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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빗물로 가꾸는 정원

  • 등록일
    2005/03/12 14:25
  • 수정일
    2005/03/12 14:25

- 녹색연합(http://www.greenkorea.org/) 박경화님이 글

 

팍팍한 먼지 날리는 흙길에 남루한 옷을 걸친 한 여인이 작은 물동이를 이고 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몇 달째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은 인도의 어느 남부지방, 우물이 있는 곳까지 먼길을 허위허위 걸어 여인이 떠온 물도 그리 맑지 않은 흙탕물이었다. 먹을 물을 부엌 항아리에 조심스럽게 옮겨 붓고 여인은 곧 아이를 목욕시켰다. 대야바닥에 겨우 찰랑이는 정도의 적은 양으로 아이 몸을 그저 닦아내듯 씻겼다. 흐린 물로 두 번, 맑은 물로 한번 헹군 뒤 목욕은 끝나고, 그 물에다 가족들의 옷을 빨았다. 그리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만큼 더러워진 물을 그냥 버리지 않고 마당의 흙을 잘 개더니 무너진 흙벽을 정성스럽게 발랐다. 그 장면을 보고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을 얼른 잠갔다.

20세기는 석유 전쟁이었지만 21세기는 물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물에 관한 이야기를 늘 이렇듯 우울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있기 때문이다. 강이나 댐으로도 다 가둬둘 수 없었던 빗물을 집집마다 모았다가 활용하면 도시의 홍수도 예방하고 먹을 물도 얻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비 오는 어느 하루에 10만큼의 비가 온다면 7 정도는 땅에 스미고 3 정도가 흘러간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지금 도시에서는 2~3 정도가 땅에 스미고, 7~8 정도가 강으로 흘러가 버린다. 도시의 홍수가 자주 생기는 것도 빗물이 곳곳에서 스며들지 못하고 갑자기 많은 빗물이 강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또, 지하수마저 하수도관으로 빠져나가 버려 도시 열섬현상 같은 이상기후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날 마당에 물을 뿌려주면 시원하듯 지하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지금처럼 숨막히게 덥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물독대'를 따로 두어 사시사철 내리는 천수(天水)를 받아두었다가 집안 일에 썼다. 입춘 전후에 받아 둔 빗물을 '입춘수'라 하여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 낳고 싶은 서방님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믿었다. 또, 가을 풀잎에 맺힌 이슬을 털어 모은 물을 '추로수'라 하여 이 물로 엿을 고아 먹으면 백 가지 병을 예방한다고 했다. 또, 이른 새벽 백화(百花)에 맺힌 이슬을 털어 얼굴을 씻으면 기미도 없애고 살결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그 뿐인가? 삼국시대에 이미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 같은 저수지들이 있었고, 조선시대 세계 최초의 우량관측기인 측우기를 발명해서 관상감(觀象監)과 각 도의 감영(監營)에 설치해 놓고 빗물을 측정하도록 했다.

․빗물을 활용하는 법
시설이나 기술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지역마다, 건물마다, 빗물저장 탱크나 유수지를 설치하면 된다.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같은 지붕면적이 큰 시설물을 새로 지을 때는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인천, 대전, 전주, 서귀포 같은 월드컵 경기장에서 이미 빗물이용을 하고 있다. 의왕시 갈뫼중학교에서는 빗물을 모아 정원을 가꾸는데 쓰고 있고, 빗물이용에 관한 자료를 모은 빗물자료관도 열고 있다. 물이 귀하고 물값이 비싼 독일이나 일본, 대만에서는 지붕에서 빗물을 받아 집안의 저장탱크로 물을 모은다. 이 곳에 자동펌프를 달아 화장실 용수나 세탁물로도 쓰고, 정원수로도 쓰고 있다.

마당에 연못이 있는 집이라면 지붕에 물받이를 달아 연못으로 연결해도 되고, 물탱크에 물을 모으고 펌프와 수도꼭지를 달아 꽃밭이나 텃밭에 물을 주고, 세차나 청소용으로 쓰면 된다. 빗물에는 빨래도 아주 잘 된다. 처음 내리는 빗물은 산성이 강하지만 씻겨 내려간 다음, 비가 내린 지 15분 뒤에는 순수한 빗물이 되어 pH 5.6 정도가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빗물은 대기에서 떨어진 빗물이 아니고, 지붕을 거쳐서 떨어진 빗물이라 산성도가 중화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빗물에 뚜껑을 덮어두고, 햇빛을 쏘이지 않으면 좀처럼 썩지 않는다.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으면 유기물도 없고, 그것을 분해할 세균도 없기 때문이다. 섬 지방에서는 빗물을 모아 몇 달동안 먹는 물로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수돗물 값이 싸기 때문에 빗물을 이용해서 절약할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빗물을 이용하면 도시의 홍수도 막을 수 있고, 우리 집 물세도 줄일 수 있다. 땅 위의 물은 오염시켜 놓고 땅 속의 물에만 관심 갖지 말고 흘러내리는 빗물에 관심을 갖는 건 어떨까?  

․빗물에 관한 자료가 있는 곳
빗물이용연구회 rainwater.snu.ac.kr
빗물이용 지구사랑 / 대한상하수도학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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