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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은 위안부 할머니들 혼에 바치는 천도제"

정숙 시민기자

suk750501@hanmail.net

리포액트 시민기자 & 시민언론 민들레 1호 시민기자

< 2025 시민언론 민들레 올해의 시민기자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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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재개봉 앞둔 조정래 감독 인터뷰]

본편에 담지 못한 아시아 공동 피해 사실 담아

고통스런 연기 했던 배우들 정신과 의사 살펴

할머니들에 대한 미안함과 사명감으로 제작

피해자들 명예회복보다 더 중요한 민생 없어

그늘 진 역사 기록하는 일 멈추지 않고 할 터

 

지난 4일 서울시 강동구 길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조정래 감독. 2026.8.4 정숙 시민기자

영화 '귀향’이 개봉 10주년을 맞아 확장판으로 오는 26일 다시 스크린에 내걸린다. 영화관을 단순히 상업적 공간이 아니라 잊힌 역사를 기억하는 추모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던 조정래 감독. 그는 영화가 끝난 지 10년이 흐른 지금, 단 다섯 분만 생존자로 남은 할머니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에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지난달 28일 확장판을 처음 개봉한 일본 오사카 상영회에는 약 200명가량의 관객이 찾았다. 일본 상영에 도움을 준 극단 '달오름'측의 소셜미디어(SNS) 글을 보고 온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일본인들이 많았고, 일본 교과서에도 전혀 위안부 얘기가 나오지 않아 역사를 모르는 일본 MZ세대도 있어서 놀라웠다고 한다. 영화 관람 후 한 현지인은 "옛날에 있었던 일이라 해도 지금도 그 상처를 계속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4일 서울시 강동구 길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재개봉을 하게 된 계기와 ‘언제까지 이 문제를 붙들고 있을거냐?’는 차가운 시선에도 다시 카메라를 잡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영화를 통해 세상에 던지고자 한 메시지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8월 26일 '귀향 : 언니야, 집에 가자' 확장판 재개봉 포스터.(조정래 감독 제공)

본편에 담지 못한 아시아 공동 피해 사실 담아

영화는 피해자들을 위한 천도제이자 예배

-개봉 10주년을 맞아 영화 ‘귀향’을 재개봉하는 계기는 무엇인가?

“단순히 10주년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영화를 다시 개봉해야 한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요청이 지속됐고 시간이 우리를 재촉하고 있다는 절박함과 정부를 향해 해결의 목소리를 내도록 명분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지난 10년간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셨고, 이제 남은 분은 다섯 분뿐입니다. 올해 3월 강일출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대구 상영회에서 만난 이용수 할머니께서 휠체어에 앉아 제 손을 잡고 "네가 해결하라"고 하셨을 때,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할머니들께서 생전의 숙제를 제게 남겨주셨음을 통감하고 결심했습니다.”

-영화 제목 부제 '언니야, 집에 가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최초 시나리오 작성 시점부터 제목이었습니다. 촬영 전 펀딩을 받을 때 사용했던 제목이기도 한데, 10년 만에 재개봉하면서 이 제목을 전면에 내세워 돌아가신 피해자들의 영혼을 고향으로 모셔오자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기존 버전보다 상영 시간이 6분 늘었다고?

“기존 본편에 미처 담지 못했던 아시아 공동의 피해 사실을 담았습니다. 중국 목단강에 있었던 당시 최대 규모의 위안소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한 6분 분량의 장면이 추가되었습니다. 본편에서 빠졌던 소녀의 죽음, 마지막에 나비를 보는 장면 등을 살려냈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넘어, 아시아 전체가 겪은 전쟁의 상처와 일본군의 조직적인 만행을 명확히 고발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우리’의 피해에만 집중하는 민족주의 관점을 넘어, 당시 조선 처녀들뿐 아니라 그곳으로 강제로 끌려온 중국 여성들이 어떤 고통을 당했고, 탈출 과정에서 얼마나 허망하게 죽어갔는지를 담담히 고발합니다. 이것은 홀로코스트에 견줄 만한 국가 차원의 조직적 성폭력 시스템이었다는 점을 역사적 증거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영화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거나 ‘제삿상’을 차린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하는데?

“상영회 때마다 관객분들이 제게 영화관이 아니라 ‘예배’를 드린 기분이다, 제삿상을 차린 기분이었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수천 번 본 장면임에도 매번 다시 새로운 분노와 슬픔이 밀려옵니다. 피해자들의 영혼이 아직 떠돌고 있다면 우리가 다 같이 모여 함께 아파하고 기록하는 이 순간이 곧 그분들을 위한 천도제이자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편집 작업 중인 조정래 감독. 2026.8.4 정숙 시민기자

위안부 문제 향한 진지함 가진 16살 배우 강하나

고통스런 역할 배우들 위해 정신과 의사 상주

-'정민' 역의 강하나 배우를 캐스팅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몰입이 가능했을까?

“오사카에서 오디션을 열었는데, 수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사실 한국의 유명 배우들도 오디션을 봤을 만큼 경쟁이 치열했죠. 그런데 저는 망설여졌습니다. 무언가 하나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죠. 그래서 오사카까지 가서 강하나라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어머니가 오사카 극단 대표이신데, 하나는 어릴 때부터 무대 언저리에서 연극을 보고 자란 친구였어요.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를 향한 그 아이의 진지함, 16살답지 않은 의지는 강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3이었던 하나가 지금은 어엿한 배우가 되어 잘 성장한 것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극 중 일본군 역을 맡은 분들이 연기자가 아니였다면서?

“무엇보다 언어가 가진 '날것의 공포’가 필요했습니다. 실제 일본 거주자분들이 연기하면 그 서늘한 일상어가 더 잔인하게 들릴 거라 판단했죠. 연기 전공자들이 아니었음에도 그분들이 보여준 몰입은 기적 같았습니다. 사실 그분들은 저의 오랜 후원자들이자 조력자들이었습니다. 일본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주연 악역으로 캐스팅하는 게 도리에 맞는가 고민도 많았지만, 그분들은 "내가 저 가해자의 탈을 써야 이 문제를 알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며 저보다 더 열정적이셨습니다.”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실제 촬영은 45일 정도 진행되었지만, 2년 가까운 사전 준비 기간이 있었습니다. 거창, 연천의 폐쇄된 군부대, 양평 두물머리 등에서 촬영했습니다. 감독인 저부터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사실성에 집중하려 애썼습니다. 배우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가 상주하며 배우들이 정신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애쓰며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지난 7월 28일 일본 오사카 상영회에서 무대 인사하고 있다. (조정래 감독 페이스북)

 

지난 7월 28일 일본 오사카 상영회에서 무대 인사를 하는 조정래 감독, 강하나 배우. 정무성 배우(왼쪽부터). 사진 출처 조정래 감독 페이스북

할머니들에 대한 미안함과 사명감으로 제작

피해자들 명예 회복보다 더 중요한 민생 없어

-피해 할머니들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바닥소리’라는 국악 단체 활동 시절부터 나눔의 집을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했습니다.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익히고 매달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극 중 정민의 성인역을 맡은 손숙 배우님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지 심지어 흥행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할머니들에 대한 미안함과 사명감 하나로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일본과 중국 등 국제사회의 인식은 어떤가?

“일본은 역사 교육에서 위안부 내용을 삭제하며 '망각 단계’로 가고 있고, 중국은 일본과의 경제 관계 때문에 난징학살 등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일본 교과서에서 관련 기록이 사라진 것이 매우 큰 문제입니다. 영화 '귀향’을 통해 국경을 넘어 전쟁이 왜 참혹한지, 그중에서도 여성과 인권에 가해지는 폭력이 무엇인지 알려야 합니다.”

-피해자들의 서사를 쉽게 잊는 우리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일각에선 "다 지난 얘기를 아직도 하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그런 냉소야말로 가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베를 위시한 극우 세력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고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이유는 지겨워해서 더 이상 기록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역사 공부를 입시 도구로만 보는 현실에서, 학생들이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성인이 되는 현실이 너무나 공포스럽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머나먼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청소년들이 이 영화를 통해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평화적 가치를 배우길 바랍니다.”

-현 정부와 정치권이 위안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라는 좁은 틀 안에서 조정할 타협안이 아닙니다. UN조차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고 규정한 '반인륜적 범죄’이며 정파를 떠나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입니다. 정부 여당은 지금이라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위안부 문제를 검토하고, 한일 외교 관계에서 공식적인 의제로 다뤄야 합니다.”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민생은 없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께서 경기도지사 시절 강조했던 피해자 중심의 원칙’과 ‘12·28 합의 재검토’ 약속을 꼭 실천해 주시길 바랍니다. 펀딩을 통해 만들어진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이 현 정부와 여당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정치적 동력이 되길 희망합니다.”

 

지난 3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특별상영회 후 관객들과 사진 활영. 사진 제공 김진영 배우

국회 상영회 장소를 마련해 준 송영길 의원과 김용만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 일정과 겹쳐 참석하지 못했고 대신 참석한 권칠승 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김진영 배우 페이스북)

그늘진 역사 기록하는 일 멈추지 않고 할 터

함께 지켜봐 주면 우리 역사 지워지지 않아

-왜 굳이 '길고 험한 영화인’의 길을 선택했나?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할 때부터 저는 대중의 박수보다 '잊혀가는 목소리’를 듣는 데 더 관심이 많았고 세상의 모서리에 몰린 이들의 서사를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배웠습니다. 거창한 예술적 성공을 꿈꿨다면 아마 이런 주제로 수십억을 빌려가며 제작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누군가는 찍어야 했고, 아무도 안 찍으니 제가 총대를 멘 것입니다. 그저 그늘진 곳에 빛을 비추고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영화인이 아닌 인간 조정래로서 ‘귀향’ 이후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

“영화 촬영장 뒤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제 것이 아닙니다. 밥벌이와 주식 투자 이야기, 누구는 어느 상을 탔다는 가십 속에 살기보다 할머니들의 한 맺힌 증언집을 되새기며 다음 다큐멘터리 '애끼리’와 이옥선 할머니 기록물을 만드는 게 더 설렙니다. 영화가 흥행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의 개인적 삶은 고단해졌을지 몰라도,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어 하루하루가 값집니다. 돌아가신 피해자 어르신들께서 꿈에 나타나 '왜 왔냐’고 물으시면 "이거 기록해 놓으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저의 인생 전체를 제사라는 긴 의례에 바친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최소 2200만원으로 펀딩을 시작했지만, 사실 제대로 된 상영회와 홍보를 위해서는 1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이번 재개봉은 돌아가신 피해자들에 대한 '예배’와 '제사'를 지내는 마음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있는 큰 목소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극장에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역사 기록의 참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관람 티켓은 곧 '기억의 증언지’가 됩니다. 부디 이번 재개봉에 힘을 보태주십시오. 지금 우리는 더 당당하게 이 영화를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켜봐 주시는 동안 우리 역사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유일한 희망입니다."

'귀향 : 언니야, 집에 가자' 텀블벅 후원 링크

 

 

 

정숙 시민기자 suk7505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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