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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놓고 보니,
띄엄띄엄 읽는 사람들에게
조중동/한나라당 꼴통편이라고 오해를 받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추석대보름 맞이 이주노동자 잔치에 갔다가 노바리라는 친구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 대두되었던 이영훈 교수의 일본군 성노예 관련 발언에 대한 이런저런 논쟁을 듣게 되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영훈 교수는 MBC 친일과거청산에 관련한 100분 토론의 과정에서 일본군 성노예들을 징집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일본관리들만이 아닌 한국인들(아마도 포주들)이 자발적으로 개입한 사실에 대해 지적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마이뉴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영훈 교수가 일본군 성노예는 '사실상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의 형태'였다고 말했다며 그의 발언을 왜곡 보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신문사설들이 일제히 강제적으로 끌려가는 성노예를 일반 매매춘에 비유할 수 있느냐며 토를 달았고, 또 어떤 사설들은 이영훈교수의 진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영훈교수의 발언이 친일과거청산을 고깝게 보는 조중동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며 비판했다.
한편 이영훈 교수가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어떤 할머니는 "우리는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강제로 끌려갔는데, 어디 몸 파는 여성과 비교하나"라며 소리질렀다고 한다.
이 사태의 맥락을 살펴보면, 우선 가장 크게 잡히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발언과 그것의 왜곡 사태가 친일진상규명이라는 대단히 당파적인 전선싸움의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친일진상규명은 열우당이 주도하는 보수, 수구 세력의 과거청산 VS 친일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한나라당 세력의 버티기라는 정치적 구도 속에 있다. 이러한 구도속에서 과거청산파는 "꽃다운 '우리'의 처녀를 일제가 강간했다"고 하는, 예전 수구파들도 종종 이용해먹은 바 있는 대단히 가부장적이며 민족주의적인 해석을 이용해먹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이영훈 교수의 발언에 관한 언론들의 대대적인 왜곡(한국 포주들, 일반사병들의 자발적 참여 -> 여성들의 자발적 참여)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노바리의 말에 따르면, 사회 전체가 "자발성"과 "비자발성"이라는 구분을 통해 일본군성노예문제를 일반적인 성매매 문제와 떼어놓으면서, 이른바 "자발적"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더욱더 죄악시하고 타자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음 이영훈의 해명을 들어보면 이는 더 명확해진다.
"그러나 계속된 네번째 토론 발언에서 저는 위와 같은 일본군의 성노예제 조직과 관리의 전쟁범죄가 그들만의 유일한 책임이 아니라 강제 동원과정에서 협조하고 위안소를 위탁 경영한 한국인 출신 민간업주, 위안소를 찾은 일반 병사들에게도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들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자발적이고 성찰적인 고백이 있어야만 진상이 규명될 뿐더러 진정한 역사의 청산도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고백과 반성의 범위를 해방 후 대한민국의 일부 군대에서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자행된 여성의 성착취 문제,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사실상 방조된 미군기지의 성착취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적 책임을 면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으면서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틀 내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내게 든 생각은 이렇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중 남성들이 압도적)을 자극시킨 건, 이영훈 교수가 기존의 민족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감히' 남성 가부장적 억압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았다는 데에 있다. 단지 제국주의 일제의 만행만을 문제삼아야 하는데, 해방 후 국군과 미군에 의한 성매매까지 걸고 넘어졌다는 것이 심히 못마땅한 것이다.
즉, 우리의 순결한 딸들을 더럽힌 일제에 복무한 친일세력들을 타도하자는 것으로 가야 하는데,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이교수가 민족보다는 젠더라는 전혀 다른 구도를 들이대며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전선구도를 흐뜨린다는 것이 이들을 매우 히스테릭하게 만든 것이다.
어떤 이는 이교수가 정신대를 일반 성매매에 비유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게 아니냐고 비판하는 한편, 딴지일보같은 노골적인 마초파들은 이영훈이 속해있는 연구동아리 사람들이 모두 친일과 관련있다, 그러므로 이영훈은 한나라이나 조중동과 같다고 과장하기도 한다. 대부분이 가부정제하의 젠더의 문제를 고스란히 반일/민족주의 담론 구도로 길들이려는 수작이다.
이교수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페미니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지는 잘 모르지만, 정신대 관련 담론들이 대부분의 경우 남성가부장적 민족중심 이데올로기에 복무할 뿐, 가부장적 역사 속에 위치한 여성 본인의 육체적 정신적 외상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사실이 이번 이교수의 발언을 둘러싼 반응들에 의해 까발려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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