재 동북아시아 긴장의 핵심 원인이다"라고 설명했다.

왕동 교수는 그러면서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안보 대결에서 안보 대화로 전환해야 한다. 제로섬 경쟁에서 상호 공존으로 전환해야 한다. 위기 대응에서 선제적인 위기 예방 및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정부 평화유산의 교훈과 과제'를 주제로 한 세션1에서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속가능한 한반도형 평화공존을 위한 경로의 모색'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구 교수는 먼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 문제적 지점을 짚었다. 

그는 "(그간의 대북정책들이) 진보든 보수든 강압이든 관여든 상대방인 북한이 자신을 식민화하려는 시도로 읽혔다는 점"이라고 지적하고는 "이에 결국 북한은 두 국가론으로 반응했다. 이어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정전 체제에서 평화 체제로의 전환에 있다라는 문제의식이 다시금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힘의 비대칭을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며 "한국과 조선은 서로 억제력을 증강하는 방법들을 선택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헌법규정 전략을 제안했다. 이 전략은 "제도의 건설을 통해서 일방이 타방을 자의적으로 지배하는 상태를 없애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인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사회를 맡고 정세현,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히라이 히사시 전 교토통신 서울지국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상생과 평화를 위한 남북관계' 주제의 세션 2는 정인성 원불교 평양교구장의 사회로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와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이 발표하고 최은아 자주통일평화연대 사무처장,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수산나 시민평화포럼 사무처장, 소피 킴 연세대 언드우드 국제대학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이날 '남북 인도적 협력재개를 위한 다자간 협력방안 모색' 주제의 세션3까지 진행되고 23일에는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여성 평화외교의 역할'과 '북중러 삼각관계와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 주제의 세션이 진행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속보] 김정은 “한국, 핵잠수함 보유까지 추진…정세 극도로 악화시켜”

 
  • 수정 2026-06-23 07:46

9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

북한은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진행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 추진과 한미 핵협의그룹(NCG) 활동 등을 거론하며 한반도 정세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핵무력을 지속적으로 확대·강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철저히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23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결론에서 “핵무력을 끊임없이 확대·강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철저히 행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한국이 지역 내 무력 증강과 현대화 책동을 노골화하면서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까지 추진하고 있다”며 “조선반도 정세를 극도로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미 핵협의그룹(NCG)에 대해서는 “우리 공화국을 공격하기 위한 핵전쟁기구”라고 비난하며 “조선반도 정세를 핵전쟁 문어구로 떠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강력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위적 억제력을 더욱 확대·강화하겠다”며 국방력 증강 방침도 강조했다. 또 “위력한 국방자산들을 더욱 늘려나가기 위한 사업을 계속 멈춤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당 중앙군사위원회 결정에 따라 진행 중인 1만t급 전략유도탄순양함 건조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군수공업 기업소 신설 및 현대화 사업도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한 노동당의 대적투쟁 원칙을 재확인하고, 남부 국경 요새화 공사 완성과 해군 기지 건설 등 국가방위력 강화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문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회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20일부터 사흘간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회의에서 “당 및 국가정책 방향과 앞으로의 단기적 및 중장기적인 투쟁과업”을 밝히고 ‘중요 결론'을 내렸다고 통신은 전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