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회사생활...
- 무나
- 2011
-
- 한 작은 생명이 지다(3)
- 무나
- 2010
-
- 사육과 육식
- 무나
- 2010
-
- 알아차리기와 글쓰기, 크리슈나무르티(1)
- 무나
- 2010
-
- 진보넷 새단장 축하~(1)
- 무나
- 2010
안티이주노동자 사이트의 후man이라는 사람이 이주노동자 합법화 지지모임인 stopcrackdown.net에 반론한 글을 쇼르쏘띠가 제반론한 글.
후man: 그리고, 쇼님은 경쟁을 누가 인정하지 않는데요, 라고 하시는데, 쇼님의 경쟁을 인정하다는 일자리경쟁은 자국의 노동시장에 기존 있어왔던 일자리경쟁과 동일시 하여 외국인노동자도입이 외국인노동자 도입으로 인해 생긴 경쟁의 심각성을 희석 시키는 일자리 경쟁 인정 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07/15-12:20]-
----------------------------------------------------------
쇼르쏘띠:
님이 '희석시킨다'고 생각하시는 부분, 저는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가장 큰 차이의 원인은 바로 '국가'와 '국경'을 어떻게 보는가 입니다. 님은 국가와 국경을 절대불변의, 넘어서는 안 될 것으로 상정하고 계시고 저는 언젠간 없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차이랄까요. 그렇기에 저는 자국 내에서 '새로이 창출되는 노동력'이나 외국에서 '새로이 유입되는 노동력'이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하고, 님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유는 역시나, '국경' 때문이죠.
제 글을 님이 해석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님의 글을 해석해 본다면, 님의 글은 이주노동자라는 '새로이 유입된 노동력'의 특수성을 강조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매순간 겪어야 하는 온갖 종류의 일자리경쟁 및 자본에 의해 새로이 창출되는 노동력과의 경쟁 전반을 희석시키고 계신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분명 국가와 국경의 역할이 큰 현대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노동자 그룹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이주노동자들의 탓으로 돌리자 생각하고 이것저것 살펴보면, 당황스럽게도 우린 IMF 이전에도, IMF 직후에도, 극심한 실업문제와 생존경쟁을 벌여야 했었단 사실을 다시 인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예로 들었던 청소년 노동 역시, 90년대에 갑자기 대규모가 되었습니다. 패스트푸드점과 주유소의 노동은, 과외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소위 '명문'대학생도 아니고 육체적 힘을 쓸 수 있는 노동도 할 수 없는 여성 대학생들, 혹은 대학진학은 안 하고(혹은 못 하고) 고등학교 졸업한 뒤 취업을 못하는 20대 초반 여성들이, 전공책값 혹은 최소한의 용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뛰어야 하는 마지막 일터였습니다. 사람들에게 강조가, 조명이 안 된 것뿐이에요.
지금 주유소나 패스트푸드점에 가 보세요. 과연 20대 초반의 여성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시간당 보수가 유난히 낮고 노동강도도 그리 편하지 않은 그러한 곳의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최하위 시간당 보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당시 교내 근로장학생 아르바이트는 시간당 3,300원, 근처 커피숍은 2,000원, 맥도널드는 1,200원이었습니다. 지금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가장 보수가 적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요.) 이렇게 경쟁은 사회 모든 노동터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끝없이, 새로운 집단의 노동력이 창출되고, 유입돼요.
이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주노동자는 안 된다, 라는 주장은 결국 국경과 국가의 강조를 근거로 듭니다. 그러나 저는 좌파라는 님의 포지션에서 국가와 국경이 계속해서 절대적인 무엇인 것처럼 강조되는 게 상당히 그로테스크합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유입만을 강조함으로써, 원래 다양한 노동자 그룹간, 노-노간, 혹은 개인간에 별다른 일자리 경쟁과 마찰은 거의 없었다는 듯 희석되고 덮어지는 것도 상당히 문제라 생각해요.
한국에서 장애인들은 심지어 이동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버스도 지하철도,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엔 너무나 불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 때문이죠. 현재 장애인들의 노동은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님들은, 이주노동자를 경쟁에서 쳐냈을 때 장애인의 노동이 확보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죠. 단기적으로 그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인구의 10%인 장애인들의 이동과 최소생존권, 그리고 노동권이 보장될 때, 여러분들은 또다시 장애인 노동자와 1:1 경쟁을 해야 합니다. 노동력은 그런 식으로 새로이 창출돼요. 그리고 자본이 원하는 것은, 이들 노동자 간의 적대입니다. 그리고 님들은 불과 3, 4년 후에, 님들이 이주노동자들을 몰아내자는 주장에 사용했던 그 똑같은 논리와 근거가 장애인들 몰아내자는 주장에 사용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님의 언어는 딱, 배제와 분할/지배의 논리이고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여성노동자'를 말씀드리지만, 새로이 여성노동자가 사회노동에 유입되었을 때에는 이주노동자 유입 때보다 훨씬 더 크고 노골적이고 본격적인 반발이 있었습니다. 벌써 인구가 '반'이니까요. (물론, 사실은 최하층의 여성노동자들은 그 전에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래서 지금도 좌파들 중 일부 페미포비아들은, 여성과 페미니스트는 자본의 앞잡이라고까지 얘기하면서 그 근거로 산업혁명 이후 자본가가 더 싸고 더 열심히 일하는 노동력을 요구했을 때 거기에 포섭된 인력이 바로 여성/어린이 인력이었다는 예를 들지요. 어떻습니까. 님들의 논리 및 주장과 너무나 판박이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저나 lovemind님이나, 님들이 '이주노동자 몰아내자'라는 주장을 할 적엔, 이미 '여성노동자 몰아내자' '장애인 노동자 몰아내자'라는 주장과 하등 다를 바 없으며, 이미 그러한 주장의 전초전에 발을 디뎠다고 지적을 하는 겁니다.
분노와 절박감은 당연한 겁니다. 이곳처럼, 가난할수록 살기 힘든 땅에선 더욱. 그런데 그 분노의 화살이 제대로 향해야 할 곳을 향하지 못했을 땐, 너 죽고 나 죽고 다른 사람도 다 죽여버리겠다는 얘기밖에 안 돼요. 그런데 왜 그래야 하죠? 정작 가난한 사람들 쥐어짜서 이득을 취하는 놈들은 따로 있는데 말입니다. 이주노동자들 쥐어짜고, 이주노동자들을 방패삼아 정착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놈들은 따로 있는데 말입니다. 님들이나 이주노동자나 이주노동자 지지자들의 적은 같은데, 왜 우리끼리 싸워야 하지요?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