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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전남도청 앞 미국인과 충장로 DJ의 잊지 못할 '5월 그 하루'

[내 이름은 원덕기: 광주 친구의 기억] DJ 이흥철씨와 팀 원버그의 인연, 죽은 친구 위해 46년 만에 꺼낸 LP판

26.06.23 06:48최종 업데이트 26.06.23 06:48

5·18민주화운동 46주년 및 위르겐 힌츠페터 10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 영화 <내 이름은 원덕기>를 제작하기 위한 펀딩을 진행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펀딩 참여자의 이름을 기재합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광주를 사랑한 팀 원버그(한국 이름 원덕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펀딩 바로가기 https://omn.kr/2i36q[편집자말]

충장로우체국 옆 음악감상실 DJ였던 이흥철씨는 그곳을 자주 찾았던 팀 원버그와 자주 교류했다. 두 사람은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옛 전남도청 인근에서 만났다. 팀 원버그의 요청에 따라 외신기자와의 인터뷰 자리에 갔던 이씨가 지난 3월 9일 당시 인터뷰가 이뤄졌던 장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강상우

항쟁 복판에서 그를 마주할 줄 몰랐다. 46년 전 그날, 충장로 음악감상실 DJ는 단골로 종종 만나던 그 미국인을 전남도청 앞에서 발견했을 때 곧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왜 못 도망갔지? 광주에서 나가야 되는데 저 양반이 왜 여기에 있지?'

그는 당연히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대뜸 "광주 외곽 지역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월 동지"가 됐다. DJ로 일하다 항쟁에 참여한 이흥철(당시 20세)씨와 미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러 광주에 왔다가 항쟁에 휘말린 팀 원버그(Tim Warnberg, 당시 25세)의 이야기다.

그날은 계엄군이 잠시 물러난 뒤인 1980년 5월 24일이었다. DJ로 일한 덕에 장비를 다룰 줄 알았던 이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로 방송 차량에 타 있었고 그래서 "광주 외곽 지역을 보고 싶다"는 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다. 쌓인 타이어 너머로 계엄군이 보이기도 했던 주요 대치 지역을 돌며 팀은 이씨에게 유창한 한국말로 "많이 다치고 죽었겠다"고 탄식했다.

팀과 헤어진 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도청 안에 머물던 이씨는 누군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이야기에 두려운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 팀이 있었고 그는 잠시 자신을 따라와 달라고 했다. 그렇게 도착한 인근 여관에는 외신기자들이 앉아 있었다. 신분이 드러날까 복면을 쓴 채 인터뷰에 응한 이씨는 불안감을 못 이기고 결국 중간에 자리를 떴다. 이씨는 "앞으로 이런 일로 나를 부르지 말라"고 했고, 팀은 나지막히 "미안하다"고 했다. 둘의 5월, 그리고 항쟁은 그렇게 끝나 버렸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5·18민주화운동 중인 1980년 5월 24일 촬영한 인터뷰 영상의 화면을 갈무리한 것. 영상 속 인물은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팀 원버그(Tim Warnberg, 한국 이름 원덕기)다. 5·18기념재단이 보관하고 있던 이 영상은 그 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으며, 항쟁 한복판에 있던 인물의 현장 인터뷰는 5·18 관련 기록물 중 이 영상이 유일하다.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동네 형" 같던 그 미국인

'원덕기'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팀은 1978년부터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광주에 머물다 5·18을 눈앞에서 마주했다. 그는 목격자에 머무르지 않고 들것에 실린 부상자를 옮기거나 광주 시민들을 보호하려다 계엄군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또 고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작고) 등 외신기자 통역을 자진해서 맡았고 5·18 직후 자료·증언을 동료에게 건네 북유럽 지역 외신보도를 이끌기도 했다.

특히 팀은 의사가 되려던 꿈을 접고 한국학 전공을 택해 영어권 최초 5·18 논문을 쓰기도 했다. 5·18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치·사회·문화 영역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던 그는 안타깝게도 1993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광주에 머물던 팀이 자주 찾던 음악감상실 DJ였다. 지난 3월 9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5·18 당시 낮에는 가두방송을 했고 밤에는 도청 상황실을 지켰다. 1980년 5월 27일, 이씨는 항쟁 마지막 날에도 방송을 한 박영순씨와 상황실을 지키다 계엄군에 끌려가 온갖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이씨는 여전히 46년 전 팀의 손에 이끌려 외신기자 앞에 섰던 때를 "미안한" 기억으로 갖고 있다. 그는 "팀이 광주의 참상을 외부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부탁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 더 (인터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팀은) 도망갈 수 있었는데도 솔선수범해서 광주를 위해 여러 일을 했다. 참 용감했던 사람"이라며 "나는 그를 오월 동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팀 원버그의 단골 음악감상실 DJ이자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흥철씨가 지난 3월 9일 광주 동구 충장로우체국 옆에 있던 음악감상실 자리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강상우

이씨가 일했던 '타박레 음악감상실'은 이제 건물만 남아 있고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와 함께 충장로우체국 옆 음악감상실이 있던 자리에 다시 섰다. 이씨는 "46년 전 이곳에서 DJ로 일할 때 손님으로 팀을 처음 만났다"며 "금방이라도 팀을 만날 것 같이 그때가 새록새록하다"고 옅은 웃음을 내보였다.

"팀이 평일 오후 타박레에 올 때마다 신청한 곡들을 빠짐없이 들려줬어요. 그게 인연이 된 거죠. 팀이 씩 웃으며 신청곡들을 적은 메모를 건네줬는데 그때마다 그 곡을 다 틀어줬어요. 고마워했던 팀은 저에게 음료를 건넸고 기분 좋게 같이 마시며 친해졌습니다."

이씨는 "처음에는 외국인이라 어색했지만,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팀의 한국어 실력에 금방 가까워졌다"며 "편안하게 자신의 일상과 생활을 공유했고 포용력 있게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설명해줄 때도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외국인이라기보다는 우리 한국의 '동네 형' 같은 스타일이었다"며 "(이흥철이라는 내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때는 발음하기 좋게 나를 '이홍철'이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팀이 한국 음식을 매우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비빔냉면을 특히 좋아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한국음식을 잘 먹더라고요. 매운 것도 잘 먹고. 특히 냉면을 좋아했어요. 서투른 젓가락질로 냉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 웃음도 나왔어요. 어린애들 젓가락질 하듯이 좀 부자연스러우면서도 (비빔냉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 매운데도 표시내지 않으면서 먹고 나서 '맵다'는 표정을 지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씨는 또 "사람마다 좋아하는 노래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라며 "팀은 그때도 우리나라로 치면 민중가요에 해당하는 밥 딜런(미국 싱어송라이터)이나 캔자스(미국 록밴드)의 노래를 자주 신청했다(두 가수 모두 평화, 반전 등을 주제로 노래 - 기자 말)"라고 추억했다.

미국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한국에 머문 팀 원버그(맨 왼쪽)가 한국인 동료들과 식사하는 모습. (AI로 화질 개선)록산 원버그 윌슨 제공

"동네 형"이 "오월 동지"된 그날

여느 광주 시민들처럼 두 사람의 일상은 5·18과 함께 무너졌고 서로의 얼굴을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했다. 1980년 5월 24일, 이씨는 계엄군이 전남도청에서 잠시 물러나면서 두고 간 차량을 타고 동료들과 광주 외곽 지역을 순찰했다. 전날 주남마을에서 계엄군이 민간인 탑승 버스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기에 나선 순찰이었다.

순찰을 마치고 전남도청으로 돌아온 이씨는 그곳에서 팀을 만났다. 이씨는 "그렇게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팀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한편으론 많은 시민 사이에서 팀을 보니 반갑기도 했다"고 전했다.

"처음엔 '왜 광주를 안 떠났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팀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싶었어요. 제가 눈 표시까지 더해 '별 일 없냐'고 물으니 '별 일 없다' 그러더라고요."

이때 팀은 이씨에게 "나도 외곽 지역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곧장 팀을 뒷자리에 태워 불탄 차 등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던 장소를 돌았다. 이씨는 "백운동 쪽과 쌍촌동 그리고 공단사거리, 지금은 농성광장인 곳을 돌아보고 처참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때 팀은 평소와 달리 말수가 적었다"며 "순찰을 돌 때 그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시민들이 많이 다치고 죽었겠다. 많이 아팠겠다'고 탄식했다"고 설명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촬영 테이프에 담긴 영상 갈무리. 항쟁 마지막 날인 5월 27일, 계엄군의 도청 재진입 직후의 모습으로 보인다.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이씨는 이날 팀과 헤어진 직후를 "하늘이 꾸중꾸중하고 비가 소름끼치게 부슬부슬 내린" 때로 기억하고 있다. 도청 상황실에 머물다 "누가 너를 만나러 왔다"는 한 동료의 말에 이씨는 "순간 겁이 났지만" 도청 밖으로 나갔다. 팀이 또 그곳에 서 있었다.

"어디 좀 같이 가자."

"어딜 가? 나 안 가고 싶은데."

"가보면 알아. 가까워. 바로 근처야."

평소 이씨가 알던 팀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이씨는 의아한 심정과 겁이 난 마음을 붙든 채 팀을 따라 도청 인근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외신기자들이 숙소로 쓰던 여관이었고 기자 대여섯명이 앉아 있었다.

지금은 건물 대신 '회화나무 작은숲공원'이 조성돼 있는 그 현장을 취재팀과 다시 찾은 이씨는 "평상시에 걸으면 2~3분 걸리는 길인데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던 나를 '네가 꼭 해줘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팀이 설득하느라 5분 이상 걸렸다"라고 설명했다.

"그때 여관들이 밀집된 골목으로 들어가서 한 여관의 2층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뭔 일이지' 조마조마했고, '왜 여기에 데리고 왔지?' 생각했어요. 노크를 하고 딱 문을 여니 독일·영국·일본 등 외신기자 대여섯명이 있었어요. '어떻게 외신기자들이 도청 근처까지 왔을까' 놀라는 저에게 그때서야 팀이 '기자회견'이라며 자세히 설명해줬어요."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촬영 테이프에 담긴 영상 갈무리. 팀과 이씨가 만난 전남도청 앞 모습이다.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당시로선 '신분이 알려졌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였기에 이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복면을 쓰고 있던 이씨는 "팀이 하도 설득해서 사진 촬영 없이, 익명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며 "날씨도 우중충한 것이 곧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아 마음이 싸하고 불안해 30분 정도 있다가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때 팀이 주선하고 통역한 인터뷰를 이씨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외신기자들이 '왜 복면을 쓰고 있냐'고 심각하게 묻더라고요. 헬기가 막 떠다니며 '폭도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얼굴을 가려야만 시민들이 자기 자신을 지키며 활동할 수 있다'고 답했어요. 또 외신기자들이 '앞으로의 계획',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먹고 사는 데 별 탈은 없는지' 등을 물었어요. 팀이 그 질문을 통역해 내가 편하게 느끼도록 물어봐주면 저는 내 눈으로 본 건 설명하고 그렇지 않은 건 말하지 않았어요."

외신기자들이 좀 더 인터뷰하길 원했지만 이씨는 불안한 마음에 여관을 나왔고 직후 "팀이 많이 미안해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제가 화를 내진 않았지만 '앞으로 이런 일로 나를 부르지 말라'고 단호히 이야기했다"며 "그때 '미안하다'는 팀을 향해 '나 갈란다'라고 말하며 좀 냉정하게 돌아섰다"고 말했다. 이씨는 "팀이 아니라면 따라가지도 않았을 텐데 그를 믿어서 따라갔었다"라며 "지금 생각해보면 팀이 광주의 참상을 밖으로 알리려고 정말 많이 노력한 것 같은데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팀은 자신도 용기를 내 카메라 앞에 섰다. 이씨와의 첫 번째 만남과 두 번째 만남 사이, 팀은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독일 제1공영방송)의 요청에 응해 전남대병원 옥상에서 그와 인터뷰했다. 이 영상은 46년 간 잠들어 있다 지난 5월 <오마이뉴스> 보도로 처음 공개됐다(관련기사 : [단독] 46년 만에 공개된 5·18 인터뷰, 힌츠페터가 촬영한 이 외국인의 정체 https://omn.kr/2i71h).

취재팀이 팀의 인터뷰 영상을 내보이자 이씨는 "원래 안경을 안 썼는데 색안경을 쓴 게 눈에 띈다"며 "(팀이) 그렇게 긴박했던 상황에서 인터뷰를 했다니 감회가 새롭다. (영상 속 팀과)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아 금방이라도 안부 인사를 건네고 싶다"고 말했다.

팀 원버그의 단골 음악감상실 DJ이자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흥철씨가 지난 3월 9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을 <오마이뉴스> 기자와 지나고 있다. 이곳은 팀과 이씨가 항쟁 중 만났던 장소다.강상우

"그곳에선 부디 아프지 않길"

마지막 날까지 도청을 지키다 상무대 영창으로 연행된 이씨는 석 달 후 석방됐다. 이씨는 "그해 가을 팀을 충장로 인근에서 다시 만났다"며 "그때 주변에 죽은 친구들이 많았는데 팀을 보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라고 회상했다.

"석방된 후 문득 팀이 떠올랐어요. '살아있겠지'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됐죠. 그러다 충장로우체국 쪽에서 팀을 봤어요. 그때 '살아있구나' 감격했죠. 그래서 '팀!' 하고 불렀더니 그 친구가 나를 보는 거예요. 포옹하고 손잡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눈을 보고 서로 이야기하는데 그때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죠. 팀도 아마 (항쟁 이후 한미 당국에 의해) 고초를 겪었을 텐데 그래서 제가 '괜찮아?'라고 물었고 팀은 '괜찮다'고 답했어요. 그 말에 그간의 고생이 모두 요약돼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후 이씨는 팀의 초대로 그의 다른 미국인 친구가 머물던 전남대 기숙사를 찾았다. 그곳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웃고 떠들다가 팀은 조심스레 이씨에게 "고생 많이 했지?"라고 물었다. 이씨는 "고생 많이 했다"고 짧게 답했다. 이에 팀은 "지금은?"이라고 재차 물었고 이씨도 앞서 팀이 그랬던 것처럼 "괜찮다"고 답했다. 이씨는 길지 않았던 이 대화를 두고 "항쟁을 함께 겪었기 때문에 긴 설명 없이도 서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해했고 서로 이해했다는 것 또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만남 후 두 사람은 다시 마주하지 못했다. 이씨는 일하던 음악감상실로 경찰이 찾아오는 일이 반복되자 "이리(지금의 전북 익산), 청주 등으로 여기저기 도망다녔"고 광주에 거의 머물지 못해 팀과도 만나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내가 살아있는 동안 팀도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씨는 6년 전 <오마이뉴스> 보도로 팀이 1993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다(관련기사 : 계엄군 곤봉에 맞은 미국인, 그가 광주를 위해 남긴 선물 https://omn.kr/1nj2u).

그는 "언젠가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청천벽력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팀이 광주에서 했던 일,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살 것"이라며 "그곳에서는 부디 아프지 않고 편안히 영면하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팀 원버그의 단골 음악감상실 DJ이자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흥철씨가 지난 3월 9일 광주 북구 자신의 음악카페에서 팀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꿈의 대화>가 담겨 있는 1980년 대학가요제 레코드판을 꺼내고 있다.강상우

"팀과 '꿈의 대화' 나누고파"

이씨는 전일빌딩, 옛 전남도청, 충장로·금남로 곳곳에서 인터뷰한 뒤 자신의 음악카페로 취재팀을 초대했다. 이곳에서 이씨는 "팀이 살아있었다면 광주 곳곳의 변화한 모습을 보여줬을 텐데 아쉽다"라며 "그때 참 젊었던 팀이었는데 어떻게 나이를 먹었을지도 상상해본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때 돌았던 외곽 지역을 다시 보여주고 싶어요. 많이 변했거든요. 복원된 도청도 보여주고 '너랑 나랑 같이 외신기자들 만났던 그곳은 공원으로 변했다' 그런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처음 만난 음악감상실은 지금 다른 가게가 됐다고도 알려주고 싶고, 냉면집에 다시 가서 옛날 생각하면서 같이 먹고 싶고… 내가 뭘 먹자고 하면 팀은 무조건 토달지 않고 '오케이'했으니까. 짓궂은 농담을 해도 다 받아주고 서로 웃었거든요."

한참 추억을 곱씹던 이씨가 몸을 움직였다. 팀을 처음 만난 그때처럼 이씨는 뮤직박스에 앉았다. 신청곡 메모를 건네던 팀과 이를 빠짐없이 틀던 '스무살 이흥철'은 더이상 없지만, 이씨는 이제 신청곡을 요청할 수 없는 친구를 위해 직접 노래를 골랐다. 그는 항쟁이 있던 그해 11월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꿈의 대화>(이범용·한명훈)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팀에게 <꿈의 대화>를 들려주고 싶어요. 현실에서 못하는 말을 꿈에서 마음껏 해보자는 노래잖아요. 지금은 세상에 없는 팀과 이 노래를 함께 들으며 '그동안 잘 지냈냐. 그 동안 어디에 가 있었냐' 꼭 물어보고 싶어요."

이내 레코드판이 돌아갔다.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 가만히 너에게 나의 꿈 들려주네

너의 마음 나를 주고 나의 그것 너 받으니 우리의 세상을 둘이서 만들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석양이 질 때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언덕에 올라

나지막이 소리 맞춰 노래를 부르자 작은손 마주 잡고 지는 해 바라보자

네가 제일 좋아하는 별들이 불밝히리 네가 제일 좋아하는 창가에 마주앉아

따뜻이 서로의 빈곳을 채우리 네 눈에 반짝이는 별빛을 헤리라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에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만의 꿈의 대화를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팀이 자주 찾았던 충장로우체국 옆 음악감상실의 DJ 이흥철씨가 친구였던 팀의 사진을 턴테이블 옆에 놓고 있다. 2026. 03. 09.강상우

<내 이름은 원덕기> 제작을 위한 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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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소중한 취재 소중한·전선정·김화빈·이진민·유지영

촬영 강상우·이희훈 편집 콘텐츠팜 호미

CG 김수연 타이틀 김소설 음향 DMC 사운드 비전 내래이션 이승준

펀딩 기획 장유정·이기종·봉주영

영상 제공 5·18기념재단·루먼 형제(Ben&Sam Luhmann)

영상 번역 자문 로버트 그라찬

사진·자료 제공 고진석·나경택·서나래·유경남·변재원·안영주·록산 원버그 윌슨·데이비드 돌린저·폴 코트라이트·캐롤린 투르비필·케빈 페어뱅크스·로버트 그라찬·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외교사료관·박지원 의원실

촬영 협조 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전남대병원·전일빌딩245·국가보훈부·별밭·필로스팅하우스

제작 지원 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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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피해자에 "걱정 말라"더니 무기징역 선고한 판사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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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판사가 한 사건에서는 진실을 찾아 11시간 30분을 버텼고, 다른 사건에서는 고문피해자의 절규를 "혼냈다"며 법정에서 끌어냈다. 이 이중성이 이재훈이라는 인물의 핵심이다.

 

이재훈(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42년 경북 상주 출생, 개명까지 한 사연

이재훈은 1942년 3월 15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65년 제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본명은 '장수(長秀)'였는데 사법시험에 한 번 떨어진 뒤 관상가와 작명가를 찾아가 "이름에 중절수(中切數)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재훈(宰勳)'으로 개명했다고 자신의 회고록에 썼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검사로 시작했다가 2년 만에 판사로 전직했다는 것이다. 회고록에서 그는 "검사는 도대체 무소불위였다"며 촌지와 접대가 끊이지 않는 검사생활에 대한 회의로 판사가 됐다고 적었다. 그런데 판사가 된 뒤에는 그 흔한 봉투조차 받지 못해 "판사로 옮기길 잘했다"고 무릎을 쳤다는 일화도 적었다. 이 솔직한 회고가 나중에 그의 법정 운영방식과 묘하게 겹친다.

 

이재훈(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선택적 정의'의 판사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나치 독일의 일부 법관들은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엄격한 증거주의를 지키면서도, 국가가 지정한 '적'(유대인, 정치범)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이중 시스템(dual system)"이라 부른다. 법이 두 개의 평행한 기준으로 운영된 것이다.

이재훈의 법정이 바로 이 이중 시스템을 보여준다. 일반 형사사건(영천시장 폭발사건)에서는 "완벽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라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러나 간첩사건에서는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 외에 아무 증거가 없어도 유죄를 선고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전기고문, 물고문, 성고문" 등을 시국사범들이 당했다고 언급하며 "무분별한 국가권력 앞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토로했다. 그러나 자신의 법정에서 같은 고문을 호소하는 피고인은 끌어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재훈(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84년 정영 사건, "걱정 말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재훈의 반헌법 행위의 첫 정점은 1984년 인천지법 부장판사로서 맡은 정영 간첩조작사건이다. 정영은 1965년 조개를 캐다 북한에 납북됐다가 돌아온 어민이었다. 안기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이 사건에서, 정영이 법정에서 "고문에 못 이겨서 그런 것"이라고 항변하자 이재훈은 그를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정영은 국정원과거사위원회 면담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남겼다.

"내가 막 소란을 피웠는데, 판사가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라 검사가 구형 놓은 거니까 너무 걱정 말고 있으라고, 그러더니 깎아서 깎아서도 무기로 떨어지더라고요."

판사가 직접 "걱정 말라"고 위로하고는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다. 안기부 보고서에는 이재훈이 정영을 "잘못을 반성치 않고 있어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기록돼 있다. 2011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27년 만이었다.

이 사건의 배석판사가 신평이었다. 신평은 훗날 부장판사가 봉투를 공공연히 받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언론에 폭로했고, 1993년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인천지법에서 봉투가 오가던 그 시절, 정영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정영 사건을 다룬 김성수 시민기자의 저서, '조작된 간첩들'(드림빅)

1985년 이장형 사건, 고문기술자가 "격려금을 받았다"고 진술하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85년 이장형 간첩조작사건이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이자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장형은 고문기술자 이근안(1941~2026)에게 7일간 잠을 안 재우는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한 끝에 허위자백을 했다. 이재훈은 1985년 1월 30일 이장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근안은 1999년 검찰조사에서 "이장형 사건에서 이재훈 부장판사로부터 격려금도 받았다"고 진술했다. 재판부가 고문을 묵인하는 정도를 넘어 고문을 조장한 것이다. 이재훈은 "그런 사람은 만나지도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장형은 15년 가까이 억울한 수형 생활을 하다 가석방됐고, 재심을 기다리던 2006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사망 10여 일 전 그는 "이근안 과거,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고 말했다.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고(故) 이장형씨(당시 74세)가 23년만에 간첩 혐의를 벗었다.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광만)는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피해자 이씨는 이미 고인이 된 후였다.(뉴스포스트)

1985년 서울미문화원 사건, 장문의 '훈계문'으로 자신을 드러내다

이재훈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85년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다. 함운경(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 김민석의 동료) 등 학생들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징역 7년을 선고하면서, 그는 판결에 앞서 장문의 '훈계문'을 직접 낭독했다. "피고인들의 주장만이 옳고… 폭력적인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훈계였다.

김민석은 항소이유서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그 법정훈계문은 훈계문을 빙자한 권력의사의 강제였다.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규탄 받는 상황에서 스스로 '시녀 선언'을 자청하는 경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을 금치 못하게 한다."

안기부는 이 재판 후 「농성사건 공판 대책보고」에서 이재훈을 "온순 단정, 국가관 확고, 방침 결정시 강력하게 추진하는 성격"이라며 좋은 평가를 내렸다. 재판이 끝난 후 이재훈은 해외연수까지 받았다.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사건 때의 함운경(나무위키)

현직 판사로 군 공안교육 강사, 유일한 사례

이재훈은 1986년과 1987년, 전두환 정권이 위수령·계엄령 발동에 대비해 실시한 군 법무관 '특별 공안교육'에 현직 판사로는 유일하게 강사로 참여했다. 자신의 미문화원 사건 판결 사례를 바탕으로 공안사건 처리방법을 가르쳤다. 사법부 독립의 원칙이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이재훈(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퇴직 후, 농촌운동가, 정치인, 그리고 '북풍공작'의 핵심인물

1990년 판사를 그만둔 이재훈은 농촌문제 전문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에서 안기부의 '북풍공작'(아말렉 공작) 핵심인물로 등장했다. 윤홍준의 허위 기자회견문 작성에 관여하고, 윤홍준이 구속되자 변호인을 맡았다. 사법부를 떠난 뒤 그가 손댄 일이 또 다른 공작정치였다.

이재훈은 1995년 출간한 회고록 『바지 벗은 판사』에서 자신이 재판한 숱한 간첩조작사건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윤정헌은 인터뷰에서 분노를 토했다.

"수사관보다 더 밉다. 서울대 법대 등을 나온 우수한 사람들인데 보안사의 조작을 그대로 추인했으니 그들도 공범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으로 출세하고, 변호사로 잘만 산다."

 

‘대선개입-북풍공작’ 이병기가 국정원장이라니, 진실의길, 2014-06-11.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나치독일의 '이중 시스템' 법관들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일반 사건에서의 공정함이 정치범에 대한 불공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재훈이 영천 기름집 사건에서 보여준 헌신은 그가 간첩조작사건에서 보인 침묵의 폭력을 결코 상쇄하지 못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이재훈이 정영에게 "걱정 말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하던 그 장면을 떠올렸다. 친절한 말투로 행해지는 국가폭력. 그것이 가장 알아채기 어려운 형태의 반헌법 행위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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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적 비핵화론의 허구…핵보유 현실 외면한 낡은 접근

  • 기자명 박재산 기자
  •  
  •  승인 2026.06.22 1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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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핵능력은 이미 현실이 됐다. 국제 군축·안보 통계도 조선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은 여전히 조선을 핵개발 초기 단계의 국가처럼 다루고 있다. G7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는 ‘단계적 비핵화론’의 근본적 한계가 여기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에비앙 G7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에비앙 G7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대통령이 설명한 단계적 접근법은 북핵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기보다 목표를 나눠 접근하자는 구상이다. 우선 조선의 핵물질 추가 생산과 외부 이전을 막고, ICBM 기술 개발도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핵·미사일 능력의 추가 고도화를 차단한 뒤, 체제 위협을 낮출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 장기적으로 비핵화로 나아가자는 설명이다.

겉으로는 현실적 해법처럼 보인다. 당장 완전한 비핵화가 어렵다면 우선 동결부터 추진하자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제재 해제에 앞서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고, 지금은 핵동결을 먼저 요구한다. 적대관계 해소와 군사적 긴장 완화보다 조선의 핵능력 제한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현실적으로 보유하기 이전 단계에서 뭔가 가능한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못 해서 아쉽다”고 이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은 중요한 현실을 드러낸다. 미국도 한국도 조선의 핵능력이 이미 현실화됐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제 군축·안보 통계는 조선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분류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6년 연감에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조선, 이스라엘을 9개 핵무장국으로 분류했다. 또 조선이 약 60기의 핵탄두를 조립했을 가능성이 있고, 최소 30기를 추가 생산할 수 있는 핵분열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국제 반핵단체 ICAN도 전 세계 핵무기 지출 보고서에서 조선을 9개 핵보유국 중 하나로 포함한다. ICAN 보고서의 취지와 별개로, 이 분류 자체는 조선의 핵보유 현실이 국제 통계에서 하나의 사실로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은 2013년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천명했고, 2022년에는 핵무력정책 법령을 채택해 핵무력의 사명과 지휘통제, 사용조건을 구체화했다. 최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은 G7의 비핵화 공동성명에 대해 “비핵화는 최종적으로 종결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핵보유를 주권과 헌법의 문제로 규정한 것이다.

 

반면 한미는 핵작전 협의를 제도화하고 있다. 2023년 한미 정상은 워싱턴선언을 통해 핵협의그룹, NCG를 신설했다. 2024년에는 한반도 핵억제·핵작전 지침을 승인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제6차 NCG 회의에서는 핵·재래식 통합, 위기 시 핵협의 절차, 공동훈련, 전략적 메시지 등을 점검했다.

한쪽에서는 조선에 비핵화와 핵동결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 핵전력에 기반한 한미 핵작전 협의를 제도화하고 있는 셈이다. 핵위협이 줄어드는 환경이 아니라 핵대결 구조가 강화되는 환경이다.

이 조건에서 조선이 먼저 핵능력을 동결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현실성이 낮다. 핵동결은 단순한 기술 조치가 아니다. 조선 입장에서는 핵억제력의 현재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다시 전면에 올리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북핵 문제가 강조되면 대북 제재, 한미연합훈련 강화, 미국 전략자산 전개, 한미일 안보협력 확대가 뒤따른다. 이는 조선의 반발과 상응조치를 부르고, 한반도 긴장을 다시 끌어올린다.

그 비용은 한국이 떠안는다. 군사적 긴장은 코리아디스카운트로 이어진다. 기업과 자본은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계산하고, 국민은 전쟁위기의 부담을 떠안는다.

단계적 비핵화론은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접근처럼 포장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엄연한 핵보유 구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결이라는 이름으로 낡은 비핵화론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철지난 비핵화 구호의 변형이 아니라, 한반도 적대관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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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모두 실패했다"

2026 국제한반도포럼...美 조엘 위트 "비핵화보다 긴장완화에 더 집중해야" 

  • 기자명 서영빈 기자 
  •  
  •  입력 2026.06.23 01:31
  •  
  •  수정 2026.06.23 07:30
  •  
  •  댓글 0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과 제언'을 주제로 한 '2026 국제한반도포럼'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과 제언'을 주제로 한 '2026 국제한반도포럼'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위기의 시간이 교차하며 지나는 2026년, 긴장이 고조되는 현실에 대한 절박한 인식과 이를 타개할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22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막해 23일까지 진행되는 의 주제는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과 제언'이다.

국제한반도포럼은 통일부가 지난 2010년부터 16년째 이어오고 있는 국제학술회의. 올해는 한반도평화포럼이 주관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사진-통일부 제공]
정동영 통일부 장관 [사진-통일부 제공]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개회사에서 "2019년 2월 28일 하노이의 실패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실패였고 또 북한으로서도 대미정책의 실패였고 우리 정부로서도 역할의 실패로 귀결됐다"며 "뼈아픈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그때 만일 하노이 노딜이 아니고 협상이 이루어졌더라면 한반도의 시계는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어쩌면 다가오고 있을지 모를 한반도의 시간에 우리는 '실패해서는 안 된다' 하는 다짐을 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 각계 전문가, 특히 국제적인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시각이 필요하고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한반도평화포럼 상임고문 자격으로 한 환영사에서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진전과 후퇴를 반복했다. 지금은 북에 의해서 적대적 두 국가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럴 수록 우리는 인내심과 신중함을 잃지 않으면서 평화로 가는 교두보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동맹을 기본축으로 하면서도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도 유지하는 자발적 접근이 필요하다. 다자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북핵 문제 해법 모색'과 관련한 특별좌담에는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사회자로 나서 패널로 나선 조엘 S. 위트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왕동 북경대학교 교수와 함께 '북핵문제 해법 모색'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북핵 문제 해법 모색'과 관련한 특별좌담에는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사회자로 나서 패널로 나선 조엘 S. 위트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왕동 북경대학교 교수와 함께 '북핵문제 해법 모색'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북핵 문제 해법 모색'과 관련한 특별좌담에는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사회자로 나서 패널로 나선 조엘 S. 위트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왕동 북경대학교 교수와 함께 '북핵문제 해법 모색'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1994년 북핵동결이라는 제네바 합의를 주도하고 북한 전문 매체인 38노스를 설립한 조엘 연구원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긴장 완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발적이든 아니든 핵전쟁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1973년 핵전쟁 방지 협정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엘 연구원이 언급한 핵전쟁 방지 협정은 1973년 6월 워싱턴 정상회담을 일컫는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워싱턴에서 만나 힘에 의한 위협과 무력 행사를 자제하기로 선언한 바 있다. 

조엘 연구원은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레이카비크 정상회담 이후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핵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으며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핵전쟁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길 수 없으며 결코 싸워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왕동 교수는 동북아시아의 안보 체제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며, "평화는 더 이상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북아시아는 상호 연결된 시대에 진입했다. 불안정하다. 어느 한 국가도 단독으로는 절대적인 안보를 달성할 수 없다. 한 국가의 안보 불안은 이웃 국가의 전략적 우려로 쉽게 전이될 수 있다. 군사적 긴장 고조, 확장억제 태세 강화, 미사일 대응은 상호 강화적인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저는 이것을 구조적 안보 딜레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딜레마가) 현재 동북아시아 긴장의 핵심 원인이다"라고 설명했다.

왕동 교수는 그러면서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안보 대결에서 안보 대화로 전환해야 한다. 제로섬 경쟁에서 상호 공존으로 전환해야 한다. 위기 대응에서 선제적인 위기 예방 및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정부 평화유산의 교훈과 과제'를 주제로 한 세션1에서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속가능한 한반도형 평화공존을 위한 경로의 모색'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구 교수는 먼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 문제적 지점을 짚었다. 

그는 "(그간의 대북정책들이) 진보든 보수든 강압이든 관여든 상대방인 북한이 자신을 식민화하려는 시도로 읽혔다는 점"이라고 지적하고는 "이에 결국 북한은 두 국가론으로 반응했다. 이어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정전 체제에서 평화 체제로의 전환에 있다라는 문제의식이 다시금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힘의 비대칭을 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할 수 있다"며 "한국과 조선은 서로 억제력을 증강하는 방법들을 선택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헌법규정 전략을 제안했다. 이 전략은 "제도의 건설을 통해서 일방이 타방을 자의적으로 지배하는 상태를 없애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인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사회를 맡고 정세현,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히라이 히사시 전 교토통신 서울지국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상생과 평화를 위한 남북관계' 주제의 세션 2는 정인성 원불교 평양교구장의 사회로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와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이 발표하고 최은아 자주통일평화연대 사무처장,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수산나 시민평화포럼 사무처장, 소피 킴 연세대 언드우드 국제대학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이날 '남북 인도적 협력재개를 위한 다자간 협력방안 모색' 주제의 세션3까지 진행되고 23일에는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여성 평화외교의 역할'과 '북중러 삼각관계와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 주제의 세션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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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김정은 “한국, 핵잠수함 보유까지 추진…정세 극도로 악화시켜”

 
  • 수정 2026-06-23 07:46

9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

북한은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진행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 추진과 한미 핵협의그룹(NCG) 활동 등을 거론하며 한반도 정세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핵무력을 지속적으로 확대·강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철저히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23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결론에서 “핵무력을 끊임없이 확대·강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철저히 행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한국이 지역 내 무력 증강과 현대화 책동을 노골화하면서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까지 추진하고 있다”며 “조선반도 정세를 극도로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미 핵협의그룹(NCG)에 대해서는 “우리 공화국을 공격하기 위한 핵전쟁기구”라고 비난하며 “조선반도 정세를 핵전쟁 문어구로 떠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강력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위적 억제력을 더욱 확대·강화하겠다”며 국방력 증강 방침도 강조했다. 또 “위력한 국방자산들을 더욱 늘려나가기 위한 사업을 계속 멈춤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당 중앙군사위원회 결정에 따라 진행 중인 1만t급 전략유도탄순양함 건조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군수공업 기업소 신설 및 현대화 사업도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한 노동당의 대적투쟁 원칙을 재확인하고, 남부 국경 요새화 공사 완성과 해군 기지 건설 등 국가방위력 강화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문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회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20일부터 사흘간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회의에서 “당 및 국가정책 방향과 앞으로의 단기적 및 중장기적인 투쟁과업”을 밝히고 ‘중요 결론'을 내렸다고 통신은 전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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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돈 풀어 놓고 부동산 가격 안정?” 경향신문 “보유세뿐 아니라 금투세 도입도”

[아침신문 솎아보기]

‘연어 술 파티’ 허위 판결, 조선·중앙 “특검 접어라” 경향·한겨레 “본질은 검찰 공소권 남용”

기자명박서연 기자

  • 입력 2026.06.22 07:39

  • 수정 2026.06.22 07:45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명목 10% 후반 경제의 환희, 낯섦, 그리고 두려움> 제목의 글에서 “올해 한국 경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번 호황은 착시가 아니고 진짜다. 주가, 영업이익, 세수, 경상수지라는 숫자들이 일제히 좋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라면서도 “사람들은 좋은 숫자들을 뉴스에서 보고는 있지만, 그것이 자기 삶과 연결된 현실이라고까지 느끼지는 않는다”라고 썼다.

이어 “그러나 하반기가 되면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상반기 실적이 확정되고 성과급 규모가 가시화되면 사람들 마음속에 조금씩 확신이 자리 잡기 시작할 것이다. 명품 소비가 살아나고 선호 지역의 부동산 매수 심리도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할 수 있다”라며 “진짜 고비는 연말과 내년 초다. 성과급이 지급되고 임금 인상이 현실화하고 수출 대금이 국내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 호황을 선반영했던 주식시장도 어느 정도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말과 내년 초에 지급되는 성과급과 임금인상, 주식시장 호황 등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김용범 실장은 “과거를 돌아보면, 이런 돈은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경향을 반복해왔다. 부동산 과세를 정상화해야 한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고 옳은 방향”이라며 “반도체가 벌어온 국부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흡수되고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게만 집중된다면 이번 호황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8일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보유세가 대체로 낮다”라고 말한 바 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정부가 부동산 양도세 보유세 등을 인상할 것을 시사한 발언을 두고 “공급 중심으로 풀어가야 한다”라고 했지만,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이번 호황의 수혜계층과 소외계층 사이의 양극화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특히 경향신문은 부동산 보유세뿐 아니라 증시 호황에 따른 금융투자세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돈 풀어 놓고 부동산 가격 안정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

조선일보는 1면 <‘최후 수단’이라던… 부동산 증세 현실화> 기사에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반도체 호황에 따른 시중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유세와 양도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선진국 대비 우리의 보유세가 낮다며 증세 필요성을 언급한 지 2주 만이다. 이 대통령이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던 부동산 증세가 집권 2년 차에 결국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22일자 조선일보 1면.

▲22일자 조선일보 3면.

조선일보는 “이 대통령과 김 실장의 연이은 증세 예고에 따라, 정부는 이르면 7월 말 공개할 내년도 세제 개편안에 부동산 세금 강화안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다주택자 및 고가 1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강화, 비거주 1주택자에 주어지던 양도세 장기 보유 공제를 축소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라고 했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선일보에 “역대 정부에서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으려 했던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임차인 주거비 급등이라는 부작용만 남겼다. 보유세를 높이면서 양도세도 같이 올리는 정책 방향은 매도 유인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자충수에 가깝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보유·양도세 동시에 올리는 文정부 정책 실패 되풀이하나> 사설에서 “정부는 증세 명분으로 반도체 대호황에 따른 성과급 유입과 이로 인한 동탄 등 수도권 일대의 부동산 급등 조짐을 내세우고 있다. 시중에 너무 많이 풀린 돈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부에도 지금의 부동산 과열을 초래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천문학적 반도체 성과급 지급 결정 과정에 직접 나서서 중재했던 주체다. 게다가 대부분 주요국들이 중동 전쟁 등으로 인해 긴축 재정 기조로 돌아서는데도 우리 정부는 역대급 팽창 예산도 모자라 추경을 통해 국민 70%를 대상으로 1인당 10만~60만원씩 자금을 지급했다. 초과 세수를 국민에게 환원하겠다며 ‘국민배당금제’ 도입까지 언급하며 시중의 유동성 팽창 심리를 자극했다. 돈을 이렇게 풀어놓고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런 정부가 반도체 호황을 구실로 증세 카드를 꺼내니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22일자 조선일보 사설.

이어 “보유세와 양도세를 동시에 인상하겠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 실패한 대표적인 부동산 증세 정책이다. ‘매물 잠김’ 현상으로 실수요자들이 집을 구하지 못했고, 늘어난 세금 부담이 전·월세 가격으로 전가돼 무주택 서민의 주거 사다리가 끊기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그런 실패의 전철을 왜 또다시 반복하겠다는 것인가. 이번에는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까지 시사하며, 투기와 무관하게 오랜 기간 집을 소유해 온 실수요자까지 규제 사정권에 집어넣고 있다”며 “비정상적인 한국의 주택시장은 안정돼야 한다. 부동산 정책의 근본은 세금을 통한 징벌이 아니라 만성적 초과 수요 완화를 위한 안정적 주택 공급이다. 예측 가능한 세제 기조와 실효성 있는 공급 대책이 결합할 때 달성된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시장 왜곡을 부추기는 규제 일변도 증세 카드가 아니라 반도체 호황의 초과 세수 일부를 무주택 서민과 청년층을 위한 공급 확대에 집중 투자하는 등의 정석적인 시장 안정 방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공급 대책은 진척 없고 세금 엄포만 계속되는 부동산 정책> 사설에서 “늘어난 유동성도 집값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과급 특수’로 경기 남부 ‘반도체 벨트’의 집값은 들썩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셋째 주 화성시 동탄구의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2.22% 상승했다. 증시 급등도 부동산 시장을 자극한다. 올해 1~4월 주식과 채권을 처분해 주택 매입에 들어간 자금만 3조7000억원에 달했다”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주택 인허가와 착공·준공, 입주 예정 물량도 모두 감소했다. 이런 흐름 속에 서울 등 수도권 집값과 전셋값이 함께 뛰며 실수요자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건 세금 폭탄이나 규제 강화가 아닌 공급이다. “신축이든, 택지 개발이든, 재건축·재개발이든 속도를 빨리 내서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말대로 공급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실수요자가 애타게 기다리는 공급 대책은 아직 진척이 없고, 세금 엄포만 거듭되고 있으니 시장은 선뜻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 1면에 반도체 호황으로 초임금격차에 따른 불평등 기획

경향 “보유세뿐 아니라 금투세 도입도 검토해야”

한겨레는 <반도체발 ‘격차사회’> 기획 기사를 1면에 보도했다. 한겨레는 1면 <‘초임금격차’가 부른 불평등·박탈감 사회> 기사에서 “증권가에서 추산하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올해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영업이익 전망치 평균은 각각 361조원, 261조원이다. 영업이익과 연동된 이 회사 직원들(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 부문의 메모리 사업부 기준)의 올해 성과급 추산액은 1명당 평균 6억~7억원가량에 이른다. 이는 글로벌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직원들의 연간 전체 보수(연봉+성과급)를 훌쩍 웃도는 규모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자료를 보면, 세계 시가총액 1위 엔비디아의 2026회계연도 직원 보수 중위값은 28만2050달러(약 4억2천만원)다. 미국 알파벳(구글 모회사)의 직원 보수 중위값도 지난해 기준 31만826달러(약 4억7천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22일자 한겨레 1면.

▲22일자 경향신문 2면.

이어 “반도체 기업의 이른바 ‘성과급 잔치’는 한국 사회에 의사 집단에 버금가는 신흥 ‘초고연봉 노동자 집단’의 등장을 의미한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 부문과 에스케이하이닉스 전체 직원 수는 약 11만3천명으로, 전국의 전문의 수(2024년 기준 약 11만4천명)와 비슷하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작성한 ‘의사 인력 임금 추이’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병의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임금 수준은 3억100만원으로 집계된 바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런 노동자 집단의 급격한 등장이 불러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심화해온 국내 임금·소득·자산 등 ‘3대 격차’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공지능 전환 가속화로 반도체 등 소수 수혜 기업 노동자의 초고소득이 고착화하고,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다수는 일자리·소득 감소 등을 겪게 되리라는 전망도 이런 염려를 부채질한다. 반도체발 경기 활황으로 국내 기준금리 인상도 유력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초고연봉 노동자와 중소기업 및 취약 노동자, 자영업자 간의 체감 온도 차도 극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반도체 호황,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응 서둘러야> 사설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성과급과 사내 대출로 내년까지 50조원 넘는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상승세가 뚜렷해지는 수도권 집값에 반도체 호황이 충격을 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성장의 혜택이 자산을 보유한 이들에게만 돌아가고 대다수 서민은 집값 상승 등으로 고통받는다면 역대급 호황의 의미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성장의 온기가 경제 전체로 퍼질 수 있도록 가용한 모든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자산 불평등 확대는 당장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반도체 호황이 오히려 한국 경제에 악재가 되지 않도록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음달 세법개정안에서 보유세 인상 등 부동산세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김 실장도 언급했듯이 보유세 인상만으로는 역부족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주식시장 양극화는 사실 심각한 자산 양극화를 부른다”고 했다. 말로만 그칠 게 아니라 개인 투자자 반발을 우려해 미뤄온 금융투자소득세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과세 정상화뿐 아니라 초과세수 등 반도체 호황의 성과를 공유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서둘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연어 술 파티’ 허위 판결, 조선·중앙 “특검 접어라” 경향·한겨레 “본질은 검찰 공소권 남용”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송병훈 부장판사)는 20일 검찰청사 내에서 이른바 ‘연어 술 파티 회유’ 의혹을 제기해 국회 위증 혐의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회부지사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이화영 전 지사가 위증을 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2026년 6월8일부터 19일까지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성태 쌍방울 회장 측에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일 때 2018년과 2021년에 지방선거, 그리고 민주당 경선후보일 때 후원금을 해달라, 쪼개기 후원을 해달라고 요청한 정치자금법 위반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했다.

중앙일보는 <“연어 술 파티는 허위” 판결…공소 취소 특검 접어야 한다> 사설에서 “그동안 민주당은 이 전 부지사의 ‘술 파티’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며 파상 공세를 펼쳐 왔다. 여당 의원들은 술 파티가 사실임을 검증해 보이겠다며 국정조사 특위를 열고는 수원지검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서 청사까지의 이동 시간을 측정하는 촌극까지 벌였다. 여당은 이런 무리수까지 동원해 가면서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취소 권한을 부여한 조작기소 특검법을 발의했다. 연어 술 파티는 검찰의 허위 진술 강요나 회유가 있었다고 몰아가는 대표 사례로 활용됐다.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안에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서 위법한 접견과 말 맞추기 정황, 수사 편의 제공 등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확인됐고, 핵심 관계자의 진술이 강요와 압박, 회유 때문에 형성되었을 정황도 확인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여당이 특검법 추진의 주춧돌로 삼았던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돼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라고 설명했다.

▲22일자 중앙일보 사설.

▲22일자 중앙일보 사설.

이어 “근거가 허위라는 판결을 받은 만큼 민주당이 추진해 온 조작기소 의혹 규명을 위한 공소 취소 특검이나 수사 검사 탄핵 등은 중단하는 게 마땅하다. 국정조사에 이은 특검법안 발의까지 주도하며 허위 주장을 진실로 몰아붙인 민주당 의원들이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라며 “억지 명분을 쥐고 재판 결과를 뒤집기 위해 ‘셀프 면죄부용’ 특검법을 강행한다면 거센 역풍을 맞게 될 것임을 여권은 깨달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조선일보도 <‘연어·술 파티’ 위증 유죄, 이래도 민주당은 “공소취소 특검”> 사설에서 “법원이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의 이른바 ‘연어·술 파티’ 주장을 허위로 보고 이 전 부지사에게 1심에서 징역 4개월형을 선고했다. 이 전 부지사는 2024년 국회 청문회에서 ‘검찰이 연어와 술을 주면서 진술을 회유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가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민주당은 이 주장 등을 근거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조작됐다며 공소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그 핵심 근거가 1심에서 무너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문제는 이런 허술한 주장을 신줏단지처럼 받들어온 민주당의 태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일념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수사 검사들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고 국정조사를 벌였다. 아무 소득이 없는 데도 ‘결정적 증거가 나왔다’며 조작 기소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다. ‘시대의 소명’이라고도 했다”라며 “이번 판결이 나온 다음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결과는 유죄이지만 실질은 무죄’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특검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다. 거짓을 토대로 국가 사법 체계를 흔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연어 술파티’ 없었지만 검찰도 공소권 남용했다는 법원 판단> 사설에서 “하지만 술파티 의혹이 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한 만큼 특검법 명분도 약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민주당은 향후 특검법 추진 과정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명분이 약해진 상황에서 특검법을 무리하게 강행하면 국민적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재판부는 그러나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회사 임직원 등 명의로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쪼개기 후원을 하는 과정에 이 전 부지사가 공모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는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대북 묘목 및 밀가루 지원과 관련된 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해선 검찰이 다른 피고인을 기소하면서 이 전 부지사와의 공모 관계를 입증할 증거가 없음에도 공소장에 이를 무리하게 기재한 명백한 공소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이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에 제동이 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22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도 <‘연어 술파티’가 가린 이화영 1심 본질은 검찰 공소권 남용> 사설에서 “오히려 이번 판결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엄중하다. 이 전 부지사가 경기도의 대북 지원 사업을 부정하게 집행했다는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배심원단은 전원일치로 무죄 평결을 했고, 법원은 아예 공소를 기각했다. 이 혐의와 관련해 검찰은 신명섭 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 공소장에 객관적 혐의 없이 이 전 부지사를 공범으로 적시해 유죄를 받아낸 뒤, 이 전 부지사를 공범으로 추가 기소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과도하게 방어권을 침해한 공소권 남용으로 판단했고, 보도자료를 내어 “(유사 사건에)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쪼개기 후원’(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도 배심원 전원일치로 무죄가 선고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의 기소권은 적법한 절차와 방어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원칙 아래 엄격하게 행사되어야 하며, 누군가를 압박하거나 불이익을 주기 위해 악용해선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한 원칙이다. 이번 판결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 행태에 대한 사법부의 준엄한 경고다. 국민의힘은 ‘연어 술파티 위증’ 유죄만을 내세워 본질을 가리려는 행태를 중단하고, 검찰은 공소기각이라는 불명예를 무겁게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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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첫 회담 80분 만에 종료…이란, 트럼프 위협 반발 협상장 떠나

김원철기자

  • 수정 2026-06-22 07:15

다음 회담 일정 아직 못 정해

이란, 협상서 철수는 아닌 듯

레바논 문제 막혀 핵 협상 못 들어가

“원유 제재 완화 초안 마련”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이 21일(현지시각) 스위스 루체른호가 내려다보이는 뷔르겐슈토크 고급 호텔 단지에서 열린 미국·이란·파키스탄·카타르 4자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루체른/AFP 연합뉴스

종전 양해각서(MOU) 서명 나흘 만에 열린 미국과 이란의 첫 후속 회담이 약 80분 만에 종료됐다. 협상 도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위협 발언이 전해지며 이란 대표단이 회담장을 떠났지만, 협상 자체에서 철수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회담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은 21일(현지시각) 스위스 루체른 호수 인근 뷔르겐슈토크 리조트에서 파키스탄과 카타르의 중재 아래 고위급 4자 회담을 열었다. 미국에서는 제이디 밴스 부통령과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참석했다. 이란에서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과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부 장관이 협상단을 이끌었다.

이란 대표단은 회담에 앞서 취재진에게 공개된 개회 발언과 미국 대표단과의 공동 사진 촬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란 타스님 통신은 이란이 미국 대표단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최종 합의가 나오기 전 미국 쪽과 우호적인 장면이 연출될 경우 이란내 강경파가 반발할 것을 우려한 행보로 보인다.

이란 국영 이르나(IRNA) 통신에 따르면 4자 회담은 시작된 지 약 80분 만에 내부 협의를 위해 정회했다. 그러나 회담이 정회된 사이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 위협이 전해지며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이 레바논 헤즈볼라를 통제하지 않으면 다시 공격하겠다며, “문제를 일으키는 고액 보수를 받는 대리세력을 즉시 멈추지 않으면 지난주보다 더 강하게 이란을 타격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에 격분한 이란 대표단은 회담장을 이탈했다. 이르나 통신은 협상이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이란 협상단장인 갈리바프 의장 역시 소셜미디어 엑스에 “미국의 위협이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었다면 그들이 오늘처럼 절박한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맞섰다. 그는 “미국은 발언을 신중히 하는 것이 좋다”며 “우리 군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 그들이 아무리 말해도 행동하는 것은 우리”라고 경고했다.

공식 대면 회담이 한 시간여 만에 중단되자 중재국들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엠에스나우(MS NOW)에 따르면, 파키스탄 내무장관 모신 나크비가 이란 대표단을 현장에 남게 하기 위해 막판 면담에 나섰다. 협상 상황을 아는 파키스탄 고위 당국자는 이후 엠에스나우에 “이란이 마음을 돌렸다”며 협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피(AP)통신과 시엔엔(CNN)도 협상 상황을 아는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란 대표단이 중재국들에 철수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며 여전히 협상에 관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첫날 회담에서는 이란이 최우선 의제로 내세운 레바논 문제가 주로 논의됐다. 뉴욕타임스는 양쪽이 이란 핵 프로그램의 향후 처리 문제까지는 본격적으로 손을 대지 못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 협상팀의 한 인사는 이란 매체에 “레바논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다른 주제의 협상은 없다”고 밝혔다.

장외 대치는 이날 내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폐쇄하면 미국이 해협을 장악하고 통행료로 통과 원유의 20%를 가져가겠다며 스스로를 중동의 ‘수호천사’로 묘사했다. 또한 우라늄 농축 권리를 주장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을 향해 “입을 조심하라,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나라의 나머지를 장악하겠다”고 위협했다.

공개적인 충돌과 별개로 경제 분야에서는 일정한 진전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협상단의 경제 전문가인 호세인 고르반자데는 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에 “이란산 원유와 석유제품에 대한 미국의 일시적 제재 면제 최종 초안이 완성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해외 동결자산을 해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함께 논의됐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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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연임에 싸늘한 호남…전북 "이원택 찍었어도 당대표는 아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6/22 07:42
  • 수정일
    2026/06/22 07:4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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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김민석 19.8 대 정청래 18.1 접전…정청래 선호층 60%는 대통령 부정평가

2026-06-21 08:59:02
 

6·3 지방선거가 끝나자 민주당의 시선은 8월 17일 전당대회로 옮겨갔다. 차기 당대표 자리를 놓고 정청래 대표가 연임에 도전하고, 김민석 국무총리와 송영길 전 대표가 경쟁 상대로 거론된다. 호남뉴탐사는 이틀에 걸쳐 광주와 전주를 돌며 시민 30여 명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여론조사 막대그래프로는 보이지 않던 정서가 거리에 깔려 있었다. 정청래 대표의 연임을 떠받치는 호남 민심이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신호였다.

 

"거기서 거기여" 무관심 속의 냉소

 

광주에서 처음 만난 한 노인은 당대표 얘기를 꺼내자 손부터 내저었다. 누가 나오는지는 알지만 "한 놈도 생각 없어"라고 했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거기서 거기여"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통령 기자회견을 봤느냐고 묻자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런 걸 보고 있겠냐"며 자리를 떴다.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앉은 노인들도 비슷했다. 누가 당대표로 나오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그놈이 그놈인 줄 알지"라고 했다. 정치엔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며 속을 감추던 이들도 대통령이 김민석 총리를 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관심 없다는 말과 달리 돌아가는 판은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광주 유권자 특유의 고관여층다운 모습이었다.

 

법사위원장의 잔상, 정청래를 지지하는 사람들

 

정청래 대표를 한 번 더 밀고 싶다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길에서 만난 한 남성은 "정청래가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유는 법사위원장 시절이었다. "법사위원장 할 때 잘했다"는 기억이 가장 큰 근거였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야당 대표와 여당 대표의 그릇이 달라야 한다고 말한 대목을 아느냐고 묻자 "잘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시민은 "집사람도 정청래에게 표를 던지더라"며 호의를 보였다. 윤석열 정권과 맞서 싸웠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이 김민석 총리 쪽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는 안다면서도, 그래도 정청래 대표가 한 번 더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정 대표가 당대표로서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거기까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정책이나 성과보다 강한 인상으로 정치인을 소비하는 지지였다.

 

내란 세력 청산을 이유로 든 사람도 있었다. 이번 선거 결과가 불완전한 청산이라고 보고, 정청래 대표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확실히 제압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정 대표의 강성 이미지가 그대로 자산이 되는 지점이다. 전주에서 만난 진보당 성향의 한 시민은 "아직도 정청래"라며 "정청래 외에 무슨 대안이 없다"고 했다. 유튜브로 정청래의 행보를 많이 봤다고 했다.

 

고장은 안 났는데 자꾸 걸린다, 등 돌린 사람들

 

반대편 목소리도 또렷했다. 김민석 총리를 지지한다는 한 시민은 정 대표의 카리스마를 명과 암으로 나눠 설명했다. 강성 이미지를 좋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방선거 공천과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불협화음을 정 대표가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민주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택시기사 한 명은 더 직설적이었다. 그는 정 대표가 "자기 위주 정치를 하는 것 같다"며 연임에 강하게 반대했다. 또 다른 택시기사의 비유는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정청래는 고장이 난 건 아닌데, 차가 자꾸 걸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야당일 때는 강속구를 던지는 사람이 유리하지만, 여당이 되면 강속구만으로는 안 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커브도 던지고 빈볼도 던지면서 통합해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대통령이 회견에서 꺼낸 창과 그릇의 비유와 그대로 포개졌다. 그는 "물러나 있으라고 하면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리당원들의 셈법은 한층 정교했다. 송영길 전 대표 쪽으로 마음이 기운 한 권리당원은 "민주당 전체를 봐야 한다"며 새로운 사람을 원했다. 그는 정 대표가 "갈 데만 가고 안 갈 데는 안 가서 지지자들을 제대로 못 챙겼다"고 했다. 김민석 총리를 향해서는 "본인의 색깔을 보여줘야 우리가 판단한다"는 주문을 내놨다.

 

전주 남부시장의 두 얼굴

 

이번 르포에서 가장 눈에 띈 곳은 전주 남부시장이었다. 정청래 대표가 하루 먼저 다녀가며 상인들의 환대를 받았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사진을 올린 바로 그 시장이다. 정 대표는 상인들이 등을 토닥이고 손을 잡아줬다고 적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호남뉴탐사가 만난 상인들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한 노인은 "정청래 진짜 반대"라고 잘라 말했다. 이유는 "중심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이었다. 선거에서 졌으면 깨끗하게 물러나야 하는데 연임인지 불출마인지 태도가 애매하다는 취중 진담이었다. 전북지사 선거에서 김관영 후보를 찍었다는 시민들의 반감은 더 깊었다. 한 권리당원은 민주당 후보 이원택을 찍었지만, 당대표는 정청래가 아니라고 했다. 당 후보라서 이원택에게 표를 줬을 뿐, 당대표로는 김민석 총리를 지지한다고 했다. 지난 전당대회 때도 대통령이 지지한 박찬대를 찍었다고 했다.

 

김관영 후보의 낙선을 제 일처럼 아파한 상인도 있었다. 그는 김 후보가 4년 동안 일을 잘했는데 공천 다툼에 휘말려 고생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정청래 대표가 당대표가 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전북지사 선거에서 김관영 후보를 찍은 42%는 정청래 대표에게 쉽게 돌아오지 않을 표다. 정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에서 호남에서 얻은 60% 중반의 지지를 다시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현장에서 읽힌 흐름이다.

 

대통령의 뜻과 여론조사의 역설

 

거의 모든 인터뷰를 관통한 변수는 대통령의 뜻이었다. 정청래 대표를 지지한다는 사람들조차 고민의 지점은 같았다. 대통령이 김민석 총리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권 남용을 걱정하며 정 대표에게 마음이 가던 한 시민은 "불을 다 안 끄면 대통령이 또 죽는다"고 했다. 검찰이라는 불씨를 끄는 데 정청래가 나을 것 같지만, 대통령 뜻은 아닌 것 같아 고민이라고 했다. 정 대표를 지지하던 또 다른 상인은 "대통령이 헷갈리게 좀 하지 말라"고 푸념했다.

 

천지일보가 6월 15·1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민석 19.8%, 정청래 18.1%로 두 사람은 접전이었다. 이 조사에는 특이한 대목이 있었다. 김민석·송영길 선호층은 85% 안팎이 대통령 국정수행을 긍정 평가한 반면, 정청래 선호층만은 60%가 부정 평가했다. 정청래 연임을 지지하는 표의 상당수가 오히려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청래로 이어지지 않고, 정청래를 지지하는 사람은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교차 현상이 호남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순방 기자회견에서 포용과 개방을 거듭 강조했다. 같은 진영 안에서 경쟁을 해야지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없는 사실을 지어내지 마라"는 말도 했다. 검찰의 보안수사권 폐지 문제는 국회 논의에 맡기겠다며, 이를 정치적 이익으로 챙기려 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정청래 대표가 보안수사권 전면 폐지를 선명한 깃발로 들고 나온 상황을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정청래 대표가 남부시장에서 받은 환대 사진을 민심 전체로 포장하는 사이, 김관영 후보를 지지했던 또 다른 민주당 지지층은 상처를 받고 있었다. 대통령이 강조한 포용과 개방이 정작 호남 갈라치기 앞에서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호남뉴탐사가 만난 시민들의 솔직한 속마음은, 전당대회가 정 대표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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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이란의 완전한 승리 아닌가: 이슬라마바드 MOU 분석

  • 기자명 장창준 객원기자
  •  
  •  승인 2026.06.21 19:30
  •  
  •  댓글 0
 
 

전선 통제권과 체제 보장: 이란의 요구 전면 관철
미국의 의무는 ‘강제’, 이란의 권리는 ‘확보’
3,000억 달러의 ‘전후 배상금’과 경제 제재 무력화
핵 문제의 절충과 트럼프식 파기 방지 안전장치
종합 평가: 이슬라마바드 MOU 14개 조항 핵심 요약
총평 및 전망: 평화가 아닌 ‘새로운 전장’으로의 전환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이란의 역대 최고지도자 사진 앞에서 MOU를 보여주고 있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이란의 역대 최고지도자 사진 앞에서 MOU를 보여주고 있다.

중동 정세를 뒤흔든 미국과 이란 간의 휴전 협정, 이른바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MOU)’가 공식 체결되었다. 파키스탄의 중재로 도출된 총 14개 항의 합의문이 공개되자, 국제 외교가 안팎에서는 “미국이 이란에 판정패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합의문의 겉모습은 ‘양해각서(MOU)’라는 느슨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세부 조항을 뜯어보면 핵심 알맹이는 대부분 이란의 요구대로 채워졌다. 전체 14개 조항 중 무려 10개 조항에서 이란의 판정승이 확인된다.

이번 협정이 왜 ‘이란의 완승’으로 평가받는지 조항별 분석과 향후 정세를 정밀 진단한다.

전선 통제권과 체제 보장: 이란의 요구 전면 관철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군사적·정치적 주도권을 이란이 쥐게 되었다는 점이다.

레바논 헤즈볼라까지 묶은 군사 조항 (1항): 합의문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종식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이스라엘이 레바논 헤즈볼라를 공격하는 행위까지 이 MOU의 영향력 아래 묶어두겠다는 이란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 결과다.

미국의 내정 간섭 차단 (2항): 상호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함으로써, 미국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이란 내 ‘정권 교체(Regime Change)’ 및 체제 전복 시도를 국제 합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차단했다.

미국의 의무는 ‘강제’, 이란의 권리는 ‘확보’

군사적 족쇄를 풀고 막대한 경제적 실리를 챙긴 쪽도 이란이다.

해상 봉쇄 해제와 미군 철수 (4항): 미국은 MOU 서명 직후 즉시 이란 해상 봉쇄 해제를 시작해 30일 이내에 완료해야 한다. 또한 최종 합의가 타결되면 이란 인근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하는 거대한 의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 배제 (5항): 이란은 60일간 해협 통항 선박에 비용을 청구하지 않기로 했으나, 이는 뒤집어 말하면 60일 이후에는 합법적으로 ‘통행료’를 청구할 근거를 마련했다는 뜻이다. 특히 대화 주체를 미국을 배제한 채 ‘이란-오만 및 페르시아만 연안국’으로 한정해 미국의 개입 여지를 원천 차단했다.

3,000억 달러의 ‘전후 배상금’과 경제 제재 무력화

경제적 합의 사항은 이란 외교의 ‘화룡점정’이라 부를 만하다.

우회적 ‘전쟁 배상금’ 확보 (6항): 미국은 지역 파트너들과 함께 최소 3,000억 달러(약 400조 원) 규모의 이란 재건 및 경제 발전 지원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명분은 재건 비용이지만, 사실상 이란이 요구해 온 전쟁 배상금을 미국이 지불하는 형국이다. 이에 필요한 금융 거래 라이센스와 제재 유예도 미국이 전적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포괄적 제재 전면 해제 (7항·10항·11항): MOU 체결 즉시 미국의 경제 제재는 선제적으로 유예(10항)되며,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 및 자산은 즉각 완전히 해제(11항)되어 이란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최종 합의 후에는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모든 제재가 완전히 철회(7항)된다. 이로써 이란을 옥죄던 미국의 경제 제재망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핵 문제의 절충과 트럼프식 파기 방지 안전장치

미국이 목을 매던 핵 문제에서도 이란은 판정승을 거두었다.

‘이란 내 처분’으로 핵 주권 고수 (8항):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는 합의(미국 요구 반영)했으나, 핵심인 핵물질 처분 방식을 ‘IAEA 감독하 이란 현장 처분’으로 제한했다. 그동안 미국이 주장해 온 '핵물질의 이란 밖 반출'을 완벽히 배척하고 핵 통제권을 영토 내에 둔 것이다.

미국의 ‘쇠고랑’이 된 선결 조건과 유엔 보장 (13항·14항): 이란은 미국이 해상 봉쇄 해제, 자금 지급, 제재 유예 등 핵심 의무를 하나라도 위반할 경우 즉각 MOUFMF 파기할 수 있는 강력한 브레이크(13항)를 쥐었다. 나아가 최종 합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승인(14항)받도록 해, 과거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핵합의(JCPOA)를 파기했던 사태를 다시는 재현할 수 없도록 국제법적 안전장치를 박아 넣었다.

종합 평가: 이슬라마바드 MOU 14개 조항 핵심 요약

  내용 관철주체 판단 근거
1항 군사작전 이란 헤즈볼라 대상 이스라엘의 군사행동 종식
2항 주권존중과 내정불간섭 이란 미국의 체제전복 시도 차단 및 이란 주권 공식 인정(미국의 정권교체 시도 실패 확인)
3항 60일 이내 타결 절충 기본 시한을 정하되, 상황에 맞게 합의에 의해 연장
4항 해상봉쇄해제/군대철수 이란 즉각적인 봉쇄 해제 및 이란 인근 미군 철수 의무화
5항 해협 관리권 이란 60일 이후 통행료 청구 근거 마련 및 대화 주체 한정으로 미국 개입 차단
6항 이란 재건 비용 이란 '전쟁 배상금' 성격의 자금 확보 및 미국의 금융 제재 무력화
7항 제재 해제 이란 최종 합의 후 모든 제재 해제 약속
8항 핵협상 절충 핵협상 개시로 미국의 요구 일반 반영. 그러나 '이란 내 처분'이라는 이란 주장 관철
9항 현상 유지 절충 협상 동력 유지와 상호 신뢰
10항 미국제재유에 이란 MOU 체결 직후부터 제재를 선제적으로 유예
11항 동결자산해제 이란 이란이 요구한 해외 자산의 완전한 사용 보장
12항 모니터링 절충 상호간의 이행 준수 감시
13항 선결조건이행 이란 핵심 조항 위반 시 협상 파기, 미국 압박 카드
14항 유엔안보리결의 이란 트럼프식 일방 파기 막고 합의의 구속력과 지속력 확보

 

총평 및 전망: 평화가 아닌 ‘새로운 전장’으로의 전환

이처럼 이란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협정이 맺어진 배경에는 양국의 동상이몽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중간선거용 ‘잠정적 숨고르기’
미국 행정부의 이번 서명은 철저히 국내 정치적 수요에 등 떠밀린 결과다. 다가오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동발 전황 악화와 그에 따른 유가 폭등을 어떻게든 통제해야만 했던 정무적 판단이다. 고강도 군사 압박으로도 이란의 저항 능력을 꺾지 못하자, 선거 전 국면 전환을 위해 군사행동을 ‘잠시 멈춤(Pause)’ 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선거가 끝나거나 이스라엘의 반발이 극에 달할 경우 언제든 강경 기조로 회귀할 수 있는 취약한 시한부 성격을 띤다.

이란: 군사전에서 '정치외교전'으로의 공세적 전환
반면 이란은 이번 MOU를 미국·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을 자력으로 버텨내고 거둔 ‘사실상의 전술적 판정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장에서 확보한 힘의 우위를 외교 문서로 확증한 것이다. 이란에 있어 이번 휴전은 평화의 도래가 아니다. 군사적 전장에서 고도의 정치·외교적 전장으로의 ‘전장 이동’일 뿐이다.

이란은 MOU라는 강력한 지렛대를 쥐고 향후 60일간 제재 해제 이행과 핵 문제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일 가닥을 잡았다.

살얼음판 위의 중동 정세
결국 이슬라마바드 MOU가 가져온 현 정세는 안정적인 종전이 아니라,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극도로 불안정한 잠정 대치 상태’에 가깝다. 미국의 선거용 군사 숨고르기와 이란의 외교적 실리 굳히기가 맞물려 탄생한 거대한 타협일 뿐이다. 특히 합의에 격렬히 반발하며 레바논 남부 철수를 거부하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메가톤급 변수가 살아있는 한, 중동의 항구적 평화를 논하기는 이르다. 중동은 지금 평화 구역으로 진입한 것이 아니라, 한층 더 치열하고 정교해진 ‘2라운드 정치전’의 포문을 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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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이 사실을 밀어내는 시대, 누가 민주당 정권을 망치는가

[조성식의 통찰] 폭력적 진영논리 폐해 심각...집권 여당, 책임 정치 필요

26.06.22 07:01최종 업데이트 26.06.22 07:01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18일 국회에서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연합뉴스

오늘날 한국 정치의 가장 큰 위협은 폭력적 진영논리다. 이는 정치적 양극화의 산물이다.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에 따르면, 정치적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다. 정파적 언론이 편향 보도를 일삼고 진영논리에 따른 확증편향이 여론을 지배하면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고 관용과 자제가 설 땅을 잃는다.

물론 진영주의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신념이 같은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서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언론의 정파성도 마찬가지다.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정치 유튜브와 달리 언론은 객관성과 중립성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각 매체의 정체성에 맞는 정파성을 교묘히 드러낸다.

문제는 정파성 자체가 아니라 정파성의 상업화, 또는 교조주의화다. 진영주의자들은 무리의 정치적 신념에 맞지 않는 사실은 배제한다. 진영에 불리한 사실은 왜곡하거나 덮어버린다. 반대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나 심지어 거짓이라도 정치적 신념이나 진영의 이익에 부합하면 사실로 단정하면서 지지자들을 선동한다.

진영논리에 젖은 선동가들의 공통점은 지속적인 편 가르기와 타도 대상 설정, 사실의 선택적 수용이다. 수사와 재판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증거와 논리를 따져보기에 앞서 수사기관과 사법부 비난부터 한다. 실체적 진실과 별개로 진영에 유리한 판결을 하면 '참 법관'이라고 칭찬하고, 불리한 판결을 내놓으면 '적폐 판사'로 낙인찍는다. 그들 눈에는 정치적 성향이나 지향점이 비슷하더라도 '주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면 다 적폐요, 반개혁 세력이다. 나아가 내란 동조 세력이다.

내란 청산은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지만, 그것을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의구심이 짙어지면 중도층은 거리를 두거나 등을 돌리게 된다. 이를테면 3대 특검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2차 종합특검법을 발의한 것이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 대통령 관련 사건이 다수인 조작기소 특검법을 제출한 것은 그런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다.

불법 비상계엄이 빚은 내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민주당에 천재일우의 호기였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 없었다면, 민주당이 다음 대선 때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의 덫에서 빠져나와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을지도 불분명했고. 군인들이 무장하고 국회로 쳐들어오는 난리가 났는데도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의 표차가 8.27%p밖에 나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 만큼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려면, 나아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려면 이 대통령 지론대로 지지 기반의 외연을 넓히는 게 맞는 듯싶다. 민주당 정체성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인사를 영입하거나 중용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합리적 중도 보수층은 최대한 끌어당겨야 한다. 그러려면 밀어붙이되 절제해야 했다. 권력 잡았다고 다 가지려 한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했다. 선동으로 사실을 밀어내거나 왜곡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 편이면 무조건 감싸는 진영주의가 '독' 됐다

지난 2025년 9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검찰 개혁 입법청문회에서 출석 증인을 대표한 이희동 부산고검 검사를 비롯한 증인들이 선서하고 있다. 우측 끝 남성이 조경식씨.연합뉴스

지난해 9월 민주당이 주도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검찰개혁 입법청문회'와 올해 3월 출범한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 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조작기소 특위)'는 성과도 많았지만, 선동 정치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부정적 평가도 나왔다.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한 민주당 의원들의 무차별 공세에 지지층은 환호했지만, 합리적이고 공정한 진실 규명과는 거리가 있었다.

검찰개혁 명분으로 삼으려 했던 관봉권 띠지 폐기 의혹 사건은 민주당 완패로 끝났다.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 만한 사건이었으나 확증편향이 문제였다. 청문회에 출석한 검사들과 담당 수사관들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진실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건만, 민주당은 무분별한 정치공세로 일관했다. 검찰을 개혁 대상이 아니라 척결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90일 동안 수사한 상설특검(특별검사 안권섭)은 "검찰 지휘부의 은폐 지시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실무자의 단순 업무과실로 결론 내렸다.

검찰개혁 입법청문회에 사기전과 9범이자 동거녀에 대한 특수상해(구타, 회칼 위협 등), 특수공갈, 특수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돼 수감 중이던 조경식씨를 증인으로 내세운 것은 민주당 수준을 의심케 했다. 김성태 쌍방울 전 회장과 오랜 친분이 있다는 조씨는 이른바 연어 술파티 의혹 사건의 내막을 잘 아는 듯이 증언했으나, 이 사건을 조사한 법무부 특별점검팀은 그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조경식이 연어·술파티에 참석한 사실이 없으며 왜 참석했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조씨는 수원구치소 수감 당시 이 전 부지사와 같은 수용동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가 민주당과 연결된 것은 이 전 부지사 변호인으로 활동한 김광민 변호사 덕분이다. 지난해 4월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조씨 사건을 수임한 김 변호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된 조씨의 갖가지 '폭로'를 민주당과 언론 매체를 통해 공론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조씨는 청문회 출석 당시 KH그룹 부회장으로 행세하며 알펜시아호텔 인테리어 공사 명목으로 지인에게 수억 원을 받아가 갚지 않은 사기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였다. 그는 청문회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배상윤 KH그룹 회장 구명로비를 벌였는데 권 의원 요구로 48억 원이 전달됐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가 권 의원과 접촉한 것은 사실로 확인됐지만, KH그룹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조씨가 스스로 'KH그룹 부회장' 명함을 제작해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의 범죄사실 중에는 쌍방울 회장과의 친분을 이용한 나노스(쌍방울 관련주) 주식 관련 사기도 있다. 청문회 이후 보석으로 출소한 그는 지난 4월 조작기소 특위 증인으로도 활약했다.

대장동 사업으로 1000억 원대 수익을 올린 남욱 변호사에 대한 민주당의 기울어진 잣대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가 검찰 강압 수사의 '피해자'라고 해서 대장동 관련 범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검찰이 이 대통령의 배임 혐의를 조작 기소했다고 해서 민간업자들의 천문학적 수익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전 정권에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며 이 대통령을 궁지에 몰았다가, 현 정부 출범 후 정반대로 돌아선 그의 오락가락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그는 올해 4월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됐다.

민주당이 화력을 쏟아부은 명태균 게이트는 용두사미로 끝나는 모양새다. 비록 명씨가 자초한 면이 있긴 해도, 명씨 사건 1심 재판부 판단대로 윤석열씨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과 그가 김영선 전 의원과 업무적·금전적으로 얽힌 관계는 별개로 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자신들이 공익제보자로 지정한 전 미래한국연구소 부소장 강혜경(1호), 소장 김태열(3호)씨의 일방적 주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검증에 소홀하고 심지어 허위 주장까지 퍼트렸다.

특검이 기소한 혐의 대부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김건희씨 항소심 재판부가 유독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서만 무죄를 선고한 것도 새겨봐야 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문제가 된 여론조사 58건은 대부분 명씨가 윤씨 부부에게 전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실시한 게 아니었다. 미래한국연구소가 영업 활동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실시해 언론 매체 등을 통해 공표한 여론조사였다.

명씨는 58건 중 14건(공표 10건, 비공표 4건)을 윤씨 부부를 비롯한 여러 정치인에게 무상으로 보냈다. 그중 윤씨 부부에게만 전달한 여론조사는 비공표 3건(김건희 2건, 윤석열 1건)이다. 윤씨 부부가 여론조사에 관여한 흔적도 없었다. 1, 2심 재판부가 똑같이 정치자금법상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이유다. 명씨에게 사전에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비용을 대납하게 했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혐의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과정에서 일부 후보들의 비리 의혹에 이중잣대를 들이댐으로써 공정하지 않다는 인상을 줬다. 당리당략에 치우쳐 사실을 무시하거나 외면한 결과였다. 어느 당이나 마찬가지지만, 중대한 비리나 불법 행위가 드러났는데도 우리 편이면 무조건 감싸는 진영주의는 단기간에는 약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독이다.

'선동 정치'는 자멸의 길... 사실 앞에 겸손해야

더불어민주당 이건태, 박성준 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2월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가칭)'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남소연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이른바 민주화 세대는 공정보다는 진영논리에 익숙하다. 거대 악과 싸우면서, 나와 우리 편 잘못에는 관대해졌다. 우리 편의 반칙과 특혜는 대수롭잖게 여기면서 상대편 잘못은 칼같이 단죄하려 든다. 젊은 세대는 이런 이중성을 싫어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득권층으로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입으로는 서민과 약자, 진보적 이념을 외치는 민주화 세대 꼰대들의 위선이 역겨운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탈리아 순방 중인 지난 13일 소셜미디어에 '집권여당은 신념의 언어보다는 책임의 언어에 더 집중해야 한다' '여당의 열정은 우리 진영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향해야 한다'고 적었지만, 민주당은 그 반대로 행동했다. 신념을 앞세운 나머지 책임에 소홀했고, 정치적 판단의 기준을 국민 전체가 아닌 강성 또는 열성 지지자들에게 맞췄다.

개혁 대상을 타도 대상으로 삼으면 보복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상대는 악이고 우리는 선이라는 이분법은 개혁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역대 정권을 보면, 민심과 동떨어지거나 현실을 무시한 교조주의적 개혁이 제도를 개악하고 민생을 더 힘들게 한 사례가 적지 않다. 개혁은 확실하게 하되,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목소리를 '반개혁'으로 몰아붙이는 원리주의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이 대통령 말마따나 결과까지 책임질 게 아니라면.

민주당이 내란 청산을 공정 가치를 구현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국민적 공감을 얻을 것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은 '내로남불' 타파다. 상대편이 강도질한다고 우리 편이 도둑질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 "조중동은 더하는데" 식의 논리는 균형이 아니라 변명이다.

검찰과 사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해서, 특검에 현직 대통령 관련 사건에 대한 공소 취소 권한까지 주는 건 공정과 법치주의에 반한다. 특검 수사 결과를 토대로 검찰(공소청)이 공소 취소를 하거나 재판부가 공소 기각을 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다. 공정은 사실을 존중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사실은 누구에게나, 어느 쪽에나 공평하다. 권력을 쥔 쪽일수록 사실 앞에 겸손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실을 비트는 선동 정치는 자멸의 길이다.

이 점에서 여론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이른바 셀럽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유튜버 등이 사실과 맞지 않는 주장을 펴는 건 자제해야 한다. 우리 편에 불리한 사실이라도, 기대하거나 믿는 바와 다른 사실이라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컨대 여권이 임명한 특검 수사 결과 비상계엄 당시 검찰이나 사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증거로 확인됐는데도, 계속 "그럴 리가 없다"며 불신과 적대감을 조장하는 행위는 정권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길이다. 과유불급이다.

#조성식의통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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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필요 없이 지금 이곳이 가장 빛나는 성지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샘터교회 원로목사. 시인. 부산예수살기 대표.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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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걷기를 실천한 사람들 24회]

멀리 떠나는 길, 결국 내면으로 향한다

일상의 길을 순례로 바꾸는 태도와 실천

지금 여기, 발밑에서 완성되는 거룩함

걷는 자의 깨달음, 비워짐에서 다시 시작

2025 겨울 가지산 정상에서 필자

1. 멀리 떠나는 길, 결국 내면으로 향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떠나기를 갈망하는 존재다. 미디어가 쏟아내는 이국적인 풍경, 끝없이 펼쳐진 산티아고의 황금빛 밀밭, 혹은 구름을 발밑에 둔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바라보며 우리는 매 순간 생각한다. 저곳에 가면 내 삶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저 거룩한 길을 걸으면 내 안의 혼란이 가라앉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큰돈을 들이고, 바쁜 일상을 쪼개어, 무거운 배낭을 메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들의 열정과 용기는 분명 가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점에서 아주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은 스페인이나 네팔이라는 이국적인 공간 자체일까, 아니면 그 길을 걸으며 비로소 마주하게 될 내면의 나 자신일까.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이 성스러운 이유는 그 땅의 흙이 특별해서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그 길을 걸었던 수많은 순례자들의 간절한 염원, 스스로를 비워내고자 했던 침묵, 그리고 발바닥의 통증을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갔던 행위의 숭고함이 그 길을 성지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뀐다. 그 간절함과 침묵, 비워냄의 태도를 지금 내가 사는 이곳으로 가져올 수는 없을까. 비행기 표를 끊지 않고도, 거창한 등반 장비가 없어도,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상 공간을 성지로 만들 수 있다. 들길도 좋고, 산길도 좋고, 도심 속 작은 공원길도 좋다. 산티아고를 걷는 심정으로 걷는다면,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바로 그 아스팔트와 흙길이 곧 세계 최고의 순례길이 된다.

현대인들은 장소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 유명 관광지나 트래킹 코스에 가야만 비로소 진정한 휴식이나 영적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일종의 환상이다.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히말라야의 멋진 배경 사진이 내면의 평화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압도당하는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는 있을지언정,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순간 다시 공허해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 잠시 동안의 도피에 불과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그들이 얻는 깨달음의 대부분은 풍경 그 자체보다는 걷는 행위와 태도에서 온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으며 소유의 부질함을 깨닫고, 발가락에 잡힌 물집을 보며 내 육체의 한계와 겸손함을 배우며,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세 가지 본질은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오늘 퇴근길에 들르는 동네 뒷산 산책로나, 강변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 도로 옆 보행로에서도 정확히 똑같은 본질을 구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비게이션이나 구글 맵이 가리키는 지도 위의 좌표가 아니다. 그 길을 걷고 있는 당신의 마음의 주파수다.

2022년 가을 다대포 해수욕장 저녁노을 풍경. 가끔 낙동강변 둘레길을 걷는다.

우리는 매일 지나는 길을 다 안다고 착각한다. 익숙함이라는 눈꺼풀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티아고를 걷는 순례자의 시선으로 동네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모든 공간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도시 외곽의 들길이나 강둑길을 걸을 때, 우리는 자연의 가장 솔직한 얼굴을 마주한다. 봄에는 파릇하게 돋아나는 쑥과 냉이의 향을 맡고, 여름에는 잡초의 무성한 생명력과 매미 소리의 진동을 느끼며, 가을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과 마른 풀잎의 서정성을 본다. 겨울의 들판은 어떤가. 모든 것을 비워낸 채 묵묵히 추위를 견디는 대지는 우리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들길을 걷는 것은 우주의 거대한 시계바늘과 나의 걸음걸이를 동기화하는 작업이다. 꼭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가야만 고독과 한계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동네 뒷산의 가파른 계단이나 경사로를 오를 때도 우리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허벅지는 터질 것처럼 팽팽해진다. 산길은 우리에게 중력이라는 정직한 법칙을 깨닫게 한다.

땀이 눈으로 흘러내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머릿속을 복잡하게 채우고 있던 세상의 걱정거리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오직 다음 한 걸음을 어디에 디딜 것인가라는 생존과 직결된 본질만 남는다. 그 순간, 동네 뒷산은 당신만의 히말라야가 된다. 도심의 공원 역시 현대인들을 위해 준비된 훌륭한 순례지다. 정형화된 보도블록이나 잔디밭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우리는 바쁜 도시의 소음 속에서 어떻게 나만의 고요를 유지할 수 있는지 연습할 수 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 벤치에 앉아 쉬는 노인,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인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회복하기도 한다.

공원길은 고립된 명상이 아니라, 타인과 공존하면서도 내면의 중심을 지키는 시장 바닥에서의 명상을 실천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산티아고를 걷는 심정으로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를 움직이는 물리적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아라는 세 가지 요소가 완벽하게 결합하는 철학적 사건이다. 우리의 마음은 대개 현재에 있지 않고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에 묶여 있다. 길을 걸을 때 비로소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른발이 땅에 닿는 순간, 왼발이 지면을 차고 나가는 순간, 그 찰나의 시간들이 모여 걸음이 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딛는 한 걸음뿐이다. 일상 속의 걷기는 우리를 시간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오롯이 지금에 집중하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다.

또한 우리는 종종 내가 서 있는 이곳을 비하한다. 이 지긋지긋한 도시, 맨날 똑같은 동네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당신이 서 있는 그 위도와 경도는 온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고유한 공간이다. 히말라야의 꼭대기나 스페인의 벌판만 우주가 아니다. 당신의 발밑에 있는 흙 한 줌, 아스팔트 한 조각도 모두 지구의 일부이며, 우주의 먼지가 모여 만들어진 기적의 물질들이다. 공간의 등급을 매기는 인간의 편견을 버릴 때, 내가 서 있는 방 한 칸, 집 앞 골목길은 곧 우주의 중심이자 신성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앉아 있을 때 머리는 복잡해지지만, 걸을 때 머리는 맑아진다.

 

2025년 여름 신불산 산행. 내가 자주 찾는 산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걸을 때만 명상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고 말했다. 니체 역시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고 했다. 걸을 때 우리의 몸은 일정한 리듬을 타기 시작하고, 이 리듬은 뇌세포를 자극하며 영혼의 먼지를 털어낸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도저히 풀리지 않던 인간관계의 실타래나 업무상의 난제들이, 신기하게도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걷기는 내 안의 진짜 나와 대화하는 가장 정직한 통신 수단이다. 아무리 좋은 철학도 실천하지 않으면 관념에 불과하다.

2. 일상의 길을 순례로 바꾸는 태도와 실천

내일부터 당장 집 앞을 나설 때, 가슴속에 몇 가지 순례자의 태도를 품어보자. 첫째는 스마트폰과의 결별이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다. 풍경을 담느라 정작 자신의 내면을 담지 못한다. 일상 순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어폰으로 음악이나 유튜브, 팟캐스트를 들으며 걷는 것은 걷는 행위를 소모하는 것에 불과하다.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내 발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를 들어라. 그 적막함과 심심함 속에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

둘째는 오감을 열어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다. 매일 걷는 길이라도 매일 다르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보도블록 틈새의 민들레가 보일 수 있고, 늘 지나치던 담벼락의 능소화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공기의 습도, 햇살이 내리쬐는 각도, 흙내음의 짙고 옅음은 매시간 변한다. 마치 태어나서 이 길을 처음 보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관찰하라. 경이로움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에 있지 않고, 새로운 눈을 갖는 것에 있다.

셋째는 속도를 줄이는 일이다. 우리는 늘 어딘가를 향해 서둘러 왔다. 더 빨리, 더 먼저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나 걸음의 의미는 도착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 평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걸으며 발바닥 전체를 땅에 맡겨보자. 발뒤꿈치에서 시작해 발가락 끝까지 이어지는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딛고 있는 대지가 단순한 바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리임을 느끼게 된다. 속도를 낮출수록 주변의 소리와 빛, 바람의 결이 또렷해지고, 그 안에서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넷째는 무조건적인 수용이다. 하늘이 흐려도, 갑자기 비가 내려도, 길 위에 어지럽게 놓인 것들이 눈에 들어와도 그것을 판단하거나 밀어내려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펼쳐진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좋고 나쁨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현실과 다투지 않게 된다. 수용은 체념이 아니라, 지금 여기와 화해하는 태도다. 그 화해 속에서 걸음은 한층 가벼워지고, 마음은 예상치 못한 평온에 닿는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는 반드시 탁족을 하며 피로를 푼다.

마지막은 감사의 환대다. 오늘 하루 나에게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고, 숨 쉴 수 있는 맑은 공기가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파랑새를 찾아 온 세상을 헤매 다녔지만, 결국 파랑새는 내 집 마당 새장 안에 있었다는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어쩌면 내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외국의 유명한 길, 거대한 자연, 값비싼 여행 상품을 기웃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진리나 평온함은 물리적 거리와 비례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지금 서 있는 방 안에서, 혹은 집 앞 골목길에서 평화를 찾지 못한다면, 스페인의 팔백 킬로미터 순례길을 걸어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정상에 올라도 결국 똑같은 공허함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 의미를 부여하는 나의 마음이며, 시간과 공간과 내가 만나 스파크를 일으키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다. 멀리 가기 위해 짐을 싸는 수고를 멈추어라. 거창한 계획을 세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그저 편한 신발 한 켤레를 신고 문밖을 나서라. 그리고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 스스로에게 속삭여라. 여기서부터 나의 산티아고가 시작된다고 말이다. 당신의 발밑이 바로 성지다. 그 길 위에서, 오롯이 당신만의 우주를 만나기를 소망한다.

3. 지금 여기, 발밑에서 완성되는 성지

우리가 발을 내딛는 모든 곳이 사실은 거룩한 땅이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위대한 탐험가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그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한 곳은 외부의 지리적 정점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이었다. 극단의 고독과 추위, 혹은 끝없는 지평선 앞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인간의 미약함과 동시에 생명의 경이로움이었다. 일상의 걷기는 이러한 거대 여정의 에센스를 매일 조금씩 나누어 마시는 일과 같다. 아침 출근길에 마주치는 가로수의 잎사귀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주의 역동성을 읽을 수 있고, 저녁 노을이 아파트 숲 사이로 붉게 물드는 풍경에서 히말라야의 일몰 못지않은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영혼의 깊이다. 깊은 영혼은 작은 조약돌 하나에서도 신의 지문을 발견하지만, 얕은 영혼은 그 어떤 웅장한 신전 앞에서도 지루함만을 느낄 뿐이다. 그러므로 먼 곳으로의 여행은 때로 우리의 영혼을 게으르게 만든다. 거대한 외부의 자극이 있어야만 겨우 깨어나는 영혼은 자생력이 없다. 반면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스스로 경탄할 줄 아는 영혼은 강인하다. 그들은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환경을 창조한다. 매일 걷는 골목길을 자신만의 수행 공간으로 삼는 사람은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중심을 갖게 된다.

걷기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신체 활동이지만 가장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우리는 대지와 소통하고, 한 호흡을 마실 때마다 공기 중의 수많은 생명들과 연결된다. 이 연결감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순례의 진짜 목적이다. 머나먼 이국땅의 길들은 단지 우리에게 이 연결감을 강제적으로 깨우쳐주는 장치에 불과하다. 일상에서 이 장치를 스스로 가동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 순간 여행자이자 순례자로 살 수 있다. 돈을 들여 먼 곳으로 떠나는 행위에는 일종의 보상 심리가 작용하기 쉽다. 내가 이만큼의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으니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거대한 깨달음이나 감동을 얻어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이러한 조급함은 오히려 순수한 몰입을 방해하고, 길 위에 서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미래의 결과만을 계산하게 만든다.

 

작은 나무 십자가를 손에 쥐고 "한반도의 평화를!" 암송하며 걷는다.

반면 일상 속의 걷기는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아무런 압박도 없다. 실패할 확률이 없는 여정인 것이다. 오늘 조금 덜 집중했더라도 내일 다시 걸으면 그만이고, 오늘 풍경이 지루했더라도 그것 나름대로 내 마음의 상태를 비추어보는 거울이 된다. 이 완전한 자유로움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인위적인 목적성이 사라진 자리에 순수한 존재 자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의 상태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여여한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걸으면서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훌륭한 순례자가 될 필요도 없고, 대단한 철학자가 될 필요도 없다. 그저 걷는 자로 존재하면 충분하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 느껴지는 압력, 무릎이 굽혀졌다가 펴지는 리듬, 가슴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결의 흐름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내 안의 불필요한 욕망들과 타인의 시선, 사회적 가면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집을 나설 때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이 돌아올 때쯤 텅 비어 있다면, 당신은 오늘 훌륭하게 순례를 마친 것이다. 그 비워진 자리에 비로소 새로운 생명력과 창조적인 영감이 채워질 수 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시간의 축적물이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지나갔던 길이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 고뇌와 희망이 이 땅의 분자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걸으면서 과거의 무수한 발자국들과 대화를 나누는 셈이다.

도심의 길이라면 수많은 노동자들과 이웃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을 것이고, 자연의 길이라면 자연을 지켜온 수많은 생명들의 서사가 깃들어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바라보면, 내가 가진 고민들이 얼마나 작고 일시적인 것인지 깨닫게 된다.

4. 걷는 자의 깨달음, 비워짐에서 다시 시작되는 삶

인류의 역사라는 거대한 강물 속에서 나는 잠시 반짝였다 사라지는 물방울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 물방울이 없다면 강물 또한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알아차림은 우리에게 깊은 위안을 준다. 내가 외롭고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전체의 일부라는 감각을 주기 때문이다. 일상 속의 걷기는 이처럼 나를 확장시키고 세상과 화해하게 만드는 평화의 정치학이다. 멀리 있는 성지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아군과 적군, 성스러운 곳과 속된 곳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의 연장선일 수 있다. 진정한 영성은 속된 곳을 성스럽게 바꾸는 힘에 있다.

당신이 걷는 일상의 길이 바로 그 연금술의 현장이다. 당신의 의식적인 발걸음이 아스팔트를 황금빛 순례길로 변화시킨다. 공간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의 의식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신이 그 길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한다면, 그 길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된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의미가 있다. 시간과 공간과 내가 만나는 곳이 중요하다. 매일 똑같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똑같은 풍경이란 없다. 변하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이다.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문을 나선다면, 매일 새로운 세계가 당신 앞에 펼쳐질 것이다. 큰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내 방 문을 열고 나가는 그 순간부터 당신의 위대한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스럽게 땅을 딛어라. 그 발걸음마다 당신의 영혼이 깨어나고, 당신의 삶이 온전해질 것이다. 일상이라는 이름의 성지에서, 지금 바로 순례를 시작하라. 당신의 모든 걸음걸이에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곳이 가장 거룩한 성지이다. 우리는 늘 어딘가 특별한 장소를 찾아 떠나야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먼 나라의 오래된 성전, 수많은 이들의 기도가 쌓인 순례지, 이름난 산과 강을 떠올리며 그곳에 도착해야 비로소 삶이 달라질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자리,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공간을 소홀히 지나치곤 한다. 거룩함은 특정한 장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바로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조용히 깨어난다.

발걸음을 잠시 늦추고 주변을 바라보라.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길가의 작은 풀잎,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자동차의 소리까지도 하나의 흐름 속에 있다. 우리가 의식을 기울일 때, 그 모든 것은 분리된 사물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생명의 결로 다가온다. 그 연결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성지에 서 있는 셈이다. 거룩함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마음이 깨어 있을 때 평범한 길은 제단이 되고, 우리의 걸음은 기도가 된다. 특별한 장소를 향해 떠나기 전에, 먼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와 화해하고 깊이 만나는 일.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된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지금 이곳이 가장 빛나는 성지임을.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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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21일 스위스 협상 앞두고 ‘호르무즈 재폐쇄’ 진실공방

김원철기자

  • 수정 2026-06-21 08:17

이란 “호르무즈 폐쇄” 주장에 미국 “정상 통항 중” 반박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이 20일(현지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21일(현지시각) 스위스에서 후속 기술협상을 개최하는 가운데, 이란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이유로 호르무즈해협 폐쇄를 발표하고 미국이 이를 부인하면서 양쪽이 치열한 장외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실제 해협 봉쇄에 해당하는 군사적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부 선박이 항로를 돌리거나 해협 주변에서 멈춘 것으로 파악돼, 이란의 위협이 현장에 일정한 혼선을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는 20일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통행을 차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의 군사작전 중단’을 명시한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MOU) 제1조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며, 미국이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란 쪽은 이번 조처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휴전 합의 위반에 대한 “첫 단계”라며, 공격이 계속될 경우 추가 조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선언이 실제 물리적 차단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 대변인 팀 호킨스 해군 대령은 로이터통신 등에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하지 못한다”며 “선박 통항은 계속되고 있고, 미군은 이런 상황이 유지되도록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부사령부는 이날 상선 55척이 해협을 통과해 1700만 배럴 이상의 원유와 대량 화물을 세계 시장으로 수송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비시는 해상추적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부 유조선이 정상적으로 해협을 통과한 반면 최소 5척의 선박이 해협 주변에서 갑작스럽게 180도 방향을 돌리거나 멈춰 선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호르무즈 압박에 맞서 미국도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휴전 기간인 60일 동안 호르무즈해협에는 통행료가 없을 것이며, 60일이 지난 뒤에도 통행료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다만 그는 “합의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중동 국가들에 대한 ‘수호천사’ 역할의 대가로 과거·현재·미래 비용을 보전받기 위해 미국에 의해, 미국을 위해 부과되는 경우는 예외”라고 밝혔다. 이란의 핵심 레버리지인 해협 통제권을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장외 기싸움이 거센 가운데 양쪽은 21일 스위스 뷔르겐슈토크 대면 협상 준비를 마쳤다. 이란 쪽에서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과 아바스 아라그치 외장관이 도착했고,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카타르의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총리도 스위스에 합류한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도 스위스에 머물며 이란 핵 프로그램 협상 일부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고 한 소식통이 시비에스(CBS) 뉴스에 전했다.

미국 협상단을 이끄는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이날 스위스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기자들과 만나 “스위스에 하루나 이틀 정도만 체류하며 최고위급 정치적 협상 구조를 확립할 것”이라며 “이후에는 실무진이 현장에 남아 기술적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협상에서 핵 문제와 레바논 휴전 문제의 진전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두 가지 목표”라고 강조했다. 밴스 부통령은 레바논 전선이 협상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질문에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전체 팀이 레바논 상황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왔다”며 “실제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가 쏘면 누군가가 대응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있다”며 “충분히 오래 사격을 멈춰 휴전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모두 안전하고 안보가 보장되도록 계속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 국무부는 23~25일 이스라엘과 레바논 대표들이 워싱턴에서 협상을 가진다고 밝혔다.

막후에서는 이란을 달래기 위한 재정적 인센티브 논의도 진행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시엔엔(CNN) 따르면, 미국과 카타르는 카타르 은행에 묶여 있는 이란의 동결 자금 60억 달러(약 9조 1000억원)를 인도적 목적(식량 및 의약품 구매)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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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오염수 논쟁, 결국 방사선량이 아닌 시간의 문제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6/21 09:48
  • 수정일
    2026/06/21 09: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후쿠시마오염수 해양투기를 둘러싼 진실] 삼중수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 기사입력 2026.06.21. 05:01:05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즉 ALPS(다핵종제거설비) 처리수의 해양방류가 시작된 지 어느덧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논쟁의 중심에는 늘 삼중수소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는 자연계에도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방류 중인 처리수의 삼중수소 농도가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평가한다. 국내외 언론도 대부분 삼중수소 농도와 희석효과, 생물농축 여부를 중심으로 보도한다. 그 결과 후쿠시마오염수 문제는 마치 삼중수소 하나의 문제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후쿠시마오염수 논쟁은 삼중수소만의 문제인가. 필자는 지난 몇 달간 지면을 통해 후쿠시마 항만 생태계의 생물농축 문제, 체르노빌원전사고 40년의 교훈, 그리고 삼중수소 축적 모델의 불확실성 문제를 차례로 다루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왜 우리는 후쿠시마오염수의 수십 가지 핵종 가운데 삼중수소만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결국 원자력이 남기는 '시간의 문제'로 이어진다.

ALPS는 원래 '다핵종제거설비'다. 우리가 흔히 '오염수'라고 부르는 물은 후쿠시마원전사고로 녹아내린 핵연료를 냉각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물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로 처리한 뒤 방류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ALPS는 '다핵종' 제거를 전제로 설계된 시설이다. 도쿄전력이 관리대상으로 제시하는 핵종은 세슘-137(Cs-137), 스트론튬-90(Sr-90), 요오드-129(I-129), 코발트-60(Co-60) 등을 포함해 29종에 이른다. 도쿄전력은 ALPS를 통해 이들 핵종을 제거하거나 기준치 이하로 낮춘 뒤 방류한다고 설명한다.

29종의 핵종 중 세슘-137은 반감기가 약 30년이며, 칼륨과 비슷하게 행동하기에 근육조직에 축적 가능성이 있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토양오염의 대표 핵종인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ALPS로 대부분 제거가 가능하며, 해수 및 수산물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스트론튬-90은 반감기가 약 29년으로 칼슘과 유사해 뼈와 치아에 축적되고 내부피폭 우려 핵종이다.

ALPS 제거 대상이지만 후쿠시마원전사고 초기에는 제거 실패 사례가 있어 논란이 있는 핵종이다. 요오드-129는 반감기가 약 1570만 년으로 갑상선에 축적 가능하며 반감기가 매우 길어 장기 환경문제 우려가 높다. ALPS 제거 대상이지만 장기 환경감시가 필요한 핵종이다. 코발트-60은 반감기가 약 5.3년으로 강한 감마선을 방출하는데 원전 구조재 부식 과정에서 발생한다.

ALPS로 제거 가능하며, 비교적 단기간에 감소한다. 루테늄-106은 반감기가 약 1년으로 원전사고 직후 우려됐던 핵종으로 생태계 이동성 문제가 존재한다. ALPS 제거 대상이다. 탄소-14는 반감기가 약 5730년으로 탄소순환에 편입되며, 식물·동물·인간의 생체조직 구성이 가능하고, 장기성 측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ALPS로 일부 제거 가능하나 완전 제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반해 삼중수소(H-3, Tritium)는 반감기가 약 12.3년으로 물(H₂O)의 일부로 존재하며 희석이 가능하기에 현재 방류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ALPS로 제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ALPS는 약 62종의 방사성 핵종 가운데 대부분을 제거하도록 설계되었다. 도쿄전력은 제거 가능한 핵종은 기준치 이하로 낮춘 뒤, 제거가 어려운 삼중수소는 해수로 희석하여 일본 규제기준(1500 Bq/L 이하)으로 방류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ALPS는 '모든 핵종을 제거하는 설비'가 아니라 '대부분의 핵종을 기준치 이하로 낮추는 설비'라는 것이다. 즉 '없애는 것'과 '기준치 이하로 관리하는 것'은 다르다. 따라서 후쿠시마 문제는 단일 핵종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경로를 가진 방사성물질들의 복합적 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일본 언론과 정부 설명을 보면 거의 모든 관심이 삼중수소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이유는 있다. 삼중수소는 ALPS로 제거하기 어렵다. 방류되는 방사능 총량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물의 수소 일부가 삼중수소로 바뀐 형태이기 때문에 '희석'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후쿠시마원전사고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된다. 실제로 원전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핵종은 각기 다른 물리적·생태학적 특성을 가진다. 반감기도 다르고, 이동경로도 다르며, 생물체에 들어가는 방식도 다르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할 핵종이 있다. 바로 탄소-14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저장 탱크 ⓒ연합뉴스

탄소-14, 원자력이 남기는 '시간의 핵종'

탄소-14는 일반인에게는 고고학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더 익숙할 것이다. 고대 유물의 나이를 측정하는 데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다. 하지만 원자로 내부에서도 탄소-14는 생성된다. 냉각재나 구조재 속 질소, 산소, 탄소가 중성자와 반응하면서 만들어진다. 후쿠시마 ALPS 처리수에도 탄소-14는 포함되어 있다. 물론 양은 삼중수소보다 훨씬 적다.

그러나 환경생태학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양만이 아니다. 그 물질이 얼마나 오래 존재하는가도 중요하다. 삼중수소의 반감기가 약 12.3년인 반면 탄소-14의 반감기는 약 5730년이다. 세슘-137이 약 30년인 것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길다. 이는 단순한 숫자 차이가 아니다. 삼중수소가 수십 년의 문제라면 탄소-14는 문명 단위의 시간 문제다. 지금 우리가 방류를 논의하는 오염수 속 삼중수소는 100년 뒤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탄소-14는 그때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후쿠시마오염수 논쟁이 현 세대의 문제라면 탄소-14는 미래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을 따라 움직이는 삼중수소, 생명을 따라 움직이는 탄소-14

탄소-14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이동 방식 때문이다. 삼중수소는 기본적으로 물이다. 그래서 물순환을 따라 이동한다. 바다로 흘러가고, 증발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 반면 탄소-14는 탄소다. 그래서 탄소순환을 따라 움직인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광합성에 이용된다. 식물은 동물의 먹이가 되고, 동물은 인간의 먹이가 된다. 죽은 생물은 분해되어 다시 탄소순환계로 돌아간다. 탄소-14 역시 이 과정에 편입될 수 있다.

영국의 독립 방사선 전문가 이언 페어리(Ian Fairlie)는 「Tritium and Carbon-14: Hazards from Low-Level Radioactive Emissions(후쿠시마오염수에 포함된 삼중수소와 탄소-14: 저준위 방사능 배출의 장기위험)」에서 탄소-14를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Carbon-14 enters the biosphere as carbon itself(탄소-14는 탄소 자체로 생물권에 들어간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 탄소-14는 단순히 바닷물 속에 떠다니는 방사성물질이 아니다. 식물의 일부가 되고, 플랑크톤의 일부가 되고, 물고기의 일부가 되며, 결국 인간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삼중수소는 물을 따라 움직이고 탄소-14는 생명을 따라 움직인다. 이것이 두 핵종의 결정적 차이라는 것이다.

랄프 그로이브(Ralph Graeub), 어니스트 스턴글래스(Earnest J Sternglass)는 『The Petkau Effect(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저준위 방사능의 위협)』(히다 슌타로·다케노우치 마리 역, 2011)에서 특히 위험한 3가지 방사성 핵종으로 삼중수소 외에 방사성 탄소-14와 크립톤-85(Kr-85)를 들고 있다. 탄소-14의 성질로 특히 악명 높은 것이 장기 유전장애와 암을 포함한 체세포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UNSCER 보고에 따르면 핵시대 시작 이래 인간의 혈액과 모발에 포함된 탄소-14가 대류권의 함유량에 비례해 증가해왔으며 각종 핵시설 근처의 나뭇잎과 수피에 탄소-14 농도의 유의미한 증가가 확인돼왔다는 것이다. 또한 종래의 오염물질과 달리 탄소-14는 통상의 탄소-12를 포함한 이산화탄소와 마찬가지로 강수를 통해 대기에서 간단히 씻겨지지 않기에 대기 중에 축적을 피할 수 없으며 방사능의 약 1%의 증가가 수목 성장에 오랜 시간에 걸쳐 약 18%의 손상을 준다는 것이다(UNSCEAR Annual Report, 1982).

생물농축보다 더 중요한 '생물학적 편입'

최근 후쿠시마 논쟁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생물농축(bioaccumulation)'이다. 실제로 일본 연구진 이케노우에(Ikenoue), 다니(Tani), 가와무라(Kawamura), 사토(Satoh)는 2025년 국제학술지 『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환경과학&기술)』에 발표한 「Negligible Tritium Accumulation in Japanese Flounder from Treated Water Released from Fukushima Daiichi Nuclear Power Plant: A Numerical Simulation Study(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방류에 따른 일본산 가자미의 미미한 삼중수소 축적: 수치모델 시뮬레이션 연구)」에서 삼중수소의 생물축적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해수·먹이망 모델을 이용해 삼중수소가 어류에 장기적으로 축적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논문도 결국 삼중수소 이야기다.

탄소-14에서는 다른 개념이 중요해진다. 바로 '생물학적 편입(biological incorporation)'이다. 탄소는 생명체의 기본 구성 원소다. 따라서 탄소-14는 단순히 생물체 표면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백질, 지방, 세포, 조직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역시 탄소-14의 내부피폭 특성을 별도로 평가하고 있다(ICRP Publication 119, Compendium of Dose Coefficients based on ICRP Publication 60, 2012). 물론 이것이 곧 건강 피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탄소-14의 이런 특성을 충분히 논의하고 있는가 하면 솔직히 말해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왜 탄소-14는 관심 밖에 있는가

흥미로운 점은 일본 정부 자료나 IAEA 검토보고서에도 탄소-14는 등장하지만 사회적 논쟁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첫째, 설명하기 어렵다. 삼중수소는 "희석된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탄소-14는 광합성, 먹이망, 탄소순환, 장기체류 등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치의 시간과 맞지 않는다. 정치는 보통 5년을 생각한다. 언론은 하루 하루를 생각한다. 그러나 탄소-14는 5730년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셋째, 규제체계의 한계 때문이다. IAEA와 각국 규제기관은 기본적으로 방사선량과 농도를 중심으로 평가한다. 이 방식은 필요하지만 생태계 속 장기순환이나 세대 간 영향을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한다.

셀라필드와 라아그가 던지는 질문

사실 탄소-14 문제는 후쿠시마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영국의 셀라필드(Sellafield) 재처리시설과 프랑스의 라아그(La Hague) 재처리시설에서는 수십 년 동안 탄소-14 방출 문제가 논의돼 왔다. 영국 환경단체들과 일부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탄소-14의 장기 환경영향을 제기해 왔다. 캐나다의 중수로형 CANDU 원전 역시 탄소-14 배출과 관련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United Nations Scientific Committee on the Effects of Atomic Radiation, Sources and Effects of Ionizing Radiation, 2008). 즉 탄소-14는 원자력 이용 역사 전체와 함께 존재해온 문제다. 다만 후쿠시마에서는 삼중수소가 워낙 큰 이슈가 되면서 가려졌을 뿐이다.

후쿠시마가 던지는 진짜 질문

후쿠시마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14년이 지났다. 체르노빌원전사고는 4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방사성물질의 장기 영향을 논의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로 내부에는 아직도 녹아내린 핵연료가 남아 있다. 오염수는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계속 발생할 것이다. 여기에 탄소-14라는 시간축을 더하면 질문은 더욱 커진다. 우리는 원전을 이야기할 때 늘 현재의 안전성을 묻는다. 그러나 미래세대는 다른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사성물질은 얼마나 오래 남을 것인가."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후쿠시마오염수 논쟁은 단순한 삼중수소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원자력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문제다. 고리2호기 수명연장,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확대, 신규 원전 건설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원전은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인 동시에 장기 방사성물질을 만들어내는 시설이다. 현 세대는 전기를 소비하고 편리함을 누리지만 방사성물질이 남기는 시간은 미래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다.

후쿠시마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삼중수소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더 중요한 질문은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후쿠시마오염수 논쟁은 결국 방사선량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특정 핵종의 반감기의 시간, 5000년, 10000년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았는가. 탄소-14는 우리에게 원자력의 반생태적인 시간을 다시 생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최근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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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놔두면 제2의 내란과 전쟁이 일어난다!”…전국집중 촛불 열려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6/06/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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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행동이 주최한 ‘내란청산 국민주권실현 196차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이 20일 오후 4시 대법원 앞에서 열렸다. 

 

  © 이영석 기자


‘참정권침해 전문범죄자 조희대를 탄핵하고 수사하라!’는 부제로 열린 이날 집회에는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국에서 모인 연인원 3,200여 명(주최 측 추산)의 촛불국민이 함께했다. 

 

김지선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쾌속으로 달리던 내란 청산 흐름이 어디서 꺾였을까 생각해 보면 역시 조희대”라며 “내란범들에게 최종 면죄부를 내릴 권한을 가진 조희대가 희대의 대선 개입을 저질렀을 때 끝장을 봐야 했던 거 아닌가?”, “조희대를 살려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꼬인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어 “다시 내란 청산 속도를 붙여야겠다. 우리 자신을 믿고 힘차게 싸우자”라고 호소하며 구호를 외쳤다. 

 

“참정권침해 전문범죄자 조희대를 탄핵하고 수사하라!”

“부정선거 난동 극우정당 국힘당을 해체하자!”

“부정선거 내란선동범 모스탄을 체포하라!”

“이재명정부 전복공작 미국을 반대한다!”

 

김은진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내란세력 최후 보루 조희대가 판을 깔아주니 내란당과 윤 어게인 세력이 부정선거 난동을 부리며 이재명 정부를 맹공격하고 있다”, “전후좌우 사방팔방에서 이재명 정부를 엎어버리겠다고 작정하고 덤벼들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극우내란세력이 이재명 정부를 전복시키겠다고 난장판을 피우는데 집권여당은 권력 다툼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라며 “급기야 참정권 침해를 조사하는 국회 국조특위 위원장을 국힘당에 넘겨줬다. 민주당, 이게 제정신인가?”라고 물었다. 

 

또 “내란의 배후 미국도 이재명 정부 전복 작전의 전면에 나섰다”라며 “이들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촛불로 전진하는 대한민국을 멈춰 세우고, 내란세력에게 다시 권력을 쥐여주고 제2의 내란, 전쟁으로 가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외쳤다. 

 

▲ 김은진 공동대표(왼쪽)와 김지선 공동대표.  © 이영석 기자


‘조희대 탄핵! 정청래 대표 면담 요구! 대학생-시민 시국농성단’의 하기연 총단장은 “일산에 사는 한 선생님이 밤늦은 시간에 농성장을 찾아와 ‘지금 사태가 통탄할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을 지켜달라. 조희대를 탄핵하자. 안 그러면 제2의 내란이 일어난다. 전쟁이 일어난다’고 얘기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민심은 이미 조희대 탄핵이다”라며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향해 “왜 국민과의 면담을 거부하는가? 국민의 면담을 거부한 것은 정청래 대표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뼈아픈 실책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본기 국민중심선본 대변인을 역임했던 구산하 국민주권당 공동위원장은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 등을 앞세워 동아시아 전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2의 윤석열이 되어 줄 것 같지 않으니 정권 전복을 위한 공작을 노골화하고 있다”라며 “미국이 채워준 완장을 믿고 내란 극우들은 부정선거 난동을 피우며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민주 진영에 침투한 분열주의자들이 권력 다툼을 부추기며 중요한 시대적 과제들을 뒷전으로 밀어버리려고 하고 있다”라고 현 정국을 진단했다. 

 

이어 “이 정국을 돌파할 힘이 어디에 있나? 미국과 내란세력을 제압할 힘, 자주와 민주, 통일의 새 시대로 나아갈 힘, 그것은 오직 주권자 국민의 촛불광장에 있다”라고 외쳤다. 

 

2026년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무대에 올라 인사했다. 

 

▲ 왼쪽부터 윤단비, 김애란, 서지연 시의원.  © 이영석 기자


윤단비 부천시의원은 “이번 재선은 진심으로 부천촛불행동 동지 여러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깨어 있는 우리 촛불의 조직된 힘으로 앞으로 함께 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부천을 바꾸는 ‘부천의 단비가 온다’ 부천시의원 윤단비가 되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충남촛불행동 공동대표인 김애란 서산시의원은 “이재명 정부에 걸맞게, 빛의 혁명 시대 그리고 국민주권시대에 부끄럽지 않은 시의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수원오산화성촛불행동 공동대표인 서지연 수원시의원은 “대한민국이 정상화되지 않았는데 지방정부가, 지방의회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나? 반드시 조희대를 탄핵하고 이재명 정부를 흔들려는 내란세력과 미국을 응징해야 하겠다”라며 “촛불의 힘을 믿고 시의회가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라고 결의를 밝혔다. 

 

광주 광산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구본기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지금 여의도 정치권을 보라. 마치 내란 청산이 다 된 것처럼 굴다가 결국 썩어 빠진 내란세력에게 반동의 무기를 쥐여주지 않았는가?”라며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수직으로 추락, 더 나아가 집권당 민주당의 지지율은 국힘당에 역전까지 당했다. 이 모두가 다른 누구도 아닌, 해산이 정답인 내란 정당 국힘당과 겨루어 얻은 성적표”라고 분노를 표했다. 

 

이어 “정신 차려 이 바보들아! 목숨 걸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으냐? 실체 없는 역풍 타령 좀 그만하고 주권자 국민의 뜻을 받들어라”라며 “조희대를 탄핵하라! 국힘당을 해산하라!”라고 외쳤다. 

 

권민성 영등포양천강서(영양강)촛불행동 회원은 “과연 국힘당 낙선과 민주세력의 승리를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해 봤다”라며 “그저 12월 3일 여의도부터 4월 4일 송현광장까지 매일 투쟁했다며 자기만족에 푹 빠져 있지는 않았나? 우리 힘으로 당선시킨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우리 기대 이상으로 전 국민적으로 높은 지지도를 갖고 있기에 그 뿌듯함이 주는 자만감에 빠져 있지는 않았나?”라고 돌아봤다. 

 

이어 “민주당 의원들은 자만을 넘어 오만에 빠져 선거가 끝난 지금까지도 허우적대고 있다”라며 “국민을 개돼지로 알고 있는 국힘당과 차이가 무엇인가? 이러니 지지율이 뒤집히는 거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 왼쪽부터 구본기 공동대표, 구산하 공동위원장, 권민성 회원.  © 이영석 기자


김수진 남양주촛불행동 공동대표, 염미례 영양강촛불행동 공동대표, 최지연 충남촛불행동 공동대표, 한서진 경기촛불행동 공동대표가 촛불행동 6월 전국집중 촛불대행진 투쟁 호소문 「애국민주의 촛불로 이재명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미국과 극우내란세력들을 진압하자!」를 낭독했다. 

 

이들은 호소문을 통해 “6.3지방선거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내란세력이 이재명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에 나서고 있다”, “극우내란세력의 배후에 있던 미국도 이재명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전면에 등장했다”라며 “조만간 미국판 윤 어게인 미셸 스틸이 주한 미 대사로 들어온다. 미셸 스틸 취임 이후 내란극우세력의 난동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저들의 시도를 막지 못한다면 제2의 내란이 일어날 것이며,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민주주의와 평화, 주권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심각한 갈림길 위에 우리가 서 있다”라며 “하지만 집권여당은 엄중한 시대적 임무를 외면하고 분열의 정치로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결국 촛불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 앞 줄 왼쪽부터 김수진 공동대표, 최지연 공동대표, 염미례 공동대표, 한서진 공동대표.  ©이영석 기자

 

집회를 끝내고 참가자들은 강남역까지 행진했다. 

 

▲ 지역지부 깃발과 대표단이 무대로 입장했다.  © 이영석 기자

 

▲ 촛불합창단이 「내 나라 내 겨레」, 「천하무적 촛불」을 불렀다.  © 이영석 기자

 

▲ 이날은 특별히 촛불합창단 공연에 이어 100인 합창단이 「촛불의 나라」를 부르며 집회를 시작했다.  © 이영석 기자

 

▲ 노래패 우리나라가 「한 사람 더」, 「승리 위해 앞으로」, 「촛불로 몰아쳐」, 「적폐청산가」를 불렀다.  © 이영석 기자

 

▲ 가수 동백 씨가 「내란법비 조희대 탄핵쏭」, 「Smile boy」, 「그대에게」를 불렀다.  © 박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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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제25기 평화통일민주교육위원 출범..."미래세대 맞춤형 교육"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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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기 평화통일민주교육위원들에 대한 위촉을 겸한 출범식이 19일 오후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 대강당에서 250명의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학교 교육 현장에서 평화·통일·민주시민교육의 씨앗을 뿌릴 제25기 평화통일민주교육위원들에 대한 위촉을 겸한 출범식이 19일 오후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 대강당에서 250명의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통일부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은 이날 출범식에서 제25기 평화통일민주교육위원 4천여 명을 우선 위촉하고, 일선 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한 평화·통일·민주시민교육 활동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교육위원은 기존 1천명(국내 809명, 해외 191명) 규모에서 3,940명으로 대폭 확대했는데, 국내 위원 3,632명과 해외 위원 308명으로 구성됐다.

여성 위원은 제24기 33.4%에 비해 45.1%로 늘어난 1,776명이며, 청년 위원은 14.4%에서 16.9%로 증가한 663명이다.

이중 국내 위원은 초중고 교원 3,086명(2,543개교)과 대학교수 546명(158개교), 해외위원은 한국학교 교사 67명(12개국, 47개교)과 한글학교 교사 241명(43개국 198개교)이다. 

통일부는 특히 이번 위원 위촉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시작되는 평화통일교육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평화 감수성을 체화하고 민주적 통일의지를 함양하는 것을, 청년 세대에게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지적담론이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통일교육 지원법」에 따라 통일부 장관이 위촉하는 위원의 임기는 지난 6월 1일부터 2028년 5월 31일까지 2년이다.

통일부는 올해 하반기에 국내외 위원 6천여 명을 추가 위촉하여 1만명 규모로 확대하고 보다 폭넓은 평화·통일·민주시민교육 참여 기반 구축에 나설 예정이며, 이를 재정·행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위원들은 앞으로 △교과 연계형 교육, 체험 및 토론 프로그램 등을 통한 평화·통일 교육 실시 △청소년 및 청년 세대의 평화통일 인식 확산과 민주시민 가치관 형성 지원 △학교, 지역사회, 재외동포 커뮤니티와 협력하여 교육 활동 확산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출범식에서 "이번 25기부터는 지난 40년간 유명무실했던 평화통일민주교육위원 제도를 대전환하여, 최소한 500만 우리 청소년, 학생들에게 평화·통일·민주 교육을 1년에 1시간은 전달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1만여 명의 교육위원을 위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상으로 축사를 보내온 최교진 교육부장관은 제25기 교육위원에 초중고 선생님들과 교수들이 많이 참석한 것을 지적하고는 "평화·통일이라는 주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설레는 미래로 다가갈 수 있도록 따뜻한 길잡이가 되어 주기를 부탁드린다"라며, 교육부가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방용승 민주평통 사무처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이 시행하고 있는 '찾아가는 통일버스' 프로그램을, 방용승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해외에서 정착하고 있는 학생 대상 '주니어 평통'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확대되는 통일부의 '평화통일민주교육위원'들과 협력해 성과가 확대되기를 기대했다.

특히 방용승 사무처장은 "달라진 남북관계 환경에 맞추어 한반도 평화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해 나가고 그들이 미래를 스스로 설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평화통일 교육위 핵심"이라며, 교실에서 학생들과 호흡하는 위원들의 역할에 기대를 표명했다.

한편, 국민의 평화통일 의지와 역량 강화를 위해 1987년 통일교육전문위원(850명)을 위촉해 시작한 통일교육은 2005년 통일교육위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2009년 통일교육위원 위촉과 지원에 관한 법적 근거(통일교육지원법)를 마련했으며, 올해 39년만에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까지 2년마다 기수별로 1,000명 안팎의 인원이 위촉되어 활동해왔으나 그동안 통일교육위원은 민방위·예비군교육, 세미나, 강연회 등 지역사회에서 통일교육 활동을 해오면서 개인별 활동실적에 편차가 있고 청소년세대와 접점이 부족했으며, 일부 위원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우선 명칭을 통일교육위원에서 평화통일민주교육위원으로 바꾸고 지난 제24기보다 약 4배 가까이 현장 교육전문가들로 인원을 확대하여 '미래세대 맞춤형 교육'을 기대하고 있다.

이날 남북 어린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 감동을 더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남북 어린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 감동을 더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장내는 숙연한 통일 합창의 자리가 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장내는 숙연한 통일 합창의 자리가 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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