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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서울지역 어른들이 했던 말이면, 내가 자란 동네에서는
"마흔까지는 말을 많이 해도 되지만, 마흔이후로는 자기가 한 말 만큼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마흔이 넘어서 경상도 사람들이 무뚝뚝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라도 뭘 해놓고서 "자기가 했네, 그 공은 자기입네"하고 떠벌이는 것보다는 말없이 해 놓고가거나, 군말없이 스윽 도와주고 가는 사람이 더욱 고맙고, 그립기 마련이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든 정부든, 시민단체든, 노동단체 든 그 조직의 연륜은 말에서 묻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묵묵함'에서 비롯된다. 어느 활동가가 민주노총에 학을 그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모습을 보고 나는 오히려 그 활동가보다는 "다 그런거야"라고 말하는 경륜이 있는 활동가들이 더욱 이상해 보인다. 그이의 고민을 들어주기보다는 "너는 아직 단련되어 있지 않아"라고 손사래를 치며 자신의 단련된 '백련강百鍊剛'을 뽐내기도 한다. 그러한 이야기는 무용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하간 우석훈의 글제목에 나이 마흔이 되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소리.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나도 그 활동가도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그이가 더욱 어려웠을 것은 나보다 연배도 훨씬 많아, 마흔도 훨씬 넘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이는 나에게 지갑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이가 잠시 화장실을 비운 사이에 내가 계산을 하면 그럴 수는 없다고, 다시 한 잔을 먹게되고 하면서 새벽을 꼬박 새운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런데 그이와 술자리를 가지게 되면, 그가 많이 듣기 때문에 나도 많이 듣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나는 마음을 여는 것도 쉽지않고, 진실을 말하는 것에도 용기가 부족하며, 좋은 것이든 불편한 것이든 듣는 태도도 불량하지만 그이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라기 보다는 듣는 사람이 진지할 때 나도 진지하게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지갑을 여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제낀 가슴 속에 진실을 보여주려면 상대가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억지로 보여주려고 하면 상대방은 거부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가끔씩 지갑을 열 때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지갑을 열어제낌과 동시에 그에게도 마음을 여는 것인지 말이다.
가끔씩 지갑을 열고 계산을 해버리고 도망가버린 일도 여러 번 있다. 대부분 상대방의 이야기에 나의 듣기능력이 임계지점에 달했을 때이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적이 없었는지 깊이 반성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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