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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1/15
    <메콩델타> 국경을 넘다.(12)
    제이리
  2. 2005/11/15
    <카오다이-구찌> 또 투어를 가다(5)
    제이리
  3. 2005/11/15
    <호치민> 베트남의 마지막 도시로 오다.(2)
    제이리
  4. 2005/11/08
    <므이네> 과음에 성공하다(12)
    제이리
  5. 2005/11/08
    <달랏> 괴짜스님을 만나다.(5)
    제이리
  6. 2005/11/08
    <나짱> 한국인들을 떼로 만나다.(6)
    제이리
  7. 2005/10/31
    <미썬> 이번엔 반나절투어다.(9)
    제이리
  8. 2005/10/31
    <호이안> 아무튼 이상한 사람들이다.(6)
    제이리
  9. 2005/10/29
    <훼> 훼가 좋다.(2)
    제이리
  10. 2005/10/25
    <하롱베이> 조용한 이틀을 보내다.(10)
    제이리

<메콩델타> 국경을 넘다.

 

결국 일행들의 일정에 따라 예정보다 하루 빨리 베트남을 떠나기로 한다. 메콩델타를 돌아보는 투어는 메콩델타를 지나 캄보디아 국경을 넘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1박 2일짜리 투어를 신청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육로로 흔히 넘는 목바이 국경이 아니라 쩌우독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이 국경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비자 발급이 안된단다. 1달러를 수수료로 내고 캄보디아 비자를 대행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대사관에 갔다오는 비용이나 수수료나 거기서 거기긴 하지만 배낭여행자 의식(?)이 발동 잠시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가볍게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생각을 바꾼다. 점점 게을러지는 것이 이젠 어디가 1달러라도 싸나 하면서 다니는 발품도 팔기가 싫어지는 게 다 더운 날씨 탓이지 싶다.


일행이 있어서인지 베트남 남부 지방부터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 것 같다. 막상 호치민을 떠나려니 뭔가 두고 온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가면 안 될 것도 같은 게 묘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래도 짐을 싸고 투어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는 두어시간을 달려 메콩강가에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거기서 다시 보트를 갈아타고 코코넛 캔디를 만드는 곳이며, 라이스 페이퍼를 만드는 곳이며 -죄 가내수공업 수준의 제작 공정이다- 몇 군데를 보여주더니 다시 보트에 태워 메콩강을 흘러간다. 메콩강은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흐르는 거대한 강인데 이것이 베트남으로 와서 바다에 이르기 전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메콩델타라 부른다고 한다. 메콩강이라면 이전 라오스에서 스피드보트-말이 스피드보트지 나룻배에 모터를 장착한 매우 작고 시끄러운 배다- 7시간이나 탄 경험이 있어 그런지 강가의 풍경들도 그만그만하다. 배는 육지에 닿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 서너시간을 달리니 국경도시 쩌우덕이다.


배에서 본 메콩델타1


배에서 본 메콩델타2


쩌우덕 가는 길은 이때까지 본 베트남들의 모습들과는 사뭇 다르다. 군데군데 강이 펼쳐져 있어서 그런지 수상 가옥들도 종종 눈에 띄고, 벼가 자라는 마을이며, 동네 어귀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며,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모습이 그저 70년대쯤의 우리네 시골로 시간을 돌려놓은 것 같다.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어린 아이들의 웃음도 그저 맑기만 하다. 쿠의 비웃음이 눈에 선하지만 별 쓸 말이 없는 고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고향이 쩌우독인 한 시인의 시를 인용하기로 한다. 물론 가이드북에는 해석도 되어 있지만 여러분들의 영어실력을 너무 무시하는 행위가 될까봐 해석은 생략하오니 알아서 해석하시도록..


Thinh's story


when I think of Vietnam

I don't think of naplam

I don't think of a war

when I think of Vietnam

I just think of Chau Doc

where I grew up


길에서 만난 아이들


쩌우독에서 하루밤을 묵고 다시 보트를 탄다. 투어의 일정이 아직 안 끝났는지 이번엔 작은 나룻배를 타고 액젓 만드는 곳과 쌀로 만드는 강정 따위를 만드는 공정을 보여준다. 나룻배는 주로 두명씩 태우고 여자들이 뒤에서 배를 저어 가는데 이미 땀꼭에서 경험한 바 팁을 요구할 것 같은 불길하나 예감이 든다. 그러나 베트남동은 이미 죄다 담배로 바꿔버려 한 푼도 없는데다 담배를 팁으로 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일행에게 돈을 좀 빌려야 하나 하고 있는데 먼저 내린 배에서 배젓는 아낙네 하나가 이만동 짜리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흔들고 있다. 또 어떤 정신 나간 서양애가 팁을 저렇게 많이 줘서 사람 난처하게 하나 투덜거리면서도 일단 돈이 없으니 그냥 내린다. 어차피 그 보트가 몇군데 들리니 팁을 주더라도 마지막에 줘야 할 것 같은 생각도 있다. 그런데 다음 목적지로 가니 다른 아낙네가 똑같은 짓을 한다. 아.. 작전이었구나 싶다. 결국 마지막에 일행에게 빌려서라도 팁을 좀 주려던 마음을 바꿔먹고 그냥 내린다. 참 가지가지 하는 나라다.


나룻배, 사람이 직접 젓는다.


이제 국경을 넘을 시간이다. 다시 큰 보트로 갈아타고 잠시 내려 국경을 넘는다. 대략 짐작은 했지만 새까맣게 몰려있는 구걸하는 애들과 환전상들을 헤치고 강가에 있는 소박한 국경사무소에서 간단히 국경을 통과하고 이번에는 캄보디아 보트로 갈아탄다. 보트에 적혀 있는 코카콜라 2000에 뭔 물가가 이리 싸나 잠시 당황하다 아.. 단위가 동이 아니라 리엘이구나 생각하니 국경을 넘은 실감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보트는 하염없이 메콩강을 달려 어느 선착장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다시 버스로 갈아타란다. 버스의 상태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나 거기서 거긴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게다가 도로의 상태도 말이 아니어서 포장도로이긴 하나 군데군데 패인 곳이 많아 덜그럭거리는 짐들과 억, 억 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날이 다 저물어서야 최종 목적지인 프놈펜에 들어선다. 


베트남측 국경 모습


캄보디아에서 갈아탄 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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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다이-구찌> 또 투어를 가다

호치민의 대표적인 투어 상품은 <카오다이-구찌> 일일투어와 <메콩델타> 투어인데 메콩델타는 캄보디아를 넘어가는 일정과 연계하기로 하고 혼자서 일일투어를 다녀온다. 일행이 둘다 별로 내켜하지 않아 그저 구찌만 반나절 갔다오려다가 메신져에서 만난 일산주민의 “되게 웃겨” 한마디에 맘을 바꿔 카오다이까지 들러보기로 한다. 카오다이 투어는 베트남산 반외세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종교인 카오다이교의 사원을 둘러보고 매일 거행되는 정오 예배를 관람하는 투어인데 투어를 가다가다 못해 이제 남의 종교 의식까지 구경을 가는가 싶지만 시간도 남아도는데다, 1불만 더 내면 되는 것을, 게다가 되게 웃기기까지 한다는데 굳이 안갈 이유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버스는 정확히 11시 40분에 카오다이 사원에 내려준다. 별다른 문화재라거나 눈에 띄는 사원 하나 제대로 없는 베트남에서 오래 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외관을 갖춘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실내는 더 으리 번쩍하다. 용이 휘감고 있는 여러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사원에는 이들의 상징인 카오다이 즉 하늘의 눈이 정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유교, 불교, 도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교리를 가진 종교답게 하늘의 눈 아래에 공자님, 부처님, 에수님 그리고 노자 내지 장자님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사이좋게 부조되어 있는데 총 8명인 그 부조들의 나머지 4명을 두고 같은 버스에 탔던 한국인 일행 2명과 추측을 해보았으나 별로 아는 사람도, 그나마 아는 이름의 얼굴도 가물가물해 결국 훌륭한 사람이겠지 뭐 하고 포기하고 만다^^


정오 예배가 시작되자 흰옷을 입은 카오다이교 신도들이 열을 지어 사원 안으로 들어오고 정확히 간격을 맞추어 자리에 앉는다. 이 모습은 이층에 마련된 관광객 전용으로 보이는 난간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움직임이 무슨 매스게임이라도 하듯이 일사불란하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들은 선한 본심과 평등을 추구하며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교리는 얼마나 훌륭한가 말이다. 종교란 그 교리대로 산다면 혹은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누구를 믿든지 간에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은 드는데 외형적인 질서가 주는 일사불란함 때문인지 무슨 사이비 종교 행사나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슨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어쩌자고 자신들의 종교적 의식을 구경거리로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글쎄, 이것도 넓은 의미의 선교 활동일지도 모를 일이다^^


카오다이교 사원


카오다이교 정오 예배 모습


예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구찌로 향한다. 정확하게는 구찌지역 주변에 있다는 여러 개의 지하터널 중 하나를 보러 가는 것이다. 구찌터널은 프랑스 식민통치 시대에 지방게릴라들이 파기 시작한 것을 베트남전 당시에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보수하고 확장하게 되었다는데 총연장 250km에 지하 30m 지점까지 마치 개미굴같은 땅굴이 만들어져 게릴라전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물론 미국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아 이 지역 주변에 하루 80톤의 폭탄을 쏟아붓는가 하면 그걸로도 모자라 고엽제 7,200만 리터를 살포해 지금까지 도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러나 터널이란 지하에 있는데다가 워낙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모형단면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 막상 구찌 터널에서는 그 입구 몇 개와 실물 크기의 인형을 제작해 재연해놓은-우리 나라의 민속박물관을 떠올리면 된다- 몇 개의 모형이 있을 뿐이다. 뭐 한 20미터 가량 터널 속을 들어갔다 나오는 체험코스도 있긴 하지만 이도 관광객을 위해 실제보다는 약간 넓게 되어 있다고 하고, 부분부분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그저 투어의 이벤트 정도로 느껴진다. 물론 구찌 자체가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반나절 구찌투어라는 상품이 그렇다는 말이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들이 먹었다는 파피오카라는 고구마 비슷한 음식을 시식하게 되는데 육이오때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주먹밥먹기 행사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시식 이후 판매가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뭐 물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코스의 마지막은 실탄 사격을 하는 것이다. 물론 돈을 내고 신청한 사람에 한해서인데 다행히 우리 투어에서는 신청한 사람이 없어 그 꼴은 안 봐도 되긴 했지만 투어 내내 들리는 총소리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땅굴입구,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넓이가 아니다^^


 땅굴체험, 길진 않지만 폐쇄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삼가하시는 게 좋겠다. 아울러 덩치 큰 분들도 가급적 자제하시기를..


시식용 파피오카. 고구마랑 감자를 섞어놓은 맛이 난다.


여느 투어와는 이번 가이드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다. 당연히 베트남전 즈음에는 열혈 청년의 나이이었을 그는 나만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 뭔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 보인다. 한때 자신들의 생존 기지였을 땅에서 그 적들의 나라에서 온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는 기분이라니.. 그는 투어 내내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더니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베트남에 평화가 온 것은 그저 30년 정도의 세월일 뿐이라고, 전쟁 기간 중에 사람들은 고통스러웠으며, 아직도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지만 지금 찾아온 이 평화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며칠 들렀다 가는 관광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이 나라 어디에나 전쟁의 상흔은 마을마다, 거리미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마다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상처의 깊이를 내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저 베트남에도, 한국에도 그리고 전세계 어디에도 전쟁이라는 광기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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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베트남의 마지막 도시로 오다.

또다시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와 버렸다. 호치민은 하노이보다도 훨씬 크고 번화한 듯 보인다. 여행자 거리도 하노이보다는 넓어 보이는데 오토바이의 절대량은 호치민이 많을지 몰라도 길이 넓은 탓인지 하노이보다는 덜 복잡해 보인다. 아님 그 사이에 오토바이에 좀 익숙해져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베트남에서 두 달 살았다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하루밤 신세를 진다. 여행자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취방은 생각보다 깨끗한 건물에 위치해 있다. 방세는 한달에 백불이라는데 아마도 외국인이라 시세보다는 비싸게 내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친구의 싱글 침대에서 둘이 하루밤을 자고 나니 더는 신세를 질 수도 없고 므이네에서 하루늦게 출발하는 친구의 친구와 방을 같이 쓸 요량으로 베트남에선 처음으로 에어콘룸을 잡아둔다.  


친구의 친구는 므이네에서 만났던 벨기에 남자를 결국 달고 온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어쩐지 하루 더 있겠다고 할 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니^^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같이 술을 마신다. 그놈의 영어가 참 이상한 게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들리는데 나한테 말하는 건 안들리는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긴 들려봐야 대답도 안되는데 들리면 또 뭐 한단 말인가^^ 결국 몇마디 주고받지도 못하고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기만 한다. 벨기에 친구는 비오는 노천에서 꼬막 삶을 걸 안주로 놓고 먹는 술이 익숙지 않은지 웃고는 있지만 불편한 얼굴이다. 게다가 이 친구 해물을 전혀 못 먹는단다. 결국 까페로 자리를 옮긴다. 대략 호치민 여행자 거리의 물가는 하노이 두배다. 그냥 노천이나 길거리 음식 가격은 그만그만한데 까페나 식당의 메뉴가 그렇다는 건데 마지막으로 ATM으로 돈을 인출하고 나니 나가는 날까지 부족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호치민은 전체의 넓이가 서울의 3배라는데 이곳 역시 볼만한 관광지는 대략 걸어 다닐만한 거리에 모여 있다.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본다. 호치민에서 올라왔던 친구들은 죄다 무지 덥다고 입을 모았는데 비가 내린 탓인지 그리 덥지는 않다. 시장을 지나 한때 대통령 관저였다는 통일궁을 지나 전쟁기념박물관에 들어선다. 주로 사진 위주로 전시가 되어있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사진이 주는 실물감 때문인지 베트남전의 참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베트남전 여기서는 미국전이라 불리는 전쟁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여행자일 뿐이라고.. 이런 소모적안 감상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느냐고 애써 외면하려해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통일궁에서 바라본 베트남 시내, 좌측에 보이는 것이 다이아몬드 플라자다


전쟁기념박물관 입구의 포스터


오후에는 폭우가 내려 역사박물관이나 가보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그저 잠시 들렀다가려던 다이아몬드플라자에서 발이 묶인다. 다이아몬드 플라자는 포스코에서 지었다는 주상복합건물인데 백화점이며 오락실, 볼링장 따위가 영업중인 곳이다. 샴푸니 바디샴푸 등이 떨어질 때가 되어 슈퍼나 얼쩡거린다. 베트남산 샴푸와 다국적 기업의 샴푸를 들고 잠시 고민하다 중국에서 샀던 중국산 치약의 씁쓸하고 뻑뻑한 맛이 떠올라 그냥 펜틴을 들고 나온다. 누구말대로 상품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베트남산 상품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비는 계속 내리고 백화점을 두어바퀴 더 돌아도 별로 할 일은 없다. 게다가 누가 한국백화점 아니랄까봐 가격도 한국에서의 가격과 맞먹는다--;: 언젠가 이곳에서 떡볶이를 판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선 거의 먹지도 않던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우리돈으로 이천원 남짓이지만 이곳에선 그리 싼 가격도 아니다.


저녁무렵 비가 그치고 다시 거리로 나가 사이공강 쪽으로 걸어가 본다. 다이아몬드 플라자와 사이공강을 잇는 동코이 거리는 호치민 최대의 번화가인데 그 명성에 걸맞게 프랑스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며, 카페, 꽤 비싸보이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거리도 제법 널찍해서 그저 서울 시내 어디쯤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이때까지 간 도시마다 강이건 호수건 아님 바다라도 꼭 물을 끼고 있다. 하긴 인류문명도 강을 중심으로 발생했다니 -기억들 나시나.. 티크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지명도 생소한 4대 문명 발생지를 외우던 시간들이- 어지간한 대도시는 다 물 옆에 자리잡고 있게 마련이긴 할터, 그런데 이 사이공강은 특이하게도 유람선이나 떠다니는 강이 아니라 제법 화물선도 보이는 것이 도로망이 미비한 베트남에서 화물 운송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듯도 싶다. 그래서 그런지 강이 아니라 연안부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시인민위원회앞에 있는 호치민 동상


해질 무렵 사이공강


도시를 돌아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친구의 친구는 벨기에 남자와 데이트중인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KBS월드라는 한국TV가 나오는 덕분에 뒹굴뒹굴 최진실이 신파를 떠는 드라마나 보며 시간을 죽인다. 그래, 눈 큰 남자친구가 생길래도 의사소통이 되고 볼 일이다. 다들 열심히 영어공부들 하시라 뭐 짬짬이 피부 관리에도 신경 쓰면 그보다 좋을 순 없겠고^^ 그도 저도 귀찮으면 가까이 있는 한국말되는 남자를 잽싸게 찍어 버리든가 할 일이다. 특히 조커와 일산 주민은 새겨들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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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이네> 과음에 성공하다

므이네로 가는 투어버스가 결국 말썽을 부린다. 티켓을 구입할 때는 오전 7시 30분 출발로 되어 있었는데 컨펌을 하러가니 새벽 4시에 나오란다. 7시 30분차는 나짱으로 갔다가 므이네로 가니 그걸 타든지 맘대로 하란다. 결국 3시 반에 일어나 버스를 탄다. 타고 보니 손님은 나 혼자다. 너 혼자니 못간다 안한게 차라리 고맙게 느껴진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산길을 전속력으로 달리더니 이 버스 떠난 지 3시간만인 6시 50분에 므이네에 내려준다.  -보통 투어버스로  6시간 걸리는 길이다- 내 총알택시는 들어봤어도 총알버스는 난생 처음이다^^ 뭐 그 와중에도 창문에 머리박아 가며 잤으니 나도 할 말은 없다.


달랏에서 이틀을 함께 보낸 친구의 버스는 정상적으로 7시 30분 출발이고 이 친구와 나짱에서 만나 므이네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또 다른 친구도 오후에 도착 예정이니 대충 조용한 리조트 트리풀룸을 잡아 사람들을 기다린다. 시간이 되어 만나기로 한카페에 나가보니 한시에 도착한다던 친구의 친구도, 2시에 도착 예정인 친구도 2시 반이 넘도록 보이지 않는다. 괜히 트리풀룸은 잡아가지고.. 이러다 침대 세 개 번갈아가며 쓰며 하루밤을 보내야 하는 게 아닌지 슬며시 걱정이 된다. 세시가 조금 못 되어서야 이래저래 모두 만나게 된다. 게다가 그 카페에 있던 또다른 남자 여행자와 친구의 친구는 이미 호치민에서 만난 적이 있는 관계라 4명이 자연스럽게 일행이 된다. 워낙 해변에서 혼자 지내는 것에 질려 있던 터라 므 이네도 그냥 피해갈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덕분에 재미있는 이틀을 보낸다.


므이네에서 묵었던 타이호아 리조트


리조트에서 바라본 바다


므이네는 생각보다 리조트 사이가 떨어져 있어 리조트네에서 밥을 먹지 않는 한 거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한다. 한명은 남자여행자의 오토바이에 타고 두명은 오토바이를 섭외해 그랜드캐년, 샌드듄, 피싱 빌리지등을 간단히 돌고-뭐 말이 그랜트캐년이지 그냥 붉은 라테라이트 토양이 그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제법 볼만한 경치를 만들어낸 곳이며, 샌드듄도 건조한 기후 탓에 일부가 사막화 되어 있는 곳이다. 어느 곳이나 동네아이들이 가이드를 자처하며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현지인들에게 유명하다는 해물전문식당으로 향한다. 므이네에 두 번째 온다는 남자 여행자가 이미 혼자 다녀온 식당이다. 우리네 수산시장처럼 살아있는 해물을 고르고 요리법을 정해 주문하면 되는 식당인데 새우, 게, 홍합과 굴을 튀기거나 쪄 달라고 한다. 이미 과음이 나의 최대 소원임을 밝히고 소원풀이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은터라 과음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나름 그랜드캐년


여기는 나름 사막


해물 한상차림


술자리는 숙소로 이어져 파도소리를 들으며 맥주를 마신다. 호치민에서 두달 살았다는 가장 먼저 만난 친구는 앙코르와트 여행 후 귀국 예정이고, 두 번째 만난 여행자는 호주에서 귀국길에 호치민에서 스톱 오버해 여행중인데 역시 앙코르와트를 갔다가 귀국예정이란다. 마지막으로 만난 남자 친구는 하노이로 인해서 한달간 여행을 마치고 담날 호치민에서 귀국 예정이다. 남자 친구는 귀국이지만 나머지 셋은 일단 메콩델타를 타고 프놈펜까지는 같이 가기로 합의를 본다. 아마 나머지 두 친구는 앙코르와트까지 동행하게 되겠지만 나는 프놈펜에서 시하눅빌과 깜뽓으로 빠지게 되니 동행은 어려울 것 같다. 베트남은 5시 30분이면 해가 지는 탓인지 술자리가 제법 길어졌는데도 잠자리에 든 시간은 12시를 간신히 넘어있다. 아무래도 해뜰 때까지의 과음은 일산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싶다^^ 


담날은 어느 날보다 맑은 날씨다. 날씨 탓인지 바다 빛깔도 전날보다는 제법 푸른빛을 띠고 있다. 리조트 앞에 있는 해변에 나가 누워있는다. CF에서나 볼 법한 하얀 비치용 의자에 누워 있으니 배낭여행자가 아니라 그냥 휴가라도 온 것 같다. 맥주가 다시 한병씩 돈다. 이번엔 여행오고 처음 낮술도 먹는다. 역시 가끔은 일행이 있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므이네에서는 그저 수다나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 오토바이 소리도, 뭔가 사라는 현지인들의 구애도 없는 이틀을 보내고 나니 베트남에서 가장 번잡하다는 호치민으로 갈일이 꿈만 같다. 이제 호치민에서 삼사일만 보내면 베트남 여행도 슬슬 마무리가 된다. 첨에 언제 거기까지 내려가나 아득했던 것에 비하면 시간이 참 빨리 흐른 셈이다. 그래도 하노이를 겪어봤으니 그럭저럭 살아지겠지 하며 익숙하게 짐을 싼다.


하루에 대부분을 이렇게 누워서 보냈다. 부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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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 괴짜스님을 만나다.

달랏으로 가는 버스는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간다. 바깥 온도야 버스 안이라 알 수 없으나 파란 하늘이며 청명한 공기가 시각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 일년에 한두번 볼 수 있는 쨍한 가을날의 풍경이다. 달랏에 내리니 공기는 선선한데 햇살이 따갑다. 고원지대라 그런지 베트남에선 통 볼 수 없던 가파른 언덕길이 보인다.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서 본다. 밤늦게 술먹다 처음 가보는 자취방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버스타러 나올 때 그 기분이다. 언덕을 넘어 큰길이 나올 만한 곳으로 걸으며 여기가 달랏이지 신림동 언덕길인지 잠시 헷갈린다. 선선한 기후탓이지 그저 쌀국수집이 분식집 같고 옷가게며 빵집, 문방구까지 우리네 그곳과 닮아 있다. 지도를 따라 걸어보니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다. 단지 오르막이 많아 시클로가 없다는 걸로 봐서 자전거로 시내를 돌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달랏가는 길. 공기가 차고 맑아 시야가 선명하다.


숙소 옆의 언덕길. 낯익은 동네 같다.


그래서 그런지 시내와 근교를 묶어서 오토바이로 돌아보는 투어가 달랏의 대표적 관광 상품인데 걸어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오토바이 기사들이 달라붙는다. 가격은 하루 10에서 12달러 선으로 만만치 않다. 여러 명이 같이 다니는 버스 투어와는 달리 기사와 둘이 다녀서 그런다는데 글쎄 굳이 그 가격에 커피 농장이며 실크 공장 따위를 다녀야 하는지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저 시장이나 돌아본다. 베트남의 다른 시장들은 일찍 문을 여는 탓인지 대략 6시경이면 문을 닫는데 여긴 선선한 기후 덕분에 야시장이 선다. 뭐 우리나라에선 잼 만드는 용으로나 쓰일 만한 자잘한 딸기며 감, 따뜻한 죽과 두유 등 베트남의 다른 도시에선 보기 힘든 것들이 눈에 뛴다. 특히 옷가게에서 파는 스웨터나 두툼한 파카 따위가 이채로운데 다른 도시에서 잠시 다니러 온 베트남 사람들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달랏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까지 저렇게 추위를 타나 싶은게 미리 듣긴 했지만 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된다.


달랏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는 도착 예정 시간을 두시간이나 넘겨 숙소로 찾아온다. 나짱에서 떠나기로 한 시간보다 두시간이나 넘겨 버스가 왔다고 하는데 뭐 그러려니 해야지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담날 오전에는 걸어서 시내를 오후에는 시외곽의 관광지 몇 군데를 찍어 로컬오토바이 기사와 흥정하기로 하고 시내로 나선다. 베트남 2대 대통령의 딸이며 모스크바에서 건축공부를 했다는 항응아가 만든 게스트 하우스가 첫째 목적지다. 뭐 게스트하우스 따위를 관광하냐고 하겠지만 이 건축물이 기이한 형태로 만들어져 묵는 손님보다는 입장료로 연명하는 듯 보이는데 초기에는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손님들들부터 욕도 숱하게 얻어먹은 곳이라고 한다.


다음은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의 여름 별장이다. 여름에 이곳만큼 시원한 곳도 없었던지 이곳에 별궁이 3개나 있는데 그중 한 곳을 가본다. 가이드북에는 2층은 호텔로 사용된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은 왕과 왕비 그리고 자식용이거나 아님 손님용이었을 침실을 복원해 놓았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당시 사용하던 가구며 그릇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일명 크레이지 하우스, 저 통나무 모양의 구조물에 객실이 있다.


바오다이 황제의 여름별장. 생각보다 소박하다 했는데 달랏에만 별장이 3개나 있었단다.


사실 달랏은 기후나 풍광 외에 별다른 유적지는 없어 보인다. 그저 가는 길이라 크레이지 몽크라고 불린다는 달랏대학 출신의 괴짜스님이 있다는 절에 잠시 들러본다. 가이드북에 그만큼 소개되었고 시내외 투어에 빠지지 않는 코스니 귀찮아서라도 스님은 없고 다른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이 스님 그 절에 혼자 계신다. 게다가 산중에서 몇 년 혼자 지낸 사람처럼 반가워하는데 대략 난감이다. 절 자체나 스님이 쓰거나 그린 그림들이야 내 예술에 문외한이니 논할 바는 못 되나 뭐 그리 대단해 보이는 건 아니고 그저 잠시 들렀다 가려고 했는데 앉으라더니 이런저런 수다를 풀어놓는다. 영어로 하는 수다에는 분명한 한계가 느껴져 사진이나 찍고 나오려는데 이 스님 옷을 차려입고 문앞까지 따라나오시더네 친구집에 가서 녹차나 한잔 하고 가란다. 호기심반 강요반 따라 나서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정집이 나온다. 가정집에는 부처님옆에 예수님이, 예수님 앞에는 성모마리아가 서 잇는 퓨전 불당이 세 개나 있는데 우리네 6,70년대에나 봤을법한 종이꽃이며 크리마스 장식용 꼬마전구가 현란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오 주여, 꼴통 기독교 신자들이 봣으면 불이라도 질렀을 법한 풍경이다. 짧은 영어로 연유를 물었더니 그도 짧게 대답한다. 모든 종교는 다 세임세임이란다. 이 스님 도가 통한건지 사이비 교준지 내 알바 아니나  꽤 재미있는 분임에는 틀림없다.


크레이지 몽크와 집에서 한 장. 정면에서 보이는 분이 스님의 어머니다. 글구 사진 꼭 부쳐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으니 보내긴 해야 하는데 어디서 인화를 한단 말인가.. 에휴


한끼 얻어먹은 스님네 집 채식 식단. 우리네 반찬과 비슷하다.


친구네 집이라던 그집에는 스님의 어머니가 살고 계시고 신도로 추정되는 대여섯분이 점심을 차리느라 분주하다. 모두 채식으로 마련되었다는 식탁에 얼떨결에 초대받아 밥을 먹는다. 베트남 가정에서 밥을 먹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밥상 역시 두부며 숙주나물, 단호박찜 등 우리네 식탁과 닮아 있다.  그 와중에 스님, 우리의 가이드북을 받아 자기가 나왓다고 자랑도 하시고, 찍은 사진 꼭 보내라며 주소도 적어 주시고, 주소를 적으시다 친구의 볼펜까지 달라고 해서 챙기신다^^결국 스님의 어머니가 재들도 놀아야 하니 그만 보내라 하신 이후에야 스님도 그만 가보라고 하신다. 재미있는 경험이긴 했지만 행여나 길에서 다시 만날까 다른 길로 재빨리 빠져 나온다.


오후에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시외곽을 돈다. 영어가 안 통해 애를 먹기는 했지만 숙소앞에 진을 치고 있는 가이드가 아니라 그냥 로컬 아저씨들과 계약을 하니 대략 반값이다. 세시간가량 돌고 숙소앞에 내려 약속한대로 오만동을 건네주니 제법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맞았는데도 얼굴이 금새 환해진다. 저 아저씨들에겐 오늘이 운수좋은 날이었을까.. 설사 그 돈이 바가지였대도 기분이 흐믓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앞으로 두세달은 따뜻한 물이 그리워질 날은 없을 것이다. 꺼내입었던 긴옷들도 다시 집어넣는다. 이 옷들도 당분간을 입을 일이 없을 것이다. 갑자기 한국은 많이 추울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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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짱> 한국인들을 떼로 만나다.

저녁 무렵 나짱으로 가는 오픈투어 버스를 탄다. 버스는 아직 노선도도 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 922번 좌석버스다. 한때 도봉산에서 용산을 오가던 버스다. 내 생전에 좌석버스를 12시간 탈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저 퇴근해서 집에 간다는 맘으로 버스에서 정신없이 자다보니 나짱이다. 버스는 예외없이 여행자거리에서 꽤 떨어진 연계 호텔 앞에 서고는 여기 묵든지 아님 알아서 원하는 숙소로 가라는 분위기다. 배낭 메고 찍어둔 숙소로 터덜터덜 걷다가 5불짜리 씨뷰룸이 있다는 삐기님 말씀에 혹해 따라가 본다. 정말 씨가 뷰하긴 하는데 6불이란다. 결국 그냥 가겠다는 액션을 취하고 난 뒤에야 5불로 내려간다. 지겨워.. 이건 뭐 헐리우드 액션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이래야 하니 대략 난감이다--:;


숙소에서 본 일출

 

나짱은 별다른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고 6km에 이르는 해변을 따라 바다가 펼쳐져 있는 해안 도시이다. 섬이 아니어서 방갈로나 리조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를 따라 호텔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그저 부산의 해운대나 광안리를 연상시킨다. 나짱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일일 보트트립을 신청해 놓고 담시장쪽으로 걸어가 본다. 제법 규모가 큰 시장임에도 크게 둘러볼 맘이 내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마다 시장이란 시장은 죄다 다녔으니 내가 뭐 시장전문조사요원도 아니고 이제 시들할 때도 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시장의 핵심 기능이란 뭔가 사거나 파는 것인데 매번 사지는 못하는 반쪽짜리 구경이다 보니 오히려 욕구 불만이 생기는 듯도 하다^^ 시장 근처에 베트남에서 처음보는 슈퍼마켓이 문에 띄길래 들어간다. 그간 궁금하던 몇몇 물건값의 실체를 확인한다. 대략 내가 사던 가격의 2/3가 정가인 듯 하다. 뭐 그 정도면 바가지치고는 양호한 편이다. 단 공산품만 그럴 뿐 먹거리의 가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국인 여행자 부부를 만난다. 호텔앞에서 한국말이 들리길래 그냥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호치민과 나짱을 일주일가량 여행하고 있는 휴가 온 젊은 부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지금 디스코텍을 가는 길인데 같이 가겠느냐고 묻느다. 아.. 아무리 한국어로 수다를 떨고 싶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사양한다. 담날 저녁이나 같이 먹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담날 자전거로 나짱 근교를 한바퀴 돌고 다시 부부를 만나 저녁을 먹는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로컬 식당에 무작정 들어갔더니 영어 메뉴판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종업원도 없다. 대략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요리법을 조합에 쇠고기 뭐를 시켰더니 베트남식 샤브샤브가 나온다. 맛은 좋은데 양이 너무 적다. 한 접시를 더 시키기는 뭣해서 그냥 쌀국수 사리를 시켜 남은 국물에 넣어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 하다. 보트트립을 해서 너무 피곤하다는 부부와 헤어지고 어디가서 맥주나 한잔 할까 하고 있는데 한국 아저씨들이 떼로 몰려온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 또 먼저 인사를 건넨다.


포나가 참사원에서 본 나짱


롱썬사에서 본 나짱


아저씨-라고는 하지만 알고보니 내 동갑이거나 한두살 아래다^^-들의 정체는 광명 시청 공무원들이다. 공무원들 견문넓히기 정도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각 부서에서 헌 명씩 차출되어 출장 겸 휴가 겸 베트남에 왔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한참 떠들다가 남자분이셨으면 어디가서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할텐데 라는 인사치레를 놓치지 않고 냉큼 저 술 잘먹어요 한다. 거의 두달 만에 만나는 수다와 음주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아저씨들, 온 지 일주일도 안돼 나같은 홀로 여행자를 이미 둘이나 만나셨다는데 그 수다에 이미 한 질림 하신 분들이다. 그래도 어쩌랴..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간만에 맥주를 네병이나 마신다. 물론 절대 과음이라 할 수 없는 양이나 그래도 여행 시작하고 처음이다. 아저씨들 친절하게도 맥주값까지 자신들이 낸다. 에이, 한국돈으로 삼천원인데 하면서 내껀 내거 낼께요 하는 헐리우드 액션도 취하지 않는다. 뭐 좀 싸가지가 없어 보였을래나 싶긴 하지만 팁으로 5불씩 주고 다녔다는 아저씨들의 씀씀이로 보아 그리 큰 걱정은 안해도 되지 싶다^^ 


담날 보트트립을 가는 버스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또 만난다. 사람이라야 열댓명 남짓한 버스였는데 만나질려니 계속 만나진다. 이번엔 호치민에서 두달간 살았다는 여자 여행자다.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려고 일년 예정으로 베트남에 왔는데 일이 예정대로 풀리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베트남 관광이나 하고 가려고 왔단다. 둘다 혼자 뻘쭘하게 보트에 있어야 하나 걱정이다가 서로 심하게 반가워한다. 보트트립은 그 유명세답게 유쾌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그 친구와 나 둘다 무슨 일인지 배멀미 때문에 오전 내내 보트에서 누워지낸다. 공짜 점심도 굷고 헤롱거리다 그래도 흔들리는 배보다는 바다 속이 낫겟지 싶어 수영하는 곳마다 바다로 뛰어든다. 대체 수영은 왜 배웠는지 구명조끼를 입고도 불안해 튜브까지 끼고 노는 애들을 그 친구와 나뿐이다. 아.. 그리고 믿을 수 없겠지만 파란 꽃무늬 비키니는 결국 입었다는 거 아닌가.. 사진을 올려라 뭐 이런 요청은 하지 말 것.. 내가 봐도 심히 괴로웠음--:;   


보트트립 중에 있는 레크리에이션 시간. 각 나라의 포크송을 그 나라말로 불러주고 마이크를 들이민다. 덕분에 둘이서 아리랑 불렀다--::


보트투어 도중 한시간 가량 정박하는 섬


보트트립에서 돌아와 그 친구와 나짱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현지 식당에 간다. 사실 혼자라도 가고 싶던 곳이었는데 혼자가기 망설여져 마지막 날까지 미뤄둔 곳이다. 저녁으로 새우와 생선을 숯불에 구워먹는다. 다 먹고도 부족해 밥에다 돼지고기까지 구워 먹고 일어선다. 그 다음엔 아이스크림까지 디저트로 먹어 준다. 일행이 있으면 확실히 먹거리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일정을 맞춰보니 달랏-므이네-호치민으로 비슷한 일정이다. 다만 그 친구가 그날 아침에 나짱에 도착한 관계로 하루 더 나짱에 있을 생각이어서 담날 달랏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아마 일정대로 된다면 호치민까지는 그 친구와 동행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같이 다니면 또 그런대로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누군가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달랏으로 가는 맘이 한결 편해진다.


새우와 생선 숯불구이


새우만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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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썬> 이번엔 반나절투어다.

4세기에서 9세기까지 약 900년간 중부 근처에서 그 세력을 떨쳤다는 참파 왕국의 유적지인 미썬를 돌아보는 반나절 투어를 신청한다. 점심도 없이 버스로 갔다가 오는데만 2불이다. 훼에서 한 황제능 투어의 경우 하루종일 보트 태워주고 점심도 주고 이만동을 받았던 것과 비교가 된다. 왜 호이안의 물가는 근처에 있는 훼보다도 눈에 띄게 비싼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누구는 호이안에 중국인들이 많이 자리를 잡아서 그런다는데 수요 공급의 원칙이 적용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 심한 느낌이 든다.


미썬 유적지로 가는 길에 또 비가 내린다. 훼부터 내렸다 그치기를 거의 일주일..이건 거의 우리나라 장마수준이다. 우산 쓰랴 사진 찍으랴 좀 번거롭긴 해도 미썬 지역이 분지라 보통의 경우면 거의 사우나 수준으로 더운 곳이라기에 차라리 내리는 비가 고맙기만 하다. 참파왕국은 지금은 베트남의 소수 민족이 된 참족이 건설한 왕조라는데 한창때는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까지 그 세력을 떨쳤다고 한다.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이 왕국의 유적지는 앙코르와트의 그것과는 규모나 보존 상태 면에서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벽돌을 구워 만든 전탑이나 벽면의 부조 등이 매우 유사한 느낌을 준다. 한때 왕들의 장례지로 추정된다는 미썬 역시 미군의 폭격으로 한두군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폐허가 되어 있다.


그나마 상태가 온전한 B-C-D 그룹


벽면의 부조


나머지는 거의 폐허가 되어있다.


훼에서 본 응웬 왕조의 유적지과 그것과 불과 이삼백년 차이가 나는 참파 왕국의 유적지는 민족적 특성과 종교적 영향 탓이겠지만 그 형태가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 다양한 민족들이 흫망성쇠를 거듭했을 베트남의 역사가 새삼 궁금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행 준비를 하던 그 많은 시간동안 각 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책 한권이라도 읽고 오는 건데 후회가 막심하다. 역시 공부는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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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아무튼 이상한 사람들이다.

 하루동안 반짝 해가 뜨더니 호이안으로 가는 내내 다시 비가 내린다. 훼에서 호이안까지130km라는데 투어버스와 연계된 식당마다 30분씩 쉬어가더니 결국 훼를 떠난 지 6시간이 지나서야 호이안에 도착한다. 물론 도착해서도 곱게 보내주지는 않는다. 도착하기 30분전부터 연계되니 호텔과 투어 안내 브로셔가 돌더니 호텔이 얼마나 좋은 곳이지 투어가 얼마나 훌륭한지 떠들어댄다. 결국 버스는 연계된 호텔에 들러 20분가량 지체하고 -그것도 호텔직원이 버스에 올라와 왜 이 호텔에 안 묵는지 일일이 물어보고 난 뒤에- 조금 싼 다음 호텔로 향한다. 대충 지도를 보니 다음 호텔이 여행자 거리와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내려 배낭을 메고 걷는다.


그냥 얼핏만 봐도 호이안은 작은 도시 아니 동네다. 그러나 물가는 하노이보다도 비싸다. 아무리 찾아도 5불짜리 방은 없다 제일 싼 게 6불이다. 1불이면 천원인데 그냥 묵을까 하다가 나름 원칙이 베트남은 숙소가격이 좀 싸니 싱글룸에 묵을 수 있으면 묵되 5불 이상짜리 방에는 들어가지 말자고 혼자 다짐한 게 생각이 난다. 왜 5불이냐고? 그게 내가 아는 싱글룸 최저가격이다^^ 어쩔까 하다가 도미토리에 들어간다. 베트남의 도미토리는 처음이다. 그냥 옥상 밑에 있는 트리풀룸이다. 중국처럼 이층침대도 아니고 개별 사물함도 없다. 그래도 욕실은 방에 붙어 있다. 좀 피곤하기는 해도 도미토리에 있는 것도 불편해 거리에 나온다. 그리곤 그냥 싱글룸에 묵을걸.. 천원인데.. 하고 후회에 후회를 거듭한다. 중간에 잠시 샤워하러 들어간 것 외에 그냥 아홉시 정도까지 거리를 배회하다 들어가 보니 그새 간이침대가 하나 더 들어와 있고 노란 머리 남자 셋이 반나로 자고 있다. 헉.. 어쩌랴 그냥 간이침대에 눕는다. 낼은 꼭 싱글룸으로 옮길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잠이 든다.

 


호이안 강변. 전날 내린 비로 물이 골목길까지 들어와 있다.


시인민위원회 담벼락. 믿을 수는 없지만 아직 여기는 사회주의 국가인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싱글룸으로 방을 바꿔달라고 하니 어제와는 다르게 7불을 부른다. 어제 6불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그 방은 체크아웃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이젠 말섞기도 싫어져 그냥 다른 호텔을 알아본다. 적당한 방을 알아본 뒤 체크아웃을 하려고 하니 그제서야 6불에 방을 주겠단다. 방이나 보자고 했더니 발코니까지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꼭 이렇게 될 걸 일을 번거롭게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 ,내가 니들집에 월세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 있다가 갈걸 그냥 편하게 있다 가자 싶어 그대로 그 방으로 짐을 옮긴다. -그후 소심하게도 옮기기로 한 호텔 앞은 몰래몰래 피해 다녔다^^-


방을 옮기고 거리에 나서니 그제서야 동네가 편해보이기 시작한다. 거리라야 열심히 걸어다니면 한두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만큼 작다. 하지만 동네 전체가 상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옷가게며 카페, 이 지역 특산물이라는 비단으로 만든 머플러니 가방을 파는 토산품점이 즐비하다. 방값뿐 아니라 음식값도 다른 여타의 것도 물가는 거의 하노이보다 비싼 듯 하다. 여행이 한참 남았으니 이것저것 사서 짐을 늘릴 수도 없어 쇼핑을 포기하니 별로 할일이 없다. 호이안 종합입장권이란 걸 끊는다. 도시의 문화재들을 고가, 향우회관, 박물관, 무형문화재, 기타의 다섯 그룹으로 나누고 그 중 한곳씩을 선택해 볼 수 있게 만든 입장권인데 칠만오천동이다. 하지만 어느 곳을 봐도 별로 볼 건 없다. 지들도 입장권 앞에 <당신의 기부가 호이안을 보존합니다>라고 써놓았으니 그저 기부했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하지만 별다른 문화재 없이도 호이안은 그 나름의 단아한 매력이 느껴지는 곳이긴 하다.


호이안 거리. 한낮이라 그렇지 이 정도로 한산하지는 않다.


호이안의 상점


오후에는 자전거를 빌려 호이안에서 4km 떨어진 끄어다이 해변으로 향한다. 해변이야 다음에 가게 될 나짱에서 실컷 보게 될테지만 해변보다는 그저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는 게 주목적이다. 해변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한 20분 달리니 해변이 보인다. 모래사장에 혼자 앉아 있으니 바로 잡상인들의 표적이 된다. 열대여섯이나 되었을까.. 파인애플을 든 여자애가 옆에 앉는다. 대꾸를 하면 안되는데 이것저것 자꾸 물어본다. 몇마디 대답을 하니 본론이 나온다. 이 파인애플은 무슨 섬에선가 나는 걸로 시장에서 파는 것과는 물건이 다르단다. 내가 대답한다. 쏘리.. 담엔 싱글이냐고 묻더니 이 파인애플을 먹으면 오늘 밤에 남자친구가 생긴단다.. 내가 웃으며 대답한다. 쏘리..  그담엔 학교에 가고 싶은데 학비는 넘 비싸고 이걸 팔아야 학교에 갈 수 있다고 우는 소리다. 첨부터 대꾸를 말았어야 하는데 점점 맘이 약해진다. 이번엔 내가 묻는다. 하우머치? 그랬더니 이만오천동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웃으며 속으로 말한다. 아 유 크레이지? 아무 대답도 안했더니 점점 내려가서 만동까지 내려간다. 물론 만동도 엄청 비싼 가격이다. 첨부터 한 만동 부르면 속는 셈치고 오천동 쯤에 사줄맘이었는데 짜증이 확 난다. 니들은 내가 바보로 보이니 아님 봉으로 보이니 물론 둘다겠지만^^ 바가지를 씌우자고 해도 정도가 있는거지 이건 순진한 건지 영악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내가 자리를 피한다.


끄어다이 해변, 파라솔만 제외하면 그냥 철지난 동해 바닷가다.


일산주민과 쿠의 나이스플레이스라던 호이안은 그저 그만하다. 아마 훼보다 호이안에 먼저 들렀으면 이 한가함과 고즈넉함에 후한 점수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삼일 묵고 가는 도시란 그때그때의 자신의 상태, 날씨, 일정 뭐 기타 등등에 좌우되는 것 같다. 아님 개인의 기호일까? 별로 쇼핑을 즐기는 편이 아닌 나로써는 동네 전체가 상점인 도시는 글쎄, 썩 재미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이삼일을 호이안만의 독특한 음식들은 맛보는 재미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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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 훼가 좋다.

밤기차를 타고 훼에 도착한 그날부터 비가 내린다. 숙소를 정하고 잠시 쉬다가 비가 멈춘 틈을 타서 거리로 나서본다. 하노이보다 훨씬 조용하고 쾌적하다. 그러나 비가 그치는 것도 잠깐 다시 비가 내린다. 뭐 열대지방의 비는 한 30분 정도 내리다가 그친다고 알고 있어서 그냥 다리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본다. 잠시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내리기를 몇 차례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황산에서 혹시 몰라 산 1원짜리 우비가 가방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우비를 입고 그냥 강변을 걸어 시장까지 가본다. 훼까지 내려와도 날씨는 그저 한낮에 약간 더운 정도다. 비까지 내리니 제법 선선하기 하다.


비내리는 향강


훼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였던 응웬 왕조가 1945년 바오다이 황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150년간 수도였던 곳이란다. 황궁이 있는 구시가와 여행자 거리가 있는 신시가 사이에 향강이 흐르고 있지만 그저 산책삼아 걸어 다닐만한 거리이다. 대략 비자 날짜를 세어보니 베트남에선 한도시에서 하나 3일씩 묵어도 되겠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노이에서 빼놨던 정신도 챙길 겸 조금씩 천천히 다니기로 한다. 이전 같으면 관광지 갈 시간을 계산해 놓고 날짜가 비면 아.. 뭐 하고 시간을 때우지.. 하는 고민이 먼저 들었는데 이 도시에선 아무 것도 안 하도 쉬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내리는 거리를 쏘다니다가 돌아와 훼의 명물이라는 반코아이에다 맥주를 한잔한다. 아.. 물론 여전히 혼자지만 그것도 뭐 이제 괜찮다.



베트남 빈대떡 반코아이


훼지방의 전통국수, 분보훼. 곁들이로 주는 숙주와 야채를 국물에 넣어 먹는다. 국수에는 살이 무지 많이 붙은 소뼈가 들어있다.

 

다음날도 그저 걸어서 황궁까지 가본다. 훼의 관광지 입장료는 베트남 물가대비 꽤나 비싼 가격이다. 공식적으로 외국인 이중가격제이기도 하다. 황궁과 각각의 황제능 입장료가 오만오천동이다. 내국인도 이만동이나 하니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가이드북에는 그 비용이 문화재복구에 쓰인다니 기꺼이 지불하자고 쓰여 있다. 입장료라면 이미 중국에서 단련된 몸, 그리 아깝지 않게 낸다. 황궁은 앞의 전각 두어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폐허다. 전쟁 중에 미군에 폭격에 의해 그리 되었다는데 몇 남은 주춧돌들 위로 푸른 풀들만 무성하다. 비내리는 황궁을 걸으며 불과 오륙십년전만해도 여기에 황제라고 불리는 사람이 살았겠구나 생각하니 살아있다는 게 무상하게 느껴진다. 유홍준 아저씨가 쓴 문화유산답사기라는 베스트셀러에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다. 뭐 표현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요지는 이런거다. 답사의 고수들은 절집보다 절집의 흔적 즉 우리가 무슨무슨 사지라고 부르는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낀다고.. 뭐 답사의 고수는 아니지만 내리는 비 탓인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다.

 


황궁, 폭격으로 뒷부분은 거의 폐허가 되었다.


그 다음날은 각각의 황제능을 보트를 타고 돌아본다. 응웬 왕실에는 9명의 왕이 있었다는데 그중 아름답다는 3개의 능과 두개의 사원을 보트로 둘러보는 투어다. 이전에는 보트가 아니면 접근이 힘들었다는데 이제 다리가 놓여 쎄옴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단다. 호치민에서 하노이로 올라가거나 반대로 내려오는 짧은 여행자들을 위해 시내관광과 묶어 하루코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상품화해 놓았다. 나야 남는 게 시간이니 굳이 시내투어까지 묶어서 할 것도 없고 보트투어 가격이 점심 포함 이천동이니 그냥 보트로 돌아보기로 한다. 물론 입장료와 두개의 황제능까지 진입하는 쎄옴 가격은 별도다. 전날 내린 비로 불어난 향강은 그 이름 같지 않게 -향강의 영어 이름은 퍼퓸 리버다- 배설물이 둥둥 떠다닌다.


훼라고 바가지가 아니 사기극이 없겠는가. 첫번째 황제능에 가는 쎄옴을 탄다. 황제능 가는 쎄옴은 대략 왕복 이만동으로 담합이 되어있다는 정보는 입수해 둔 터다. 가격을 물어본다. 이만동이란다. 배에서 쎄옴타는 데 까지 안내해주러 온 꼬마도 쎄임쎄임이라며 빨리 타기를 권유한다. 그냥 탄다. 근데 막상 황제능에 도착하니 이 쎄옴기사, 편도 이만동이라며 우기기 시작한다. 나도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는다. 만동을 건네주면서 받을려면 받고 말려면 말아라하고 버텼더니 왕복은 사만동이라고 끝까지 우긴다. 결국 같은 보트에 탔던 다른 사람들이 타고 온 쎄옴 가격을 확인하고서야 그냥 기다리겠단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만동만 주고 보내고 싶은데 돌아갈 길이 막막하니 그러라고 한다^^ 다음 황제능에서의 쎄옴은 삼만동을 부른다. 깍아서 이만동에 간다. 처음 황제능보단 조금 먼듯도 싶다. 갔다 왔더니 쎄옴 가격을 확인하느라 배안이 시끌시끌하다. 누구는 왕복 이만에, 누구는 삼만에 갔다 왔단다.. 심지어 편도 삼만씩 육만을 준 커플도 있다.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누군가 너는 얼마에 갔냐고 묻는다. 기쁘다. 이만이라고 담담한 척 대답한다^^


앞에서 두 번째 왕인 민망 황제의 능. 베트남 고유의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뒤에서 두 번째 왕인 카이딘 황제의 능, 프랑스의 영향으로 다른 능들과는 달리 유럽식이 많이 가미되었다고 한다.


황제능은 투어만 아니었으면 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베트남의 유적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이번에는 50분입니다, 40분입니다 하는 바람에 거의 단체 관광객처럼 정신없이 다니다 온 것 같아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실 관광지로서의 베트남을 생각했을 때 몇몇 자연 경관들과 먹을 것 그리고 베트남 전쟁 정도 외엔 다른 생각은 거의 못한 것이 사실이다. 훼에서 보는 유적들은 전쟁 이전 아니 식민지 이전의 베트남은 끊임없이 주변국들의 침공에 시달리기는 했어도 베트남이 고유의 양식과 문화를 누려오던 나라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러나 유적 어느 곳이나 어디나 전쟁 중의 폭격으로 거의 파괴되다시피 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보트를 타고 돌아오는 향강은 물이 많이 줄어있다. 내가 이 도시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훼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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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 조용한 이틀을 보내다.

하롱베이로 떠나는 날 아침 숙소 로비에서 한국여행자를 만난다. 아침에 훼에서 올라 온 친구다. 한달 반가량 인도차이나를 여행 중인데 훼에서 라오스로 넘어가려다가 베트남에서 하롱베이를 안 갈 수 없다 해서 하노이까지 올라오는 길이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한마디 한다. 하루만 일찍오지.. (내가 얼마나 술친구가 필요했는지 아냐?) 물론 괄호안은 그냥 생각만 했다^^


빅그룹은 배와 숙소가 열악하다는데 막상 배를 보니 그리 나쁘지 않다. 싼게 비지떡이란 말은 최소한 베트남에선 통하지 않는 것 간다. 가장 싼 걸 선택하는 게 남는 장사인 것 같다. 돈을 더 내든 아니든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뭐 한 백불씩 더 내면 물론 확실히 서비스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배에서 전날 보았던 한국인 가족을 다시 만난다. 하롱베이 투어는 그냥 배타고 갔다가 깟바라는 섬에서 하루자고 돌아오는 투어다. 스몰그룹의 경우 중간에 수영도 하고 카약킹도 한다는데 애초부터 그건 별 관심이 없었으니 대략 만족이다. 다행히 날씨가 흐려 갑판위에서 누워가도 크게 부담이 없다. 하롱베이 가는 4시간 동안 그저 앉아서 바다위에 떠 있는 석회암 봉우리를 바라보거나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잠시 자거나 하며 한가로운 시간이 흘러간다.


비로소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음악을 듣는다. 이번엔 김광석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꿈에 보았던 길/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본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햇살 눈부신 곳 그곳으로 가네/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곳으로 가네

출렁이는 파도에 흔들려도 수평선을 바라보며/햇살이 웃고 있는 곳 그곳으로 가네


 

나뭇잎이 손짓하는 곳 그곳으로 가네/휘파람불며 걷다가 너를 생각해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지/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래 그리워도 뒤돌아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 생각하니 조금 뒤 있을 일산반상회도 조금 덜 가고 싶어진다^^ 저녁 무렵 배가 깟바섬에 닿는다. 마치 월미도를 연상케 하는 이 섬은 정말 거대한 관광지다. 일설에는 보트피플로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건물을 세우고 장사를 시작했다는데 식당이며 술집분위기가 아무래도 베트남 같지가 않다.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한국인 가족과 저녁을 먹는다. 덕분에 게도 한 마리 얻어먹고 바에서 맥주도 한잔 한다. 일가족은 하루를 이 섬에서 더 묵기로 했단다. 나야 예약해 둔 기차표도 기차표지만 한 가족 사이에 끼어 수영할 일 있나.. 그저 예정대로 하노이로 돌아와 훼로 가는 밤기차를 탄다.

 


대략 이렇게 널부러진다. 일가족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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