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피조물은 처음부터 잔혹한 악마가 아니었다. 인간과 소통하고 선의를 나누고 싶어 했던 선량한 마음을 품은 존재였다. 그러나 기괴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괴물’이라는 낙인이 찍한 순간 피조물은 절망하며 외친다. “너희가 나를 악마라 부르니, 행동으로 내가 악마임을 증명해주마.” 창조주를 향한 복수의 화신으로 전락해 버린 우리의 주인공은 외부의 지적과 비판을 흡수한 존재가 급기야 원래의 모습을 비틀어 바깥에서 예언한대로 구체화되고 마는 역설을 보여준다.
1947년 부처 간 정보 분석을 조율하기 위한 순수 연구·분석 기구로 출범했던 미 중앙정보국(CIA)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해외 정권을 전복하고 독재자를 육성하는 공작 괴물이 될 것”이라는 의회의 우려와 의심에 부딪히자, CIA는 자신들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아예 그 비판적 예측 속으로 뛰어들어 비밀공작의 사령탑이 되었다. 대화와 타협의 중재자였던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단이 전쟁의 압박 속에서 결국 독재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소멸한 서사 또한 순수한 목적이 특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파멸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유사한 역설의 그림자가 지금 외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별한 행보 위에 드리워져 있다. 외무부가 지난 6월 5일 출범시킨 ‘한·중동 포괄적 경제협력 태스크포스(TF)’를 둘러싼 환경이 정확히 과거 사례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나 명분으로나 TF의 출범 자체는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전략적인 포석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미국과 이란 간의 종전 논의가 가시화되는 국면에서, 중동 지역의 전후 재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의 진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은 국가 경제적 실리를 최우선으로 둔 대단히 갸륵한 기획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지난 6월 16일 프랑스 에비앙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 만찬에서, 주최국과의 치밀한 사전 교섭 끝에 우리 대통령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바로 옆자리에 앉히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것 역시 모처럼 있는 외무부의 ‘득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중동 TF’가 과연 당초의 ‘순수한’ 설립 취지에 따라 움직일는지 여부에 대한 의심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이익에 봉사해 온 외무부의 전력 때문이다. 그리고 한 시간 반 동안 나란히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트럼프가 이란 재건자금 3천억 달러에 관해 이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합리적인 추론 때문이기도 하다.
자주연합을 비롯한 진보 단체들이 연이어 내놓는 비판과 의심의 골자는 명확하다. 이번 중동 경협 구상이 진짜 경제적 목적이 아니라 트럼프가 던진 거대한 ‘중동 청구서’를 조용히 대납하기 위한 사전 위장막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를 단순한 음모론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트럼프의 전형적인 비즈니스 문법에 있다. 트럼프는 사실상 미국의 ‘전쟁 배상금’을 우방과 동맹국들에게 전가하려고 노골적으로 압박해 왔고, 그 분담의 주체로 한국이 강력하게 거론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시기적으로 TF가 에비앙 만찬 이전에 먼저 신설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의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초의 순수한 의도와 전략적 기획이 에비앙 만찬이라는 ‘결정적’ 국면에 처해 ‘트럼프의 압박’이라는 덫에 걸려들었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수 TF가 트럼프에 의해 오염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만찬 자리에서 조선의 핵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현실론’적 접근법을 트럼프가 수긍하는 모습을 보일 때 이 대통령으로서는 그러한 ‘긍정적 고갯짓’을 트럼프가 좋아하는 금전적 ‘한 방’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싶었을 가능성도 있다.
당초 6월 5일 TF 출범 당일 외무부는 보도자료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안정화와 고부가가치 신산업 협력이라는 원론적인 목적만을 전면에 내세웠었다. 처음에는 전후 재건 시장의 선점이니 우리 기업의 진출 발판 마련이니 하는 얘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6월 22일 조현 외무장관은 직접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이란 간 MOU 타결 가능성이 거론되기 전부터 선제적으로 대비해 왔다”면서, TF의 핵심 임무를 ‘우리 기업들의 중동 피해 복구 사업 참여’와 연결 지어 홍보했다. 진짜 우리기업 지원이라면 문제는 없다.
문제의 대목이 바로 프랑켄슈타인과 IMF와 CIA의 역설이다. 우리 기업의 중동 진출과 공급망 안보라는 국익을 위해 도출된 기획이 외부의 압박과 “결국 미국의 대리 기구”라는 지탄에 직면해 끝내 비판자들이 우려하던 최악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바꾸어버릴 가능성 말이다. 관료제적 속성상 상부의 지시와 미국의 강요가 지속되면 TF는 당초의 주체적인 경협 기획들을 슬그머니 뒤로 미뤄두고, 속으로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겉으로는 ‘국익을 위한 투자’처럼 그럴듯하게 장식하려고 고심하는 미국 ‘앞잡이 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론 그러한 굴절된 프레임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자문해야 한다. 왜 우리가 타국이 일으킨 못된 전쟁의 뒷수습을 대신 짊어져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미국의 채무대납자라는 말인가.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환심을 사는 일종의 ‘페이스메이커’ 비용으로 이 재건자금을 대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기도 한다. 국익을 거래의 제물로 바치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트럼프의 외교는 선불로 지불한 의리에 보답하는 법이 없다. 우리가 먼저 저자세로 청구서를 받아드는 순간 동맹이라는 이름의 약탈적 요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뿐.
이제 외무부의 중동 TF는 자신이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아님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비판과 압박에 밀려 결국 예언된 괴물로 타락하지 않으려면 당초 세웠던 갸륵한 경제적 초심을 날카롭게 유지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미국의 백지수표가 아니다. 미국의 부당한 재정 전가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철저히 우리 기업의 중동 진출 지원과 국익 확보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외무부는 모처럼 얻은 ‘득점’을 미국의 치다꺼리에 날리지 말 일이다.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정신을 다시 깊이 새겨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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