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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조림

  • 등록일
    2005/03/12 14:28
  • 수정일
    2005/03/12 14:28

두부조림

1. 두부를 노릿노릿 부친다.

2. 멸치국물을 낸다.

3. 부친 두부를 냄비에 놓고 국물을 자작할 정도로 넣고 끓인다

4. 간장을 넣어 색깔을 낸다.

5. 쫄기 시작하면 고춧가루를 넣는다.

6. 마지막에 파, 마늘, 고추를 넣는다

7. 간을 보고 싱거우면 소금으로 간한다.

단맛을 원하면 설탕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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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볶음

  • 등록일
    2005/03/12 14:28
  • 수정일
    2005/03/12 14:28
1. 생표고는 적당한 두께로 썰어 놓는다.
2. 느타리는 소금을 약간 넣고 살짝 데친다.
3. 팽이버섯은 지저분한 밑동을 잘라내고 흐르는 물에서 헹구듯 씻는다.
4. 프라이팬에 참기름 넣고 편썬 마늘을 넣고 볶은 뒤 손질해 놓은 버섯을 차례대로 볶는다.
5. 생표고버섯부터 볶다가 느타리를 넣고 팽이는 마지막에 넣는다.
6. 볶은 버섯에 파, 간장, 맛술,소금을 넣고 마지막에 깨, 참기름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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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국가보안법 --- "반한"

  • 등록일
    2005/03/12 14:26
  • 수정일
    2005/03/12 14:26

정부는 지난 4월 마련한 ‘불법체류자 반한활동 종합대책’에서 반한활동의 범위를 △한국의 체제와 정책을 부정하거나 △한국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한국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자 △테러 음모 또는 협박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시위를 선동·주도하거나 적극 참가한 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새로운 국가 보안법

"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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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의 자유, 자본만 되고 노동은 안된다?

  • 등록일
    2005/03/12 14:26
  • 수정일
    2005/03/12 14:26
이동의 자유, 자본만 되고 노동은 안 된다? - 월간 <말> 9월호, 2004.

깨철이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 회원)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노동자가 있다?

요즘 목동에 있는 출입국 관리소 앞에서는 매주 목요일 집회가 열리고 있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추방을 중단하고, 이주노동자를 전면 합법화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평등노조, 민주노총산하 전국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 등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의 회원으로 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집회에서 출입국 관리소를 오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선전물을 돌리고 온 날이면 꼭 전화가 걸려온다. 물론 우리가 돌렸던 선전물을 읽은 이주노동자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다. 한번은 특이하게도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한국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분은 영등포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다섯 명의 이주노동자를 이번에 새롭게 고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중에서 두 명의 이주노동자가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에게 끌려갔다는 것이다.
“제가 고용하려 했던 두 명은 전에 고용했던 사장 놈이 글쎄 사업장을 옮기는데 동의서를 안 써주면서 괴롭히는 거예요. 제가 옆에서 보다 못해 그 사장 놈을 직접 찾아가 도대체 왜 동의를 안 해주냐고 따졌죠. 그래서 겨우 동의서를 받아냈지만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그만 등록기한을 넘기고 만 거예요.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들이닥치더니 끌고 가 길래 내가 사정을 설명하면서 항의를 했죠. 그래도 막무가내였어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 좀 가르쳐 달라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 분은 항의를 하러 출입국 관리소를 벌써 두 번이나 찾아갔지만, 자신이 고용한 그 이주노동자 두 명의 신원도 확인하지 못하고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나는 그저 지속적으로 항의하고 싸우는 수밖에 없노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처음 접하는 분은 ‘고용주 동의서’ 어쩌고 하는 이 얘기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 문제라고 하면 그냥 막연하게 이주노동자니까 어떤 인종적 차별을 받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후진국 동남아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한국인들의 웃기지도 않는 상대적 우월의식에 의한 차별과 멸시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단적으로 가진 것이라고는 맨 몸뚱이밖에 없는 당신이 노동을 하는데, 당신을 고용한 고용주의 동의 없이는 다른 사업장으로 옮길 수 없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건 주인과 마름의 관계, 혹은 노예제도다. 한국정부와 한국인이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갖는 관계는 단순히 ‘차별’이라고 부르기에도 사치스러울 정도다.
중국에서 온 ‘재외동포’라 불리는 이주노동자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어떤 이주 여성노동자는 살인적인 고강도 저임금 노동 때문에 한국에 온지 불과 몇 개월 만에 병을 얻고 말았다. 이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몇 달간의 휴식과 치료이지만 그녀는 일을 그만 둘 수 없다. 왜냐하면 이주노동자는 고용이 되어 일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는 즉시 그의 비자는 종료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변아주머니들처럼 노동 강도가 그나마 약한 식당에서 일할 수조차 없다. 언어적 장애도 장애이지만 그보다 문제는 동남아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업종제한이 걸려 있어 식당에서 일할 수 없게 되어있다. 죽으나 사나 노동 강도가 비슷한 다른 사업장을 찾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온 여성노동자들은 큰 병에 걸려도 어디 하소연하지도 못한다. 병을 치료하려면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체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용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사업장을 이동할 자유조차 없다는 것, 이것이 지금 이주노동자들이 불만스러워하는 가장 큰 문제다. 이는 고용주의 어떤 부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이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한 족쇄다.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조차 박탈당한 상태인 것이다. 이 족쇄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사업장에서 무단이탈해버리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업장을 때려 치는 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하겠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이런 자연스러운 거부가 곧바로 불법체류자가 되버리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업장을 무단이탈해 도주해버린 이주노동자를 우리는 당연한 인간적 권리선언이라 부르지 않고, 불법체류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거 ‘산업연수생 제도’나 현재 시행하려 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도’에서나 한국정부의 변하지 않는 이주노동자 정책의 핵심이다.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노동을 대신해주는 노예노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정치에서였다. 여기 한국 시민의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노예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이주노동자들인 것이다.
    
내국인 노동자 보호라는 이데올로기가 사람 잡는다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http://www.njustice.org) 라는 곳이 있다. 뭐하는 곳이냐 하면, 이주노동자들의 발목의 족쇄인 ‘고용허가제도’ 도입을 결사반대하는 곳이다. 어떻게 반대하느냐 하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300일 가까이 투쟁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농성투쟁단 앞에 와서 ‘너희 나라로 당장 꺼지라’고 시위를 한 번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목동의 출입국 관리소 앞에서 불법 체류자들 빨리 추방하고 앞으로 이주노동자들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고 시위를 또 한 번 했다.
‘고용허가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이나 이들이나 똑같은데 하는 짓이 영 수상하다. 이들은 스스로를 실업자나 이 사회의 가난한 민중으로 자신들을 소개하며, 자신들의 일자리나 빼앗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을 내쫓는데 앞장 설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사이트에 가보면 강간, 사기결혼, 폭력, 절도 등 이주노동자들의 범죄행각을 모조리 모아놓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참여적 행동’(?) 덕분에 힘을 얻었는지 지난 7월 15일 법무부와 노동부는 합동으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불법체류 외국인의 증가는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들의 준법의식을 저하시켜 체류질서를 문란하게 함은 물론, 매춘, 마약 등과 같은 외국인 관련 범죄의 증가로 나타나고, 건설 현장 등의 국민 근로자들과의 심각한 고용 마찰을 유발하는 등 어려운 우리의 경제 여건 속에서 커다란 사회적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법무부와 노동부는 이렇게 주장하며 더 이상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문제를 온정적(?)으로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엄격하게 다스리겠다고 발표했다.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와 한국정부의 손발이 더 이상 잘 맞을 수 없을 정도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적반하장이다. 불법체류자를 증가시키고 광범위하게 양산시킨 것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일관되게 그릇된 정책 때문이다. 산업연수생 제도라는 편법을 통해 정식 노동비자도 발급하지 않고 학생신분으로 묶어두면서 월 평균 40-50만원대의 임금으로 수탈해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다고 동의하겠는가? 도대체 이 나라 인구의 얼마 정도가 그 정도의 임금으로 살인적인 고강도 노동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없는 구속된 몸이라면? 불법체류자를 양산한 것은 이렇게 정부의 폭압적이고 수탈적인 이주노동자 공급시스템에 있었다.    
1985년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기업과 한국 정부의 필요 때문이었다. 국내의 이주노동자들은 그동안 무너져가던 한국의 제조업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물론 이것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면 축적의 어려움을 겪던 한국의 자본 입장에서 노동력에 지불해야할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이는 한편, 80년대를 거치며 조직되고 전투적으로 된 한국의 노동자들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주노동자를 적극 도입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한국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더욱 족쇄를 바짝 채워야 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주노동자들과 국내 저임금 노동자들과의 갈등관계가 없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경쟁은 이주노동자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늘 발생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령, 역사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진출했을 때 남성노동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요즘처럼 장애인 의무고용이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장애인을 자신들의 ‘적’이라 여기는 노동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적’으로 여기는 생각이 타당한 것일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노동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현상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자본의 논리 그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적’을 찾는다는 것이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이주노동자들이 없다면 실업의 가속화 현상은 멈출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일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빈곤해지고 점점 더 일자리를 잃어가고, 점점 더 불안정고용형태로 떠밀리는 것이 멈추어질 수 있는가? 대답은 뻔하다. 자본은 그런 장밋빛 미래를 그려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현실의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대상을 찾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하필이면 문화적으로 단박에 표시가 나는 이주노동자에게 몰린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의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었다. 국내의 공장이 전부 중국으로 이전해버려서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보고가 뉴스를 장식했다. 현재로서는 이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다. 경제학자들은 국내 제조업의 고도화를 통해 제조업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은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고도화가 가능한 공장이 얼마나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대부분의 공장은 낙후되고 열악한 환경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 중국으로 이전해버리고 남은 낙후된 제조업 공장에서 생산해왔던 사람들이 누구인가? 바로 이주노동자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이 사회는 과거처럼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그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의 국내에서의 ‘정주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들에게 계속 족쇄를 채우려 한다면, 이것은 손도 안대고 코를 풀려는 기만적인 행위다. ‘내국인 노동의 보호’ 라는 명목상의 이유는 페이크다. 이 페이크를 통해 노리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을 여전히 무권리 상태에 놔둠으로써 수탈을 더욱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다. 숨어 지내며 일할 수밖에 없는 불법체류자가 많을수록 싼값에 쓰다 아무렇게나 버릴 수 있는 노동자가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불법체류자를 의도적으로 양산하려는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10년 동안 숨어 다니며 한국의 제조업을 먹여 살렸다. 이 사람들에게 뭘 줘야 하나?

현재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현안은 강제추방의 문제다. 10년에서 15년 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제조업을 먹여 살려왔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그 일익을 담당해왔다. 한국사회는 이들에게 무슨 대가를 주어야 하는가? 이들을 내쫓아야 하는가 아니면, 이들에게 어떤 사회적인 보상이나 정치적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가? 이것이 시급한 현안과제다. 나로서는 이 사회가 그들에게 어떤 시혜적 조치를 내리기 전에 그들은 이 사회에서 거주할 권리를 원칙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들이 생산한 것에 대한 향유의 몫일 것이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있어서 이 쟁점을 피해가는 어떤 대책도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장기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하여 시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랜 전부터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대책을 강구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그 대책이라는 것이 근시안적으로 나오는 것이라면 ‘산업연수생제도’에서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한 ‘고용허가제도’로 바꾸는 과오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한동안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외노협)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주노총’은 과거 정부의 ‘고용허가제도’에 대해 합의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합의는 결국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대책이 되지 못함을 작년 겨울에서부터 계속되는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증명하고 있다.
현재 외노협과 민주노총은 다시 ‘고용허가제도’를 개정하느냐, ‘노동허가제도’를 새롭게 입법하느냐를 두고 다시 고민한다고 한다. 나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최대 5년간 일할 수 있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노동허가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여전히 근시안적이어서 중요한 문제를 빠뜨리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의 장기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해 5년간 일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도’가 도입되었다하더라도 과연 불법체류자가 생기지 않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외노협과 민주노총의 입장에서 비쳐지는 것 중의 하나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생각이 지나쳐 이주노동자들을 통제하려 한다는 느낌마저 준다. 이주노동자 운동에 있어서 이주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는 현재 이주노동자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이다.
‘노동허가제도’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장기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영주권’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권리가 될 수 있도록 투쟁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대책도 불법체류자를 양산하게 되고 말 것이다. ‘고용허가제도’든 ‘노동허가제도’이든 그것은 전적으로 ‘등록제’로써 정부나 기업의 계획과 통제가 일차적이고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문제는 이 핸디캡을 받아들였던 이주노동자들에게 이제 이 사회가 어떤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 사회를 향해 그 사회적, 정치적 비용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현행 ‘영주권’ 법에 따르면, 3년 동안 50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한 투자자는 영주권을 얻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마디로 투기꾼에게는 영주권을 주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못주겠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에게는 경제특구를 만들어준다 하면서 필요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무권리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대단히 부당하다. 투자했던 자본은 다시 빼가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리면 이 사회에 남는 것 하나 없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생산은 그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해서 이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주었으면 더 주어야 말이 되지 않겠는가. 자본에게 국경의 이동이 자유로운 만큼 노동에게도 국경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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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빗물로 가꾸는 정원

  • 등록일
    2005/03/12 14:25
  • 수정일
    2005/03/12 14:25

- 녹색연합(http://www.greenkorea.org/) 박경화님이 글

 

팍팍한 먼지 날리는 흙길에 남루한 옷을 걸친 한 여인이 작은 물동이를 이고 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몇 달째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은 인도의 어느 남부지방, 우물이 있는 곳까지 먼길을 허위허위 걸어 여인이 떠온 물도 그리 맑지 않은 흙탕물이었다. 먹을 물을 부엌 항아리에 조심스럽게 옮겨 붓고 여인은 곧 아이를 목욕시켰다. 대야바닥에 겨우 찰랑이는 정도의 적은 양으로 아이 몸을 그저 닦아내듯 씻겼다. 흐린 물로 두 번, 맑은 물로 한번 헹군 뒤 목욕은 끝나고, 그 물에다 가족들의 옷을 빨았다. 그리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만큼 더러워진 물을 그냥 버리지 않고 마당의 흙을 잘 개더니 무너진 흙벽을 정성스럽게 발랐다. 그 장면을 보고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을 얼른 잠갔다.

20세기는 석유 전쟁이었지만 21세기는 물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물에 관한 이야기를 늘 이렇듯 우울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있기 때문이다. 강이나 댐으로도 다 가둬둘 수 없었던 빗물을 집집마다 모았다가 활용하면 도시의 홍수도 예방하고 먹을 물도 얻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비 오는 어느 하루에 10만큼의 비가 온다면 7 정도는 땅에 스미고 3 정도가 흘러간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지금 도시에서는 2~3 정도가 땅에 스미고, 7~8 정도가 강으로 흘러가 버린다. 도시의 홍수가 자주 생기는 것도 빗물이 곳곳에서 스며들지 못하고 갑자기 많은 빗물이 강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또, 지하수마저 하수도관으로 빠져나가 버려 도시 열섬현상 같은 이상기후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날 마당에 물을 뿌려주면 시원하듯 지하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지금처럼 숨막히게 덥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물독대'를 따로 두어 사시사철 내리는 천수(天水)를 받아두었다가 집안 일에 썼다. 입춘 전후에 받아 둔 빗물을 '입춘수'라 하여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 낳고 싶은 서방님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믿었다. 또, 가을 풀잎에 맺힌 이슬을 털어 모은 물을 '추로수'라 하여 이 물로 엿을 고아 먹으면 백 가지 병을 예방한다고 했다. 또, 이른 새벽 백화(百花)에 맺힌 이슬을 털어 얼굴을 씻으면 기미도 없애고 살결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그 뿐인가? 삼국시대에 이미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 같은 저수지들이 있었고, 조선시대 세계 최초의 우량관측기인 측우기를 발명해서 관상감(觀象監)과 각 도의 감영(監營)에 설치해 놓고 빗물을 측정하도록 했다.

․빗물을 활용하는 법
시설이나 기술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지역마다, 건물마다, 빗물저장 탱크나 유수지를 설치하면 된다.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같은 지붕면적이 큰 시설물을 새로 지을 때는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인천, 대전, 전주, 서귀포 같은 월드컵 경기장에서 이미 빗물이용을 하고 있다. 의왕시 갈뫼중학교에서는 빗물을 모아 정원을 가꾸는데 쓰고 있고, 빗물이용에 관한 자료를 모은 빗물자료관도 열고 있다. 물이 귀하고 물값이 비싼 독일이나 일본, 대만에서는 지붕에서 빗물을 받아 집안의 저장탱크로 물을 모은다. 이 곳에 자동펌프를 달아 화장실 용수나 세탁물로도 쓰고, 정원수로도 쓰고 있다.

마당에 연못이 있는 집이라면 지붕에 물받이를 달아 연못으로 연결해도 되고, 물탱크에 물을 모으고 펌프와 수도꼭지를 달아 꽃밭이나 텃밭에 물을 주고, 세차나 청소용으로 쓰면 된다. 빗물에는 빨래도 아주 잘 된다. 처음 내리는 빗물은 산성이 강하지만 씻겨 내려간 다음, 비가 내린 지 15분 뒤에는 순수한 빗물이 되어 pH 5.6 정도가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빗물은 대기에서 떨어진 빗물이 아니고, 지붕을 거쳐서 떨어진 빗물이라 산성도가 중화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빗물에 뚜껑을 덮어두고, 햇빛을 쏘이지 않으면 좀처럼 썩지 않는다.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으면 유기물도 없고, 그것을 분해할 세균도 없기 때문이다. 섬 지방에서는 빗물을 모아 몇 달동안 먹는 물로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수돗물 값이 싸기 때문에 빗물을 이용해서 절약할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빗물을 이용하면 도시의 홍수도 막을 수 있고, 우리 집 물세도 줄일 수 있다. 땅 위의 물은 오염시켜 놓고 땅 속의 물에만 관심 갖지 말고 흘러내리는 빗물에 관심을 갖는 건 어떨까?  

․빗물에 관한 자료가 있는 곳
빗물이용연구회 rainwater.snu.ac.kr
빗물이용 지구사랑 / 대한상하수도학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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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성매매금지법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 등록일
    2005/03/12 14:24
  • 수정일
    2005/03/12 14:24

진보누리 - "꿈꾸는 사람"의 글

 

매춘을 도덕적인 시각에서 보면, 아주 명쾌하다. 몹쓸 짓이다. 그런데 과연 매춘이 근절될 수 있는가? 과연 역사상의 어느 시기에 매춘은 한번이라도 근절된 적이 있는가? 즉 매춘의 역사를 보면, 이 문제는 참으로 난감한 사실을 가져다 준다. 아마도 매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나란히 걸어왔고, 또한 앞으로도 나란히 걸어갈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연 지금 제정되려고 하는 성매매 금지법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하나의 우문이 되고 말 것이다. 금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아마도 대강의 확실한 현실 예측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란 말인가? 그대로 두자는 말인가? 라는 질문들을 누가 던진다면, 사실 나로서는 난감하다. 그저 문제의 어떤 지점에 대해서만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밖에는, 이 문제에 대해 말을 할 수가 없다.

우선 성매매의 금지를 바라고, 자발적인 경우에는 성매매 여성(성노동자)까지 처벌하자는 여성계의 요구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성 착취의 대상인 성 매매 여성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여성주의라는 시각에 기인한 것인가, 또 아니면 어떤 완강한 성적 도덕성과 가족 윤리의 확립을 위한 것인가, 이것도 아니라면 어떤 종교적 신념의 한 발현인가, 그저 휴머니즘의 한 차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사회 정화의 한 수순인가?

사실상 좀 접해본 이 법에 대한 정보들을 훑어보면, 대략 어지럽다. 과연 이 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가, 그리고 이 법의 성격이 기반한 윤리적 기반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많이 헷갈린다.

이 문제는 다음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즉, 형식적 자발성과 강제성의 이면에 놓인, 성매매 여성(성노동자)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 말이다. 물론 형식적 자발성이 이전의 성매매보다는 많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이는 개인적 수준에서, 그리고 그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현상의 표면에서 보면 그러다. 그러나 그가 성매매를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삼게 된 일련의 사회적 과정에서 보면, 자발적이다 강제적이다는 구분은 사실 모호해진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많은 여성들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성매매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 현 사회의 구조이다. 이것이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구조적 접근이 없이, 성매매의 표면적 삼각 구조를 형성하는 성 구매자와 성 판매자와 성 거간꾼만을 처벌한다고 해서, 이 성매매의 현실이 사라질 수 있는가이다.

사실 성매매가 쉽게 돈을 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직업군과 비교하여 성매매가 지닌 상대적 위험성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성이라는 것이 가진 쾌락성에 초점을 두어, 이 직업이 가진 위험한 노동의 성격을 오도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몇몇은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즐거움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해 성을 파는 경우, 이미 쾌락의 요소를 거의 상쇄되어 버린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치명적인 성병과 제대로 된 사회성과 사회적 관계 형성의 마비 등까지를 고려한다면, 이 성매매가 가진 직업으로서의 노동으로서의 치명적인 위험성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을까? 즉 성매매 금지법은, 그들을 통념적으로 정상적인 노동이라 여겨지는 길이 아니라, 성매매의 현실로 유인하는 사회적 요인(혹은 구조)에 대한 성찰과 개선의 종합적 대책은 과연 마련하고 있는가?

쉽게 말해서, 성매매가 금지된 여성 성노동자들은, 과연 이 일을 그만두었을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이 법에는 담겨 있는가이다. 지금 노동 현상에서 여성들이 맡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비정규직의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물며 성매매에 종사하던 여성들은, 과연 어디에서 일을 할 수 있으며, 얼마마한 정도의 노동 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

70년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변하지 않는, 갱생 교육으로서의 미싱, 미용 등의 전혀 갱생적이지 못한 프로그램을 아직도 들이밀고 있는 것은 아니가? 혹시 그것으로 갱생 프로그램이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미 포화되었더나 사양화된 몇 개의 기술을, 완벽한 갱생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면서, 겁도 없이 이 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아니면, 그냥 우리는 단속만 해서, 사회적 성적 청결만을 유지하면 되니, 나머지는 니들이 알어서 하라고, 성매매 여성들을 몰아치고 있는 것은 아니가?

결국 이전의 현실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렇게 강제로 사회에 귀한된 많은 여성들은, 더욱 열악하고 위험스러운 상황에서, 다시 성매매업소로 흘러들어갔다. 그들이 왜 그곳으로 다시 흘러들어가게 되었을까? 순진한 도덕론자나 심성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천성이 그렇기 때문에, 아니면 외골수 종교론자들처럼 마녀들이기 때문에, 아니면 유전적 병적인 유전자의 영향으로 인한 치유될 수 없는성적 도착증 때문에.....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성매매가 장려할 만한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는 역사와 함께 존재하여 왔다. 그리고 이 성매매는 사회의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하나로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매매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과연 이 법률을 만든 사람들은, 이상의 성매매가 위치한 사회적 구조와 성매매의 깊은 역사적 성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성매매에 종사할 수밖에 없거나, 성매매를 돈벌이로 선택하고 있는 이 여성들은, 과연 어디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현 우리 사회가 이들을 통념적으로 정상적인 노동으로 복귀키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노예 충원이 필요하여, 이들 성매매 여성들을 과잉-실업자 풀로 유입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아니라면 혹시, 그들이 돌아갈 사회적 위치나 선택할 노동의 성격 혹은 실업의 고통 등에 대해서는 아무 고민도 없이, 그저 사회의 성적 청결도를 높이기 위한 청교도적 발상의 하나로 이 법을 만든 것인가?

나는, 진지하게 이 법을 보고 싶다. 그러나 이 법이 대상으로 삼아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들인, 성매매여성들에 대한 입장과 그들에 대한 고려가 이 법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입장으로 이 법을 볼 수밖에 없다. 성매매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서건, 같은 여성들에 의해서건, 사실 주체들이 아니라, 그저 불량스럽고 추방하거나 교화해야 될 대상으로서만 다루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성매매 금지법에서도 역시 그렇게 다루어지는 것 같다.

p.s) 글이 길어져서 이 성매매 금지법이 가진 다른 문제들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다. 다만, 과연 이 성매매 금지법이, 미성년 여성들의 성적 착취나 성매매업 안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갈취와 폭력, 그리고 그들의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아님 생각하기 귀찮은 성매매의 모순들을 법적 강제에 의해, 한꺼번에 위생 정리하고자 하는 편의주의의 산물은 아닌지도 사실 우려가 된다.진보누리 - "꿈꾸는 사람"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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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공창제 발언, 이영훈교수 사건에 대한 때늦은 감상기

  • 등록일
    2005/03/12 14:23
  • 수정일
    2005/03/12 14:23
써 놓고 보니,
띄엄띄엄 읽는 사람들에게
조중동/한나라당 꼴통편이라고 오해를 받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추석대보름 맞이 이주노동자 잔치에 갔다가 노바리라는 친구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 대두되었던 이영훈 교수의 일본군 성노예 관련 발언에 대한 이런저런 논쟁을 듣게 되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영훈 교수는 MBC 친일과거청산에 관련한 100분 토론의 과정에서 일본군 성노예들을 징집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일본관리들만이 아닌 한국인들(아마도 포주들)이 자발적으로 개입한 사실에 대해 지적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마이뉴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영훈 교수가 일본군 성노예는 '사실상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의 형태'였다고 말했다며 그의 발언을 왜곡 보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신문사설들이 일제히 강제적으로 끌려가는 성노예를 일반 매매춘에 비유할 수 있느냐며 토를 달았고, 또 어떤 사설들은 이영훈교수의 진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영훈교수의 발언이 친일과거청산을 고깝게 보는 조중동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며 비판했다.

한편 이영훈 교수가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어떤 할머니는 "우리는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강제로 끌려갔는데, 어디 몸 파는 여성과 비교하나"라며 소리질렀다고 한다.

이 사태의 맥락을 살펴보면, 우선 가장 크게 잡히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발언과 그것의 왜곡 사태가 친일진상규명이라는 대단히 당파적인 전선싸움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친일진상규명은 열우당이 주도하는 보수, 수구 세력의 과거청산 VS 친일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한나라당 세력의 버티기라는 정치적 구도 속에 있다. 이러한 구도속에서 과거청산파는 "꽃다운 '우리'의 처녀를 일제가 강간했다"고 하는, 예전 수구파들도 종종 이용해먹은 바 있는 대단히 가부장적이며 민족주의적인 해석을 이용해먹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이영훈 교수의 발언에 관한 언론들의 대대적인 왜곡(한국 포주들, 일반사병들의 자발적 참여 -> 여성들의 자발적 참여)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노바리의 말에 따르면, 사회 전체가 "자발성"과 "비자발성"이라는 구분을 통해 일본군성노예문제를 일반적인 성매매 문제와 떼어놓으면서, 이른바 "자발적"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더욱더 죄악시하고 타자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음 이영훈의 해명을 들어보면 이는 더 명확해진다.

"그러나 계속된 네번째 토론 발언에서 저는 위와 같은 일본군의 성노예제 조직과 관리의 전쟁범죄가 그들만의 유일한 책임이 아니라 강제 동원과정에서 협조하고 위안소를 위탁 경영한 한국인 출신 민간업주, 위안소를 찾은 일반 병사들에게도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들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자발적이고 성찰적인 고백이 있어야만 진상이 규명될 뿐더러 진정한 역사의 청산도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고백과 반성의 범위를 해방 후 대한민국의 일부 군대에서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자행된 여성의 성착취 문제,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사실상 방조된 미군기지의 성착취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적 책임을 면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으면서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틀 내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내게 든 생각은 이렇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중 남성들이 압도적)을 자극시킨 건, 이영훈 교수가 기존의 민족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감히' 남성 가부장적 억압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았다는 데에 있다. 단지 제국주의 일제의 만행만을 문제삼아야 하는데,  해방 후 국군과 미군에 의한 성매매까지 걸고 넘어졌다는 것이 심히 못마땅한 것이다.

즉, 우리의 순결한 딸들을 더럽힌 일제에 복무한 친일세력들을 타도하자는 것으로 가야 하는데,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이교수가 민족보다는 젠더라는 전혀 다른 구도를 들이대며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전선구도를 흐뜨린다는 것이 이들을 매우 히스테릭하게 만든 것이다.

어떤 이는 이교수가 정신대를 일반 성매매에 비유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게 아니냐고 비판하는 한편, 딴지일보같은 노골적인 마초파들은 이영훈이 속해있는 연구동아리 사람들이 모두 친일과 관련있다, 그러므로 이영훈은 한나라이나 조중동과 같다고 과장하기도 한다. 대부분이 가부정제하의 젠더의 문제를 고스란히 반일/민족주의 담론 구도로 길들이려는 수작이다.

이교수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페미니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지는 잘 모르지만, 정신대 관련 담론들이 대부분의 경우 남성가부장적 민족중심 이데올로기에 복무할 뿐, 가부장적 역사 속에 위치한 여성 본인의 육체적 정신적 외상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사실이 이번 이교수의 발언을 둘러싼 반응들에 의해 까발려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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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매춘?

  • 등록일
    2005/03/12 14:21
  • 수정일
    2005/03/12 14:21

"소득과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다른 직업이 보장된 상태에서 매춘이라는 직업을 선택해야 "자발적"으로 매춘을 직업으로 선택했다는 발언이 가능하다"

- 진보누리의 어느 리플에서 앞뒤 욕 빼고 발췌

 

이는 여성노동이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파악함으로써 더욱 명확해진다. 즉 ① 성 노동자의 절대다수는 여성이고 ② 남한 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70%가 여성 노동자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가사노동에 전념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한 여성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상당수 여성들은 이른바 성매매와 같은 ‘주변부 노동’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 진보누리 새질서님의 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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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고등어조림

  • 등록일
    2005/03/12 14:21
  • 수정일
    2005/03/12 14:21

김치고등어조림

1. 고등어는 싱싱한 것으로 골라 대가리를 자르고 찬물에 우선 씻는다.
2. 씻은 고등어는 꼬리, 지느러미, 내장을 제거하고 다시 찬물에 깨끗하게 씻는다.
3. 손질한 고등어는 5cm로 길이로 토막을 내고 무는 나박하게 썬다.
4. 배추 김치는 먹기 좋은 길이로 썰고 대파와 풋고추, 홍고추는 어슷썰기 한다.
5. 냄비에 무를 깔고 김치, 고등어를 올린다.
6. 고춧가루, 설탕, 다진생강, 다진마늘, 후춧가루, 간장, 소금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7. 양념장을 고등어 위에 끼얹고 물을 붓는다.
8. 센불로 끓이다가 끓어 오르면 불을 줄여 끓인다.
9. 국물이 거의 조려지면 대파, 풋고추, 홍고추를 넣고 양념이 잘 들도록 졸인다.

비릿내를 없애는 법

  : 1. 씻은 고등어에 식초를 뿌린다. 2. 다 조려지면 식용류를 한스푼넣고 좀더 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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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Below the Belt

  • 등록일
    2005/03/12 14:20
  • 수정일
    2005/03/12 14:20

From North Carolina Independenc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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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ow the Belt
by danyele mcpherson Tuesday February 10, 2004 at 03:07 PM

On Friday, January 30th, Shira EtShalom brought her touring menstrual health workshop to the Internationalist Bookstore in Chapel Hill to educate local menstruators and non-menstruators alike on the alternatives and problems with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Shira, a resident of Philadelphia has been teaching menstrual health workshops and sewing homemade cloth menstrual pads which are available for purchase on her website for over 3 years. Her tour, aptly titled the Below the Belt Tour began January 24th at the 7th annual National Conference on Organized Resistance (NCOR) in Washington D.C.

Shira spoke to a group of approximately 11 women in her Chapel Hill workshop, detailing the many options available for menstruators and offering the pros and cons of each.

She stressed environmental, health, and social concerns as an impetus to seek alternatives to tampons made by Tampax, Platex, o.b. and other corporate tampon producers.

Waste was cited as a major concern of disposable menstrual products on the environment. "The average woman may use up to 15,000 tampons in her lifetime [and] that's a lot of waste for the environment," claims www.thekeeperstore.com. This website is dedicated to selling The Keeper, a tampon alternative that is reusable with a life of approximately 10 years. The Keeper is made of natural gum rubber, so it has a severely reduced impact on the environment when compared to traditional tampons.

Shira mentioned The Keeper, sea sponges (not vegan), and reusable cloth pads as alternatives which create less waste for the environment.

Also harmful for the environment and menstruators alike, Shira discussed the use of rayon and the bleaching process employed in the production of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Shira stated that rayon, a synthetic fiber made of wood pulp, caused small cuts on the vaginal walls, which increased bleeding. She also noted not only do these tampons cut the vaginal walls, but that they leave behind fibers which as a result of the bleaching process can increase chances of endometriosis and cancer.

Tampax's website directly addresses these accusations stating, "Rayon...has been used in Tampax tampons for more than 25 years. Extensive testing by a number of leading scientists at Harvard, Dartmouth, University of Minnesota, and Centers for Disease Control has demonstrated that rayon and cotton are equally safe materials. Fibers can come off any tampon. The natural cleansing process of the vagina removes these fibers with a short time. Medical literature recognizes this process and [it] does not represent a health risk." (tampax.com)

With regard to the bleaching, endometriosis and cancer risks noted by Shira, Tampax maintains their tampons are tested by "the most advanced government approved methods available" and they "contain no dioxin (a cancer causing agent). There is absolutely no scientific evidence that tampons lead to the development of endometriosis or cancer." (tampax.com) Shira counters this stating that the "government approved testing methods" referenced by Tampax were not developed to test for minute dioxin levels and their effects in sensitive areas like the vagina.

Other environmental and health concerns like pollution from tampon production and yeast infections were also discussed in the workshop.

These issues intersected with social and cultural concerns over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Participants in the workshop noted that commercials for menstrual products often convey a sense of shame to the menstruator, that it is something which should be hidden from the world. The new Tampax Compak indeed illustrates this point as it was designed to fit in the palm of one's hand, "for maximum discretion." (tampax.com) In a recent commercial, this tampon is designed so small that a woman's boyfriend mistakes it as a sugar packet.

Tampax reminds women that an advantage to wearing tampons is, "you can wear any type of clothing from body hugging workout gear to mini skirts and no one will know." (tampax.com) Another advantage Tampax cites is with tampons, "you stay clean and feel fresh" intimating that menstruation is naturally unclean.

Emphasis on secrecy is obviously part of Tampax as well as other corporate tampon producers marketing strategy. All of these advertisements and minaturized products work together to tell women the same message: menstruation is unnatural and unclean therefore, it should be concealed. Shira and workshop participants rallied against these corporately created norms yelling "tampon" in unison.

Shira presented the alternatives in order of her least to most favorite providing information on organic tampons, sea sponges (not vegan), The Keeper, and cloth reusable menstrual pads like the ones she makes and sells.

Her pads are made of 100% cotton, come in various sizes, and are machine washable. Since they are used externally and made from cotton, risks of cancer, endometriosis, and yeast infections are avoided and their reusability prevents harmful effects on the environment.

Environmental, health, and social concerns all intersected in the Below the Belt workshop, making it clear that menstrual product alternatives must be sought and education on these issues must continue.

If all this weren't enough to cause some uneasiness in the feminine care product aisle once a month, Shira hit us in the pocket. Her cloth reusable pads are $3-$10 sliding scale. The Keeper with a life of 10 years is $35 and even offers a 3 month trial with a money back guarantee. Sea sponges also offer a similar value as they can be used up to 4 cycles and cost well under the price of a box of Tampax.

All things considered, we can't afford not to give up corporately produced tampons.

Shira can be contacted at belowthebeltshira@yahoo.com

You can purchase menstrual pads and obtain relevant information on menstruation at her website, www.deadletters.biz/belowthebe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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