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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먹은 술은 거의 독약과 같았다. 최근에 이렇게 힘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그래도 지금은 나쁘지 않다.
어제 너의 모습. 그리고 말. 그리고 생각. 그리고 나의 생각. 물론 애정으로 하는 충고니 니가 새기든지 말든지는 니 몫이다. 오히려 충고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말마따나 공부하는 사람은 두 가지 경계를 조심해야 한다. 하나는 욕구이고 또 하나는 오만함이다. 일단 과거부터 떠올려 보자. 너를 보면 과거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 다닐 때 그 모습 그대로라서 심하게 비판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니가 그런 모습은 안닮았으면 한다.
안좋은 모습을 닮지 않으려면 사물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만 그렇게 하고 늘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를 바꾸는 일, 때로는 심하게 매질하고 깎고 깎이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
따라서 욕구를 조절하고, 오만함을 다스리는게 중요한 일이다. 먼저 욕구는 절제가 부족해서 생긴다. 끊고 맺는 장단을 조절하지 못하는데 그 문제가 있다. 식욕, 성욕, 주욕 등 모든 게 일정한 절제 속에서 쾌락이 극대화되는데 그것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자기 삶의 일부가 파괴된다. 제대로 된 판단력과 기억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오만함도 그렇다. 특히 공부를 하게 되면 오만함이 머리칼 끝에까지 미친다. 이건 경험이다.
자기가 몰랐다고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가르치려 드는 것이 '덜' 공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속성이다. 그런데 공부는 사실 공부는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공부라는 건 주장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또한 토론을 통해 타인을 설득한다고 그게 공부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채근하는 일, 보충하는 일이 더욱 훌륭한 공부이다. 더군다나 짧은 지식에 자웅을 다투는 일은 자신에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마라. 늘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는 "배우는"데 있다. 배우는 자세가 바로 공부하는 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는 사회적 등대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지 싸움닭이 되기 위한 것은 아님을 명심하자.
공부에 정진하는 것은 칼을 가는 일과 같다. 날은 세우되, 날이 아닌 곳까지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칼등은 무뎌야 제대로 된 칼이 되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 늘 반복하고 반성하고 확인하고 점검하며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몇 번씩 곱씹어보아야 한다. 따라서 공부에 정진하는 일은 반복되고, 또한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자기성찰의 과정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이 겸손하면 오히려 그 덕망이나 지식의 깊이가 더욱 빛을 발한다. 니가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옳은 일이다. 그러나 공부나 인격을 쌓는 일에 대해서 친절함을 바라기 이전에 자신의 공부나 인격을 철저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실 너도 그러면서”라고 남탓하는 것은 잘못된 자신의 상태를 긍정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나 태도는 너와 주변 사람들이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줄지는 몰라도, 평생 구멍가게 주인 수준이나 노인정 수준의 우주 정도만을 공유할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우주에서는 벗어나고 싶다. 특히 지금 우리 나이 정도되면 사물이든 사람이든 조심할 수 밖에 없고 처신에도 신중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서로 좋은 것은 배우되, 좋지 않은 것은 배우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말고, 때로는 가혹하게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용서받을 일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또한 용서를 구걸하지 않게 된다. 결국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결코 용서치 말고 가혹하게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그렇게 훈련된 사람들은 연장자나 오만한 지식을 폼내는 사람들을 무식하게 공격하지 않는다. 부끄럽게 만들 뿐이다. 나는 이것이 더 효과적인 공격이자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쉽게 흥분하고 쉽게 즐거워하지 마라. 그것 또한 쉽게 중독된다. 습관화된다는 것이다. 나도 이걸 버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걸 안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깊은 우물 속에 물을 퍼내는 일과 다를게 없다. 채우기도 급급한데 퍼내면 결국 그 샘은 마를 수 밖에 없다. 물이 마르면 사람들이 그 샘을 찾게될까. 오히려 있던 사람들이 떠나게 된다. 목마른 사람은 물을 찾아 샘을 찾는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인격과 공부가 깊이 있다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최대한 감추고 버려야 한다. 저 쪽 우물은 꽉 차있었는데, 여기는 반밖에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물을 먹을 자격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우물과 자신의 우물을 함부러 비교하는 일은 자칫 자신의 우물에 사람들이 침을 뱉도록 방치하는 것과 같다. 타인을 존경하고, 인정하는 것도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공부는 목적적으로 학위를 따거나 합격을 위해서 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평가의 척도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못난 짓을 하면 ‘못배워서 그렇다’고 하거나 ‘배운 놈이 더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에서 빗겨가는 일은 쉽지 않다.
날카로움과 번뜩이는 비판정신은 내가 너에게서 배울 것이다. 그러나 남을 힐난하거나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일에 대해서는 더욱더 나는 가혹하게 대할 것이다. 그리고 웃자란 보리마냥 오만하면, 꼭꼭 밟아줄 것이다. 그게 제대로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적어도 3년 동안은 열심히 밟히면서 배우는 자세만 익히는데도 이 정도로 시간이 걸렸고, 또한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되고 있다. 그런 형의 모습을, 선배의 모습을 보고 니가 니 자신에게 무엇을 해야 할 지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다. 좀 더 변증적인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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