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타이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이곳, 타이어 공장일까? 아니다. 집을 짓는 건축재인 시멘트를 만드는 공장이다. 시멘트 만들 때 넣으려고 전국에서 모아온 폐타이어들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공장 밖 야적장에도 엄청난 양의 폐타이어와 폐고무가 가득 쌓여 있다.
오늘 우리 집을 짓는 시멘트는 석회석뿐만 아니라 온갖 쓰레기로 만들어진다. 석탄재, 소각재, 분진, 하수슬러지, 각종 공장의 오니와 슬러지 등 비가연성 쓰레기들과 폐타이어, 폐고무, 폐플라스틱, 폐합성수지 등 가연성 쓰레기들을 함께 모아 불에 태워 시멘트를 만든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석회석과 엄청난 양의 가연성·비가연성 쓰레기를 함께 섞어 태우고 난 재 덩어리를 분쇄한 것이 바로 시멘트다. 쓰레기 소각재가 곧 시멘트인 셈이다. 각종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든 결과 우리나라 시멘트에는 발암물질과 중금속이 많다. 쓰레기의 유해물질은 불에 태운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시멘트 공장 굴뚝으로 배출되든지, 시멘트에 잔류하든지 둘 중 하나다.
쓰레기 시멘트의 유해성을 지적할 때마다 시멘트 업계는 '시멘트 내의 중금속이 어린이 놀이터의 모래 기준과 일반 토양의 중금속보다 낮다'며 쓰레기 시멘트가 안전하다고 주장해왔다.
▲ 그동안 시멘트 업계는 '시멘트 내의 중금속이 어린이 놀이터의 모래 기준과 일반 토양의 중금속보다 낮다'며 쓰레기 시멘트가 안전하다고 주장해왔다. 시멘트협회 홈페이지에 나온 '토양과 시멘트 중금속 함량 비교' 표에는 중금속 함유랑 차이가 비슷하거나 적다고 나와있다. ⓒ 시멘트협회
지난 1월 26일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국회에서 시멘트 등급제 토론회를 개최했다. 노 의원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 주거용 건축물에는 쓰레기를 넣지 않은 안전한 시멘트를 사용하고, 쓰레기 시멘트는 도로와 항만 등에 사용하는 '시멘트 등급제'를 제안했고 현재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시멘트 등급제 국회 토론회 직후 <아시아경제>는 2월 8일 자에 <놀이터 모래보다 중금속 적은데... 계속되는 '쓰레기 시멘트'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쓰레기시멘트의 중금속이 어린이 놀이터 모래보다 적어 안전하다는 시멘트업계의 주장을 전했다.
쓰레기로 만든 시멘트가 어린이 놀이터 모래보다 중금속이 적고 안전하다는 주장이 과연 사실일까?
놀이터 모래보다 시멘트 중금속 함유량이 적다?
▲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모래의 중금속이 쓰레기 시멘트의 중금속과 양이 비슷할까. ⓒ 최병성
그동안 정부와 많은 연구기관에서 어린이 놀이터의 중금속 오염을 조사해왔다. 자료에 따르면, 시멘트의 발암물질과 중금속 함유량은 어린이 놀이터 모래의 수십~수백배에 이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국립환경과학원에 의뢰해 얻은 국내 모든 시멘트 내 중금속을 분석한 결과표다. 시멘트에 발암물질과 중금속이 가득하다. 쓰레기를 넣지 않은 유니온 시멘트는 발암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 노웅래
먼저 쓰레기 시멘트 내의 중금속부터 확인해보자.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지난 2021년 가을 국립환경과학원에 국내 8개 시멘트 공장의 시멘트를 분석 의뢰했다. 쓰레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발암물질이 검출되지 않는 유니온시멘트를 제외하고 국내 모든 시멘트에는 발암물질 6가크롬(Cr Ⅵ)부터 인체 유해물질인 비소(As), 구리(Cu), 납(Pb), 크롬(Cr), 니켈(Ni), 아연(Zn)에 이르기까지 중금속이 가득했다.
이제 어린이 놀이터와 토양 속 중금속 오염 실태를 알아보자. 2016년 <서울도시연구> 제17권 '서울시 용도지역에 따른 어린이 놀이터와 주변지역 토양의 중금속 오염 평가'에는 총 18곳의 놀이터 모래와 주변지역 토양의 납, 카드뮴, 6가크롬, 구리를 조사한 결과가 공개돼 있다.
이 보고서는 주거지역(S1,S2,S3)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오염도가 높은 공업지역(K1,K2,K3), 상업지역(G1,G2,G3)의 놀이터 '모래'와 '토양' 각 3곳씩 총 18곳의 놀이터와 토양을 비교 조사하였다. 특별한 오염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몇 년의 시간이 흐른다고 어린이 놀이터와 토양의 중금속 함량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 서울시내 18곳의 어린이 놀이터와 주변지역 토양의 중금속 오염을 조사한 결과 ⓒ 서울도시연구
노웅래 의원이 국내 8개 시멘트 제품을 분석한 결과와 '서울시 용도지역에 따른 어린이 놀이터와 주변지역 토양의 중금속 오염 평가'를 비교해 보았다.
시멘트 제품 안의 발암물질 6가크롬은 최저 4.72ppm에서 최대 18.79ppm인데 반해 서울시 18곳의 어린이 놀이터와 주변 토양의 6가크롬은 최저 0.048ppm에서 최대 0.082ppm다. 최대 391배의 차이가 났다.
납(Pb)의 경우 쓰레기시멘트는 최대 67.947ppm인데 반해 놀이터 모래는 상업지역G1 0.729ppm(93.2배), 토양은 상업지역 G2의 1.425ppm(47.67배)이 최대치다.
쓰레기시멘트의 구리(Cu)는 최저 38.022ppm에서 최대 232.141ppm이 검출되었다. 반면 놀이터 모래 중 구리의 최대값은 0.738ppm(상업지역G1)으로 무려 314.5배의 차이다. 주변 토양 중 구리의 최대값은 1.544ppm(상업지역G2)로 150.3배의 차이가 났다.
노웅래 의원의 시멘트 분석값 중 쓰레기를 넣지 않은 유니온시멘트를 제외한 나머지 7개 시멘트의 유해물질 평균값과 서울시 놀이터와 토양의 중금속 평균을 비교해봤다.
▲ 노웅래 의원이 국립환경과학원에 의뢰해 얻은 시멘트 내 중금속 함유량과 서울시 놀이터의 중금속 함유량을 비교해 보았다. 수백 배의 차이가 확실하게 보인다. 시멘트 내 중금속 함유량과 놀이터 모래의 중금속 함유량은 결코 비슷하지 않다. ⓒ 최병성
비교 결과는 놀라웠다. 시멘트의 중금속이 놀이터 모래보다 낮다는 언론보도는 심각한 사실 왜곡이었다. 발암물질 6가크롬은 최소 160.5배에서 최대 200배나 차이가 났다. 납은 최대 109배, 구리는 최대 610배까지 차이가 날만큼 시멘트의 유해성이 심각했다.
다른 조사를 봐도 쓰레기 시멘트는 유해
다른 조사 보고서도 찾아보았다. 2001년 한국환경위생학회지 제27권에 실린 'I시 어린이 놀이터의 토양 중 중금속 오염에 관한 연구'는 주거지역 12곳, 공장지역 4곳을 선정하여 각 지점마다 놀이터 모래와 토양 등 총 32곳의 중금속을 조사하였다.
오래전 조사지만 주거지역과 공장지역의 놀이터 모래와 토양을 비교 조사하였고, 조사 지점이 총 32곳으로 조사 결과에 신뢰성이 높다. 우리가 집을 짓고 살아가는 쓰레기시멘트는 그날 어떤 쓰레기를 넣었느냐에 따라 시멘트의 발암물질과 중금속이 매일매일 다르다. 그러나 이 자료에 따르면 주택과 공장 지역 모래와 토양의 중금속 차이가 크지 않다. 토양의 중금속이 증가하려면 고농도의 중금속이 그 토양을 오염시키는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주변 공장 굴뚝에서 지속적으로 다량의 중금속을 뿜어내야 토양의 중금속 농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시간이 몇 년 흐른다고 놀이터 모래와 토양의 중금속이 달라지지 않는다.
▲ 'I시 어린이 놀이터의 토양 중 중금속 오염에 관한 연구' 주거지역 12곳, 공장지역 4곳 등 총 16곳을 선정하여 어린이 놀이터 모래와 주변 토양의 중금속을 조사하였다. ⓒ 한국환경위생학회
I시 놀이터와 주변 토양의 중금속 평균값과 노웅래 의원실이 분석한 시멘트의 중금속 평균값을 비교해 표를 만들어보았다. 시멘트 업계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쉽게 알 수 있다.
납의 경우 주택가 놀이터 모래와 토양은 평균 4.492ppm과 6.394ppm인 반면 시멘트는 34.59ppm이다. 구리의 경우, 주택가 놀이터 모래는 평균 2.423ppm, 토양 10.567ppm인데 시멘트는 139.693ppm이다. 비소는 놀이터 모래 0.038ppm, 토양 0.052인 반면 쓰레기시멘트의 비소는 7.449ppm으로 143~196배나 더 높다.
시멘트가 놀이터 모래와 토양의 중금속보다 더 낮거나 안전하지 않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노웅래 의원의 시멘트 분석 결과와 I시 16곳 놀이터의 모래 중금속 분석 결과를 비교표로 정리해보았다. 쓰레기 시멘트와의 차이가 명백하다. ⓒ 최병성
이는 쓰레기 시멘트가 얼마나 인체에 유해한지 보여준다. 우리가 저 인체 유해 물질 가득한 시멘트에 갇혀 살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국민을 속일 것인가
시멘트 업계는 그동안 시멘트에 대해 토양의 중금속 함량 정도이거나 더 낮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다양한 토양의 중금속을 분석한 자료를 찾아냈다.
▲ 많은 차량이 오가는 도로변 가로수 주변 토양의 중금속을 시멘트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 최병성
<도시녹지의 이산화탄소 및 중금속 저감>(2010)에 따르면 청주시와 충주시의 공업지역, 상업지역, 주거지역, 녹지지역 가로수 식재지 주변의 토양 총 21곳의 아연, 구리, 크롬, 니켈 등의 중금속 조사 결과가 상세히 나와 있다. 이 보고서 역시 차량이 많이 오가는 가로수 주변의 토양임에도 불구하고 시멘트처럼 유해 중금속이 많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다.
▲ 청주시와 충주시의 공업지역, 상업지역, 주거지역, 녹지지역 가로수 식재지 주변의 토양 총 21곳의 아연, 구리, 크롬, 니켈 등의 중금속 조사 결과 ⓒ 박주영 주진희
노웅래 의원이 국립환경과학원에 분석한 시멘트 중금속과 가로수 주변 토양의 중금속의 평균값을 계산해 비교표로 정리해 보았다. 아연(Zn)은 가로수 토양에 비해 시멘트가 최대 59.7배, 구리(Gu)는 최대 139배, 납(Pb)은 최대 17.6배 더 높았다. 크롬(Cr)은 시멘트가 가로수 토양보다 무려 최대 439배 높았으며, 니켈(Ni)은 최대 92배, 비소(As)는 최대 74.5배나 더 많은 인체 유해중금속이 검출되었다. 쓰레기로 만든 시멘트의 유해 성분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청주시와 충주시 가로수 주변 토양의 중금속과 국내 쓰레기 시멘트의 중금속을 비교한 결과 쓰레기 시멘트의 유해성이 심각한 수준임이 드러났다. ⓒ 최병성
환경부가 주범
환경부는 중금속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시멘트공장들이 쓰레기를 치워준다는 이유로 시멘트공장에 각종 특혜를 주며 유해 중금속 가득한 쓰레기시멘트를 만들게 해왔다.
어린이 놀이터 모래는 중금속 함량이 미량임에도 사회적 논란이 되어 왔다. 그만큼 중금속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농도의 노출이라 할지라도 유아나 어린아이들에겐 특히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시멘트에는 놀이터 모래보다 수십~수백 배에 이르는 다량의 발암물질과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과 가족들이 그 유해한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 24시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제대로 된 시멘트 중금속 기준 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쓰레기시멘트를 자원 재활용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유해물질을 재생산해서 국민들이 사는 안방으로 되돌린 것에 불과하다. 중금속의 인체 유해성을 가장 잘 알면서도 시멘트공장의 이익을 위해 시멘트에 유해물질을 증가시키고 있는 게 환경부다. 이는 결국 국민들에겐 고통이요, 후손들에겐 재앙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유엔군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한 것”이 유엔의 ‘평화 미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엔은 6.25전쟁에 유엔군 파견은커녕 유엔군을 창설하지도 않았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유엔군’은 단지 미국이 유엔을 참칭해 만든 연합군일 뿐이다. 이마저도 지난 1975년 유엔총회에서 가짜 ‘유엔군’으로 판명돼 해체를 명 받았다.
가짜 ‘유엔사’의 탄생
6.25전쟁 발발 직후 소집된 유엔안보리 결의(1950.07.07.)를 근거로 ‘유엔군사령부’ 창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안보리 결의는 유엔 깃발 사용권에 지나지 않았다. 이마저도 군사작전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실제 안보리는 유엔군을 창설할 권한이 없고, 유엔총회에 그 권한이 있다. 하지만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에 파견할 유엔군 창설은 결정된 바 없다. 오히려 유엔을 참칭한 주한 ‘유엔사’의 해체를 의결했다.
미국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1975년 제30차 유엔총회에서 주한 ‘유엔사’ 해체가 가결되자,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1976년 1월 1일부로 유엔사 해체를 공언했다.
유엔의 해체 결의에 불복한 미국
주한 ‘유엔사’ 해체 결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지금까지 유엔총회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 유엔 차원의 해체 압박도 계속되었다.
1994년 부트로스 갈리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는 유엔 산하조직으로서 통합군사령부를 설립한 적이 없으며, 단지 미국 주권 하에 배치되어 있다”라고 지적했고, 1998년 당시 코피 아난 사무총장 역시 유엔군 창설에 대해 “나의 전임자들 누구도 유엔 이름을 사용하도록 어떤 국가에 어떤 권한도 위임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2004년과 2006년, 반기문 사무총장의 대변인 역시 “유엔사령부는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유엔이 아닌 미국이 주도하는 군대이다”라고 확인했다.
특히 로즈마리 디카를로 유엔 사무차장(미국 유엔대표부 부대사)은 안보리 회의(2018.09.27.) 공식 석상에서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주한 ‘유엔사령부’는 유엔 활동이나 조직이 아니고, 유엔의 명령과 통제 아래 있는 것도 아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하부 조직으로 설치된 것도 아니며 유엔 예산을 통해 자금을 받지도 않는다. 따라서 ‘유엔사령부’와 유엔 사무국 사이에는 아무런 보고선이 없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거짓말한 이유
6.25전쟁 당시 유엔은 유엔군을 창설하지도 파견하지도 않았다. 윤 대통령이 과연 이 사실을 몰랐을까.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거짓말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혼자 연설문을 쓰지 않았을 터.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외교부 관계자들이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면 왜 뻔한 거짓말을 했을까. 그것도 유엔과 관련한 사항을 굳이 유엔 총회에서 말이다.
윤 대통령의 ‘유엔군’ 언급에는 미국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체결해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에 ‘유엔군’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주한 ‘유엔사’가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군 주도의 연합군 정도로 위상이 전락하면, 일본 자위대와 한국군을 ‘유엔사’로 편입하려던 미국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더구나 이번 유엔총회에선 대만을 분쟁지역으로 만든 미국의 군사전략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예상된다.
결국, 대만 위기를 계기로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에게 ‘유엔사’를 유지할 명분을 제공한 것이 바로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거짓말을 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공사 “가해자 불복시 곤란, 확정판결 뒤 사내 징계”
여성단체 “법원 결정 마냥 기다리는 건 책임 회피”
명순필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위원장(왼쪽 둘째)이 20일 오전 서울시청 들머리에서 열린 신당역 사고 피해자 추모와 재발방지 및 안전대책 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신당역 스토킹 범죄 피해자 추모주간 활동 계획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계기로 ‘확정 판결 뒤 사내 징계’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가해자 사내 징계를 확정 판결 뒤로 미뤘는데, 이러한 ‘지연’이 피해자를 각종 2차 피해에 노출시키고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내 징계를 미루는 관행은 기업이 ‘책임 회피’를 위해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2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교통공사(공사)는 지난해 10월13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 전주환(31)을 직위해제했다. 전주환이 불법촬영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 받은 지(10월8일) 5일 뒤다. 그뒤 사건 발생 당일인 9월14일까지 11개월 동안 전주환은 쭉 ‘직위해제’ 상태였다. 직위해제는 ‘징계’가 아니다. 징계 수위 확정 전까지 기존 직위에서 물러나게 하는 조처일뿐이다. 직위해제 상태에서 전씨는 월급과 성과급을 받았고, 사내 인트라넷에도 수차례 접속해 피해자 주소지와 근무지 정보를 빼내 범행에 이용했다.
그러는동안 전씨에 대한 사내 징계 절차는 개시조차 되지 않았다. 공사는 내부적으로 ‘확정 판결 뒤 사내 징계’ 방침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보통 1심 판결까지 아무리 빨라도 6개월이 걸리고, 피의자가 항소·상고라도 하면 확정 판결까지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동안 피해자는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가해자와도 완전히 차단·분리되지 않은 상황에 놓인다.
‘직장 내 스토킹’ 피해자에게 사내 징계 지연은 특히 더 위험하다. 징계는 미룬 채 가해자를 직위해제 상태에 둔다면 피해자와의 원천적 ‘차단’이 애초에 불가능해진다. 실제 이번 사건에서 전주환은 직위해제 중 피해자 정보에 손쉽게 접근했다. 2차 피해가 발생할 여지도 커진다. 최수영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장은 “징계가 미뤄진다는 것은 회사가 피해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다”며 “그렇기에 가해자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여러 소문을 만들어낼 것이고, 피해자는 가해자 또는 가해자 지인의 합의 종용이나 협박 등에 노출되기 쉽다. (징계 지연은) 그 자체로 피해자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신당역 사건 피해자 유족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피해자가) 우리 언니인 줄 모르고 ‘그 사람(가해자) 좋은 사람인데 누가 신고했을까’ 이런 얘기를 했고, 이에 (언니가) 상처 받아 말할 곳이 없었다”고 했다.
공사, 개선 대책 내놓고 “반드시 하겠다는 뜻 아냐”
전문가들은 ‘확정 판결 뒤 징계’ 관행은 기업이 분쟁에서 부담을 덜기 위해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한 행태라고 지적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사내 절차는 피해자와 조직 구성권의 안전한 노동권 보장을 위한 것으로, 처벌이 주 목적인 사법 절차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면서 “그럼에도 기업이 사내 조치를 사법 판단 이후로 미루는 이유는 반발하는 가해자와의 분쟁 등에서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어적인 태도”라고 했다.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도 “기업이 (가해자) 징계 판단에 대한 부담을 재판부에 떠넘기면서, 정작 조직 내 성폭력에 대한 논의, 대응 방식이 성숙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관행의 문제가 드러났지만 공사는 여전히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공사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제출한 ‘안전강화 대책’에서 ‘확정 판결 뒤 징계’ 방침을 ‘1심 판결 뒤 선 징계’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사 관계자는 <한겨레>에 “해당 방침은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 반드시 (개선)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가해자가) 징계 불복해 각종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하고, 정확한 수사 결과를 토대로 징계를 내려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사내 징계는 확정 판결 뒤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했다. 국회에 상황 모면용으로 대책을 제출한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공사의 ‘확정 판결 뒤 징계’는 관행일 뿐 내부 규정에 명시된 것도 아니다. 서울교통공사 인사규정을 보면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인 사건은 수사 개시의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징계 의결의 요구 그 밖의 징계 절차를 진행하지 아니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징계 절차 유보를 ‘허용’ 한 것이지, 반드시 확정 판결 뒤로 미루라는 규정이 아니다.
반면 서울시는 지난해 발간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 피해자를 몰라도 가해 행위를 인지하면 기관이 적극적으로 사내 조사 등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공사는 줄곧 ‘피해자가 회사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아 자체 조사를 할 수 없었다’는 입장인데, 이런 해명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시의 산하기관이다.
곽재훈 기자 | 기사입력 2022.09.21. 09:33:14 최종수정 2022.09.21. 09:58:07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여왕 '조문 외교' 당시, 윤 대통령이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홀을 찾지 않고 장례식 참석과 조문록 작성만 한 것이 논란이 되자 정부 측은 'EU 집행위원장 등 다른 나라 정상들도 마찬가지였다. 결례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회 외교안보 분야대정부질문 답변자로 나선 자리에서 "윤 대통령뿐만 아니고 늦게 런던에 도착하신 EU 집행위원장, 파키스탄 총리, 모나코 국왕, 오스트리아 대통령, 이집트 총리 (등도) 다같이 장례식 후에 조문록을 작성함으로써 조문의 행사를 마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뉴욕 현지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이와 비슷한 취지의 해명을 했다. 이 부대변인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 그리스 대통령,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 등 다수 정상급 인사가 조문록을 작성했다고 언급했다.
외교부도 같은날 임수석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과 함께 EU 집행위원장, 파키스탄 총리 등 다수 정상급 인사가 조문록을 작성했고, 이후에 확인한 바로는 모나코 국왕, 그리스 대통령, 오스트리아 대통령, 이집트 총리, 리투아니아 대통령 등 다수의 정상급 인사들이 영국 왕실의 안내에 따라서 장례식을 마친 뒤에 조문록에 서명했다"며 "이 분들도 모두 영국 왕실로부터 홀대를 당한 것은 아니다. 참배가 불발됐거나 조문이 취소된 것 또한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한 총리의 대정부질문 답변에 대해, 이후 질의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총리의 앞선 답변) 이 말을 듣고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며 "명백히 사실과 다른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 등 한 총리가 언급한 인사들은 실제로는 웨스트민스터홀 조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 총리는 당황한 듯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이에 <프레시안>이 해당 국가 정상들의 트위터나 홈페이지 등을 확인해본 결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사켈라로풀루 그리스 대통령,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웨스트민스터홀을 찾아 조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단상 위 가운데 고개숙인 여성)이 웨스트민스터홀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을 참배하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 트위터 갈무리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오른쪽 단상 위 3인 중 가운데)이 웨스트민스터홀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판데어벨렌 대통령 트위터 갈무리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 그리스 대통령(오른쪽 단상 위 3인 중 가운데)이 웨스트민스터홀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그리스 대통령실 홈페이지 갈무리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가 전날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새 국왕을 만났고 국장에 참석하셨다. 그걸 조문이라고 생각한다", "장례식이 핵심 행사라고 할 수 있다"고 한 만큼, 정부 측 설명대로 웨스트민스터홀 '빈소' 방문 여부 자체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논란의 해명 과정에서 대통령실·외교부가 사실관계 파악을 제대로 못한 일은 도마에 오를 일로 보인다. 일국의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그것도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 역시 그 자체로 충분한 논란거리다.
곽재훈 기자
국제팀에서 '아랍의 봄'과 위키리크스 사태를 겪었고, 후쿠시마 사태 당시 동일본 현지를 다녀왔습니다.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 연평도 사태가 터졌고,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2012년 총선 때부터는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구산하 민족위 실천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화요행동에는 김성일 민족위 집행위원장과 신은섭 민족위 정책위원장이 출연해, 윤석열의 대일 구걸 외교, 극우 유튜버 김상진의 난동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자는 “극우 유튜버들이 소녀상 앞을 포함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윤석열의 의중을 반영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윤석열은 대일 구걸 외교로 국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이런 현황을 반영해 오늘 화요행동은 그런 친일 매국노를 당장 몰아내자는 마음을 안고 평화의 소녀상 앞으로 찾아왔다”라는 말로 화요행동을 열었다.
먼저, 신 정책위원장은 한일관계에서 윤석열은 구걸하고 일본은 거절하는 모양새가 계속 보이는 데 관해 이야기해 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일본이 제발 관계를 개선해 달라고 사정해도 모자란 판국에 일이 거꾸로 됐다. 많은 국민이 이를 보면서 분노한다. 하지만 윤석열은 아랑곳하지 않고 구걸 외교를 이어갈 것이다. 일본은 지구상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는데 여태껏 제대로 사죄·배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은 한국 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한국을 경제 공격했고, 이 때문에 한일관계는 한 번 더 틀어졌다. 윤석열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에 따지는 게 아니라 제발 만나달라는 저자세로 나오니까 국민은 자존심이 상한다.”
신 정책위원장은 윤석열의 소위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지금 상황에서 일괄타결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본 요구를 무조건 다 들어준다는 이야기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한국이 정상회담을 구걸하고 일본이 받아주지 않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만일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는데 일본 요구를 그대로 다 받아주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건 그것대로 참사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일본이 한국을 하위 동맹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절대로 한국을 동등한 동맹 관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윤석열도 이것을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뼛속까지 친미·친일인 윤석열은 바람직한 한일관계 수립으로 갈 수 없다. 퇴진만이 답이다.”
화요행동 참가자들은 이어서 최근 극우 유튜버들의 난동이 심해지는 데 관해 이야기 나눴다.
김 집행위원장은 “지난 11일 밤 극우 유튜버 김상진 일당이 소녀상 앞에 와서 난동을 부렸다.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가로막고 적폐세력의 이익을 옹호하는 행위를 벌인 거다. 역사 인식, 민주 의식 자체가 없는 자들이다. 거기에 더해서 돈이 따라오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이런 자극적인 행동을 유튜브에 내보내면 많은 후원이 들어온다. 일본에서도 상식적이고 양심적인 일본인들은 이러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행위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사회자는 “극우보수세력이 어디를 공격하고 테러의 대상으로 삼는가를 보면, 극우보수 정권이 가려는 방향과 맞물려 있다. 박근혜가 ‘2015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하던 즈음에 소녀상을 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김상진의 최근 만행도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하려는 윤석열의 행보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극우 유튜버들은, 윤석열이 어떻게든 한일관계 개선, 삼각동맹 강화로 나가려고 하는 데서 방해가 되는 것을 치우는 돌격대 역할을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예전의 정치깡패 같다. 지금 시대에는 정치깡패들이 하던 것과 같이 납치, 폭행, 살인 같은 행위를 할 수는 없으니까 유튜버가 앞장서서 정치테러 행위를 하고 있다. 극우 유튜버들의 뒤에는 윤석열이 있다. 취임식에도 초청했고, 추석에 선물도 보냈다. 뿌리가 정권에 닿아있다.
정권이 통째로 친일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지소미아를 밀실에서 추진하다 들통나 물러났던 김태효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되어 돌아왔다. 정권에 이런 인물들 일색이다. 당장 갈아엎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연자들은 마지막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가지는 의미, 소녀상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신 정책위원장은 “극우세력의 준동이 지금 시기에 소녀상이 가지는 의미를 반증한다.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실만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의 정치 현실을 담고 있는 상징물이다. 극우세력의 도발에 맞서 소녀상을 지켜야 한다. 단순히 지키는 것을 넘어,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재침 야욕을 꺾고 동북아에 온전한 평화를 가져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사회자는 “요즘 주말마다 김건희 특검,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린다.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일은 결국 그와 맥락을 같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국노 윤석열을 하루빨리 끌어내리고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안아오고, 전쟁 없는 나라·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분들의 고통을 씻어드리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친일 매국노 윤석열은 퇴진하라!”, “전쟁 범죄 사죄하지 않는 일본을 규탄한다!”라고 구호를 외치며 화요행동을 마쳤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 “민주당은 ‘김건희 스토킹 당’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
명백한 ‘스토킹범죄’인 신당역 살인사건, 현행 제도 허점 지적한 언론들
원자력발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하는 환경부 초안에 의견 나뉜 언론
동아일보 칼럼 “차라리 청와대로 돌아가라”
조선일보가 21일 아침신문에서 ‘‘매일 내분 여당’ 對 ‘김건희 스토킹 야당’, 지금 한국 정치’’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냈다.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제기에 집중하는 것을 두고 ‘김건희 스토킹 당’이라며 이름붙인 것이다.
▲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사설은 “정기국회가 시작된 지 20일이 지났지만 여야는 볼썽사나운 정치 싸움만 벌이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몇 달째 이준석 대표 징계와 비상대책위 구성을 둘러싼 분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김건희 스토킹 당’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라며 “모든 일을 김 여사에 걸어 비난한다. 김 여사에 대한 국민 여론이 부정적인 것을 이용해 이재명 대표 수사에 대한 물타기 용도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제는 김 여사 특검까지 한다고 한다. 특검 대상 의혹은 문재인 정권 검찰이 1년 반 넘게 수사하고도 혐의를 찾지 못한 내용이다. 일반인이었던 김 여사의 허위 경력이 특검까지 할 일인가”라고 했다.
‘스토킹범죄’ 신당역 살인사건, 대안 마련 촉구 보도 이어져
서울지하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여성 역무원이 남성 직장 동료에 의해 살해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8일이 지났다. 아침신문에서는 신당역 살인사건이 ‘스토킹범죄’라는 점에 주목하며 스토킹범죄를 처벌하는 현행제도의 허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촉구하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 경향신문 1면 사진 갈무리.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스토킹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선결조건이 있다. 스토킹을 개인의 일상과 생명을 파괴하는 중범죄로 사회 전체가 인식하는 것”이라며 “언론의 왜곡 보도와 악성 댓글도 문제다. 차마 옮길 수 없는 글들이 온라인상에서 유통되고 있다. 명백한 ‘2차 가해’이자 스토킹 범죄를 막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했다.
▲ 경향신문 사설 갈무리.
유족을 대리한 민고은 변호사는 20일 “이 사건의 본질은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2년 동안 스토킹 피해를 입었고 결국 살인에 이르렀다는 것”이라며 “더 이상 고인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겨레 오피니언면 ‘세상읽기’ 칼럼에서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협박에 시달리다 피의자를 고소했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피해자는 결국 살해됐다”며 “범죄의 중대성과 재범 위험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 각료와 정치인들이 현상을 보는 눈과 이들이 사회를 향해 발신하는 메시지”라며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심층문화와 욕망의 구조에 깔린 여성에 대한 성적 지배 의지가 이런 살인의 근저에 있음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치지도자들은 그 본질을 회피하고 은폐하는 데 급급할 뿐 아니라, 그 본질을 말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 칼럼 세상읽기 갈무리.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동아일보가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 받은 판결 15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사법당국으로부터 접근 및 연락금지 명령을 받은 가해자 57명 중 3명만 범행을 멈춘 것으로 밝혀졌다”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가해자가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이 스토킹 범죄의 특징이다. 그런데 현행 제도는 가해자는 그대로 두고, 신변보호 요청을 한 일부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해 위급 상황 시 경찰을 호출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2년 논의 끝에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스토킹처벌법은 가해자를 엄벌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이 시행됐는데도 피해자는 가해자가 어떤 경로로 개인정보를 입수해 피해자의 근무지나 거주지로 찾아올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리는 현실”이라며 “사후 처벌도 필요하지만 제대로 된 예방책이 없으면 피해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해자들이 설령 나쁜 마음을 먹더라도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촘촘한 대책을 짜야 한다”고 했다.
▲ 동아일보 사설 갈무리.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서울 신당역 여성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을 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여성혐오 범죄 논쟁이 일고 있다”며 “야당 일부와 여성단체들이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 방침을 철회하라는 주장도 나왔다.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한 여성폭력에 대한 구조적 해결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스토킹 살인을 정쟁의 이슈로 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흉악한 범죄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정치권은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발생할지 모르는 여성 대상 범죄를 막기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여혐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 중앙일보 사설 갈무리.
원자력발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하는 환경부 초안에 의견 나뉜 언론
환경부가 20일 원자력발전을 환경부가 원자력발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하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초안을 공개했다. 대다수 아침신문들은 1면에서 해당 소식을 다뤘지만 의견은 반대로 나뉘었다.
▲ 21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한겨레는 1면 기사 ‘녹색문턱 낮춰 원전 끼워넣기’에서 “이번 수정안은 환경과 안전을 고려해 비교적 엄격한 조건을 내세운 유럽연합(EU) 기준보다 대폭 완화된 것이어서, 윤석열 정부 들어 추진하는 ‘원전 확대’ 시간표를 맞추기 위한 요식적인 절차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기사는 환경부의 초안이 후퇴한 안전기준인 이유에 대해 상세히 지적했다. 기사는 “우선, 정부는 신규 건설하는 원전에 원자력안전법 등에 규정된 ‘최신기술기준’을 적용하도록 했다. 이는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내용이다. 반면, 유럽은 최신기술기준보다 더 적극적인 개념인, 가능한 최적의 기술인 ‘최적가용기술’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의 녹색분류체계가 유럽보다 후퇴한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부는 원전에 중대사고가 났을 때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2031년부터 사용하도록 했다”며 “유럽연합이 사고 저항성 핵연료 적용 시기로 못박은 2025년보다 6년이나 늦다”고 했다.
이어 “이뿐만이 아니다. 환경부는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건설을 위한 세부계획과 이 계획의 실행을 담보하는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고준위 방폐장은 주민 반대와 지역 갈등으로 수십년째 부지 선정조차 못한 환경 난제다. 환경부는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을 가동하도록 한 유럽연합과 달리 시한을 정하지 않았다. 고준위 방폐장 세부계획이 이미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라고 지적했다.
▲ 한겨레 2면 기사 갈무리.
사설에서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유럽연합과 견줘 지나치게 ‘원전 친화적’”이라며 “원전 확대의 걸림돌을 없애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녹색분류체계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가 ‘그린워싱’을 막는 것인데, 되레 원전에 녹색 분칠을 하는 데 활용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도 1면 기사 ‘정부, 방폐장 확보 않고 “원전은 친환경”’는 “환경부는 이날 고준위방폐장 처분 부지 및 건설의 시점은 제시하지 않았다”며 “전문가와 환경단체 등은 고준위방폐물 관기기본계획에도 시한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부지 선정 절차 착수 이후 37년 내에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한다는 막연한 내용이 들어있을 뿐이란 것”이라고 했다.
▲ 경향신문 1면 갈무리.
반면, 조선일보는 1면 기사 ‘원전, 5년만에 친환경 ‘명예회복’’에서 “문재인 정부가 작년 말 발표한 K택소노미에서 제외했던 원전을 넣으면서 국내 중·장기 탄소 중립 달성과 안정적인 전력 수급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라고 했다.
사설에서는 “지난 5년의 탈원전으로 헝클어진 에너지 수급을 바로잡기 위해서 또 필요한 것이 원전 이용률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며 “원전은 작년 경우 신재생 전기의 3분의 1이 안 되는 발전 단가로 신재생의 5.8배 전력을 생산했다. 원전 이용률을 미국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다면 지금 전국 태양광·풍력에서 생산해내는 것보다 많은 전기를 추가로 공급할 수 있다. 원전 이용률 제고를 에너지 정책의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동아일보 칼럼 “차라리 청와대로 돌아가라”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은 ‘차라리 청와대로 돌아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냈다. 칼럼은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면밀한 검토를 거친 줄 알았으나 그런 건 없었다”며 “어느 신문 국방전문기자가 칼럼에서 한번 던져 본 제안을 받아 하루아침에 광화문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바꿨다”고 했다.
▲ 동아일보 칼럼 갈무리.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관저로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사용하겠다고 하다가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꿨다. 대통령이 최상급자이긴 하지만 너무 멋대로라는 느낌을 줬다”며 “공관 수리비 25억 원은 이전비에 포함돼 있다. 그보다 더 큰 비용은 새 외교부 장관 공관을 마련하는 비용일 것이다. 게다가 집무실을 이전한 이상 영빈관처럼 언젠가는 집무실 근처에 관저를 지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국민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 대통령실 이전이 필요하면 이전할 수도 있다는 것과 청와대를 돌려달라는 것은 다른 얘기”라며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국민이 원해서 청와대를 돌려주는 것처럼 말했다. 청와대를 미술관으로 만들어 억지로 돌려주지 않았으면 한다. 청와대가 터가 좋지 않다고 여겨 살기 싫으면 그렇다고 말할 것이지 국민 핑계대지 말라”고 했다.
칼럼은 “집무실 이전의 정당성 기반이 실은 허약한 것”이라며 “여야는 대통령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관저와 영빈관까지 지어주든가, 아니면 용산은 임시 거처라 치고 청와대를 개조해 다시 돌아가는 건설적 협의를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고도 했다.
통일의길 창립 10주년 기념행사가 19일 오후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문학의집 서울’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통일의길은 자주‧평화통일 운동의 돌파구를 여는 개척자가 되겠습니다. 역사의 맥을 잇고 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경지를 열어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감히 앞으로 우리 자주‧평화통일운동의 중추가 되겠습니다.”
‘시민과 함께’를 표방한 ‘통일의길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심재환 통일의길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시민 대중이 주인이 된 그런 통일운동을 만들겠다”며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심재환 이사장은 19일 오후 7시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문학의집 서울’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문재인 정부가 자리보전에 그치고 자기가 할 일을 다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긴장이 고조되고 전쟁 위기가 계속되는 속에서도 우리 통일의길, 갈 길을 갔다”, “감히 자부하건데 많은 일을 했고 알찬 수확을 거뒀다”고 자평했다.
심재환 통일의길 이사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특히 “저희가 걷는 길은 교섭과 인도적 지원이나 정부에 편승하는 그런 길이 아니다. 정도다. 바른 길이다. 반미자주 평화통일의 길이다”고 규정하고 “저희가 만들었던 8,15평화통일시민대회나 통일비빔밥, ‘미국은 들어라 시민행동’ 같은 이런 활동들이 대표적으로 저희의 뜻, 가려고 하는 길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심 이사장은 “우리 통일의길은 일방적 활동가들만은 자폐적 조직이 아니다”며 “통일 승리의 관건인 우리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그 길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가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축사에 나서 “오종렬 의장님 모시고 시작할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 의장님은 우리 곁을 떠났고 심재환 이사장이 어려운 결단해서 지금까지 달려왔다”고 회고하고 “우리가 만든 길들은 자그마한 오솔길일 수밖에 없었다. 풀뿌리 시민들이 함께하는 아주 자그마한 몸짓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10년, 우리들의 앞을 막았던 장벽, 그 장벽을 우리 통일의길 회원들, 또 여기 함께 계시는 분들이 두드리고 두드리고 두드려서 그 벽이 문이 되고, 드디어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그 자그마한 시작이 많은 길동무들을 만들어내고 이제 그 오솔길이 모이고 모여서 신작로가 되고 통일의 대통로가 이루어질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기념식 참가자들은 신입회원이 된 오은정 전교조 통일위원장과 창립회원인 은희만 (사)통일나무 운영위원장이 공동낭독한 ‘결의문’을 통해 “8.15시민대회와 대행진, 시민민중대회, 신년시민열사묘역참배, 통일비빔밥나눔, 평창올림픽 단일기거리 조성, 지리산 평화기원제 등은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형의 시민통일운동으로 정착되었다”며 “미대사관 앞에서 시작한 ‘미국은 들어라!’ 화요행동은 월례행동으로 확대 발전되어 통일의 길의 자랑이요 보람이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7.27 정전협정 70주년은 촛불시민, 통일시민들의 총의와 결의를 모을 수 있는 담대한 구상으로 준비하겠다”면서 “지난 70년 동안 끝내지 못한 전쟁을 끝내고 시민의 힘으로 평화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길 앞에 통일의 길이 있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조원호 통일의길 대표가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등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조원호 통일의길 대표는 창립 때부터 통일의길을 뒷받침해 준 한충목 상임대표에게 각별한 감사 인사를 했고, 원로로서 이끌어 준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와,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에게도 사의를 표했다.
강진아 통일의길 운영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식에서 10년 간의 활동을 돌아보는 영상 상영과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대표의 축사, 권낙기 대표와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의 축배제의가 있었고, 6.15합창단의 축하공연도 펼쳐졌다. 기념식은 토크쇼와 후원행사로 이어졌다.
통일의길 운영위원들이 무대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신입회원이 된 오은정 전교조 통일위원장(오른쪽)과 창립회원인 은희만 (사)통일나무 운영위원장이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지난 9월 5일 통계청이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이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81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 세계인구가 2022년 79억 7천만 명에서 2070년 103억 명으로 증가하는데 비해 한국 인구는 같은 기간 5200만 명에서 3800만 명으로 감소할 거라는 내용입니다. 많은 언론들이 인구절벽을 걱정하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출산율이 낮아서 인구가 줄어들 거라는 이 당연해 보이는 예측에 과연 다른 변수가 끼일 여지가 없을까요?
▲ 한국과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 비교. 두 나라 모두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은 출산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봉렬
한국과 합계출산율 꼴찌를 다투는 나라가 싱가포르입니다.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은 2010년 이후 3년 동안 한국보다 낮다가 그 이후로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그래도 싱가포르는 꾸준히 인구가 증가했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출산율은 비슷한데 두 나라의 인구 전망이 이렇게 다르다면 그 차이를 만드는 요인을 찾아야 합니다. 제가 싱가포르에 이민을 오면서 싱가포르 인구에 머릿수 하나 더한 사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비자제도
전 2006년에 싱가포르에 직장을 구해 이민을 왔습니다. 아내와 두 딸도 함께 왔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이민을 오기 위해서는 최소 EP(Employment Pass)라 부르는 취업비자가 필요합니다. EP를 받으면 우리의 주민증과 같은 신분증이 생기며 이를 이용해 집을 구하고, 은행 계좌를 열고, 전화나 인터넷을 개통하는 등 시민권자와 거의 동일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DP(Dependent Pass)라 부르는 거주비자를 받아서 학교에 갈 수도 있습니다. 월급이 높으면 부모도 초청해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 싱가포르의 상징물 멀라이언상 뒤로 금융빌딩들이 보입니다. 시민권자 수가 350만명에 불과한 싱가포르가 나라를 선진국으로 유지하려면 외국인의 유입이 필수입니다. ⓒ 이봉렬
조건이 좋은 만큼 EP발급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발급 기준을 늘 까다롭게 관리하는데 지난 9월 1일부터 새로 바뀐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월급이 최소 5천 달러(5백만 원)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40대 중반의 경우는 만 달러(1천만 원) 이상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교육 수준도 학사 학위 이상을 요구하고, 일하는 분야도 정부가 정한 전문 직종 위주로 발급합니다. 이번에 새롭게 점수제도가 생겼는데 학력과 월급 수준뿐만 아니라 국적과 회사 내 시민권자 비율까지 수치화 하여 일정 점수 이상에게만 EP를 발급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자격요건 외에도 싱가포르 회사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EP를 발급하기 위해서는 정부 고용 사이트를 통해 최소 2주간 싱가포르 시민권자를 고용하려 노력했다는 증빙을 해야 합니다. 외국인 채용이 싱가포르 시민권자의 실업을 불러오지 않도록 하려는 안전장치인 것입니다. 2년마다 한 번씩 갱신을 해야 하고 회사를 그만 두면 EP가 취소되어 떠나야 하는 제약도 있습니다.
EP가 전문직을 위한 비자라면 일반직을 위해서는 SP(S Pass)가 있습니다. 주로 제조업에서 일을 하는데 비자 발급을 위한 최소급여가 3000달러(3백만 원)로 EP에 비해 낮고 요구되는 교육수준도 마찬가집니다. 건설, 해양,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남들이 꺼리는 힘든 일을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WP(Work Permit)가 있습니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어도 최소 만 18세에서 50세 미만의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이면 발급이 가능합니다. 다만 산업군별로 고용 가능한 국가가 제한되어 있고 가족을 데리고 올 수는 없습니다. SP나 WP로 뽑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월급이 적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싱가포르의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자 발급 전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해야 하고, 채용 후에는 필수적으로 의료보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고용할당제가 있어서 기본적으로 회사 전체 인원의 18%에서 25%까지만 채용이 가능합니다. 회사에서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싱가포르 시민권자도 그만큼 더 뽑아야 하는 구조입니다.
▲ 동남아 인근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이 잔디를 깎고 있습니다. 모두 정식 비자를 발급 받아 일하며 정부의 관리 하에 있습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에는 메이드라 부르는 가사도우미가 약 24만 명 정도 있습니다. 맞벌이가 기본인 싱가포르에서 가사노동과 자녀 돌봄을 맡기 위해 이웃 나라 인도네시아나 미얀마, 필리핀 등에서 온 여성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을 위한 비자가 별도로 있으며 정부가 그들의 월급과 복지 수준, 고용주와의 갈등 등을 관리합니다. 메이드로 인해 싱가포르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분야 종사자를 위한 비자, 사업자를 위한 비자 등 외국 인력을 데려오고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카테고리의 비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싱가포르 정부는 각 분야의 글로벌 핵심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해외 네트워크 전문가 비자(One Pass : Overseas Networks and Expertise Pass)를 새로 만든다고 발표했습니다. 내년 1월부터 발급 예정인 이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한 직군에서 최소 월급이 3만 달러(3천만 원. 연봉이 아니라 월급이 맞습니다)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업, 예술, 문화, 스포츠, 과학, 기술, 연구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가 있을 경우에는 3만 달러 이하도 발급이 가능합니다.
이 비자의 특징은 유효기간이 5년이라는 것과 중간에 회사를 그만 두거나 옮기더라도 비자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가족 동반이 가능하고 배우자도 싱가포르에서 직장을 구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가 원하는 최고의 인재를 구하기 위해 문턱을 확 낮춘 겁니다.
▲ 제가 일하는 부서의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중 싱가포르 시민권자는 셋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영주권이나 취업비자를 받아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 시민으로 살 수 있는 영주권과 시민권
싱가포르에서 비자를 받아 일하는 것을 넘어 아예 싱가포르로 이민을 와서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영주권이 필요합니다. EP나 SP 소지자나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경우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데 이민국(ICA)에서 심사 후 결정합니다. 영주권 취득은 매년 싱가포르의 인구 상황과 정부 정책에 따라 그 수와 기간이 달라지는데 인구가 400만 명대이던 2000년대 초에 비해 500만대 후반인 지금 조금 더 까다로워지고 승인까지 기간도 길어졌습니다. 매년 약 12만 명 정도 신청을 하는데 약 3만 명 정도가 영주권을 받습니다.
영주권을 받으면 취업 상태와 상관없이 계속 거주가 가능하고 수입이 있으면 우리의 국민연금과 같은 CPF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아파트도 구매 가능합니다. 저는 EP로 싱가포르 이민 생활을 시작한 후 영주권을 받아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저 같은 외국인 영주권자가 싱가포르 인구의 10% 가까이 됩니다.
아예 싱가포르 시민권을 받아서 영구 체류할 수도 있습니다. 영주권을 2년 이상 소지한 21세 이상 성인인 경우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이 됩니다. 시민권 역시 이민국에서 심사 후 결정하는데 매년 새롭게 시민권을 받는 외국인의 수가 2만 명대에 이릅니다. 매년 3만 2천 명정도 아이가 태어나는 나라에 매년 2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싱가포르 국민이 되는 겁니다.
▲ 출산율이 낮지만 외국인 이민자를 받아 들이고 싱가포르 국적을 주면서 인구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 중 시민권자는 62%,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입니다. ⓒ 싱가포르 인구센서스 자료
이렇게 다양한 경로로 외국인이 싱가포르에 들어와서 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맞습니다. 싱가포르의 인구가 늘어납니다. 그것도 한창 일할 나이의 인구를 뜻하는 생산연령인구(만 15~64세)가 늘어나게 됩니다. 비자도 영주권도 시민권도 모두 그 연령대를 위주로 발급하니까요. 2010년 싱가포르의 인구는 508만여 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569만 명으로 12% 이상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인구 증가 폭은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외국인 이민을 대하는 한국의 자세
이제 다시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한국의 저출산과 고령화가 얼마나 심각한 지는 세계와 한국의 인구 피라미드를 비교해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한국 인구가 줄어들 뿐 아니라 고령인구 구성비가 50년 후에는 46.4%로 증가해서 생산연령인구 46.1%를 넘어설 거라는 예측입니다.
▲ 세계와 한국의 인구 피라미드 비교표. 50년 후에는 고령인구가 생산연령인구를 넘어서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 통계청
출산을 선택할 엄두가 나지 않는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 저출산은 되돌리기 어려운 사회현상입니다. 고령화는 이미 예정된 미래입니다. 현 상황에서 인구 감소를 막고 생산연령인구를 적정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출산율 제고가 아니라 외국인 유치입니다. 합계출산율이 우리와 크게 바를 바 없으면서도 성공적인 인구정책을 이어오고 있는 싱가포르는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입니다.
그럼 한국은 외국인 이민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하고 있는지 알아보겠…, 아, 알아볼 것도 없습니다. 한국은 아직 외국인 이민을 통합 관리하는 부처조차 없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노동부, 이민과 외국 국적 동포는 법무부가, 재외동포는 외교부가, 결혼이민자와 이른바 다문화 가족은 여성가족부가 따로 나눠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이민을 받아들이는데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도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2020년 기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203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3.9%입니다. 38%인 싱가포르에 비하면 거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정식 취업자격을 받고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44만 명으로 그 수가 많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전문 인력은 4만 명에 불과하고 40만 명은 단순기능 인력입니다. 체류외국인을 국적별로 보면 중국이 42.9%로 가장 많고, 베트남 10.7%, 태국 8.8%, 미국 7.2%, 우즈베키스탄 3.4% 순입니다. 특정 국가에 많이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한국의 체류 외국인 수와 국적별 분류. 지난 5년간 200만 명 수준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중국인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 법무부
한국도 외국인 이민에 대한 정책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해서 불법체류자만 늘리고 정작 고급 인력 유치는 못하는 게 아니라 전문직부터 단순기능 인력까지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특정 국가나 민족에 치우치지 않게 조정도 하고, 그들이 한국에서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겪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더불어 우리가 싱가포르처럼 인구의 38%까지 외국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외국에서 온 저임금 노동자들 덕분에 농어촌이 유지가 되고, 공장에서 저렴한 상품을 생산할 수 있으며, 전문직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첨단 산업이 발전하고 그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가 더 늘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맞습니다.
▲ 밭에서 깻잎을 따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이제는 이주노동자들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우춘희
하지만 현실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학대하는가 하면, 전문직 노동자의 유입이 몇 안 남은 양질의 일자리마저 빼앗아 간다고 여기며 이주 노동자의 유입 자체를 꺼리고 있습니다. 무수한 교회 사이에 이슬람 사원 하나 들어서는 걸 필사적으로 막는 편협함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외국인을 무작정 받아들인다면 사회적 갈등만 키울 수도 있습니다.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가 줄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외국인과 어울려 살 수 없다는 폐쇄적인 우리의 태도가 나라를 망하게 만들 것입니다. 성과도 없는 출산 대책에 매달리지만 말고 이민에 대한,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김병로 서울대 교수가 19일 민화협 통일정책포럼에서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내용을 보완해 '남북연합제'로 부르자는 제안을 해 눈길을 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남북연합을 '잠정적 최종형태'의 통일방안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통일방안의 명칭으로 '남북연합제 통일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
지난 30년 가까이 역대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자리잡아 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내용을 보완해 명칭까지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다.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19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이종걸)가 주최한 '국민과 함께 만드는 통일방안' 주제의 '2022 통일정책포럼'에서 '남북통일방안,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나?' 제목의 발표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북의 고려연방제에 대응하는 통일방안으로 제시되었지만 '고려'라는 국호와 '연방제'라는 국가형태로 단순 명료하게 구성된 '고려연방제'와 달리 과정과 기능을 중심으로 △화해·협력단계 △남북연합단계 △통일국가단계의 3단계로 이루어져 있어 '통일방안'임을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남북연합을 통일방안으로 하자는 것은 "6.15공동선언에 합의한 바와 같이 남(연합제)과 북(낮은 단계 연방제)의 통일방안이 실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므로 '남북연합'이 잠정적 최종형태의 통일방안임을 명확히 제시하자"는 뜻이다.
또 통일방안과 별도로 남북연합 이후의 통일 미래에 대해서는 △남측 통일국가방안 △북측의 높은 단계 연방제 △남북연합의 장기지속 등 3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를 미래 후손들이 결정하도록 하는 이른바 '개방형 통일국가 모델'을 제시하자고 했다.
통일국가로 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잠정적이지만 '방안'으로서는 최종형태라는 점에서 '남북연합'은 '잠정적 최종형태'의 통일방안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30년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같이 통일방안의 내용을 보완하고 명칭을 바꾸는 일에 여야 정치권이 합의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통일방안에 '남북연합제'를 명시하는 것은 원칙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궁극적인 가치로서는 중요하지만 정책적으로 통일방안을 제안할 경우에는 적절치 않으며, 우리 국민들에게도 통일방안이 달라졌음을 환기시키고 통일에 대한 현실감각을 일깨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통일방안이 명확히 정립되면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일관된 통일,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통일 국가의 명칭으로는 잠정적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줄여 '대한조선'으로 병기하는 합의가 가장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날 민화협 포럼은 지난 7월 통일부가 역대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대통령 업무보고와 흐름을 같이 하는 것으로 그 내용에 관심이 쏠렸다.
박종철 대전대학교 객원교수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재조명 : 의미, 문제점, 쟁점' 주제 발표에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체계적인 통일비전과 구도 제시, 국민적 합의과정 등 장점을 갖고 있지만 통일환경의 변화, 이론적 문제, 현실성 등을 고려하여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통일과정을 단계적으로 설정했으나 당사자간 정치적 타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교류·협력의 지체와 역류 등 예상밖의 상황이 발생하고 단계별 질적 변화를 위한 명확한 설명도 결여돼 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했다.
또 "1991년 유엔동시가입으로 국제법상 남북은 각각 외교, 군사력 등을 보유한 주권국가이지만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남북연합에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정리된 특수성이 있어 이를 △국가연합과 연방국가 사이의 중간적 위치인 체재연합 △연방제보다 국가연합에 가깝지만 특수한 형태로서 영연방(commonwealth)과 비슷한 형태 △국가연합과 유사한 형태 등 다양한 해석이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도 제기했다.
박 교수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통일철학과 단계적 접근, 공동체 형성을 통한 분야별 통합 등 기본 골격은 유지하되 현실성과 실천가능성을 고려하여 부분적으로 보완·발전시킬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여야 정당간 협의를 통해 정치권의 동의를 구하고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형태의 거버넌스를 가동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철언 전 장관은 노태우정부 북방정책의 초안자이자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기초를 닦은 경험을 바탕으로 '통일을 위한 우리의 자세와 과제'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노태우정부 북방정책의 초안자이고 40여회에 달하는 대북접촉을 통해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철언 전 장관은 '통일을 위한 우리의 자세와 과제' 주제의 기조연설을 해 주목을 받았다.
"북한은 '핵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완전히 폐기'해야 하고, 한국은 '북한 체제를 인정'하여 상호 내정간섭하지 않으며, '미국과 일본이 조속히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도록 적극 지원하며, 한국을 비롯한 미국·일본 등 서방국가가 북한에 '대폭적 경제지원'을 구체적으로 약속, '새로운 활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박 전 장관은 4가지 전제, 8가지 구체적인 방안이라며 '새로운 대북정책, 통일방안'을 압축적으로 발표했다.
현 시기 중요한 통일과제로는 △대북정책 기조를 '비핵·남북공동번영'으로 단순화하고 △남북협력과 통일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과 열의를 고양하며 △남북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초당적 상설 관민고위급 자문기구의 설립과 민간통일운동 활성화할 것을 제시했다.
이날 권영세 통일부장관은 이주태 정책실장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1994년 발표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1989년 국회에서 초당적으로 만들어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발전시킨 것으로, 현재까지 역대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 되어왔다"고 하면서 "시작도 초당적이었으며, 보수·진보 정권이 공히 지지해 온 통일정책의 가장 근간이 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남북 격차 및 이질화 심화 △민족의식 약화 △젊은 세대에서 당위론에 근거한 통일론 거부감 증가 △미중 전략경쟁의 본격화를 비롯한 기존 국제질서의 균열 조짐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 악화 등 한반도 통일환경과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권 장관은 이같은 상황에서 "이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변화된 시대 정신을 다시 담아 통일한국의 미래비전과 방안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통일이 우리 일상에 가져올 편익과 기회를 재인식하게 되면 통일의지는 하나로 결집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는 '사통팔달'이라는 이름으로 각계각층 국민이 참여하는 통일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해 통일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포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포럼은 민화협 정책위원장인 김성민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와 안정식 SBS 북한전문기자, 이주성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지금까지 역대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은 1994년 8월 김영삼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발표한 '한민족공동체 형성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 약칭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1989년 9월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한 것으로 세계적인 탈냉전 추세, 1992년 2월 19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효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통일추진의 기본철학으로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구현을, 접근방법으로는 권력배분 방식이 아니라 민족통일을 통해 국가통일로 나가자고 제시했다.
통일의 과정을 화해·협력단계→남북연합단계→통일국가 완성단계의 3단계로 설정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고, 북측 고려연방제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다.
통일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고 남북의 이질화된 체제와 제도가 점차 변화하고 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남북 주민들도 상호거리감과 불신, 오해를 해소하고 신뢰를 형성해 동질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화해와 신뢰구축 과정을 하나의 단계로 분리해 남북연합 이전 과제로 설정한 3단계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까지 약 30년간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화해·협력의 1단계를 지나 통일을 위한 과도체제로 설정한 남북정부간 협의체인 '남북연합'(The Korean Commeonwealth)은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 중 1단계인 '공화국연합', 6.15공동선언의 '남측 연합제안'과 같은 내용이다.
남북연합의 성격과 내용을 대부분 설명하고 있는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는 2국2체제의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곧바로 1국 1체제로 통일을 실현하는 2단계 통일방안으로 정리하고, 남북 화해와 신뢰구축을 남북연합 단계의 과제로 삼았다.
한국 정부는 남북연합 단계를 "남북이 연합하여 단일 민족공동체 형성을 지향, 궁극적으로 단일 민족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남북간의 공존을 제도화하는 중간과정으로서 과도적 통일체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1국1체제로의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과도적 공존방안인 2국 2체제를 유지하는 남북연합에서는 통일실현을 장기 목표로 하지 않을 수 없고 남북 어느 한 쪽의 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이 방안은 통일실현이 아니라 2국가 체제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평화공존론'이거나 '1체제로의 통일' 주장에 다름아닐 수 있어 갈등의 소지를 해소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또 남북연합내 최고결정기구(남북정상회의)와 집행기구(남북각료회의), 대의기구(남북평의외), 지원기구(공동사무처)를 두기로 하고 통일헌법 제정을 비롯한 각종 현안 이행을 핵심 임무로 하지만 내정을 비롯한 외교권, 군사권 등 핵심 주권은 양측 정부에 있는 만큼 협의가구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아래 대진연)이 18일 오후 2시 개최한 4기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모임 발표대회(아래 4기 연구모임) 작품들에서 다룬 내용 중 일부이다.
대진연은 2019년부터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잘 아는 것은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며 “북한을 정확하게 알아야지 통일로 나아갈 수가 있고, 북한을 잘 알기 위해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라는 취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구모임 발표대회를 진행해왔다.
이번 4기 연구모임에는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작품과 삼지연시를 비롯해 최근 북한이 완공한 건축물 관련한 작품, 올해 4월 25일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돌 기념 열병식’ 관련한 작품, 어린이와 교육 등을 다룬 작품이 나왔다.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주민들의 관계를 세밀하게 조명한 작품들도 여럿 나왔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경욱 변호사가 4기 연구모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은 해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발표하는 대학생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민족의 단결 실현에 기여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한충목 상임대표는 심사평에서 “연구모임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서 학생들이 만든 영상을 볼 때 큰 위안과 힘을 얻었다”라면서 “점수를 매기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창조적으로 표현한 작품에 점수를 더 주었다. 2023년에도 연구모임을 한다면 더욱 역동적인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김은진 교수는 “내용, 창의성, 완성도에 있어서 대부분 작품이 훌륭했다. 많은 사람이 이 작품들을 봤을 때 자연스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품에 더 많은 점수를 줬다”라고 말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유익한 작품인데 점수를 매기기 힘들었다”라면서도 “북한에 대한 이해를 높여 통일에 이바지하는 작품들이 더욱 대중적으로 알려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라고 바람을 밝혔다.
[아침신문 솎아보기]신당역 역무원 동료 스토킹 살해범 신상 공개
한겨레 제외한 8개 신문, 사진도 공개
자신이 스토킹하던 직장 동료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전주환(31)의 신상을 경찰이 19일 공개했다. 20일 아침신문들은 경찰이 공개를 결정한 피의자 이름을 기사로 밝혔다. 대다수 신문들은 경찰이 제공한 사진을 함께 공개했다.
서울경찰청은 19일 오후 특정강력범죄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전씨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심의위는 “사전에 계획해 공개된 장소에서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범죄의 중대성 및 잔인성이 인정된다”며 “범행을 시인하고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등 증거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어 “스토킹 범죄 등 유사 범행 예방 효과, 재범 위험성 등 공공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의자의 성명, 나이, 사진을 공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심의위는 경찰 내부위원 3명, 외부위원 4명 등 7명으로 구성된다. 경찰은 신상공개 결정에 따라 언론 노출 시 전주환의 얼굴을 가리는 조치를 하지 않는다.
▲20일 한겨레 9면
▲20일 아침신문 1면
아침신문들은 모두 전주환의 이름을 경찰청이 밝힌 사유와 함께 신문에 공개했다. 취재진이 앞서 사건 이후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가해자의 이름을 경찰청의 공개 결정에 따라 보도에도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9개 신문이 모두 이름 전주환을 공개해 보도했고, 한겨레를 제외한 8개 신문이 전주환의 사진도 보도했다. 이들 신문은 경찰이 제공한 전주환의 사진을 썼고 중앙일보는 지난 15일 전씨가 서울 광진구 한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경찰에 의해 이동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사용했다.
▲20일 경향신문 8면
▲20일 동아일보 12면
▲20일 서울신문 9면
서울교통공사 직원인 전주환은 14일 오후 9시쯤 역사 내 여자 화장실에서 3년간 스토킹 해오던 여성 역무원 A(28)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초 그에게는 형법상 살인 혐의가 적용됐으나, 수사 과정에서 계획범죄 정황이 드러나면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보복살인으로 혐의가 바뀌었다. 보복살인은 유죄로 확정될 경우 형량이 최소 징역 10년이다.
▲20일 한국일보
▲20일 조선일보 10면
▲20일 한겨레 9면
경향신문은 대법원 판결문 검색시스템에서 지난해 10월21일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의 확정 판결문 218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총 218건의 판결 중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공소가 기각된 사례는 68건(31.2%)에 달했다. 10명 중 3명이 재판에서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모든 범죄 평균 공소기각률(1%)과 비교하면 매우 높다”며 “징역형은 31건(14.2%)에 그쳤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스토킹 범죄가 재발할 우려가 있을 때 취할 수 있는 긴급응급조치나 잠정조치는 현실에서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다”고 했다.
▲20일 경향신문 1면
한편 중앙일보는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를 받던 스토킹 피해자가 계속되는 가해를 경찰에 다시 신고한 건수는 지난해 1월~올해 6월 총 7772건이었지만 구속수사는 211(2.7%)건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뒤 지난 7월까지, 법원이 결정하면 재발 우려 가해자를 최대 한 달간 유치장에 구금할 수 있는 분리 시스템인 스토킹처벌법상 ‘잠정조치 4호’는 486건 신청됐지만 인용은 210건(43.2%)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1면에
영국 역사상 최장기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19일 치러졌다. 아침신문들은 1면에 여왕의 장례식 모습을 담은 사진과 국장 절차를 보도한 기사를 배치했다.
신문들은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서거 이후 57년 만의 국장”이라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등 세계 주요국 정상과 왕족 500여명 등 2000명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날 오전 10시 55분 여왕의 관이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150m 떨어진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겨졌다.
▲20일 조선일보 1면
▲20일 한국일보 1면
▲20일 중앙일보 1면
신문들은 여왕의 장례식을 보기 위해 수십만명이 몰려들면서 장례 미사가 치러진 웨스트민스터 사원부터 여왕의 관이 안치된 런던 서부 외곽 윈저성까지 30㎞ 넘는 긴 줄이 이어졌다고 했다.
▲20일 한겨레 1면
다수 신문들이 외신을 인용해 여왕의 장례식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긴 추모행렬과 대조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국장이 불편한 시민도 적지 않았다”며 “알자지라에 따르면 런던 베스널그린에 사는 에릭(26)은 여왕의 죽음이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유례없는 고유가·고물가로 그 어느 때보다 먹고살기 어려워진 와중에 장례식을 치르는 데 세금이 쓰인다는 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20일 경향신문 3면
▲20일 조선일보 5면
영국 정부는 장례식 당일인 19일을 휴일로 선포해 대다수 학교와 기업 등도 문을 닫았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지난 13일 추모행렬에 야유하던 한 시민은 경찰에 끌려갔고, 지난 12일 에든버러에서는 군주제 반대 팻말 시위를 하던 여성 2명이 체포됐다. 조선일보는 여왕이 안장되는 윈저성에 대해 설명하는 기사를 냈다. 런던 중심가 서쪽에 위치한 윈저성은 2차 대전 당시 10대였던 여왕이 피란해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2020년 코로나 확산 때도 윈저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영국은 약 200개국에 장례식 초청장을 보냈다. 러시아, 이란, 니카라과, 북한,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은 초청 받지 못했다. 한국일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초정장을 받지 못한 데 대헤 “부도덕하다”고 반발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국제인권단체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방문을 반대하고 있다고 BBC의 보도를 인용해 밝혔다.
“급식 잎채소 줄이고 냉동 과일로 대체”
채소 가격 상승으로 학교 급식 메뉴 구성 고충
16일 기준 시금치 1kg 2만1323원, 배추 1포기 9821원
지난해 견줘 각각 42%·74% 가격 급등
올해 여름 잦은 폭염과 폭우, 태풍 피해까지 이어지면서 배추 가격이 크게 오른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서 배추가 1단에 2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급식에 나물 반찬은 엄두를 못 내요. 2학기 들어서 잎채소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식자재 가격이 두 배 정도 올라 메뉴 짜기가 너무 어려워요.”(서울 성북구 중학교 영양사 김아무개씨·37)
15년 차인 영양사 김씨는 최근 급식 메뉴를 짜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책정된 급식 단가로는 최근 계속해서 오르는 식재료값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김씨는 “우리 학교 같은 경우는 올해 급식 1인 단가가 3690원 정도인데, 최근 물가 상승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 너무 힘들다. 특히 이번 태풍 영향으로 채소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최대한 가격 영향 덜 받는 콩나물 위주로 반찬을 구성하고 냉동 과일 같은 걸로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오후 2시께 찾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 풍경. 박지영 기자
기록적인 폭우와 태풍 힌남노로 시금치·배추 등 채소 가격이 급등하자 시장 상인, 자영업자, 소비자들 모두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을 찾은 손님들은 시장 골목에 진열된 배추·열무 등 채소 가격을 보고 “무슨 열무 한 단에 4천원이나 하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량리 청과물시장에서 40년 동안 채소 장사를 해 온 문갑순(80)씨는 “원래는 시장 안쪽 점포에서 장사했는데 요즘 하도 물건이 안 팔려서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장사하고 있다. 채소 가격이 하도 올라서 그런지 손님들이 잘 안 사간다”고 했다. 문씨는 이날 한 단에 4천원 하는 열무 가격을 3천원으로 깎아달라는 손님에게 “아이고 그러면 남는 게 없어. 우리도 먹고살아야지”라며 손을 저었다.
지난 13일 오후 광주 북구 각화농산물시장에 배추가 진열돼 있다. 올여름 폭염·폭우가 겹치고 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배추 도매가격이 한 달 만에 2배로 뛰었다. 연합뉴스
1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지난 16일 배추는 1포기에 평균 9821원(소매가)로 지난해 같은 기간 5646원이었던 것에 견줘 74%가 올랐다. 시금치 1㎏도 지난해 1만4943원(소매가)에서 지난 16일 2만1323원으로 42% 넘게 올랐다. 시금치는 겨울 제철 채소라 원래 여름·가을이 비싸지만 올해는 인상 폭이 더 크다.
오를 대로 오른 가격에 식자재를 사는 소비자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서울 마포구 사는 이종원(55)씨는 “이번 추석 때 장을 보는데 아기 팔뚝만 한 무 하나가 5천원, 헐겁게 묶인 시금치 한 단에 1만원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국은 끓여야 해서 무는 하나 샀지만 시금치는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김현아(55)씨도 “배추 3개들이 한 망이 3만5천원까지 오른 걸 보고 이번 김장은 포기했다”고 했다.
1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잎채소에 ‘포기상추 7000원’, ‘강원도 고랭지(알배추) 만원’ 등 가격표가 붙어 있다. 김혜윤 기자
음식점 등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고공행진 중인 채소 가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서울 성북구의 횟집 사장인 이아무개(67)씨는 “상추는 지금은 2만원대로 떨어졌지만 추석 전까지 한 상자에 5만원을 넘기기도 했다”며 “양파 한 망(20㎏)에 1만6천~1만7천원이던 것이 지금은 2만2천~2만3천원 한다. 식재료비가 부담돼 올해 직원을 1명 줄였다”고 말했다. 청량리 청과물 시장 인근의 한식 뷔페 사장 ㄱ씨는 “가격은 못 올리니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최대한 가격 영향 안 받는 식재료 위주로 메뉴를 구성하고 있다. 시금치 같은 나물 반찬은 아예 올리지도 못한다”고 했다.
1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날(15일) 기획재정부가 878억6000만 원에 달하는 대통령실의 영빈관 신축 사업비를 편성한 것을 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날 전북 전주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에서 이 대표는 "국민 여론에 반하는 예산이 통과되지 않도록 하는 건 우리의 의무"라며 "국민들은 물가로 일자리로 온갖 고통을 받는데 몇 년 걸릴지도 모르고 현 대통령이 입주할지도 불명확한 일이 뭐 급하다고 10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퍼붓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하고 또 지난하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한 논란들이 넉 달, 아니 취임 전까지 포함하면 반년 가까이 지속되는 중이다. 그 사이 김건희 여사 지인들의 수의 계약 의혹부터 관저 공사로 인한 혈세 낭비, 청와대 활용 논란까지 갖가지 의혹과 논란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대통령실은 영빈관 신축을 두고 아니나 다를까 국익과 국격을 앞세웠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실을 엄호하고 나섰다. 이날 연합뉴스TV에 출연한 정 위원장은 이 대표의 발언을 겨냥해 "졸속판단"이라며 "예산에는 다 항목이 있는데, 이것이 불요불급한 예산인지 아닌지는 예산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논리로 반박에 나섰다.
여기서 길어올려 봐야 할 사실이 떠오른다. 먼저 대통령실 영빈관 신축을 둘러싼 기재부의 태세전환이요, 두 번째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예산 관련 방향성이다.
영빈관 신축 예산 편성과 기재부의 나라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
지난해 1월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는 기획재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코로나19 방역으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이른바 손실보상법 추진 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기재부를 향해 일국의 국무총리가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기재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개혁 저항 세력으로 지칭되며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빚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기재부는 '곳간지기'를 자처하며 코로나 추경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거나 딴죽을 거는 행태를 보여왔다. 그랬던 기재부가 달라졌다. 15일 기재부는 영빈관 신축 예산을 편성에 대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외빈 접견과 행사 지원 등을 위한 주요 부속시설을 신축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내놨다.
지난 정부에서 기재부는 국무총리조차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질타를 했음에도 꿈쩍 않던 '곳간지기' 역할을 자임해왔다. 반면 현 정부 들어 논란이 예고된 영빈관 신축 예산 편성을 너무나도 쉽게 '오케이'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윤석열 정부 고위직엔 '검찰 다음이 기재부'라고 할 만큼 기재부 출신들이 대거 포진했다. 취임 이후 공석이던 보건복지부 장관에까지 기재부 출신 조규홍 현 1차관이 지명됐다. 이밖에 대통령 비서실장 및 총리, 국무조정실장, 문체부 차관 등 전문 분야와 상관 없는 고위직까지 기재부 출신들이 꿰찼다.
문재인 정부 당시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는 지적이 나왔다면, '윤석열 정부는 검찰과 기재부의 나라'라는 볼멘소리가 아깝지 않을 지경이다.
영빈관 신축을 둘러싼 논란에 이어 복지 예산 관련 '민간주도' 체제로의 개편도 논란이다. 영빈관 신축 예산 편성이 논란이 됐던 15일 오후,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향후 정부 복지 정책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현금 복지는 일을 할 수 없거나 해도 소득이 불충분한 취약계층 위주로 내실화하는 것과 전국민의 욕구가 분명한 돌봄, 요양, 교육, 보양, 건강 등 서비스 복지를 민간 주도로 고도화하는 것(이다)(...).
팍팍한 재정 형편을 감안할 때 약자부터 든든하게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10년 간 전개된 우리나라 복지 확대를 보면 득표에 유리한 포퓰리즘적 복지사업이 눈에 띄는데 이런 관행은 바로잡아야 한다."
기초 복지 서비스를 '민간 주도'로 전환하겠다는 발상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들을 위한 지원을 어떻게든 줄이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또 공공 복지는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시혜라는 기존 보수정권의 철학을 넘어, 아예 복지 체계 전체를 건드려서 복지 예산 자체를 줄이겠다는 위험한 발상은 아닌지 우려를 낳을 만하다.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또 있었다. '민간주도'라고 표현만 바꿨을 뿐인 사실상의 복지 서비스 민영화 체제 전환이라는 변화를 윤석열 정부가 숨기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날 안 비서관은 이에 대한 물음에 "모든 것을 국가, 공공이 하는 것이 좋은 복지인 것처럼 오도된 상태이지만 실제로 가장 발달한 복지국가라 이야기하는 북유럽의 경우 많은 종류의 서비스들이 완전 무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기본적으로 약자 복지 및 무상 복지가 포퓰리즘과 좌파 정책이란 과거 이명박 정권 정도의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실제 무상 복지의 장단점 및 체제 변화 이후 소외 계층은 생기지 않는지, 그러한 체계 변화가 '지속가능한'이란 허울 속에 졸속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없는지 토론과 검증을 거쳐야 할 것이다.
과연 이러한 물음에 대통령실은 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또 안 수석은 이날 "중복과 누락이 만연하고 수백, 수천 개로 쪼개져 있어 누가 무슨 복지를 받을 수 있는지조차 알기 힘든 상태"라고 작금의 복지 체계를 정의했다. '복지는 시혜'라는 낡은 관점의 반영은 아닌지, 기존 체계 통합이란 이름 하에 단순히 예산 줄이기에 나서는 것 아닌지, 부지불식간에 국민들이 '복지 민영화'란 설국열차에 올라타게 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실은 영빈관 신축 예산 편성이 알려진 날 '복지 민간주도'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소셜 미디어를 비롯해 일반 국민들이 의견을 개진하는 공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폭발하고 있다. 정부 역할의 근간 중 하나인 복지는 민영화하고, 영빈관은 호화롭게 신축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영빈관 신축 취소, 그러나
그리고 16일 저녁 8시 반,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전격적인 긴급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자산으로 국격에 걸맞는 행사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취지를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즉시 예산안을 거둬들여 국민께 심려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라면서 영빈관 신축 계획 전면 취소 소식을 알렸다.
"혈세 낭비"에 대한 국민적 비판 및 "집권하면 영빈관을 옮길 것"이라던 김건희 여사의 과거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자 부담을 느끼고 '전면 철회'라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해서 논란을 종식할 수 있을까.
이 결정 자체로 '아마추어 정권'이란 비아냥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1야당인 민주당은 "대통령실 이전부터 영빈관 신축까지 각종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며 특검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이전 및 그와 관련한 부대 비용으로 올해와 내년 이후 들어갈 예산만 윤 대통령이 애초 밝힌 비용의 10배가 넘는 5420억 원이 든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이중 청와대 공원화에만 467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복지는 '민간 주도'로 바꾸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 이전 및 청와대 공원화에 나랏돈을 펑펑 쓰는 꼴을 반길 국민은 없을 것이다. 야당의 특검 요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그녀를 조문하러 가면서 머릿속을 내내 맴돈 단어는 골든타임이었다. 골든아워(golden hour)의 일상어로 쓰이는 이 말은 죽음을 방지할 수 있는 치료시기가 있음을, 신속한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9월 14일 신당역에서 무참하게 살해된 역무원의 죽음을 마주하며 사람들이 더욱 분개하는 것은 그녀를 살릴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가 있음에도 회사도, 국가기관도 그 기회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정확히는 골든타임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골든타임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성립하는 개념이므로.
서울교통공사에서 일하던 20대의 여성청년노동자는 입사동기로부터 수년간 불법촬영과 스토킹으로 고통 받았다. 용기 내어 경찰에 고소하는 동안 회사는 무엇을 했는가. 두 번의 고소와 수사기간 동안 경찰과 검찰은 무엇을 했는가. 구속으로 가해자의 범죄를 멈출 수 있었던 법원은 왜 그를 풀어줬는가. 두 번째 고소에서 경찰은 구속영장 청구도 하지 않았고,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유치장 구금 같은 잠정조치나 긴급응급조치도 하지 않았다. 검찰도 징역 9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하고도 선고까지 남은 한 달 동안 피해자를 위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보복범죄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잠정조치를 하지 않았다.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에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2022.09.16. ⓒ뉴시스
무엇보다 법원의 성폭력에 대한 낮은 인식과 관용적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사유는 ‘증거인멸과 도주의 위험이 없음’이었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 특히 스토킹과 같은 성폭력 범죄에서 가해자들은 도주하기보다 보복범죄를 벌인다. 심지어 ‘너 죽고 나죽자’며 피해여성의 가족들까지 모조리 살해하는 일도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 구속 여부는 도주위험이 아니라 보복가능성과 피해자보호의 필요성으로 판단해야 마땅하다.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 없이, 성차별의 구조가 어떻게 여성의 목숨을 앗아가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기계적으로 영장을 기각했다. 성인지 감수성은 고사하고, 최소한 스토킹처벌법에 잠정조치나 긴급응급조치를 왜 마련했는지에 대한 취지만이라도 이해했다면 도주의 우려가 없음을 근거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300번의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 의미하는 집요한 폭력성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가 추가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방치하지 않아야 했다.
또한 반성문과 그의 공공기관 정규직 신분, 그리고 수많은 자격증들은 영장을 기각하는 근거로 작동했다. 그러나 성폭력 범죄자는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며 의사나 공무원 등 수많은 안정적이고 엘리트 직업군에도 많다. 오히려 가해자의 능력은 보복 가능성을 높이는 기제이므로 불구속 사유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이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판사의 책임을 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 특히 스토킹과 같은 성폭력 범죄에서 가해자에 대한 감시와 제재가 없으면 그것이 살인으로 이어진다. 재판부는 언제까지 여성의 죽음에 공모할 것인가. 만약 국가기관이 법에 명시된 일들을 제대로 했다면, 국가기관이 여성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작동했다면 살릴 수 있는 목숨이었다.
성인지도, 책임감도 없는 서울교통공사
서울교통공사는 말할 것도 없다. 피해 여성노동자가 최소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분리조치, 임시조치를 해야 했으나 하지 않았다. 직장 내 성폭력의 특성상 제대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으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보면서 일을 하며 심리적 고통과 불안을 겪어야 한다. 2차 피해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런데 회사는 가해자에게 제재가 아니라 직위해제조치만 하고 가해자에게 월급과 성과급도 주며 보복을 기획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피해자의 동선과 근무형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교통공사를 공범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서울교통공사는 공식적인 사과도 하지 않은 채, 국무총리의 지시라며 재발 방지대책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오피스톡에 올렸다. 성인지 없는 공공기관 운영으로 여성노동자가 사망했음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근본적 대책이 나올 수 있다. 회사는 대책이 아니라 임기응변식 ‘아이디어’만을 찾았다. 여성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보다는 ‘국무총리에게 보여줄 아이디어’가 더 시급했던 것이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말이다. 16일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의 글이 붙여 있다. 2022.09.16 ⓒ민중의소리
구조적 성차별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권은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성폭력 근절은 여성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시급한 일이다. 성차별적 관행의 개선 없이 여성의 노동권 보장은 불가능하다. 여성노동자들이 이직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 경험이 사유라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성폭력 근절을 위해 기업과 국가가 노력하지 않으면 여성노동자의 고용안정성도, 일자리의 질도 보장할 수 없다.
물론 대면서비스를 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2인 1조와 같은 대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2인 1조가 된들 성차별적으로 기관을 운영한다면 여성혐오에 기반 한 여성살해를 막을 수는 없다. 이번 사건처럼 2인 1조를 한다 해도 가해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지를 아는데 퇴근길 살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와 기업이 여성의 노동권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성인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구조적 성차별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권은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여성노동자는 젠더폭력의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되고 있으므로 인력보충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성폭력에 대한 회사의 단호한 조치와 반성폭력 교육이 없으면 공염불이다.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고위공직자들
그런데 여성노동권 보장을 고민하고 기획해야 할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번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사건은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근거는 말하지 않았지만 단순 보복살인이나 단순 스토킹사건으로 치부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보복이나 스토킹을 한 것은 여성동료를 자기결정권이 있는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성차별과 여성혐오 인식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스토킹과 보복살해를 여성혐오의 맥락과 성차별의 사회구조를 때어놓고 말할 수 없다.
왜 여가부 장관은 이런 여성혐오에 기반 한 여성살해를 부인하려하는가. 아마도 현 정부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가부 폐지를 내세워 당선된 정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현실을 인정하면 지지기반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 여성살해 사건의 책임이 현 정부에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건의 성격을 호도함으로써 현 정부의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번에도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면 여성시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와 근본적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부의 지지기반은 더 사라질 수 있다. 출범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청년들이 행정부의 부재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스토킹 방지대책 관련 관계부처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09.16. ⓒ뉴시스
고인의 용기를 기억하며 길을 내자
참담한 마음으로 잠 못 이루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국가의 도움 없이, 국가의 구조 없이 우리는 스스로 살아남지 않았냐고. 우리는 우리의 힘을,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힘이 있음을 직시하자고.
우리 스스로 살아남았듯이, 국가의 기능이 여성시민을 위해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우리의 힘으로 제도와 법과 관행을 바꿀 것이다. 수년 간 직장 내 성폭력에 맞서 싸운 고인의 용기를 기억하고 애도하며 우리는 길을 낼 것이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