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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선관위 의회·정부 통제 받아…독립성 보장에도 감시구조 갖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6/18 07:22
  • 수정일
    2026/06/18 07:2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고경주기자

  • 수정 2026-06-18 05:01

다른 나라는 선거관리 어떻게 하나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일인 3일 오전 서울 동작구 본동초등학교 강당에 마련된 노량진제1동 제6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국의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상 독립기구로 명시된 만큼 독립성이 높지만, 의회 감독이나 외부 감사가 사실상 없다. 반면 국외 선거관리기관은 독립성을 보장하되, 의회나 외부 감사기구가 예산·인사·성과 등을 감시·통제하는 구조를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다.

17일 국제민주주의선거지원연구소(International IDEA)의 ‘국가별 선거관리기관 비교 보고서’(2014),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24년도 각국의 선거관리기관 비교연구’ 보고서를 보면, 선거관리기관은 크게 독립형, 행정부형(행정부 소속 기구가 선거 관리), 혼합형(독립기구와 행정부 기구가 함께 선거 관리)으로 나뉜다. 독립형은 한국·오스트레일리아(호주)·캐나다, 행정부형은 독일·영국·미국, 혼합형은 프랑스·일본 등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선거관리기구의 위상과 상관없이 외부 감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독립형인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 등의 선거관리기관은 헌법상 독립기구로 독립성과 법적 지위가 매우 높지만 의회 감독이나 감사원 감사 등을 받는다.

행정부형·혼합형 선거관리기관은 의회와 정부의 강한 통제를 받는다. 영국은 하원 의장이 주재하는 위원회가 선관위 예산안과 5개년 계획을 심사한다. 의회 소속 국가감사원(NAO)으로부터 재무 감사와 성과 감사도 받는다. 독일은 통계청장이 연방선거관리관을 겸임하는데 연방감사원 재정 감사를 받고, 감사 당시 지적 사항을 시정했는지 보고할 의무가 있다. 프랑스는 내무부가 직접 선거행정을 담당해 다른 행정기관과 마찬가지로 회계감사원으로부터 재무 감사와 성과 감사를 받는다.

한편, 선거관리위원장이 비상임직인 우리와 달리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등 대부분의 국가는 선거관리기관장이 상임직이다.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고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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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손 뿌리친 학생의 한 마디에 충격... '요즘 학교' 이렇습니다

드라마 <참교육> 스틸컷 ⓒ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장안의 화제다. 아시아를 넘어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구권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미 많은 사람이 봤고, 안 본 사람들도 회자되는 이야기를 통해 대략의 줄거리를 파악할 정도다.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단서를 달아놓아야 할 것이 있다. 학교는 그렇게까지 막장으로 붕괴하지는 않았다는 것. 시적 허용과 마찬가지로 드라마적 허용이 있으니까 드라마로 봐야지 다큐로 드라마를 이해해선 안 된다. 학생이 수업시간에 인터넷 생방송을 하거나 학생이 조직폭력배처럼 마약을 판매하는 것들이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과장이란 이야기인가? 그것도 아니다. 드라마는 시대 혹은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혹은 고등학생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꾸준히 제작되었다.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 보자. 20세기에는 1970년대 후반의 <고교 얄개>, 1980년대 초반의 <고교생 일기>, 1980년대 말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90년대의 <여고괴담>이 있었다. 21세기에 넘어오면 2000년대에 <두사부일체>와 <말죽거리 잔혹사>가 있었고, 2010년대에는 드라마 <공부의 신>이 있었다.

2020년대에는 과연 어떤 드라마 혹은 영화가 사회를 반영하는 대표 학원물이 될 것인가 궁금하던 차에 <참교육>이 떴다. 제목이 얄궂었다. 참교육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이 처음 출범할 때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교육 이념이었다. 여러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었겠으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한 비판이 내용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전교조가 출범한 그해에 개봉했던 영화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였다. 이듬해에는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교조의 출범이 영화 흥행에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도 흘러나왔다.

이제 참교육이란 단어는 1989년 전교조가 내세운 참교육의 의미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영화처럼 언어도 늘 변하고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 변화된 의미를 캐치하고 그걸 바탕으로 시대상을 반영한 드라마가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반향이 이렇게도 큰 것일 게다.

도대체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영화 <고교 얄개> 이후 근 50년 만에 우리 사회는 드라마 <참교육>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진보 교육감의 등장, 강제 야자 금지

2004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3 야간자율학습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고교 얄개>나 <고교생 일기>가 보여주던 낭만적 환상을 벗어던지고 본격적으로 실재의 고교생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보기에 흐뭇했던 <고교 얄개>의 이승현이나 <고교생 일기>의 손창민이나 강수연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며 소극적 저항을 하는 이미연으로 바뀐 것이다. 우울한 시대상이었다. 이듬해 1990년에 개봉하여 의외의 흥행을 한 미국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학생이 자살을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학생이 자살을 하는 영화가 연달아 흥행을 하던 시대가 1989년과 1990년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다.

1998년 세기말에는 <여고괴담>이 개봉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자살했던 여고생 역할을 맡았던 이미연은 이 영화에서 여고의 교사로 출연한다. 이 영화 이후의 한국 영화는 본격적으로 학교와 교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고등학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영화의 최고봉은 <말죽거리 잔혹사>일 것이다. 유명한 권상우의 대사 "대한민국 학교 X까라 해"가 모든 것을 나타낸다. 1970년대 후반에 나왔던 영화 <고교 얄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부정적 고등학교의 모습이 2004년에 개봉한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훨씬 리얼하게 묘사되었다. 1970년대의 학교 자체는 다를 리 없건만, 바라보는 시대가 달라지니 영화에서 묘사되는 학교의 모습이 180도 달라졌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내가 교직에 입문한 초기에 개봉한 영화였다. 2002년에 교직에 들어왔다.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 해였고, 노풍이 불면서 그해 12월에는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느낌표>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0교시 문제를 다루며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이슈로 떠오른 것도 2002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학생들은 학교에서 체벌을 당했고, 강제로 야자가 실시되고 있었다.

여담으로 2011년에 개봉한 <완득이>라는 영화에서 고등학교 교사 역할을 한 김윤석은 왜 야자 인원이 적냐는 관리자의 물음에 말 그대로 야간자율학습인데 왜 강제로 시키냐는 식의 지극히 껄렁한 대답을 한다. 그런 시대였다. 0교시는 폐지되었지만 1교시가 당겨졌고, 여전히 학교에서는 강제로 야자를 하고 보충수업을 했다. 정규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학교는 환하게 불을 켜 놓고 공부를 시키는 모습을 좋아했다.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계기는 진보 교육감의 등장이었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을 필두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2011년에 나는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강제 야자를 묵인하던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학교로 특별 조사를 나왔다. 야자 강제 실시 여부에 대해 학생들에게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얄궂게도 내가 담임이던 반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 다행스럽게 내가 야자를 강제로 시켰다고 응답한 학생은 없었다. 고3 담임이었는데, 고1과 고2 담임은 강제로 실시한 것이 드러나 구두 주의를 받았다는 후문이 들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이 났다. 학생들에게 선포했다. 이제부터 야자는 정말로 자율이다. 너희들 마음대로 하거라.

학교장은 3월 초에 강제 야자를 금지하는 교육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방침을 고수했다. 그때 교장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서 야자가 자율이 아니었던 적이 있는가?"

그랬다. 형식적인 자율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던 교육감은 장학사를 보내서 형식적인 자율을 실질적인 자율로 바꾸기 위한 조처를 한 것이었다. 야자는 진짜 자율이 되었고, 학교에서 체벌은 사라졌다.

나는 좋았다. 이제 집에 가고 싶다는 애를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되고, 야자 인원이 몇 명이 남았나 반별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학교장은 나를 개인적으로 불러서 은근한 압력을 넣었다.

"왜 그 반만 야자 인원이 이렇게 적습니까?"

"제가 자율로 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얼마 전에 장학사가 내려와서 저희 반에서 설문조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공무원인데 교육청 조사까지 받은 마당에 학생들에게 강제로 야자를 남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학교장과 나의 이 대화는 더 이상 과거의 문법이 학교에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제도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무너지기 시작한 교사의 교육권

2023년 9월 4일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와 공교육 멈춤의 날 행사에 검은 옷을 입은 교사 1000여 명이 모여 교권 회복을 외치는 모습. ⓒ 조정훈

개인적으로 학교 문화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뭔가 이상한 조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회에서부터 이상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진보 세력은 유럽의 교육을 추앙하며 대한민국 학교를 깎아내리고, 보수 세력은 미국식 교육을 칭송하며 대한민국의 교사를 비난하는 모습이 역력해졌다. 방과후에도 학생이 집을 못 가게 하던,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교사들이 갑자기 실력 없고 무능한 교사가 되어 갔고, 권력을 넘어 최소한의 권한마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조금만 힘든 일도 학생들이 기피하는 문화가 시작되었다. 생리통을 호소하는 여학생들을 강제로 방과후에 남길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해서 문화를 바꿨더니 정규수업마저 생리통으로 빼먹기 시작했다. 화장실이나 교사가 쓰는 교무실은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키지 말자고 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교실 청소마저 시키기 힘든 학교가 되어 갔다.

학부모들로부터 학교 운영에 관한 의견을 잘 청취하는 학교가 되자고 했더니, 온갖 민원으로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하려는 풍토가 생겨났다. 학교폭력을 법과 제도로 막자고 했더니, 사소한 말다툼이 학폭으로 비화되고, 중재하는 교사의 역할이 '가해자 옹호'로 낙인찍혔다. 분명 학교에서 벌어진 일인데, 교사는 힘이 없고 변호사의 입김이 세지는 일이 나타났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서 공감하던 나는 뭔가 이상 조짐을 느끼면서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권위주의와 부조리를 청산하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교사의 교육권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현장체험학습을 두고 말들이 많다.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하지 않는 학교가 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현장체험학습에서 학생이 사고로 사망하고 이로 인하여 교사가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이 아니었어도 현장체험학습 기피 현상은 시나브로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안전과 위험에 대비한 업무를 교사에게 부과하고, 하나라도 실수가 있으면 형사처벌까지는 아니어도 행정적 불이익에 대한 엄포가 판을 치는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이 활성화될 수 있을까?

학교밖으로 나가는 건 조그만 위험은 감수하고 그로 인해 교육의 효과를 얻는 과정이다. 여기서 사고를 제로로 만들라는 불가능한 미션을 부과하는 한,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거였다.

이상 조짐을 확신하게 된 계기는 현장체험학습으로 등산을 추진하면서였다. 2010년대 후반이었다. 롯데월드나 에버랜드로 현장체험학습을 갔으면 안 벌어졌을 일들이 내가 있던 학교에서 벌어졌다. 등산을 위하여 등산화를 신으며 신발 끈을 조이는 순간부터 악몽은 시작됐다. 생리통으로 공결을 쓰겠다는 여학생 학부모들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절반 이상의 여학생이 생리 공결을 쓴 것이다. 머릿속에 처리해야 할 서류더미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남학생들은 생리공결이 없으니 이 학생들이라도 온전히 데리고 올라가야지 했는데, 등산 초입부터 아프다고 못 걷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이미 학교는 각오하고 있었다. 등산 포기자 프로그램을 만들어놨고, 등산로 초입에서 교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머지 애들이라도 데리고 잘 올라갔다가 내려와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

사달은 산 정상에서 일어났다. 높지 않아서 산꼭대기까지 도로가 깔린 산이었다. 기껏 올라온 여학생이 힘들다고 차 타고 내려가겠다면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으나 막무가내. 마지막으로 인정에 호소한다고 팔을 잡아 끌면서 "그러지 말고 걸어서 내려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순간에 여학생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어디를 만져요."

깜짝 놀라서 잡았던 팔을 놓으며 "그래 타고 내려가라"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깨달았다. 막무가내인 학생들을 교육시킬 그 어떤 권한도 나에겐 없다는 것을.

달라진 '참교육'의 의미

2017년 5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28주년 기념 교육적폐 청산과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5.27 전국교사결의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세종대로네거리 부근을 행진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경험을 했던 학교가 늘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몇 년 지나서는 학교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소소하게, 그리고 또 어떤 학교에서는 매우 전면적으로 나타났다.

1989년 '참교육'이란 단어를 들으며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이소룡이 인기를 끌던 1970년대를 묘사한 <말죽거리 잔혹사>였지만, 성룡을 흉내내던 1980년대 고등학생에게도 공감이 백배였다. 그래서 '참교육'에 희망을 걸었고, 전교조의 출범을 반겼다.

그런 시대정신을 안고 출범하였던 전교조의 위상은 지금 어떨까? 현재 교사를 조합원으로 하는 노조 중에서 제1 노조는 전교조가 아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아래 교사노조)이다. 민주당에서 교사 출신으로 직능대표 몫을 할당받아 국회의원이 된 백승아 의원도 교사노조 출신이다.

교사노조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사안은 전교조의 '참교육'과 같은 순수 교육 사안이 아니다. '교사 노조'로서 정체성을 갖고, 교사의 권익 보호를 중점으로 둔다. 제1 노조의 변화는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을 걱정하던 교사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노동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에 눈을 뜬 것이다. 이제 노조의 외피를 쓴 교육운동이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조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렇게 제1 노조의 변화는 학교와 교사의 변화를 상징하고, 달라진 교육 환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니 보수 진영의 교육감들이 안티 전교조를 이념으로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교육계 내에서 이미 전교조의 위상은 급전직하했는데, 안티테제로서 가지는 정치적 이익 때문에 떨어진 위상이 대중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교육 문제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2026년 현재의 학교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했던 몇 십 년 전의 학교를 상정하고 말하는 것을 많이 본다. 굳이 냉전의 해체나 AI(인공지능)시대의 도래 등 거대 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세상이 매우 빠르게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그중에서도 훨씬 더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나라이다. 20세기에 경험한 학교의 모습을 갖고 현재의 교육을 논하는 것은 난센스다.

20세기에 한국의 교육을 비판하면서 이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선생님들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의 학교는 최첨단 21세기의 시설로 변모하였고, 21세기에 태어난 선생님들이 이미 교단에 서고 있으며, 21세기 벽두에 개최되었던 2002 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를 다니고 있다.

드라마 <참교육>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지만 왜곡하는 것도 있다. 학교에서 정치인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유명 프로야구 선수도 학폭 시비가 붙으면 사실 여부에 앞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세상이다. 재선 국회의원의 아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어찌어찌 연줄이 닿아 나에게 전화가 왔을 때, 그 국회의원은 매우 공손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악에 받쳐서 민원을 넣는 사람들이 과연 절대적 악의 표상으로 나오는 권력자들일까? 과연 인터넷과 유튜브의 시대에 진정한 갑은 누구일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학교를 직시해야 한다. 사실을 직시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거대악을 찾아 이야기를 만들려 하지 말고, 어떤 방식으로 학교에서 법과 제도의 힘을 빌려 일상의 부조리가 관철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1989년 전교조의 '참교육' 이념이 빛바랜 자리에 드라마 <참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드라마 자체가 아니라, 달라진 참교육이란 언어의 의미가 상징하고 있다.

#참교육#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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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몰아 조작 기소' 설계한 '한국의 매카시' 오제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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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오제도 편

와세다 전문부 출신에 법원 서기로 출발

열등감 극복하려 반공·기독교 세계관 장착

빨갱이 조작해 열등감 해소, 매카시 닮아

국민보도연맹 결성, 전쟁 중 학살 명부로

국회프락치사건 기획해 평화세력 도려내

김창룡에 간첩 혐의와 비리검사 몰려 파면

박종연 신상규 서성 등 공안검사들의 스승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펼쳤다. 오제도(吳制道, 1917~2001) 항목 첫 줄이 눈을 잡아끌었다.

"'천하의 오제도'라 불린 사상검사로 남로당 파괴의 주역."

'천하의 오제도'. 이 호칭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그 뒤에 붙은 수식어들이 설명해준다. 국회프락치 사건 조작, 국민보도연맹 조직, 부역자 처형 주도, 조봉암(1898~1959) 사법살인 개입, 3·15마산의거를 공산당 소행으로 몰기.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김창룡(1916~1956)에 의해 자신이 빨갱이로 몰리기까지. 한국공안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가 한 사람 안에 들어 있다.

영국에서 이 인물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구조가 선명하게 보인다. 오제도는 단순히 나쁜 검사가 아니었다. 그는 한국공안 검찰의 원형을 만든 사람이었다. 이후 수십 명의 공안검사들이 오제도의 방법론 위에서 활동했다.

 

오제도.(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17년 중국 랴오닝성 안동 출생, 열등감의 씨앗

오제도는 1917년 11월 15일 중국 랴오닝성 안동(安東, 현 단둥)에서 태어났다. 만주에서 유랑생활을 하던 아버지 오정선이 안동에 정착해 낳은 아들이었다. 평안도 안주 출신의 이 집안은 신의주로 이사했다. 그는 일본인 학교인 안동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미 여기서 열등감의 씨앗이 심어졌다.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학부 법과(3년제, 본과 4년제보다 낮은 과정)를 졸업했다. 이 '전문부' 출신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그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지속적인 요인이 됐다. 해방 후 판검사가 된 사람들 중에는 동경제국대학 출신, 경성제대 출신, 정식 고등문관 합격자들이 즐비했다. 그들과 비교할 때 '와세다 전문부 출신, 법원서기 출신'은 분명 하위그룹이었다.

1940년 신의주지방법원 서기가 됐다. 그리고 1946년 9월 판검사특별임용고시에 합격했다고 주장했지만, 법학자 김두식의 연구에 따르면 그가 응시한 고시는 '제1회'가 아니었고, 그가 주장한 서기 5년 경력도 실제로는 자격미달이었다. 오제도는 자신의 출발점을 평생 과장하며 살았다.

 

오제도(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열등감이 낳은 공안의 화신'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의 인물이 떠오른다.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 상원의원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판사가 됐다가 상원의원이 된 그는 엘리트 주류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했고, 그 콤플렉스를 '공산주의자 사냥'으로 해소했다. 증거도 없이 "공산주의자 205명 명단"을 흔들어 수천 명의 삶을 파괴했다. '매카시즘'이라는 단어는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오제도와 매카시의 공통점이 있다. 사회 주류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열등감, 그 열등감을 '빨갱이 잡기'로 해소하는 방식, 그리고 반공을 자신의 정체성 자체로 만든 것이다. 다른 점은 매카시가 결국 공개청문회에서 "당신은 수치심이라는 것을 모르는가?"(Have you no sense of decency) 한마디에 몰락한 반면, 오제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2001년 84세로 자연사했다는 것이다.

 

조지프 매카시(위키피디아)

반공이 '의'를 대체하다, 기독교로 포장된 공안 이데올로기

법학자 김두식의 연구는 오제도의 심리구조를 탁월하게 분석한다. 와세다대학 재학 중 공산주의를 접한 오제도는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그 갈등을 기독교 신앙으로 극복했다. 이 과정에 "이분법적으로 선악을 나누고 자신을 정의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는 오제도식 기독교 세계관"이 형성됐다.

이 세계관의 핵심은 이것이다. 반공으로 선의 진영과 악의 진영을 가르고, 선의 진영에는 관대하게, 악의 진영에는 혹독하게 대한다. 1949년 미국인 언더우드 부인 살해사건에서는 피의자 전원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반면 친일경찰 출신이지만 반공주의자인 서영출에게는 최순 살해 교사 혐의로 벌금 2만 원만 구형했다. '반공의 편'이면 살인 교사범도 관대하게, '반공의 적'이면 극형을 달라고 청하는 논리였다.

 

오제도(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국민보도연맹, 학살의 씨앗을 심다

1949년 오제도는 선우종원(1918~2014), 이태희 등과 함께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했다. "좌익 전향자를 계도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좌익혐의자들을 한 데 모아 명단을 관리하는 기구였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조직망이 펼쳐졌다. 그리고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 명단이 학살의 명부가 됐다. 전국에서 수십만 명의 보도연맹원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됐다.

오제도가 씨앗을 심고, 전쟁이 물을 주고, 이승만(1875~1965) 정권이 수확했다. 그 수확의 무게가 얼마나 됐는지는 지금도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다.

 

이승만(나무위키)

국회프락치 사건, 소장파 의원 13명을 간첩으로 만들다

오제도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은 1949년 국회프락치 사건이다. 당시 국회 내 소장파 의원들이 미군과 소련군 동시 철수를 요구하는 의견을 내고 반민특위 활동을 지지하자,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남로당 프락치로 몰았다.

오제도는 이 사건을 "기획, 수사하면서 이승만 정권에게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소장파 의원 13명이 구속됐다. 이는 제헌국회의원 198명 중 6.5%였다. 이 사건으로 국회 내 자주적 평화세력이 제거됐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결정해버렸다"고 평가한다. 오제도가 조작한 사건 하나가 이후 70년 한국정치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2025년 4월 15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국회프락치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진실규명 결정했다. 76년 만이었다.

 

제헌의회 국회부의장 신분으로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김약수(왼쪽)와 1949년 6월 .25알 신문 기사 ⓒ유영호

'천하의 오제도'가 빨갱이로 몰린 날

오제도의 이력에는 비극적 아이러니가 있다. 1952년, 방첩대 사령관 김창룡(1916~1956)과의 권력 다툼에서 패한 오제도는 간첩 혐의와 비리검사로 몰려 파면됐다. 빨갱이를 잡던 사람이 빨갱이로 몰린 것이다. 1956년 김창룡이 암살당한 뒤에야 복직할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자신을 향했을 때, 오제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물음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오제도(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공안의 계보, '제2의 오제도'들을 만들다

오제도가 한국 공안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이유가 있다. 그가 직접 공안사건을 담당한 것만큼, 그가 만든 구조와 방법론이 이후 수십 명의 공안검사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박종연(1927~ ), 신상규(1949~ ), 서성(1942~ ) 등 나중에 '오제도의 제자'라 불린 공안검사들이 오제도의 길을 따랐다.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에 수록된 49명의 공안검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오제도가 놓은 레일 위에서 활동했다. 오제도는 그 레일의 설계자였다.

 

오제도(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매카시는 1954년 공개청문회에서 몰락했다. "당신은 수치심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한마디에 방청객들이 박수로 응답했다. 미국사회는 매카시즘의 피해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을 복권했다.

한국에서 오제도는 2001년 7월 1일 사망 전까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74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국회프락치 사건의 피해자들이 76년 만에 진실규명을 받는 동안, 조작의 설계자는 훈장을 받고 자연사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오제도를 떠올렸다. 반공을 이름으로 내걸고 민주주의를 짓밟는 구조. 그 구조의 원형을 설계한 사람이 오제도였다. 그리고 그 구조는 지금도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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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남북관계 근황 어떤가”…이 대통령 “중동처럼 북한도 평화적 해결 주도해달라”

이재명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행사장에서 열린 초청국 환영행사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과 함께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중동 전쟁을 해결한 것처럼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초청국 환영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나눈 대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G7 참가국 정상들의 단체 기념사진 촬영 현장에서 조우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촬영에 앞서 약 30초 동안 대화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남북관계의 근황이 어떤가”라고 물었고,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적 역할을 요청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며 화답했다고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행사장에서 열린 초청국 환영행사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과 함께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에 앞서 이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주최국 정상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환영을 받으며 행사장에 들어섰다.

마크롱 대통령이 먼저 인사를 건넸고, 이 대통령은 영어로 “I am so happy(반갑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미소를 보이며 악수를 나눈 뒤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대통령은 기념사진 촬영 현장에서 지난 12일 로마에서 정상회담을 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도 대화를 나눴다.

올해 G7 정상회의에는 개최국 프랑스를 포함한 G7 회원국(미국·일본·영국·독일·캐나다·이탈리아) 및 유럽연합(EU) 정상들과 한국·인도·브라질·케냐·이집트 등 5개 초청국 정상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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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규제완화 뒤 검증 안 된 니코틴 300년치 쌓였다

규제 풀린 미검증 화학물질, 전자담배로 흡입…탈루 세액 12조~27조 추정

윤석열 정부 '킬러 규제' 1호로 화평법·화관법 완화, 검사 기준 100㎏→1톤 후퇴

연초 니코틴을 '합성'·'유사' 니코틴으로 택갈이, 추정 탈루 세액 12조~27조원

규제·과세 시행 앞두고 300년치 사재기, 안호영 화평법 개정안은 국회 계류

2026-06-17 06:17:57
 

전자담배 액상으로 팔리는 니코틴 가운데 상당량은 무엇이 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유해성 검사를 거치지 않은 화학물질이 그대로 사람의 폐로 들어간다. 그 길을 연 것이 윤석열 정부의 규제 완화다. 지금 국내에는 연간 소비량 기준 300년치에 이르는 물량이 쌓여 있다. 정상적으로 과세했다면 거뒀어야 할 세금만 적게는 12조원, 많게는 27조원으로 추정된다.

 

윤석열의 '킬러 규제' 1호가 연 길

 

시작은 지난 2023년이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와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기업 투자를 막는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라"고 했다. 환경부는 그 1호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을 꼽았다. 한화진 당시 환경부 장관은 신규 화학물질 등록 기준을 유럽연합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했다. 그 결과 검사 기준이 100킬로그램에서 1톤으로 올라갔다. 1톤 미만으로 들여오는 신종 화학물질은 유해성을 따지지 않고 통관할 수 있게 됐다.

 

두 법은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 뒤에 만들어졌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부터 신규 화학물질의 유해성 심사가 의무화됐고, 시행 5년 만에 화학사고가 절반으로 줄었다. 그렇게 쌓아 올린 안전장치를 윤석열 정부가 도로 풀었다. 완화 개정안은 지난 2024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재옥 당시 원내대표와 유의동 당시 정책위의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입법을 뒷받침했다.

 

표결 직전 반대 토론에 나선 사람은 강성희 진보당 의원뿐이었다. 그는 "기업들의 편익을 위해 화학물질 규제를 뒤로 되돌리는 개악"이라고 했다. 본회의에서 같은 목소리를 낸 의원은 거의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그림자, 이번엔 직접 빨아들인다

 

규제가 풀리자 니코틴 수입이 급격히 늘었다. 2024년부터 물량이 가파르게 뛰었고,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석 달 동안에만 1300톤가량이 들어왔다. 지난해 한 해 들어온 양과 맞먹는다. 수입의 98%가 중국산이다.

 

문제는 이 물질의 정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조사한 최예용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흡입 독성을 짚었다. 피부에 닿는 것과 폐로 빨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도 물에 풀어 공기 중에 퍼뜨린 것만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냈다. 전자담배는 그 액체를 입에 물고 곧장 흡입한다. 최 부위원장은 "실용과 안전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검증 없는 유통을 그대로 두면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여준성 원주 지역위원장도 같은 지점을 짚었다. 그는 '담배냐 아니냐'를 따지는 사이 정작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봤다. "어떤 기구를 통해서든 흡입하게 하는 화학물질은 무조건 안전 검사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물질을 흡입하도록 방치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여 위원장은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는 게 가습기 살균제보다 더한 것"이라고 했다.

 

'줄기'에서 '합성'으로, 이름만 바꿔 빠져나간 세금

 

세금 회피는 더 오래된 이야기다. 담배사업법은 연초의 잎을 원료로 한 것을 담배로 본다. 2014년 정의가 넓어지면서 증기로 흡입하는 전자담배도 담배에 들어왔다. 액상형 전자담배에는 1밀리리터당 1799원의 세금과 부담금이 붙는다.

 

업계는 이 과세를 피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2016년 한 업자가 기획재정부에 연초의 잎이 아니라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은 담배가 아니지 않으냐고 물었다. 기재부는 줄기와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은 담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회신했다. 그때부터 '줄기 니코틴'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하지만 감사원 조사 결과 줄기와 뿌리만으로 니코틴을 뽑아내는 회사는 국내외 어디에도 없었다. 잎에서 뽑은 니코틴을 서류상으로만 줄기·뿌리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세청과 전자담배산업협회의 유착 의혹도 불거졌다. 단속 권한을 쥔 관세청 직원이 허위 신고로 적발된 업체 대표와 중국으로 함께 출장을 갔고, 현지에서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정황이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다. 이런 의혹 속에 세금 추징은 번번이 빗나갔다. 거액의 개별소비세를 통지받은 업체가 위장 폐업으로 빠져나간 사례도 있었다.

 

'줄기'라는 핑계가 막히자 업계는 '합성 니코틴'으로 갈아탔다. 그러나 식약처가 성분 분석법을 개발해 들여다보니, 합성이라던 제품에서 담배 특이 니트로사민 같은 연초 니코틴 성분이 검출됐다. 한 방송사가 의뢰한 분석에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검사한 52개 제품 가운데 50개가 연초 니코틴이었다. 연초 잎에서 뽑은 값싼 니코틴을 비싼 합성 니코틴으로 신고만 한 것이다. 연초 니코틴은 합성 니코틴보다 40배 안팎 싸다.

 

탈루 규모를 두고는 추정이 엇갈린다. 수입한 원액을 기준으로 잡으면 약 12조원, 완제품으로 들여온 양까지 더하면 약 15조원, 수입량 통계 전체로 보면 27조원까지 늘어난다. 광주가 지역구인 정진욱 의원은 "지난 10년간의 통계만 봐도 거의 20조원의 세금이 탈루된 것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300년치 사재기, 그리고 잠든 법안

 

지난해 12월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정의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 4월 24일부터 시행돼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도 과세 대상이 됐다. 문제는 소급 적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시행 전에 들여온 물량은 세금을 물지 않는다. 업계는 규제와 과세가 닥치기 전에 물량을 몰아 들여왔다. 그렇게 쌓인 재고가 연간 소비량 기준 300년치에 이른다.

 

다음 수도 이미 준비돼 있다. 합성 니코틴에 세금이 붙기 시작하자, 업계는 담배 정의에 들어가지 않는 '유사 니코틴'으로 다시 갈아타고 있다. 메틸니코틴 같은 신종 물질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고, 흡입 독성에 대한 장기 데이터가 전무하다. 국회 토론에서는 이런 물질이 화학적 결합을 거치면 필로폰이나 헤로인 같은 마약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자담배 형태의 마약이 전체 마약 압수품의 9.5%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함께 나왔다.

 

이를 막을 법안은 국회에 멈춰 있다. 안호영 의원은 인체에 흡입되는 화학물질이라면 어떤 니코틴이든 90일 반복 흡입 독성 시험을 거치도록 하는 화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진욱 의원은 감사원을 중심으로 국세청·관세청·경찰·기재부가 참여하는 정부 합동 조사와 국정조사·특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다른 언론사들도 이 문제를 모르는 게 아닌데 아무도 보도하려 하지 않더라. 정말 독립운동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대응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안전성 검증을 거치지 않은 유사 니코틴을 시민이 흡입하게 둬선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재고품에 유해성 평가를 실시하고 검증을 거쳐야 유통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행정 예고는 검사 '완료'가 아니라 '신청'만 하면 판매를 허용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결과와 무관하게 의뢰 사실만 있으면 팔 수 있다. 사재기 물량을 팔 수 있는 기간은 6개월에서 1년으로 늘었고, 표기상 합성 니코틴 제품에는 세금 감면 혜택까지 주어졌다. 취재진이 구윤철 경제부총리를 직접 만나 자료를 건네며 대응을 물었지만, 연락하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식품첨가물 회사'라던 업체의 정체

 

뉴탐사 취재진은 성남시 분당구의 한 업체를 찾아갔다. 시중에 팔리는 전자담배 액상 상당수에 찍힌 상표의 주소지였다. 사무실에 있던 관계자는 "우리는 전자담배를 하지 않는다. 식품첨가물, 향료를 한다"고 했다. 두 달째 일감이 없어 놀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사무실 곳곳에는 전자담배 공병과 제품 카탈로그, 니코틴 용액을 담는 통이 놓여 있었다.

 

바로 전날 같은 곳을 찾았을 때는 풍경이 달랐다. 제품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고, 입구 복도에서부터 달짝지근한 향이 진동했다. 액상 한 병의 소매가가 3만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그날 쌓여 있던 재고만으로도 적지 않은 금액이 된다. 세금계산서 없이 현금으로 거래되는 정황도 엿보였다. 잎에서 뽑은 니코틴에 향료를 섞어 액상으로 만드는 이 과정에서, 어떤 성분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그 기체를 빨아들였을 때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검증되지 않는다. 관계자는 의심스러우면 세무서를 통해 거래 내역을 확인해 보라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유해성 검사를 제대로 거쳐 전자담배를 만드는 업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곳은 단 한 곳뿐이다. 비싼 원료를 쓰고 반복 흡입 독성 검사까지 마친 그 업체는 시장에서 밀려나 고사 직전이다. 규정을 지킬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굳어진 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300년치 물량은 그대로 소비자에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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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통상 압박, 당당히 맞서야 한다

  •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6.17 06:11
  •  
  •  댓글 0
 
 
ⓒ 뉴시스
ⓒ 뉴시스

지금은 잠시 전쟁과 안보 현안에 가려져 있지만, 미국의 통상 압박은 여전히 살아있고 범위는 오히려 더 넓어지고 있다. 구글맵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망 사용료 갈등, 개인정보와 데이터 국외 이전, 공공 클라우드 보안 인증, AI 인프라 조달, 온라인 플랫폼 규제, 그리고 쿠팡 사태까지다. 미국은 한국이 디지털 경제의 규칙을 새로 짜는 과정에서 미국 기업에 불리한 판을 만들고 있다고 본다. 미국 입장에서 위치정보 반출 제한, 개인정보 국외 이전 규제, 망 사용료 논의, 플랫폼 지배력 견제, 공공 클라우드 보안 기준은 모두 ‘비관세장벽’이다.

 

미국은 지난 2월 20일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2월 24일부터 150일을 기한으로 대부분의 수입품에 10%의 임시 추가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곧바로 사법적 제동을 받았다.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은 5월 7일 판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를 122조상 ‘국제수지 적자’와 같은 것으로 취급해 부과한 관세는 무효라고 판정했다. 다만 이 판결로 10% 관세가 즉시 전면 중단된 것은 아니다. 항소법원이 5월 12일 CIT 판결의 효력을 임시 정지했기 때문에 현재 관세 징수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압박은 관세에 그치지 않는다. USTR은 지난 3월말 발표한 2026년 국가별 무역장벽(NTE) 보고서에서 한국의 AI 조달, 디지털 규제, 망 사용료, 위치정보 반출, 개인정보 국외 이전, 클라우드 보안 인증 문제를 한꺼번에 거론했다. 특히 2025년 11월의 한미 공동 팩트시트와 관련해, 한국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대목도 보고서에 포함했다.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미국의 내부 정책이 아니라 이미 합의된 통상 의무의 이행 문제로 당연시하겠다는 의도다.

구글맵 사안은 대표 사례다. 한국 정부는 2월 27일 구글이 요구해온 1:5,000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구글맵과 구글어스의 위성·항공사진에서 군사·보안시설을 가림 처리하고, 국내 제휴기업이 국내 서버에서 원본 데이터를 가공한 뒤 정부 심사와 검토를 거친 경우에만 반출을 허용하며, 등고선 같은 민감 자료는 제외한다는 조건이었다. 또 정부는 조건 이행 여부를 확인한 뒤 반출을 허가하고, 중대한 위반이 있을 경우 허가를 중단하거나 회수할 수 있다고 분명히 했다. 조건부라고는 하지만 19년 가까이 막혀 있던 문이 열린 것은 사실이다.

망 사용료 문제도 같은 구조다. USTR은 4월 말 공식 SNS에서 한국의 망 사용료 정책을 “미국 수출업자가 직면한 가장 황당한 외국 무역장벽”이라고 지목했다. USTR은 외국 콘텐츠 제공자로 하여금 한국 인터넷서비스 사업자에게 망 사용료를 내도록 하는 법안들이 한국 통신 3사의 과점 구조를 강화하며 미국 콘텐츠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미국 빅테크가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며 한국 통신망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한국 업체들은 다 내는 비용을 자기들만 안 내겠다는 억지이기 때문이다.

AI 인프라 조달 문제도 새롭게 전면화됐다. USTR은 2026년 NTE 보고서에서 한국 과기정통부의 고성능 GPU 및 클라우드 자원 조달이 국내 입찰자 중심으로 설계돼 미국 클라우드서비스 제공업체들의 참여가 배제됐다고 문제 삼았다. 국가 핵심 데이터와 공공 AI 인프라의 구축과 운용을 국내 통제권 아래 두겠다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선택이다. 미국이 자기의 AI 인프라는 전략산업으로 보호하면서 한국의 동일한 정책을 ‘통상장벽’으로 몰아가는 것은 통상 문제 제기가 아니라 한국의 디지털 산업주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쿠팡 사태는 악질적이다. 미국 투자자들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이후 한국 정부의 조사와 규제가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며 USTR에 301조 청원을 냈다가 철회했다. 미 공화당 의원이 주미 한국대사에게 보낸 공개서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주미대사를 통해 단호하게 답변함으로써 미국은 일단 이 문제를 봉합하려는 국면에 들어섰다. 한국의 국회의장을 포함한 우리 국민은 미국의 내정간섭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쿠팡 사태는 미국이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차별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상징적 사례로 남아 있다.

 

여기에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압박까지 겹쳐 있다. 한국 국회는 3월 12일 미국 전략산업 투자와 조선 협력에 관한 3500억 달러 투자 이행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5월 20일 주한미국대사 지명자 미셸 박 스틸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 약속의 재원과 사용처를 면밀히 따져보겠다고 발언했다. 그녀는 동시에 한국에서 미국 기업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것은 미국이 그들이 ‘속국’으로 간주하는 한국에 ‘총독’을 보내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미국의 공세는 무식한 협박이 아니다. 꽤나 치밀하다. 자기가 유리한 대목에서는 한미 FTA와 팩트시트를 들먹이고, 불리한 대목에서는 122조, 301조, 232조 같은 국내법 수단으로 우회한다. 122조 관세가 법원에서 위법 판정을 받은 것은 이 압박의 약점을 드러낸다. 미국은 강한 법적 근거 위에서 한국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근거가 흔들리는 임시 권한과 정치적 위협을 조합해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정확히 찔러야 한다.

첫째, 122조 관세에 대해서는 미국 국내법원 판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미국 법원조차 무역적자와 국제수지 위기를 혼동한 관세 조치에 제동을 걸었다. 한국이 이를 정상적인 통상 압박으로 수용할 이유는 없다. 둘째, 301조 압박에는 사실과 법리로 맞서야 한다. 우리의 디지털 규제, 개인정보 보호, 온라인 플랫폼 규제, 쿠팡 조사, 망 사용료 논의가 특정 국가의 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내외 기업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왔다는 자료를 축적하고, 소비자 보호와 시장질서 확립의 공익 목적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셋째, 구글맵 사태는 사후 통제의 문제로 넘어갔다. 이미 조건부 허가가 난 이상 이제 핵심은 조건의 실효성이다. 국내 서버 처리, 군사·보안시설 가림 처리, 등고선 등 민감 정보 제외, 위반 시 승인 정지가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조건을 붙여놓고도 집행하지 못하면 주권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넷째, AI 인프라와 공공 클라우드 조달은 통상 문제가 아니라 산업주권의 문제다. 한국의 안보, 산업정책, 데이터 주권을 기준으로 한 조달 원칙이다. 다섯째, 온라인플랫폼법은 조속히 입법화되어야 하고, 망 사용료 부과정책도 서둘러 실행에 옮길 일이다.

다섯째, 한미 FTA와 한미 공동 팩트시트의 재검토를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협정을 방패막이 삼아 우리의 입법 주권과 규제 주권을 침식한다면, 한국도 협정의 유지와 재협상, 부분적 조정, 심지어 폐기 가능성까지 협상 카드로 올려놓아야 한다. 그런 카드가 상상조차 불가능한 나라와 가능한 나라는 협상장에서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다. 구글맵이든 망 사용료든 온라인플랫폼법이든, 그것이 비차별적이고 합리적인 법치에 근거한 것이라면 우리는 당당해야 한다. 주권 국가의 입법권은 눈치의 대상이 아니다. 한미 관계는 중요하다. 그러나 일방적 굴종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치밀한 준비, 정확한 팩트, 강한 법리, 그리고 우리의 규제 주권을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주권을 스스로 지키는 나라라야 미국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고 진짜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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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대사관은 46년간 무단 사용한 약 9,000억원 임대료 전액 지불하라"

평화너머, "불공정 한미관계 개선 위해 국민감사청구 진행"

  • 기자명 서영빈 기자 
  •  
  •  입력 2026.06.16 23:46
  •  
  •  수정 2026.06.16 23:47
  •  
  •  댓글 0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는 16일 오전 10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한미국대사관 임대료 미지급 문제와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현황 비공개 문제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국민감사청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는 16일 오전 10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한미국대사관 임대료 미지급 문제와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현황 비공개 문제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국민감사청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는 16일 오전 10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한미국대사관 임대료 미지급 문제와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현황 비공개 문제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국민감사청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의 기지사용료 지원내역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평화너머는 "미국은 한국을 군사적으로 대중국 압박의 전진기지로, 경제적으로 미국 기업의 이익을 관철해야 할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 국민이 부담하고 있는 주한미국대사관 임대료 특혜와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 현황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국민감사청구의 취지를 설명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1980년부터 지금까지 46년간 임대료를 일절 내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이에 △주한미국대사관 임대료 미납의 불법 여부 △주한미국대사관 이전 관련 문서 비공개로 국민 알권리 침해 △관련 기관 간 협의 및 승인 절차의 존재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현황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민간 통제와 감시가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2022~2025년 주한미군 직간접 지원 비용 △지원 규모 산정시 적용된 기준, 산정방식, 항목별 세부 내역 및 금액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 미집행금 현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1980년부터 임대료를 일체 지불하지 않고 무상 사용중이라는 사실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이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국회의원이 지난해 10월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한국부동산평가원 시세로 연간 193억원에 달하는 미 대사관 청사 부지 추정 임대료가 45년간 단 한푼도 지불되지 않았으며, 국유재산법에 따라 매년 사용료를 징수해야 할 외교부장관은 단 한차례도 사용료나 임대료를 받지 못했다고 질타한 바 있다. 지금까지 46년간 총액으로는 8,878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임해솔 평화너머 정책기획팀장은 주한미국대사관이 한국 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임대료를 미지급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이 기준과 방식도 모른 채 진행되고 있다고 하면서 이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임 팀장은 먼저 "광화문에 위치한 미대사관은 국유재산으로 국유재산법의 적용을 받는다. 매년 사용료를 징수해야한다는 국유재산법 제32조, 사용료를 납부하지 않은 경우 국유재산의 사용허가를 취소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는 제36조 조항이 있다. 또 국유재산법 제8조는 재정경제부장관인 총괄청이 사무를 총괄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외교부 등 정부 중앙관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격년으로 발행하는 국방백서에 3번 연속 발표되었던 주한미군 직간접 지원비용 자료가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막대한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주한미군 지원에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당연한 국민의 알권리다"고 말했다.
 
김주현 평화너머 노동 대의원은 주한미국대사관의 임대료 미지급 문제는 외교적 불평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주한미군 주둔비에 한국 정부의 과대한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김 대의원은 "미대사관의 ‘무단 불법점유’ 문제는 매년 국정감사 등에서 단골로 지적되는 한미 외교 관계의 고질적인 불평등문제이지만, 뻔뻔한 미국은 여전히 저 자리를 불법 무단 점유하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 국민이 낸 세금 수조 원이 매년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명목으로 주한미군에 지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막대한 돈을 우리 정부는 산출근거도 파악하지 못하고, 실제 미군이 필요로 하는 금액보다 과다하게 책정되어도 통제하지 못하고 달라는대로 퍼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연희 평화너머 공동대표는 미셸 스틸 박 주한 미 대사 후보와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최근 발언을 집중 성토했다. 

이 대표는 "새로운 주한 미 대사로 지명된 사람은 한국에 대해서 존중하고 한국 국민과 주권을 존중할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취임도 하기 전에 한국에 들어오면 관세 문제, 주한미군 주둔비 문제, 다 해결하겠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 '밉상'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사령관 브런슨은 취임 과정에서부터 '한국은 항공모함'이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지난해에는 주한미군이 교육하는 거꾸로 된 지도를 공개했다. 베이징과 대만에 가장 가까운 제1도련선 안에 한국이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문 낭독 이후에는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한국은 중국 앞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 미셸 스틸 박 주한 미국 대사 후보의 "쿠팡 등 한국 내 미국기업 차별대우 안 받게 할 것"이라는 발언을 딴 말풍선 포스터에 항의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평화너머는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바로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 등기우편 접수를 완료했다. 감사원이 접수를 수리하면 통상 60여일 안에 결과가 나온다.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한국은 중국 앞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 미셸 스틸 박 주한 미국 대사 후보의 "쿠팡 등 한국 내 미국기업 차별대우 안 받게 할 것"이라는 발언을 딴 말풍선 포스터에 항의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한국은 중국 앞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 미셸 스틸 박 주한 미국 대사 후보의 "쿠팡 등 한국 내 미국기업 차별대우 안 받게 할 것"이라는 발언을 딴 말풍선 포스터에 항의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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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공급 속도전 주문했지만 장관 교체설까지···국토부는 왜 멈춰 섰나

수정 2026.06.16 06:36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월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공급촉진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정부·여당이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논의하고, 신속 인허가 지원센터 출범을 준비하는 등 주택 공급 속도전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주무부처 내부는 혼란스럽다는 평가가 15일 나온다. 주택공급 총괄 자리는 한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정비구역 지정이 지체되는 지역에 대해 국토부 장관이 직접 정비구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비구역 심의 시 지방도시계획위원회가 아닌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칠 수 있게 했다.

당시 안 의원은 “정비구역 지정 권한이 광역단체장에게 집중되면서 사업이 지체되는 병목현상이 일어난다”고 밝혔다. 공급 핵심지에서 야당 지자체장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오는 7월 부동산 관련 세금 제도뿐만 아니라 공급 문제까지 한꺼번에 정리한다며 속도를 재촉한 바 있다.

달 넘게 공석인데 장관 교체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공급에 속도를 내기는커녕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6·3 지방선거 이후 서울·과천·성남·용인시 등 정부가 주요 공급지로 꼽은 지자체의 단체장이 모두 야당 소속 후보가 당선되면서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접 정비구역을 지정·변경하고 해제할 수 있는 법안이 주목받고 있다.

국토부가 11월 출범을 목표로 준비 중인 신속 인허가 지원센터도 공급 속도전의 주요 수단으로 꼽힌다. 주택 인허가 단계에서 지자체와 사업자 간 이견으로 장기간 정체된 사업장에 조정안을 제시하는 역할이다. 관련 법안이 지난 4월 말 국회를 통과해 국토부는 시행령·조직을 정비 중이다.

그러나 공급 속도전을 낼 수단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당장 정비구역 지정권을 국토부 장관에게도 주는 법안에 정작 국토부는 반대하고 있다. 지자체장과 장관의 권한이 중첩되면 혼선이 생겨 오히려 공급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세운다.

신속 인허가 지원센터도 인허가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진 사업장이 대상이므로 공급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5월 시범사업 당시 접수된 7건 중 2건을 조정하는 데 그쳤다.

주택공급 총괄 자리가 공석인 점도 속도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올해 초 택지개발, 정비사업, 1기신도시 재건축 등 기능을 한 데 모은 ‘주택공급 전담조직’으로 출범한 주택공급추진본부장 자리는 이날 기준 한달 넘게 비어있다.

‘부동산 통계조작’ 사건에 연루돼 감사를 받는 주택 부문 공무원들이 적잖은 점이 여전히 인사 난맥상 원인으로 꼽힌다. 국토부가 엮인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에 대해 특검이 2차 수사를 벌이는 점도 부담을 더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여서 그저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개각 대상자로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거론되는 점이 조직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김 장관 재임 내내 부동산 대책이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가 주축인 세제·금융으로 치우치면서 공급을 담당하는 국토부 존재감이 작아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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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 간첩단' 대법 파기환송심 두번 치받은 '핑퐁 판사'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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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오병선 편

비서울대 출신 첫 고등고시 사법과 수석합격

"자백이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 처벌 못해"

헌법 조항 근거로 1970년엔 진보적 판결도

강희남 목사엔 "유무죄 모르겠다"며 10년 선고

'송씨 일가' 대법원 파기환송심 "유죄" 뒤집어

총 7번의 재판 끝에 안기부 뜻대로 유죄 확정

이일규 대법원장 '무죄' 취지 거슬러 잇단 좌천

'고문 조작'에도 유죄 판결… 재심서 모두 무죄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민변과 참여연대가 검찰 6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개최한 ‘검찰의 과거사 반성 촉구 및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송씨 일가 간첨단 조작사건(1982년)’ 피해자인 송기복씨가 증언을 하고 있다. 2008.10.29. 연합뉴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오병선(吳炳善, 1939~2014) 항목에는 색다른 구절이 있었다.

"오병선에게는 안기부로부터 대법원판사 자리를 보장받았다는 등의 뒷말이 법원 주변에 돌았다."

그런데 이 '보장'은 지켜지지 않았다. 오병선은 대법관이 되지 못했다. 그를 대법관 자리에 앉히려 했던 안기부의 보장보다, 대법원판사 이일규가 대법원장이 된 이후의 현실이 더 강력했다.

이일규 대법원장은 오병선이 치받은 바로 그 판결의 주심이었다. 이 묘한 인과관계가 오병선 이야기의 핵심이다.

고등고시 수석 합격, 비서울대 최초

오병선은 1939년 3월 5일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다. 1958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에 입학했다. 지방 사립대 재학 중이던 1961년 10월,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비서울대 출신으로는 최초의 수석합격이었다. 법조계에서 학벌 장벽이 높던 시절, 이 기록은 대단한 것이었다.

고시 동기로는 박종연, 황진호, 정구영 등이 있는데 이들 상당수가 나란히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이름을 올렸다. 1965년 11월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오병선(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압력에 굴복한 엘리트 법관'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떠오른다. 독일 나치시대 판사들 중 일부는 처음에 법치주의에 헌신하는 엘리트였으나, 권력의 압박과 경력에 대한 욕심이 결합되면서 체제에 봉사하는 판결을 내리게 됐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분석한 "악의 평범성"이 법관에게도 적용됐다.

오병선은 수석합격자였다. 영리했고, 초기에 인권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안기부와 보안사의 압력 앞에서, 그리고 대법관이라는 경력의 유혹 앞에서 결국 굴복했다. 이것이 단순한 악인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한나 아렌트(Getty Images)

"자백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 1970년의 명판결

오병선의 이력에는 주목할 만한 양면이 있다. 긍정적인 면부터 보자. 1970년 8월 대전지법 판사 시절, 통금위반 등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된 28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의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는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헌법조항을 근거로 삼았다. 이 판결이 다른 지역의 즉결심판에도 영향을 미쳤다. 진보적이고 원칙적인 판결이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이 판결의 근거가 된 헌법조항이 오병선의 판결 이후 2년 만에 유신헌법에서 아예 삭제됐다. 그리고 1980년 헌법 개정에서 되살아났다. 오병선이 지키려 했던 헌법 조항을 박정희 정권이 지워버린 것이다.

오병선의 반헌법 행위는 1977년 전주지법 부장판사 시절부터 본격화됐다. 유신 긴급조치 위반 사건들을 맡아 줄줄이 유죄를 선고했다.

가장 황당한 장면이 강희남 목사 사건이다. 1977년 11월, 오병선은 "피고인은 지난날의 행적으로 보나 기독교 목사이므로 도저히 공산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를 찬양할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기에 재판부도 무척 고민했다"고 말하면서도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반공법에 저촉되는지 안 되는지는 본 재판부도 확실히 모르겠으니 항소해보시오."

공산주의자가 아닌 것 같고, 반공법 위반인지도 모르겠는데, 징역 10년. 이것이 유신시대 긴급조치 재판의 현실이었다. 재판부가 판단을 내리기 두려워 피고인에게 "항소해보라"고 말하는 법정. 오병선은 11건의 긴급조치 사건을 이런 방식으로 처리했다.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치받다 '핑퐁재판'의 주인공

오병선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결정적 장면은 1983년 송씨 일가 간첩단 조작사건 파기환송심이다. 안기부가 1982년 9월 "대형 간첩단"이라며 발표한 이 사건은 처음부터 고문조작이었다. 피고인들은 첫 공판부터 고문 사실을 폭로했다.

1심은 송지섭에게 사형 등 전원유죄, 2심도 유죄. 그런데 1983년 8월 대법원 형사1부(주심 이일규)가 "장기 구금 후 검사 앞에서 한 자백은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며 파기 환송했다. 무죄 취지였다.

안기부와 대법원장 유태흥이 발칵 뒤집혔다. 파기환송심 재판장이 오병선으로 결정됐다. 안기부 수사관들이 오병선의 방에서 비공개로 증언했다. 통신담당 직원이 비공개로 설명했다. 1983년 12월 23일 오병선은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하급 법원이 치받은 것이다.

변호사 백형구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만약 오 판사가 무죄 판결을 했으면 그 당시에 바로 옷을 벗어야 했을 것이다."

이일규 전 대법원장은 "당시 고등법원 오 판사가 안기부의 부탁을 받고 이렇게 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고 말했다. 국정원과거사위원회가 면담을 요청했지만 오병선은 거절했다.

이 사건이 핑퐁재판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대법원이 두 번이나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는데, 고법이 두 번 다 치받아 유죄를 선고했다. 총 7번의 재판 끝에 안기부의 뜻대로 유죄가 확정됐다.

 

(간첩 누명 쓴 ‘송씨 일가’의 지옥 같은 25년 < 문화 < 기사본문 - 시사IN)ⓒ시사IN 안희태. 송기복씨(사진)와 송기준씨는 인터뷰 내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가슴속 깊이 패인 상처는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되어 줄줄 흘러내렸다. 그들은 사건 이후 수십 년 만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안기부의 조작은 평온하던 한 일가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간첩조작 피해자들 재심 무죄는 수십 년 뒤에야

오병선이 항소심 재판장으로 유죄를 선고한 사건들의 목록이 길다. 김광호 사건(2013년), 정영 사건(2011년), 허철중 사건(2013년), 윤정헌 사건(2011년). 모두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이었고,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됐다.

오병선이 항소를 기각하고 유죄를 유지한 결과 피해자들이 수십 년을 억울하게 살아야 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를 냉정하게 기록한다.

"항소심 재판장으로서 후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다수의 사건에서 항소를 기각하거나 유죄판결을 유지한 오병선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일규가 대법원장이 되자 밀려났다

1985년 오병선은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가 됐다. 재판업무에서 물러난 것이었다. 1988년에는 사법연수원 교수부장으로 더 깊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자신이 치받은 판결의 주심 이일규가 대법원장이 됐기 때문이었다.

법원주변에는 안기부가 대법관을 보장했다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그 보장은 지켜지지 않았다. 1991년 1월 법원장 보직을 받지 못하자 그는 퇴직했다. "수없이 많은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를 낳은 이 엄청난 판결로 오병선이 치른 대가는 겨우 대법관 선임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뿐이었다"고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기록한다.

퇴직 후 그는 고향 영암 학산면의 재경향우회장과 명예면장을 맡으며 장학금을 지원했다. 2014년 1월 7일 사망했다.

 

오병선.(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나치시대 법관들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오병선은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이일규 대법원판사는 같은 압박 아래서 무죄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그 용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됐다. 같은 시대, 같은 체제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오병선을 떠올렸다. 수석합격자가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에 유죄를 선고하는 구조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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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이 대통령은 ‘월클’”…진퇴양난 돌파구 찾나

최하얀,고한솔,김채운기자

  • 수정 2026-06-16 07:22

당안팎 압박에다 당 지지율 하락

대표 출마 땐 대통령과 맞서는 셈

불출마 땐 정치적 미래 기약 못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6주년 기념식 및 특별강연’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표직 사퇴와 8월 전당대회 불출마 압박을 받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과의 대립각은 최소화하면서, 선명성을 선호하는 자신의 지지층을 다지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당대회가 ‘명-청 대결’ 구도로 짜이는 것을 경계하며,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15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통령의 이탈리아 순방 성과를 언급하며 “이 대통령은 월드 클래스 지도자”라고 추어올렸다. 그는 오후에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6주년 기념식 축사에서도 “우리 곁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 대통령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신을 가장 잘 체현하고 있는 피스메이커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의 발언은 지난 10일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란 자신의 발언을 두고 청와대 안에서 “당을 쪼개자는 것이냐”는 격한 반응을 보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 대표로선 집권 1년을 갓 넘긴 이재명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큰 부담이다.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는 상당수 당원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당권 경쟁자들과 대결 구도도 아닌, 이 대통령과 정면 대결 구도가 되어버린 상황을 (정 대표가)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가까운 강득구 최고위원은 이날 “여당은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하는 운명 공동체다. 당·정·청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했다.

정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불법 비상계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며 다시금 ‘내란 청산’ 메시지를 냈다.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에 이어 거듭 자신을 지지하는 당원들에게 선명성을 강조한 것이다.

당 주변에서는 정 대표가 딜레마적인 상황에서 전대 출마 여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른 수도권 재선 의원은 “정 대표로선 출마를 포기하면 향후 정치적 미래를 다시 모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당원들의 평가를 받기 전에 사실상 밀려나는 것은 정 대표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지”라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은 “대표 연임 도전에 실패할 경우 2028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될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실상 정 대표 연임에 ‘비토’ 사인을 보낸 상황에서 전대에서 대표에 뽑히더라도 자신은 물론 여권 전체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수도권 다선 의원은 “과거 정 대표가 ‘더컷 유세단’(2016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로 구성된 후보 지원 유세단)으로 활동하며 재기의 기회를 만들었듯, 이번에도 정부·여당 전체를 위해 한발 물러서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며 “여권 내 갈등이 격화한 상황에서 정 대표가 설사 대표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엄청난 험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에서는 당원이 가장 많은 호남 지역에서 정부·여당 지지율이 빠지는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정 대표가 강성 지지층 결집을 의도하는 듯한 발언을 많이 내놓고 있지만, (호남에 30% 이상이 밀집된) 권리당원들은 당·청 관계를 주요하게 고민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양상은 호남 민심 향방에 달렸다”고 말했다.

최하얀 chy@hani.co.kr 고한솔 sol@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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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한-EU 공동성명, 누가 설계했나…워싱턴의 보고서를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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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6/06/16 07:50
  • 수정일
    2026/06/16 07:5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기자명 박재산 기자
  •  
  •  승인 2026.06.1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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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틱 카운슬의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강화, 그 배경은 무엇인가」를 통해 본 한-EU 공동성명의 배경

최근 발표된 한-EU 공동성명은 적지 않은 논란을 낳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경제협력 확대와 디지털 통상협정 체결이 전면에 배치됐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안보·방위 협력, 해양안보, 사이버·하이브리드 위협 대응, 외국 정보조작 대응, 방산 협력, 기밀정보 교환 문제까지 폭넓게 포함됐다.

 
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벨기에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브뤼셀 유럽 연합(EU) 이사회에서 유럽 연합 안토니우 코스타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과 한-EU 소인수 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벨기에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브뤼셀 유럽 연합(EU) 이사회에서 유럽 연합 안토니우 코스타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과 한-EU 소인수 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실용외교와 균형외교를 말해온 이재명 정부가 어쩌다 유럽연합과의 안보·방위 협력을 이처럼 전면화하게 됐는지는 의아한 대목이다. 이를 접한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놀라움과 당혹감이 적지 않다. 한국 외교가 왜, 어느 지점에서, 이렇게까지 유럽·나토 안보협력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런데 이 흐름은 돌발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 워싱턴의 대표적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은 작년 12월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강화, 그 배경은 무엇인가」를 통해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확대를 적극 제안했다.

이 보고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한-EU 공동성명에 담긴 안보협력의 방향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어떤 전략적 구상과 맞닿아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애틀랜틱 카운슬 보고서는 한국을 유럽·나토 안보망과 연결하려는 워싱턴 외교안보 진영의 문제의식을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낸다.

애틀랜틱 카운슬은 나토와 대서양동맹 강화를 중시하는 미국의 대표적 국제문제 싱크탱크다. 미국 정부와 동맹국, 방산·에너지 기업 등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기관으로, 미국 주도 국제안보 질서의 관점에서 정책 제언을 내놓는 성격이 강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4월 17일 방한 중인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집행위원회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을 만나 한-EU 간 경제안보 협력 강화에 대해 논의했다. ⓒ뉴시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4월 17일 방한 중인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집행위원회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을 만나 한-EU 간 경제안보 협력 강화에 대해 논의했다. ⓒ뉴시스

‘경제안보’ 앞세운 안보망 연결

한-EU 공동성명은 디지털 통상, 공급망, 첨단기술, 에너지, 경제안보 협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의 무게는 경제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특히 양측은 기밀정보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보호협정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 기밀정보 교환은 방산, 군사기술, 사이버안보, 우크라이나 문제, 대북·대러 정보공유로 이어질 수 있는 안보협력의 제도적 기반이다.

공동성명은 러시아와 조선의 군사협력을 강하게 비난하고, 조선의 핵·미사일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도 다시 언급했다. 남중국해, 대만해협, 호르무즈해협의 항행 자유 문제까지 포함됐다. 유럽 안보와 인도·태평양 안보를 하나의 틀로 묶는 흐름이 뚜렷하다.

한편, 이 과정에도 위성락 안보실장이 등장한다. 위 실장은 지난 4월 17일 방한 중이던 마로시 셰프초비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을 만나 한-EU 경제안보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공동성명은 ‘경제안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논의가 결국 안보망 연결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애틀랜틱 카운슬 보고서’가 말한 것

애틀랜틱 카운슬 보고서의 핵심은 한국과 유럽이 안보협력을 더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세 가지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정보공유 확대다. 보고서는 조선의 대러 군사 지원 의혹을 거론하며, 유럽 정보기관과 한국 정보기관이 군사물자 이전, 확산 네트워크, 기술 공급망을 공동으로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는 협력 제도화다. 보고서는 한국과 나토의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 그리고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로 구성된 나토의 인도·태평양 파트너 4개국, 이른바 IP4 협력을 높이 평가했다. 더 나아가 미국·한국·나토가 참여하는 탄도미사일 방어 지휘통제 또는 모의훈련도 제안했다.

 

셋째는 방위산업 협력 확대다. 보고서는 한국의 K2 전차, K9 자주포, FA-50 전투기 수출을 사례로 들며 한국 방산이 유럽의 재무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봤다. 탄약과 포병 보급, 공중·미사일 방어, 로봇공학, 인공지능, 반도체와 에너지 공급망까지 협력 범위로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방산 수출 확대론이 아니다. 한국의 군사·기술·산업 역량을 유럽·나토의 안보 수요와 연결하자는 구상이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원문 보고서 「South Korea and Europe are stepping up on security cooperation. Here’s why」는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 기사에서는 이를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강화, 그 배경은 무엇인가」로 옮겼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원문 보고서 「South Korea and Europe are stepping up on security cooperation. Here’s why」는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 기사에서는 이를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강화, 그 배경은 무엇인가」로 옮겼다.

한-EU 공동성명과 보고서의 접점

이번 한-EU 공동성명은 보고서의 제안과 여러 지점에서 맞물린다.

보고서가 정보공유 확대를 제안했다면, 공동성명은 정보보호협정 협상 개시를 담았다. 보고서가 사이버·하이브리드 위협 대응을 강조했다면, 공동성명도 같은 분야의 협력을 명시했다. 보고서가 방위산업 협력 확대를 주문했다면, 공동성명은 방산 관련 정보교류와 방위 분야 협력 확대를 언급했다.

무엇보다 두 문서는 공통적으로 유럽과 인도·태평양 안보가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우크라이나, 조선, 러시아, 남중국해, 대만해협, 호르무즈해협 문제가 하나의 안보 구도 안에서 다뤄지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위치 변화다. 애틀랜틱 카운슬은 한국을 더 이상 “지역 안보 파트너”가 아니라 “글로벌 안보 제공자”로 규정했다. 이번 공동성명 역시 한국이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유럽 안보와 나토식 안보 의제에 더 깊숙이 관여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벨기에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브뤼셀 유럽 연합(EU) 이사회에서 열린 한-EU 공동언론발표를 마치고 박수를 받고 있다. ⓒ뉴시스
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벨기에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브뤼셀 유럽 연합(EU) 이사회에서 열린 한-EU 공동언론발표를 마치고 박수를 받고 있다. ⓒ뉴시스

공동성명 뒤에 비친 워싱턴의 구상

한국이 유럽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디지털 통상, 공급망, 첨단기술, 에너지 전환은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경제협력의 외피 아래 안보·방위 협력이 제도화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나토는 러시아 견제를 명분으로 군사비 증액과 군수산업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의 대러 전선과 인도·태평양의 대중 견제 구도를 동맹망으로 연결하려 한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의 방산 공급망, 반도체 기술, 대북 군사 대응 경험은 중요한 연결고리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외교와 균형외교를 말해왔다. 그렇다면 유럽과의 관계에서도 경제협력과 안보 편입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유럽과 협력하는 것과 유럽·나토 안보망에 묶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EU 공동성명 뒤에는 워싱턴의 구상이 보인다. 한국을 유럽 안보망에 연결하려는 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길이 한국의 국익과 한반도 평화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냉정한 검토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원문보고서 : 「South Korea and Europe are stepping up on security cooperation. Here’s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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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 26주년, "인내심·일관성 유지해 남북관계 개선노력 계속하자"

임동원, 김대중평화센터 6.15공동선언 26주년 기조강연

  • 기자명 서영빈·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6.16 00:37
  •  
  •  수정 2026.06.16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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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평화센터가 15일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26돌을 맞아 김대중도서관 컨벤션홀에서 기념식과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특별강연에 나서고 조정식 국회의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등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김대중평화센터가 15일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26돌을 맞아 김대중도서관 컨벤션홀에서 기념식과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특별강연에 나서고 조정식 국회의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등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26돌을 맞아 15일 오후2시 김대중도서관 컨벤션 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6주년 기념식.

이날 유일하게 열린 6.15 기념식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의 주역인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한반도 평화 : 다시 6.15'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에서 "미국이 결단하면, 북한에 대해서도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북핵 문제는 물론 한반도 평화문제도 해결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기회로 포착, 활용하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6,15정신을 되살려 인내심과 일관성을 유지하며, 북한과의 대결을 피하고 긴장완화, 남북관계 개선, 평화만들기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 전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15경축사에서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으며 △남북관계를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특수관계'로 합의한 바를 준수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다짐한 데 대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고 그대로 실천돠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9.19군사합의'의 단계적 복원과 트럼프 대통령의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싱가포르 합의의 핵심 내용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제제 수립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추진 이었으나 트럼프의 변심으로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결렬되어 이 합의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짚었다.

이에 북은 "이제 더 이상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은 부질없는 일이라며 '안보는 핵무력 강화, 경제는 자력갱생,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유대강화'로 나가기로 결정하고 '남북관계를 교전중이고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선포했다고 지난 과정을 설명했다.

또 "남과 북은 유엔에 공동가입한 두 국가이지만 '남북관계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합의, 유지해 온 바를 파기한 것"이라고 하면서 "남북관계는 파탄나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중단되었다"고 파악했다

임 전 장관은 2022년 집권한 윤석열이 모든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중단되었지만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고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안보환경을 조성하여, 북핵문제 해결은 물론이려니와 이미 합의한 바 있는 4자평화회담을 개최하여 군사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결단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재차 강조했다.

6.15남북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자주적 통일 △남북연합제로 평화통일 지향 △8.15이산가족 상봉 △경제협력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으로 신뢰조성 △당국간 대회 개최를 약속한 △선평화 후통일의 평화선언 △합의를 실천으로 옮긴 최초의 남북합의 △'미북 공동코뮤니케 채택과 울부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을 비롯해 미국의 참여를 이끌어 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추동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얻을 수 있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다는 민족자존 고양 △이후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과 2018년 4.17판문점선언 및 9.19평양공동선언으로 이어지는 후속합의의 초석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하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했듯이,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여 '싱가포르 북-미 정상합의'를 성사시켰듯이, 트럼프 대통령을 기회로 포착·활용하여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해야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강훈식 비서실장을 통해 축사를 보내 26년 전처럼 남북이 다시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6.15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공존의 출발점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교류와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통일을 이루어나가자는 소중한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은 물론 동북아와 전 세계에도 공통의 이익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를 한반도 공동 번영의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정부는 지난 1년간 전단 살포와 확성기 중단을 비롯한 선제적 평화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혹하리만치 무겁고 차가운 침묵 뿐이다. 고뇌와 답답함은 깊어만 간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대화의 끈을 놓을 수 없으며, 평화를 향한 걸음을 멈춰서도 안된다. 지금 주어진 과제는 명확하다. 이 위태로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바꿔내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 장관은 "마침내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김대중 대통령께서 보여주신 6.15의 위대한 정신"이라며, "6.15 26주년, 한반도의 미래를 향한 담대한 여정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다. 지치지 않고 인내하며, 적대를 걷어낸 평화적 공존의 토대 위에서 번영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기조강연에 앞서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행사 축사에서 "6.15 정신은 총칼이 아닌 대화로, 적대가 아닌 상생으로, 분열이 아닌 공존으로 미래를 만들어 가자는 평화의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규정,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동의 무력 충돌 등을 언급하며 세계 평화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6.15 정신이 더욱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대화의 문이 닫힐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 평화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할수록 대화의 가치는 커지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진다"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장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의 평화 협력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 이 기념식과 강의를 통해서 새 6.15 정신, 새 6.15 열정을 향해서 나아가는 그런 다짐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평화로운 일상을,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청년들에게는 미래를 준비할 희망을, 그리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의 개막을 여는 열쇠가 바로 평화"라고 강조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평화가 곧 민생이고 경제이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라고 믿는 국민들이 많아질 때 6. 15 정신은 반드시 다시 살아날 것이다. 평화를 말하는 국민, 평화를 지키는 국민, 평화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국민, 바로 그런 국민의 열정이 한반도의 미래를 바꿔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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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없는 쿠팡…정보유출 피해자 2만명 주민번호 요구하며 ‘재판 지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6/15 10:47
  • 수정일
    2026/06/15 10: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장현은기자

  • 수정 2026-06-15 10:32

피해자들 회원 여부 확인한다며 번호 요구

애초 쿠팡 회원 가입 땐 주민번호 수집 안 해

지난해 12월3일 서울 송파구 본사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말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킨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회원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수 만명의 주민등록번호 제출을 요구했다. 쿠팡은 애초 회원 가입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아, 실효성 없는 다량의 민감 정보를 요구하며 재판을 지연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박정호)는 지난 12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본 가입자 약 2만1500명이 제기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소송 7건의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원고들은 쿠팡의 개인정보 안전조치 의무 위반에 따른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해 1인당 3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다. 이날 심리된 7건은 법무법인 지향이 진행하는 8만여명 규모의 공동소송 중 일부로 지난 3월부터 가장 먼저 법원 심리가 이어진 사건이다. 쿠팡 사태 이후 여러 로펌을 통해 민사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는 전체 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재판에서는 원고들이 실제 쿠팡 회원인지를 특정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쿠팡 쪽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당사자를 특정해야 한다”며 원고들의 주민등록번호 제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쪽이 대리하는 원고 당사자 2만1500명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 제출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쿠팡이 회원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수집·이용 요건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민감한 개인정보로, 쿠팡을 비롯해 대부분 쇼핑몰은 회원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제출하더라도 쿠팡이 보유한 회원 정보와 대조해 확인할 수 없는 셈이다.

원고 쪽은 쿠팡이 이미 보유한 이름, 연락처, 이메일 주소, 가입 정보 등만으로 회원 여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쿠팡 쪽이 불필요하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피해자 확인보다는 소송을 장기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취지다.

쿠팡이 민사재판을 늦추려는 움직임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쿠팡은 지난 3월 첫 재판부터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한 과징금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민사 재판을 중단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해왔다. 쿠팡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인 62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으며,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쿠팡에 가입할 때는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도 않아서 제출하더라도 자사 시스템으로 대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법상 취득이 매우 엄격히 제한된 주민등록번호를 재판에서 요구하는 것은 명분 없는 재판 지역 작전”이라고 비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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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26년 전 6.15 선언, 희망의 불씨 지금도 살아있다"

"정전상태 넘어 평화체제 구축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다 할 생각"

임경구 기자 | 기사입력 2026.06.15. 08:58:04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정전 상태를 넘어, 지속 가능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생각"이라며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교황청의 지지와 관심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성 밖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 미사' 연설에서 남북 관계 회복 의지를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을 언급하며 "국제사회 곳곳에 분열과 대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고 진단한 이 대통령은 "한반도 역시 이러한 현실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야기했던 남과 북은 다시 단절과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섰다"며 "남북을 연결하던 소통의 통로는 닫혔고, 불신과 긴장은 여전하다"고 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났던 6.15 남북 정상회담을 상기하며 "26년 전 6월 15일,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마주 앉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면서 "오랜 적대와 긴장을 넘어,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저는 지금도 그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확신한다"면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했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비롯한 선제적인 긴장 완화 조치를 추진해 왔다"며 "또한 흡수통일이나 일방적 체제 경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갈등과 불확실성이 세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지금, 이제 대한민국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며 "더욱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모든 이가 존엄한 삶을 누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가 인류 공동의 유산이 될 수 있도록 국제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평화로 이어지고, 세계의 연대가 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굳건하게 만드는 선순환을 함께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고 했다.

또한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와 관련해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전선(戰線)과 철조망, 국경의 제약을 넘어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며, 대한민국 정부 역시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유흥식 추기경 집전으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 미사'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경구 기자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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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미의 숲으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기자명

  •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6.15 06:35
  •  
  •  댓글 0
 
 
ⓒ뉴시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를 두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기대를 품었던 국민들이 많다. 한국 외교는 오래도록 외교가 아니었다. 미국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움직이는 유사 외교행위였다. 한미동맹은 정책이 아니라 신앙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려 했고, 브라질 룰라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았으며, 인도 국빈 방문으로 미국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신호를 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은 한 번도 따로 만나지 않은 미국의 혐오국 3인방이다. 한국 외교의 방향이 조금은 바뀌고 있다고 볼 소지가 있는 대목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2월 미 공군의 서해상 무단 훈련에 경고음을 낸 일, 전작권 조기 회복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일, 이스라엘의 국제적 폭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일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인권, 국제적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 외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이른바 ‘3불 무관용’ 방침이다. 작년 9월의 ‘3불 원칙’, 곧 이면합의·국익침해·불공정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놓고 보면, 이재명 외교에는 분명 자주외교의 싹이 돋고 있었다.

그러나 6월 10일 한-EU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그 기대를 한순간에 흔들었다. 불과 이틀 전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조선 핵문제에 대해 현실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비핵화를 협상의 문턱에 세워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조선은 핵물질을 계속 생산하고 ICBM 기술을 고도화한다. 그러므로 당장의 목표는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 핵물질 해외 반출 저지, 탄도미사일 기술 고도화 중단이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조선의 핵은 협상장에서 지워버릴 문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말이었다. 미국식의 ‘이상론’에 선을 긋는 언사였다.

그런데 한-EU 공동성명은 정반대의 문법으로 돌아갔다. 성명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했으며, 조선이 NPT상 핵보유국으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법적으로만 따지면 두 발언이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핵능력의 존재를 현실로 인정하는 것과 핵보유국 지위를 법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법률 문장이 아니다. “현실을 보자”고 했다가 이틀 후에는 “너는 결코 핵보유국이 아니다”라는 문서에 서명했다면 조선은 어느 쪽을 이재명의 진심으로 읽겠는가. 그리고 조선이 언제 NPT 인정을 원했는가.

이번 공동성명의 문제는 조선 핵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성명은 조선-러시아 군사협력을 ‘규탄’한다고 했다. 외교 문서에서 규탄은 가벼운 말이 아니다. 한국은 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한반도 문제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유럽의 입장이 어떠하든 한국이 그 언어를 그대로 받아 적을 이유는 없다. 유럽은 유럽의 전쟁을 말한다.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생존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성명에서 한국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브뤼셀의 문장만 선명하다.

대만해협 조항도 마찬가지다.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인도·태평양에서의 일방적 현상변경 반대라는 문장은 중국을 겨냥한 말이다. 중국과 관계를 복원하겠다던 정부가 왜 유럽의 대중 견제 문구를 자신의 선언문에 담는가. 한국이 대만해협 문제에 아무 입장도 갖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외교의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 대중 경제관계, 러시아와의 관계 복원, 조선 문제의 관리가 한국의 직접 이해다. 유럽의 가치외교 문장을 빌려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자극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습관이다.

6월 13일 조선 외무성은 한-EU 공동성명에 대해 “이는 우리 국가에 대한 명백한 주권침해, 엄중한 적대행위로서 지금껏 입 닳도록 떠들어 온 ‘체제존중’, ‘적대행위 불추구’와 같은 위장간판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한국의 집권자가 거치장스럽게 쓰고 있던 ‘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고도 말했다. 6월 8일 이 대통령이 조선 핵의 ‘현실론’을 언급한데 대해 냉소를 보내던 조선이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같은 날 ‘청와대 관계자’는 공동성명의 내용이 기존 한국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결국 ‘도루묵’인 것인가.

 

조선의 맹비난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세를 흩트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기존 한국의 입장’이란 언제 시점의 입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얘기인가. 누가 조선 외무성의 ‘위장간판’과 ‘가면’ 지적을 틀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번 성명이 우리의 과거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강변하는 그 ‘관계자’는 우리 외교의 진보를 원점 회귀시키려는 숭미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이 대통령이 이들의 의견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비틀댄다면 그 동안의 이른바 ‘자주’ 행보란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결국 당신은 실용외교라는 이름하에 ‘숭미의 숲’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이렇게 한쪽의 입장만 전적으로 표현한 사례는 희귀하다. 한국은 EU의 안보 언어를 고스란히 수용했다. 반대급부라면 기껏해야 무관세 철강 수출 쿼터를 덜 줄인다는 얘기다. 그걸 얻겠다고 우리의 외교 목소리를 송두리째 상대에게 넘겼다는 말인가.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설명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사전 협상을 담당한 외무 관리들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다른 하나는 숭미 관료들의 의도적인 반란의 가능성이다.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심하지 않을 수도 없다. 주인국에 대한 숭미인들의 충성은 갸륵하기 짝이 없다.

오디세우스의 배를 떠올리게 한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배가 암초로 향하지 않도록 몸을 돛대에 묶었다. 한국 외교의 배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선장은 암초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잡이들은 다시 익숙한 노래 쪽으로 키를 돌렸다. 워싱턴과 브뤼셀에서 들려오는 낡은 비핵화 주문, 러시아 규탄의 합창, 대만해협 현상변경 반대의 구호가 그 노래다. 더 큰 문제는 선장이 그 키를 빼앗아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외교는 선언이 아니라 문서로 남는다. 기자회견의 현실론보다 정상성명의 문구가 더 오래 남는 법이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말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에 비추어 보아도 이번 성명은 해명되기 어렵다. 어디에 국익이 있고 어디에 실용이 있는가. 한반도 문제에서는 조선에 대한 유럽의 규탄 언어를 받아들이고, 러시아 문제에서는 유럽의 전쟁 언어를 받아 적고, 대만해협 문제에서는 중국 견제의 언어를 받아들었다. 주권의 언어가 아니라 유럽의 문장을 한국어로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 물론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이번 성명은 대형 사고다. 이 사고는 조선에는 불신을, 중국과 러시아에는 경계심을, 한국 국민에게는 혼란을 남겼다.

그동안 이재명 정부의 자주적 행보를 지지하고 성원해온 국민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의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걸었던 길, 말로는 자주를 말하다가 결정적 순간에는 동맹의 문장에 포획되었던 그 실패를 다시 반복하려는가. 숭미의 숲에서 빠져나오려 고독하게 싸운 지난 1년을 변절로 마무리할 것인가. 우선 한-EU 공동성명의 경위와 책임을 따져야 한다. 대통령의 뜻과 다른 것이었다면 철저히 문책해야 하고, 대통령의 뜻이 그런 것이었다면 이재명 정부의 외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주의 싹이 튼 줄 알았던 땅에서 우리는 다시 숭미의 숲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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