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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7/09
    아나키 평론 '흑색' 선전(1)
    무나
  2. 2005/06/17
    정신을 차리자(1)
    무나
  3. 2005/06/03
    작은 대안무역 만세!!!(8)
    무나
  4. 2005/04/18
    독립미디어센터를 만드는 토론회
    무나
  5. 2005/04/09
    생태주의자들의 선언! 이 갖는 의미(1)
    무나
  6. 2005/03/12
    9월 D-Day를 준비하며(1)
    무나
  7. 2005/03/12
    제3회 아나키 여름 토론회 Food Not Bomb
    무나
  8. 2005/03/12
    “Food Not Bombs(폭탄대신 음식을)”이란 무엇인가?
    무나
  9. 2005/03/12
    민족에서 소수자, 잡민으로!
    무나
  10. 2005/03/12
    하라부지
    무나

아나키 평론 '흑색' 선전

  • 등록일
    2005/07/09 11:05
  • 수정일
    2005/07/09 11:05

 

『흑색』 1호를 다운로드 받고 싶은 분은

전쟁저항자 홈페이지 http://wrikorea.gg.gg 의

[오늘의 아나키즘] 게시판으로

들어가세요.


물론 제본한 책도 1권당 2000원에 판매합니다.

anamellee@hotmail.com으로

세 권 이상 주문해주세요.



- 목차 -


1. ‘일본’, ‘일본인’이란 뭔가? - 한 ‘일본인’의 선동 ∥모글리

2. 비폭력 대(對) 자본주의  - 서문 ∥브라이언 마틴(번역: 매닉)

3. 지역운동과 아나키즘, 그 상생의 가능성 ∥도끼

4. 공생의 도구 - 지역통화운동 ∥등대

5. 병역거부 전시회를 다녀와서 ∥조약골

6. 푸드 낫 밤(Food Not Bomb)에 대하여

   1) 푸드 낫 밤 - 폭탄 대신에 음식을! ∥번역: 조약골

   2) 내가 경험한 푸드 낫 밤 ∥네빈(발표, 토론)

   3)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결정한다! ∥네빈(번역: 매닉)

7. 해방의 섬유, 면화 ∥반다나 시바(번역: 매닉)

8. 또 하나의 전쟁 ∥리 호이나키(녹색평론 제63호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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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자

  • 등록일
    2005/06/17 10:12
  • 수정일
    2005/06/17 10:12

항의하는 사람을 깔고 지나가는 레미콘...

집회에서 열변을 토하던 한 남자가 비디오 끝무렵에 피를 흘리며 죽어있다.

어느 리얼리티쇼보다도 더 생생하다.

 

참세상 말고 다른 뉴스들을 뒤져봤다. 기사가 없다.

다시 검색해보니 기사들이 있긴 있다.

대우와 김우중,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랑했다는 기사 등에

밀려 메인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아 쓰러진 사진 한장으로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인터넷도 없었고,

카메라 달린 핸드폰도 없었던 시대였지만,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잘 알고 있었고

분노할 줄도 알았다.

 

"정보는 많은데 진정한 대화가 어렵다고요?"하는

한 인터넷 포탈 사이트 광고를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본다.

"진정한 대화"란 건 무엇일까?

 

확실히 80년대에 비해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교환한다.

인터넷으로 못하는 이야기들이 없을 정도다.

더 이상 권력은 재갈을 물리거나 위협하는 방식으로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가 본 것들을 기사로 써 올리기도 한다.

리턴키 하나면 깔끔하게 기사화 되어 올라간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80년대 학생들의 죽음 이상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가는데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아니면 분노가 표현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의 마음속을 헤집어 보고 싶다.)

거리는 축구 응원으로 떠들썩할 뿐.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차별받는데

오히려 굶주린 사람들,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질 기세다.

 

평화로운 내 일상에 돌을 던지지 말라는 건가?

의사비폭력 체제의 완성인가?

미국식 "민주주의"에의 완전한 돌입인가?

정보 과잉으로 오히려 현실이 보이지 않는 시대인가?

현실이 리얼리리티쇼와 구분이 아예 안되는 시대인가?

그걸 구분하려는 내가 바보인가?

 

아니다 정신을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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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대안무역 만세!!!

  • 등록일
    2005/06/03 14:28
  • 수정일
    2005/06/03 14:28


 

 

지난번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던 이주노동자 자히드씨가 출입국에 잡혀가

결국엔 추방당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고국의 어머니와 여동생들은 아들이 직장에 복귀해서

생활비를 위해 빚진 돈들을 갚아주길 기다리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리 특별하지 않은 흔한 일입니다.

슈퍼마켓에 가다가, 친구를 만나다가, 피시방에 가다가, 집에서 자다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그냥 잡혀가면 그만입니다.

 

단속과 추방은 "죽음"처럼 일상적이지만 또 "죽음"처럼 낯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이주노동자들에게 단속추방은 죽음의 선고와 맞먹습니다.

 

여지껏 일궈놓은 삶으로부터 완전히 추방되는 듯한 막막함...

 

전화로 들려오는 자히드의 절규가 그랬습니다. 도와달라는 절절한 편지가 그랬습니다.

물론 모든 추방되는 이주노동자들이 자히드처럼 절규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차분하게 준비된 것들을 정리했고, 어떤 이는 침을 뱉고, 어떤 이는 끝까지 "투쟁"을 외치고 떠났지만,

 

모두 하나같이 잊혀지고 맙니다. 

 

잊혀짐에 대한 공포는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닿아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일 수 있습니다.

죽음이야 죽으면 그야말로 "끝"이지만,

단속과 추방은 "끝" 이후에도 놓지 말아야 할 지겨운 삶이 있습니다.

한 달에 약 10만원을 벌이로 다섯 가족이 먹고 살아야 하는 척박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구 불어나는 빚더미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이주노동자 운동단체들이 단속과 추방 이후의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신경쓸 여유와 여력이 별로 없습니다.

노력한다 해도 눈 앞에 이주노동자가 잡혀가는 현실이,

임금체불되고 산재를 당하는 현실이 더 긴박해보이니까요.

그래서 추방된 이주노동자의 삶은 이제 더이상 한국의 이주노동자운동이 신경써야 할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또 누구는 돕고 누구는 돕지 않는 데서 생기는 "상대적 박탈감"이 있고,

돕냐 돕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데에도  차별이 작동됩니다.

또 "돕는다"는 것 자체가 도움을 받는 대상에게 일시적인 도움이 될 망정

실질적인 자활 자체로는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돕는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자연적으로 위계관계를 맺게 됩니다.

아무리 돕는 사람이 선의를 가졌다해도, 도움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를 낮춰야 하는 강박에 휩싸입니다.  따라서 서로 도와주는 관계가 아니고서는 일방적인 도움과 자선은 둘 관계에 별로 바람직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히드의 편지를 읽고 이주노동자 합법화 모임이 자히드를 돕기 위해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후원 모금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누구는 돕고 누구는 돕지 않느냐?의 문제가 사람들 입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히드에 대한 악성루머를 퍼트리기도 했습니다.

합법화 모임 내부에서도 이런 저런 사람들의 입소문 때문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렸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평등하게" 돕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하는 회의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회의감 이면에는 어떤 전체주의적이고 조직주의적인 발상 같은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차별없이 평등하게" 돕자가 "차별없이 평등하게" 돕지 말자라는 회의로 빠지는 것이 바로 그런 증후가 아닐까...

 

돕는 것에 대한 이런 회의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리한 것이

바로 아래와 같은 결론입니다.

 

1. 돈으로 후원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실어줄 것!

Charity(자선) 보다는 Empowrment(힘실어주기)!!!

 

2. "모두 같이 누구 하나를 집중적으로 돕자!"가 아니라 개인들 혹은 모임들이 여기 저기 생겨나  각자 알아서 도와주기.

affinity그룹(자발적 친목 동아리)들의 활성화, 퍼짐, 산개, 탈중심, 그리고 네트워크

 

3. 대기업이나 정부, 큰 단체의 기금에 매달리지 말고 우리 힘으로 소박하게 돕기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이번에

"작은 대안무역"이란 걸 벌이게 되었습니다.

 

자히드의 가족이 손으로 손수 수놓고 염색한 T셔츠들을 판매하고

수익의 금의 절반을 합법화 모임의 기금으로

절반을 자히드 가족에게 주고 있습니다.

기금으로는 다치신 분들에게 10만원

어머님 상 당하신 분들에게 10만원,

뭐 대단치는 않지만 이런식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판매는 5월에 한번 개눈감추듯 했습니다.

티셔츠와 장신구들이 손으로 직접 만든거라  행사에 나가면 잘 팔리더군요.

 

각종 집회나 행사에서 게릴라 좌판을 열기도 하고

대학 축제 등에 나가 팔기도 합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합법화 모임 내의 홈페이지 http://www.stopcrackdown.net

내에 작은 쇼핑몰도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한번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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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미디어센터를 만드는 토론회

  • 등록일
    2005/04/18 22:23
  • 수정일
    2005/04/18 22:23

한국에도 Indepentent Media Center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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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자들의 선언! 이 갖는 의미

  • 등록일
    2005/04/09 11:27
  • 수정일
    2005/04/09 11:27

예전에 다운받아놓은

Andre Gorz의

에콜로지스트 선언을 읽었다.

자율평론에서 윤인환씨가 번역했는데,

에이포로 24쪽 남짓 되는 글이 전문인지

아니면 발췌인지 잘 모르겠다.

김원식 할아버지가 가지고있는 일본어로된 에콜로지스트 선언은 꽤 두꺼운 책이라고 한다.

80년대 말에 한길사에서 조홍섭씨가 번역한, 지금은 절판된 [현대의 과학기술과 인간해방]에도 에콜로지스트 선언이 한 장으로 껴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아마도 선언 자체는 24페이지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불어를 모르는 까닭에 영어웹사이트에서 영어로된 걸 찾다가 포기했다.

앙드레 고르의 다른 저작은 있는데, 에콜로지스트 선언이라는 제목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다른 제목의 저작 속에 뭍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책들도 그 제목만 봐서 내 흥미를 끄는 것들도 몇개 있었다.

[Reclaiming Work: Beyond the Wage-Based Society],

[Farewell to the Working Class] 등이 그렇다)

 

에콜로지스트 선언이라는 제목에서도 풍겨지는 것처럼

Gorz는 아마도 "공산당 선언"을  생태주의적으로 패러디하려고 했던 것 같다.

특히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자본은 그 과잉축적의 위기를 맞아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맑스의 사적 유물론을 환기시키면서,

과잉축적의 위기가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석유위기 등 점점 희소화되어 가는

자원, 재화의 문제(절대적 희소성, 재생될 수 없음)로 인해 

더욱더 돌이킬 수 없이 된다는 생태주의적 시각을 접목시킨다.

 

아니, 맑스의 유물론을 생태주의적으로 사이좋게 접목시킨다기 보다는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다시 쓰는 것을 시도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대부분의 좌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평등"관에 대해 그가  아래에 비판하는 대목만 읽어도 명확해진다.

 

유럽의 사회주의가 어떻게 사민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더욱더 글의 맥락이 머리에 들어 올 것이다.

 

한국에서 정규직과 연대한 비정규직 투쟁의 한계,

"우리는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원한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슬로건이 가진 한계를 생각해보면 읽어봐도 재밌을 것이다.

 

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부정하는 아나키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글은 그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

6. 평등과 차등

물질적 평등이 더 이상 계급적 분화를 표현하지 않을 때 그것은 이미 인간의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특권과 권력을 수반하지 않을 때, 물질적 부는 다른 사람에게 모욕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을 빈곤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물질적 빈곤도 그것이 사회의 하층계급으로 내쫓기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은 것으로도 만족한다는 선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굴욕적이지 않다. 서구의 󰡐좌파󰡑가 이러한 진리에 대해 품는 저항감은, 그들의 문화적 세계와 그들이 입각해 있는 가치가 얼마나 상품관계에 의해 획일화되고 말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에게 불평등은 󰡐차등󰡑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인간이 󰡐보다 많이󰡑 갖는가, 혹은 󰡐보다 적게󰡑 갖는가에 따라서 계급적으로 분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가치와 생활양식과 개인적 목표의 획일화만으로 상품관계와 임금노동을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켜 버린 것이다. 평등 혹은 󰡐사회정의󰡑의 이름 아래 참다운 경쟁과 선망과 권리 요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은 오직 동질적인 사회적 우주에서 뿐이다. 그곳에서는 차등이 순수하게 양적 차원의 것으로 되고 따라서 측정이 가능할 것이다. 󰡐보다 많이󰡑 혹은 󰡐보다 적게󰡑라는 범주는 주로 평등한 개인들 사이에서 불평등이 다만 경제적 차등으로서 간주되는 사회/문화적 우주를 전제로 한다.

원리적 평등이라는 허구가 자본주의의 문화적 기초이다. 이것을 통해서만 모든 차등은 화폐로 보충할 수가 있으며 또한 모든 차등을 수입의 불평등으로 옮길 수 있게 된다. 부르주아 지배의 확립기에 문화적 소수자와 문화적 편향에 대해 행해진 광폭한 억압은 이것으로써만 설명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문화적 소수자와 문화적 편향은 그들의 가치의 특수성과 차등성을 고집함으로써, 상품의 지배에 필요한 사회/문화체제의 단일 차원성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또한 보통교육을 위한 학교제도의 탄생은 이것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 학교가 획일성 바로 그 자체에 의해 가장 혜택받는 자를 한층 우대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이다. 나아가 국가에 의해서 특수한 직업윤리(혹은 󰡐의무론󰡑)의 파괴가 수행된 것도 이로써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직업을 영위하는 구성원이라면 그들의 기량을 팔거나 빌려주는 것을 거절하기 위해서 그러한 직업윤리를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활동에 고유한 의미와 내용은 억압되었으며, 화폐에 의한 󰡐보상󰡑 즉 상품적 소비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로 대체되고 말았다. 이 보상의 총계가 사회활동, 즉 노동의 결정적인 목적으로 된다. 노동은 그 고유한 내용을 남김없이 빼앗겨버린 채 임의의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연속으로 측정되고 근로자로부터 사들인 부역으로 환원되고 만다. 왜냐하면, 우리의 활동은 일체의 자율적인 합목적성을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주요한 목적으로서 돈과 상품의 구매력을 할당받는 것은 이러한 노동의 소외상태를 보여준다.

이상의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부정되는 경향을 보이는 평등화를 항상 추구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부류의 임금노동자도 바로 위의 부류의 소득수준에 도달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어느 소득수준을 넘으면 소득의 증가는 그 자체로서도 또한 그 결과 얻어질 여분의 소비를 위해서조차도 불필요한 것이 된다. 소득의 증가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사회적 가치를 내게도 용인해 주면 좋겠다는 욕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노동에 대하여 불평등한 보수를 지급하는 제도에 기초를 둔 이 사회에서 평등에 대한 요구는 소비에의 요구라든지, 사회적 불만, 또는 사회적 경쟁 등에 대해 끊임없이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감추어진 원동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득수준의 안정화가 달성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로 한정될 것이다. 첫째, 사회적으로 필요한 모든 노동이 평등한 사회적 승인(및 보수)을 향유할 때, 둘째,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무한히 다양한 자유활동 덕분에 개인적인 능력과 욕망과 취미의 무한한 다양성을 실현할 가능성이 만인에게 주어질 수 있을 때이다.

사회적 노동에 종사하는 시간의 단축과 자유로운 시간을 생산적 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상품관계와 경쟁관계의 쇠퇴를 위한 조건이다. 소비수준과 생활양식에서의 차등이 이미 보수의 다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집단이 자유시간에 추구하는 여러 가지 활동의 결과가 될 때 그러한 차등은 더 이상 불평등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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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D-Day를 준비하며

  • 등록일
    2005/03/12 14:58
  • 수정일
    2005/03/12 14:58
그래 9월 D-Day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계속 생각한 건데,
직장 생활을 청산할 준비를 슬슬 해야 할 것 같아.
먼저 생각한건, 회사의 룰에 묶여 그 일정대로 따르는 노예의 부지런함을 버리고
내 스스로 조직하는 부지런함을 습관화해야 한다는 거야.
근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예전에 놀아봐서 아는데,
일없이 빈둥거리면 몸버리고 맘버리기도 쉽상이거든.
그래서 회사에서 일하는 것만큼의 빡빡한 스케줄은 아니지만,
늘 공허한 시간이 생기지 않게끔 스케줄을 관리하는 게 중요할 듯싶어.
그래서 지금부터 약 6개월 뒤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좀 열심히 생각해보려고 해.

또 한 가지는 돈쓰는 버릇을 확실하게 뜯어고쳐야해.
점심을 사먹는 밥값만 해도 이동네에서는 사오천원이 드는데,
조금만 부지런히 점심을 싸면 한달에 10만원정도를 절약할 수 있거든.
또 택시 같은 거 안타는 것도 중요하고(오늘은 늦어서 택시 탐 ㅜㅜ),
밖에서 되도록 밥 안 사먹도록 하고,
친구들과 휩쓸려 이리저리 카페나 술집에서 만나는 것도 자제해야하고,
쓸데없는 인터넷 쇼핑 같은 건 아예 싹을 잘라야 해.
요즘 돈 나가는 거 보면 “이러다가 이런 회사생활을 계속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이 생기는 게, 이게 흔히 일반 직장인들에게 보이는 중독현상인거 같아.
내 주위의 직원들을 보면, 쇼핑에 중독되어 카드빚을 내는 사람들도 있고,
점심, 저녁을 별 생각 없이 근사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척척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거든.
생일날이면 남자로부터 10만원이 넘는 꽃바구니와 역시 1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수입화장품을 선물로 받고
저녁에는 1인분에 3만 5천원 정도하는 그릴 스테이크가 나오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한잔에 5000원 하는 와인과 함께 고기를 써는 삶이란,
예전에 너무 전형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보였는데, 회사에 몇 년 다니고 보니
그게 전형이 아니라 몇몇 부류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고,
또 그 부류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고결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세빠지게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
남자는 능력이 있어 돈이 많아야 한다는 강박,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강박.
이 두 개의 강박이 무슨 수학공식처럼 아귀가 딱딱 맞는 게 아주 신기할 정도거든.
주말이면 2만원씩 돈을 내는 네일아트숍에서 손톱과 발톱 손질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10만원을 호가하는 파마를 했다며 그날 점심은 컵라면으로 해결하는 동료도 있지.
살찌는 것에 대한 강박, 날씬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 피부가 고와야 한다는 강박,
그러한 강박들이 어쩔때는 나름대로 초연한 나를 물들이기도 해.
그러니까 싸구려 스킨 하나를 사러 들어간 화장품 가게에서 점원이
“어머 손님은 여드름이 나면서 얼굴은 너무 건조하군요.
그러면 이게 아니라, 저걸 써야해요.”하며 내미는 울트라 인텐시브 XX시리즈로 나가는
고가의 화장품을 내밀 때면, 나도 모르게 혹하게 된다는 거야.

요즘 일본어 시간에 읽는 책은 [탈 개발: 서브시스턴스 지향으로]라는 책인데,
내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인 부분에 밑줄을 쳐보면,
개발주의의 강고함, 즉 개발주의가 생각의 전환만으로 바뀔 수 없는 이유란,
그것이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래.
이 사회에서 남보다 잘 살기 위한 경쟁해야 한다는 관념과 실천,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이 스며있지 않은 영역이 없다는 거지.

과연 그래.

근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얘기가 너무 비약하는 거래.
자기 같은 경우는, 남만큼만 살자주의라나? 그 말도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네.
내 주위에 남에게 폐 끼치지 않을 만큼만 소박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 그 남만큼만 살자주의란
밑바닥까지는 떨어지지 말아야한다는 강박의 대표격인 거야.
그러니까 “남보다 잘살자”주의가 포져티브한 개발주의라면
“남만큼 살자”주의란 네거티브한 개발주의가 되는 거지.
남만큼 살자주의는 늘 앞에 “난 별로 욕심이 없어”하는 머리말을 달면서,
“근데, 이런 저런 집안이나 친구들 경조사에 부주는 꼬박꼬박 챙겨야지 인간 도리를 했다고 하겠지”,
“뭐 떵떵거리며 살진 못하겠지만 평생 살 집 하나쯤은 마련하고, 형편이 좀 되면 차도 굴릴 수 있었으면...”
“애가 생기면 기죽이기는 싫으니까 학원은 기본으로 한두 개만 보내야지” 하는
“소박한” 희망을 늘어놓는 게 일반적이야.
그걸 회사에 대입하면, ‘남보다 성공해야 한다’는 “사장 마인드”와는 조금 구별되면서
동시에 그것과 쌍을 이루는 “직원마인드”가 되는데,
결국에는 개발주의 마인드의 위계 속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지.
그게 바로 직원들이 사장 앞에서 아무 말 못하고
제 삶을 아주 통짜로 내주어 버리는 시스템인 거야.
욱해서 사표를 던지려는 순간 애들 양육비며 학원비가 눈에 아른거리는 거지.

또 고등학교 때부터 “그래도 대학은 들어가야지”하는 거,
학교를 졸업하고도 “그래도 일은 대기업에서 해야지. 뭐 여건이 안 되면 좀 괜찮은 중소기업도 나쁘진 않아.”하는 것도
남보다 잘 살겠다는 게 아니라 남만큼만은 살자는 소박한 바램인 거야.
남만큼 사는 것만도 뼈빠지는 세상에서 남보다 못사는 건 또 얼마나 서러울까?
비정규직 블루칼라와 여성노동자, 실업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노숙자의 존재는
늘 이런 사람들에게 공포심의 대상으로 다가와서 “그래도 남들만큼은 살아야지”하고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계기가 되지.
그래서 아마도 평생을 밑바닥과과 천장 그 중간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들,
“중간층”이건, “대중”, “시민”이건, “국민”이건, “서민”이건, 뭐라 부르던 간에
그들은 사실 위를 향해 뛰는 게 아니라, 밑을 공포스럽게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는 중력으로 제자리걸음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는 생쇼를
평생 벌이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결국에 이 지긋지긋한 임금노동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런 소박한 꿈보다 좀 더 근사하고 멋진 자본가의 꿈 혹은 대박의 꿈을 꾸던가,
아니면 그 꿈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길 뿐인 거지.
사실 개인적으로 전자에 더 재능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자를 더 훌륭하게 생각하는 날 누가 보면 "잉여"라 할 거야.

그런 후자의 삶의 방식을 거칠게 늘어봐 보면,
외부가 아닌 스스로에 의해 조직되는 삶,
소비와 안 친해지기,
노예의 부지런함이 아닌 자율적인 근검, 절약, 부지런함의 대안,
어제 할아버지가 얘기한 가라타니 고진이 말했다는, “의식적인 보이콧”,
비폭력 직접행동,
자급에 기반한 공동체 만들기,
잉여에서 필요로 탈출하기(소위 사회의 “잉여적” 존재들(잡민들)이 보다 쉽게 필요로 탈출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해),
학교독 회사독 조직독 빼기,
밑바닥으로부터 상상하고 거기에 적응하기,
결국엔 서브시스턴스로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등등.
내가 보기에는 이런 것들이 아까 그 후자의 삶을 이루는 것들인 것 같아.
사회니, 뭐니 하니까 거창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긋지긋한 회사를 안 다니면서 어떻게 잘 수 있을까 하며
나름대로 고민한 것의 해답이야.

그러니까 근검, 절약, 부지런함 덕목으로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성공한 자본가가 아닌,
성공한 룸펜을 꿈꾸는 것이지, 멋지잖아?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 성공한 룸펜이 한 사람 있는데,
내가 늘 존경해마지 않는 조XX란 사람이지.
어쩔 땐 십 원 한 장 안 쓰는 모습이며, 회사도 안 다는 것이 이일 저일 시간 없다고
야박하게 구는 모습을 보면 인간미며 오만정이 똑 떨어지다가도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며 철저히 자기를 조직하는 아나키스트인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

맞다, 맞다, 내 스스로의 생활을 조직하고,
또 그와 비슷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지 않는다면,
이 사회에서 실낱같은 희망이라 해도 과연 진정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기존의 삶의 규모를 유지하게 위해 내일도, 내일 모레도, 노예노동에 매달려야겠지.
평생

그래 확실히 결심한다. 9월 회사 때려치우는 D-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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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아나키 여름 토론회 Food Not Bomb

  • 등록일
    2005/03/12 13:58
  • 수정일
    2005/03/12 13:58

 

 

 

 

 

 

 

 

 

 

 

 

 

 

 

 

 

 

 

 

 

 

 

7월 25일 아나키 여름 토론회 후기

 

약 15명 정도가 모여 쌍문동 인포샵에서 즐겁고 영양가 토실토실한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먼저 이번 발표자인 Nevin이 저번에 요약해서 올린 Food Not Bomb에 관련해서 발표를 하고 중간중간 질의 응답하는 식으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Nevin은 학교에서 평화학을 전공하고 마틴 루터킹과 간디 등 비폭력주의자들의 사상과 아나키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푸드 낫 밤에는 지속적으로 상근 맴버로서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여러 활동에 참여해봤다고 하네요. 통역은 조약골이 수고해주었습니다. 다음은 매닉이 기록한 내용입니다.

 

발표내용 중 몇몇 인상적인 내용을 적어보면,
- 처음에는 반핵 시위 참가자를 위해 배급을 했지만 나중에는 노숙자 등 배고픈 사람들에게 배급하는 걸로 점점 그 포커스가 "not bomb"에서 "food"로 옮겨졌다.
- 푸드 낫 밤의 원리를 "적극적 비폭력"이라고 말하며, 투쟁도 하지만 투쟁보다는 새로운 대안 사회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둔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 회비를 걷는다거나, 돈을 기부 받지는 않는다고 해요. 또 주류 언론들과는 거의 접촉을 안하고 주로 독립언론들과 연대한다고 하네요.

 

질문과 대답

*푸드낫 밤이 베지테리어니즘(Vegetarianism)과 베거니즘(Veganism)을 지향한다고 했는데, 베거니즘은 무엇인가?
전자는 계란, 우유 등 낙농제품, 생선을 먹기도 하지만, 후자는 사탕, 빵 등도 먹지 않는 보다 철저한 채식주의자들이다. 젤라틴이나 이스트같은 동물성 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빈 자신도 미국에 있을 때에는 베건이였지만 한국에 와서는 어쩔 수 없이 동물성을 먹어야 했다고... 덧붙여, 푸드 낫 밤이 베지테리어니즘을 지향하는 것은 1) 동물에 대한 폭력 부정 2) 동물을 대량으로 사육하는 시스템이 유발하는 환경오염, 또 엄청난 양의 사료로 쓰이는 음식들을 배고픈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는다는 점 때문이랍니다.

 

*"푸드낫 밤은 라이프스타일보다는 개인의 참여에 보다 가치를 부여한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이념, 문화, 환경 등과는 상관없이 참여하고 싶은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쟤는 조선일보만 읽는 꼴보수인데, 같이 활동을 할 수 없다, 얘는 게스만 입고 스타벅스 가서 커피마시는 애 같은데, 같이 하긴 좀 거시기하다" 이런 생각은 개개인들이 가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참여하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는 거 같아요. 저번에 "조갑제가 와도 밥해 줄수 있다" 제목의 투밥 관련 기사가 생각나네요.

* 만장일치로 의사결정을 한다고 했는데, 조직의 구성인원이 많아지면 만장일치라는 게 또 하나의 강요나 억압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결정해야 하는데, 나 혼자 계속 반대해온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어쩔 수 없이 찬성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푸드 낫 밤은 지역마다 작은 그룹이 비교적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시스템이 일단 갖춰지면 의사결정 과정이 보다 간단해진다고 해요. 뿐만 아니라 웬만한 의사결정들은 개개인의 자율과 의지에 맡긴다고 하는군요. 또 구체적인 사안마다 다양한 의사결정 방식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 다른 종교나 시민 자선단체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자선단체는 노숙자들에게 무료음식을 제공하는 데 "조건"을 단다고 하네요. 예를 들어 특정 쉼터에 하루 혹은 이틀을 묵어야 한다든지, 교회에 나와야 한다든지, 성경공부를 해야한다든지 등등. 푸드 낫 밤은 그런 조건이 없는 대신 보다 친숙하게 그들의 삶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답니다. 푸드 낫 밤의 활동, 식재료를 마련하는 일, 음식을 장만하는 일, 배급하는 일, 설거지를 하는 일, 의사결정 등을 함께 하기도 하면서 노숙자를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똑같은 주체로 보고 그들에게 음식을 찾는 법, 음식을 조리하는 법, 얻은 음식을 함께 나누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네요. Empowerment! 다시 말해 뭔가 준 다고 해도 "힘을 주는 것"이 관건이라는군요.

 

*미국의 푸드 낫 밤의 활동을 보면, 그냥 길거리나 공원에서 음식을 직접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쉼터 등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왜 그런 건가?
쉼터와 연계를 맺으면 보다 쉽게 식재료를 기부 받을 수 있답니다. 낯선 단체에서 나와서 식재료를 기부하라고 하면 상인들이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네요. 그래서 좀 이름난 자선단체나 쉼터의 이름을 살짝 갖다 붙이면 기부가 잘 이루어진답니다. 나중에 푸드 낫 밤이 일정 궤도에 올라서고 인지도를 얻으면 이런 구라를 칠 필요가 없어진답니다. 또 쉼터 등에는 음식준비 시설이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고 하네요. 한편 필리핀의 푸드낫 밤의 경우에는 멤버들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준비해서 활동을 한답니다. 무리하게 기부를 받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만큼만 얻어서 준비를 한 대요. 이점에서는 투밥과 좀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었고요.

 

* 어떻게 음식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는가?
미국같은 경우는 정해진 장소에 정규적인 배급 시간을 정해서,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게 끔 한답니다. 찌라시등을 뿌리기도 하고요. 반면 필리핀에서는 스퀏커뮤니티나 빈민가, 배고픈 지역이 이곳 저곳에 널려있기 때문에 "음식 왔어요"하고 소리만 지르면 애들이 막 뛰어 나와 쫓아다닌다고 하네요.

 

*유기농을 어떻게 확보하는가?
모든 식재료가 유기농이기는 힘들지만, 유기농상점이나 지역 농산물 상회 등에서 재료를 구입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대규모 상업, 수출농작물에 대해 반대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발표와 질의 응답이 끝나고 나서 투쟁과 밥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주로 투쟁과 밥과 푸드 낫 밤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다른점
1. 식재료를 구하는 방식. 푸드낫밤이 식재료를 기부받는 대신에 투쟁과 밥은 돈을 기부받아 식재료를 산다. 남아도는 음식을 나누자는 측면에서는 푸드낫밤이 더 급진적인 듯.
2. 이주노동자 명동 농성단과 연대하는 투밥은 농성단원들이 원하는 고기를 요리해줘야 할 경우가 많다. 반면 푸드 낫 밤은 연대의 대상이 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도하는 대로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 고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고기의 나쁜 점과 채식의 장점을 홍보한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투쟁과 밥의 한계'로 흘러왔습니다.
1. 식사준비만으로도 너무 빠듯하다, 각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와 여력이 더 이상 없는 듯이 보인다. 왜 그럴까?
2. 그 이유는 아마도 이주노동자 명동 농성단이라는 특정한 하나의 조직하고만 연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명동농성단에서는 때론 투밥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기존 노동자 투쟁과 연대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하고 나면 정리집회를 해야 하고, 정리 집회를 할 때는 "대표"의 연대발언을 해야하는 식이다. 그러한 틀들이 답답하고, 또 의사소통하기가 힘들다. 투밥이 이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아닌 사람들의 연대의 통로가 되긴 했지만 결국에는 투밥의 활동이 새로운 투쟁이나 활동에 대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기존의 농성단 틀에만 매몰되어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았다.
3. 투밥은 강한 조직화보다는 개개인의 자발과 자연스러움에 더 가치를 둔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기본적인 조직화를 무시했기 때문에, 지속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활동이 일회적이고 겉도는 듯 하다, 무언가에 천착하거나 넓혀나가지 못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보다 강력하게 조직화를 했더라면 오히려 지속성을 막았을 것이다. 강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즐겁게 참여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4. 투밥의 경우에는 한 두 사람에게 책임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 푸드낫밤의 경우는 이럴 때 어떻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네빈이 대답.
만약 7명이 있는데, 3명이 더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활동 역량에 맞게 활동을 축소한다. 일을 더 열심히 해보자는 의지가 있을 경우에는 보다 합리적으로 일이 할당 될 수 있도록 조정한다. 푸드낫 밤의 구성원들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해준다"라는 생각으로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먹거리를 만드는 데, 함께 만들어 먹자"는 개념으로 푸드낫 밤 활동을 일상화하고 있다. 무언가를 해준다는 생각을 할 때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지겨워지지만, 내 걸 내가 먹는다는 생각으로 하면 그건 바로 자연스런 내 삶의 일부가 된다. (이 대목은 매우 새겨 들을만 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결국은 내 삶이 자연스럽게 그들과 스며들어야 한다는 얘기 같아요. 그 일은 내가 가진 특권, 소비패턴, 생활패턴 등을 전반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언뜻 들더군요. 좀 어려워 보이지만, 당장 다 바꾸는 게 아니라 조금씩 한가지씩만 바꾸면 될 것 같기도 해요^^)

 

이후... 기록자 매닉이 자리를 뜬 관계로 그 뒤에 어떤 논의들이 오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약골이 신곡 발표회가 있었지 않았나 싶은데요, 혹시 끝까지 남았던 사람은 이어서 정리해주면 고맙겠습니다. 또 정리가 안된 부분 있으면 보충들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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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Not Bombs(폭탄대신 음식을)”이란 무엇인가?

  • 등록일
    2005/03/12 13:56
  • 수정일
    2005/03/12 13:56
아나키의 여름 세 번째 토론


*주제발표 : 전세계적 무료급식운동인 Food Not Bomb 소개       

발표자: Nevin

*공동토론 : 한국에서의 무료급식운동의 가능성과 방향에 대하여,

           Food Not Bomb에 비춰본 [투쟁과 밥], 지금까지의 활동 성과와 한

           계, 앞으로의 방향


날짜: 7월 18일 (일요일) 3시

장소: 인포샵(카페 가디스)

오는 길 : 수도권 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서 내려서 2번출구로 나옵니다.

          마을 버스 05번, 06번을 타고 두번째 정거장인 '북부농협'에서

          내려 10미터 정도 가던 방향으로 올라오면 보이는 4층건물의

          2층(가디스)입니다. 


전화: 02-991-5020

홈페이지: anarchy.gg.gg (또는 anarclan.net의 아나클랜 게시판을 참조)


토론방식: 3 ~ 4시 - 발제자의 주제발표와 그에 관한 질의 응답 및 토론

          4 ~ 5시 - 공통주제에 대한 공동토론


(발표자 Nevin의 발제 요약문입니다.)


“Food Not Bombs(폭탄대신 음식을)”이란 무엇인가?

푸드 낫 밤은 반핵 활동가 그룹에 의해 1980년 메사추세츠의 캠브리지에서 처음으로 결성되었다. 푸드 낫 밤은 대외적으로 아나키스트 조직은 아니지만 아나키즘의 원리에 의해 조직되었고, 그 안에서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활동하고 있다. 푸드 낫 밤은 비폭력을 지향할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지도자도 없고 모든 구성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푸드 낫 밤은 가난과 노숙의 문제, 식량 분배와 낭비의 문제에 주로 관심을 기울인다. 더 나아가서 환경운동이나 수감자 지원 단체와 같은 다양한 정치, 사회적 활동 그룹들과 폭넓게 연대하고 있다. 푸드 낫 밤은 미국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유럽,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서도 푸드 낫 밤을 찾을 수 있다.


왜 푸드 낫 밤이 필요한가?

* Food Not Bomb 은 “우리의 돈이 폭탄을 만드는 데 쓰일 것이 아니라 음식을 공급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의미를 구현하고자 한다.

* 우리는 필요 없이 많은 음식을 낭비하는 경제 체제에 살고 있다. 이 낭비된 음식들이 배고픈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이러한 경제체제 속에서 우리는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또 어떻게 공급되는 지에 대해서 민주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 푸드 낫 밤은 채식주의(배지테리어니즘 + 배거니즘)와 지역적 유기농산물의 생산과 공급을 장려한다.

* 푸드 낫 밤은 사회 변혁에 앞장서는 다양한 급진적인 운동들을 지원한다.


역사

푸드 낫 밤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역사를 간단하게 언급해 보면,


* 미국에서 반핵 시위 때 처음 출현했다. 1930년대 스타일의 빈민 무료 급식소를 연상시키는 음식배급을 시작했다.

* 냉전 기간 동안 반핵운동을 지원했다.

* 점차로 노숙과 가난의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했고, Homes Not Jails(감옥대신 집을)과 같은 새로운 그룹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 푸드 낫 밤은 점점 더해가는 정부의 탄압과 폭력에 직면하고 있다.



조직화

푸드 낫 밤이 조직되는 원리와 그 정치학에 관한 고찰


푸드 낫 밤은 비폭력 원리를 채용한다.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최선의 정치적 선택은 적극적인 비폭력밖에 없다는 것이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바다.

활동: 시위와 여타 활동들

음식 준비: 채식과 유기농


* 푸드 낫 밤 활동에는 다양한 수준의 참여가 가능하다. 조직은 외형적 라이프스타일 보다는 개인의 참여에 보다 가치를 부여한다.

* 푸드 낫 밤은 조직의 외부와 내부에서 일어나는 각종 억압과 차별, 예를 들어, 인종차별, 계급차별, 성차별, 동성애차별 등을 없애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 푸드 낫 밤은 모든 사람들의 의사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의사결정 방식을 채택한다.

* 푸드 낫 밤은 활동가이든 노숙자이든 간에 모든 활동을 최대한 개인들의 역량과 자율에 맡기려고 노력한다.

  

그룹의 출발

아래 내용은 미국에서 푸드 낫 밤이 어떻게 결성되고 운영되는지에 관한 지침이다. 실제로 그룹이 결성되고 운영되는 방식은 그 지역의 상황과 요구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모든 일을 한 번에 이루려고 하기보다, 지역적 상황과 목표에 맞춰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1. 전화나 우편 연락처를 정한다. 개인의 사적인 주소보다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

2. 단체의 존재를 알리고 참여자들을 모으기 위해 전단지 등을 돌린다.

3. 이동을 위해 차량을 준비한다.

4. 식재료들을 구한다: 협동조합, 건강식품점, 빵집 등의 사람들에게 쉼터와 무료음식배급소의 취지를 설명하고 음식이나 식재료 기부를 부탁한다. 정규적으로 재료를 가져갈 날짜를 잡는다.

5. 쉼터와 배급소에 음식을 배급한다. 사전에 쉼터와 배급소에 대한 정보를 잘 알아두고 배급 스케줄을 짜서 정해진 시간에 배급할 수 있도록 한다.

6. 한번 이런 정규적인 음식 배급 시스템이 돌아가게 되면 공원이나 길거리 노숙자들에게 직접 음식을 나누어줄 수 있게 된다. 또 각종 연대 집회 참가자들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다.

7. 음식이 충분해지면 특정 지역에 정규적인 배급이 가능해진다. 이런 정규적인 배급을 통해 활동가와 노숙자들의 지속적인 만남이 가능해지고, 노숙자들로 하여금 음식 준비와 배급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할 수 있다.

8. 이런 기본적인 시스템이 갖춰지면, 주방과 공동 회합 장소 등 공간 활용 문제가 부각되고, 음식을 준비하는 것 외에 소식지 만드는 활동과 같이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활동들은 점차 조금씩 넓혀나간다.


필리핀에서의 푸드 낫 밤


* 펑크 씬과 결합해서 자선 콘서트를 열어 주방기구와 같은 다양한 장비들을 살 돈을 마련한다.

* 시장을 돌아다니며 음식과 식재료 기부를 받는다.

* 주로 스쿼팅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장소를 빌어 요리를 한다.

* 개인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히치하이킹을 하거나 공공교통을 이용한다.

* 무료급식소에 배급하지 않고 곧바로 공원이나 스쿼팅 공동체에 배급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이야기들 외에도 미국과 필리핀에서 어떻게 푸드 낫 밤 활동에 참여했는지 개인적인 체험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다. 비록 푸드 낫 밤의 상근 멤버로 지속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했지만 시카고, 뉴욕, 보스톤, 워싱턴, 필리핀에서 시위와 주간배급 등에 참여한 경험이 많다. 이상은 내가 이야기할 내용의 요약이다. 이번 아나키여름 모임에서는 모이는 분들의 주요 관심 부분에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정말 신날 것 같다.


푸드 낫 밤에 관련해서 두 가지 좋은 자료가 있는데, www.foodnotbombs.net 과 C.T. Butler와 Keith McHenery가 쓴 The Food Not Bombs Handbook이 있다.


Peace, ne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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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에서 소수자, 잡민으로!

  • 등록일
    2005/03/12 13:25
  • 수정일
    2005/03/12 13:25
저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민족주의란 시대적, 상황적, 공간적 맥락에 따라 해방의 동력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수구보수의 논리도 될 수있다고 말입니다. 또 "민족"이란 일종의 초월적 표식으로써 그 표식 안에 여러가지 의미들이 서로 싸우면서 공존하면서, 때로는 한 의미가 다른 의미를 누르고 표식의 모든 영역을을 장악하기도 한다고 말입니다.
또 민족을 국가와 달리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생겨난  "공동체"의 개념으로 끌고 가는 것도 가능하다고도 생각했구요. 이웃으로 태어나 비슷하게 먹고 입고 말하고 사랑하는 자연적 공동체로 말입니다.

그래서 민족을 부정해 버리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어리석은 일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또 민족이 내뿝은 엄청난 아우라와 "대중 동원력"을 생각할 때, 무슨무슨 다른 주의들을 막론하고 운동가들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개념이기도 했죠.

하지만, 민족 개념 안에 포섭될래야 포섭될 수 없는 성노동자의 관점에 서면, 민족 개념 안에 포섭될래야 될 수 없는 이주 노동자의 관점에 서면, 또 가사라고 불리는 재생산영역에 묶여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게 되버린 우리 할머니, 엄마의 관점에 서면, 남성의 혈통에 근거한 가족을, 그 기본 단위로 삼는 가부장적 민족주의의 건전한 결혼을 거부하는 "히스테릭한" 노처녀의 관점에 서면, 동성연애자들의 관점에 서면, 여러 이러저러한 소수자의 관점에 서면, "대중동원"의 편리한 수사를 포기하고 보다 더 근본적인 해방과 자유의 관점에 서면,

더이상 "민족"이라는 관념에 매달리지 않게 된더군요.

또 민족주의가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민족"적 상황이 우리 삶의 실체이고 현실이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거부되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현실론", 혹은 "운명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민족"은 실체가 아닌 관념이며, 더 정확히, 실체와 현실을 조작하고 거기에 힘을 가하려는 권력자들의 관념이라구요. 한마디로 "현실론"을 조작하는 관념이라구요. 더 간단히 이 데 올 로 기 라구요.

현재 이곳 코리아에서 민족 개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정체를 계속해서 승인하고 합법화하는 허구적 "현실론"을 조장할 뿐입니다. 이제는 길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피부색이 좀 더 검은 사람들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편파적 "현실론"의 기반이기도 하구요. 민족의 자랑, 월드컵의 함성 속에 명동 성당 한켠에서 단식 농성을 하던 그들, 이주노동자들을 보이지 않게 만든 것의 주범도 "민족"이라는 관념을 기반으로 민족주의입니다. "국익"이라는 "현실"을 위해서 이라크에 파병을 해야한다는 논리도 "운명공동체"인 "우리" 민족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와 "저들"에 대한 구분은 원초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태어나며 자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와 "너" "그들"이라는 개념을 인식의 바탕에 두게 되니까요. 하지만 "현실론"을 조작하는 관념론인 민족주의와 이러저러한 민족중심담론은 단지 상대적 개념일 뿐인 "우리"와 "저들"을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놀라운 마술봉을 숨기고 있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마술봉이죠.

"민족'이라는 관념과 민족주의에 미련을 내비치는 학자, 엘리트, 운동가들은, 제 생각에, 이 마술봉의 힘에 대한 집착을 은연중에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봅니다. 그래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재고해야한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민족주의는 나쁘다'고 하면서도 또 계속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뇌이게 되는 것입니다.

어쨋든, 민족의 개념과 민족주의로 이제 더이상 해방과 자유를 추구해야 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는 게 저의 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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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부지

  • 등록일
    2005/03/12 13:23
  • 수정일
    2005/03/12 13:23
어제 할아버지에게서 밤 늦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스며있는 고독과 맬랑꼴리로 내 마음도 고독과 맬랑꼴리로 가득차 버렸다. 할아버지는 우리 떼거리들과 무언가를 갖이 하고 싶다고 늘쌍 말씀하신다. 내가 할아버지를 만난건 근 3년.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늘 대뜸하시는 말씀이 "너 밥은 어떻게 먹니?"하는 거였다. 한마디로 이 놈(혹은 년이) 이 지 밥벌이는 지가 하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이자 훈계인 거다.
몇몇의 젊은 사람들은 할아버지 말투에서 80년대 풍의 권위와 훈계조를 발견하곤 대뜸 반발심을 느끼곤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스스로 권위를 덜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곤 때론 외경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긴 몇십년 동안 몸과 마음에 길들여져 있는 권위적 사상의 잔재들을 완전히 떨쳐내는 것이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90년 대 초(이미 이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에 '과감히' 자신을 공산주의자나 맑시스트가 아닌 아나키스트로 부르기 시작한 할아버지의 변신은 어떤 운동가나 사상가도 하기 힘든 일이다.

할아버지에게도 단점은 많다. 자신이 가진 이념과 사상의 지도를 어떠한 맥락도 고려하지 않은채 대뜸 들이미는 태도라든지, 아니면 상대방을 그것에 의해 쉽게 '재단'하거나 쉽게 '신뢰'하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너의 생각을 들어보자'하면서 끝내는 할아버지 자신이 모든걸 얘기해버리는 식이라든지. 그래서 때론 할아버지와 냉랭한 관계를 유지한 적도 있지만, 어쨌든 할아버지만큼 철두철미하게 '자신'인 사람은 본적이 없고, 또 철두철미하게 약속을 지키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스스로 조직화된 하나의 커다란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와 만나면 느슨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고 또 어떤 영감 같은 것을 받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지누집레이블 공연이 있는 그 시간에 상봉이와 묘아에게 열댓번 전화를 했고 전화가 통하지 않자 마침내는 경찰에게 수소문, 할아버지는 결국 경찰차를 타고 드럭까지 가셨단다. 그리고 장터가 열리는 장소에도 찾아봤으나 헛수고, 홍대 근처를 1시간 30분동안 헤맨 끝에 결국 외로운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고 한다. 우리가 사이트 상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사이에 이렇게 소외되는 사람도 한 두명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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