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린다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8/30
    알아차리기와 글쓰기, 크리슈나무르티(1)
    무나

알아차리기와 글쓰기, 크리슈나무르티

  • 등록일
    2010/08/30 18:17
  • 수정일
    2010/08/31 15:57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과 그것을 글로 남기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흐른다.

글은 경험에 의존한다.

글은 순간이 영원하다는 것을 믿는다.

글은 권위에 의존하고, 그 자체가 권위다.

글은 죽은 말이고, 말은 죽은 생각이고, 생각은 죽은 느낌이다.

일단 글을 쓰면 거기에 매인다.

그러면서 나는 글을 쓰려 하고 있다. 시체 수집가처럼.

 

모순이다. 이처럼 모순된 갈망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걸까?

어느 인도의 철학자는 글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글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것이다.

권위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군위와 권력에 대한 집착이라고 한 것처럼.

결국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한 집착을 증폭시킨다.

마치 하얀 도와지같은 마음 가운데 선이 그어지면 자유롭던 공간이 좌,우로 나뉘어지는 것처럼

(아, 선이 좌우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중앙과 좌우라는 사고가 그것을 좌우로 나눈 거였다!)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도 글을 쓰겠다는 것도 결국은 글에 대한 집착이다.

중요한 것은,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머물며 바라보는 것,

행위를 스스로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머물며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의 움직임을 보았다.

나는 순간 스스로를 검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뭐 대단치 않은 생각이지 않은가"

"인도 철학자라는 권위를 거들먹거리다니"

"어느 책에서 본 나부랑이들을 주절대고 있구나"

 

크리슈나무르티의 "생활의 기술"을 소개하고 싶은 욕망은

내가 그 책을 읽고 있음을 자랑하고 싶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발로이다.

그리고 나는 그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조롱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구나 하고 관찰하면 될 것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글쓰기에 대한 공포에서 한발짝 떨어지는 듯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