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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 괴짜스님을 만나다.

달랏으로 가는 버스는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간다. 바깥 온도야 버스 안이라 알 수 없으나 파란 하늘이며 청명한 공기가 시각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일년에 한두번 볼 수 있는 쨍한 가을날의 풍경이다. 달랏에 내리니 공기는 선선한데 햇살이 따갑다. 고원지대라 그런지 베트남에선 통 볼 수 없던 가파른 언덕길이 보인다.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서 본다. 밤늦게 술먹다 처음 가보는 자취방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버스타러 나올 때 그 기분이다. 언덕을 넘어 큰길이 나올 만한 곳으로 걸으며 여기가 달랏이지 신림동 언덕길인지 잠시 헷갈린다. 선선한 기후탓이지 그저 쌀국수집이 분식집 같고 옷가게며 빵집, 문방구까지 우리네 그곳과 닮아 있다. 지도를 따라 걸어보니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단지 오르막이 많아 시클로가 없다는 걸로 봐서 자전거로 시내를 돌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달랏가는 길. 공기가 차고 맑아 시야가 선명하다.


숙소 옆의 언덕길. 낯익은 동네 같다.


그래서 그런지 시내와 근교를 묶어서 오토바이로 돌아보는 투어가 달랏의 대표적 관광 상품인데 걸어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오토바이 기사들이 달라붙는다. 가격은 하루 10에서 12달러 선으로 만만치 않다. 여러 명이 같이 다니는 버스 투어와는 달리 기사와 둘이 다녀서 그런다는데 글쎄 굳이 그 가격에 커피 농장이며 실크 공장 따위를 다녀야 하는지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저 시장이나 돌아본다. 베트남의 다른 시장들은 일찍 문을 여는 탓인지 대략 6시경이면 문을 닫는데 여긴 선선한 기후 덕분에 야시장이 선다. 뭐 우리나라에선 잼 만드는 용으로나 쓰일 만한 자잘한 딸기며 감, 따뜻한 죽과 두유 등 베트남의 다른 도시에선 보기 힘든 것들이 눈에 뛴다. 특히 옷가게에서 파는 스웨터나 두툼한 파카 따위가 이채로운데 다른 도시에서 잠시 다니러 온 베트남 사람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달랏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까지 저렇게 추위를 타나 싶은게 미리 듣긴 했지만 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된다.


달랏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는 도착 예정 시간을 두시간이나 넘겨 숙소로 찾아온다. 나짱에서 떠나기로 한 시간보다 두시간이나 넘겨 버스가 왔다고 하는데 뭐 그러려니 해야지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담날 오전에는 걸어서 시내를 오후에는 시외곽의 관광지 몇 군데를 찍어 로컬오토바이 기사와 흥정하기로 하고 시내로 나선다. 베트남 2대 대통령의 딸이며 모스크바에서 건축공부를 했다는 항응아가 만든 게스트 하우스가 첫째 목적지다. 뭐 게스트하우스 따위를 관광하냐고 하겠지만 이 건축물이 기이한 형태로 만들어져 묵는 손님보다는 입장료로 연명하는 듯 보이는데 초기에는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손님들들부터 욕도 숱하게 얻어먹은 곳이라고 한다.


다음은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의 여름 별장이다. 여름에 이곳만큼 시원한 곳도 없었던지 이곳에 별궁이 3개나 있는데 그중 한 곳을 가본다. 가이드북에는 2층은 호텔로 사용된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은 왕과 왕비 그리고 자식용이거나 아님 손님용이었을 침실을 복원해 놓았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당시 사용하던 가구며 그릇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일명 크레이지 하우스, 저 통나무 모양의 구조물에 객실이 있다.


바오다이 황제의 여름별장. 생각보다 소박하다 했는데 달랏에만 별장이 3개나 있었단다.


사실 달랏은 기후나 풍광 외에 별다른 유적지는 없어 보인다. 그저 가는 길이라 크레이지 몽크라고 불린다는 달랏대학 출신의 괴짜스님이 있다는 절에 잠시 들러본다. 가이드북에 그만큼 소개되었고 시내외 투어에 빠지지 않는 코스니 귀찮아서라도 스님은 없고 다른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이 스님 그 절에 혼자 계신다. 게다가 산중에서 몇 년 혼자 지낸 사람처럼 반가워하는데 대략 난감이다. 절 자체나 스님이 쓰거나 그린 그림들이야 내 예술에 문외한이니 논할 바는 못 되나 뭐 그리 대단해 보이는 건 아니고 그저 잠시 들렀다 가려고 했는데 앉으라더니 이런저런 수다를 풀어놓는다. 영어로 하는 수다에는 분명한 한계가 느껴져 사진이나 찍고 나오려는데 이 스님 옷을 차려입고 문앞까지 따라나오시더네 친구집에 가서 녹차나 한잔 하고 가란다. 호기심반 강요반 따라 나서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정집이 나온다. 가정집에는 부처님옆에 예수님이, 예수님 앞에는 성모마리아가 서 잇는 퓨전 불당이 세 개나 있는데 우리네 6,70년대에나 봤을법한 종이꽃이며 크리마스 장식용 꼬마전구가 현란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오 주여, 꼴통 기독교 신자들이 봣으면 불이라도 질렀을 법한 풍경이다. 짧은 영어로 연유를 물었더니 그도 짧게 대답한다. 모든 종교는 다 세임세임이란다. 이 스님 도가 통한건지 사이비 교준지 내 알바 아니나  꽤 재미있는 분임에는 틀림없다.


크레이지 몽크와 집에서 한 장. 정면에서 보이는 분이 스님의 어머니다. 글구 사진 꼭 부쳐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으니 보내긴 해야 하는데 어디서 인화를 한단 말인가.. 에휴


한끼 얻어먹은 스님네 집 채식 식단. 우리네 반찬과 비슷하다.


친구네 집이라던 그집에는 스님의 어머니가 살고 계시고 신도로 추정되는 대여섯분이 점심을 차리느라 분주하다. 모두 채식으로 마련되었다는 식탁에 얼떨결에 초대받아 밥을 먹는다. 베트남 가정에서 밥을 먹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밥상 역시 두부며 숙주나물, 단호박찜 등 우리네 식탁과 닮아 있다.  그 와중에 스님, 우리의 가이드북을 받아 자기가 나왓다고 자랑도 하시고, 찍은 사진 꼭 보내라며 주소도 적어 주시고, 주소를 적으시다 친구의 볼펜까지 달라고 해서 챙기신다^^결국 스님의 어머니가 재들도 놀아야 하니 그만 보내라 하신 이후에야 스님도 그만 가보라고 하신다. 재미있는 경험이긴 했지만 행여나 길에서 다시 만날까 다른 길로 재빨리 빠져 나온다.


오후에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시외곽을 돈다. 영어가 안 통해 애를 먹기는 했지만 숙소앞에 진을 치고 있는 가이드가 아니라 그냥 로컬 아저씨들과 계약을 하니 대략 반값이다. 세시간가량 돌고 숙소앞에 내려 약속한대로 오만동을 건네주니 제법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맞았는데도 얼굴이 금새 환해진다. 저 아저씨들에겐 오늘이 운수좋은 날이었을까.. 설사 그 돈이 바가지였대도 기분이 흐믓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앞으로 두세달은 따뜻한 물이 그리워질 날은 없을 것이다. 꺼내입었던 긴옷들도 다시 집어넣는다. 이 옷들도 당분간을 입을 일이 없을 것이다. 갑자기 한국은 많이 추울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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