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09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9/09
    <마슐레> 친절이 부담스럽다(15)
    제이리
  2. 2006/09/09
    <테헤란> 패는 게 일이다^^(3)
    제이리
  3. 2006/09/09
    <에스파한> 사막의 오아시스(3)
    제이리

<마슐레> 친절이 부담스럽다

 

여행 떠나기 전 남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단지 지명 때문에 그 곳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다음에 떠나면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이 바로 마슐레다. 아니 꼭 지명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글과 함께 있던 몇 장의 사진-흙으로 만들어진 집과 그 집 창문 앞에 옹기종기 놓여 있던 꽃화분들이 자못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보니 이제 사진의 이면이 조금씩 보이니 그곳도 역시 내가 상상하는 곳만은 아닐 거란 생각은 든다. 게다가 무지하게 심심한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얼핏 스친다. 뭐 터키는 물가가 비싸다니 조용한 마을에서 이삼일 쉬었다가지 하는 맘으로 길을 나선다. 마슐레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라 테헤란에서 바로 떠나는 차는 없고 근처의 도시인 라시트까지 이동해 미니버스나 합승 택시를 타야 한다.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도 터미널 비슷한 것도 나오질 않는다. 대충 창밖을 보고 있으면 터미널 정도야 알아보겠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시 당황해 앞에 있는 남학생에게 길을 물어보니 아직 조금 더 가야한단다. 결국 도착하고 보니 버스 종점이 터미널이 다. 주섬주섬 배낭을 메고 내리니 길을 물어보았던 그 남학생이 버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라시트에 간다는 대답을 들은 그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성큼성큼 매표소 쪽으로 걸어간다. 아.. 또 시작인 것이다. 괜찮다는 내말은 들은 체도 않고 그는 자기가 알아서 표도 끊고-뭐.. 돈은 내가 냈다^^- 꽤 남은 차 시간까지 가지 않고 같이 기다려준다. 고맙긴 하지만 이런 식의 호의는 사실 반갑지는 않다. 사실 별 할 말도 없는데다 별로 궁금한 것도 없고 무엇보다 내 의사에 반하는 이런 일을 호의라고 참아주자니 짜증이 난다. 이 사람들은 이걸 친절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라시트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버스 옆좌석에 앉은 이란 아줌마가 먹을 것도 나눠주며 친근하게 이야기를 건네 와 말은 안 통해도 -거의 영어가 안 된다- 편안하게 온 것 까진 좋았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대뜸 자기 집에 가서 자고 가란다. 물론 이란 가정에 초대받아 며칠간 즐겁게 보내다 온 여행자의 얘기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혼자서 생면부지의 아줌마의 집을 따라 가기란 선뜻 내키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오늘 마슐레에 가야 하니 버스타는 곳이나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자기랑 같이 택시 타고 가자고 한다. 버스정류장이 가는 길인가 싶어 같이 탔더니 웬걸 택시는 아줌마의 집 같은 곳에 선다. 다시 짜증이 확 밀려온다. 가지 않겠다는 나의 의사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결국 정색을 하고 나서야 다시 그 택시를 타고 버스정류장까지 온다. 오다보니 그 아줌마로서는 호의였을 그 맘에 대해 짜증을 부린 내가 또 미안해진다. 결국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하다.


마슐레 전경


내가 묵었던 숙소


마슐레로 가는 길의 풍경은 이때까지 보단 이란의 다른 곳들과는 많이 다르다. 산에는 제법 나무들도 보이고 좌우의 들판에는 푸른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시골 풍경이다. 이곳이 이란 사람들의 휴양지라더니 이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마슐레의 숙소는 이란의 다른 곳들과는 달리 하우스를 렌트하는 방식이라는데-아예 부엌이 달린 원룸 같은 방을 빌릴 수 있단다- 막상 도착해보니 어느 집이 렌트를 하는 집인지 구별이 가질 않는다. 마을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따라 배낭을 메고 올라가 본다. 이쯤에서 누군가 하우스를 외쳐 줘야 하는데 이란 관광객들만 가득할 뿐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뭐 별 수 없이 이번에는 가게에 들어가 방 빌려주는 곳을 물어본다. 몇 곳이 있기는 한데 집을 통째로 빌리는 형태라 그런지 혼자서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어차피 혼자이니 밥해먹기도 번거로울 것 같아 다시 호텔을 찾아본다. 이곳 특성이 그런지 호텔에도 부엌이 붙어 있다. 그래도 집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것보다는 조금 싸다. 결국 침실보다 부엌이 더 큰 방 하나를 얻어 짐을 푼다.


마슐레의 집들1


마슐레의 집들2


이곳은 예상대로 매우 심심하다. 마을이라야 한두 시간 돌아보면 그만이고 따로 가볼만한 곳은 없다. 길을 지나가면 몇몇 여행사 삐끼들이 트레킹 운운 하지만 이란 사람들이야 신기할지 모르지만 저 정도 산에 트레킹이 왠말이냐 싶다^^. 밥이나 해 먹으며 빈둥빈둥 보내려 해도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혼자서는 별 흥이 나질 않는다. 재료를 구한다 해도  한국에서 쓰임새가 있을까 싶어 가져 왔던 라면 스프니 하는 것들은 언젠가 짐 정리 도중에 별 필요도 없군 하면서 버렸으니 마땅히 간을 할 재료도 없다. 아.. 후회막심이다^^. 그저 방안에서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관광객들 구경이나 하다 그도 심심하면 이북으로 추리 소설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떠난 동행이 주고 간 거의 1기가에 가까운 이북이 유일한 낙이 된다.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에서 김성종, 이상우까지 거의 이틀간 한 오십 여명은 죽어 나간 것 같다.


인형 파는 아주머니


마슐레 야경


하루는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그것도 한국말이다. 반가운 맘에 쳐다보니 이란 아저씨다. 사업차 여러 곳을 다녔다는데 한국에서도 꽤 오래 있었던 모양인지 한국말을 제법 한다. 정작 본인은 마지막으로 한국에 간 것이 10년이 넘어 한국말은 거의 잊어버렸다는데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된다. 같이 차이를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뭐 처음엔 한국이 어떻고 이란이 어떻고로 시작했으나 결국 혼자 다니냐.. 남편은 없냐로 이어지더니 제법 느끼한 눈빛을 날려 주신다. 말이 아저씨지 할아버지라 해도 큰 실례는 아닐 나이인 듯한데 참 이란 남자들, 노소불문이다. 결국 자기가 술을 가지고 있으니-이란에서 술 마시는 건 불법이다- 니 방에서 한잔 하자는 대목에서 가볍게 일어나 주신다. 피곤해서 자야겠다는 핑계를 대지만 일어나면서 한마디 한다. 노인네, 주책이네.. 글쎄 그 아저씨. 얼핏 못 알아들었다는 듯 무슨 말이냐고 묻는데 표정이 살짝 굳는다. 아.. 이제 진짜로 이란이 지겨워진다.


다음날 짐을 싼다. 이제 터키로 가는 길이다. 밤차로 타브리즈로 넘어가 하루밤을 자고 다시 국경도시인 마쿠를 거쳐 바자르간까지 가는 먼 길이다. 이란은 생각보다 빨리 나가게 되었다. 들어올때는 비자 기간인 한달을 꽉 채우거나 어쩌면 비자를 연장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럭저럭 삼주 만에 나가게 된 셈이다. 그래도 별다른 아쉬움은 없다. 대부분의 친절했던 이란사람들의 호의만 가지고 가고 싶은데 그도 쉽지만은 않다. 국경 가는 이틀 사이에 두 놈을 더 패주고서야 이란 여행은 끝이 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테헤란> 패는 게 일이다^^

 

흔히 테헤란에 대해서는 여행자들이 하는 말은 별 다른 볼거리가 없으니 그저 하루 이틀만 머물고 빨리 빠져나가는 게 좋다고들 한다. 특히 교통이 혼잡하고 매연이 심해서 그 하루 이틀도 견디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 과연 여행자 숙소가 있는 거리도 우리나라 옛날 청계천을 보는 듯 공구 상가만 즐비한데다 차들이며 오토바이가 한데 뒤엉켜 길을 다니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가이드북을 뒤져봐도 박물관 몇 개를 제외하고는 딱히 가보고 싶은 곳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다시 일정 짜서 다니는 게 탄력이 붙었는지 또 습관적으로 가이드북을 뒤적거려 갈 곳을 대충 만들어 둔다. 박물관 몇 곳과 바자르 그리고 하루는 숙소에서는 조금 떨어져 테헤란 북부까지 올라가 보기로 한다.


먼저 찾아간 바자르는 이제 더 이상 재미가 없다. 넓기는 오지게 넓은데 옷이며 물건들이 매번 보던 것과 다를 게 없다. 길가 쪽만 한 바퀴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가는 건 포기다. 그 다음에 국립 박물관이다. 어쨌든 한 나라의 수도에 가면 그래도 국립 박물관 하나쯤 보아주는 건 여행자의 예의에 속하는 일인 것 같은데 이 나라 국립박물관은 상태가 많이 안 좋다. 그리 크지 않은 전시실이 일층에 있는데 그게 전부다. 나라도 무지 크구만 이 땅에서 나온 그 많은 유물들은 죄다 어디다 팔아먹은 건지 국립박물관 꼴하고는... 그나마 이슬람이 들어온 이후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는 이슬람 박물관은 공사 중이라 문을 닫은 상태다. 국립박물관에 실망하여 박물관 순례를 중단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혹시 알아.. 저기 없는 게 죄다 다른 곳에 있을지 싶어 이번엔 유리와 도자기 박물관에 가본다. 조그만 주택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의 전시물은 개인 소장품 수준이다. 에이 박물관 순례 중단이다!!라고 맘먹었다가 그래도 뭔가 아쉬워 보석박물관 하나만 더 가보기로 한다.


테헤란의 공원, 운동기구들이 놓여 있다


거리에서 낮잠 자는 아저씨들


보석박물관은 이란 중앙은행 지하 금고에 있다. 즉 전시실 안에 들어가는 게 결국 거대한 금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입장부터 보안이 삼엄하다. 게다가 이란의 입장료는 2004년부턴가 내외국인을 동일하게 적용하기 시작해 큰 부담이 없어졌는데 개인주택들이나 몇몇 교회 그리고 이 보석박물관 등은 개인이나 사기업이 운영해 입장료도 만만치 않다. 전시물은 보석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반지며 목걸이 같은 악세서리에서 그릇이며 옷, 검, 왕관과 의자, 침상에 이르기까지 한때는 권력자들의 것이었을 물건들이 이 지하에 총망라 되어 있다. 그중에는 제법 아이 주먹만한 다이아도 있는데 빛의 바다라나 뭐라나 하는 물건이란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진짜 보석들을 볼 수 있겠어.. 그저 눈이라도 호사를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하려고 해도 너무 많은 보석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어서인지 아님 보는 눈이 그것뿐이어서 그런지 보석박물관도 그만그만하다.


국립박물관, 썰렁한 와중에 소금인간이라 불리는 미이라 한 구


그리고 세계사 교과서에서 봤던 거 하나는 건졌다. 이름하여 함무라비 법전!!

 

하루는 북부 쪽으로 올라가 본다. 테헤란은 서울과는 반대로 숙소가 있는 남쪽이 상대적으로 못 사는 동네란다. 그래서 북쪽은 남쪽보다는 공원도 많고 좀 한산한 느낌이 든다니 이 혼잡한 동네를 좀 벗어나 보기로 한다. 먼저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 이란의 왕이었던 팔레비 국왕이 살던 궁전을 찾아가본다. 북부 지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지만 궁전까지는 합승택시를 타야 한다. 이란의 택시는 대부분 합승택시로 구간구간 이동하며 갈아타게 되어 있어 가격이 아주 저렴하지만 외국인이 타는 순간 개인택시로 바뀌는데다 가격도 열배이상 뛴다. 현지인이 타고 있는 택시를 타는 게 좋은데 방향을 잘 모르니 그것도 쉽지 않다. 대략 궁정으로 가는 비용을 물으니 보통 가격에 20배쯤 되는 가격을 부른다. 하긴 4명을 태울 택시에 나 혼자 타고 가니 20배는 아니고 5배쯤 되는 모양이다. 원래 테헤란 택시들 악명이 높다더니 과연 그런 거 같다. 슬슬 궁전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합승택시가 있겠지 싶어 걸어가니 빈택시가 와서 선다. 가격을 물어보니 웬일인지 현지인 가격을 부른다. 초보인가 싶어 탔더니 내릴 때 딴소리다. 이 아저씨 영어가 짧아 2000토만 부를 거 200토만 불렀다는 거 아닌가^^. 당근 200만 주고 내렸다.


팔레비 왕의 궁전터는 원래 커다란 공간에 궁전이 열개 가까이 있었던 모양인데 현재 대부분 박물관으로 개조된 상태이다. 모든 궁전마다 모두 개별적으로 표를 끊고 들어가게 되어 있어 두 곳만 표를 끊는다. 그 중 가장 유명하다는 화이트 팔레스와 블루 팔레스다. 즉 하얀 궁전과 파란 궁전 두개만 본 셈인데 이 두 곳은 팔레비 왕이 이슬람 혁명정권에 쫓겨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지금도 가구며 집기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방마다 가구는 프랑스에서 만들었고, 카페트는 이란 어느 지방에서 만들었고 등등이 쓰여 있어 박물관에도 잘 안 해주는 안내가 왜 이리 잘 되어 있나 했더니 이 시절 왕의 사치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왕이 쫓겨난 뒤에 전시되어 있는 궁전이야 어디나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니 그저 궁전 주변으로 조성되어 있는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니 마음이 상쾌해진다.


파란 궁전의 거실, 벽이 온통 크리스탈로 되어 있다.


팔레비 왕의 동상, 이슬람 혁명 당시 성난 군중에 의해 부서지고 지금은 다리부분만 남아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친 김에 산이 있다는 다르반드까지 가 보기로 한다. 이란의 산이야 나무하나 없이 멋대가리 없긴 하지만 이곳에는 등산로도 있고 리프트도 설치되어 있다니 그저 리프트나 타고 올라갔다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그 곳에 도착해보니 완전히 우이동 골짜기다. 물이 흐르는 계곡 주변으로는 온톤 식당이며 찻집이 들어서 있어 밥이라도 먹지 않으면 어디 앉아서 쉴만한 공간도 없다. 그나마 리프트는 특정한 시간에만 운영하는 지 꼼짝도 않고 서 있다. 그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중턱 가게가 끝나는 지점까지 올라갔다 그냥 내려온다. 나무 하나 없는 산은 진짜 올라가고 싶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계곡 옆에 깔아놓은 평상 위에서 물담배나 한대 피우고 가고 싶은데 혼자서는 그도 처량할 거 같아 망설이다가 그냥 돌아온다.


다르반드, 산에 나무 한그루가 없다


계곡마다 카페트가 깔려 있다.


테헤란에서는 말로만 듣던 성추행을 두어 번 당한다. 일단 범인을 확인하면 냅다 패주고 보는데 그럼 대부분 슬금슬금 인파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 경찰을 부르라는 말도 있지만 엉덩이 슬쩍 만지고 가는 놈을 경찰에 까지 넘기기는 좀 뭣해 일단 폴리스에 가자고 큰 소리는 쳐도 나 역시 그럴 생각이 꼭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테헤란 북부에서 만난 놈은 경찰에 확 넘겨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르반드 가는 버스를 알아보러 길가 부스에서 꽃을 파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오란다. 마침 꽃들도 볼 겸 안으로 들어갔더니 어디어디 방향이라며 가르쳐주는 척 하더니 가슴을 슬쩍 건드린다. 일단 손에 들고 있던 물병으로 냅다 패기 시작한다. 하지만 페트병이란 게 퍽퍽 소리만 요란하지 상대에겐 별 타격이 없는 듯 이 자식 이리저리 피하며 자기는 아무 짓도 안했다는 제스쳐를 한다. 갑자기 성질이 확 난다. 이번에 멱살을 잡고 부스 밖으로 끌어내며 폴리스 가자고 큰 소리를 친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이 녀석 좀 쪼는 게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들고 얘가 내 몸을 만졌다고 영어로 떠들어봐야 알아듣는 사람도 없다. 이제 영어도 안 나온다. 내 분에 겨워 *새끼, *새끼-나도 내가 그렇게 욕을 잘하는지 몰랐다^^- 해 가며 소리소리를 지르며 걷어차고 난리를 치니 완전히 구경거리가 난 셈이다. 이 자식 가게가 여기니 도망도 못 가고 그저 자기는 아무 짓도 안했다는데 결국 사람들이 말려 그쯤에서 끝을 낸다. 여튼 인간들 혼자 다니는 여자는 더 지들 좋으라고 다니는 줄 안다. 미친 새끼들.. 


이제 이란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딱히 불편한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조금 갑갑한 느낌에다 고만고만한 유적들 그리고 사람들의 친절을 넘어선 관심들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진다. 게다가 한동안 한국 사람들 구경을 못해서인지 조금 심심하기도 하다. 여기서 바로 터키로 넘어갈까.. 원래 생각했던 곳 하나를 더 들렀다 갈까.. 잠시 고민이 된다. 그래도 가서 후회하는 것이 안가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일단 한곳만 더 거쳐 터키로 넘어가기로 한다. 가보고 맘에 안 들면 다시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늘 그렇듯이 처음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곳은 결국 가게 되는 모양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에스파한> 사막의 오아시스

 

에스파한은 이란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들 한다. 모스크나 바자르 등의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이 사막의 나라에서 시내를 관통하는 긴 강이 흐르고 그 덕분에 푸른 녹지가 시내 곳곳에 조성되어 있어 도시는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번에는 터미널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탄다. 이란 버스는 충분히 싸지만-우리 돈으로 25원 정도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무척 많다. 다행히 남자와 여자 칸이 분리되어 있어 만원버스에서의 성추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란에서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지만 길을 물어보면 거의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분위기라-누구 말에 따르면 여자만 그렇다고도 한다^^- 어렵지 않게 숙소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숙소는 도미토리도 싱글룸도 모두 풀이다. 쉬라즈에서도, 에스파한에서도 외국인 여행자는 거의 못 봤는데 뭔 숙소가 매번 풀인가 싶은데 아마 이란은 여행자 숙소라도 내국인을 받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에스파한의 숙소 가격은 만만치가 않다. 특히 교통비가 상식을 초월하게 싸다 보니-최고급 볼보 에어컨 버스를 타고 대여섯 시간씩 도시를 이동해도 대략 5,000원을 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숙소값이 더 비싸 보인다. 숙소주인이 더블룸은 10불에, 트리풀룸은 12불에 하루만 묵으면 다음날은 싱글룸으로 바꿔주겠다고 해 방을 봤지만 방이 영 신통치가 않다. 설마 이 관광지인 에스파한에 방이 없으랴 싶어 뿌리치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다른 숙소를 찾아보니 허걱.. 다른 숙소 가격은 장난이 아니다. 그 숙소가 유명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 번 나온 숙소를 다시 들어가기는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으니 길 안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 본다. 다행히 깨끗한 현지인 숙소가 나온다. 이란의 여행자 숙소는 그리 많지도 않거니와 어차피 내외국인 겸용이니 비싼 여행자 숙소에 묵느니 발품을 조금 팔더라도 저렴하고 깨끗한 현지인 숙소를 구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단 한국인은커녕 외국인 여행자도 만날 생각은 말아야 한다^^


혼자가 되니 뒹굴거리는 시간보다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시간이 많아진다. 말상대도 없는데 숙소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 자꾸만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마냥 싸돌아다닐 수도 없는 일이니 도시에 도착하면 대략 봐야 할 곳의 동선을 미리 정해두고 움직인다. 다행히 론리에는 4일짜리 에스파한 돌아보기 코스가 나와 있다. 방향과 동선을 고려하여 짜여진 것일 테니 이번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냥 그 루트를 따라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 막상 하루를 따라해 보니 그 동선의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란의 관광지는 대부분 낮 시간은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는 숙소로 돌아와야 하는데 정작 론리에서는 그 시간을 근처에 있는 비싸고 우아한 전통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걸로 해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혼자서 어떻게 서너 시간씩 밥을 먹는단 말이냐.. 결국 루트를 다시 짠다.


이맘호메이니 광장-이맘호메이니 모스크


이맘호메이니 광장-세익로트폴라 모스크


에스파한에서 가장 먼저 둘러보게 되는 곳은 아무래도 이맘호메이니 광장이 아닐까 싶다. 이란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맘 모스크를 비롯해 세익로트폴라 모스크, 알리카푸 궁전이 각 한쪽 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바자르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바자르는 또한 시가지 서쪽에 있는 메인 바자르와 연결되어 있다. 돔만 화려한 여느 곳의 모스크들과는 달리 이곳 모스크 내부는 타일을 일일이 잘라 붙인 내부 장식이 눈길을 끈다. 둥근 천정까지 빠짐없이 장식된 이 타일 장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에 대한 인간의 경외감이 느껴진다. 또한 이맘 호메이니 광장 주변 뿐 아니라 에스파한 시내 곳곳에는 오래된 궁전이나 모스크들이 산재해 있고 그 주변은 거의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오렌지 쥬스나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공원에 앉아 있으면 어디서나 산책 나온 시민들과 마주치게 된다.


모스크 내부1


모스크 내부2


그렇기는 해도 에스파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아무래도 강변이 아닐까 싶다. 시내를 관통하는 자옌데강은 주변이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어 평일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곳인데 특히 시오세 다리나 카쥬 다리 근처에는 거의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몰린다.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은 잔디밭에 카페트를 깔고 앉아 차이-맑은 홍차-를 마시거나 물담배를 피우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젊은 연인들은 손을 잡고 강가를 거닌다. 이곳에도 예외 없이 서너 명씩 껄렁껄렁 몰려다니는 한량들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으니 그저 핼로우를 날리는 것 외에 별다른 짓을 하지는 못한다. 그저 강가에 앉아 있으면 가족 중 누군가가 오라고 손짓을 한다. 가까이 가보면 차이나 과자를 건네준다. 영어는 한마디도 안 통하지만 눈치껏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진심인지 아닌지 또 엄지손가락을 올려 세운다. 그저 하는 일 없이 저녁마다 강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자옌데 강변


시오세 폴 야경


하루는 버스를 타고 조금 외곽으로 나가본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테스카데라는 성터가 있는데 그곳에 올라가면 에스파한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고 해 버스를 타고 다녀온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나르 좀반이라는 모스크가 있어 가는 길에 들러 본다. 일명 흔들리는 모스크인데 가이드북을 아무리 봐도 왜 흔들리는 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특정 시간만 되면 저절로 흔들리는 신기한 모스크인가 싶어 시간에 맞춰 찾아가 보니 모스크 첨탑에 올라가 사람이 흔드는 것이다^^. 그렇게 흔들면 반대편 첨탑에 달린 종이 울리는 건데 글쎄.. 뭐가 신기하다는 건지 그래도 박수를 치며 열광하는 현지인들을 보니 그게 더 신기하다. 뒤이어 찾아간 아테스카데는 나무 하나, 풀 한포기 없는 돌 언덕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저길 올라가 말아 한참을 망설이다가 올라간다. 생각보다 힘들진 않은데 올라가 봐도 풍경은 고만고만하다. 이제 이 황량한 풍경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마나르좀반, 오른쪽 탑에 사람이 올라가 흔들면 왼쪽 탑의 종이 울린다


아테스카데, 아래에 에스파한 시내가 보인다.


다음 도시인 테헤란까지는 기차를 타기로 한다. 버스도 충분히 편하지만 이란에서 기차를 한 번 타보고 싶기도 하고 밤기차니 숙박비도 하루 절약할 수 있어 조금 늦은 출발 시간이지만 기차표를 미리 예약해 둔다. 에스파한의 기차역은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 택시비도 워낙 싼 편이라 택시를 타고 가도 우리 돈으로는 2,500원이면 갈 수 있지만 시간도 많으니 그냥 버스를 타기로 한다. 미리 알아봐둔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기차역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없다는 건지 끊겼다는 건지 이구동성 택시를 타란다. 이란 사람들 무척 친절하긴 한데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가 모르는 건 모르는 게 아니라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기차역 가는 버스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면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면 될 일을 기차역 가는 버스는 없다고 말한 뒤 아주 친절하게(?) 택시까지 잡아 주는 것이다. 버스를 타겠다고 박박 우겨도 어찌나 택시들을 세우시는지 결국 성질을 확 부리고 나서야 주변이 조용해진다. 조금 민망하다^^.


조금 더 기다리니 기차역 가는 버스가 온다. 이번에는 이구동성 이 버스를 타라고 성화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버스를 타니 한무리의 여학생들이 주변을 둘러싼다. 그중 하나가 느닷없이 비디오카메라를 꺼내들더니-이란의 관광지에는 디카보다 비디오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더 많다-취재 혹은 취조가 시작된다. 어디서 왔느냐, 이름은 뭐냐, 결혼을 했냐로 시작한 취조는 결국 형제는 몇이냐, 니네 아버지 이름은 뭐냐에서 막혀 버린다. 아는 영어 밑천이 떨어진 것이다. 결국 지들끼리 이 말은 영어로 뭐냐를 한참이나 의논하더니 결국 웃어 버리고 만다. 그냥 나도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비디오카메라를 향해서 웃어 준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도 잠시 기차역이라며 내리라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버스는 기차역에서 2km 남짓 떨어진 캄캄한 벌판을 기차역이라고 떨궈 주고 가버렸으니 결국은 택시 타라는 사람들의 권유가 옳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기차역까지 태워주겠다는 차가 있어 올라탄다. 히치는 위험하다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다. 다행히 어리버리 떨궈진 인간 중에 일본 남자애들 둘이 같이 타게 되어 그나마 좀 안심이 된다. 결국 아슬아슬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탄다. 아마 그 차가 태워주지 않았다면 기차역까지 걸어가다가 가치사간을 놓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투덜거려도 결국은 현지인들의 친절과 도움에 의지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이란의 기차는 침대시트를 별도로 챙겨 줄 만큼 깨끗하다. 게다가 기차칸도 남여가 구분되어 있어 우리 칸은 모두 여자들이다. 잠시 수다를 떨다가 잠자리에 든다. 뭐 당연하지만 잘 때는 여자들도 스카프를 모두 벗더라는^^ 그래도 조금은 신기했다.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1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2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3


에스파한에서 만난 사람들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