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호남은 꿀단지, 수도권은 빨대?"... 싸늘해진 전남광주 민심

26.09.27 16:16ㅣ최종 업데이트 26.09.28 07:24

송전탑부터 의대 갈등까지, 추석 밥상에 오른 이재명 정부 평가... "지역 차별 비롯된 문제 아닐까"

​

이번 추석 연휴엔 어딜 가나 '이재명'과 '지역 차별'이 화두였다. 오랜만에 지인들이 모여 덕담을 나누는 화기애애한 자리에서도 대화마다 가시가 돋쳐 있었다. 비판의 대상과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대부분 이재명 정부를 향한 성토로 수렴됐다. 그들은 지난 대선 때 모두 이재명을 선택한, 나름 열성적인 지지자들이다.

​

당장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기업의 편에 섰다며 노골적으로 정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인공지능(AI)에 꽂혀 다른 정책들은 찬밥 신세가 됐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일잘러'로 알려진 이재명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이라며 은근히 두둔하는 이도 있었다. 아직 지지를 포기하긴 이르다는 거다.

​

이재명 뽑은 전남광주 민심, 지금은

​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멕시코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만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들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정부의 정책마다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느낌이라며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그때그때 다른 것 같다고도 했다. 한 지인은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형국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 말인즉슨, '윤석열'을 지우려다 '문재인'과 '노무현'까지 지워내고 있다는 뜻이다.

​

섣불리 일반화시킬 순 없겠지만, 지인들 모두 광주와 전남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이어서 지금의 '호남 민심'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을 성싶다. 그들은 호남 지역에 대한 특혜를 바라고 이재명을 선택한 건 아니라고 이구동성 말했다. 다만, 경제적 양극화와 해묵은 지역 차별 문제를 누구보다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여겼다.

​

"호남은 '꿀단지'이고, 수도권은 '빨대'인가요?"

​

가장 먼저 대화의 도마 위에 오른 건 송전탑 건설 문제였다. 호남의 대규모 태양광과 해상 풍력 발전 단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 소재 대기업에서 사용하도록 수백 킬로미터의 송전선로를 건설하는 정책에 완강히 반대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이익을 위해 지역민이 피해를 감수하라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는 거다.

​

그들은 과거 '밀양 할매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을 다시 떠올렸다. 정부는 경상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탑 건설을 강행했고, 촌로들은 스스로 쇠사슬을 몸에 결박하며 맞섰다. 당시의 반대 논리 또한 지역 차별을 멈추라는 것이었다.

​

수년간의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난 뒤 정부는 이른바 '지산지소(地産地消)' 원칙을 밝혔고, 전력 생산과 송전탑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지산지소'란 현지에서 생산한 전기는 그곳에서 소비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이는 환경 파괴에 따른 피해를 특정 지역에 전가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

반도체 산업의 전 세계적 호황과 인공지능 데이터 센터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지산지소'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순식간에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다. 관련 산업 단지 조성이 촌각을 다투는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이유로 다시 지역민의 희생이 강요됐고, 얄궂게도 과거의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이 재현되고 있다.

​

굳이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엔 영남 지역이 투쟁의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호남과 충청 지역으로 옮겨졌다는 것뿐이다. '지산지소' 원칙에 충실히 따른다면, 수도권에 대규모 전력 생산 기지를 세우거나, 반도체 산업 단지나 데이터 센터를 지역에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중재하거나 설득할 시간이 없다는 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밀집해 있는 수도권의 '표심'에 기대어 또다시 지역 차별에 공공연히 나선 셈이다. 지인들은 어차피 영호남의 지역 갈등이 상수인 상황에서 수도권에 대항하는 지역의 목소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정책적 판단이 내려졌을 거라고 의심했다. 그들이 이재명 정부가 '잔꾀'를 부리고 있다고 여기는 대목도 이 지점이었다.

​

"청와대와 국회만 세종시로 옮기면, 지방 균형 발전이 끝난 줄 아나 보죠? 원자력 발전소를 서울의 한강 변에 세우거나, 대기업 본사와 명문대를 지방으로 모두 옮기겠다는 혁신적인 정책 정도는 나와야 지방 분권 시대를 말할 수 있죠."

​

또다른 키워드 '지역 내 갈등', 하루아침에 불구대천 원수로

​

▲목포대 학생들이 1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청사 앞에서 '전남권 국립의대 신설 후보대학 불공정 심사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지난달 30일 의대 신설 후보대학 선정 심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목포를 비롯한 서남권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불공정 심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026. 9. 14 ⓒ 국립목포대학교

그들은 이재명 정부도 어쩔 수 없는 '수도권 정부'로 규정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지역민의 피해를 돈으로 무마하려는 모습에 절망한다고도 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그 후손들 역시 지역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절실함에도 지원금 챙겨 지역을 떠나라는 식으로 부추기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

기실 인구 규모로 볼 때, 수도권은 주택, 교통, 환경, 범죄 등 '집적 불이익'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해서 주택을 더 짓고, 도로를 더 넓히고, 오수 처리 시설을 더 세우고, 경찰력을 더 늘리는 걸로 대응해선 안 된다. 그럴수록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동시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건 허황한 욕심이다.

​

지인들과의 추석 대화는 수도권을 넘어 지역 내 갈등 문제로 이어졌다. 전남권 국립 의대를 어디에 세우느냐를 두고 벌어진 순천대와 목포대의 볼썽사나운 대립을 도마 위에 올렸다. 이는 발에 치이는 게 병원인 수도권의 주민들에겐 어린아이들의 치기 어린 싸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의료적으로 낙후된 두 지역민에겐 오랫동안 숙원 사업이었다.

​

전남은 전국 17개 광역 단체 중에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선거철마다 여야 후보자들은 의대 설립을 공약했지만, 그때마다 공염불에 그쳤다. 의료적 소외는 지역의 인구 유출을 부추겼고, 전남의 인구 감소율은 해마다 전국 1~2위를 다투고 있다. 정부의 국립 의대 설립 추진 방침이 전남 지역민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은 이유다.

​

지역민의 관심이 컸던 만큼 지방자치단체의 유치 경쟁도 뜨거웠다. 전남 동·서부 지역을 대표하는 순천대와 목포대는 각 지역의 유치 필요성을 내세워 총력전을 펼쳤다. 여수, 광양 등 대규모 국가산업단지가 밀집해 산재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는 순천대와 도서 벽지가 많아 의료 접근성이 가장 취약하다는 목포대의 명분은 사실상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

처음엔 두 대학을 통합한 뒤 통합 의대를 설립하는 걸로 가닥을 잡았다가 의대 캠퍼스를 어느 곳에 두느냐를 두고 갈등을 벌이다 끝내 협상이 결렬됐다. 중앙 정부는 지방 정부에 중재를 위한 공을 넘겼고, 지방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 외부 기관에 의뢰해 공모 심사를 맡겼다. 이는 갈등이 첨예했던 만큼 누가 이기든, 상대가 승복하기 힘든 '악수'였다.

​

순천대가 가까스로 이겼고, 예상대로 목포대는 결정에 불복했다. 대학 간의 갈등은 정치인과 지역민의 싸움으로 번졌다. 지역 정치인들은 삭발과 단식 투쟁을 감행했고, 목포대는 지역 여론을 등에 업고 법원에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오매불망 염원하던 지역 의대 설립을 두고 순천과 목포 지역민들은 하루아침에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

​

지인들은 순천과 목포, 두 곳 어디도 편들지 않았다. 다른 시설도 아닌, 국립 의대의 유치 경쟁이라면 극단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비난의 화살은 이재명 정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향했다. 두 대학과 지역의 갈등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거고, 예상하고도 중재를 포기한 건 무책임한 거라며, 지역 통합의 명분조차 사라졌다고 통탄했다.

​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제기됐다. 정치인들의 삭발과 단식은 주장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다음 선거를 위한 '퍼포먼스' 아니겠느냐며, 직능별 비례대표제였다면 훨씬 합리적인 대안이 도출됐을 거라고 말했다. 결국 정치인들의 중재 역할이 또다시 사법부 판단의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

"이 또한 본질적으로는 지역 차별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닐까요?"

​

지인들과의 추석 대화는 이렇게 매조지었다. 오랫동안 의료적으로 소외당하며 살아왔다는 설움이 켜켜이 쌓이다 보니 지역민들이 의대 유치에 사생결단식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의료 서비스가 거주지와 상관없는 온 국민의 기본권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면 애초 벌어지지 않았을 사달이라는 이야기다.

​

#추석민심#송전탑#지산지소#전남국립의대#지역차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