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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축> 에페스 유적을 가다

일행을 보내고 쿠사다시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셀축으로 향한다. 에페스 유적이 있는 곳이다. 그나마 터키는 이번이 두 번째라 그런지 왠지 맘이 편하다. 돌무쉬를 내리자마자 터키아줌마 한분이 다가온다. 세계를 간다-일명 세계를 헤맨다로 불리는 일본 가이드북 번역판이다. 뭐 사람에 따라서는 세계를 긴다라고 부르기도 한다^^-에 나와 있는 숙소라며 자기 숙소에 한국사람 많단다. 중동에서 여자 삐끼 보기는 쉽지 않아 반신반의 따라가 보니 정말 한국 사람 많다. 다시 터키로 온 것이다. 방을 잡고 나서 하루를 그냥 뒹굴거린다. 그리스를 워낙 빡빡하게 다녀서인지 며칠 그냥 쉬고 싶은 맘이 드는데 이 셀축이란 도시는 그저 에페스 유적을 보기 위해 잠시 들르는 곳이라 그런지 오래 머물만한 곳은 아니다. 무엇보다 저렴한 식당 찾기가 쉽지 않고 숙소 역시 도로변이라 소음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내가 도착한 날은 일주일에 한 번 장이 서는 날이라는데 주인아줌마 왈 내가 럭키하다지면 아.. 저 소음 이게 뭔 럭키한 거냐 말이다. 그저 저녁이 되면 저 장은 파할거야 하는 기대로 하루를 보내보지만 장이 파하자마자 이제까지 장이 섰던 그 도로 위로 정신없이 오토바이들이 달린다. 차라리 사람이 내는 소음이 더 낫지 싶다. 이튿날은 그놈의 장도 서질 않으니 아침부터 오토바이 소리가 극성이다. 제길.. 쉬긴 다 틀렸군.. 식당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곳에도 식당은 있다. 관광객을 겨낭한 레스토랑들 말이다. 근데 현지인들은 어디서 밥을 먹는지 도무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은 뵈질 않는다. 첫날은 그리스에서 남겨 온 이런저런 부재료들로 밥을 해 먹긴 했지만 주인집이랑 함께 쓰는 부엌이 영 편치 않다. 숙소를 옮겨볼까 하다가 그래도 먹는 문제는 해결이 나질 않으니 그냥 에페스 유적만 다녀 와서 이 곳을 뜨기로 맘을 바꿔먹는다. 어차피 다음 행선지는 심심하기 그지없는 해변이니 거기서나 푹 쉬자 싶다.

 

다음날 일찌감치 에페스 유적을 다녀온다. 셀축에 있는 숙소들은 거의 대부분 에페스 유적지까지 픽업 서비스를 해준다. 한국인들 서너 명과 함께 유적지에 도착한다. 이제 유적지도 시들해지기 시작한다. 에페스 유적지는 규모도 크고 보존되어 있는 건물들이 많은 반면 그만큼 관광객의 숫자도 많다. 거의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 와중에 같이 간 일행들이 단체관광객을 인솔하는 한국가이드의 설명을 듣다 제지를 당한다. 가이드 옆에 따라다니는 인솔자가 한마디 했단다. 그러고 싶으세요? 가이드 입장에서 보면 자기도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여 얻은 지식을 댓가없이 듣는 사람들이 얄미워 보일 수는 있지 싶으면서도 어차피 말하는 거 다른 사람들이 좀 들으면 또 어떤가 싶은 생각도 든다. 나야 일단 눈치보기도 싫고 단체관광객 따라 다닐만큼 바지런하지도 않으니 그런 경우를 겪지는 않았지만 글쎄, 이 경우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수 있을지 잘 가늠이 서질 않는다.


에페스유적, 셀서스 도서관1


에페스유적, 샐서스 도서관2

 

날씨는 뜨겁고 사람들은 많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채로 다시 돌아온다. 같이 에페스로 간 일행들은 근처에 있는 셀린제 마을-뭐 포도주로 유명하다는데 나중에 사온 걸 먹어보니 그냥 설탕 많이 친 과일주다-을 본다며 떠난 뒤다. 점점 게을러지는 게 이러다 아무데도 안 가지 싶다^^. 숙소에서 다양한 한국 사람들을 만난다. 터키는 여자들이 선호하는 국가라더니 여자여행자가 80%를 넘는다. 이직하는 사이에 혼자 여행 온 여자 친구가 하나, 직장 그만두고 여행 온 또다른 여자 하나, 터키는 가고 싶은데 혼자 오기는 그래서 인터넷에서 만나 같이 온 여자 셋, 어디서 만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만나 동갑이라 동행이 된 여자 셋 남자 하나,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다가 휴가차 온 남자 하나가 내가 그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들이다


에페스유적, 원형극장


사람 진짜 많다

 

여행자들이 흔히 그렇듯 여행 다닌 경로와 몇 가지 정보가 오가고 여행지에서의 감상이 이어진다. 조금 지겹다. 이상하다니.. 한국 사람은 없으면 그립고 있으면 지겨워진다. 어느 숙소에서 본 정보북에 써 있는 글귀가 생각난다. 혼자 있을 땐 외롭다고 느끼고 같이 있을 땐 번거롭다고 느끼지 말고 혼자 있을 땐 자유를 느끼고 같이 있을 땐 따뜻함을 느끼라는 글이었는데.. 사실 외로움과 자유, 번거로움과 따뜻함은 동전의 양면 같은 걸 테니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아무래도 내 경우는 전자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결국 인터넷에서 만난 여자 셋이 나랑 앞으로의 루트가 거의 같은 걸로 밝혀진다-하긴 터키에서는 가는 곳이 뻔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친구들 나보다 두 시간 먼저 파묵칼레로 떠나는 버스를 예약해 두었다면서 내일 그곳에서 만나자고 한다.

 

어차피 다음 일정은 페티예다. 혼자가면 무지 심심한 해변.. 파묵칼레에서 만나 페티예로 같이 떠나기로 한다. 여자 셋이라.. 이때까지 이렇게 많은 일행과 다녀 본 적이 있었던가.. 티벳에서 네팔 넘어올 때도 4명이긴 했지만 그건 차를 대절해야 한다는 서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으니 이런 대규모 동행은 처음인 셈이다. 하지만 뭐 어떠랴.. 어차피 카파도키아까지의 동행일 뿐이다. 결국 외로움이 번거로움을 이겨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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