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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0/11
    '슈퍼울트라 똑딱이'(7)
    말걸기
  2. 2006/10/03
    폐염전에서...(3)
    말걸기
  3. 2006/09/29
    소래포구의 풍경(3)
    말걸기
  4. 2006/09/28
    차린 건 변변치 않지만...(5)
    말걸기
  5. 2006/09/27
    새우와 소라(12)
    말걸기
  6. 2006/09/13
    말걸기의 '찰칵' 역사
    말걸기
  7. 2006/09/05
    숙제하기 힘들다(6)
    말걸기
  8. 2006/09/04
    관악산에서 서울을 내려다 보다(2)
    말걸기
  9. 2006/09/03
    첫 야경 사진에 도전하다
    말걸기
  10. 2006/09/03
    뚝섬 서울숲에 가다(6)
    말걸기

'슈퍼울트라 똑딱이'

 

한 푼 두 푼 모아 놓은 돈을 또 사진 장비 사는데 바쳤다. 지름신이 강림하사 '슈퍼울트라 똑딱이'를 선사하신 것이다.

 

 

일안리플렉스 사진기(SLR)는 다양한 렌즈를 장착할 수 있다. SLR 사용자들은 초점거리(화각)에 따라 광각 줌 렌즈, 표준 줌 렌즈, 망원 줌 렌즈를 하나 정도씩 구비하기 마련이다(물론, 한 개의 렌즈만으로 훌륭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렌즈가 뛰어나다고 할 때 그 주요한 기준은 '밝기'이다. 더 적은 양의 빛으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렌즈가 좋은 렌즈라 할 수 있다. 또한 '밝은 렌즈'는 같은 빛의 양에서도 더 많은 표현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돈이 되면 '밝은' 표준 줌 렌즈와 '밝은' 망원 줌 렌즈를 하나씩 구비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앞으로 수년 동안, 아니면 그 이상 '밝은' 렌즈로 표준 줌과 망원 줌을 손에 쥘만큼의 돈은 생기지 않을 게 뻔하다. 그렇다고 10-50mm 영역의 렌즈만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200mm까지 가능한 망원 줌 렌즈를 포기하기에는 D200이 아깝기도 했다.

 

또 하나. 자전거 타고 이리 저리 돌아다닐 궁리를 하고 있는데 여러 개의 렌즈를 포함한 사진기 세트를 들고 다니자니 여간 번거러운 게 아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사진기 들고 다니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한 개의 렌즈로 최대한 많은 화각을 담을 수 있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18-200mm 짜리 줌 렌즈를 하나 장만했다. VR 기능도 있고 평범한 밝기에다가 선명함도 좋다 하니 말걸기에게는 딱 좋은 렌즈이다. D200에다 이 렌즈 달고 플래시까지 달아 놓으니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마구 찍어댈 수 있는 '똑딱이'가 되었다. 일명 '슈퍼울트라 똑딱이'.

 

 

이제 일상에서 사진을 찍을 준비가 되었다. 말걸기는 스스로 사진에 재능이 있다고 믿지만 이 나이 되도록 얼마나 수련을 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대로 두면 썩는 재능이 아깝다. 정신 차리고 '슈퍼울트라 똑딱이'와 일상을 보내야겠다. 닳고 닳도록...

 


@ 슈퍼 울트라 똑딱이 : Nikon D200 + Nikkor AF-s 18-200mm VR + Nikon SB800

@ Sony Cybershot

 

 

폐염전에서...

 

오이도역에서 차를 타고 10분? 뭐 그 정도 가면 폐염전이 있다. 폐염전 입구에는 사유지라며 출입금지라고 안내판도 서 있지만 다들 구경하러 들어간다. 언젠가는 '개발'이 될 곳이란다.

 

옛날 오이도가 섬일 때부터 염전이었나 보다. 이곳에서도 일제의 수탈에 대해 얘기한다. 소금을 박박 긁어서 만들어내면 죄다 가져갔다는 얘기. 염전 근처 오이도에 샘이 있었는데 일본인만 마시게 했다는 얘기. 나쁜 놈들 얘기지.

 

무너진 소금창고. 염전의 타일 바닥. 물길. 글쎄, 뭐 별로 센티해지는 곳은 아니었다.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11.0mm | 1/750s | f/5.6 | ISO 200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10.0mm | 1/180s | f/7.1 | ISO 200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14.0mm | 1/1500s | f/8.0 | ISO 100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10.0mm | 1/180s | f/8.0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24-50mm F/3.3-4.5D | 24.0mm | 1/400s | f/11.0 | ISO 100

 

 

D200을 손에 쥐기 전에는 거의 풍경은 찍지 않았었다. 풍경 찍기 힘들다. 20년 넘게 연출하지 않은 인물 스냅만 찍다가 풍경 찍으려니 어려움이 많다. 에궁~

 

 

소래포구의 풍경

 

지난 일요일 오후 소래포구로 귀항하는 배들을 담았다.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1000s | f/11.0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800s | f/11.0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640s | f/11.0 | ISO 100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12.0mm | 1/1000s | f/11.0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24-50mm F/3.3-4.5D | 44.0mm | 1/1000s | f/11.0 | ISO 100

 

 

사람들이 많은 저 다리는 철교다. 예전에 협궤열차가 지나던 철교였던 모양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는 수탈열차들이 다녔단다. 지금은 사람들만 다닌다. 다리 외쪽은 시흥, 오른쪽은 인천. 시흥에다가 차를 세워놓고 저 철길을 건너 소래포구 시장을 가로질러 차가 다니는 다리를 건너며 사진을 찍었다. 새우와 전어철이라 그런지 휴일 이 동네는 사람과 자동차로 가득했다. 걸어다니기도 어려울만큼.

 

 

차린 건 변변치 않지만...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6s | f/3.3 | ISO 100

 

 

얼마 전에 햅쌀이라 하여 쌀 작은 것 한 포대 옆구리에 차고 왔다. 콩이나 현미 등을 항상 섞어서 밥을 짓지만 이번에 쌀맛을 제대로 보려고 쌀밥을 짓었다. 그리고 나서 문득 사진에 담고 싶었다.

 

음... 생각보다 맛나게 보이진 않네. 음식 사진 찍는 사람들은 조명을 최대 8개까지 쓴다는데... 그리고 포천쌀이라는 이 쌀, 기대보다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그대도 김치랑 먹으니 맛있더라.

 

이제 슬슬 배고플 시간들 되었을텐데... 차린 건 변변치 않지만 눈팅으로라두 배를 채우셔.

 

 

 

 

새우와 소라

 

새우는 몇 개 먹었지만, 소라는 사진 찍은 후 구경도 못했다. 오이도에 일몰 찍으러 갔다가 일몰은 뒤로하고 새우와 소라만 찍었다. 나름의 아름다움을 선사했을 바다의 일몰보다 눈 앞의 먹을 것이 더 매혹적인 저녁이었다.

 

냠냠... 눈으로라도 맛나게 드시길...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플래시 | 105.0mm | 1/60s | f/16.0 | ISO 100

 

이랬던 새우눈이 어찌 변하냐면...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플래시 | 105.0mm | 1/60s | f/16.0 | ISO 100

 

맑고 똘망해 보이던 새우눈이 익으니 멍청해졌다. 그래도 이게 더 맛나 보인다.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플래시 | 105.0mm | 1/60s | f/16.0 | ISO 100

 

익는 모습만 보고... 먹고 싶었는데... 근데, 크게 보니까 좀 징그럽다.

 

 

말걸기의 '찰칵' 역사

 

말걸기가 사진을 처음 찍은 게 언제였을까? 아마 어려서 자그마한 '똑딱이' 필름 사진기로 어쩌다가 아빠나 엄마를 졸라 찍어 보았을 것이다. 보통의 필름 카메라들이 한 컷을 담는 필름을 두 개로 쪼개 찍는 올림푸스의 사진기가 집에 있었는데 그걸 찍었던 기억이 있다. 이 사진기는 일종의 가족 범용이었다. 누구나 '내가 찍을래' 하면 찍을 수 있었으니까. 물론, 필름을 넣고 사진을 찍을 만한 집안 행사(여행 같은)가 있어야 했지만.

 

이 사진기 외에 말걸기의 부친께서는 오래 전부터 사진기를 갖고 계셨다. 이 사진기에는 쉽게 손을 댈 수 없었다. 왜냐고? 귀한 거니까. 아주 구닥다리이지만 상당히 품위 있는 사진기가 있었는데 그건 부모님댁 어딘가에 아직도 귀하게 모셔져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 독일제 명품 라이카? 글쎄... 어쨌든 이 사진기는 구닥다리라 노출계도 없고 뭐 그런 거였다. 확실히 사진찍기에는 불편하다.

 

가족의 운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작은 이모는 독일 유학생으로 가서 의사가 되었고 의사 이모부가 생겼다. 말걸기 어려서는 서독은 무지 잘 사는 나라였고 이모-이모부는 아부지께 Canon 사진기를 선물했던 모양이다. 사진기 모델에 관심없을 때 사용하던 거라 말걸기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 Canon 사진기 또한 손대기 힘든 물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 6학년이었던가, 아부지께서 저 멀리 삼성동 어디를 가자셨다. 관세청에서 밀수품들 압수한 것 파는 곳이란다. 사진기들만 유심히 살피시더니 Nikon FM2를 사셨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날은 역사적인 날이다. 몇 월 몇 일인지도 모르지만...

 

새 기종의 사진기는 기존의 Canon 사진기보다 가벼웠고 스트렙(사진기를 목에 메는 줄)도 좋아서 훨씬 뽀대나 보였다. 그리고 새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말걸기의 아부지는 집안 행사 때마다 Nikon FM2를 사용하셨다. 그럼 Canon의 운명은?

 

아부지 사진 찍을 때마다 부러워 하던 말걸기의 손에 쥐어졌다. 아무 때는 아니고 아부지가 허락하실 때에만. 그러다가 가끔씩 말걸기의 손에서 놀던 Canon 사진기는 점차 말걸기의 손때를 많이 타게 되었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어렵지 않게 사진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일년에 다 합쳐봐야 수 차례밖에 없는 수학여행이나 친구들과 놀러갈 때 뿐이지만. 거의 말걸기의 것이 되어버린 것이지. 이 때는 필름값도 말걸기가 주로 대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연중 몇 번의 행사와 함께 말걸기는 사진을 찍어댔다. 한 번 찍으면 그 비싼 필름 몇 통을 해치워버렸다.

 

초등 6년 때부터 SLR(일안반사식렌즈)을 찍기 시작한 말걸기는 대학생 쯤 되어서 FM2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게 되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에 손을 대기 시작했던 이 기종은 대학 때는 사실상 말걸기의 것이 되어버렸다.

 

 

Canon 사진기는 55mm 단렌즈였고 밝기는 F/1.2로 기억한다. 말걸기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최근에야 알았다. 놀라운 명품이란 뜻이지.

 

50mm 전후의 초점거리의 렌즈를 표준렌즈라고 한다. 이는 사람의 눈과 비슷한 원근감을 갖는 렌즈란 뜻이다. 수치가 작아지면 광각렌즈라고 해서 사람의 눈보다 훨씬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렌즈다. 반대로 초점거리가 커지면 망원렌즈라고 해서 사람의 눈보다 원근감이 줄어든다. 즉, 렌즈는 기본적으로 원근감을 어느 정도 왜곡하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또, 이 초점거리에 따라 화각, 즉 시야의 범위도 달라진다. 당연히 광각일수록 넓고 망원일수록 좁다.

 

Canon으로 사진을 찍을 때는 단렌즈였기 때문에 가끔씩 갑갑할 때가 있었다. 말걸기는 이 정도의 시야를 사진에 담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저 멀리 있는 걸 찍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Nikon FM2를 손에 쥐게 되었을 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50mm F/1.4 단렌즈 외에도 80-200mm 망원 줌렌즈도 있었기 때문이다. 말걸기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망원렌즈가 표준보다 훌륭한 렌즈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무척 기뻐했다.

 

이 두 개의 렌즈로 사진을 찍다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확실하게 원근감의 왜곡이라는 개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표준이든 망원이든 표현의 필요에 따라 렌즈를 달리해야 한다는 점. 따라서 광각 렌즈로도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이 때 운이 좋은 말걸기 앞에 후원자가 나타났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면서 '아, 광각 렌즈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를 외치던 말걸기에게 누나가 렌즈 하나를 선사한 것이다. 지금도 사용하는 24-50mm 광각-표준 줌렌즈. 이 렌즈를 선택한 건 한정된 돈으로 광각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렌즈였기 때문이다.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돈 있는 사람들은 절대 이 렌즈 안 산다. 그러나, 말걸기에게는 어디냐?

 

초광각은 아니었지만 광각렌즈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크나 큰 행운이었다. 24-50, 80-200mm의 초점거리면 그냥 그렇게 사진을 찍을 수 었었으니까. 표준만 오래 찍어보았기 때문에 다양한 화각의 렌즈의 가치도 쉽게 깨칠 수 있었던 것 같다.

 

 

화각에 대한 이해를 깨치던 시절, 말걸기의 사진 생활에 또 다른 장벽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학 3학년 때 학과 후배 하나가 사진을 무척 좋아해서 사진동아리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녀석과 사진 얘기를 나누면서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언제는 사진을 찍는 걸 지켜보고선 현상, 인화하는 것까지 함께 해 본 적이 있다. 그때, 사진은 찍는 것에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 인화하면서 완성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 말걸기는 반쪽 사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말걸기만의 암실을 갖는 것.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흑백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직접 현상, 인화를 할 수 있는 암실은커녕 그 정도의 공간이 있는 집도 마련하지 못했으니까. 먼 미래에는 가능할까? 사실 암실 이전에 필름, 현상, 인화값이 부담이었다. 말걸기는 소위 '출사'라는 걸 가보지 못했다. 이를테면, 저 산 꼭대기에 가서 전경을 찍어야지, 저 나무와 꽃을 찍어야지, 거리의 사람들과 풍물을 담아야지 따위를 해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 대학 1학년 때 교양 과제물을 내기 위해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 것 빼고.

 

경제 사정도 그러했고, 대학 때는 언제나 그랬드시 항상 '활동'에 묻혀 있었으니 말걸기만의 사진 생활은 없었다. 단지, 과행사(신입행 환영회서부터 수학여행, 졸업여행 등등)나 각종 놀러가기 프로그램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주 즐거운 사진들을 많이 찍었다. 그러다 보니 인물 스냅 장르라고나 할까, 그런 사진만 찍어댔다.

 

 

나이를 먹으면서 가끔씩 찍던 것도 차츰 횟수가 줄어들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돌아다니는 건 꾀나 힘들다. 일행 모두가 사진을 찍기 위한 게 아니면 쫓아다니기 힘들다. 짐도 두 배나 되고. 세파에 찌들면서 사진기 들고 어딜 가는 게 조금씩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면서도 뭔가 새로운 전기가 닥치면 사진을 마구 찍을 기회를 잡길 희망하고 있었다.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바로 사직이다. 사직으로 돈이 생겼다. 드럽고 치사하게 받아낸 퇴직금의 절반은 사진 장비에 쏟았다. 필름 사진기만큼의 해상도는 아니나 상당히 진보한 디지털 사진기는 필름, 현상, 인화값을 없애고 초기 투자로 상당한 기간 동안 비용 부담 없는 사진 생활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기대로 Nikon D200을 손에 쥐었다.

 

DSLR에 대해 잘 몰랐던 말걸기는 사진 장비 마련 후 또 한번의 갈등을 겪었다. 같은 초점거리의 렌즈라 해도 DSLR에서의 초점거리는 SLR의 1.5배가 되는 것이었다. 즉, 말걸기의 24-50mm은 D200에 꽂으면, FM2로 환산하자면 36-75mm라는 표준 줌렌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D200에 24-50mm를 꽂고 나서 사진을 찍는데 광각의 느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풍경을 왕창 담아와야 할 시베리아-몽골 여행을 가기 전에 조금씩 비상금으로 모아 두었던 돈을 털어 10-20mm 초광각 줌렌즈를 사고야 말았다. 지금으로써는 후회는 없고 오히려 안 샀으면 후회가 컸을 거라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괴로왔다.

 

또 하나, DSLR로 전향하면서 현상, 인화에 대한 갈망도 새롭게 바뀌었다. 디지털 사진은 보정이 현상과 인화의 상당 부분을 대체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필카와 디카는 각각의 장단점을 갖지만 말걸기의 사정으로 보자면 디카가 훨씬 나은 점이 많다.

 

 

D200을 선택한 것은 Nikon의 제품이기 때문이었다. FM2에서 사용하던 렌즈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세세하게는 몰랐지만 운이 좋은 선택이 되었다.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새 기종을 계기로 생겨난 사진 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이 동호회에서 다양한 장르의 사진을 접하고 있고 또한 찍어 보기도 한다. 혼자서 20년 넘게 하나씩 깨우쳤던 것보다 빠르게 사진을 공부하게 된다. 이런 나날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쉼'의 세월에서 누릴 수 있는 복이다.

 

앞날의 경제적 어려움을 '무시'하고 선택한 DSLR의 생활, 후회는 없고 욕망만 커지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이 욕망을 다 채울 수 있진 않겠지? 그림 그리는 꿈을 버린 말걸기에게 사진은 대체품으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세계가 되길 희망한다. 언제나 그렇겠지만 삶의 또 다른 부담은 있지만...

 

 

숙제하기 힘들다

 

6월말부터 여행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여행 사이엔 등산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동호회 정기출사와 번개출사를 쫓아 가서도 찍고. 사진이 한 4,000장 쌓여 있다. 컴퓨터가 고장난 새 벌여놓은 일이라 한 번에 수습하려니 만만치 않다.

 

일단 눈에 띄는 것만 골라서 보정을 하고 있다. 보정은 사실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이상의 디지털 아트를 하는 건 아니구. 사진 한 장 열어 놓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봐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사진 속 피사체들이 부각되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근데 왠지 어수룩.

 

 

예전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항상 반쪽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적이 있었다. 사진은 필름에 감광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상과 인화에서 다시 한번 찍힌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꿈은 집 한 구석에 암실을 만들어서 직접 현상과 인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흑백 사진일 수밖에 없지만, 명암만의 대비로 형태와 구도, 사람의 표정까지 잡아내기라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니 도전할 만한 예술의 영역이 아니던가.

 

하지만 꿈은 이루지 못했다. 암실을 만들만한 집에서 살지도 못할 뿐더러 암실에 갖출 장비 살 돈도 없었다. 그리고 필름값, 약품값, 인화지값을 지속적으로 조달할 능력도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돈은 없다. 디지털 기술이 필름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필름 사진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돈이 없으니 필름 사진은 포기했다. 그리고 디지털 사진으로 개종했다.

 

개종의 기회는 사직과 함께 찾아왔다. 바로 퇴직금. 악착같이 받아낸 퇴직금의 반은 디카에 퍼부었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진을 찍고 있다. 필름 카메라라면 엄두도 못낼 양이다. 디카는 부담없이 셔터를 눌러댈 수 있지만(물론 그만큼 빨리 수명이 짧아지겠지만), 그 때문에 많은 양의 디지털 이미지를 남긴다. 그리고 막샷이 가능해서 촬영할 때 진중함을 쉽게 놓치지고 하고. 이게 결국 다 숙제로 남는다.

 

필름 사진은 현상과 인화로 완성한다. 디지털 사진의 보정은 현상과 인화에 해당한다. 컴퓨터가 암실의 역할을 하고 보정프로그램이 현상-인화 약품과 장비 역할을 한다. 보정을 하다보면 후회가 막심할 때가 자주 있다. 화면에서 놓쳐버린 게 보이기도 하고 촬영 셋팅의 실수도 보인다. 사진이 아주 엉망이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평생 한 번 가볼까 하는 시베리아-몽골 땅에서 망친 사진은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그러면서 사진을 배우고 있다. 숙제가 숙제인 이유가 있는 게지.

 

 

장비의 무게가 항상 버거워서 여행을 다닐 때도 괴로웠고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도 매번 힘들었다. 그래도 찍는 즐거움이 있다. 게다가 숙제한다고 펼쳐놓은 사진을 하나씩 들여다 보는 것도 기쁨과 슬픔과 뿌듯함과 자책감을 선사한다.

 

후보정 작업에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어제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후 내내 앉아서 보정을 했다. 저녁 먹고 들어오니 피곤해서 잠이 쏟아졌는데 너무 일찍 자면 새벽에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졸음을 견디며 사진 보정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해 뜰 때까지 작업했다. 이런 일에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건 TV를 보거나 게임을 해서 밤을 새는 것보다는 생산적이긴 하다. 하지만 삶의 패턴은 건강치 않으니 오늘 아침도 파란꼬리한테 야단맞았다.

 

그래도 한 가지. 이렇게 정신없이 사진을 들여다 보니, 말걸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구나 깨닫는다.

 

9월 안에 숙제는 다 해야지.

 

 

○ 시베리아-몽골사진 3258컷

○ 관악산 등산 사진 79컷

○ 동호회 정기 출사 480컷

○ 그외 태국 똑딱이 이 만큼, 동호회 번개 출사도 남은 것 있고...

 

 

 

관악산에서 서울을 내려다 보다

 

지난 8월 1일에 관악산엘 갔었다. 당에서 일하며 얽힌 인연들하고. 사당에 모여 연주대로 올라갔었는데 왜 이리 힘들던지. 무서운 곳도 많고. 올라가기만 힘든 게 아니라 내려오는 것도 괴롭던 길이었다. 등산 코스를 정한 백수광부와의 산행은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연주대에서 서울대 공대로 내려오던 능선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이다.

 

@ NIKON D200 | Nikkor 24-50mm F/3.3-4.5D | 24.0mm | 1/160s | f/11.0 | ISO 100

 

 

첫 야경 사진에 도전하다

 

사실은 어두운 밤에 사진을 찍어 봤다. 시베리아와 몽골에 가서 별을 찍었었다. 그리고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서도 숲 속의 집을 찍어 보았다. 일본에서는 불꽃놀이를 찍었었고. 그런데, 불빛이 많고 스펙타클한 공간에서 야경은 처음이다.

 

소감은, '자리잡기부터 어렵다'이다. 야경도 풍경 사진이라 어느 자리에서 어는 각도로 찍을 것인가가 중요한 듯하다. 그냥 한갈의 다리가 보인다고 시진 찍을 만한 자리는 아닌 걸 알았다. 그리고 야경 사진에도 뭔가 '팁'이라는 게 있을 법한데 모르겠다.

 

아래의 첫 사진은 성수대교. 분명 흔들렸을 것이다. <서울숲>에서 강변까지 놓여 있는 다리 위에서 찍었는데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진동이 있었으니까. 두번째 사진은 해질녘 동호대교와 하늘이다. 파란 기운과 붉은 기운을 함께 찍는 게 어려웠다. 그리고 해질녘 분위기에 맞는 밝기는 어느 정도인지도.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20.0mm | 30s | f/29.0 | ISO 100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10.0mm | 1/80s | f/8.0 | ISO 100

 

 

뚝섬 서울숲에 가다

 

뚝섬에는 <서울숲>이 있다. 말걸기는 이번에야 알았다. 어제 사진동호회 번개출사가 여기에서 있었거든. 넓은 공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다시 한번 부러움을 감출 수 없는 날이었다. 근데... 왜 이리 더워?

 

서울숲에는 출입을 제한하는 생태숲이 있는데 꽃사슴 등등이 살고 있다. 근데 그곳이 과연 야생 동물들이 살 수 있는 숲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꽤나 넓은, 혹은 잘 조성된 동물원 같다. 초식동물 사파리라고나 할까... 꽃사슴이 거기서 살 이유도 없는데 사람들을 위해서 가두어 놓았다면 슬픈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동물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건 사람들이 해꼬지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뿔이 도도해 보이는 사슴, 오리에 관심 갖는 사슴. 물을 마시는 사슴. 그리고 먹이를 찾는 듯한 새(백로인가? 뭐지?). 사진에 담아 왔다. 철조망 사이로, 숲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320s | f/2.8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180s | f/3.5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1500s | f/3.5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200s | f/3.5 | ISO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