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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미누의 표적단속 소식에 기사를 썼다.
원래 영문기사를 쓰려고 했는데 영어빨이 안서서
우선 한글로 쓰고 디디한테 고쳐달라고 했다.
오늘 내일로 범한테 영문으로 번역해달라는 참이다.
언제 미누씨가 강제추방을 당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참 마음이 급하다.
맘에 안드는 부분은 알아서들 고치시고
널리 퍼트려주시길...
카피레프트, 영리허용, 개작허용, 작성자 바꿔치기
다 허용이니 널리 알려주세요.
오만한 단일민족국가 한국에 외국인이 영구체류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 뿐이다. 한국인과 결혼하거나 20억을 투자하거나. 한국 법에는 연속 5년 이상 합법 체류하는 자에 한해 영주권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5년 이상 합법 체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어처구니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비두, 샤말, 아노아르, 마숨, 라주, 까지만. 이들은 모두 10년 이상을 일하다가 추방당한 이주노동자들이다.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당연한 권리를 주장한 것으로는 그 대가가 너무 혹독하다. 한국 정부가 부르짖는 다문화라는 말도 허망한 껍데기에 불과해질 뿐이다. 한국에 사는 이주민들의 권리를 위해, 미누의 석방을 위해 한국 정부에 강력한 항의서를 보내자!
방금 용산에 있는 친구가 메신저로 전해왔다.
오늘 아침 신부님들이 계신 남일당 옆 건물이 철거당했다고 한다.
철거 도중에 신부님들이 폭행 당하고 옷 찢어졌다.
결국 문정현 신부님 들려나가고 한창 때려부수고 있는 중인가 보다.
보다 자세한 얘기는
http://korea.indymedia.org/drupal/에
그 친구가 기사 올리기로 했다.
노무현 장례일을 틈타 사람들이 관심이 한곳에 집중된 사이
쥐새끼처럼 강제철거를 한 거다. 정말 어이가 없다.
자칭 "진보"는 다른 곳에서 울고 있고,
정말 울어야 할 사람들은 뒷골목에서 두드려 맞고 있다.
미치고 환장하겠다.
전전단지에 넣으려고 만들어본 imc 아이콘.
그림판으로 그랬어.
그림판은 별 기능은 없지만, 간단하게 그림 그리는데는 쵝오.
엥겔부처님이던가? 그림판으로 늘 멋진 그림을 그리는 분이...
우리 햄스터 찍찍이의 배가 요 며칠 사이에 묵직해졌다.
집에서 꺼내 뒤집어보니 배 양쪽으로 젖들이 빨갖게 돋아나 있다.
아, 임신을 했구나.
그 얌전해 보이던 볼탱이가 어느새 앙앙홍홍을 했단 말인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임신한 햄스터에게는 단백질과 칼슘을 섭취시켜야 한단다.
그래서 멸치와 삶은 달걀을 먹이고 채소를 듬뿍 주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찍찍이는 참 낙천적인 아이다.
나에게 번번히 발라당 뒤집힘을 당하고도
내 손이 집으로 들어가면 먹이주는 줄 알고 막 들러붙는다.
애도 쑴풍쑴풍 잘 날것 같다.
한편 볼탱이는 한번 뒤집어주면 그 후로 완전 삐져서
내 손만 들어가면 음침한 데로 숨는다.
이 쬐그만 포유류에게도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니
그게 참 신기하다.
햄스터를 키우면서 그동안 참 모르던 감수성을 알아가는 중이다.
살아있다는 것, 생명이라는 것, 그 하나 하나의 몸짓과 표정에 대해서,
그리고 생명을 키우고 있다는 책임이라는 뿌듯한 감정이란... 허
밥을 잘 안 먹으면 아픈 건가 걱정되고,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 햄스터가 될까 걱정되고,
내가 주는 먹이 잘 먹고 잘 뛰어 놀면 그저 기쁘고,
손에 들면 묵직하고 따뜻하고 두근두근하고 포곤한 느낌에
자꾸 만지고 싶은데,
이러면 안되지, 얘들이 얼마나 귀찮겠어
힘없고 작은 동물이라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필요할 때 챙겨주고, 귀찮아할땐 그냥 내버려두는 법도
배우고 있는 중.
(하지만 계속 만지고 싶다...)
참, 이참에
찍찍이 애들나면 분양해가실 분!
몇 마리를 낳을지는 모르지만...
어제 돕이 알려줘서 알았다.
빈집에 나카지마의 친구가 와 있으며,
미즈타 후 상이 아프다는 사실을.
그래서 부랴부랴 언니가 보내준 한라봉과 천혜향(흐미 이 귀한 것슬)을 싸들고
빈집으로 향했다.
빈집은 비어있고 (처음 본 빈 빈집)
옆집에 여성들이 왁자지끌 모여 수다를 떨고 있네.
그리하여 한라봉과 천혜향은 그녀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여튼 맛있게 먹으니까 기분 좋더라.)
나중에 빈집에 다케시씨를 비롯한 고노와 일본인 친구들이 왔는데,
몇몇은 한국말을 잘하고 몇몇은 못하고.
이럴때만 일본어 공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나.
하지만 손짓, 발짓, 어설픈 일본어와, 고노다이스케 사전을 이용해서
대강 의사소통은 되더라.
다케시는 혹시 몇년전에 억수로 더운 날 나카지마와 함께 온 7명의 아나키스트 무리 중
하나일까 생각도 했는데, 그날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날씬한 체구의 살짝 펑크스런 느낌, 짙은 쌍커플이 인상적인
참 매력적으로 생긴 젊은이였다. (ㅎㅎ)
너 얘 아니, 재는 아니, 하면서 인맥조사도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잠깐 얘기도 하다가
후 상이 아프다는 얘기로 이어지고,
빈집을 떠날때 후상에게 전하는 나의 메시지를 동영상기능이 되는 카메라에 담았다.
후상, 마니꾸데스. (후상, 매닉이에요)
겐키니 잇데 쿠다사이. (건강하게 계세요)
아토데 아소비니 이키타이데스카라 (나중에 놀러갈고 싶으니까요)
사요나라 (안녕히 계세요)
후상에 대한 기억은, 2001년 그 무덥던 여름날,
오사카의 집에 놀러가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할아버지와 나, J, 윤, 정, 김 등 몇명의 아나키즘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존경해마지 않는 '폭력론 노트'의 저자이자 아나키스트인 무카이 코를 만나러 갔었다
(무카이 코는 몇년 전 고령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무카이코와 함께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가 무카이코의 나이어린 파트너 미즈타 후상(당시 50대)과,
무카이 코와의 대화를 방해한다며 할아버지로부터 타박을 들었던 무카이 코의 광팬 히모리씨였다.
히모리씨는 댜음해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이스라엘 철수를 부르짖으며 어느 공원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히모리씨의 유서 --> http://www.dopehead.net/board/view.php?id=dmz&page=1&sn1=&divpage=1&sn=off&ss=on&sc=off&keyword=모리&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46 )
나카지마는 그중 유일한 젊은이에다, 해사하게 생긴 꽃미남이었기에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몇 년 후 나카지마가 한국에 왔을땐 거의 40이 다 된 그의 모습에서
해사한 꽃미남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였지만 (어우 야, 난 너무 얼굴만 보나 봐)
그날 밤 오사카의 아파트에서 나카지마가 입은 일본식 가운(파자마라고 해야하나)이
바람에 살랑이던 모습이 강하게 인상에 남아있다.
그는 무카이코, 미즈타후에겐 거의 '가족'과 같은 존재로, 무카이코가 예전부터 만들어온
아나키스트 소책자인 "흑"의 편집을 맡고 있었다. 물론 글쓴이로도 활동하면서.
미국, 특히 서부연안 아나키스트, 밥블랙이니 존저잔이니 하는 이들의 논쟁과 논객들을 다룬 특별판은
나에게도 보물 1호 중 하나였다. ('과거'형이던가 - -;)
미즈타 후는 18살 무렵 조그만 마을에서 무작정 상경을 하여
당시 반전운동을 하던 오다마코토([전쟁인과 평화인가]의 저자, 녹색평론) 의 사무실을 찾아가
무조건 여기서 일하고 싶으니 날 좀 써달라며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다 무카이코를 만나고 둘은 생의 반려자이자 동지가 되었다.
그녀의 콧소리 섞인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뽀얀 피부 (나보다 더 좋더라 헐),
특히 신기한듯 쳐다보는 소녀같은 동그란 눈동자가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경험과 연륜에서 나온 지성과
경험과 연륜에도 불구하고 넘쳐나는 천진난만함과
권위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당돌함
이런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울려보이는 인물을 만나기란 흔치 않을 거다.
미국이 이라크에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의 편이냐 우리의 편이냐를 전 세계 에 강요할 때,
후는 폭탄테러를 저지른 소녀의 일화 속에서
소녀를 둘러싼 '폭력적 세계'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 하며
자신은 결단코 '테러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했던 그 글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그분이 아프다는 말에 가슴이 아팠다.
세계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인 되는 사람이 있다.
할아버지와 미즈타 후상이 그런 인물들인데,
나는 그들에게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싶은 후회가 밀려든다.
다케시가 갈때 조그마한 마음의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은데, 언뜻 떠오르는 게 없네... 쩝
인권활동가로 일하는 친구가 콜럼비아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가 서울에 있을때 콜롬비아의 준군사 조직의 만행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무나 안녕,
방금 첫 여행에서 돌아왔어. 3주 걸렸는데, 정말 놀라웠어. 콜럼비아에 대해서 네가 번역했던 기사 생각나? 준군사 조직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젊은이 얘기 기억하지? 2주 동안 그의 마을에 머물면서 그의 부인도 만나고 그가 납치되어 죽임을 당했던 장소도 가보았어. 마을 공동체와 군사조직 간의 회담에도 참석했는데, 군인들은 우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 같았어. 하지만 마을 사람들 얘길 들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는지! 그 살해당한 젊은이의 부인이 군인들을 향해 자기 남편을 죽이지 않았냐고 항의하는데 정말 감동적이더라. 버스로 9시간, 트럭으로 3시간, 그리고 보트로 2시간 강을 건너 마을에 왔어. 마을에는 15가구가 전부야. 차는 전혀 없어. 사람들은 주로 산에서 나무를 베어 노새와 배를 이용해서 도시에 팔아. 마을에는 가게가 몇 개 있고, 바도 하나 있어. 전기는 전혀 없어, 가게와 바에 발전기가 한대씩 있을 뿐.
토요일에 바에서 파티가 벌어졌어. 밤새도록 음악을 들으면서 춤도 좀 추었어. 노새들은 밖에 묶어놓고, 사람들은 고무 장화나 박차가 달린 부츠를 신은 채 살사댄스를 추었어.(여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흙 때문에 장화를 신고 있어) 박차를 달고서도 어찌나 폼나게 스텝을 밟던지!
여기 사람들은 군대의 억압과 가난때문에 힘든 생활을 하며 살아가지만, 다른 곳보다는 좀 형편이 나은 것 처럼 보여. 농민회와 풀뿌리 조직들은 현실도 잘 인식하고 있고, "식량주권"(식량안보 보다 더 발전된 개념)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젝트들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어. 식량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큰 산업농이나 다국적 기업들이 설 자리를 없내자는 거지. 또 밀림을 보전하고 동물의 사냥을 제한하는 등 생태주의 실천에도 열심이지. 이들은 유전자 변형 종자와 농약에도 반대하고 있어.
마을에 텔레비전은 2개뿐이야. 아이들은 주로 바깥에서 치기장난을 하면서 하루종일 뛰어 놀아. 마을에서 학교를 지었는데, 정부에서 선생을 보내지 않고 있대.
회담에 가기 위해 노새를 타고 5시간 산을 올랐다 다시 5시간을 돌아오는데 엉덩이가 어찌나 아픈지. 노새 타는 건 정말 고통이었어. 고통을 참는 법과 불쌍함을 무릅쓰고 박차로 차는 법을 배워야만 노새를 탈 수 있어.
처음 들른 마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아나키스트 마을 같았어. 규모가 작아서 그런게 가능하지 않나 싶어. 급수시설, 학교관리, 전화선 등 모든 생활의 문제를 공개 회의를 통해 결정해. 내가 갔을 때에는 회의가 혼란 그 자체였어. 여러가지 내부 문제도 많아보이고. 하지만 정말 훌륭한 마을이었어.
40명의 마을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작은 보트와 트럭을 타고 도시로 나왔어. 2명의 활동가가 아직 감옥에서 재판중이야. 총 80명의 사람들과 데모를 하며 재판에 갔어. 가는 길에 보트에 있는데, 뭔가 하얀 가루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야. 작은 비행기들이 헬리콥터의 보호를 받으며 몬산토 농약을 뿌리고 있었어. 코카를 박멸한다는 명목으로 뿌린다지만 다른 작물과 숲, 가축들에도 피해가 막대하대.
지금은 한국 호스텔에 돌아왔어. 주인이 나한테 한국말을 해서 너무 좋아!
내 여행 얘기를 듣고 싶어 할 것 같아 써보았어.
새로 생긴 인디미디아는 훌륭하던데!
잘 있어
XX
BBC와 CNN은 Riot이라고 했다.
그래서 Infoshop과 Indymedia에를 들어가봤더니, Riot이라는 표현을 그냥 쓰네.
서구에서는 지배자들이나 아나키스트들이나 좀 나쁜 어감 그대로 Riot은 Riot인가보다.
뭐랄까, "비폭력"을 받아들이는 순간 "폭력"을 받아들여야 하는 모순,
비폭력을 선언하는 순간 빠져드는 폭력의 그물망,
그래서 폭력이든 비폭력이든 담론싸움은 말 잘하는 사람들끼리 알아서 진행되는 것이요,
어쨌든 난 이 나쁜 놈의 세상에 짱돌을 들겠다는 정신,
그래 니들이 날 폭도라고 부르면 난 폭도다! 인가?
그리스에서 16살짜리 남자애가 경찰에 대들다 총에 맞아 죽었다.
주말내내 아테네와 티살로니키라는 도시에서 화염병과 최루가스가 터지고
상점들이 불타고 바리케이드가 쳐지는 큰 시위가 있었다고 한다.
한동안 또 블로그에 너무 뜸했다.
뭣부터 써야 할까... 외면에 내면에 일어난 일들은 많지만,
이상하게 요즘은 겪었던 일들이 타블로이드 신문을 읽는 것처럼
마음의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 경험의 홍수, 경험에 대한 해석의 홍수 속에
머리는 연일 홍수, 그 속에 신기하게도 마음은 바짝 말라만 간다.
늘 했던 일, 보았던 것, 들었던 것, 말했던 것들을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지만,
기록은 정리가 아니던가, 글은 무형의 생각을 유형의 틀로 조직하는 것이 아닌가,
그 정리와 조직의 강박이 기록으로부터, 글로부터 도망치게 했던 거다.
게으름, 나태함, 쉽게 할 수 있는 변명이지.
사실은 두려움이 글로부터 도망치는 깊은 이유가 아니던가.
나태함을 가장한 소심함으로 행동의 세계에서 뒤걸음질 치듯,
결국은 '나'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뜨끈뜨끈해질 대로 더워진
뇌를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는 지쳐서 포기하는 것이다.
그냥 하늘에 구름 몇 점 무심히 떨구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쓰고 싶었다.
바람은 그저 자유로울까?
어쩌면 부딪히는 힘들 속에 긁히고 멍들고 아파하는 그 속내를
내가 모르는 것일지도...
회사일로 프랑스 칸과 니스엘 갔다.
그곳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해변,
밤이면 둥근 달이 금빛으로 빛나고, 그 아래
아랍 대부호들의 호화로운 요트가 떼로 정박해 있다.
말로만 들었던 그 사치스런 모나코 몬테 카를로스 도박장과 명품 거리,
가게 앞에는 검은 양복을 차리입고 무전기를 든 가드들이
아마도 1000만원 이상을 호가하리라 여겨지는 보석 드레스를 지키고 서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떼제베를 타고 파리를 들리는 길에,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남프랑스의 시골 풍경을 보며,
"팀장님 전 이만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 도보여행을 떠나겠습니다" 하고
옆에 앉은 보스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다음 역에서 내려보는 상상도 했었지.
파리는 소문대로 불친절했지만, 한편 그들이 불친절이 부러웠고,
저렇게 감정노동을 하지 않으니 그 감정은 얼마나 풍요로울까도 생각했다.
몇 개월을 파리에 살아봤다는 에릭은 파리인들을 "나태하고 시니컬하고 무관심하다"고 묘사했다.
만나면 호들갑스럽게 인사하고, 뽀뽀하고, 살뜰히 알뜰히 챙겨주는 그 친절하기로 소문난(?)
에릭이 사랑하는 콜롬비아인들의 뜨거운 기질에 비하면 파리인들은 너무 차가운 측면이 있는 것도 같다.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
정해진 코스대로 베르사이유를 가고, 루브르를 가고 오르세 미술관을 갔다.
지하철 역무원은 내가 "루.브.르"하면 못알아 듣는다.
혀를 잔뜩 긴장시켜 목구멍으로 살짝 말아넣은 듯한 발음으로
' 뤼브ㅎ' 해야한다. 조금이라도 불어 읽는 법을 배워왔더라면 그런 고생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을.
찬란했던 제국주의 시절에 식민지로부터 강탈해온 온갖 보물들이 가득한 루브르 박물관,
"아 원근법아 너 참 사랑스럽구나'에서 본 우첼로의 전투 그림은 생각보다 컸지만 좀 어두침침했고(아마도 보관의 문제), 한때 도서관에서 심심하면 즐겨보곤 하던 전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들 몇 점을 입을 떡 벌리고 감상했다.
모나리자는 그냥 통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인상주의 이후 작품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있었다.
납작납작하게 물감을 바른 세잔의 정물화는 구도의 꽃이라 할만 하고,
사진의 재현 방식과도 같은 드가의 그림을 보면,
사각형의 그림틀 안에 모든 요소를 그 알맞은 자리에 배치해서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이후 그림들의 그 고루한 강박에서 벗어나,
잘린 시선이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는지,
잘린 몸뚱아리가 얼마나 더 완벽하게 완전한 몸뚱아리를 상상케 하는지를 증명하는 듯,
구석에 앉은 술집 여인의 그림만 보아도 그 현실적 맥락이 느껴지는 듯,
강박 없는 리얼리티, 무심코 찍은 사진의 진실성이 느껴진다.
예전에 바라가 그랬지, 가장 잘 찍은 사진은 그냥 잘 찍으려는 생각없이 무심코 눌러 찍은 사진이라고.
특히 요즘같은 복제도 그냥 복제가 아닌 디지털 복제 시대에 예술 영역은 도처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그냥 허공 같다.
셔터를 눌러대는 공허한 동작이
내 안에 없는 진실을 담아내려는 듯...(앗, 내가 언제 이렇게 본질주의자였던가)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킹왕짱'라는 동어반복적인 새로운 유행어가 떠돌고 있고,
증시는 연일 바닥을 치고, 예금대신 작년에 가입한 펀드는 반토막이 나 있다.
진보 지식인과 경제 학자들은 연일 빈곤을 준비하라는 칼럼을 쓰고,
친했던 친구들은 외국에 뿔뿔히 흩어녔다.
에릭이 가고, 마지막 인사할 때 그의 눈에 맺힌 따뜻한 눈물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귀농하겠다면 고향 택사스로 돌아간 한 친구는 살림살이가 어려워 다시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영어강사 일을 할 것 같다.
할아버지에겐 아직 안부인사 못했고,
이번주 토요일부터 일본어 강독을 다시 시작하고,
붑은 종합병원2에서 다친 외국인 엑스트라 역을 하러 아침 댓바람부터 촬영장엘 갔다.
오늘 저녁엔 베토벤 바이러스를 볼까 바람의 화원을 볼까 살짝 고민하지만,
강마에의 독설도 시들해지고, 바화의 플롯들도 뭔가 엉성하고 맥 빠지기만 한다.
오늘 서점에서산 책이나 읽어야지.
현재 남미 콜롬비아에서는 농민, 활동가들이 정부군과 친정부적인 준군사조직에 의해 무자비하게 납치되고 살해되는 등 심각한 위협과 탄압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 회사인 현대자동차가 이 탄압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미타라 강 계곡의 ACVC농민협회의 안드레스 길, 미갤 곤잘레즈는 최근 콜롬비아 정부의 탄압에 의해 희생된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ACVC는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공동체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며 인권운동과 농민운동을 지원하는 풀뿌리 조직이다.
ACVC가 생겨난 후 12년 동안 콜롬비아 정부군과 준군사조직들은 ACVC를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지난 2년 동안에만 14명 이상의 그 지역 주민들이 정부군에 의해 살해되었고, 2007년 9월 이후 콜롬비아 정부는 좌익 게릴라를 원조했다는 명목으로 6명의 활동가들을 체포했다. 체포된 4명의 활동가들은 풀려났지만, 안드레스 길과 미갤 곤잘레즈는 아직도 감옥에 있고, 미갤이 체포된 지 8일 뒤에 그의 아들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미갤 안헬 곤잘레즈가 콜롬비아 군부에 의해 살해되었다.
사회운동의 씨를 말려버리려는 콜롬비아 정부
왜 콜롬비아 정부는 이토록 미갤과 안드레스와 같은 이들을 탄압하려고 하는 걸까? 콜롬비아에서는1960년대 초부터 좌익 게릴라 조직들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콜롬비아 정부군 사이의 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지금도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ACVC와 같은 사회 운동단체들을 무차별 탄압하고, 이를 통해 다국적 기업과 현지 기업들이 마음대로 콜롬비아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토지를 수탈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초부터 정부는 우익 준군사조직들을 이용해 손에 피를 묻히는 ‘더러운 일’들을 대행하게 하였다. 이 조직들은 활동가, 노동조합원, 농부, 선주민 등 수천 명의 사람들을 살해하고 고문하고 강제로 땅에서 몰아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정부의 준군사조직 소탕 정책의 허위
그런데, 이러한 준군사조직들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자 콜롬비아 정부는 2003년부터 “평화정착”이라는 이름으로 준군사조직 해체에 들어갔다. 이때 가장 규모가 큰 준군사조직이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우파 정부와 해체 협상에 들어갔다. 이 협상은 준군사조직에 면죄부를 주고 고위 정부관료들의 책임을 무마하기 위한 쇼에 불과했다.
준군사조직과 정부관료들간의 관계가 싸늘해지자 준군사조직의 장군인 살바토레 만쿠소는 텔레비전에서 정치가, 군부, 사업가들로부터 대대적으로 원조를 받은 사실을 폭로했고, 우리베 대통령은 즉각 만쿠소와 13명의 준군사조직 장군들을 미국으로 빼돌렸다.
만쿠소와 그 일당들은 현재 미국에서 수감 중이며 어떤 언론도 이들과 접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군부, 기업가 중 어느 누가하나 그들의 범죄에 책임을 지는 이가 없을 뿐 아니라, 조직들은 소탕되지 않고 그 형태를 바꾸어 존속하고 있다. 콜롬비아 NGO그룹인 인데파즈는 적어도 9,000명의 준군사의 사병들이 콜롬비아 전역에 잔존하고 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검은 독수리파”와 같은 조직은 아직도 콜롬비아 정부의 “더러운 전쟁”을 대행하고 있는 중이다. 올 6월에는 ACVC 등 여러 인권단체들이 검은 독수리파에 의해 지역을 떠나라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콜롬비아 군대 또한 준군사조직을 대신해서 직접 살해에 나섰다. 체포된 ACVC의 활동가 미구엘 곤잘레즈의 아들도 게릴라로 활동하다 정부군과 싸우던 중에 사살되었다고 거짓 발표되었다. 콜롬비아-유럽-미국인권연대(콜롬비아 내의 117개 인권단체 연합)에 따르면 2002년에서 2007년까지 “전투 중 사살”로 거짓 발표된 사례만 955 건이 넘는다고 한다.
다국적 기업의 책임 현대자동차도 피할 수 없다!
다국적 기업들은 준군사조직이 폭력으로 닦아놓은 길을 통해 콜롬비아 내에서 안정적인 이윤을 추구할 수 있었다. 2007년 5월 18일 만쿠소는 공청회에서 전임 지도자인 카를로스 카스타뇨가 직접 현대의 콜롬비아 지사장인 카를로스 마토스를 만났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카스타뇨가 먼저 현대에게 헬리콥더 지원을 요청했고, 현대는 이를 거절하는 대신 연간 4대의 택시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택시는 준군사조직들에게 아주 긴요한 교통수단이다. 현대가 기증한 택시들은 분명 ACVC와 같은 단체의 활동가들을 위협하고 살해하는 데 직접 동원이 되었을 것이며, 이에 대해 현대 측에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농민들을 땅에서 몰아내고 노조를 탄압하는 데에 준군사조직들이 이용되었다는 것이 이미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콜롬비아는 노조활동을 하기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이다..
2008년 상반기에만 31명의 노조 활동가들이 암살되었다. 1989년 이후에는 8명의 코카콜라 노조활동가들이 살해되었고, 때문에 동료와 후원자는 코카콜라 상품의 불매운동을 주장해왔다. (http://www.killercoke.org). 만쿠소에 따르면 미국 바나나 회사인 돌, 델몬트, 치퀴타 등이 준군사조직에 자금을 지원했고, 치퀴타는 170만 달러를 상납한 사실을 시인했다.
진실, 정의, 완전한 보상
안드레스 길과 미갤 곤잘레즈의 석방 이외에도 여러 가지 과제들이 남아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즉각 실제적인 준군사조직 해체를 단행하고 시민 사회에서 폭력을 추방해야 한다. 또한 국가 폭력에 희생된 이들에게 완전 보상을 실시하고 강제로 땅에서 쫓겨난 이들에게 땅을 돌려줘야 한다. 뿐만한 이러한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의 더러운 폭력의 실체를 밝히고, 이 폭력을 지원한 코카콜라, 현대 같은 기업들도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ACVC와 시미타라 강 계곡의 농민들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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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언어교환 모임, 서울리데리티
현대의 택시 제공에 관련된 뉴스
http://www.elcomercio.com/noticiaEC.asp?id_noticia=111513&id_seccion=5
- ACVC 관련 정보
http://prensarural.org/spip/spip.php?article1236
http://prensarural.org/spip/spip.php?article698
- 콜롬비아의 최근 상황
http://www.counterpunch.org/brittain08192008.html
다음 주소로 ACVC 활동가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항의 편지 또는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편지와 이메일 맨 처음에 “Libertad para los lideres de la ACVC” 구호를 써주세요. 영어나 스페인어로 쓰시면 되어요.
콜롬비아 대통령
Dr. Álvaro Uribe Vélez,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Colombia
E-mail: auribe@presidencia.gov.coHYPERLINK "mailto:auribe@presidencia.gov.coa"
Fax: 57 1 566 2071
콜롬비아 부통령
Dr. Francisco Santos, Vicepresident of the Republic of Colombia
E-mail: fsantos@presidencia.gov.co; buzon1@presidencia.gov.co
대통령 직속 인권 프로그램
Dr. Carlos Franco, Director
E-mail: cefaro@presidencia.gov.co
법무 장관
Dr. Mario Hernán Iguarán Arana. Fiscal General de la Nación
E-mail: contacto@fiscalia.gov.co; denuncie@fiscalia.gov.co
행정 감찰관
Dr. Volmar Pérez Ortiz. Defensor Nacional del Pueblo
Telephone: 314 73 00
E-mail: defensoria@defensoria.org.co
아래 시민단체에 같이 보내주세요:
Humanidad Vigente
Email: humanidadvigent@etb.net.co
방금 멍구한테 들은 소식.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났다.
아... 눈물이 난다...
오늘 저녁에 헌병대가 잡으로 올지도 모른단다.
집회때마다 병역거부운동하는 친구들이
의경들을 설득하는 걸 보았다.
이렇게,
비폭력저항의 씨가 뿌려지는구나!
마음이 승리하는
기쁨의 씨, 고통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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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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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답답해요 ㅠ_ㅠ 노제 가면 안되냐고 뻥치고 조퇴해서 용산으로 달려가고 싶은 심정...부가 정보
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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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려부수는 건 아니고 건물 주변에 팬스 작업했나 봅니다.부가 정보
호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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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들...완전 사병이군요. 한국의 경찰은...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