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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조선'이라고 부르는 게 뭐가 어때서?

[박세열 칼럼] 보수의 '현실주의'와 이재명 정부의 '용기'를 기대한다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6.08.08. 06:14:26

한국의 대북 정책은 전통적(?)으로 국내 정치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5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남북이)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첫걸음으로, 주적 등 서로에 대한 대결과 혐오의 언어는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재명 대통령이 "좋은 이상에도 불구하고 정쟁에 휘말리면 나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답한 데에서 드러난 건, 대북 정책과 관련해 우리 스스로 옭죄고 있는 프레임이다.

이 대화에서 우리는 '현실주의자(리얼리스트)'들의 면모를 보게 된다. 정동영 장관은 '변화하는 북한의 전략'에 맞춰 우리도 '현실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 현실론이 북한을 적대시하는 보수 세력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며 또 다른 '현실론'으로 반박한다. 나는 두 입장 모두 일리가 있다고 본다. 쉽게 말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

진보 진영은 종종 이상주의적이라고 오해를 받았는데, 그 오해를 깰 때가 됐다.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이 대북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은 "북한을 민족주의적 특수성의 틀로 보자"는 것이었다. 반면에 보수 진영은 "북한을 국제정치의 행위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틀은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시절 보수 학계가 지속적으로 견지한 주장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김정은이 남북을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남한의 담론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진보 진영이 먼저 '현실주의'로 눈을 돌렸다. 과거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남북은 외국과 외국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 있는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아 정동영과 같은 인사들이 '현실주의자'가 된 건 어쩌면 중대하고 흥미로운 변화다. 진보 진영은 기존의 특수관계 프레임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현실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보수 진영이 이같은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고 있다. 북한의 '적대적 두국가론'은 보수 진영이 주장해 온 내용이 아니었던가? 이명박 정부와 윤석열 정부 대북 정책 핵심 인물인 김태효는,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적대적 두 국가론'의 원조 격이다. 현인택, 남성욱 같은 학자들도 북한 문제를 '힘에 기반한 국제정치의 논리'로 풀어냈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나 '한반도신뢰프로세스' 같은 정책에 영향을 줬다.

물론 그들의 '현실주의'는 '힘에 의한 억제'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진보 진영과 달랐지만, 지금 북한의 변신과 진보진영의 현실주의를 따져보면 보수 진영의 이론이 오히려 지금 상황에 일부나마 맞아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를 포착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는 게 진보, 보수 진영 모두의 과제가 돼야 한다. 그런데 진보 진영은 변화한 상황을 따라가며 과거 터부시했던 보수 진영의 '현실주의'를 수용하려 하는데, 보수 진영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오히려 '주적' 개념 변경이나, '조선으로 국호를 부르자'는 주장에 경기를 일으키며 반발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거래를 텄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갈라치기' 글로벌 구상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북한인 셈이다. 북한의 '뒷문'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의 압박'을 통해 북한 핵을 없앨 수 있다거나, 북한이 저절로 붕괴되기를 바라는 게 바로 '이상주의'에 가까운 것 아닌가.

'주적 개념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북한이라는 명칭을 바꾸면 안보가 흔들린다'는 주장은 현실주의적 관점에서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북한을 '조선'이라고 부른다고 미사일 탐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적'이라는 표현을 조정한다고 한미연합방위태세가 해체되는 것도 아니다. 군의 전투력은 정보자산, 지휘체계, 첨단무기, 훈련 수준, 동맹과 산업 기반에서 나온다. 정치적 수사는 정책을 설명하는 도구일 뿐, 전투력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아니다. 보수 진영은 흔히 "주적 개념을 없애면 군의 정신력이 무너진다"고 주장하는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군사력은 정치적 구호 하나로 유지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상대의 행동을 얼마나 정확히 읽고 대응하느냐다. 현실주의의 핵심은 단순하다. 국가는 도덕이나 이념보다 생존과 국익을 우선한다. 상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실제로 어떤 능력과 의도를 갖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전략을 세운다. 안보 정책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적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변한 적을 과거의 모습으로 계속 상상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스스로 프레임을 바꾸었다. 이제 우리도 과거의 인식에 머물지 말고, 변화한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새로운 대북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오히려 현실과 맞지 않는 언어가 전략을 왜곡할 수 있다. 북한이 이미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재정의했는데도 우리가 과거의 특수관계라는 틀만 반복한다면, 북한의 전략 변화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읽기 어렵다. 상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대응 역시 과거에 머물 수밖에 없다. 북한의 두 국가론을 인정하자는 것이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자는 뜻은 아니다. 상대가 어떤 전략을 채택했는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우리의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안보는 상대를 악마로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를 정확히 읽는 능력에서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바라보자는 것은 안보를 포기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한 현실 위에서 더 강한 안보와 더 일관된 대북전략을 세우자는 제안이다.

햇볕정책을 창안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이 "반공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라고 틈만 나면 강조했다. 햇볕정책이 결코 일방적 유화책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그는 취임사에서도 "북한의 어떠한 무력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동시에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북한을 조선이라 부르고, 주적을 '위협'으로 바꾸는 것은 '이재명 정부 현실주의 외교'의 시작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정부가 좀 더 유연하게, 좀 더 담대하게 행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오른쪽)이 지난 19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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