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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세상에서 퍼온 반칠환의 시 두편...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반칠환
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바퀴 - 속도에 대한 명상5
우리는 너 나 없이 세상을 굴러먹고 다닌다
아버님, 오늘은 어디서 굴러먹다 오셨나요
아들아, 너는 어디서 굴러먹다 이리 늦었느냐
여보, 요즘은 굴러먹기도 예전 같지 않아요
이거, 어디서 굴러먹다 온 뼈다귀야
바퀴를 타자 우리 모두 후레자식이 되어 버렸다
지난 여름 부안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부안에 갔다.
방폐장을 반대하기 위해 매일 저녁마다 시내를 꽉 매운
촛불시위의 인파로 들떠 있던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거리의 풍경이었다.
부안성당 안에서 영화제가 조용히 치뤄지는 가운데,
나는 피자매연대 친구들과 함께 대안달거리대를 홍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던 터라 달거리대를 만들며 수다를 떨다가,
몸이 뻐근해지면 옆 공터에서 그 좋다는 천연염색을 했다.
다라이에 황토와 숯 물을 퍼다 T셔츠를 치대고 또 치대기를 반복,
20분정도를 치대고 빨랫줄에 널어 햇빛에 바짝 말린다.
다 마르면 또 다라이에 넣어 치대기를 반복했다.
천연염색과 피자매 홍보가 끝나고
부안영화제 준비팀의 짱돌씨를 따라 계화도엘 갔다.
주민들의 힘으로 방폐장 건설이 성공적으로 무산되었지만,
새만금 반대는 눈물이 날 정도로 절박해진 상황이다.
"4공구를 터라!" "생명의 숨통을 터라!"
계화도는 새만금 반대 투쟁의 오랜 근거지이자,
이제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마지막 투쟁의 보루와 같았다.
계화도에서도 갯벌체험 학교 '그레'는
활동가들이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나가기 위해 모이는 집합소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레에 도착한 것은 저녁 어스름 무렵.
짱돌씨가 힘들게 만든 갯벌 영화제 무대를 보여주겠다며 우리를 갯벌로 인솔했다.
갯모기들이 사정없이 달려드는 가운데 바라본 바다,
물을 따라 수평선으로 달려 나가던 시선이 우뚝 선 무언가에 가로막힌다.
갯벌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새만금 방조제.
그 위로 한 웅큼 달무리를 가득 머금은 노란 달이 떠 있다.
영화제 무대는 만조가 되어 밀려든 물속에
아름다운 누각이 되어 달빛 그림자를 드리우며 서 있었다.
무대로 가기위해 바지를 걷고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보드랍고 폭신한 뻘이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자 보세요. 이 아름다운 갯벌이 곧 사라져 버릴거에요.” 하는 짱돌의 말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갯벌에서 그레로 돌아오니 사람들은 삶은 닭과 막걸리를 펼쳐놓고
술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낯선 사람들 속에 넉살 좋게 어울리지 못한 채,
구석에서 낮에 만들다 만 달거리대를 꺼내서 혼자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인 듯 얼굴이 검게 그을린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이게 뭐에요?"
면으로 만든 생리대라고 대답하자 신기한 듯 쳐다본다.
“아주머니는 생리대 뭘로 쓰세요?"
내 질문에 조금은 쑥스러운 듯,
"난 그냥 휴지로 대충 대. 우리 애는 그 뭐시냐, 사다가 쓰는거, 그거 쓰는데,
나는 기냥 휴지 한장이면 돼. 양두 얼마 없구."
"사다가 쓰는 일회용 생리대는 우리 몸에도 안 좋고 환경도 엄청 파괴한대요.
휴지도 좋지 않고요. 저랑 같이 이거 만들어서 써 보세요.
양도 별로 안 많으시다면 천으로 이렇게 만들어서 쓰는 게 좋아요."
내 말에 아주머니는 “귀찮아. 그냥 휴지로 써도 되는데...”하며 손을 저으신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려 하자 아주머니는 바쁜 듯 냉큼 부엌으로 내빼신다.
작업은 대략 실패한 듯,
새만금사업 반대를 하는 주민분이니 생태적인 면생리대 더욱 공감하리라는 나의 기대가
살짝 무너지는 순간.
다음날 영화제는 전날의 무대 앞에서 조촐한 마을 잔치처럼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무대에서 떨어진 갯바위 위에 삼삼오오 물새 떼처럼 앉았다.
스피커가 무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바람에
반주와 가수의 노래가 엇갈리고, 노래와 관객의 박수 소리가 엇갈리는
난장판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달빛 아래, 갯벌 위에, 유쾌하기만 했다.
바야흐로 시간은 밤 10시가 다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다리던 영화 "갯벌의 여전사" 상영시간이 돌아왔다.
"갯벌"에 "여성"이 붙었다. 거기에서 "전사"라면 얼마나 래디컬하랴!
벌목을 막기 위해 나무를 껴안은 인도의 여성들의 운동,
다국적 기업들의 상업작물인 커피나무 사이사이에 온갖 곡식과 채소들을 심은
아프리카 여성들의 자급 실천 투쟁.
그만큼 여기 계화도의 "갯벌의 여전사"도 내 입맛만큼 에코페미적이고 래디컬한 장면을
연출해주리라는 기대. 몇 시간을 버스를 타고 일부러 내려온 부안이 아니더냐!
내 관념을 치장하고 있는 온갖 "에코"들이 메아리치고 있는 가운데,
영화 속에서 낯익은 한 여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장면은 멀리 수평선과 섬들이 보이는 해창 갯벌 어디쯤일까?
갯바람 속에 한 여성이 생합을 캐기 위해 열심히 그레질을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전날 밤 달거리대를 보며 뭐냐고 물어보던 그 아주머니가 아닌가!
그의 이름은 유 기 화.
평화로운 삶을 위해 갯벌로 들어와
생합을 잡으며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고 말하는 그는
자랑으로 내보인 대안달거리대가 무색하리만큼
도시의 “대안” 그 너머에 갯벌과 이미 하나가 된 삶을 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갯벌과 하나 된 삶을 지키기 위한 계화도의 주민들과 함께
도시인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가는 새만금 사업의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
찬 바람부는 청화대 앞에 일인시위를 하며 열심히 투쟁중이다.
그런 그에게 알량한 지식과 대안생리대를 들이대며,
그의 생태감수성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려 들었다.
마리아 미즈가 말했던가,
“서브시스턴스 없는 저항 없고 저항 없는 서브시스턴스 없다”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경쟁과 착취의 구조 속에서
지역의 자치와 자립이란 자본주의의 개발체제와 대량생산소비체제에 대한 저항 없이는 불가능하고, 또 반대로 이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 가능해지려면
바로 “우리의 것을 우리가 길러 먹고사는” 서브시스턴스, 그 위에 선
자립과 자치가 토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
그레질하던 그녀의 모습 위에 오버랩 되는 그녀의 일인시위 기사를 읽으며
나는 비로소 서브시스턴스와 저항이 하나 되는 것이라는 엄연하고 절박한 진실 앞에
숙연해진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대안생리대 운동이 과연 어디까지 근본적일 수 있을까?
어디까지 “래디컬”해질 수 있을까? 어디까지 내려와 흙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소비와 생산이 분리되고, 개인과 개인이 찢어져 있는 도시의 생활 속에서
대안생리대는 또 하나의 웰빙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대안생리대를 직접 내손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자급이고 자치인가?
그 재료인 면은 목화 한 송이 이 땅에서 생산되는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제초제와 농약을 필요로 하는 헐값의 유전자 조작 목화이기에,
이미 그 목화 자체가 환경파괴와 농민들의 자치적 삶의 파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또, 대안달거리대가 이 사회의 진정한 대안이 되려면,
재료 자체가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생산, 유통, 소비와 폐기, 모든 것을 포함해서
다 대안적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면화를 길러내는 손, 그것을 면으로 짜는 손,
그것을 달거리대로 만드는 손, 그것을 사용하는 손, 그것을 버리고 처리하는 손,
이 모든 손들의 관계, 다시 ‘사회관계’라고 하는 우리들의 모든 관계망들도
모두 대안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동안 대안달거리대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석연치 않은 마음의 실마리가
어느 정도 잡히는 듯하다.
모든 것이 물신화되고 상품화된 도시의 때를 버리지 못한 채 “대안”을 논하다 보니,
“대안”의 의미마저 물신화되고 관념화되어
시장의 교환가치처럼 주고받을 수 있는 그 무엇쯤으로 여겼었나 보다.
육체와 삶은 상품과 소비의 홍수 속에 갈갈이 찢어지더라도
마음은 한 가닥 행복과 안정의 주술 속에 놓이고 싶은 나머지
이렇게 살아도 충분히 생태적일 수 있고 대안적이라며 속으로 거짓말 치고 있었나 보다.
어서 빨리 이놈의 정신분열에서 벗어야 한다.
그래서 천성산의 땅에 몸을 낮추어 뭇 생명들의 신음소리를 들은 지율스님처럼
그레질하는 갯벌의 여전사들처럼, 세 번 걷고 한번 땅에 귀 기울이는 삼배일보처럼
몸을 낮추어 땅과 가까워져야 한다.
그래야 환경과 생태의 의미가 분절된 지식이나 교환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닌
삶이자 저항 그 자체로 다가올 것이다.
유기화씨에게 달거리대를 가르쳐주기보다
내가 그녀로부터 그레질을 배우는 것이 옳다.
(흠... 쓰다 보니 좀 준엄한 어투의 글이 되고 말았군, 쩝)
마리아 미즈의
서브시스턴스의 관점
O. Ressler의 비디오에서 발췌한 번역문
2005년 독일의 Cologne에서 녹화
저는 마리아 미즈라고 하고, 은퇴한 사회학 교수입니다. 파흐호흐 학교의 여기 사회교육대에서 1972년에부터 연구를 시작했었죠. 저는 또 여러 가지 사회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여성운동에서부터 시작해서 생태운동, 평화운동, 1997년 이후에는 반세계화 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있죠.
먼저 우리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서브시스턴스 경제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란 저와 저의 두 친구인 클라우디아 폰 베르호프와 베로니카 벤홀트 톰슨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사람과 함께 1970년대에 이 이론을 함께 발전시켜 왔죠.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서브시스턴스 경제”가 아니라 “서브시스턴스 관점(perspective)”입니다. 즉, 구체적인 경제 모델이 아니라 새로운 지향성, 경제를 보는 새로운 접근법이죠. 그 두 가지는 완전히 다릅니다. 서브시스턴스 관점은 단지 경제에 적용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역사, 그리고 다른 모든 분야에도 다 적용이 되는 것이지요.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는데, 도대체 ‘서브시스턴스’가 무슨 의미냐는 거예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서브시스턴스란 바로 상품생산의 정반대에 서 있는 것이라고요. 상품생산은 자본주의 생산의 목표입니다. 모든 생산되는 물건들은 상품화를 거쳐야 하죠. 이는 오늘날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브시스턴스 생산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목표를 향해 있습니다. 즉, 인간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죠. 이것은 돈과 상품의 생산을 통해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직접 삶을 생산, 재생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품의 생산”이 아닌 “삶의 생산”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서브시스턴스의 관점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여성의 가사노동문제를 다루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그때 전 세계적인 토론이 하나 진행되고 있었는데 각지의 페미니스트들이 참가했었죠. 주제는 “자본주의에서의 가사노동의 의미”였습니다. 즉, 가사노동은 왜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가, 왜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가, 왜 부불노동인가? 라는 문제였죠. 우리는 자본주의 하에서 가사노동은 지불될 수 없다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가사노동의 대가가 지불 된다면 자본주의의 축적모델은 붕괴하고 말테니까요. 더 이상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엄청난 비용 상승이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된다는 거죠. 모든 가사 노동에 임금을 지불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출산, 육아, 남성을 위한 재생산 노동, 각종 보살핌 노동 등. 만약 이런 것들이 정규직만큼 임금을 보장받는다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모델이 완전히 바뀌어야 할 겁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브시스턴스의 개념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개념인데, “삶의 생산” 이라고 불리는 이 서브시스턴스 노동은 모든 지불노동의 선결조건으로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장했어요. “서브시스턴스 노동이 없으면 모든 지불노동은 존재불가능하다. 하지만 지불노동이 없어도 서브시스턴스 노동은 여전히 존재한다.” 라고요. 음식, 집 등 살림에 관련된 노동들은 온갖 형태의 “삶”뿐만 아니라 노동 전체를 뒷받침하는 필수전제조건입니다. 이 일들은 매우 가치 있지만 결코 금전적으로 보상받지 못하죠.
꼭 가사노동만이 비용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자급농들도 이와 비슷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도 시장에 물건을 내다팔지만 임금노동자는 아닙니다. 눈여겨 봐야할 것은 그들의 노동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국민 총생산(GNP)이나 국내 총생산(GDP)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뉴질랜드 여성인 마릴린 워링이 “만약 여성이 계산된다면(If Women Counted)”이란 책에서 쓴 표현처럼 그들은 계산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만약 여성이 계산된다면 어떨까요? 매우 흥미로운 책입니다.
그리고 나서 세 번째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자급농 또한 가사노동과 관련이 있고, 나아가 둘 다 식민지의 노동과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 셋이 모두 제3세계에 체류하면서 가지게 되었죠. 저는 수 년 동안 인도에 있었고, 제 두 친구는 남미에 있었어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오랜 기간 동안 식민지로 착취 받지 못했다면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만약 오늘날 “식민지”(저는 아직도 이들을 식민지라고 부릅니다)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면 축적될 자본이 없어질 겁니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식민지적 관계라고 부릅니다. 남녀 관계도 식민지적이고, 자급농과 기업의 관계 또한 식민지적입니다. 거대도시와 시골의 관계 역시 식민지적 관계지요. 무엇보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서브시스턴스 관점과 서브시스턴스 사회와 경제는 저절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의도적인 정책들을 통해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브시스턴스 사회는 2차 세계대전 전에 시골과 도시를 가릴 것 없이 세계 전역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독일에서는 소농들이 전체 농산물의 대부분을 생산해서 사람들에게 공급했었죠. 또 놀랍게도 도시에도,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광범위한 서브시스턴스 생산물이 존재했었습니다. 어느 미국 페미니스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 주요 산업도시의 동네마다 상당량의 서브시스턴스 활동이 지속되고 있었다고 해요. 우선 이웃 간의 상호부조가 존재했습니다. 상호부조의 원리, 호혜의 원칙이 작동하고 있었어요. 이웃끼리 서로 도와가며 작은 텃밭에서 채소나 과일을 가꾸거나, 시장에서 싸게 사다 집집마다 저장해두었죠. 바느질이나 작은 규모의 수선 등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가난한 노동 계급에게 이런 상호부조가 없었다면 도시에서 살아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위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경제 모델을 이식하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바로 포디즘입니다. 첫째 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졌고, 그 임금으로 살 수 있는 것들과 직접 만들어내는 것을 비교해 봤을 때 그 차이가 어마어마해졌죠.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스스로 만드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또 농가들은 빚더미에 허덕이게 되고 더 이상 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농사짓고는 더 이상 못살겠다. 떠나야겠어.” 하며 농촌을 등졌어요. 오늘날까지 똑같은 정책이 이어지고 있죠. 뿐만 아니라 산업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농업 전체를 단일경작, 대량생산, 화학 비료와 농약, 거대 농기계 체제로 바꾸려는 압력이 가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석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이제 우유, 버터, 고기, 계란 등을 대량생산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이제는 여기저기에 거대한 기업농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들은 정부 보조금을 받아 잉여 농산물을 생산하고, 이 생산물들은 잘 알려진 대로 제3세계에 덤핑 판매됩니다.
반면 제3세계의 농민들에겐 이러한 기회는 전혀 주어져 있지 않죠. 더구나 똑같은 농업 정책이 “녹색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제3세계에도 이식되어 있습니다. 소농들은 기업농과 경쟁 상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빚더미를 짊어진 채 땅을 잃거나 팔아버릴 수 밖에 없었어요. 그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의 슬럼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슬럼가에서도 그들은 서브시스턴스 생산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죠. 우리가 서브시스턴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여기 이 Bielefeld 회의의 초점도 바로 제3세계에서의 서브시스턴스 생산에 관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들의 슬럼가 사람들이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관찰하였습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지만 붙여먹을 땅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해요. 일용직, 절도 등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거나 하인, 식모 일들도 서슴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들을 보호해줄 어떠한 사회 안전망도 존재하지 않죠. 서브시스턴스 생산이 농촌에서는 산업개발 정책에 대항하는 저항으로서 요구되었지만, 도시에서는 그 자체가 생존의 정치학이 된 것입니다.
지금 아주 적절하게 제게 질문을 해 주셨는데요, 그렇게 박탈당한 삶이 어떻게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공해줄 수 있냐는 것이죠? 좀 터무니없는 말로 들렸을 법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생존방식과 생활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우리는 방금 전에 얘기했던 그 오래된 원칙들이 그들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상호부조하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합니다. 비록 아주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생산하는 주체성과 권리를 회복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보다 새롭고 긍정적인 관점임에 분명합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발견이죠.
물론 현금이 필요합니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오직 돈을 위해 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겁니다. 돈을 버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지요. 서브시스턴스 생산 또는 서브시스턴스 지향은 돈으로 사는 상품보다 훨씬 더 포괄적으로 우리의 욕구를 해결해줍니다. 사실 상품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요. 오직 물질화된 죽은 노동뿐이지요. 그들은 사용되면 버려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새로운 상품을 구입하면서도 영원히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은 가전제품의 기술혁신과 함께 갑니다. 흑백 TV만으로는 부족해서 컬러TV를 장만합니다. 그리고 나면 컴퓨터와 휴대폰이 필요해지지요. 이제는 아이들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어요. 말하자면 끝이 없죠, 그렇다면 지금 행복하고 만족스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미국에서 좋은 삶(good life)을 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것은 오래된 경제 개념인데,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경제활동의 목표로 설정한 바 있었죠. 경제활동의 목표는 좋은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일하고 또 일해도 좋은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해요. 그렇다면 좋은 삶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바로 그것이 서브시스턴스의 목표입니다. 서브시스턴스는 우리가 계속해서 세뇌되었듯이 빈곤이나 비참한 삶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서브시스턴스가 아니라 (그런 것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제대로 된 서브시스턴스라면 생존뿐만 아니라 보다 좋은 삶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동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좋은 삶이 실현가능해지죠.
우리 스스로가 권리의 주체이고,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자주적인 존재라는 것을 다들 인정하시겠죠? 이건 8시간 노동을 하고 돈을 받는 것과는 완전히 종류가 다른 만족감을 줍니다. 마치 65살이 되면 좋은 삶이 올 것 같이 생각들을 하는데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지요. 많은 이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도 소외된 노동을 보상할 수 없어요. 반면 서브시스턴스 관점에서 보면 좋은 삶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몇몇 사례들을 여러분들께 말씀드리지요. 방글라데시에 있는 제 친구들에 대한 얘깁니다. 그들은 농촌에 침투해 들어온 다국적 기업에 대항하는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토양은 황폐화되고 물은 비소로 오염되었으며 수확량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거죠. 단일경작을 하게 되면 생산량이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것이 녹색 혁명의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죠. 먼저 여자들이 “나야크리쉬 안달론”이라는 새로운 농민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여자들은 녹색혁명과 함께 남자들이 자신들을 때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죠. 예전에 여자들이 종자 관리를 맡아 할 때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폭력이었어요. 그 전에는 종자가 여자들 손에서 관리되었고 농부들은 이들로부터 언제 씨를 뿌려야 좋을지 조언을 듣곤 했었어요. 상황을 인식하게 된 여자들은 단결해서 세상을 바꾸기로 했죠. 운동은 전적으로 여자들의 주도로 전개되어 나갔어요. 운동의 제 1 목표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되찾는 것이었죠. “우리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는 거죠. 실제로 이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농민들은 하나같이 오직 행복한 삶을 원한다고 얘기해요.
여성들이 내놓은 첫 번째 주장은 절대 다국적 기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을을 무독성 마을로 선언하고 어떤 다국적 기업도 독성물질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고 못을 박았죠. 아, 깜빡 잊을 뻔했는데, 많은 여성들이 삶을 비관해서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가 많이 있었죠. 오늘날 똑같은 원리들이 다시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다시 새롭게 부활된 이 원리들로 인해, 산업국가의 자본 투입에 의존하지 않는 풍요롭고 생산적인 농업이 가능해진 것이죠.
그 외에도 우리는 많은 것을 재발견해냈습니다. 가령 다양성을 들 수 있죠. 그들은 단일경작을 지양하고 직접 만든 퇴비를 썼습니다. 또 서로 도우며, 더 이상 종자회사에서 종자를 구입하지 않았어요. 거의 대부분의 마을에 씨앗 창고가 있는데 이것도 여성들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되고, 여성들이 씨앗을 저장하고 보관하는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다시 주권을 되찾게 되었어요. 이들은 전 세계 소농 연대 기구인 비아캄파시나가 주장하는 ‘영양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모든 서브시스턴스는 이 영양주권과 함께 시작된다고 봅니다. 이런 운동이 방글라데시에서 아주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얘기한 것은 일례에 불과하지요.
여기 독일에서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서브시스턴스 관점의 예가 많이 있죠. 좀 잘 알려진 예를 들자면 “니더카우훙겐”이나 “롱고 마이”와 같은 공동체를 들 수 있는데, 이들 공동체는 벌써 오래전부터 서브시스턴스 라이프스타일을 견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 가장 제 흥미를 끄는 것 중의 하나가 국제 공동 텃밭운동입니다. 이 텃밭들은 괴팅겐의 난민 여성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여성들로부터 괴팅겐에 텃밭을 만들게 된 계기를 들어보았는데요. 난민의 생활이 너무 불행하고 늘 자선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에 신물이 나 있던 중, 한 사회사업가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대요. 그들은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어요. 곧 이들은 한 복음교회로부터 조그만 땅을 얻어서 함께 경작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땅을 분할해서 각자에게 배당하는 대신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 여성과 남성들이(남성들은 나중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해요) 함께 경작하는 공동 텃밭으로 운영을 하게 된 거죠. 그러는 동안 독일 여러 도시에서 벌써 7개의 국제 공동 텃밭이 생기게 되었어요. 퀠른에도 몇 개가 생겼죠.
오늘날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을이나 도시 어딘가에 작은 서브시스턴스 섬을 세우고 거기에 만족할 수는 없어요. 세계화된 경제체제에서라면 우리도 전지국적인 시각을 견지해야만 하죠. 그것이 현실입니다.
오늘날의 개인주의적 이기주의(모든 경제활동의 중심에 개인의 이익과 효용을 두는 것)를 극복하고 그 대신 새로운 원리들, 가령, 상호부조, 호혜, 공동체의 연대감, 협동, 공유 등의 원리가 들어선다면 문제는 달라질 겁니다. 또 오늘날처럼 소비와 생산을 분리시키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질 거예요.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지금의 삶이 비록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더라도 당장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비 모델을 벗어던지는 것은 정말 힘들지요.
또 한가지, 만약 우리가 서브시스턴스를 지향한다면 다른 종류의 기술이 필요해질 겁니다. 현재의 기술은 늘 소모적이고 쉽게 낡아버립니다. 기술 개발에 드는 스트레스 비용 또한 만만치 않죠. 또 현대기술은 결코 체제 중립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자본주의에 편향되어 있어요. 물론 가부장적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는 기술에 대한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상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 더 손쉽게 일을 하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한가, 하고 물어야 합니다.
공업사회와 획일화된 산업문화가 가장 생산적인 시스템이라는 믿음이 사람들 사이에 만연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농업뿐 아니라 다른 모든 형태의 획일적인 문화에 두루 팽배해 있어요. 즉, 이런 종류의 일이 가장 생산적다, 저런 방식의 일이 가장 생산적이다, 서브시스턴스 생산은 완전 비생산적이다 등등의 신화 말입니다. 그래서 서브시스턴스 생산은 국민 총 생산 속에도 포함되지 않죠. 오직 화폐가치로 환산되는 것만이 생산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 생각은 이미 잘 알려진 생산성 개념에도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너무 편협하기 때문에 노동과 서브시스턴스의 생산력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합니다.
동물, 식물, 인간 등 다양한 생물 간의 공생, 한 장소에서 서로 도우며 좋은 삶을 일구어가는 것. 이러한 삶은 아무리 많은 상품문화를 한 자리에 모아놓는다고 한다고 해도 결코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겁니다.
영문번역 - 리사 로젠블랫
한글번역 - 매닉
나에겐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가끔은 새까만 33개의 해를 지나도록
배운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지나온 시절이 허망해진다.
남들이 보면,
그리고 내가 33해 동안 그렇게 생각해왔듯이,
하찮고 귀찮고 사소한 것들...
바로 '일상'이다.
그 목록들을 한번 적어보면
깨끗하게 빨래하기
자주 청소하기
밥 남기지 않고 음식 버리지 않기
김치 담그기
간장, 고추장, 된장 담그기
각종 밑반찬 만들기
화분가꾸기
적어놓고 보니, 대부분 어머니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저절로 나이가 되면 알게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밥을 잘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고
매일 청소를 잘 하기 보다는 수학문제 하나를 더 푸는 것이
내 미래를 위해, 내 입신출세를 위해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각박한 경쟁의 시스템과 학교를 거치면서
내머리에 찬 것은 전혀 내 삶과 연결되지 않는 지식의 파편들과 허영,
엘리트 의식, 생활에 대한 멸시, 어머니에 대한 비하, 그리고
권위에 순응하는 방식이다.
내가 책을 파고 있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김치 담그고, 도시락을 쌌다.
그래서 모더니티와 현대의 지식은 식민지 우리 어머니를
착취한 물적 토대위에서 병든 꽃처럼 피어나나 보다.
혁명은 부엌에서부터
혁명은 재생산에서부터
혁명은 어머니를 닮아가며
그렇게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삶과 재생산의 영역을 "사회화" (달리 말해, 계량화, 수량화, 시장 가치화)하는 것을
진보라고들 말한다. 부불노동이란 개념은 지불노동을 전제하는 개념인 것처럼,
숨겨졌던 노동을 시장 가치로 환산하면 사회적으로 노동의 가치가 인정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전세계 글로벌 경제의 스펙트럼에서
하나의 부불노동이 지불노동의로 전환되면 '다른 곳'에서 더 많은 부불 노동이 생겨난다.
빙산의 더 많은 부분이 물 위에 뜨면 더 많은 부분이 가라앉아야 한다.
이런 사회화의 방식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야 말로 혁명이 아닐까?
언론에서는 황우석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찬반론을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생명윤리" VS 난치병 치료로만 부각시키는 것 같아요.
종교계의 입장도 배아 보호, 배아의 "인성" 주장에만 치우친
남성중심적인 생명담론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성은 쏙 빠져있죠.
또 난치병 치료라는 명목도 저는 매우 의심스러운게,
과연 일반 서민들도 병 치료를 위해 이런 값비싼 기술들을 이용할 수 있을까의 여부에요.
돈 있는 사람들은 엄청 돈을 들여 시술을 받고,
돈 없는 여성들은 건강과 몸에 대한 자결권을 포기하며 난자를 팔아야 하는
돈 있는 사람들만의 유토피아! 돈 없는 사람들의 디스토피아!
이게 생명공학의 근본적인 밑그림인 듯...
정말 섬뜩합니다.
난자의 출처, 여성의 건강, 자기 몸에 대한 자결권 등
여성의 입장에서 정리된 기사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일다에서 나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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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의 출처 묻는 이유는
생명공학기술, 여성인권 침해우려
[일다에서 펌]
윤정은 기자
2005-06-14
“이 연구는 절차와 과정 상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실험에 이용된 난자의 출처, 둘째 실험 연구비의 출처, 셋째 연구 심의 여부의 문제가 있다.” (시민과학센터 김병수 간사)
최근 한국 사회에서 소위 “부시 대통령을 보기 좋게 한방 먹인”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 성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과학기술에 의해 난치병을 극복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해준 ‘영웅’ 황우석 교수에 대해 국민들은 고무됐고, 황우석 교수팀이 이룬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어떤 행동도 용납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런 가운데, 최근 종교계가 반기를 들었다. 천주교 정진석 대주교가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두고 ‘살인’에 비유하며 반대했고, 곧바로 생명윤리와 과학기술에 대한 논쟁으로 치닫고 있다. 종교계의 생명윤리 대 난치병 치료를 위한 생명기술. 인터넷 상에는 네티즌들은 찬반 양론이 벌어졌다. 그러나 여기에서 당장 시급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종교계가 주장하는 인간복제 가능성에 대한 논쟁만이 아니다.
“난자를 구하기 가장 쉬운 나라”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연구는 전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또 한편 전세계 생명과학 기술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황교수가 “어떻게 그 수백 개의 난자를 구할 수 있었는가”였다. 이미 국제적으로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가 난자의 출처 문제를 두고 연구자의 윤리성을 의심하는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국내적으로는 ‘한국생명윤리학회 치료용 인간배아복제 연구윤리 특별위원회’가 지난해 5월 22일 서울대 황우석 교수를 상대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위원회는 “생명과학기술은 국제적으로 확립된 생명윤리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황교수 연구의 불분명한 과정 상의 문제점을 들어 “성실한 답변을 기대한다”며 질문서를 보낸 바 있다. 질문서에는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 실험 연구비, 연구 심의를 제대로 받았는가 등이었는데, 이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황교수 연구에 사용된 난자는 정확히 그 수가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242개의 난자를 누가 제공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네이처>지가 인터뷰할 당시 자신이 난자를 제공했다고 밝힌 박사과정의 여성연구자는 국내외적인 윤리성 시비가 붙자 영어를 제대로 못해서 잘못 말했다며 말을 바꾸었다. 황교수 측은 이후 이 연구에 동의하는 간호사들이 난자 제공자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입증할만한 기증자와의 서면동의서나 기타 증거물을 제시한 적은 없다. 과연 황교수 측이 밝힌 것처럼 '자발적인' 16명의 난자 공여자들로부터 242개의 난자가 나왔을까?
이 말이 사실이라면 평균 1명당 15개의 난자를 채취한 것이 된다. 한 사람이 15개 난자를 제공하기 위해선, 자연적으로는 여성의 몸에서 한 달에 하나씩 배란되는 난자를 과배란촉진 주사를 맞아 한꺼번에 다량의 난자를 배란되게 만들어야 한다. 약 열흘 동안, 하루에 두 번씩, 거르지 않고 꼬박 맞아야 하는 이 호르몬 주사를 통해, 10일 동안 한 명의 여성이 생산하는 난자 수는 3~10개 정도다.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했다는 여성들은 시험관 아기를 얻으려는 불임여성들도 맞기 힘들어한다는, 거기다가 몸에 위험하기까지 한 과배란제를 맞으며 “난치병을 고칠 과학기술”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했다는 얘기다. 과배란제의 위험성은 세계적으로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영국의 한 병원 연구진은 난자기증자들이 암 발생 위험이 높고, 연구결과 60건 이상의 암 발생 사례를 분석했다고 밝힌 적도 있다.
불임전문병원이 채취한 난자들의 행방은?
난자의 출처는 여성인권과 생명과학 기술 절차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시민과학센터 김병수 간사는 “여성의 난자를 구하기 가장 쉬운 나라가 한국이다. 외국에선 난자를 구하지 못해 실험이 포기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몇 년 전엔 난자 매매를 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벤처기업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불법임에도 난자를 구하기 쉬운 한국사회 구조를 개탄했다.
한편 “한국에선 생명과학 기술에서 여성의 몸과 인권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다”고 주장해 온 하정옥(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씨는 “한국에서 생명과학 기술은 불임클리닉의 확장이라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하씨는 한국처럼 시험관아기 시술이 많은 나라에서 “전문불임 클리닉으로 유명해진 서울의 불임전문 병원들도 보고가 불규칙하고, 시술보고 시스템이 허술하게 이루어져 중앙 기록관리가 없다”는데 문제 제기했다.
현재는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 15조에 따라, 배아생성의료기관으로 지정 받은 의료기관은 정자나 난자를 채취할 때, 정자제공자나 난자제공자에게 “배아생성의 목적과 배아 보관 및 폐기에 관한 사항, 임신 외의 목적으로 잔여배아를 이용할 때 동의” 여부를 서면으로 남겨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는 서면동의가 없었다. 유명한 불임전문 병원인 마리아 병원 관계자는 이 사실을 인정하며 “지난해까지는 받지 않았지만 현재는 법에 의거해 체외수정 시술을 원하는 불임여성들에 한해서 서면 동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차병원에서 지난해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은 한 불임여성은 “당시 서명한 수술동의서에서는 그런 것을 묻는 항목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불임전문병원들이 보전하고 있는 잔여배아는 10~50만까지 추정된다”고 한다. ‘생명윤리안전에관한법률’이 올해 1월 발효되기 전까지 불임전문병원들에 의해 채취 보관 중이던 난자들이 어떻게 보관되고 다른 용도로 이용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 동안 이 부분에 대해 처벌할 법도 없었을 뿐더러, 데이터에서도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발전, 여성인권보장의 틀 위에
황교수 연구에서 난자 출처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들은 아직 명쾌하게 밝혀진 바 없이 말 그대로 의혹일 뿐이지만, 우리가 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적 감시망이 허술한 상황에서, 여성의 몸에서 채취된 난자들이 과학기술의 미명 하에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공학 발전을 경이로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난자 채취가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은 쉽게 간과되어 버린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김선욱(이대 법학과) 교수는 그간 생명공학의 발전이 “여성의 몸과 여성의 재생산 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남성으로 구성된 과학, 의료기술분야, 윤리분야, 법 분야 등의 논의에서 여성의 경험과 관점은 별로 고려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생명공학과 관련한 정책은 특히 “여성인권의 침해가 없도록 이에 대한 윤리적, 법적 논의가 발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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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카 언니 만나거든 우리 안부도 꼭 전해주거라. 언니 네팔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보고싶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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