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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쉬> 미로 속을 헤매다

이번에는 그리 멀지 않다. 에싸웨라에서 버스로 세 시간쯤 달리니 어느새 마라케쉬다. 이제 세 시간쯤 이동하는 일은 그저 옆동네에 가는 것 같다^^. 여행자 숙소가 몰려 있는 자말엘프나 광장까지는 택시나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번엔 버스를 탄다. 아직 택시비가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대부분 미터기를 이용하는 모로코 택시는 선뜻 타기가 꺼려진다. 흥정하는 택시보다 미터택시가 더 경제적일 것 같지만 말도 안 통하고 길도 모르는데 돌아가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는 게 또 이 미터 택시다. 그나마 유명한 곳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버스를 타는 편이 몸은 좀 고되도 맘이 더 편하다. 다행히 터미널 근처에 있는 유스호스텔에 묵고 있다는 독일 아저씨를 만나 헤매지 않고 광장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그러나 맘에 두고 찾아간 호텔은 또 방이 없다. 이 놈이 유럽 여행객들은 도대체 언제가 비수기란 말이냐... 결국 몇 집을 더 헤매다 적당한 호텔에 짐을 푼다

 

모로코에서 4번째로 큰 도시라는 마라케쉬는 지금부터 천년전 알모나데 왕조의 수도였던 역사적인 도시로 온통 붉은 색의 건물들과 미로 같은 골목들로 이어진 메디나로 유명한 곳이다. 이 메디나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자말엘프나 광장은 마라케쉬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 낮에는 약장사를 비롯해 뱀장사, 점쟁이, 헤나 아줌마, 오렌지쥬스나 달팽이 등을 파는 온갖 잡상인들로 가득하다가 밤이 되면 거대한 노천 식당으로 변하는 굉장히 시끄럽고 분주한 곳이다. 낮에 이곳을 다니고 있으면 80년대 청량리 역전을 방불케 하는 각종 쇼가 벌어지는데 어디서나 사람들의 기술을 뻔한 건지 말은 많고 핵심은 보여줄 듯 보여줄 듯 안 보여주는 게 우리나라 약쟝수와 별 다를 바가 없는데도 여기저기 둥그렇게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로 무리를 이루고 있다.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귀신같이 돈 달라고 달려오는 통에 그저 설렁설렁 어깨 너머로 구경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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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말엘프나광장, 카메라만 들이대면 돈 달라는 통에 디테일한 건 찍을 엄두도 못 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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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광장은 거대한 노천식당으로 변한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밤이 되어 다시 광장으로 나가본다. 광장은 낮과는 다르게 거대한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고 케밥 굽는 연기 사이로 전통 공연을 하는지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이렇게 관광지 가득 들어찬 노천 음식점들치고 맛있는 곳 못 보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한자리 끼어서 음식을 주문한다. 이때까지 목사님이 싸주신 도시락 말고 먹은 거라곤 숙소에서 주는 빵이나 길거리 샌드위치가 고작이었으니 모로코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인 따진과 꾸스꾸스를 하루씩 먹어 본다. 따진은 고기와 야채를 넣고 노란 커리같은 향신료와 함께 푹 삶은 듯한 요리인데 생각보다 향이 강하지 않아 비교적 입맛에 맞는데 비해 꾸스꾸스는 역시 고기와 야채를 향신료와 삶았다는 점에선 공통적이지만 약간 쉰듯한 맛이 나고 좁쌀을 삶은 듯한 하얀 곡류와 같이 나오는데 이 곡류도 그다지 입맛에 맞지는 않는다. 하루 식사란 게 아침엔 잼바른 삐따빵, 점심엔 삐따빵 샌드위치 저녁엔 따진이나 꾸스꾸스와 삐따빵 뭐 대략 이런 조합이니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밥 생각이 간절하다

이건 비프따진, 옆에 건 곁들이로 나오는 올리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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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꾸스꾸스, 옆에 얼핏 보이는 게 삐따빵이다

다음날은 메디나를 돌아본다. 메디나는 이 자말엘프나 광장을 둘러싸고 긴 수크가 이어지고 수크 너머에는 사람들이 사는 집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도 유서 깊은 도시라는데 어디를 가볼까 론리 복사본을 뒤적거려 본다. 먼저 꾸뚭비아모스크, 저건 광장에서도 뻔히 보이는 저 첨탑 건물인데.. .. 무슬림이 아니면 못 들어가는군 다음! 알리벤유세프모스크.. 이것도 무슬림이 아니면 못 들어가는군.. 안간다 안가.. 그럼 어딜 가라는 말이냐.. 알리벤유세프메데레사 여긴 또 뭐냐.. 대략 모스크 부설 회교 학교쯤 되는 것 같은데 여기나 가볼까.. 하고 나선 것이 실수였던 것이다. 대략 방향을 잡아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자 온통 갈림길로 가득한 골목이 나온다. 표지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길을 물어봐도 손가락으로 가르쳐주는 방향만큼 가다보면 어느새 또 갈림길이니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지도를 보면 그리 멀어보이지도 않은 길인데 두어 시간을 뺑뺑이를 돌아도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오기가 생긴다. 메데레사인가 뭔가는 이제 안중에도 없다. 그저 가볼까 나섰던 길이었던 거지 꼭 볼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되는대로 걸어 다닌다. 지가 헤매봤자 성안이지 싶은데 한 시간쯤 걸으니 동쪽에 있는 문이 나왔다가 다시 두 시간쯤 걸으니 이제는 북쪽에 있는 문이 나온다. 그리 넓은 곳도 아닌데 도대체 골목은 시작도 끝도 보이질 않는다.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길도 한골목만 안으로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기만 하고 더 안쪽 골목은 들어갈 엄두도 나질 않는다. 한때 골목은 시장과 더불어 여행의 로망이었는데 여섯 시간을 내쳐 걷고 나니 이제 골목의 갈림길만 봐도 이가 갈린다. 도대체 이 인간들은 어쩌자고 이런 길에 집을 만들고 산단 말이더냐.. 황당해하며 골목에 주저앉아 있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배달하며 다니는 게 보인다. .. 어디나 고수는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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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그래도 시작은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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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엔 거의 이런 골목길을 돌아다녔다는ㅠㅠ

 

결국 메디나의 골목길에 두손두발 다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다음날은 30초에 한번씩 길을 물어가며 나란히 붙어 있는 궁전 두개와 어느 왕조의 묘지 하나를 둘러보고 잽싸게 숙소로 돌아와 그저 숙소 근처에서 논다. 더 이상 미로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는 길을 뱅뱅 돌며 즉석에서 갈아주는 오렌지 쥬스를 마시고, 이쑤시개로 달팽이도 뽑아먹고, 서른한 가지는 까지는 안 되도 스무 가지쯤 되는 아이스크림을 골라먹으면서  돌아다니는 사이에 어느새 밤이 오고 광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음악소리는 어제와 다름없이 요란한데 이상하게도 이곳은 단 하루만에 익숙하면서도 낡은 풍경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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