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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슐레> 친절이 부담스럽다

 

여행 떠나기 전 남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단지 지명 때문에 그 곳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다음에 떠나면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이 바로 마슐레다. 아니 꼭 지명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글과 함께 있던 몇 장의 사진-흙으로 만들어진 집과 그 집 창문 앞에 옹기종기 놓여 있던 꽃화분들이 자못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보니 이제 사진의 이면이 조금씩 보이니 그곳도 역시 내가 상상하는 곳만은 아닐 거란 생각은 든다. 게다가 무지하게 심심한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얼핏 스친다. 뭐 터키는 물가가 비싸다니 조용한 마을에서 이삼일 쉬었다가지 하는 맘으로 길을 나선다. 마슐레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라 테헤란에서 바로 떠나는 차는 없고 근처의 도시인 라시트까지 이동해 미니버스나 합승 택시를 타야 한다.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도 터미널 비슷한 것도 나오질 않는다. 대충 창밖을 보고 있으면 터미널 정도야 알아보겠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시 당황해 앞에 있는 남학생에게 길을 물어보니 아직 조금 더 가야한단다. 결국 도착하고 보니 버스 종점이 터미널이 다. 주섬주섬 배낭을 메고 내리니 길을 물어보았던 그 남학생이 버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라시트에 간다는 대답을 들은 그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성큼성큼 매표소 쪽으로 걸어간다. 아.. 또 시작인 것이다. 괜찮다는 내말은 들은 체도 않고 그는 자기가 알아서 표도 끊고-뭐.. 돈은 내가 냈다^^- 꽤 남은 차 시간까지 가지 않고 같이 기다려준다. 고맙긴 하지만 이런 식의 호의는 사실 반갑지는 않다. 사실 별 할 말도 없는데다 별로 궁금한 것도 없고 무엇보다 내 의사에 반하는 이런 일을 호의라고 참아주자니 짜증이 난다. 이 사람들은 이걸 친절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라시트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버스 옆좌석에 앉은 이란 아줌마가 먹을 것도 나눠주며 친근하게 이야기를 건네 와 말은 안 통해도 -거의 영어가 안 된다- 편안하게 온 것 까진 좋았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대뜸 자기 집에 가서 자고 가란다. 물론 이란 가정에 초대받아 며칠간 즐겁게 보내다 온 여행자의 얘기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혼자서 생면부지의 아줌마의 집을 따라 가기란 선뜻 내키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오늘 마슐레에 가야 하니 버스타는 곳이나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자기랑 같이 택시 타고 가자고 한다. 버스정류장이 가는 길인가 싶어 같이 탔더니 웬걸 택시는 아줌마의 집 같은 곳에 선다. 다시 짜증이 확 밀려온다. 가지 않겠다는 나의 의사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결국 정색을 하고 나서야 다시 그 택시를 타고 버스정류장까지 온다. 오다보니 그 아줌마로서는 호의였을 그 맘에 대해 짜증을 부린 내가 또 미안해진다. 결국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하다.


마슐레 전경


내가 묵었던 숙소


마슐레로 가는 길의 풍경은 이때까지 보단 이란의 다른 곳들과는 많이 다르다. 산에는 제법 나무들도 보이고 좌우의 들판에는 푸른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시골 풍경이다. 이곳이 이란 사람들의 휴양지라더니 이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마슐레의 숙소는 이란의 다른 곳들과는 달리 하우스를 렌트하는 방식이라는데-아예 부엌이 달린 원룸 같은 방을 빌릴 수 있단다- 막상 도착해보니 어느 집이 렌트를 하는 집인지 구별이 가질 않는다. 마을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따라 배낭을 메고 올라가 본다. 이쯤에서 누군가 하우스를 외쳐 줘야 하는데 이란 관광객들만 가득할 뿐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뭐 별 수 없이 이번에는 가게에 들어가 방 빌려주는 곳을 물어본다. 몇 곳이 있기는 한데 집을 통째로 빌리는 형태라 그런지 혼자서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어차피 혼자이니 밥해먹기도 번거로울 것 같아 다시 호텔을 찾아본다. 이곳 특성이 그런지 호텔에도 부엌이 붙어 있다. 그래도 집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것보다는 조금 싸다. 결국 침실보다 부엌이 더 큰 방 하나를 얻어 짐을 푼다.


마슐레의 집들1


마슐레의 집들2


이곳은 예상대로 매우 심심하다. 마을이라야 한두 시간 돌아보면 그만이고 따로 가볼만한 곳은 없다. 길을 지나가면 몇몇 여행사 삐끼들이 트레킹 운운 하지만 이란 사람들이야 신기할지 모르지만 저 정도 산에 트레킹이 왠말이냐 싶다^^. 밥이나 해 먹으며 빈둥빈둥 보내려 해도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혼자서는 별 흥이 나질 않는다. 재료를 구한다 해도  한국에서 쓰임새가 있을까 싶어 가져 왔던 라면 스프니 하는 것들은 언젠가 짐 정리 도중에 별 필요도 없군 하면서 버렸으니 마땅히 간을 할 재료도 없다. 아.. 후회막심이다^^. 그저 방안에서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관광객들 구경이나 하다 그도 심심하면 이북으로 추리 소설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떠난 동행이 주고 간 거의 1기가에 가까운 이북이 유일한 낙이 된다.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에서 김성종, 이상우까지 거의 이틀간 한 오십 여명은 죽어 나간 것 같다.


인형 파는 아주머니


마슐레 야경


하루는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그것도 한국말이다. 반가운 맘에 쳐다보니 이란 아저씨다. 사업차 여러 곳을 다녔다는데 한국에서도 꽤 오래 있었던 모양인지 한국말을 제법 한다. 정작 본인은 마지막으로 한국에 간 것이 10년이 넘어 한국말은 거의 잊어버렸다는데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된다. 같이 차이를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뭐 처음엔 한국이 어떻고 이란이 어떻고로 시작했으나 결국 혼자 다니냐.. 남편은 없냐로 이어지더니 제법 느끼한 눈빛을 날려 주신다. 말이 아저씨지 할아버지라 해도 큰 실례는 아닐 나이인 듯한데 참 이란 남자들, 노소불문이다. 결국 자기가 술을 가지고 있으니-이란에서 술 마시는 건 불법이다- 니 방에서 한잔 하자는 대목에서 가볍게 일어나 주신다. 피곤해서 자야겠다는 핑계를 대지만 일어나면서 한마디 한다. 노인네, 주책이네.. 글쎄 그 아저씨. 얼핏 못 알아들었다는 듯 무슨 말이냐고 묻는데 표정이 살짝 굳는다. 아.. 이제 진짜로 이란이 지겨워진다.


다음날 짐을 싼다. 이제 터키로 가는 길이다. 밤차로 타브리즈로 넘어가 하루밤을 자고 다시 국경도시인 마쿠를 거쳐 바자르간까지 가는 먼 길이다. 이란은 생각보다 빨리 나가게 되었다. 들어올때는 비자 기간인 한달을 꽉 채우거나 어쩌면 비자를 연장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럭저럭 삼주 만에 나가게 된 셈이다. 그래도 별다른 아쉬움은 없다. 대부분의 친절했던 이란사람들의 호의만 가지고 가고 싶은데 그도 쉽지만은 않다. 국경 가는 이틀 사이에 두 놈을 더 패주고서야 이란 여행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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