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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짱> 한국인들을 떼로 만나다.

저녁 무렵 나짱으로 가는 오픈투어 버스를 탄다. 버스는 아직 노선도도 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 922번 좌석버스다. 한때 도봉산에서 용산을 오가던 버스다. 내 생전에 좌석버스를 12시간 탈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저 퇴근해서 집에 간다는 맘으로 버스에서 정신없이 자다보니 나짱이다. 버스는 예외없이 여행자거리에서 꽤 떨어진 연계 호텔 앞에 서고는 여기 묵든지 아님 알아서 원하는 숙소로 가라는 분위기다. 배낭 메고 찍어둔 숙소로 터덜터덜 걷다가 5불짜리 씨뷰룸이 있다는 삐기님 말씀에 혹해 따라가 본다. 정말 씨가 뷰하긴 하는데 6불이란다. 결국 그냥 가겠다는 액션을 취하고 난 뒤에야 5불로 내려간다. 지겨워.. 이건 뭐 헐리우드 액션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이래야 하니 대략 난감이다--:;


숙소에서 본 일출

 

나짱은 별다른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고 6km에 이르는 해변을 따라 바다가 펼쳐져 있는 해안 도시이다. 섬이 아니어서 방갈로나 리조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를 따라 호텔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그저 부산의 해운대나 광안리를 연상시킨다. 나짱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일일 보트트립을 신청해 놓고 담시장쪽으로 걸어가 본다. 제법 규모가 큰 시장임에도 크게 둘러볼 맘이 내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마다 시장이란 시장은 죄다 다녔으니 내가 뭐 시장전문조사요원도 아니고 이제 시들할 때도 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시장의 핵심 기능이란 뭔가 사거나 파는 것인데 매번 사지는 못하는 반쪽짜리 구경이다 보니 오히려 욕구 불만이 생기는 듯도 하다^^ 시장 근처에 베트남에서 처음보는 슈퍼마켓이 문에 띄길래 들어간다. 그간 궁금하던 몇몇 물건값의 실체를 확인한다. 대략 내가 사던 가격의 2/3가 정가인 듯 하다. 뭐 그 정도면 바가지치고는 양호한 편이다. 단 공산품만 그럴 뿐 먹거리의 가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국인 여행자 부부를 만난다. 호텔앞에서 한국말이 들리길래 그냥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호치민과 나짱을 일주일가량 여행하고 있는 휴가 온 젊은 부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지금 디스코텍을 가는 길인데 같이 가겠느냐고 묻느다. 아.. 아무리 한국어로 수다를 떨고 싶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사양한다. 담날 저녁이나 같이 먹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담날 자전거로 나짱 근교를 한바퀴 돌고 다시 부부를 만나 저녁을 먹는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로컬 식당에 무작정 들어갔더니 영어 메뉴판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종업원도 없다. 대략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요리법을 조합에 쇠고기 뭐를 시켰더니 베트남식 샤브샤브가 나온다. 맛은 좋은데 양이 너무 적다. 한 접시를 더 시키기는 뭣해서 그냥 쌀국수 사리를 시켜 남은 국물에 넣어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 하다. 보트트립을 해서 너무 피곤하다는 부부와 헤어지고 어디가서 맥주나 한잔 할까 하고 있는데 한국 아저씨들이 떼로 몰려온다. 이게 웬 횡재냐 싶어 또 먼저 인사를 건넨다.


포나가 참사원에서 본 나짱


롱썬사에서 본 나짱


아저씨-라고는 하지만 알고보니 내 동갑이거나 한두살 아래다^^-들의 정체는 광명 시청 공무원들이다. 공무원들 견문넓히기 정도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각 부서에서 헌 명씩 차출되어 출장 겸 휴가 겸 베트남에 왔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한참 떠들다가 남자분이셨으면 어디가서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할텐데 라는 인사치레를 놓치지 않고 냉큼 저 술 잘먹어요 한다. 거의 두달 만에 만나는 수다와 음주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아저씨들, 온 지 일주일도 안돼 나같은 홀로 여행자를 이미 둘이나 만나셨다는데 그 수다에 이미 한 질림 하신 분들이다. 그래도 어쩌랴..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간만에 맥주를 네병이나 마신다. 물론 절대 과음이라 할 수 없는 양이나 그래도 여행 시작하고 처음이다. 아저씨들 친절하게도 맥주값까지 자신들이 낸다. 에이, 한국돈으로 삼천원인데 하면서 내껀 내거 낼께요 하는 헐리우드 액션도 취하지 않는다. 뭐 좀 싸가지가 없어 보였을래나 싶긴 하지만 팁으로 5불씩 주고 다녔다는 아저씨들의 씀씀이로 보아 그리 큰 걱정은 안해도 되지 싶다^^ 


담날 보트트립을 가는 버스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또 만난다. 사람이라야 열댓명 남짓한 버스였는데 만나질려니 계속 만나진다. 이번엔 호치민에서 두달간 살았다는 여자 여행자다.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려고 일년 예정으로 베트남에 왔는데 일이 예정대로 풀리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베트남 관광이나 하고 가려고 왔단다. 둘다 혼자 뻘쭘하게 보트에 있어야 하나 걱정이다가 서로 심하게 반가워한다. 보트트립은 그 유명세답게 유쾌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그 친구와 나 둘다 무슨 일인지 배멀미 때문에 오전 내내 보트에서 누워지낸다. 공짜 점심도 굷고 헤롱거리다 그래도 흔들리는 배보다는 바다 속이 낫겟지 싶어 수영하는 곳마다 바다로 뛰어든다. 대체 수영은 왜 배웠는지 구명조끼를 입고도 불안해 튜브까지 끼고 노는 애들을 그 친구와 나뿐이다. 아.. 그리고 믿을 수 없겠지만 파란 꽃무늬 비키니는 결국 입었다는 거 아닌가.. 사진을 올려라 뭐 이런 요청은 하지 말 것.. 내가 봐도 심히 괴로웠음--:;   


보트트립 중에 있는 레크리에이션 시간. 각 나라의 포크송을 그 나라말로 불러주고 마이크를 들이민다. 덕분에 둘이서 아리랑 불렀다--::


보트투어 도중 한시간 가량 정박하는 섬


보트트립에서 돌아와 그 친구와 나짱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현지 식당에 간다. 사실 혼자라도 가고 싶던 곳이었는데 혼자가기 망설여져 마지막 날까지 미뤄둔 곳이다. 저녁으로 새우와 생선을 숯불에 구워먹는다. 다 먹고도 부족해 밥에다 돼지고기까지 구워 먹고 일어선다. 그 다음엔 아이스크림까지 디저트로 먹어 준다. 일행이 있으면 확실히 먹거리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일정을 맞춰보니 달랏-므이네-호치민으로 비슷한 일정이다. 다만 그 친구가 그날 아침에 나짱에 도착한 관계로 하루 더 나짱에 있을 생각이어서 담날 달랏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아마 일정대로 된다면 호치민까지는 그 친구와 동행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같이 다니면 또 그런대로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누군가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달랏으로 가는 맘이 한결 편해진다.


새우와 생선 숯불구이


새우만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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