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도 마찬가지다. '민주적 AI'가 말하는 분배는 초과이익에 세금을 매기는 '사후 분배'를 넘어—사후의 조정도 중요하지만—처음부터 소유 구조 안에 분배가 내재되어 있는 '사전 분배'를 중요하게 여긴다. 예기치 못한 막대한 이득이 생기더라도, 민주적 AI가 자리 잡아 모두가 함께 이득을 보는 구조가 미리 마련되어 있다면, 그 이득은 뒤늦게 거둬서 나눠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미 함께 나누는 몫이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빅테크가 진단 AI를 무료로 내놓고 환자 데이터는 기업이 보유한다면, 격차는 줄어도 의존도는 심화된다. 이와 달리 의료 협동조합이 데이터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환자 데이터를 신탁이 관리하며, 알고리즘의 방향을 환자와 의료진이 함께 정한다면, 격차 해소와 함께 '의료 주권'이 자란다.
노동의 자리도 마찬가지다. 플랫폼이 알고리즘으로 일감을 배분하고 일하는 속도와 보수까지 정한다면, 일하는 사람은 결정의 대상이 된다. 같은 알고리즘을 노동자가 단체교섭으로 함께 정하거나 플랫폼을 협동조합으로 공동 소유한다면, 일하는 사람이 결정의 주체이자 알고리즘의 주인이 된다. 차이는 기능이 아니라 토대에 있다.
한국은 민주적 AI 실현 조건 갖춰…AI 강국의 글로벌 모델로
흥미롭게도 한국은 민주적 AI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몇 안 되는 국가다. 우리는 민주적 기술을 이미 작동시켜 본 국가이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의 강점으로 산업화와 정보화, 그리고 문화 강국을 꼽는다. 제조 역량과 정보 기술, 문화 파워를 모두 갖춘 유례없는 국가임을 스스로 주목한다. 그러나 이 강점들은 오래 축적된 교육 역량이 민주주의와 만나면서 발현된 결과다. 거기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나서는 시민성이 더해졌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시민기술 운동이 무르익었고, 공론화와 시민 참여는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법적 기반 위의 상설 기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20년 코로나19 시기 시민 개발자들이 공공데이터로 만든 마스크 재고 앱, 2024년 12·3 비상계엄 직후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다양한 시민 기술 프로젝트들처럼, 위기의 순간에 시민이 직접 디지털 인프라를 만들어 공동체를 지킨 경험이 우리에게 있다. 그 두터운 시민성과 민주주의 위에 AI를 놓는다고 상상해 보자. 한국이 만드는 민주적 AI는 '국민 주권과 기본사회 실현'이라는 헌법적 지향을 실현하는 강력한 기반이자, 인권·민주주의·평화라는 가치를 구현한 진짜 AI 강국의 글로벌 모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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