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인천 옹진군 연평부대를 방문해 화기사격 시연을 참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엑스에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는 법”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엑스에 이같이 쓴 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타인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올린 이 짧은 글을 두고 누구를 겨냥한 메시지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특히 전날 밤 공개된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가 이 대통령과 지지자들을 비판한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는 정치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시민 작가는 이날 방송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열렬히 지켜주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증축인데, 이 대통령은 재건축을 하려고 했던 것 같유 작가는 또 “소위 ‘문까산점’이라는 말이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까면 가산점을 받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혁신처장부터 시작해서 문 전 대통령을 비하하고 조롱하고 비방하고, 그냥 이거 팩트”라고 말했다.
유시민 작가가 26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딴지방송국 채널 갈무리
이 대통령이 이날 엑스에 올린 ‘부처 눈에 부처, 돼지 눈엔 돼지’ 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호남 투자 계획과 관련해 용수 부족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에 대한 반박 글을 올린 지 불과 4분 뒤에 올라왔다.
이 때문에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기업의 투자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취지의 비판을 하고 있는 국민의힘 등 야당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을 향해 이 대통령이 “돼지 눈엔 돼지가 보이는 법”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시각도 있다.다”면서 “재건축을 하려면 기존의 입주자에게서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정치평론가들을 ‘철거 용역’에 비유하며 “민주개혁 진영의 정상 세포들을 공격한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오전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게재한 글을 원칙적 내용”이라며 “다만 기업의 지방 집중 투자에 대한 억측과 허위 주장이 유포됨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고 밝혔다.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정치비평서로 신간이 아니라 지난해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이 나왔던 때는 촛불혁명 이후 약 10년, 두번의 대통령 탄핵을 거쳐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한 시점, 한국 사회가 새로운 가능성과 중대한 기로 앞에 서 있었던 때였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중도’와 ‘통합’을 국가운영의 중심 키워드로 내세운 가운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논의가 절실했던 때였다. 1년이 지난 현재, 이 책의 문제의식은 오히려 더욱 ‘현재성’을 갖는다. 이 책이 던졌던 그 절실한 질문을 제대로 안았는가에 대해 돌아볼 때다.
예컨대 “이재명 후보는 사상과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변혁적 중도를 얘기하며 강조해온 바와 통한다”고 했던 백 교수의 기대는 1년이 지난 현재 어떻게 응답받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다시 꺼내볼 이유의 하나가 될 듯하다.
백낙청 저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의 표지.
공허한 기표로 소비되는 '중도'에 대해 다시 묻기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거쳐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한 자리에서, 새 정부가 '중도'와 '통합'을 내세웠을 때 그 말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같은 자리를 다시 맴돌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6월항쟁 이후 퇴행과 좌절을 거듭 맛보던 끝에 드디어 윤석열 집권이라는 재앙까지 겪은 것"을 두고 "우리 사회의 사상적 빈곤이 적지 않게 기여했다"고 백 교수가 진단하는 것은 이 맥락에서다. 촛불과 응원봉이 거리를 밝혔지만, 그 빛이 어떤 사상적 기초 위에서 지속될 것인가를 묻지 않으면 역사는 또 반복된다. 민주주의는 이긴 뒤가 아니라 이긴 뒤에 무엇을 묻느냐로 결정되는 법이다.
저자는 ‘변혁적 중도’라는 개념을 통해 모호하게 소비되고 있는 ‘중도’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한국 정치에서 '중도'만큼 자주 불리고 자주 배신당한 말도 드물다. 좌도 우도 아닌 어딘가, 갈등을 봉합하는 수사,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는 온건함. '중도'는 그렇게 공허한 기표로 소비되어 왔다. 중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도 이 책의 첫 번째 과제다.
중도란 단지 좌우 사이의 회색지대가 아니라, 기득권 체제의 반동과 기존 이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적 전략이자 현실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중(中)’이란 ‘가운데’가 아니다. 좌우 사이의 회색지대가 아니라, 기득권 체제의 반동과 기존 이념의 한계를 동시에 넘어서는 실천적 전략이다. '변혁적 중도'라는 언뜻 모순처럼 들리는 조합이 뜻하는 것은 이것이다. "변혁 없는 중도는 현상 유지의 알리바이가 되고, 중도 없는 변혁은 또 다른 극단의 폭력이 된다." 두 개를 동시에 붙잡는 긴장, 그것이 이 책이 요구하는 변혁적 중도를 추구하는 자세다.
저자 백낙청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한국 민주주의의 굴곡진 여정을 온몸으로 겪으며 이론과 실천을 함께 고민해 온 이다. 9순의 나이를 바라보는 그는, 원로 중의 원로라고 불릴 만한 연배지만 그는 여전히 ‘학생’이다. 그의 공부는 끝이 없다. 함께 우리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찾아가기 위해 백낙청 TV를 통해 ‘함께 걷는 유쾌한 공부길’을 보여주고 있다.
'원로'는 어떤 이인가
그는 ‘원로(元老)’는 과연 어떤 이를 얘기하는지를 보여준다. 흔히 원로라고 불리는 많은 이들, 특히 스스로 원로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실망스런 행태를 생각할 때 진짜 원로의 한 모습은 스스로 원로라고 내세우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이 ‘로(老)’, 즉 현인(賢人)이라고 하지 않을 때, 자신이 답을 주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때 오히려 그에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는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라는 책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만에 내놓은 것인데 2015년에 나온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에서 백 교수가 보여준 것도 바로 그런 원로의 한 모범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문단과 시민사회의 ‘어른’으로서 언제나 인터뷰의 ‘대상’이었던 백낙청은 이 책에서 자신이 거꾸로 인터뷰어가 되어 지식인·활동가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했다. 이 책의 의의는 그런 점에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선 그 형식에 있다.
각계 전문가 일곱 명을 차례로 만나 한국사회가 처한 위기의 진상을 묻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대담집으로 이름 붙인 이 책에서 ‘원로’ 백 교수는 질문자다. 그리고 그는 좋은 답변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보다 많게는 30년에서 적게는 10년가량 나이 어린 7명의 후배들은 백 교수의 정성과 열의, 그리고 깊이만큼의 진지함과 열성, 깊이를 보여 주려 했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대담’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책에서 묻는 이와 답하는 이들은 ‘적공(積功)’과 ‘전환’을 얘기했다. 우리 사회가 이뤄내야 할 큰 적공이란 무엇이고 큰 전환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찾으려 했다. ‘적공’과 ‘전환’. 이 두 단어는 예사롭지 않다. 사전적으로 ‘공력, 공덕을 쌓는다’는 뜻의 적공에는 ‘한국사회 대전환’이, 아니 그 전환을 위한 인식과 실천이 단기간에 되는 게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담자들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임을, 그리고 권력의 변화도 사회의 변화를 위한 준비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그 역설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인과의 순환고리를 이룬다.
2024년 12월 6일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퇴와 탄핵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저자들이 말한 ‘대전환’은 87년체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저자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상당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의 질곡 속에서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문제들, 그런 개혁과제를 제대로 선별하고 배합해 총체적인 진전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데 대체로 일치한다.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에서 다시 백낙청은 말한다. “돌이켜보건대 우리 시민들의 영웅적 투쟁과 엄연한 역사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6월항쟁 이후 퇴행과 좌절을 거듭 맛보던 끝에 드디어 윤석열 집권이라는 재앙까지 겪은 것이 우리 현대사다. 나는 이런 역사에 우리 사회의 사상적 빈곤이 적지 않게 기여했다고 판단한다.”
우리의 시야를 윤석열이나 이명박·박근혜 비판에서 근대 한국정치사 전반으로, 남한에서 한반도로 넓히는 ‘변혁적 중도주의’로 모으자는 그의 ‘중도의 길’ 찾기는 10년 전에도 지금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저자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되 중도 내지 중용을 놓지 말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특히 단기적 과제에 매몰되거나 장기적 차원의 원론 제시에 머물지 말고 실효적인 최선의 해법을 찾는 데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면서, 무엇이 최선이며 얼마나 실효적인지가 아직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단기적으로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면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일단 하고 보되 그것이 참된 ‘중도’에 해당하는지, 가장 바람직한 궁극적 해법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물음을 멈추지 말자는 것이다.
대전환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권력의 교체가 사회의 변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사회의 변화가 있어야 권력의 변화도 의미를 갖는다.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순환고리 앞에서 조급함을 내려놓고 꾸준히 쌓아가는 것, 그것이 적공이다. 그리고 그 적공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중도를 묻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10년의 시차를 두고 출간된 두 권의 책이 한결같이 요청하는 실천이다.
실천하되 묻기를 멈추지 말라는 것, 그것이 도올 김용옥이 추천사에서 저자에 대해 말한 것처럼 백낙청이 ‘나이 듦에 관계 없이 크게 웃는 사람’인 이유, ‘창조적 전진을 감행하는’ 영원한 학생인 이유다. 물음을 멈추지 말자는 백낙청이 제안하는 ‘공부길’에 함께하는 이 작업은 그래서 절실하면서도 또한 그만큼 유쾌할 것이다.
1. 코스피 9000 돌파와 경제 지표상의 눈부신 실적
2. 외국인 순매도에도 코스피 보유지분율은 41%로 상승
3. 코스피 시가총액 증가분의 귀속 구조
ⓒ 뉴시스
1. 코스피 9000 돌파와 경제 지표상의 눈부신 실적
이재명 정부 출범 전날 2,699포인트였던 코스피(유가증권시장)가 1년 만에 9,000선을 돌파하여, 주가 상승률이 225%에 달한다. 1년 전 1,000만 원을 주식에 투자하였다면, 평균적으로는 2,250만 원의 투자 수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한국 증시는 인공지능 반도체 붐을 타고 역대급 랠리를 펼쳤는데, 1년간 주가 상승률은 세계 1위로, 시가총액(코스피·코스닥 합산)은 독일, 영국, 프랑스, 인도를 제치고 세계 6위로 올라섰다. 반도체 슈퍼 호황으로 수출이 최고치를 경신했고 경제성장률 예상치도 2%에서 2.6%로 상향하였다.
경제 수치가 역대급으로 상승했으므로 국민의 삶도 그만큼 개선되었을까?, 코스피 9,000시대 우리도 부자가 되었을까?
2. 외국인 순매도에도 코스피 보유지분율은 41%로 상승
한국형 코스피 상승은, 긍정성보다 부정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성장의 과실은 ‘외국인 주주들이 독차지’하고, 한국 증시는 ‘미국 증시에 예속된 동조성’, ‘대외 변수에 흔들리는 극단적인 변동성’, ‘반도체를 제외한 종목들의 부실로 증시 양극화’ 등이 심화하고 있다.
코스피 9,000시대, 무엇보다 성장의 과실은 외국인이 차지하였고 한국의 경제 종속은 보다 심화하였다.
외국인 순매수 및 코스피 지분율 추이 [자료 : 코스콤 CHECK·한국거래소·파이낸셜뉴스에서 재작성]
위 그림에서 우변 축 기준 외국인 누적 순매도 금액은 2026년 1월부터 마이너스로 하락하고 있으나, 좌변 축 기준 외국인 지분율은 작년 31%에서 계속 상승하고 있다. 외국인이 올해만 114조 원을 순매도하여 차익을 실현했으나, 외국인 시가총액과 지분율은 상승하였다. 즉 1년 동안 225% 상승한 코스피의 성과를 외국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다. 외국인의 114조 원 순매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역대 최대였던 43.5조 원의 세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특히 주가가 폭등한 5월 15일과 6월 19일은 하루에 각각 6.3조 원을 순매도했다. 그런데도 코스피에서 외국인 지분율은 연초 36%에서 6월 말 41%로 상승하였다. 이는 외국인들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슈퍼 우량주를 많이 보유했기 때문이다. 2026년 1월 두 종목의 합산 시가총액은 코스피 전체의 36%였는데, 6월 말 56%로 증가하였다. 두 종목에서 외국인이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코스피 전체의 외국인 비중도 상승한 것이다.
코스피는 2025년 6월 2일 시총 2,597조 원에서 2026년 6월 18일 7,413조 원(코스피 9000 돌파 시점)으로 약 4,816조 원이 증가하였다. 시가총액 증가분의 귀속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외국인 주주의 평가차익(언제든지 본국으로 찾아갈 수 있음)은 2.391조 원(2026.6.18. 코스피 7,413조 원 × 외인 지분율 41.1% - 2025.6.2. 코스피 2,597조 원 × 외인 지분율 31.8%)이고, 실현 수익(누적 순매도액)은 2025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170조 원이다. 이를 합산하면 외국인 주주 몫은 2,561조 원이다. 나머지는 삼성·SK 대주주 일가(430조 원), 국내기관(1,000조 원)에 귀속되었고, 개인 투자자들은 825조 원을 벌었으나 대부분이 미 실현된 장부상의 금액이다.
시가총액 증가분 4,816조 원의 귀속 구조 [자료] :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 한국거래소에서 재작성 (단위 : 조원, %)
결론적으로 코스피 폭등의 과실 중 53%는 외국인, 나머지 47%는 국내에 귀속되었는데, 삼성·SK 대주주와 기관투자자, 소수 자산상위층에게 대부분이 귀속되었고, 일반 서민과 중소기업에는 거의 돌아가지 않은 구조이다. 그나마 국내에 귀속된 부분은 재투자 등으로 경제에 기여할 수 있지만, 기업 실적에 기반하여 상승한 기업가치로 인해 창출된 부가 해외로 유출된 것은 국부 유출로 볼 수 있다.외국인 투자자들은 엄청난 주가 차익과 배당금(삼성·하이닉스) 약 50%를 차지하여 반도체 기업의 수익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구조이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이 방한한 27일 오후 자주통일평화연대와 전국민중행동,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는 서울 광화문 서십자각 인근 인도에서 '침략전쟁 미국 규탄! 대중국전초기지화 저지! 한미일군사동맹 저지! 자주평화시민행진'을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위해 27일 한국에 도착한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이 안규백 국방장관과 함께 강원도 원주에 있는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스 부대를 방문했다.
지난 1월 블랙이글스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방위산업 전시회에 참가하는 길에 사상 최초로 일본 항공자위대 오키나와 나하기지에 기착해 중간 급유 협력을 받은 바 있고, 이를 계기로 한일 당국이 급유지원 정례화를 검토한다는 우려섞인 보도도 나온 바 있어 28일 오전 회담을 앞둔 한일 국방장관이 블랙이글스 부대를 함께 방문한 것이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본격 추진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한국 도착 후 자신의 SNS에 "오늘과 내일, 한일간 방위협력이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일하겠다"고 썼다.
이날 오후 자주통일평화연대와 전국민중행동,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는 서울 광화문 서십자각 인근 인도에서 '침략전쟁 미국 규탄! 대중국전초기지화 저지! 한미일군사동맹 저지! 자주평화시민행진'을 개최해 △침략전쟁을 일삼는 미국 △한국이 대중국 압박을 위한 군사기지라고 막말하는 주한미군사령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이 가능한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추진하는 일본을 규탄했다.
무엇보다 이재명정부가 미국의 '동맹현대화' 요구에 발맞춰 대북, 대중 적대를 위한 군비증강을 이어가고, 일본에 우회적 군수지원을 통해 군사협력을 강화하며 사실상 재무장을 도와주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일군사동맹을 추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헌 평화통일시민행동 사무국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승헌 평화통일시민행동 사무국장은 미국이 발하는 동맹현대화는 미국 국방부가 밝힌대로 '한반도와 그 너머의 억지력을 위한 것'이며,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을 중국과의 군사지리적 관점에서 '항공모함'이나 '단검'으로 표현하는 오만함을 보이는 것을 보더라도 동맹현대화는 "아시아 전역 특히 중국에 대한 작전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받아들이고 더불어 한국을 미국의 대중국 전선의 최전방 기지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른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확보되는 순간 대만과 남중국해 등에서 충돌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원치 않아도 전쟁에 연루될 수 밖에 없다는 것. 결국 "우리를 미중 대결의 화약고 한 가운데로 떠밀고, 이웃나라들과는 적이 되도록 하는 상황으로 내몰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 국장은 국익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동맹현대화'를 오히려 앞장서서 추진하는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11월 한미 공동팩트시트에 '동맹현대화'를 아예 공식문서로 못박고, 오는 2035년까지 GDP의 3.5%, 연간 128조 원 규모로 국방비를 늘리겠다는 약속했다고 지적하고는 "우리의 운명과 곳간을 강대국의 전략에 통째로 내맡기는 것을 우리는 결코 동맹 현대화라고 부를 수 없다.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주의자주평화대학생협의회 대학생 김도윤 씨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주주의자주평화대학생협의회 대학생 김도윤 씨는 △올해부터 한일안보정책협의회가 차관급으로 격상되었고, △2018년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의 '욱일기게양' 논란과 '한일 초계기' 갈등으로 인해 중단됐던 한일 수색·구조훈련(SAREX)이 이달 초 9년만에 재개되었으며, △지난달 말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논의가 시작된 후 이날 고이즈미 방위상이 방한해 내일 한일국방장관 회담을 진행한다고 상황을 정리하고는 "이재명 정부는 식민범죄에 대한 사죄없이 군국주의 부활 행보를 보이는 일본과 군사 협력을 지금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악사'(ACSA)는 한일 군사협력을 군사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라고 하면서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이명박도 추진하지 못한 일을 내일 한일국방장관 회담에서 진행하려고 하는 이재명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함재규 민주노총 부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함재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미국이 이란전쟁 종전협상 과정에 사실상 전쟁비용인 3,000억 달러(약 454조 원) 규모의 이란 재건기금 청구서를 동맹국에 전가하며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또 다시 벼랑끝으로 몰고 있다"고 직격했다.
한국이 이란을 침공한 전쟁 당사자도 아니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것도 아닌데, 미국이 책임져야 할 그 종전에 왜 한국이 그 전쟁비용을 부담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동맹현대화니, 전략적 유연성이니 하는 포장뒤에서 한국을 '항공모함', '단검'으로 생각하는 주한미군이 이땅에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냐, 전시작전권을 돌려주는 일도 차일피일 미루며 결국 내놓지 않겠다는 그 오만함을 언제까지 두고봐야 되는 것이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재명 정부는 미국의 전쟁비용 청구를 거부하라"고 하면서 "언제나 파도처럼 살았던 민주노총이 또 다시 일자리와 경제를 수탈하는 미국에 맞서 벼락같은 반미의 물결로 싸울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납치, 이란과 팔레스타인, 레바논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압적인 전쟁을 열거하며 "이것이 바로 전쟁과 돈에 미친 미 제국주의가 벌이고 있는 짓"이라고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미국을 규탄했다.
'악사' 반대 의지를 담아 참가자들이 구호와 함께 'ACSA'가 적힌 종이를 찢어버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인근 미국대사관으로 평화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집회 참가자들이 주한미군 사령관의 '단검' 발언 이미지를 찟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미국 대사관 건너편에서 '이땅은 미국의 전쟁기지가 아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영호·김용민·서영교 의원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이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검찰개혁과 관련해 형사소송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6.26. 연합뉴스
정부가 '검사의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최종 입장으로 확정한 가운데, 범여권 의원들이 시민사회 숙의를 거쳐 만든 형사소송법 전면 개정안을 발의했다. 오는 10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 출범을 앞두고 검찰개혁의 마지막 관문이라 불리는 형소법 개정 작업이 신속히 마무리될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가 최종 입장을 확정하면서도 국회 논의에 따르겠다며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입법 지연 우려가 나왔지만, 시민사회에서 마련한 법안이 곧바로 제출되면서 입법 동력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원구성이 마무리되는 즉시 개정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김용민·서영교·김영호 의원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72년 만에 형사소송법 전면 개정안이 첫발을 뗀다"며 "의원들이 정책 개발을 의뢰하고 시민사회가 수개월의 숙의 끝에 마련한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시민숙의 법안 핵심 내용은?
김용민·박은정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서영교·김영호·최혁진 의원 등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개정안(시민숙의 법안)은 검사의 직접수사권과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고, 수사 주체를 사법경찰관으로 일원화하며,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지휘권도 없애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기존의 보완수사 요구권도 검사가 임의로 악용할 수 없도록 구체적으로 설계했다. 아울러 과도한 반복 출석요구 금지 조항과 압수수색영장 사전 심문제도, 수사인권보호관 신설, 공소심의회 신설 등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검사의 공소권을 견제할 수 있는 기구를 마련했다. 김영호 의원은 "발의하는 법안은 106개 조항에 이르는 전면 개정안"이라며 "72년간 이어져 온 형사사법의 틀을 통째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핵심 조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개정안은 검사의 수사 및 보완수사권을 규정한 형소법 제196조를 완전 삭제했다. 보완수사 '요구권'을 규정한 제197조의2는 기존에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한 내용을 수정해 "그 대상과 이유 등을 문서로 명시하여 사법경찰관에게 요구할 수 있다"로 바꾸고, 보완수사 요구의 대상·방법·절차·시기 등에 관해서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검사가 보완수사 요구권을 악용할 수 없도록 차단한 것이다. 또한 기존에 동일한 범죄 사실을 수사해 경합이 벌어질 경우, 검사가 경찰에 사건 송치를 요구하도록 한 기존의 제197조의4는 수사기관 간 경합이 벌어질 경우 '수사권관할조정협의회'를 통해 관할을 조정토록 체계를 정비했다.
검사 수사권과 관련된 핵심 조항인 제196조를 삭제하는 대신 같은 조항 번호엔 '수사인권보호관' 규정을 새로 담았다. 검찰의 인권보호 기능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각 수사기관은 입건 전 조사를 포함한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현저한 수사권 남용에 관한 민원을 처리하고, 영장집행 과정의 적법절차 보장을 위해 수사인권보호관을 둬야 한다.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되는 수사인권보호관은 사건관계인의 민원이 타당하면 관할 수사기관의 장에게 수사 방식 변경을 요구하거나 해당 수사관의 교체 권고 및 징계 요구를 할 수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모습. 2026.6.25. 연합뉴스
이와 함께 개정안은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진술 짜맞추기, 회유·압박, 자백강요 수단 등으로 악용됐던 검찰의 잦은 출석요구도 제한하도록 명시했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시간 조사와 심야조사도 제한하도록 했다. 수사상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출국금지나 정지를 요청하고, 출국금지 기간이 만료되거나 출국금지 사유가 없어졌을 때에는 즉시 해제를 요청하도록 했다. 사법경찰관의 구속기간(제202조)도 기존 '10일 이내'에서 '7일 이내'로 단축했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의 발부 여부를 결정하기 전 심문할 수 있도록 '압수수색영장 사전 심문 제도'도 신설했다. 이른바 '자판기'라고 불리는 무분별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최소화하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피의자의 진술은 영상녹화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제244조의2(피의자진술의 영상녹화)도 "피의자의 진술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영상녹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녹음하여야 한다"고 수정했다. 특히 조사·신문·면담 등 명칭을 불문하고 최초 진술부터 종료까지 전 과정을 녹음이나 녹화하도록 해 객관적 정황을 사후에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검사의 공소권을 견제할 기구를 따로 마련한 점도 시민숙의 법안 특징이다. 개정안은 검사의 공소제기 여부의 적정성을 심의·의결하고, 그 의결에 따라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각 지방법원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소심의회를 두도록 했다. 심의 대상은 공직자의 금품·향응 수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사건,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인 금융·경제 범죄 사건, 조직폭력·마약·살인 등 강력 사건과 성폭력 사건,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 등이다. 소송 지연을 목적으로 한 신청을 막을 조항까지 마련했다. 서영교 의원은 "시민으로 구성된 공소심의회로 검사의 소추권 남용을 견제하고 위법한 기소로부터 무고한 시민을 조기에 구제하는 길이 열렸다"며 "경찰의 과도한 폭주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 안전장치도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입법 속도다. 오는 10월 중수청과 공소청이 신설되기 전 시행령 등 후속 조치까지 마무리하기엔 현실적으로 일정이 빠듯하다. 전문가와 시민사회, 국회가 수개월간 토론과 숙의를 거쳐 마련한 개정안이 발의된 만큼 이를 토대로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국회 후반기 원구성이 아직 완료되지 않는 점, 여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된 점 등은 입법 지연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호·김용민·서영교 의원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이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검찰개혁과 관련해 형사소송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6.26. 연합뉴스
시민숙의 법안을 대표발의한 박은정 의원은 "정부는 원칙을 세웠고, 시민사회는 안을 만들었으며, 국회는 준비를 마쳤다"면서 "이제 남은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대 모든 민주 정부가 꿈꿔온 검찰개혁이 마지막 문턱 하나를 남겨두고 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며 "지금 국회가 법사위를 열어 이 법안의 심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도 신속한 추진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한병도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형소법 개정이 언제 시작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민주당은 형소법 개정 내용 검토에 착수하겠다. 그리고 원 구성이 마무리되는 즉시 개정 절차에 곧바로 돌입하겠다"면서 "검찰 개혁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흔들림 없이 신속하게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도 별도 개정안 발의
정부가 검찰개혁의 마지막 관문인 형소법 개정과 관련해 최종 입장을 밝히고, 시민사회에서 숙의해 마련한 형소법 전면 개정안도 곧바로 국회에 제출되면서 입법 논의도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이날 시민숙의 법안이 발의된 데 이어, 조국혁신당도 당 차원에서 형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혁신당 차규근·이해민·백선희·서왕진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98일 뒤면, 검찰청의 간판은 내려간다. 그러나 법이 함께 바뀌지 않으면 검사 권력은 그 간판 뒤에 그대로 남는다"면서 "정부가 방향을 정했다면 이제 국회가 법률로 완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연과 무책임은 중립이 아니다. 형소법을 그대로 두는 시간만큼 현행 검사 수사권도 연장된다"며 "정부안이 없다는 말도,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말도 더는 미룰 명분으로 사용하지 마라"고 했다.
혁신당 개정안도 시민숙의 법안과 마찬가지로 검사의 수사권을 규정한 현행 형소법 제196조를 삭제했다. 또 검사가 피의자를 직접 조사하거나 체포·구속·압수·수색 등 수사주체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들을 정비했다. 형소법 제1조에 목적 조항도 신설해 '적법절차'와 '인권보호의 원칙'을 명시했다.
형소법 개정안과 별개로 '사건 암장'을 막기 위한 '검사와 사법경찰관과의 협력 및 사법경찰의 수사권 통제에 관한 법률안'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사법경찰관이 사건을 입건하면 이를 공소청에 통보하고 담당 검사가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을 통해 사건 기록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조국혁신당 차규근(가운데), 이해민(왼쪽), 백선희 의원이 26일 국회 의안과에 당이 마련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사법경찰수사권통제법 제정안을 접수하고 있다. 2026.6.26. 연합뉴스
혁신당 의원들은 "준비가 부족해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혼란이 발생하면, 검찰개혁에 반대해 온 세력은 그 책임을 검찰개혁에 돌릴 것"이라며 "그런 허점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조정식 국회의장을 향해 "후반기 원 구성과 법제사법위원회 구성을 즉시 마무리하고 형소법 처리 일정을 확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을 향해선 "이제 말이 아니라 의사일정으로 답해야 한다"며 "법안을 즉시 심사하고, 제헌절인 7월 17일 이전에 형소법 개정을 끝내자"고 했다.
홈플러스 회생절차 기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이들을 살리기 위한 연대가 이어진다. 죽는 것 빼고 다 한 이들을 위해 26일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다. 아울러 29일에는 김광창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단식에 돌입할 예정이다.
26일 김재연 진보당 대표가 홈플러스 노동자들과 함께 단식에 돌입했다.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해 긴급운용자금 2,000억 원 조달이 시급한데,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 증권이 분담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면서 노동자들만 해고 위기에 처했다.
기자회견에서 안수용 홈플러스 지부장은 “정상화 시키겠다”고 말했던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10만 노동자와 소상공인들의 일자리는 보호할 가치가 없는 것이냐” 따지며 “정부가 노동자의 생존보다 자본의 이해관계에만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우리는 이것이 노동을 존중하는 정부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김재연 대표는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지키고, 홈플러스 청산이라는 대파국을 막기 위해 오늘 이곳에 섰다”며 단식에 돌입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청산 절차가 현실이 되는 순간 수만 명의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고 소상공인들은 연쇄 도산하게 된다”며 “노동자가 살아야 홈플러스가 살고, 소상공인이 살아야 민생경제가 살아난다”고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전국 홈플러스 직원들이 매장에서 국민신문고 제출을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 홈플러스 제공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입점점주들도 정부에 파산을 막아달라 호소하고 있다.
현재 홈플러스에 자금줄이 끊기면서 폐점이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남은 매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정육코너에 텀블러가, 체소 매대에 가위가 올려지는 상황이다. 상품 공급이 끊기면서 자체브랜드(PB) 상품들이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듬성듬성 위치하는 거다.
홈플러스 직원대의기구 한마음협의회는 협력사와 입점점주 등 총 11,480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신문고를 통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한마음협의회는 정부를 향해, “전 직원이 회생을 위해 자구 노력을 이어왔지만, 운영자금 고갈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파산을 막기 위해 2,000억 원의 운영자금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메리츠금융에게도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이 1,000억원 규모의 연대보증 제공 의사를 밝힌 만큼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도 2,000억원 규모의 긴급 운영자금 대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며 “메리츠가 사회적 책임과 포용적 금융 차원에서 운영자금을 지원한다면 홈플러스 회생은 물론 채권 회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일파의 재산을 국가가 거둬들이는 작업이 16년 만에 다시 시작된다. 그 첫 사정권에 휘문고와 풍문고의 뿌리인 친일파 민영휘의 무덤이 들어왔다. 강원도 춘천시 동면 장학리, 6만평 산자락에 왕릉처럼 자리 잡은 묘소다. 뉴탐사 취재진은 배기성 역사강사와 함께 이 묘를 직접 찾았다.
왕릉처럼 단장된 무덤
현장에 들어서자 거대한 신도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신도비는 고관대작의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이다. 비석에는 민영휘의 호를 딴 '하정부군'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정작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친일 행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선조의 벼슬 내력만 빼곡했고, 한일합방을 안타까워했다는 식의 문구만 남아 있었다.
봉분은 잘 손질돼 있었고 석물도 번듯했다. 묘로 오르는 길목에는 가축 사육 제한 구역 표지가 서 있었고, 큰 개 두 마리가 사납게 짖었다. 이 땅의 면적은 약 6만평이다. 개별 공시지가로 계산하면 시가가 34억원에 이른다. 등기부에는 권리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체납된 세금 탓에 여러 차례 압류된 흔적도 보였다.
휘문과 풍문, 그리고 8000억
민영휘는 1906년 휘문고의 전신인 휘문의숙을 세웠다. 다섯 번째 첩 안유풍의 이름을 딴 학교가 지금의 풍문고다. 두 학교 이름에는 민영휘 부부의 흔적이 그대로 박혀 있다. 그는 1910년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친일로 권력을 등에 업고 재산을 불렸다. 말년 재산은 오늘날 가치로 4800억~7800억원, 흔히 8000억원대로 불린다.
명성황후의 먼 친척으로 여흥 민씨 권력의 한복판에 있었다. 배기성 역사강사는 그를 가렴주구의 대명사로 짚었다. 평안도 관찰사 시절의 수탈이 갑오년 동학농민전쟁의 한 불씨가 됐다는 것이다. 배 강사는 백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일화도 들려줬다. 옥에 갇힌 아들에게 곽 여사가 "평안 감사가 된 것보다 낫다"고 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평안 감사, 곧 민영휘의 악명이 백성들 사이에 자자했다는 뜻이다. 배 강사는 "오로지 자기 영리 영달만을 위해 일평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 정치인'으로 둔갑한 묘막
묘소 아래에는 무덤을 지키는 가옥이 따로 있다. 이름은 춘천 민성기 가옥, 민영휘의 증손자대 인물 이름을 땄다. 이 집은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돼 있다. 관리비도 예산으로 집행된다. 문제는 안내판이다. 안내판은 민영휘를 "조선 후기 관료이자 정치인"이라고만 적어놨다. 친일파라는 사실은 한 글자도 없다.
배 강사는 안내판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람은 친일파"라고 했다. 그는 "이런다고 친일 매국노 민영휘의 악행이 덮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영문 안내문에도 친일 행적은 빠져 있었다. 두 학교를 두고는 "알고 보면 민영휘의 고등학생, 안유풍의 고등학생"이라고 표현했다.
환수 사정권에 든 6만평
친일재산 환수의 법적 절차가 다시 움직인다. 친일재산국가귀속법은 5월 7일 국회를 통과했다. 6월 2일 공포됐고, 6개월 뒤인 12월 2일 시행된다. 2010년 활동을 멈췄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부활한다. 환수 대상에는 친일재산은 물론, 이를 처분해 챙긴 대가까지 포함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친일재산 환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다시 마련됐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12월 출범한다.
뉴탐사 취재진이 민영휘 묘를 찾은 날, 공교롭게도 법무부에서는 조사위 설립준비단 발족식이 열렸다. 취재진은 환수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용만 의원실에도 이 묘소를 알렸다.
환수의 길은 등기를 들여다보면 보인다. 이 땅은 민영휘 한 사람이 아니라 법적 장자 민형식과 안유풍 소생인 민대식·민규식·민천식의 이름으로 사정됐다. 민형식은 민영휘의 자작을 물려받았고, 정부가 공식 인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그의 지분은 환수 대상이 된다. 민규식도 친일 행적이 있어 환수 가능성이 높다. 지분이 국가로 넘어가면 무덤 역시 파묘를 피하기 어렵다.
청주 상당산성에서는 이미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국가로 귀속된 땅에 묘를 쓸 수 없어 안유풍과 민대식, 민천식의 묘가 모두 파묘됐다. 충북인뉴스 김남균 기자가 이끄는 '친일청산 마적단'이 그 토지를 추적한 결과였다. 정작 민영휘 본인의 무덤만 춘천에 그대로 남아 있다.
민영휘 일가는 해방 뒤에도 힘을 잃지 않았다. 휘문과 풍문 학원 이사장직을 대물림했고, 증손자 민헌기는 서울대 의대 교수를 지냈다. 친일재산 환수에는 후손들이 줄곧 소송으로 맞서 왔다. 묘막의 문화재 지정과 안내판 표기를 손질할 권한은 강원도와 춘천시에 있다. 우상호 강원도지사와 육동한 춘천시장이 이를 어떻게 다룰지가 남은 변수다.
역사까지 손봤다는 가문
배 강사의 이야기는 무덤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여흥 민씨 삼방파가 막대한 재력으로 역사 자체를 손봤다고 봤다. 인현왕후를 선, 장희빈을 악으로 새긴 대중의 기억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배 강사는 1980년대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을 그 통로로 지목하며 "완벽한 역사적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인현왕후가 바로 민영휘 가문의 선대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검증이 더 필요한 해석이다. 다만 그는 "민영휘만 보면 조선 후기를 통째로 말아먹은 집안"이라고 했다.
조사위는 12월 출범한다. 민영휘의 무덤은 아직 춘천 장학리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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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가치관은 사람들의 생각이 한꺼번에 바뀌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낡은 세대가 물러나고, 다른 생각을 품은 젊은 세대가 그 자리를 메우면서 서서히 방향을 바꾼다. 가치관의 변화는 설득의 결과라기보다 세대교체의 결과다.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의 가치가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 이동하는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피파 노리스는 '뱀 뱃속의 쥐'라는 인구학적 비유로 설명했다. 비단뱀이 삼킨 쥐는 곧바로 소화되지 않는다. 뱀의 몸통을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거대한 꿈틀거림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청년 세대가 품은 가치관은 세월과 함께 사회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미래의 정치 지형도 서서히 바뀐다. 정치는 세월을 등에 업고 세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20·30대 젊은이들은 이제 40·50대가 됐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개혁과 인권의 가치를 자신의 시간 속에 새겼다. 몸은 늙어가도 청년기의 신념은 쉽게 늙지 않는다. 이들은 지금 진보 진영을 떠받치는 가장 두터운 기둥이 됐다. 민주당이 누리는 정치적 우위는 상당 부분 이 세대가 만들어낸 인구학적 흐름 위에 서 있다.
2030남성, '보수화' 아닌 '진보 이동 차단'
문제는 그다음이다. 몸통을 지나고 있는 쥐는 머지않아 꼬리로 이동한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2030세대는 앞선 세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깊은 성별 균열이 세대 내부를 가르고 있다. 2025년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58%는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 반면 20대 남성의 지지는 24%에 그쳤다. 내란과 탄핵이라는 거센 정치적 격랑을 겪고도 김문수·이준석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이런 흐름은 2026년 6·3 지방선거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현상을 단순히 '청년 남성의 보수화'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윤석열 정부에 일찌감치 등을 돌렸다. 탄핵에도 찬성했다. 그런데도 진보로 향하지 않았다. 이들의 선택은 '보수화'라기보다는 '진보로의 이동 차단'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이 세대 남성에게 깊이 새겨진 것은 내란 사태가 아니다. 그보다 앞선 10년의 생존 경쟁과 젠더 갈등이었다. 내란이 닥쳤을 때 그들은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굳어 있었다. 헌정질서를 뿌리채 흔든 충격적 사건도 그 틀을 깨뜨리지 못했다.
내란 이후 탄핵 광장의 풍경도 굴절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응원봉의 거리는 여성의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흐름에 합류하는 게 마치 젠더 갈등의 다른 편에 서는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정치적 선택은 깊게 패인 갈등의 물길을 따라 흘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를 읽는 핵심 기준이 달라진 점이다.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공정·능력·역차별'이 새로운 눈금이 됐다. 치솟는 집값, 치열한 취업 경쟁, 계층 이동의 어려움, 병역 의무와 젠더 갈등이 청년들의 시간을 채웠다. 많은 청년들은 민주당이 자신들이 겪는 불공정과 박탈감보다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을 앞세운다고 받아들였다. 자신의 삶이 정치의 언어에서 빠져 있다고 느끼며 이들은 점차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30대 여성, '가치 투표'와 '자산 투표'의 충돌 시작
주목할 대목은 2030 여성에서도 미세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는 점이다. 6·3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여성의 56.7%는 정원오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1년 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얻은 58.1%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3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는 51.3%에 머물렀다. 가까스로 우위를 지켰으나 대선 때(57.3%)보다 6%포인트가량 내려앉았다.
30대는 삶의 무게가 달라지는 나이다. 결혼과 출산, 주택 구입, 자녀 교육 등과 맞닥뜨리는 시기다. 정치적 가치만이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가 삶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평등과 인권,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믿음은 여전해도 아파트 가격, 은행 대출, 자산 형성에도 매우 민감해진다. 정치적으로 '가치 투표'와 '자산 투표'가 충돌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30대 여성의 표심은 변화의 첫 징후일지 모른다. 진보의 가치를 품고 뱀의 몸속으로 들어온 쥐가 생애주기와 자산이라는 길목을 지나며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그 변화는 작다. 그러나 오늘의 미세한 균열은 내일의 정치 지형이 된다. 여성이 민주당의 영원한 지지 기반으로 남을 것이라는 기대는 오산에 가깝다.
코스피 호황도 양날의 칼이다. 자산시장은 가진 사람의 재산을 불려준다. 그러나 종잣돈 없는 청년에게 호황은 남의 잔치다. 번쩍이는 주가의 불빛은 자신의 빈손만 더 선명하게 비출 뿐이다. 상대적 박탈감의 청구서는 결국 정부여당에게 돌아온다. 만약 주가 오름세가 갑자기 꺾여 장세가 크게 흔들리면 상황은 더욱 무거워진다. 뒤늦게 빚을 내 올라탄 청년들이 시장의 흔들림 속에서 상처를 입는다면 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인구학적 우위의 종말
한국 정치의 내일은 20·30대가 결정한다. 그들은 민주주의보다 공정을, 이념보다 자산 형성 기회를, 역사보다 미래를 더 절박하게 바라본다. 지금의 성별 균열과 박탈감이 한때의 청년기를 지나 세대의 기억으로 굳어진다면, 민주당이 누려온 인구학적 우위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진보 정치는 이제 오래된 언어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민주화의 기억만으로 미래를 설득할 수도 없다. 청년들의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정치적 문법'을 세워야 한다.
첫째, 민주주의와 공정이 만나야 한다.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묻고 있을 뿐이다. 절차와 제도만으로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공정한 출발, 공정한 경쟁, 다시 일어설 기회를 민주주의가 만들어준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삶 속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을 '공정 대 반칙'이라는 새로운 전선으로 바꾸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의 향수로만 들릴 것이다.
둘째, 청년들에게 자산을 일굴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청년들이 느끼는 박탈감의 뿌리는 스스로 삶을 일으킬 기회를 잃었다는 데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하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주택과 금융, 창업과 노동시장 전반에서 누구나 자산 형성의 사다리 첫 칸을 디딜 수 있어야 한다. 자본시장 호황도 그 열기가 청년의 삶을 데우지 못한다면 빈 껍데기 호황에 불과하다.
셋째, 청년의 상처는 물질적 보상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세대'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어떤 지원도 마음을 되돌리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돈을 넘어선 '인정의 정치'다. 청년들의 불안과 분노를 사회적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인정의 정치'란 분노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원천을 함께 응시하며 해법을 찾는 일이다. 다음 세대를 가르치려는 정치보다,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정치가 더 오래 살아남는다.
넷째,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정치는 젠더 갈등에 너무 오래 사로잡혀 있었다. 여성의 권익과 성평등은 여전히 지켜야 할 가치다. 그러나 사람을 성별로만 나누기 시작하면 함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공정은 누구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다. 그 질서가 흔들리면 갈등은 끝없이 되풀이된다. 집을 구하는 일, 일자리를 얻는 일, 불안정한 노동을 견디는 일,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남성과 여성을 함께 짓누르는 삶의 무게다. 정치는 그 무게를 함께 덜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갈라졌던 두 마리의 쥐가 다시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미래의 쥐'를 둘러싼 장기전
마지막으로, '미래의 쥐'를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는 선거를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시간은 선거보다 훨씬 길다. '뱀 뱃속의 쥐'가 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이제 막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으며 자라느냐에 따라 정치의 미래가 달라진다. 미래를 바꾸려면 지금부터 다음 세대의 마음에 씨앗을 뿌려야 한다.
비단뱀의 뱃속에서 젊은 쥐는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 정치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시간이 데려올 문제를 먼저 보고, 길을 바로잡는 일이다. 2028년 총선과 그 이후의 대선은 권력을 겨루는 승부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 어떤 가치를 남길 것인지를 묻는 시간이다. 허락된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뱀은 오늘도 앞으로 나아간다. 몸속의 쥐도 멈추지 않는다.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88만원 세대, 이태백, N포세대.
지난 20년간 청년을 부르는 이름은 계속 변화해왔다. 이 이름들에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위험이 담겨 있다. '88만원 세대'가 저임금 노동과 비정규직 문제를 드러냈다면, '이태백'은 높은 청년실업률과 학교-노동시장 이행의 실패를 보여주었다. 'N포세대'는 청년의 일자리 문제가 주거, 결혼, 출산, 삶의 전망 전체로 확장되었음을 투영한다. 그리고 2026년, 청년은 '전업자녀'로 불린다. 청년 고용문제가 악화하면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청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녀는 부모의 경제적 보호 속에서 역량 축적 시간을 확보하고, 부모는 가사나 돌봄 부담을 덜고 고령화에 대비하는 부모-자녀 상호이익을 얻는 세대가 나타났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책 를 통해 이러한 새로운 가족 유형을 ‘전업자녀’라고 이름 붙였다. ⓒ한국경제신문
청년문제의 핵심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바로 일자리에 안착하지 못하는 노동시장 이행의 어려움이다. 15-29세 청년 고용률은 23개월 연속으로 하락하고 있고, 졸업 후 첫 취업에 소요되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2025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이 최종학교를 졸업하고 첫 일자리를 얻는데 걸리는 평균 기간은 11.3개월이며, 1년 이상 걸린다고 응답한 청년은 31.3%에 달한다(국가데이터처, 2025).
20-39세 청년 중 특별한 사유없이 구직활동을 하거나 취업하지 않은 '쉬었음' 청년은 65만 4천 명(2026년 4월 기준)으로, 2003년 동월(29만 8천 명)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청년 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하는 것을 고려하면 수치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많은 청년이 쉬었음 상태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쉬었음 인구 월별 변화 추이.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 2003-2026
여러 실증연구들은 청년의 노동시장 이행이 누가 더 오래 준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지원할 가족자원이 충분한지에 따라 달라짐을 보여준다.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청년은 취업을 미루고 좋은 일자리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출생 코호트일수록 20대에 경험하는 학교-노동시장 이행은 더 길고 불안정하며 비선형적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불리한 가족배경을 가진 청년이 더 분절적이고 불안정한 이행을 경험한다. 즉,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청년은 생계를 위한 조기 취업을 유예하고 더 긴 탐색 기간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가족자원이 부족한 청년은 저숙련·저임금 일자리로 더 빠르게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청년의 노동이행 어려움이 사회구조적 불평등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 노동시장 이행의 격차. A. 1969-1985년생이 19~29세에 좋은 일자리(중위임금 이상 상용직 일자리)를 가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버지 교육수준(가족배경)에 따른 차이가 최근 코호트에서 커진다. B. 1980-1996년생이 18-34세 코호트별 정규직 이행 비율 변화이다. 최근 코호트에서 아버지 직업이 일반기술/단순노무직인 경우 정규직 이행확률이 크게 감소하는 것을 보여준다.변금선(2018), 하은솔(2026)이 한국노동패널자료를 이용해 분석.
AI에게 밀려나는 청년들...부모도 버팀목 되기 어렵다
AI는 청년 노동시장 이행을 다른 방향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기업은 신입사원보다 경력직을 선호하고, AI는 이러한 흐름을 더 거세게 만든다. AI가 모두의 일자리를 똑같이 줄이는 것이 아니라, 경력 초기 청년의 일자리부터 대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규입사자인 근속 1년 미만자 중 청년층(15~29세) 비중은 2006년 33.6%에서 2025년 25.2%로 하락했다(경총, 2026). 최근 3년간 청년층 일자리는 21만 1천 개 줄었는데, 이 중 20만 8천 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감소했다(한국은행, 2025).
▲신규채용 중 청년층 비중 추이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
▲AI 노출도에 따른 연령대별 고용증감국민연금공단 ‘지역별 고용조사’
AI 시대에는 청년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지금까지는 가족자원이 청년에게 더 긴 준비기간을 제공하는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AI가 청년의 첫 일자리 자체를 줄이는 상황에서는 부모의 지원도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전략적으로 이행을 유예하던 중상층 가정의 청년조차 좋은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지고, 더 많은 청년이 원하지 않는 '쉬었음' 상태에 놓일 수 있다. 현행 미취업 청년을 위한 정책은 대부분 부모 혹은 본인의 소득과 자산을 자격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별하고, 구직활동과 특정 프로그램 참여를 조건으로 지원한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고 청년 다수가 불안정한 이행의 단절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별적 정책은 오히려 청년 사각지대를 넓힐 뿐이다.
AI와 경쟁하는 첫 세대, 청년을 위한 정책 혁신이 필요하다
AI 시대의 청년정책은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청년 누구나 안정적으로 미래를 탐색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보편적 정책을 확충해야 한다.
▲88만원 세대부터 이태백, N포세대까지. 지난 20년간 청년을 부르는 이름은 계속 변화해왔다. 이 이름들에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위험이 담겨 있다. 구글AI스튜디오 생성형 이미지
첫째, 보편적인 청년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현재 미취업 청년을 위한 정책은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6개월간 월 50만 원의 수당을 지원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한 단기 현금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파고를 버틸 수 있도록 청년 누구나 기본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과 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
둘째, 청년이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청년이 AI 개발자나 로봇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 해결과 관련해 청년이 일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 가치를 창출하는 한편, 청년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구상하는 '청년 참여소득 시범사업'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셋째, 산업전환 과정에서 초과이익을 얻는 기업이 사회초년생을 위한 신규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인공지능 전환(AX) 과정에서 청년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불가피한 변화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청년채용을 미래인재를 키우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관련 경력이나 전공자가 아니어도 일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숙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AI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판단, 관계, 책임, 창의성은 어떻게 기를 것인가. 청년이 기술에 적응하도록 요구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기술이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의 능력과 사회적 역할을 키우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AI 시대, 우리는 청년을 어떻게 호명하게 될 것인가. AI와의 경쟁에서 설 자리를 빼앗기고 노동시장 바깥으로 밀려나는 청년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
▲변금선 서울연구원 인구변화대응연구센터장본인
필자 소개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을 거쳐 2020년부터 서울연구원에서 청년, 인구, 복지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지역사회보장위원회 위원,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청년신진분과위원장, LAB2050 연구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생애과정 빈곤과 불평등 관점에서 청년, 소득보장, 그리고 AI돌봄과 복지를 연구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에게 복지정책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손쉽게 설명해준 <복지, 그게 뭐예요?>(사계절)을 쓰기도 했습니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전상석(全尙錫, 1929~2001) 항목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화는 그가 평생 사직서를 품고 다녔다는 것이다. 친구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유신헌법 시절 대통령긴급명령 조치에 불만하여 골프공에 무엇 무엇이라고 쓴 공을 치고 울분을 달래었"으며, 늘 사직서를 써서 갖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직서는 30년 가까운 법관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바깥 구경을 하지 못했다. 속으로는 울분을 삼키면서, 손으로는 사형을 선고하고 긴급조치를 집행했다. 이것이 전상석이라는 인물의 핵심적인 비극이다.
1929년 서울 아현동 출생, 양정중학교에서 법조계로
전상석은 호적상 1929년 9월 4일(실제로는 1928년 음력 7월 14일)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났다. 미동초등학교, 양정중학교를 거쳐 1952년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54년 제6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군 법무관 시절, 거구의 군단장이 얼굴을 때리면서까지 부정처분 사건 피고의 석방을 명령했지만, 그는 "군법회의 재판도 거쳐야 한다"며 끝까지 명령을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권력 앞에서 굽히지 않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전상석(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명판결과 오욕' 사이를 오간 법관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이 떠오른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 집권 초기까지 활동한 일부 법관들은 처음에는 인권을 옹호하는 진보적 판결을 내렸으나, 체제가 강고해지면서 점차 그 체제의 도구로 변해갔다. 학자들은 이를 "점진적 동화(gradual accommodation)"라 부른다. 단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타협들이 쌓여 결국 큰 타락에 이르는 과정이다. 전상석의 30년이 정확히 이 궤적을 그린다.
1970년, "기밀이 아니다"라는 명판결
전상석의 이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1970년 동양통신 필화사건이다. 국방부장관이 국회에서 공개한 내용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기자들이 군사기밀 누설로 기소됐는데, 전상석은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된 공연한 사실은 기밀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언론은 국가안보와 언론자유의 한계에 대한 '획기적' 판결이라 평가했다.
전상석.(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69년 박노수·김규남 사건, 사형선고, 그리고 43년 만의 무죄
같은 시기 전상석은 유럽거점 간첩단사건 1심 재판장으로 박노수와 김규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중앙정보부가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이었다. 박노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학박사였고, 김규남은 현직 공화당 국회의원이었다. 1972년 7월, 두 사람은 재심이 진행 중이던 와중에 사형이 집행됐다. 2015년 12월, 대법원은 사형 집행 43년 만에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사과와 위로의 말씀과 함께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명복을 빌 대상이 이미 43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
이른바 ‘유럽간첩단’사건으로 재판 받는 피고인들. 오른쪽에서 맨 끝이 박노수. 그 옆이 김규남이다. ⓒ 진실위 자료사진
1971년 사법파동, 눈물 흘리던 리더
전상석 이력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71년 7월 사법파동이다. 검찰이 판사 3명에 대해 향응수수를 빌미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화가 난 판사들은 성격이 화통하고 리더십이 강한 형사8부 부장판사 전상석의 방에 모여들었다. "이럴 바에 우리 다 쥐약 먹고 죽어버리자"는 말까지 나왔다. 판사들이 문을 잠그고 커튼을 친 채 대책을 논의했고, 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이 들어갔을 때 전상석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사표를 썼다. 전국에서 153명의 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는, 사법사상 초유의 집단행동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1971년 사법파동을 보도한 ㄱ 해 7월 29일 조선일보 1면(나무위키)
유신 이후, 승승장구하는 '체제수호의 첨병'
그러나 사법파동은 허무하게 끝났다. 그리고 1972년 유신 선포 이후, 전상석은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사법파동 주역이었던 유태흥(1919~2005)이 형사지법원장으로 영전한 것처럼, 전상석도 체제의 일부가 됐다. 그가 사표를 썼던 그 손으로, 이제는 재일 유학생 강종헌과 김철현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들은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됐고,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김철현은 2026년 현재도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적었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3·1민주구국선언, "교활한 이중인격자"
1976년 명동성당 3·1민주구국선언 사건 1심 재판장으로서 전상석은 김대중(1924~2009), 윤보선(1897~1990), 함석헌(1901~1989), 문익환(1918~1994)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변호인단 26명이 항의하며 전원 사임했다. 피고인이었던 함세웅 신부는 그를 "아주 교활한 이중인격자"라고 평가했다. 변호사 홍성우는 다른 시선으로 "통이 큰 분"이라고 회고했지만, 같은 사건을 겪은 두 사람의 평가가 이렇게 갈린다는 것 자체가 전상석의 복잡한 양면성을 보여준다.
1976년 명동성당 3·1민주구국선언 사건 당시 함석헌. 이희호, 김대중.(함석헌기념사업회)
전두환 정권, 그리고 변호사가 되어서도 전두환을 변호하다
대법원 판사가 된 전상석은 1983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에서 문부식과 김현장의 사형을 확정했다. 전두환이 곧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1986년 대법원판사 재임명에서 탈락한 후, 그는 변호사로서 전경환(전두환의 동생) 새마을비리 사건과 장세동 사건을 변호했다. 그리고 1996년, 전두환 내란재판에서 전두환의 변호인으로 나서 5·18특별법을 위헌이라 주장하며 재판부와 격렬히 충돌했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전상석에 대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고 길게 적어 감사를 표했다.
전상석(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점진적 동화'를 겪은 법관들의 역사는 가장 위험한 경고로 남는다. 한 번에 타락하는 사람은 드물다. 작은 타협들이 쌓여 큰 타락이 된다. 전상석은 사법파동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그 직후 유신체제의 승진 사다리를 올랐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전상석의 사직서를 떠올렸다. 평생 품고 다녔지만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그 종이가, 한국사법부의 가장 슬픈 상징으로 남아 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피조물은 처음부터 잔혹한 악마가 아니었다. 인간과 소통하고 선의를 나누고 싶어 했던 선량한 마음을 품은 존재였다. 그러나 기괴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괴물’이라는 낙인이 찍한 순간 피조물은 절망하며 외친다. “너희가 나를 악마라 부르니, 행동으로 내가 악마임을 증명해주마.” 창조주를 향한 복수의 화신으로 전락해 버린 우리의 주인공은 외부의 지적과 비판을 흡수한 존재가 급기야 원래의 모습을 비틀어 바깥에서 예언한대로 구체화되고 마는 역설을 보여준다.
1944년 탄생한 국제통화기금(IMF)도 본래의 목적을 이탈해 정착한 케이스다. 당초 IMF는 일시적인 외환위기에 직면한 국가들에게 자금을 융통하여 세계 경제의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순수한 금융 소방수의 목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제3세계와 비판적 경제학자들이 “저 기구는 미국 금융자본의 대리인이자 약소국 경제를 수탈하는 도구”라고 거칠게 비판하자, IMF는 생존 과정에서 아예 그 비판의 틀을 체화한다. 냉전기를 거치며 IMF는 피지원국에 미국식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가혹한 ‘월스트리트의 칼날’로 완벽히 변질된다.
1947년 부처 간 정보 분석을 조율하기 위한 순수 연구·분석 기구로 출범했던 미 중앙정보국(CIA)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해외 정권을 전복하고 독재자를 육성하는 공작 괴물이 될 것”이라는 의회의 우려와 의심에 부딪히자, CIA는 자신들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아예 그 비판적 예측 속으로 뛰어들어 비밀공작의 사령탑이 되었다. 대화와 타협의 중재자였던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단이 전쟁의 압박 속에서 결국 독재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소멸한 서사 또한 순수한 목적이 특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파멸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유사한 역설의 그림자가 지금 외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별한 행보 위에 드리워져 있다. 외무부가 지난 6월 5일 출범시킨 ‘한·중동 포괄적 경제협력 태스크포스(TF)’를 둘러싼 환경이 정확히 과거 사례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나 명분으로나 TF의 출범 자체는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전략적인 포석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미국과 이란 간의 종전 논의가 가시화되는 국면에서, 중동 지역의 전후 재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의 진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은 국가 경제적 실리를 최우선으로 둔 대단히 갸륵한 기획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지난 6월 16일 프랑스 에비앙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 만찬에서, 주최국과의 치밀한 사전 교섭 끝에 우리 대통령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바로 옆자리에 앉히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것 역시 모처럼 있는 외무부의 ‘득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중동 TF’가 과연 당초의 ‘순수한’ 설립 취지에 따라 움직일는지 여부에 대한 의심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이익에 봉사해 온 외무부의 전력 때문이다. 그리고 한 시간 반 동안 나란히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트럼프가 이란 재건자금 3천억 달러에 관해 이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합리적인 추론 때문이기도 하다.
자주연합을 비롯한 진보 단체들이 연이어 내놓는 비판과 의심의 골자는 명확하다. 이번 중동 경협 구상이 진짜 경제적 목적이 아니라 트럼프가 던진 거대한 ‘중동 청구서’를 조용히 대납하기 위한 사전 위장막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를 단순한 음모론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트럼프의 전형적인 비즈니스 문법에 있다. 트럼프는 사실상 미국의 ‘전쟁 배상금’을 우방과 동맹국들에게 전가하려고 노골적으로 압박해 왔고, 그 분담의 주체로 한국이 강력하게 거론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시기적으로 TF가 에비앙 만찬 이전에 먼저 신설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의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초의 순수한 의도와 전략적 기획이 에비앙 만찬이라는 ‘결정적’ 국면에 처해 ‘트럼프의 압박’이라는 덫에 걸려들었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수 TF가 트럼프에 의해 오염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만찬 자리에서 조선의 핵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현실론’적 접근법을 트럼프가 수긍하는 모습을 보일 때 이 대통령으로서는 그러한 ‘긍정적 고갯짓’을 트럼프가 좋아하는 금전적 ‘한 방’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싶었을 가능성도 있다.
당초 6월 5일 TF 출범 당일 외무부는 보도자료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안정화와 고부가가치 신산업 협력이라는 원론적인 목적만을 전면에 내세웠었다. 처음에는 전후 재건 시장의 선점이니 우리 기업의 진출 발판 마련이니 하는 얘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6월 22일 조현 외무장관은 직접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이란 간 MOU 타결 가능성이 거론되기 전부터 선제적으로 대비해 왔다”면서, TF의 핵심 임무를 ‘우리 기업들의 중동 피해 복구 사업 참여’와 연결 지어 홍보했다. 진짜 우리기업 지원이라면 문제는 없다.
문제의 대목이 바로 프랑켄슈타인과 IMF와 CIA의 역설이다. 우리 기업의 중동 진출과 공급망 안보라는 국익을 위해 도출된 기획이 외부의 압박과 “결국 미국의 대리 기구”라는 지탄에 직면해 끝내 비판자들이 우려하던 최악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바꾸어버릴 가능성 말이다. 관료제적 속성상 상부의 지시와 미국의 강요가 지속되면 TF는 당초의 주체적인 경협 기획들을 슬그머니 뒤로 미뤄두고, 속으로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겉으로는 ‘국익을 위한 투자’처럼 그럴듯하게 장식하려고 고심하는 미국 ‘앞잡이 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론 그러한 굴절된 프레임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왜 우리가 타국이 일으킨 못된 전쟁의 뒷수습을 대신 짊어져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미국의 채무대납자라는 말인가.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환심을 사는 일종의 ‘페이스메이커’ 비용으로 이 재건자금을 대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기도 한다. 국익을 거래의 제물로 바치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트럼프의 외교는 선불로 지불한 의리에 보답하는 법이 없다. 우리가 먼저 저자세로 청구서를 받아드는 순간 동맹이라는 이름의 약탈적 요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뿐.
이제 외무부의 중동 TF는 자신이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아님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비판과 압박에 밀려 결국 예언된 괴물로 타락하지 않으려면 당초 세웠던 갸륵한 경제적 초심을 날카롭게 유지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미국의 백지수표가 아니다. 미국의 부당한 재정 전가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철저히 우리 기업의 중동 진출 지원과 국익 확보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외무부는 모처럼 얻은 ‘득점’을 미국의 치다꺼리에 날리지 말 일이다.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정신을 다시 깊이 새겨야 한다. 끝.
2024년 6월22일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해군 제공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에 반대하는 진영은 미군이 전작권을 넘겨주면 “전쟁이 나도 미군이 한국을 도우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전쟁 때 국가 존망의 위기를 미군 등의 도움으로 넘긴 기억 때문에 이런 우려가 나온다.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에는 전쟁 등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 전투부대와 주한미군, 미국에서 오는 증원군을 하나로 묶어 지휘하는 작전계획이 있다. 전작권 환수 뒤 연합사가 해체되면 이 작전계획이 사라지고 전시증원전력도 없을 것이라는 게 전작권 환수 반대 쪽에서 펴는 주요 논리다.
전시증원전력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이 기존 2만8천명 규모의 주한미군에 더해 한반도 전장에 보내는 병력과 무기체계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일부에서는 시차별 부대전개제원(TPFDD)에 △육해공군 및 해병대를 포함한 병력 69만여명 △5개 항모전투단 등 해군 함정 160여척 △전투기 등 항공기 1600여대 등이 미군 전시증원전력 규모로 정해져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시에 미군이 얼마나 지원되는지는 군 관계자들도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이다.
한 군 관계자는 한겨레에 “미국이 전시증원전력의 상세한 내용을 우리에게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미군 현역 전체 병력 규모가 130만명가량인 상황에서 이 규모의 절반이 넘는 ‘전시증원전력 69만명’이라는 숫자는 현실적이지 않다. 미 전체 항모전단이 11개로 전시증원전력 항모전단 5개는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한국군 내부에서도 “69만명 규모 등 대규모 전시증원전력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미국의 전략도 과거와 달라졌다.
증원전력 69만명이라는 것은 중동과 한반도에서 동시 전쟁 발발 시 북한이 전쟁 목적을 달성하기 이전에 저지·격퇴한다는 ‘윈윈 전략’에 따른 것이다. 미국 행정부에서 이 전략은 1990년대 초반에 형성돼, 2012년 폐기됐다.
현재 미국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하며 있는 주한미군도 필요하면 한반도 밖으로 내보내겠다고 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북한 억제에 대한 ‘주도적 책임’을 한국에 맡기고 미국의 역할은 ‘결정적이지만 제한적인 지원’으로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 주도, 미국 지원’으로 한반도 방어 구조가 재편되고 있어 전작권 환수와 무관하게 미국의 대규모 전시증원전력은 실체가 불투명해졌다.
24일 저녁 북부서 규모 7.5 '이중 지진'…수도 카라카스 건물 붕괴·시몬 볼리바르 공항 폐쇄
김효진 기자 | 기사입력 2026.06.25. 18:30:20
베네수엘라 북부에 126년 만에 가장 강한 지진이 발생해 최소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4일 오후 6시 4~5분께 베네수엘라 북부에서 39초 간격으로 규모 7.2 및 7.5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첫 지진은 야라카이주 산펠리페 인근에서, 두 번째 지진도 인근 유마레 근처에서 발생했다. 첫 지진 발생 깊이는 20km, 두 번째 깊이는 10km였다. 지질조사국은 이 이중 지진의 첫 지진을 전진, 다음 지진을 본진으로 설명했다.
실종자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AP> 통신을 보면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은 지진 여파로 25일 새벽 기준 최소 32명이 숨지고 7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로드리게스 대행은 지진으로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이 피해를 입어 폐쇄됐고 카라카스 지하철 및 천연가스 서비스도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또 학교 수업도 며칠간 중단될 예정이라고 했다. 일부 학교 건물은 대피소 및 기부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미 지질조사국 자료를 보면 베네수엘라 기준 이번 지진은 1900년 10월29일 규모 7.7로 추정된 카라카스 지진 뒤 126년 만에 가장 큰 지진이다. 지질조사국은 베네수엘라 북부는 과거 큰 지진이 발생해 온 지역이지만 이번 지진 발생 지점 250km 이내에선 지난 100년간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7번만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 중 2번은 지난해 9월 연이어 발생했다.
미 지질조사국 "사망자 1만~10만 이를 가능성 44%"
이번 지진 사망자가 1만 명을 넘길 확률이 상당하다는 추정이 나와 우려가 커진다. 미 지질조사국은 사망자가 1만~10만 명에 이를 가능성이 44%, 10만 명을 넘길 가능성도 30%로 봤다. 사망자 수가 1000명~1만 명에 이를 가능성은 22%로 봤다. 조사국은 "이 지역 주민들이 전반적으로 지진에 취약한 구조의 건물들에 거주 중"이라고 설명했다.
카라카스는 큰 혼란에 빠졌다. <AP>는 카라카스 시민들이 건물 밖으로 대피해 거리로 나와 있었고 벽 전체가 무너져 가구가 드러난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어떤 이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반려동물을 꼭 껴안고 있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카라카스 바루타 지구에서 건물 두 채가 붕괴해 3명이 사망했다고 지역 당국이 밝혔다. 차카오 지구에서도 1명이 사망하고 건물 4채가 완전히 붕괴됐다고 한다. 카라카스 동부에 사는 코로 마르티네스(56)는 통신에 "엄청난 굉음이 났고 집 안 물건들이 떨어져 내렸다. 냉장고 안 물병도 쏟아졌다. 이런 건 처음 겪어 본다"고 말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북부 해안 라과이라주의 경우 정확한 사상자 규모가 파악되지도 않은 상황이다.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초기 사상자 집계에 라과이라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호르헤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미 CNN 방송에 이 지역에서 건물 15채가 붕괴한 걸로 보고됐다고 전했다. <로이터>를 보면 24일 밤 라과이라의 한 병원 밖에 수많은 부상자들이 피를 흘리며 모여 있었고 붕괴한 건물에선 화재가 발생했다.
폐쇄된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도 라과이라에 위치한다. <로이터>가 공유한 베네수엘라 전 국회의원 윌머 아수아헤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지진이 공항을 강타한 순간 천장에서 형광등이 떨어지고 자욱한 연기가 피어 오르자 사람들이 긴급히 대피한다. 공항 천장이 거의 무너져 내리고 바닥이 잔해로 뒤덮인 광경도 촬영됐다.
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상당할 전망이다. 미 지질조사국은 이번 지진으로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 2~20%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조사국은 경제적 손실 규모가 100억~1000억달러(15조~154조원)에 달할 확률을 39%, 1000억달러를 넘길 가능성도 30%로 예측했다.
다만 에너지 시설 피해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주요 원유 생산지인 마라카이보 호수 인근 마라카이보 민방위 당국은 부상자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엘팔리토 정유소 직원도 피해가 없었다고 했다.
각국 지원 의사 표명…트럼프 "새 친구들 위해 나설 것"
각국이 지진 피해 지원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의 새롭고 훌륭한 친구들을 위해 함께 하겠다"며 "미국은 기꺼이 도울 준비가 돼 있고 능력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을 전격 생포한 뒤 후임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과 협력 관계를 유지 중이다.
인근 중남미 국가들도 나섰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외교부에 베네수엘라 지원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구조대 및 구급대원 300명, 의약품 등을 카라카스로 보낼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도 인도적 물품 즉각 전달이 준비됐다고 밝혔다.
스페인 외무부도 성명을 내 "형제 같은 베네수엘라 시민들에 전폭적 연대와 지지를 표한다"며 "필요한 모든 긴급 구호 물자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는 19세기 초 스페인 식민지배에서 독립했다.
한편 <AP>를 보면 25일 오전 일본 혼슈 북부 이와테현 동쪽 바다에서 규모 7.2 지진이 발생했지만 일본 기상청은 지진해일(쓰나미) 위험은 없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전 국회의원 윌머 아수아헤가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의 지진 당시 모습. ⓒAFP=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에서 지진으로 부상을 입은 이들이 병원 밖에 모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선은 핵보유국이다. 오래된 ‘핵 가질 결심’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이 아니다. 미국의 전술핵은 1958년부터 한국에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의 핵은 미국의 핵위협, 적대정책, 체제전환 압박, 군사계획, 금융봉쇄가 장기간 누적된 결과물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6자회담에 일말의 기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은 작계 5029에 따른 주한미군의 대북 압박 강화, 전략적 유연성에 기초한 한국의 전초기지화, BDA 자금동결 등을 보면서 기대를 접었다.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판을 바꾸는 것만이 조선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
조선은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했다. 팀스피리트 훈련과 IAEA의 특별사찰 요구를 탈퇴 이유로 들었다. 6월에는 미국과의 협상 끝에 탈퇴 ‘효력 발생’을 유보했다. 1994년 봄 조선이 영변 원자로에서 사용후 연료봉을 꺼내 재처리할 가능성이 커지자 펜타곤은 군사옵션을 검토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미국은 10월 조선은 제네바합의를 체결한다. 조선은 영변 5MW 원자로, 재처리시설, 50MW, 200MW 흑연감속로 건설을 동결한 다음 최종 해체하기로 했고 미국 측은 KEDO를 통해 경수로 2기와 연간 중유 50만 톤을 제공하기로 했다.
2001년 부시 행정부는 대북정책 재검토에 들어갔고 2002년 조선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미국의 핵태세 검토와 선제공격 분위기로 조선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해 경계심을 높였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한 후 조선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를 조선이 시인했다고 주장했지만 조선은 부인했다. 11월 KEDO는 중유 제공을 중단했고, 12월 조선은 제네바합의로 동결됐던 원자로와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하고 IAEA 봉인과 감시 장비를 제거했다. 제네바합의의 붕괴다.
조선은 2003년 1월 NPT 탈퇴를 선언했고, 2월에는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7월에 조선은 8,000개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미국 측에 통보했다. 이때부터 조선은 ‘핵 억제력’을 공공연히 거론하기 시작했다. 제네바합의가 막고 있던 플루토늄 경로가 다시 열렸고, 북핵은 협상 카드에서 실제 무기화 단계로 더 가까이 이동했다. 2003년 8월 중국 주재로 첫 6자회담이 열렸다. 조선은 불가침조약, 관계정상화, 경수로·중유·식량 지원을 요구했고, 그 대가로 핵시설 폐기와 미사일 시험, 수출 중단을 제안했다.
이 무렵 한국이 대북정책에서 지렛대를 행사하려 하다가 미국의 동맹 교육에 압살당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3년 9월 25일 유엔총회 계기에 윤영관 외무장관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회담한다. 언론 폭로에 따르면 윤 장관은 파월 장관에게 “미국이 북핵문제에서 양보하지 않는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검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한다. 파월은 “그것은 동맹국 간에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어설픈 전략으로 개망신한 사례다. 이라크 파병 거부 따로, 대북 입장 완화 요구 따로 했어야 했다.
한미연합사는 한반도 전쟁 발발시 미국이 병력 약 69만 명까지 증원한다는 작계 5027에 이어 2004-5년 당시 조선 정권 붕괴, 쿠데타·내전, 대규모 탈북 등 급변사태에 대응한다는 차원의 작계 5029를 작성하려고 시도했다. 아울러 미국은 주한미군의 증원과 역내 출동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중국은 반발했고 2004년 11월 라오스 개최 ASEAN+3 때 노 대통령은 원자바오 총리에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생각은 전혀 달랐다.
조선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단순한 병력 조정으로 보지 않았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한미군을 한반도와 동북아 어디에나 투입할 수 있는 기동군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보았다. 2005년 5월 조선중앙통신은 미국 고위관리들의 발언을 들어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비상사태 때 세계 각지의 미군을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게 하는 구상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에게 그것은 감군이 아니라 압박의 방식 변경이었다. 병력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더 넓은 전장과 더 큰 규모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정확한 평가였다.
조선은 2005년 2월 “핵무기를 제조했다”고 공개 선언한다. 5월에는 영변 원자로에서 8,000개 폐연료봉 인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고, 6월에는 재처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은 협상 입지를 높였다. 핵무기 보유 선언은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향후 핵실험의 예고였다. 그 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고, 조선은 모든 핵무기와 기존 핵프로그램 포기, NPT와 IAEA 안전조치 복귀를 약속했다. 미국은 한국에 핵무기가 없으며 조선을 핵무기로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했다. 또 에너지 지원, 북미·북일 관계정상화, 평화체제 논의 원칙이 들어갔다.
그러나 9·19 공동성명 나흘 전 미 재무부는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애국법 311조에 따른 ‘주요 자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BDA가 조선 정부기관과 전위회사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했고, 위조 달러·마약·위조 담배 등 불법 활동을 용이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약 2,500만 달러의 조선 자금이 동결됐다. 미국 입장에서는 핵 협상과 별개의 불법금융 차단 조치였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체제의 해외 결제망을 겨냥한 금융 봉쇄로 받아들였다. 이 조치가 9·19 합의의 이행 동력을 빠르게 잠식했다.
2005년 11월 5차 6자회담이 열렸지만, 조선은 BDA 동결자금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고 협상은 진전되지 않았다. 2006년 4월 김계관 부상은 미국이 BDA 동결을 풀면 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BDA는 단순한 돈 2,500만 달러 문제가 아니었다. 조선이 보기에 이는 미국이 9·19 합의로 관계정상화, 상호존중 약속을 하면서 그 배후에서는 조선을 타격하기 위한 덫을 놓고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니 조선이 얻은 결론은 분명했다. 핵을 포기하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핵을 포기하는 순간 협박당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2006년 10월 3일 조선 외무성은 “앞으로 안전성이 확고히 담보된 조건에서 핵시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한다. 동시에 선제 핵사용 금지, 핵이전 금지, 한반도 비핵화 노력도 언급했다. 조선은 핵실험을 단순 군사행동이 아니라 “억제력 입증”이자 “협상 지위 상승”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드디어 10월 9일 조선은 풍계리 인근에서 1차 지하 핵실험을 실시한다. 조선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과시한 것이다. 6자회담은 이후 재개되지만, 이제 협상은 “핵개발 방지”가 아니라 “이미 핵실험을 한 조선의 핵능력 동결·폐기” 문제로 성격이 바뀐다.
2007년 9월 말 다시 6자 회담이 열렸다. 10월 3일 채택된 6자회담 합의서는 조선의 일반적인 핵 비확산 약속을 문서화했다. 10월 3일 김정일 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은 하루 종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회의 중간에 김계관이 노무현에게 최근 6자회담의 결과를 브리핑했다. 최종 선언문에는 2007년 12월 31일까지 조선과 미국이 해야 할 의무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이 폭파되었고 북조선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한다는 발표도 있었지만 6자회담의 합의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
결국 조선은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으로 전 세계에 자신이 핵보유국임을 선포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조선은 2017년 9월 3일 ICBM 장착용 수소탄 실험을 마침으로써 총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완료했다. 할 때마다 핵 능력의 고도화를 선보였다. 인도와 파키스탄 역시 1974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총 6기의 핵장치를 폭발시킴으로써 전 세계에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조선이 몇 번의 ‘핵 콘서트’를 더 해야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인가.
이런 형국에 조선의 비핵화라는 어휘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대화의 ‘문턱’에 올리든 먼 훗날의 ‘출구’라면서 지금 올리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먼 훗날’의 일이라면 그 때 가서 말할 일이다. 지금 누가 미국, 러시아, 중국의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는가. ‘먼 훗날’의 일이라면 그 때 가서 모든 핵보유국들의 비핵화를 말하면 된다. 비트겐슈타인의 『트락타투스』 마지막 명제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지금의 의제는 핵전쟁 방지, 군비통제, 그리고 평화체제일 뿐이다.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임휘윤(任彙潤, 1944~2021) 항목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그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했던 말이었다. 2018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가 박동운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에 대해 물었다.
"한 분은 사형 선고 받으시고 한 분은 10년 선고 받으셨는데, 그분들 사건에서 전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임휘윤의 대답은 이랬다.
"전혀, 기억 자체가 없고 나는 정상적으로 처리했겠지."
그리고 "영장 없이 체포가 되고 고문이 있었는데"라는 후속 질문에는 "쓸데없는 얘기 말고 돌아가쇼"라고 쏘아붙여 인터뷰를 끝냈다.
이 한마디가 임휘윤이라는 인물을 가장 정확하게 압축한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재심 무죄 사건의 검사, 무려 8건이었던 사람의 마지막 말이 "돌아가쇼"였다.
임휘윤(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호남 출신으로 TK의 자리를 차지
임휘윤은 1944년 4월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1962년 이리(익산) 남성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1970년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이 동기에는 양승태(1948~ ), 김승규, 이종찬, 강재섭 등이 있다. 1973~75년 육군법무관으로 복무한 뒤 전주지검 검사로 시작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흥미로운 지점을 짚는다.
"TK 출신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는 서울지검 공안1, 2부장과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 대검 강력부장 등을 지냈다."
호남 출신이 TK 카르텔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는 것이 그가 얼마나 철저한 충성으로 인정받았는지를 보여준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냉정한 기술자'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이 떠오른다. 동독 슈타지의 일부 심문관들은 신념이 아니라 직업적 효율성으로 움직였다. 그들에게 피의자의 고통은 업무의 변수일 뿐이었다. 임휘윤이 제일교포 유학생으로 한국어 구사력이 완전하지 않았던 김태홍에게 사형을 구형하면서 보인 태도가 그렇다. 우리말이 서툰 김태홍이 자신이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옆자리에 있던 친구에게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인권 감수성이 거의 없는 임휘윤에게 그것은 일상적인 절차였을 뿐이다.
임휘윤의 반헌법 행위 첫 정점은 1981년 학림사건이다. 전민노련-전민학련 사건으로 이태복, 이선근 등이 무리한 고문 조작 수사를 당했다. 임휘윤은 안강민(1941~ ), 김경한(1944~ ), 박순용(1945~2026)과 함께 이 사건의 1·2·3심 공판검사로 관여했다. 피해자들은 검사 앞에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텐데 누가 책임 질래"라는 협박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2012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31년 만이었다.
“늦었지만 진실 밝혀져 다행”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두 번째) 등 ‘학림사건’ 연루자들이 7일 서울 명동 민들레영토 카페에서 진실화해위의 발표를 환영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81년 ‘학림사건’ 신군부가 조작했다”, 경향신문. 2009.07.07
박동운 사건, "기억 자체가 없다"
같은 해 임휘윤은 박동운 간첩조작 사건도 담당했다.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남파간첩이라는 가정에 가정을 거듭해 24년간 고정간첩 활동을 했다는 죄목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박동운은 사형, 무기징역을 거쳐 18년을 복역했다. 어머니와 동생, 작은아버지까지 옥살이를 했다. 2009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바로 이 사건에 대해 임휘윤은 30여 년 뒤 카메라 앞에서 "기억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2009년 11월 13일,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던 날. 오른쪽부터 피해자 박동운씨, 한등자씨. ⓒ 진실의힘 제공
김태홍 사건,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1981년 재일한국인 유학생 김태홍 간첩조작 사건에서 임휘윤은 35일간 보안사 불법구금 끝에 만들어진 자백을 그대로 받아 기소했다. 김태홍이 "북에 갔다 온 적은 있지만 간첩행위는 안 했다"고 항변하자 임휘윤은 "그 말이 그 말 아니냐"며 듣지 않았다. 김태홍은 우리말이 서툴러 자신이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옆자리 친구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15년을 복역했다. 2017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최종 무죄 확정 받은 재일교포 조작간첩 피해자 김태홍 씨.(뉴시스, 2013.11.23.)
송씨 일가, 핑퐁재판의 또 다른 주역
1982년 송씨 일가 간첩단조작 사건에서 임휘윤은 김경한과 함께 수사를 맡았다.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됐지만, 안기부와 검찰이 법원에 공작을 펴 끝내 유죄를 받아냈다. 임휘윤은 피해자 송기준이 안기부에서 한 진술을 부인하자 안기부 수사관을 다시 불러 "이 사람 또 부인한다, 이야기 좀 잘 해주지"라며 협박했다. 송기준은 평화박물관 면담에서 "임휘윤 검사 얼굴이 지금도 빤하지, 뭐. 꿈에도 자꾸 나오는데…"라고 증언했다.
1982년 '송씨 일가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인 송기복 씨가 2008년 10월 29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민변과 참여연대가 검찰 6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개최한 '검찰의 과거사 반성 촉구 및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증언하고 있다. 2008.10.29. 연합뉴스 자료사진
8건의 재심 무죄, 가장 많은 기록
임휘윤이 담당한 사건들, 학림사건, 박동운, 김태홍, 송씨 일가, 최양준, 오주석, 김장호, 함주명은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한겨레는 임휘윤을 "가장 많은 재심 무죄 사건의 검사"로 보도했다.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 본질을 뒤집다
검사로서 출세를 이어가던 임휘윤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의 선거법 위반 수사책임자였다.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선거에 개입한 이 사건에서, 임휘윤은 사건의 본질을 선거법 위반이 아닌 도청 사건으로 뒤집는 역할을 했다. 권력의 부정행위를 들춰내기 위해 도청 장치를 심은 이가 오히려 처벌 대상으로 몰렸다.
검찰의 꽃까지, 그리고 이용호 게이트로 추락
임휘윤은 1998년 대검 강력부장, 1999년 서울지검장, 2000년 부산고검장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1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사표를 제출하며 검찰 인생이 끝났다. 정치권 진출설이 돌았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임휘윤(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동독 슈타지 심문관들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신념이 없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념 없는 잔혹함이 더 무섭다. 임휘윤이 보여준 "기억 자체가 없다"는 태도는 신념의 부재가 아니라 책임의 완전한 외면이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임휘윤의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네"를 떠올렸다. 사형 선고와 18년 옥살이를 만든 사람이, 30여 년 뒤 카메라 앞에서 그 일을 "쓸데없는 얘기"로 치부했다. 그 무책임이 공안검찰의 가장 깊은 병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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