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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베아짓> 다시 동행이 생기다

이란 국경을 넘어 막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고 돌아서니 주변의 사람들이 스카프를 벗으라고 손짓이다. 그러면서 여기는 터키란다. 이란을 벗어나면 당장 스카프부터 벗어야지 했는데 그새 깜빡한 것이다. 스카프를 벗고 나니 시야도 넓어지고 머리 부근이 시원해지는 게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택시 타라는 기사들의 손짓을 뿌리치고 국경을 벗어나니 터키의 국경도시인 도우베아짓까지 가는 돌무쉬-대충 봉고 수준의 버스다-가 기다리고 있다. 국경까지 얼마냐고 했더니 3리라-터키는 2005년에 화폐 개혁을 단행해 0을 6개나 떼버린 새 화폐를 쓴다. 현재 1리라는 우리 돈으로 700원이 조금 안 된다-나 한다. 터키가 내가 다녔던 다른 나라에 비해 물가가 비싼 편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란과 비교하면 거의 스무배 가까운 가격이다. 돈 단위가 적어 달랑 동전 3개를 내니 차비가 해결되긴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적은 돈은 아니니 터키에서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조금 긴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터키는 동부가 서부보다는 물가가 싼 편이라 그런지 숙소는 생각보다 저렴하다. 일주일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으로 북적거렸다는 숙소에 손님은 달랑 나 하나다. 하지만 한국인 전용 게스트북이 있어 이곳 도우베아짓 뿐 아니라 터키 전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누군가가 남겨두고 간 터키 한글판 가이드북도 있어 가지고 있던 이란 가이드북과 바꿔 둔다. 이곳 도우베아짓은 조그마한 도시라 딱히 볼만한 것도 없으니 간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숙소에 누워 가이드북과 게스트북을 번갈아 뒤적이며 터키 루트를 짠다. 생소한 지명이며 용어들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즈음이 되자 간신히 터키 일정이 그려진다. 루트를 짜고 나니 새로운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긴다, 게스트북의 정보에서 이스탄불에서 그리스의 아테네와 섬들을 다녀 와 터키를 계속 여행하는 새로운 루트를 알게 되었으니 그리스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지도 않던 고민이 생긴 것이다. 가자니 물가가 만만치 않고 빼자니 지금 아니면 언제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일단 이스탄불 가는 사이에 더 고민을 해보기로 한다.


근처 카페에서 바라본 이삭파샤궁전


노아의 방주터. 왼쪽에 있는 배 모양이 방주의 흔적이란다. 믿거나말거나

 

도우베아짓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이삭파샤 궁전과 노아의 방주터에 다녀 온 걸 제외하고는 그저 숙소에서 뒹굴거리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음식도 이란보다는 다양한데다 왠지 모를 편안함에 그저 좀 쉬었다 가자하는 기분이 든다. 이곳에는 반팔이나 치마를 입은 여자들도 보이고 남자들의 치근덕거림도 이란보다는 덜한 편이니 확실히 여러 가지로 마음이 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저 길거리만 걸어 다녀도 차를 마시고 가라며 불러들이는데 터키에서는 남이 주는 건 아무 것도 먹지 말라는 다른 여행자들의 조언이 생각나긴 하지만 에이.. 그냥 동네 가겐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싶어 또 부르는 데로 들어가 수다를 떨다 나온다. 하루는 어떤 아저씨 한분이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차를 마시다가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한다. 마침 눈에 익은 일본 여행자가 보이길래 동석을 한다. 어렵게 외운 터키어 인사를 건넸더니 대뜸 자기는 쿠르드족이라며 쿠르드말로 된 인사를 가르쳐준다. 이런... 완전 실수다!!

 

거의 모든 터키 동부 지역이 그렇지만 이곳도 민족적으로는 투르크족 그러니까 터키 민족이 아니라 쿠르드족이 사는 곳이다. 쿠르드족이라는 이름은 주로 이라크 전쟁 때 주워들은 쿠르드 반군 정도의 명칭이 지식의 전부이긴 하지만 한때는 이들도 터키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저항군이 존재했었고 대규모 진압이 이루어진 현재도 소규모의 반군들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한다. 최근 잇달아 벌어진 터키 내의 소규모 테러도 이들이 저지른 일이라 한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만나는 쿠르드 사람들은 그저 유쾌하고 친절하다. 나야 인종적인 구별도 되지 않으려니와 다른 언어를 쓴다는 그 언어조차 구별이 되지 않으니 그저 본인이 쿠르드족이라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는 게 다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튼 이 아저씨 고맙게도 저녁에 도우베아짓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저녁까지 사 주신다.


쿠르드족 마을에서 만난 아이


식당에서.. 내 오른쪽 친구가 일본인 처자다. 이것도 역시 믿거나 말거나

 

그러다가 숙소에서 낯익은 한국인을 하나 만난다.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만난 1년 6개월 되었다던 남자 여행자다. 파키스탄을 한달쯤 더 돌고 온다더니 벌써 터키로 들어 온 것이다. 어찌된 일이냐고 했더니 지금 파키스탄은 우기로 접어들었는지 비가 많이 내려 파키스탄 남부는 포기하고 그냥 훈자만 들렀다 이란을 거쳐 바로 넘어왔다고 한다. 이 친구도 터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상태다. 어차피 비슷한 루트에다 서로 아는 것도 없으니 이스탄불까지는 동행을 하기로 한다. 동행이 생겼으니 며칠 느려졌던 일정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대충 터키 북부의 도시 몇 개를 찍고 이스탄불로 가기로 하고 다음 도시인 트라브존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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