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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유시민, 대통령 검찰개혁 의지 왜곡 유감…법적 대응 여부는 미정”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9/25 07:36
  • 수정일
    2026/09/25 07: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유시민 작가가 지난 6월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평산책방 부스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유시민 작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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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 개혁 발언에 대해 “국민을 속였다”고 비판한 유시민 작가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24일 나왔다. 청와대는 유 작가에게 유감을 표하면서도 “법적 대응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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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유시민 작가에 대한 법적 대응 보도 관련’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의 검찰 개혁 의지를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는 것에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근거 없는 비난성 주장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법적 대응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유 작가 발언에 유감을 표하며 공식 대응한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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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는 이날 “청와대는 유 작가가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이 이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를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청와대에서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는 여권 관계자의 말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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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검찰 개혁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게 목표다. 원래 최대치의 검찰 개혁의 목표는 이랬다. ‘검사들이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 기소 즉 소추를 담당하는 검사를 분리해서 수사하는 검사가 기소 역할을 겸하지 못하게 하자’, ‘그리고 이걸 분리해서 법무부 안에 수사 담당하는 기관, 소추 담당하는 기관을 나누자’ 이거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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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사실은 그 이상으로 진척되고 있다”며 “이제는 검사는 아예 수사를 못 한다. 소속 역시 수사를 하는 모든 기관은 행정안전부 소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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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유 작가는 지난 22일 미디어오늘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생각한 검찰 개혁은 우리가 생각한 검찰 개혁, 더불어민주당 입장, 대통령의 공약이라고 얘기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면서 “대통령이 지금까지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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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작가는 “이 대통령은 법무부 안에 ‘수사를 하는 검찰’과 ‘기소를 하는 검찰’을 나누는 것이 원래 검찰 개혁의 최대치라고 말했다. 이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며 “저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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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유 작가의 발언이 이 대통령이 마치 수사·기소 분리에 소극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 발언 취지는 수사를 담당하는 중대범죄수사청과 소추를 담당하는 공소청을 나누자는 수사·기소 분리의 원칙을 언급한 차원일 뿐, 기존 검찰청 내 수사 담당 검사와 기소 담당 검사를 따로 두자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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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유 작가는 지난 7월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서도 “1년 넘게 개혁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대통령이 수사·기소의 완전한 분리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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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당시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검찰 개혁의 핵심 가치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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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북한군 포로 송환, 우크라가 비공개 합의 어겨”

기자명

  • 이광길 기자
  • 입력 2026.09.25 01:34
  • 수정 2026.09.25 01:39
  • 댓글 0
 
지난 7월 8일 튀르키예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 계기에 만난 한-우크라이나 정상. [사진-청와대]
지난 7월 8일 튀르키예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 계기에 만난 한-우크라이나 정상. [사진-청와대]

멕시코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북한군 포로 국내 송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그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아울러 ‘비공개 합의’를 어긴 우크라이나 측에도 유감을 표명했다. 

이날 밤 X(옛 트위터) 게시글을 통해 “국정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하는 것이지, 정권과 집권자의 이익이나 인기를 위해 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포로 국내송환 문제는 외교, 안보, 한반도 정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예민한 의제”라고 짚었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어떻게 되든 누군가 죽어나가든 국익이 손상되든 개의치 않고, 성과를 생색내느라 포로 송환사실을 징치고 춤추며 온 세상에 광고했을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 정부의 비공개 노력이 이해가 안 될 뿐 아니라 심지어 뭔가 문제될 게 있나 싶을 것”이나 “누군가의 생명, 국가안보 등 국익을 생각하면 이처럼 잔인하고 무책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성토했다.

‘그들’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북한군 포로 2명 송환을 이 대통령이 숨겼다고 주장하면서 “대북송금 재판 관련 북한에 약점이라도 잡혔나”라고 강변한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국정지지율 만회에 명백히 도움 될 북한포로 국내송환 사실을 공개하자는 내부주장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공개로 생길 여러 문제를 생각할 때 비공개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타당했고 그렇게 합의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소소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과 국익 안보를 해치는 사람을 살인자나 매국노라 부른다”면서 “타당하고 정당한 비공개 조치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일축했다.

이 대통령은 또한 “비공개 합의를 어기고 공개한 우크라이나측에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나 많이 아쉽다”고 분명하게 짚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모든 것이 파괴되는 반인륜적 전쟁들이 조기에 종식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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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어머니는 추석에 혼자 글램핑" 그게 접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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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다가오면 아들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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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 연휴에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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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던 며느리도 기대에 찬 얼굴로 생글거린다. 따로 사는 큰아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큰댁에 가서 벌초도 하고 성묘도 미리 마쳤다고 했다. 그 정도면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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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에는 처가에 인사드리고, 계획한 일정이 있으면 너희끼리 편하게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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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였던 내가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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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음식을 장만하거나 온 가족이 반드시 한 집에 모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하지만, 그 시간을 위해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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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두 아들 가족이 우리 집에 모여 명절을 보냈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머니" 하며 따라다니고, 거실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복작복작한 집 안에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다. 그런 날도 분명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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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늘어날수록 며느리도 힘들어 하고 나도 피로가 쉽게 몰려들곤 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자리를 펴고 설거지를 하고, 모두 돌아간 뒤에는 흐트러진 집을 정리해야 했다. 즐거운 연휴를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즐거운 마음만큼 지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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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들도 누군가의 귀한 딸인데 왜 시댁부터 찾아야 할까. 가족을 만나 함께하는 일이 왜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노동이 되어야 할까. 그 물음에서 우리 집의 새로운 명절이 시작되었다. 내가 며느리들에게 "우리는 자주 만나니까 친정부터 편하게 다녀와라" 하고 말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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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며느리로 명절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시골집에 계신 시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들을 기다리셨다. 아들 삼형제와 며느리 셋이 모이면 집 안은 잔치 준비로 떠들썩했다. 힘들고 고됐지만 나는 그 북적거림이 좋았다. 친정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내게는 여러 식구가 함께하는 명절이 더욱 따뜻하고 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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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차례상을 물리고 나면 집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형님과 동서는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을 감춘 채 시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시어머니는 곧 딸들과 사위가 올 텐데 어디를 가려 하느냐는 눈빛으로 두 며느리를 붙잡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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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에게는 딸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고, 며느리들에게는 친정 부모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딸은 친정에 와야 하고, 다른 집의 딸인 며느리는 시댁에 남아 손님을 맞아야 했다. 그 모순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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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찾아갈 친정도 없으니 손님맞이는 제가 해도 될 것 같아요. 고모들도 며느리잖아요. 친정에 오려고 얼마나 서둘렀겠어요. 형님과 동서도 같은 마음일 테니 다녀오라고 하세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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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명절 풍경이 차츰 달라졌다. 다 함께 아침을 먹고 나면 형님과 동서는 친정으로 향할 준비를 했고, 그들이 떠난 자리는 시어머니의 두 딸과 사위가 채웠다. 친정을 찾은 딸들이 서로 자리를 바꾼 셈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먼 훗날을 마음속으로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며느리가 생기면 눈치 보기 전에 먼저 보내주어야지. 가도 되느냐고 묻기 전에 얼른 다녀오라고 말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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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보내는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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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나'로 며칠을 살아보는 것, 명절 연휴라서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 인공지능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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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며느리를 맞아 몇 년을 지내는 동안 우리 가족만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어떤 해에는 각자 원하는 곳에서 연휴를 보냈고, 어떤 해에는 모두 함께 여행을 떠났다. 명절 당일을 고집하지 않고 편한 날을 정해 만나기도 했다. 다만 장남인 큰 아들은 미리 벌초와 성묘를 우리 가족 대표로 꼭 다녀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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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날 '꼭 만나야 한다'는 의무를 내려놓으니 만남은 오히려 더 반가워졌다. 함께 여행하면 누구나 여행자가 되었고, 따로 보낼 때는 어느 집을 먼저 찾아야 할지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나도 손님맞이 하듯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다.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이번 연휴에는 무엇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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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뎌야 할 행사였던 명절이 기다려지는 휴일로 바뀐 것이다. 함께할 때는 즐겁게 만나고, 따로일 때는 미안함 없이 쉬었다. 정해진 형식보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우리를 더 편안하게 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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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 나는 글램핑을 하기로 했다. 혼자 텐트를 치고 접는 일이 이젠 버거워서, 글램핑을 택했다. 책을 보며 가을이 깊어가는 캠핑장에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고, 마음 가는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길 것이다. 문장이 떠오르면 글을 쓰고, 시가 찾아오면 붙잡아볼 생각이다. 저녁에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어두워지는 숲을 바라보고 싶다. 누구의 식사 시간도 챙기지 않고, 정해진 시간표도 없이 가을 속에 가만히 머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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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손자 로리를 돌본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기쁘고 소중하지만 그만큼 많은 책임과 마음이 필요하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아이라도 돌봄이 일 년 삼백 육십 오 일 이어진다면, 돌보는 사람에게는 숨을 고를 틈이 있어야 한다. 혼자 쉬며 마음을 채우고 돌아와야 다시 기쁘게 아이를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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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 며느리들은 친정에서 딸로 지내고, 아들들은 처가에서 사위가 될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머니도,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도 아닌 한 사람의 나로 며칠을 살아보려 한다. 지난 몇 해 동안 이렇게 지내며 알게 되었다.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이 꼭 명절 날에 모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쉬도록 마음 놓아주는 일도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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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 아득한 캠핑장에서 호젓하게 책장을 넘길 추석을 기다린다. 이번 추석, 나는 나라는 계절 속으로 깊이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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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휴가#명절#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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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없애자

정연주 시민기자

jungyonju@gmail.com

연세대학교 법대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법학석사)

독일 뮌헨대학교 법대 (법학박사)

전남대학교 법대 교수

동국대학교 법대 교수

성신여대 법대 교수 역임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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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 입력 2026.09.23 20:00

  • 수정 2026.09.24 11:11

  • 댓글 1

대통령의 헌법상 고유한 권한 무력화 위헌

대법원의 기능 마비, 재판 권리 침해 심각

대법관 제청권이 오히려 사법권 독립 훼손

헌법재판소와 비교해도 원장의 권한 막강

획일성과 경직성 심화, 국민의 기대와 딴판

다른 나라들은 대통령과 국회의 견제 속

두 헌법기관이 협력해 임명하거나 선출

헌법의 권한과 책임 민주적 정당성에 근거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6.9.23 연합뉴스

1. 대법원장의 대법관 재제청 거부는 위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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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은 22일 대법관 제재청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조 원장의 후보자 제청을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한 지 25일 만이다. 조 원장은 이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을 위한 순방 출국 직후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그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며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에 대해 응할 수 없다는 거부 입장을 명백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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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헌법 104조 2항에 따라 대법관 임명권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이며,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그 적정한 행사를 위한 절차적 권한에 불과하고 임명권 자체를 대체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는 심각한 대법관의 공백 상태를 조속히 해소하여 대법원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위로서, 3권의 한 축인 단순한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3권을 아우르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부여된 포괄적·실질적·최종적 임명권에 포함된 권한이자, 동시에 국정 전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대통령의 의무에 속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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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조 원장의 재제청 거부는 이러한 대통령의 헌법상 고유 권한을 무력화시키고 사법기능을 위기에 빠뜨리는 위헌 행위로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조 원장은 노태악 대법관 후임 후보자 추천 후 무려 7개월이나 지나 손봉기 판사를 제청함으로써 대법관 공백 사태로 인한 대법원의 기능 마비와 이에 따른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의 위험을 야기하는 등 일종의 위헌적인 직무유기로 탄핵되어야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현행 헌법과 법원조직법 아래 조 원장에게 주어진 유일한 합헌적 해결책은 기존에 추천된 나머지 후보자 가운데 한 사람을 대통령과의 사전 협의를 거쳐 재제청하는 것이다. 이는 대법원 구성을 위한 대법원장의 기본 의무다. 그 밖의 다른 선택은 위헌·위법한 행위로서 탄핵 사유가 될 뿐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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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필자는 이러한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의 헌법적 정당성 및 대법원장의 재제청 의무에 대하여 이미 지난 9월 7일 민들레에 실은 칼럼 ‘기존 추천된 대법관 후보자 중에서 한 명 재제청하라’를 통해 충분히 설명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번 사태의 발단인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자체의 근본적 문제점, 즉 왜 대법원장의 제청제도 자체가 헌법상 정당화되기 어려운지, 왜 제청과 관련하여 다양한 논란과 부작용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지, 왜 다른 선진국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지, 따라서 왜 개헌을 통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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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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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 원장 사태와 관련하여 정치권과 학계 및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로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물론 사법권의 독립이 훼손됐다는 주장을 펴왔다. 이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사법권 독립을 강화하는 순기능을 가진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일견 일리가 있는 주장처럼 보인다. 대법관을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헌법 조항은 1963년의 제3공화국 헌법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는데, 제청제도를 도입한 당초의 취지는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고 법원의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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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것도 없이 사법권 독립의 진정한 의미는 사법부 내지 법원이라는 기관의 형식적 독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관의 재판 기능상의 독립이 핵심이다. 즉 헌법 제103조에 따라 개개의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의 사법권 독립은 오히려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통해 침해된다. 대통령의 대법원장·대법관 임명권을 통해 침해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대법원장은 인사권을 비롯한 막강한 권한과 이로 인해 구축된 사법부 내의 제왕적 지위를 이용해 사법행정뿐 아니라 사법권의 본령인 재판기능에도 직간접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권한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법관 제청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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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법원장은 외국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법관 제청권을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소위 코드인사를 해왔고, 이를 통해 대법원을, 더 나아가 사법부 전체를 자신의 지배하에 일사분란한 군대 조직처럼 운영해 왔다. 이를 구체적·기능적으로 뒷받침하는 조직이 법원행정처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나 다른 모든 국가의 대법원과는 달리 사법행정 영역에서 뿐 아니라 재판작용의 영역에서도 다른 대법관과 동렬의 지위가 아닌 사실상의 상급자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즉 재판작용에 있어서 형식적·법적으로는 다른 대법관과 대등한 동료의 한 사람으로서 한 표의 권한만을 행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실상의 지배력을 가지고 막강한 영향력을 직간접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영교 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3일 조희대 대법원장 대법관 재제청 거부 관련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2026.9.23 연합뉴스

이러한 문제점은 대법원과 병렬적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의 구성 방식과 비교해 보면 금방 인식된다. 헌재의 경우도 사법행정은 헌재 소장이 담당하지만, 재판작용에 있어서는 소장은 다른 재판관과 마찬가지로 명실상부 한 표의 권한만을 가질 뿐이다. 당연히 이에 걸맞게 헌재 소장은 대법원장과는 달리 재판관의 임명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이것이 헌법원리와 사법권 독립의 원칙에 부합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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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지극히 불합리한 제청권을 통해 대법원장이 동료 대법관의 임명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더 나아가 사실상의 임명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제청권을 다소라도 제한하기 위하여 도입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제도도 사실 제대로 된 견제 역할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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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추천위원회의 근거 조항인 법원조직법 제41조의 2에 따르면 추천위원회의 구성에 대법원장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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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대법원장이 재판기능에 있어 독립한 대등한 지위를 가지는 동료 대법관을 제청함으로써 그 임명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으며, 사법권의 독립과 개별 대법관의 자율성 및 재판부 내지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실제로 사법권의 독립은 대통령 등 외부 세력에 의해서 보다는 사법부 내부의 세력, 특히 대법원장에 의해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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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왜곡된 현상이 우리 사법부로 하여금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원장 등 강자의 눈치를 보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컨대 지난 내란 사태 때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가 보여준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우리 국민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또한 지난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자신들이 선호하지 않는 유력한 대선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해 대법원은 사상 유례가 없는 방식과 절차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그밖에도 대법원 등 사법부가 보여준 정의롭지 못한 재판을 우리 국민은 수도 없이 목도해 왔다. 이런 행태야말로 사법권 독립을 파괴하는 만행이다. 조 원장 등 고위 법관들은 사법권 독립을 운운할 자격이 전혀 없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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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법원장이 가지는 대법관 제청권을 포함한 인사권 등 막강한 권력과 그에 기초한 사법부 내의 제왕적 지위가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의 경직성과 획일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후술하는 바와 같이 대법원 등 사법부 구성의 다양성을 해치며, 결과적으로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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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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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언급했듯이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을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코드인사를 해왔다. 그것이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과 경직성을 심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사법권 독립을 해친 것이다. 그 결과 사법부는 소수자·약자 보호 및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국민적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법부, 특히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과 경직성은 현 대법원의 구성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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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보수 우위와 판사 출신 일색이고 성비도 불균형이다. 즉 현재의 대법관 구성은 판사 출신이 90% 이상, 서울·영남 지역 출신이 약 60% 이상, 남성 비율이 약 77%, 특정대학 출신이 약 92%, 연령 50대의 비율은 약 92%이다. 따라서 인적 구성의 동질성과 편향성이 지나치게 크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되어 임명된 김성수 대법관도 보수성향으로 평가되는데, 이번에 논란이 된 손봉기 판사도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 만일 손 판사까지 임명한다면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과 편향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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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특정한 정치적·이념적 성향이 옳다거나 어떤 특정 집단의 출신이 대법관으로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정파 초월적이고 다양한 대법관의 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 아닌가? 고도의 공직윤리와 더불어 관용과 다양성은 다양한 이념과 성향을 가진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법관 등 모든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기본 덕목 아닌가? 도대체 군대 조직보다 더 획일적이고 보수적인 현재의 편향된 대법관 구성하에서 다양성과 관용, 그리고 사회적 약자 배려와 사회공동체를 위한 정의 구현이 가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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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코드인사와 관련하여 대통령 임명권의 경우에도 동일한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즉 임명권을 통해 대통령 자신의 입맛에 맞는 코드인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첫째, 대통령의 임명에 관한 재량권은 민주적 정당성에 근거한 대통령의 권한에서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다. 국민이 직접 그러한 권한과 재량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대법원장에게 국민은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둘째 이에 대한 견제와 통제는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가 담당한다. 즉 국민의 통제 의사가 국회의 동의권을 통해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헌법의 설계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와 관련된 모든 책임은 대통령 스스로가 지고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총체적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가진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편 국회의 임명 동의가 단순 과반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대야소의 국회 구도의 경우 과연 대통령에 대한 실효적인 통제가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국회의 정파 초월적인 동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동의요건을 증강된 정족수로 개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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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대법원장의 경우에는 자신의 제청행위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따라서 대법원장의 제청행위에는 대통령의 임명권과 국회의 동의권에 의한 실질적 통제가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추천위원회의 추천에 의해 제청권이 제한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앞서도 지적했듯이 추천위 구성에 실질적으로 대법원장의 의중이 절대적으로 반영되어 추천위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추천위의 통제권은 유명무실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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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독일의 경우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독일의 사법부는 5개의 연방대법원 위에 연방헌법재판소가 위치하는 피라밋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사법부의 수장은 헌법재판소장이다)는 총 16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며, 연방의회(Bundestag)와 연방참사원(Bundesrat)이 각각 8명씩 선출한 뒤 연방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그런데 재판관의 선출은 각 기관의 단순 과반수가 아닌 증강된 절대 정족수인 각각 재적 2/3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정파 초월적이고 다양성을 갖춘 재판부의 구성을 위한 것이다. 재판부 내지 사법부 구성의 다양성과 객관성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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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법관 임명방식과 관련한 외국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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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경우에는 대체로 대통령과 의회의 협력과 견제를 거쳐, 또는 의회가 주도적으로 대법관을 임명 또는 선출한다. 대법관(최고재판관) 임명 과정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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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는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경우 처음부터 대통령이 대법관을 지명하고 상원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으로 무장한 두 개의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의회가 주도해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고, 국민을 대표하지도 않으며, 국민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대법원장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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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원리는 의원내각제 국가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대체로 – 간혹 드물게 그 과정에 법관선출위원회나 법관추천위원회 등의 선출이나 추천은 있을 수 있으나 -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의회에서 대법관 내지 최고재판관이 최종 선출되고,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여 상징적 국가원수에 불과한 대통령이나 국왕이 형식적 임명권을 행사한다. 어떤 경우든 대법원장의 제청은 없다. 제대로 된 외국의 민주국가라면 대법원장이 동료 대법관의 임명에 제청권을 통해 직접 관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김성수 신임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은 조희대 대법원장. 2026.9.21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5. 결론- 개헌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폐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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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법권의 독립과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및 민주적 정당성 원리를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하루속히 폐지해야 한다.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되든 제청권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헌법정신과 부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한 민주국가에서 헌법상의 권한과 책임의 크기와 작동은 민주적 정당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 어떤 국가도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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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명은 헌법상 선거에 의해 당선되고 구성되는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회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행정부 수반의 지위를 넘어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제를 채택한 헌법의 기본원리이다. 그러한 지위와 권한에 근거해 행정부에 속하지 아니한 대법원장·대법관의 임명권과 헌법재판소장의 임명권이 인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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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도 대법원장의 제청 없이 처음부터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임명직 대법원장이 대법관의 제청권을 통해 대법관 임명에 관여하는 자체가 민주주의에 입각한 헌법원리에 부합될 수 없다. 그리고 대통령의 임명권에 대한 통제는 전적으로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국회로 일원화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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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시민기자 jungyonj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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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로 시작해 다시 협력사로… 클린룸 물류노동자의 '하루 4만보'

[클린룸을 오가는 사람들] 물류작업자 서안숙 이야기 ① 하루에 4만 보를 걸으며 웨이퍼를 나르는 일

임다윤 반올림 활동가 | 기사입력 2026.09.24. 07:49:02

21년도부터 25년도까지 하루에 거의 4만 보에 가까운 걸음으로 15라인하고 16라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웨이퍼가 담겨 있는 통, 그 풉을 집어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하면서 공정 간 이동을 하는 일을 했어요. 지금은 풉을 포장을 해서 반입구에 갖다주는 일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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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동간 이동할 때는 4만 보를 걸어야 하는 거기에 따른 근골격계 질환이 생긴 거고, 지금은 이동 거리는 짧은데 풉을 그 배 이상으로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니까 여자들도 하루에 거의 한 450개, 500개 가까이 들어서 뺐다가 또 포장해서 또 들어서 옮겼다가 막 이런 일을 하니까 들었다 놨다 하는 이 개수가 배가 되는 거죠. 8.5kg(킬로그램). 8kg에서 8.5kg 정도 (무게의 풉을).

서안숙 님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명일지회 지회장으로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명일은 공장 안과 밖의 물류, 운송을 담당하는 삼성의 협력업체이다. 노조의 지회장이라니 가졌던 선입견이 있었지만 직접 만나본 서안숙 님은 노조의 강성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로 필요한 말을 잘 정돈해서 하시는 서안숙 님은 노조에 한평생 관심을 가진 일이 없었는데 어쩌다 노조 위원장이 된 사람이다. 여전히 노조 일이 어렵다는 안숙 님은 반올림 병점동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경찰서로 집회 신고를 하러 가는 이종란 활동가를 즉석에서 따라나섰다. 집회 신고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말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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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관 TV를 만드는 일

고등학교 3학년 5월 달에 제가 삼성전자 사업장으로 이제 취업을 나왔어요. 그때는 매탄동 삼성전자 그 부근에 기숙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삼성 그러니까 주로 하는 업무는 저희는 TV 만드는 파트. 그래서 영상사업부라고 했거든요. 거기서 3년 재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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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가 삼성하고 이렇게 결연을 맺어가지고 주로 생산직 사원들을 많이 이렇게 삼성으로 보내는 학교로 그 주변 일대의 지역사회에서는 그렇게 알려져 가지고 삼성에 취직할 목적으로 고등학교를 간 거죠.

어릴 때 꿈이요? 꿈은 뭐 그냥 간호사 일 뭐 이런 거 하고 싶었는데 일단은 집안에 아버지도 많이 몸이 편찮으시고 엄마가 혼자서 가장 일을 하시니까 가장이니까. 저 장녀고 오빠는 있었지만 오빠는 실질적인 큰 도움은 안 됐고 하니까 그래서 그냥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

안숙은 전라남도 무안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다가 삼성전자로 곧바로 취업했다. 꿈이랄 것도 구체적으로 꾼 적 없을 만큼 일찌감치 가정 형편을 살핀 결과였다. 삼성전자에서 안숙은 지금은 너무나 옛것이 되어버린, 그러나 당시에는 첨단기술이었던 브라운관 TV를 만들었다.

▲라인을 연결하는 브릿지를 바라보는 서안숙 님의 뒷모습. ⓒ박정원

예전에는 그 기판이 있거든요. 회로 기판이 있으면 거기에 많은 자재들이 막 들어가요. 부품 같은 거. 기판이 이렇게 하나 딱 올려져 있으면은 거기에 TV가 만들어지기 위한 모든 부품들을 기판에다 다 손으로 이렇게 꽂으면서 일을 하거든요. 거기서부터 시작해가지고 그다음에 자재를 꽂으면 그 납땜기라는 게 있거든요. 밑에 이제 납땜하고 그다음에 선 같은 거 다 꽂고, 그리고 브라운관 같은 거. 브라운관이라고 해야 되나. 지금은 평면이지만 예전에 이렇게 좀 큰 거 있잖아요. 그거 뭐 다른 데서 납품 돼 오면 조립을 하면서 본체를 만드는 거죠. 본체를 만들면서 화면 같은 거 색깔 정확하게 선명하게 나올 수 있게 조정하고 하는 일체의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에까지 작업을 하는 거죠.

서머타임과 컨베이어 벨트, '빵빠레'

그때는 서머타임이라는 그런 제도가 있어가지고 여름에는 시간을 1시간을 빨리 해놓고 거의 새벽에, 아침 일찍 나갔다가 거의 뭐 별 보고 퇴근하는, 새마을 운동 같은. 그렇게 일이 업무량이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그 업무가 너무 힘들고 그래가지고 그래서 오래 못 다녔던 것 같아. 그리고 이제 이쪽(수원)에는 뭐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 거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그다음에 이제 교회 다니고 종교 활동 그냥 이렇게 하면서 세월을 보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생소하지만, 한국에서도 서머타임이 시행된 시기가 있었다. 1949~1961년까지 실시된 서머타임은 표준시를 135도로 옮기면서 폐지됐다가 26년 만인 1987년 5월 10일 부활한 바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여러 불편을 초래하며 1989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서머타임은 시간대를 통째로 옮기는 것이기에 1시간 일찍 출근하면 1시간 일찍 퇴근해야 맞지만, 당시 안숙이 일하던 삼성 사업장에서는 일이 많다는 이유로 퇴근 시간은 당겨지지 않았다.

그때는 국내 출하도 있었고 해외 수출하는 라인 팀도 있었고 그렇게 나눠져 가지고 거의 하루에 천 대 정도 생산하고 막 그랬던 것 같아요. 하루에 천 대 생산하면은 그 '빵빠레' 막 터졌어요. “생산 목표 천 대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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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천 대를 하려면 어느 공정에서 지체가 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물 흐르듯이 이렇게 콘베아(컨베이어)도 있었거든요. 콘베아가 있으면 자기 앞에 있는 거를 빨리빨리 해서 넘기고 그다음 뒷작업 이렇게 할 수 있게 그냥 물 흐르듯이 잘 이렇게 가야 되는데 중간에서 뭐가 잘못됐다 그러면은 전체 인원이 이제 스톱이 되는 거예요.

서머타임과 컨베이어 벨트, 팡파르는 얼핏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모두 공장의 생산량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고안되고 이용된 장치였다. 고정된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손대서 노동 시간을 늘리고,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해 노동자들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바삐 움직이게 해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목표 생산량을 달성했을 때는 팡파르를 터뜨려 감정을 고양하며 성취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노동자들의 감정과 일하는 속도, 시간 감각까지 통제하는 기업의 모습이 오늘날과 사뭇 다르지만 동시에 비슷하게 겹치기도 한다.

저는 지원 다녔어요. 그러니까 이쪽에 인력이 부족하거나 생산이 차질이 있겠다 그러면 이쪽에 가서 도와주고 또 뭐 다른 데 가서 도와주고 다 했어요. 제가 학교 때부터 신장이 좀 안 좋아 가지고 몸이 막 손발이 붓고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고 막 그런 증상이 좀 있었는데 여기 와서 일을 하면서 몸이 고되니까 그게 더 심한 거예요. 그래가지고 병가를 뺐더니 내 일자리가 이제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여기저기 지원 업무를 다니게 됐던 거지. 일도 힘들었고 그런 것 때문에 회사를 그냥 딱 3년만 다니고 이제 퇴사를 하게 된 거죠.

건설회사, 부동산, 마트를 거쳐 다시 삼성으로

퇴사하고는 컴퓨터를 배워서 건설회사 일을 조금 하다가 22살 때 결혼을 해버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나의 도피처를 찾아간 것이다. 어쩌면 모르지 않았겠지만, 결혼하고서도 일은 멈출 수 없었다.

결혼하고서 남편이 이제 삼성전자 다녔는데 그때 한참 IMF 전, 아무튼 그 정도 시기였어요. 그때 벤처가 또 열풍이었어요. 정부에서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을 하면 지원해 주고 하는 그런 벤처 열풍이 있어가지고 남편이 상사하고 같이 회사를 차려서 운영을 했었는데 그때는 방송국에 납품하는 모니터였거든요. 거기가 미디어 사업부였었는데 KBS 방송국에도 납품하고, SBS나 몇 군데, 그때 SBS가 새로 생겼나. 아무튼 그래가지고 방송국에 납품하는 미디어 모니터 그거 할 때 저도 거기 잠깐 근무하기도 했었어요. 거기도 한 3년 다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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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제가 이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가지고 그래서 부동산을 조금 했죠. 아파트에 애들 키우면서 살다 보니까 동네 옆동의 언니를 알게 돼서 그 언니가 본인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는데 ‘공부 한번 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 해서 그래서 그냥 권유해서. 8년 정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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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동산 일이랑 마트 일을 또 병행을 했었거든요. 그러면서 그 마트 사장님을 알게 돼 가지고 그 사장님 거 그냥 조그마한 슈퍼를 인수를 받았어요. 그래서 여동생하고 그 마트 3년 하면서 이제 권리금 작업해가지고 다른 편의점으로 우리 슈퍼를 넘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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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 문을 열어야 되고, 그리고 들어오는 제품도 다양하고 그거 관리해야 되고, 여동생하고 둘이 했으니까. 저는 이때는 애들이 다 컸으니까 애들이 알아서 생활하고 했고 거의 가게에서 생활을 했어요, 저 혼자. 아침에 일찍 문 열고 밤 한 12시까지 장사하고 슈퍼에 딸린 또 조그만 방이 하나 있었거든요. 주로 거기서 이제 생활하면서 가끔 여동생 오면 잠깐 집에 가서 반찬을 해놓고 온다든가 뭐 그런 식으로 그렇게 해서 한 3년을 거기서 생활을 했어요.

명일에서 일한 이력만 알고 갔으나 듣게 된 것은 쉴 새 없이 이어진 노동의 향연이었다. 부동산과 마트 일을 동시에 하고, 잠시 여동생이 마트를 봐줄 때는 집으로 가 가사 노동을 했다. 한 번에 하나씩, 이 일에서 저 일로 차례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여러 노동이 중첩되어 있었다. 자기 생활이랄 것 없이 일하다 돌고 돌아 가장 처음 일했던 삼성의 사업장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 것은 고용보험 센터의 소개 때문이었다.

편의점 접고 나서 제가 실업급여를 받았거든요. 실업급여 받으면서 고용보험 센터에 나는 뭐 이 정도 급여에 이 정도는 내가 수입이 돼야지 생활을 할 수 있으니 이 정도 되는 회사가 있으면 나를 소개해 달라 그래서 그거 접수를 해놨는데 명일을 저한테 소개를 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명일 이력서 내고 그렇게 해서 취업하게 된 거예요. 그때가 21년도. 제가 11월 달에 입사했거든요.

명일에 들어와 클린룸 안과 밖을 오가며 한없이 걷고, 무거운 풉을 들고 나르는, 끝이 잘 가늠이 되지 않는 쳇바퀴 같은 노동을 시작했다. 안숙의 인생에서 노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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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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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북한군 포로 2명, 최근 한국에 보냈다”…외교부 “확인해드리기 어렵다”

수정 2026.09.24 09:57

젤렌스키 “왜 북한 사람들이 우크라 전쟁에 목숨 바쳐야 하나”

외교부 “당사자 신변안전 관련 민감한 사안…확인해드리기 어렵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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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을 최근 한국에 보냈다고 전격 공개했다. 외교부는 “당사자 신변안전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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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연설에서 “최근 북한군 전쟁 포로 2명을 대한민국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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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들은 생포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 중 한 명은 포로로 잡히게 될 것을 알아차렸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고 운명이 자신을 죽게 놔두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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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것이 북한에서 사람들을 키워내는 방식”이라며 “그들의 자유와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북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바쳐야 하나, 그런 세력에게 전쟁하는 법을 배울 시간을 더 줘야 하나”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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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은 “김정은은 그들을 마치 화폐처럼 이용하고 그 대가로 무언가를 얻고 있다”며 “아시아 전역의 국가들은 이미 북한의 향상된 탄도미사일과 크게 발전한 드론 역량을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한 과학의 나라 ACE

젤렌스키 대통령은 “평양에서 전사자들을 기리는 장면을 방송하는 것 역시 미친 짓”이라며 “북한 지도자는 러시아군의 취약한 부분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병력을 러시아에 보냈고 북한군 역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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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1월 북한군 포로 2명을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생포했다. 이들은 한국으로의 귀순 의사를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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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7월8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북한군 포로 문제와 관련 “당사자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하여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합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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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포로들의 ‘조용한 한국행’을 추진해 온 한국 정부는 북한군 포로가 국내로 왔다는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와 북한을 비판하는 유엔 연설에서 이를 공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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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당사자 및 가족의 신변안전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만큼, 개별 인원의 신병 처리 여부나 시기·경로, 양국 간 구체적인 협의 내용 등에 대해서는 확인해 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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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 뉴욕서 ‘투자·핵잠·전작권’ 등 논의

이 대통령, 유엔총회서 ‘한반도 평화공존 청사진’ 설명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입력 2026.09.23 11:37
  • 수정 2026.09.23 15:27
  • 댓글 1
22일 저녁 유엔총회 참석 계기 뉴욕에서 만난 한.미 정상. [사진-청와대]
22일 저녁 유엔총회 참석 계기 뉴욕에서 만난 한.미 정상.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저녁(현지시간) ‘제81차 유엔총회 고위급회기’ 계기에 뉴욕에서 만나 한·미 간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저녁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저녁 7시20분부터 약 30분 간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밝혔다. 

양 정상은 대미 전략투자사업 논의가 큰 진전을 이룬 것을 환영했다. 지난 11월 발표한 ‘한·미 정상 공동설명자료’를 토대로 핵잠 연료, 농축·재처리, 조선협력, 전작권 전환 등 분야에서 한·미 간의 협력을 한층 더 심화시키고자 하는 공동의 의지를 확인하고 후속협의를 해나가기로 했다. 

위성락 실장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한·미 정상은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로서 대화의 물꼬를 트고 한반도에서 지속가능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내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이 한·중관계를 포함하여 역내 정세에 중요하다”며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투자 협의의 전망이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구체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았었는데, (...) 그 이후에 투자 협의가 진전이 잘 되었기 때문에 급히 다시 추진을 했고 성사가 되었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이날 대화의 흐름에 대해서는 가벼운 인사말에 이어 “‘미중 정상회담이 다가온다’며 중국 얘기 조금 있었고, 그 다음에는 투자에 대한 얘기가 있었고, 그 다음에 (핵잠과 원자력 협정 등) 현안들이 쭉 있었는데 꽤 시간을 많이 들여서 대화한 부분은 전작권이었다”고 알렸다.

이 관계자는 “우리 쪽에서 (전작권 관련) 많이 설명을 드렸고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그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해를 하시게 되었다”며 “우리의 요지는 조건도 충족해 가면서 가급적 빨리 이거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걸 위하여 고위급 협의를 진행하면 좋겠다(였다)”고 밝혔다. 

그는 “맨 마지막에도 일어서면서 G20 회의를 12월에 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게 마이애미거든요. 거기서도 골프를 하면 좋겠다 그런 말들이 있었다”고 알렸다. “호르무즈에 대한 논의는 사실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북미대화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었다.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에 좀 기여를 해 달라는 기대를 표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면서 “지금 어떠한 구체성이 있는 연락이 오고 가는 것 같은 얘기는 없었다”고 밝혔다.

22일 '제81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하는 이 대통령. [사진 갈무리-KTV]
22일 '제81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하는 이 대통령. [사진 갈무리-KTV]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대한민국이 AI,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등 인류 공동의 도전에 대한 해법을 찾는데 건설적으로 기여해 나가겠다고 밝히는 한편, 유엔의 개혁과 ‘건설적 기여국들의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특히 35년 전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이 평화공존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계기였음을 상기하고 지난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한반도 평화공존 3대 청사진’을 국제사회와 공유했다. 

이 대통령은 “무엇보다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한반도의 오래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고 “한반도 평화 체제는 오랜 기간 남북은 물론 미국, 중국 등 관련국들도 그 필요성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논의해 온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행히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어렵게 만들어지고 있다”며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멈춰있던 북미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고,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 체제 전환을 위한 당사자 간 대화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과정에서 우선 북측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고, 중기적으로 축소를 거쳐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반도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핵 없는 한반도하고 비핵화는 같은 의미로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면서 “그때그때 쓰는 것이지, 뜻은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이번에 제안한 것은 한반도 평화 체제를 위한 논의 과정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당사자들 간에 논의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취지”라고 짚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따로 만나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우리 정부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강조했다. 앤서니 알바니즈 호주 총리와는 에너지 공급망, 방산협력 등 공동 관심사안과 국제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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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부족주의’ 기획한 한국일보 “진보 유튜브, 검찰개혁 올인”

[아침신문 솎아보기] 한국일보, 유튜브 6곳 채팅 1409만건 분석

“채팅창 상위 1%가 빅스피커, 특정 의제 반복 이슈화하는 경향”

이정현 ‘공소취소’ 발언에 조선일보 “사법사 오점 남기지 말길”

한미 정상회담에 한겨레 “한미 관계 다소 안정 궤도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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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박재령 기자

  • 입력 2026.09.24 10:48

▲ 2026년 8월31일 오전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발언하는 김어준 진행자. 사진= 방송화면 갈무리

한국일보가 ‘유튜브 부족주의’ 기획을 냈다. 정치 유튜브 채널 6곳에서 8개월간 취합된 실시간 채팅 데이터 약 1409만 건을 분석한 결과, 현실 정치의 공론장은 이미 유튜브에 장악된 상태였고, 민생 이슈는 뒤로 밀린 채 서로의 권력 투쟁에만 몰두한 ‘부족주의’ 세계가 됐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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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1면 <정치 유튜브 채팅창 뒤덮은 1%, 李 지지율 흔들었다> 기사와 <진보 빅스피커가 ‘李 공세’ 선봉에… 검찰개혁·부동산 더 때렸다> 기사를 통해 “최욱의 매불쇼·김어준의 뉴스공장·이동형TV(이상 진보 성향)와 고성국TV·신의한수·배승희 변호사(이상 보수 성향) 등 정치 유튜브에선 참여자의 1.63%에 불과한 5502명이 전체 채팅 양의 절반을 차지했다”고 했다.

▲ 2026년 9월24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한국일보는 “한 사람이 많게는 5만5068건(하루 227건·보수 1위), 2만3228건(하루 96건·진보 1위)의 채팅창에 글을 썼다”며 “채팅창 상위 1% 사용자가 ‘빅스피커’가 돼 특정 의제를 반복적으로 언급해 이슈화하는 경향성이 확인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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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채팅창에선 물가·부동산·일자리·경제 등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는 외면당했다. 경제(전체 의제 중 4%) 물가·일자리(1% 미만) 등 민생 이슈는 최하위권이었다”며 “민주주의·개혁·쇄신을 명분으로 진보 채널은 검찰개혁을 둘러싼 노선 투쟁(18%·1위)에 몰두했고, 보수 채널은 부정선거 음모론(14%·3위)에 열을 올렸다. 당권 투쟁 및 인물 찬반(16%·2위) 등 내부 권력 투쟁에 몰두한 것을 제외하면 진보·보수 진영의 유튜브 공론장에선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사실상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부족주의’ 세계였다”고 했다.

▲ 2026년 9월24일자 한국일보 2면 기사.

검찰개혁 후속 법안에 대해 당청 이견이 불거진 지난 3월부터 ‘이재명 탄핵하라’는 요구가 줄을 이었다는 분석이다. 한국일보는 “3월10일 매불쇼와 뉴스공장을 중심으로 이 대통령을 ‘배신자’(1698건)로 비난하는 글이 도배됐고, 집권 1년이 채 안 되는 시점임에도 ‘탄핵하라’(306건)는 요구도 줄을 이었다. 심지어 ‘처단하자’는 극단적 표현도 등장했다. 같은 날 뉴스공장에 출연한 장인수 전 MBC 기자가 검찰과의 ‘공소취소 거래설’까지 언급한 이후 9일 동안 채팅창이 들썩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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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이슈에서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자 정책에 대한 비판도 오히려 지지층에서 거세졌다. 한국일보는 “지선에서 승리를 기대했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하자, 진보 유튜브 여론은 정부 책임론으로 돌변했다”며 “문재인 정부 당시 종부세 강화를 언급하며 ‘정권 재창출 실패의 길’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주담대 대출 규제도 찬성(41%)이 반대(34%)를 앞섰지만, 지선을 기점으로 반대(83%)가 찬성(14%)을 압도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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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검찰총장 대행의 ‘공소취소’ 발언, 매우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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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신임 검찰총장 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지난 23일 이재명 대통령의 형사사건 공소취소 가능성에 대해 “진상조사가 진행 중에 있어서 그 결과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것을 놓고 우려된다는 아침신문 사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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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24일자 1면 <취임 첫날 ‘李 공소취소’ 운 뗀 이정현> 기사를 통해 이정현 대행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조선일보는 <검찰총장 대행의 ‘공소 취소’ 관련 발언, 매우 부적절했다> 사설에서 이정현 대행이 차기 공소청장의 유력 후보라는 점을 짚었다.

▲ 2026년 9월24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이 총장 대행은 문재인 정부 때 검사장, 이재명 정부 때 고검장으로 승진했다”며 “다음 달 2일 출범하는 공소청의 초대 청장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를 염두에 둔 인사가 아니라면 검찰청 폐지를 열흘 앞두고 새 검찰총장 대행을 뽑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 신문은 “공소청장이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 모르겠지만 영달을 위해 한국 사법사에 오점을 남기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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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도 이 대행이 공소취소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을 했다고 해석했다. <검찰총장 대행, 대통령 공소취소 시도 무리수 우려된다> 사설에서 한국일보는 “이 대통령이 ‘임기가 끝난 뒤 당당히 재판을 받겠다’고 공언하지 않는 이상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한 행위와 정책은 모두 공소 취소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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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임기 중의 사법 리스크 해소 시도는 공정성 논란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공적 시스템을 사유화한다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며 “이 차장검사 임명도 그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사로 비칠 우려가 크다. 이 차장 검사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 역시 무리한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 시도가 아니라 새로 출범할 공소청의 안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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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급한 불 끈 한-미 관계, ‘한반도 평화’ 결실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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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지난 22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방위비 증액을 포함해 한반도 방위에 더 많은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와 함께 그 연장선에서 핵잠 논의가 가속화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전작권 전환,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업 협력에 대해 주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 2026년 9월24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 2026년 9월24일자 한겨레 사설.

한국일보는 ‘뚜렷한 결론은 없었다’고 봤다. 이 신문은 <대미투자로 탄력 한미 안보협력, 정상회담 후속조치 만전을> 사설에서 “핵잠 도입과 농축·재처리, 조선 협력 모두 구체적 내용은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대미투자에 발목 잡혀 정상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다행이지만, 앞서 한미 정상 간 합의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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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좀 더 긍정적인 입장이다. <급한 불 끈 한-미 관계, ‘한반도 평화’ 결실 내야> 사설에서 한겨레는 “우리의 ‘파병 불가’ 결정에 대해 미국 쪽에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쿠팡 로비, 투자 지연, 파병 논란 등으로 휘청거리던 한-미 관계가 다소 안정 궤도로 진입했다고 조심스레 결론 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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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이 대통령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무기 추가 생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중단’에 합의하면, 미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완화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놓고 “이 대통령에 제시한 ‘평화 체제’ 구상이 힘을 받으려면, 북·미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소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안보 이익이 일방적으로 희생되지 않도록 이 대통령의 북핵 관련 제안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도 있다. 모두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누가 대신해줄 수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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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지뢰 참사' 앞에서 진짜 물어야 할 것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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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국방

  • 입력 2026.09.23 07:20

  • 수정 2026.09.23 07:24

  • 댓글 0

지뢰 참사 이용 호전적 공세 시작한 보수우파

사고 원인도 불분명한데 북한 소행이라 단정

윤석열 정권의 강경책이 낳은 남북 위기 불씨

2015년 목함지뢰 사건과 남북 포격전 재조명

정권 위기 돌파 위해 전쟁 조장한 박근혜 정권

객관적 진상 규명과 대인지뢰금지협약 필요성

비무장지대의 중무장화 종식하고 평화의 길로

해병대 제2사단 장병들이 12일 인천 강화군 서도면 주문도 뒷장술 해수욕장에서 유실지뢰를 탐색하고 있다. 2026.8.12. 연합뉴스

갑자기 팔다리나 발목을 잃고, 앞으로 평생 그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하는 이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 끔찍한 비극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기분 역시 참담하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이런 비극을 접할 때마다, 이 땅에서 군사적 대치와 적대, 그리고 그로 인한 무력 충돌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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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와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해 왔다. 며칠 전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 작전 중이던 우리 군 병사 3명이 지뢰로 추정되는 폭발 사고로 발목 절단 등의 부상을 당한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 참사가 알려진 직후, 냉전적 보수언론들과 국민의힘 등이 보이고 있는 반응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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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젊은 병사들이 겪은 참혹한 고통에 대한 진정한 위로나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위험천만한 호전적 주장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며 정치적 공세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이들은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한 엄밀한 조사가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북한에서 온 지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고 거의 단정적으로 추정하고 판단한다.

(서울 = 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서부전선을 관할하는 육군 25사단 최전방 부대에서 21일 오전 비무장지대(DMZ) 수색 작전 중 지뢰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를 향해 다음과 같이 압박하고 있다. '대북 전단 억제, 확성기 방송 중단, 군사 훈련 축소 등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책이 문제였고, 그래서 군의 경계·감시 태세에 구멍이 뚫리고 안보의식이 느슨해지면서 실탄도 없는 빈총으로 경계 근무를 서더니 이제 이런 사고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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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구걸하며 북한의 오판과 도발만 가능하게 만든 대북 유화책 때문에 이런 사고가 일어난 상황에서 북한에 대화를 제안하거나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확성기 방송 재개 등을 검토하고 철통같은 안보 태세를 강화하며 군사훈련을 확대하고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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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폭발을 일으킨 문제의 지뢰가 우리 군이 과거에 매설하거나 유실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군의 것인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만약 북한군의 지뢰라 할지라도, 고의로 매설한 것인지, 과거에 묻혀 있던 지뢰가 유실되어 떠내려온 것인지 명확한 규명과 확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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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사건 직후 "DMZ 수색로 개척을 하는 상황이었다"라는 한국군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병사들이 평소에 안전이 확보된 상태로 자주 다니던 길이 아니라 수풀을 헤치며 새로운 길을 내는 과정에서 미처 탐지하지 못했던 낡은 지뢰를 밟아 사고가 터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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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한이 2024년 이후 DMZ 일대에서 지뢰를 매설하고, 철책을 설치하며, 대전차 방벽을 구축하는 등의 이른바 ‘국경선화’ 작업을 진행해 온 정황을 볼 때, 북한군이 매설했거나 작업 과정에서 유실된 지뢰일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인과관계가 있다. 이러한 북한의 강경한 자세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책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의 페이스북

오히려 그 기원은 정반대로, 전임 윤석열 정권이 내내 고수했던 극단적인 대북 강경책과 무모한 적대 행위들에 있다. 윤석열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한반도의 위기를 의도적으로 고조시켰다.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사실상 방치하고 조장했으며, 대북 확성기 방송을 강행하여 북한을 자극했다. 심지어 북한의 영공에 드론을 무단으로 침투시켜 군사적 충돌을 촉발하려는 위험천만한 시도까지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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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국지전이나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비상사태와 내란의 명분을 만들어내려던 사악한 의도였다. 그 폭주와 무책임한 도발의 결과로 겹겹이 쌓여버린 남북 간의 극도의 긴장과 불신은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도 깊은 상흔으로 남아 전혀 풀리지 않고 있다. 남북 간의 대화 채널이 모두 끊기고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여전한 이 암울한 사태의 책임자는 다름 아닌 윤석열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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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번 지뢰 사고를 빌미로 삼아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던 윤석열 때로 돌아가자'는 보수우파들의 주장은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는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불과하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강경 대응의 논리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 8월 파주 DMZ에서 발생했던 '목함지뢰 폭발 사고'를 돌아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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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수색작전을 하던 한국군 병사 2명이 지뢰 폭발로 중상을 입었다. 사건 초기, 그 지뢰가 정확히 어디서 흘러온 것인지, 누구의 책임으로 폭발한 것인지는 전혀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르스 관리 실패 등으로 당시 지지율 하락과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던 박근혜 정권은 치밀한 객관적 조사나 사태의 평화적 관리는 뒤로한 채, 즉각적으로 '북한의 고의적 도발'을 기정사실화하며 무자비한 강경 대응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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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은 먼저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전격적으로 재개했다. 과거 남북합의를 정면으로 어긴 이런 행동에 대해서 북한은 즉각 반발하며 "중지하지 않으면 무차별 타격하겠다"고 반응했다.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대북 확성기를 향해 북한 포탄 1발이 날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한국군은 그 수십 배에 달하는 29발의 보복 포격으로 대응했다. 그것은 DMZ에서 무려 42년 만에 벌어진 남북 간의 직접적인 포격전이었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순식간에 한반도는 전쟁 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국군에는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고, 북한군은 전방 지역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며 맞불을 놨다. 남북 양쪽 모두에서 병력과 중화기가 전진 배치되기 시작했고,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 발전할 수 있는 벼랑 끝의 위험천만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불안에 떠는 접경지역 주민들에게는 실제 대피령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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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는, 북한 악마화와 국내의 종북몰이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통치의 핵심 무기로 이용하고 있었던 박근혜 정권의 무모한 행태를 빼놓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섬뜩한 전쟁 위기였다. 당시에도 냉전적 보수언론들과 새누리당(지금의 국민의힘)은 상황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단호한 응징’, ‘전쟁 불사’를 소리 높여 떠들며 호전적인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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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일보>는 이렇게 선동했다. “우리 군사적 능력은 모자라지 않다. 부족한 것은 결의와 인내심이다. 우리 국민이 … 악순환을 끝내겠다고 결심하고 불편과 희생을 각오한다면 북의 도발 습성은 여기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이 시민들에게 '희생'을 각오하라고 종용하면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전쟁 불사론을 마치 '애국적 결단'인 양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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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뼈아픈 문제는, 당시에 자유주의적 개혁 언론들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심지어 진보 정당인 정의당조차도 보수 진영이 주도하는 '단호한 대응', '튼튼한 안보'를 외치는 광기 어린 분위기 속에서 크게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면 '종북'으로 몰려 정치적 생명을 위협받는 공포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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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조선일보>는 이것을 ‘통합진보당 학습 효과'라고 조롱하듯 설명했다. 박근혜 정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강제 해산당하는 것을 보면서 '종북'과 더욱 선을 긋게 됐다는 말이다. 이 일촉즉발의 위험천만한 전쟁 위기는 파국 직전에 극적인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서 가까스로 해소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과 구조적 단절은 돌이키기 어려웠다.

 

북한이 한미일 다영역 연합훈련 '프리덤 에지' 등을 비난하고 나선 가운데 8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북측이 쌓은 방벽 일대가 적막하다. 2026.9.8. 연합뉴스

이듬해 북한의 핵실험과 박근혜 정권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폐쇄 조치로 이어지며 남북 관계는 완전히 파탄 나고 말았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당시는 물론 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당시의 목함지뢰 폭발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은 한국과 미국(유엔사)의 일방적 발표와 주장일 뿐, 국제 사회나 중립적인 기구에 의해 객관적으로 충분히 교차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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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시의 위기 상황에서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남북한의 공동조사, 혹은 중립적 제 3국들을 통한 투명한 진상 규명이었다. 그것을 통해서 만약 북한의 의도적인 '지뢰 도발'이 객관적으로 입증됐다면, 명백한 증거를 바탕으로 북한에 사과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확고한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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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 나아가 근본적인 비극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한반도에 막강한 군사력을 주둔시키며 대립하고 있는 남-북-미 세 나라가 반인륜적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는 ‘대인지뢰금지협약’에 동반 가입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추진했어야만 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특정 정권의 정책을 넘어선 구조적 모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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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DMZ에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인 무려 1~200만 발에 달하는 지뢰가 촘촘히 묻혀있다. 한국전쟁 이후 그동안 이 끔찍한 살상 무기들로 인해 인근 민간인과 군인 수천여 명이 무참히 팔다리를 잃고 목숨을 빼앗기며 죽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뢰반대 국제단체들에 따르면 북한 지역에서도 매년 수십여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지뢰로 인해 희생되고 있다고 한다.

출처: 평화나눔회

현대적인 장비를 동원해 이 지뢰들을 다 제거하려고 해도 수백 년이 걸린다는 게 한국 국방부의 계산이다.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살육의 상황과 지속되는 비극을 하루빨리 끝내지 못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전쟁을 부추기는 그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름만 ‘비무장 지대’일 뿐인 그 좁은 공간 안에 엄청난 수의 전투 병력과 치명적인 중화기들로 밀집 배치해 놓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현실이 바로 이 비극의 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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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완충지대가 되어야 할 곳을 ‘비무장’은커녕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중무장 지대’로 만들어온 셈이다. 이 거대한 화약고 안에서는 누군가 무심코 던진 작은 불씨 하나, 혹은 자연재해로 흘러내린 낡은 지뢰 한 발만 터져도 곧바로 서로를 파괴하려는 위험천만한 치킨게임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무모한 치킨게임의 수레바퀴 속에서 짓밟히는 것은 권력자들이 아니라, 죄 없는 젊은 청년들과 그 일대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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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충돌과 전쟁이라는 단어 뒤에 있는 구체적인 고통, 즉 팔다리와 목숨을 잃었거나 앞으로 잃게 될 사람들, 그리고 평생 그 고통과 비극을 지켜보며 눈물지어야 할 평범한 많은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 안보 현실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무력에 의한 억제라는 허상을 버리고, 진정으로 우리의 삶과 생명을 지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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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내정간섭 끊어낼 때까지 투쟁!”…애국 대학생 석방 촉구 기자회견

‘호남 반도체 방해 미 7공군 규탄한 애국 대학생 석방 촉구 기자회견’ 진행

박근하 통신원 | 기사입력 2026/09/22 [20:35]

 

대진연이 22일 오전 10시 50분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앞에서 '호남 반도체 방해 미 7공군 규탄한 애국 대학생 석방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대진연

 

당일 평택지원에서는 미 7공군이 있는 오산 공군기지에 항의 방문을 갔다가 구속된 두 명의 대학생과 보석으로 석방된 대학생의 재판이 진행되었다. 기자회견에는 재판을 방청하러 온 전남광주촛불행동 회원들과 시민들도 함께했다.

 

참가자들의 힘찬 구호로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호남 반도체 방해하는 미 7공군 규탄한다!”

“사법부는 애국 대학생 즉각 석방하라!”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조두윤 대진연 회원은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이 나오자,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 계에서 이 사업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나라 사업을 우리 정부가 추진하겠다는데 미국이 뭐라 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엄연한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데 한낱 외국 군대 따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은 없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이 땅의 주인은 우리라는 것을 미군에게 똑똑히 알려주기 위해 미 7공군에 항의 방문을 간 것”이라고 지난 대학생들의 투쟁에 대한 의의를 설명했다.

 

김나인 대진연 회원은 “(미국이) 이렇게 전방위적인 압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전쟁을 하기 위해서다. 몰락하고 있는 패권을 붙잡아보기 위해 새로운 전쟁이 필요한 미국, 중간선거에서 대패할 것이 뻔한 트럼프에게 판세를 뒤엎을 가장 좋은 수단은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요긴하게 쓰일 곳이 바로 광주 군 공항이다. 그런데 광주 군 공항이 반도체 산단 부지로 이용되니, 전시에 쓸 기지가 사라지는 것을 우려해 미 7공군 대변인이 허겁지겁 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이라며 규탄 발언을 이어갔다.

 

또한 “대학생들이 미군기지 안에서 외친 것은 단지 반도체 기지 건설만이 아니다. 학생들이 외친 것은 이 땅의 평화, 자주다. 우리나라 경제를 짓밟고 수시로 전쟁 연습을 하는 미국에 맞서 주권자 국민이 목소리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대학생들을 석방하라고 외쳤다.

 

© 대진연

 

문한결 경기인천대진연 대표는 “오늘은 동지들이 연행된 지 50일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진짜 우리나라가 잡아넣어야 할 자들, 재판대에 세워야 할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나라의 국가 산업인 호남 반도체를 방해하고, 있지도 않은 권리를 행사하며 우리나라의 주권을 침탈한 미국 아닌가? 작은 현수막 하나 달랑 들고 맨몸으로 군사기지에 뛰어든 애국 대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총과 주먹으로 협박하고, 감금한 주한미군 아닌가!”라고 일갈했다.

 

또한 구속된 대학생들의 투쟁에 대해 “정의로운 신념과 뜨거운 애국심이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라면서 “변화는 선을 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비록 애국 대학생들은 지금 갇혀 있지만, 그 갇혀 있는 목소리가 이 사회에 더 큰 공명을 울리고 있다. 사법부는 주한미군 눈치 보지 말고, 나라의 주권을 위해 나선 애국 대학생들을 즉각 석방하라!”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후에는 박근하 대진연 대표의 기자회견문 낭독이 이어졌다.

 

대학생들은 “우리 대학생들은 구속 대학생들 꺼내 올 때까지, 미국의 내정간섭을 끊어낼 때까지 가열차게 투쟁하겠다!”라고 결의를 밝히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기자회견 이후 구속 대학생들의 재판이 진행되었다.

 

▲ 김나인 대진연 회원. © 대진연

 

▲ 문한결 경기인천대진연 대표. © 대진연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호남 반도체 방해 미 7공군 규탄한 애국 대학생 석방 촉구 기자회견문

 

지난 8월 4일, 대학생들은 호남 반도체 건설 사업을 방해하고 주권을 침해한 미 7공군을 규탄하기 위해 오산 공군기지에 항의 방문을 했다.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이 나오자 미국은 “종말의 시작”이라고 저주를 퍼붓고, 호남이 아닌 미국에 투자하라는 억지를 부렸다. 게다가 산업단지의 부지로 선정된 광주 군 공항 일부를 사용하고 있는 미 7공군 또한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 구상에 훼방을 놓았다. 미 7공군의 광주 군 공항 부지는 2033년까지 반환하기로 이미 결정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미 7공군은 광주 군 공항에 ‘중요한 군사적 이해 관계’가 있다며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면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라고 협박했다.

심지어, 7월 말 미 7공군은 국제법상 사용이 금지된 백린탄의 원료인 백린을 누출했다. 큰 인명 피해가 일어날 수 있었던 심각한 사안임에도 미 7공군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사고 9일 후 난데없이 “백린이 누출된 것이 아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변명만을 지껄였다.

대학생들은 이렇게 주권 침해와 내정간섭을 벌이고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미 7공군에 항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주권자로서 오산 공군기지로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피켓을 든 애국 대학생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폭력을 행사했고 실탄이 든 총을 겨누려는 시도까지 했다. 미국의 눈치를 본 평택서는 학생들에게 인권 침해를 일삼으며 학생들을 구금했고, 사법부는 애국 대학생 3명을 구속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한 명은 보석 석방되었지만, 두 명의 대학생은 50일이 지난 지금도 평택구치소에 갇혀 있다. 진정 처벌을 받아야 하는 자는 수십 년간 우리 땅을 더럽히고, 국민의 목숨을 빼앗으며 주권을 침해해 온 주한미군이다.

오늘 22일 구속 대학생 3인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다. 재판부는 미국의 내정간섭을 막아내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 앞장선 애국대학생을 즉각 석방해야 할 것이다.

호남반도체 방해 미 7공군 규탄한다!

사법부는 애국대학생 즉각 석방하라!

 

2026년 9월 22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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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유엔연설서 ‘비핵화’ 뺐다… “핵 고도화 중단→축소”

서영지기자

  • 수정 2026-09-23 05:07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멈춰있던 북미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고,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 체제 전환을 위한 당사자 간 대화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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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공존’의 방향을 담은 세 가지 청사진을 제시했다. 먼저 이 대통령은 ‘책임있는 평화공존’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한반도의 오래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는 오랜 기간 남북은 물론 미국, 중국 등 관련국들도 함께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논의해 온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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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한 ‘종전 다자 논의’ 구상을 구체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서로에 대한 상호위협 의사를 내려놓고,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자들 간의 논의를 시작하자”고 말한 바 했다. 이번 유엔 연설에서는 평화체제 논의의 당사자로 남북뿐 아니라 미국·중국 등 관련국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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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다행히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어렵게 만들어졌다”며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는 당사자 간 관계 정상화뿐만 아니라 다자협력을 통한 공동 성장, 동북아의 안정과 협력을 촉진하는 유용한 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우선 북측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고, 중기적으로 축소를 거쳐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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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목표로 제시하고 ‘중단→축소→폐기’라는 단계적 해법을 제시했던 이 대통령은 올해 연설에서는 ‘비핵화’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축소→핵 없는 한반도’를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공개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도 “현재 상황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밝혀, 비핵화를 당장의 협상 목표로 삼기보다 핵 동결과 축소를 우선하는 현실적 접근으로 무게중심을 옮겼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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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35년 전, 한반도 평화공존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 낸 유엔, 그리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온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번에도 책임 있고 건설적인 역할을 다해주시길 기대한다”며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이자 페이스메이커로서 대화의 길을 열고 또 이어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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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이 대통령은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공존’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 간 상호 체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협력을 통한 공동 성장을 모색하겠다”며 “국제무대에서도 북측을 존중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해 나가겠다. 보건, 재난, 기후 위기 등 국제사회 차원에서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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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싸울 필요가 없는 ‘안정적 평화공존’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위기를 방지하고, 갈등을 통제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가겠습니다”라며 “기본적인 소통 채널부터 복원하며,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 안정적인 평화공존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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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이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과 관련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위한 연대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호르무즈와 홍해에서 반복된 해상 봉쇄는 에너지와 물류의 핵심 통로가 무기화될 때, 세계인의 일상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며 “국제 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은 국제법이 보장하는 권리이자 세계 경제를 지탱하는 기반”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대한민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를 비롯한 기존의 협력 체계를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공급망 위기가 전 세계 경제·민생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더욱 촘촘히 강화해 나가겠다”며 “지금 필요하고 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할 역량과 의지를 갖춘 나라들이 먼저 손을 맞잡고 협력의 공간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를 ‘건설적 기여국 연대’라고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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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새로운 기구나 배타적 그룹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존의 국제질서와 유엔의 기능을 존중하면서, 각국이 각자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유연하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협력하고,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자는 것”이라며 “이처럼 ‘따로 또 같이’ 만들어 낸 협력의 성과가 축적될 때 지정학적 경쟁과 교착, 분절을 넘어 다자주의에 대한 신뢰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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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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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지 기자

안녕하세요. 정치부 서영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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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제청 '기습' 거부 조희대에 민주당 격앙... "대통령 출국하자 사법 쿠데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영교 위원장(왼쪽 네 번째)과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이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재제청 거부 관련, 조국혁신당ㆍ진보당 위원들과 함께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김의겸, 이성윤, 김동아, 서영교, 수어통역, 김기표 의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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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의원들은 22일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재제청 거부에 "대법원장의 정치 행위이자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측은 조 대법원장 탄핵 추진 여부를 지도부의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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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서영교 법사위원장과 김의겸·김기표·이성윤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대표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관 임명권의 주체는 대통령"이라면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절차적 권한이며 임명권 자체를 대체하거나 무력화하려는 권한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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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라는 헌법 제104조 2항을 근거로 들며,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는 헌법상 정당한 임명권의 일환이라고도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이 이날 취재진에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고 밝힌 것에 대해 반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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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비운 틈 타 거부 입장... 대법원장의 정치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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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에 재제청 거부 입장을 발표한 점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오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 참석 등을 위해 출국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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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비운 틈을 타 형식 논리에 얽매여 단편적인 거부 입장을 내놓은 모습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저버린 것은 물론, 사법부의 중대한 책무를 가볍게 여기는 안타까운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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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절차적 하자가 명백한 이번 제청에 대해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한 것은 헌법상 임명권의 정당한 절차적 행사임을 재확인한다"며 조 대법원장의 거부를 "윤석열의 12.3 쿠데타에 이은 사법 쿠데타" "삼권분립의 중대한 훼손이자 사법 농단"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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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다가오는 국정감사에서 진상을 소상히 규명할 것임을 국민께 엄중히 약속드린다"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오는 10월 법사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조 대법원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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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탄핵 추진 가능성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거기에 대해 당 지도부와 논의하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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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의겸 의원은 "이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했을 때 국민이 생각한 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구성해서 추천하느냐, 아니면 (이미 추천한 후보 중) 나머지 3명 가운데 1명을 제청하느냐는 등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며 "(조 대법원장이) 국민 상식을 뛰어넘는 가장 나쁜 방법으로 봉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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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표 의원은 "대법원은 불편부당한 판단을 내리는 사회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데, 임명권을 형해화 하고 무시한 이번 사태는 대법원이 대통령과 맞서는 형태를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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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 "얼굴 마주하고는 침묵하고 돌아서서 헌법을 들이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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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내에선 조 대법원장 재제청 거부 입장 표명 이후 관련 비판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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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대표는 이날 오후 인천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참 황당한 대법원장"이라며 "대법원장이 찾는 헌법적 근거는 너무 명확하다.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 그 이상 명확한 근거가 어디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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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정말 모르는 것인지, 모른 척하는 것인지, 일부러 무시하고 대통령과의 권력 다툼을 하는 것인지, 대통령과 국민을 무시하는 것인지 참으로 황당할 따름"이라면서 "본인이 하면 합헌이고 대통령이 하면 위헌인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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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 의원은 조 대법원장이 전날 김성수 대법원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사실을 거론하며 "정작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 없더니, 바로 다음 날 언론 공지를 통해 재제청 요구를 거부했다. 얼굴을 마주하고는 침묵하고 돌아서서는 헌법을 들이미는 행태라니, 지금 정말 해보자는 건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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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것을 헌법 기관 사이의 정상적인 소통이라고 할 수 있나"라면서 "이쯤 되면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헌법 기관 사이의 충돌을 스스로 키우며 정치적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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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더불어민주당#법사위원#대법관재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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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배후 조희대를 조선일보는 왜 감싸는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9/23 06:58
  • 수정일
    2026/09/23 06:5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득우가 간다. 조선일보 꼼짝 마라!

이득우 조선일보폐간실천단 단장 | 기사입력 2026/09/22 [13:39]

‘대법원장의 당연한 말이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다’(9월 12일), ‘대법원장 제청권 또 깔아뭉갠 청와대, 헌법 위 권력인가’(9월 14일), ‘대법관 제청권 위기 부른 김민기 판사의 입장이 궁금하다’(9월 15일). 사흘 연속 조희대가 평지풍파를 일으킨 대법관 제청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왜곡을 넘어 엉뚱한 곳에 화살을 돌리는 후안무치함까지 연출한다. 조희대는 보호하는 척하면서 언론 내란 수괴 조선일보가 맞게 될 운명을 피하려는 잔꾀다.

 

내란을 막아낸 대한국민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내란 최후 보루로 지목하여 줄기차게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 그를 내란 배후로 의심할 만한 정황은 차고 넘친다. 조희대는 말은 당연하게 했을지 모르나 행동은 의심투성이다. 조 씨는 내란 직후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여 계엄이 위헌 위법적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당일 조선일보는 대법원이 사법권을 계엄사령부에 넘기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 내용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있어 대한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대법관 후보자 제청만 해도 그렇다. 조희대는 이미 내란 수괴 윤석열에게 대법관 후보자 5명에 대해 임명을 제청했다. 사전 협의와 대면 제청이라는 관행을 지켰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조희대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법관 후임자를 7개월 이상 추천하지 않다가 갑자기 관행을 깨뜨리며 제청권을 행사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뚜렷한 이유 없이 관행을 깨뜨린 조희대를 나무라야 마땅하다. 더 나아가 조희대가 깨뜨린 관행을 대통령이나 국회도 따를 의무는 없음을 밝혀야 당연하다. 제청권이 곧 임명권인 듯 선동질하는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엉뚱하게 김민기 판사를 소환하며 사태를 왜곡하는 작태를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제청권 위기를 부른 당사자는 분명 조희대다. 부패 기득권 나팔수 조선일보가 나서 길거리 야바위꾼이나 할 만한 범인 바꿔치기를 시도하는 꿍꿍이는 뻔하다. 앞서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저지른 사실상 후보자 사퇴 종용과 닮아있다. 매국세력 조선일보가 함께 흉측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이 틀림없다. 사법과 언론 내란으로 대한민국을 망치려는 천인공노할 작태다.

 

조희대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도록 조화를 부린 예는 비일비재하다. 대법원은 사건 성격과 법리적 필요성에 따라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를 결정한단다. 전원합의체는 제도적으로 대법원장이 재판장으로 주재하는 특별 심리 절차다. 즉 대법원장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며 재판 결과를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뜻이다. 행정부나 입법부와는 달리 사법부는 대법원장의 독주를 견제할 아무런 장치가 없어 말 그대로 제왕적이다.

 

조희대는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상고심을 갑자기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여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뚝딱 해치워버렸다. 선고가 지니는 중차대한 정치적 의미를 고려하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당연한 재판이었지만 졸속으로 해치웠다. 더욱 가관은 내란중요임무 종사자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당일 총리직을 사퇴하고 바로 다음 날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장면이었다. 조희대가 정치 놀음판에 선 광대는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반면에 내란 수괴 중 수괴로 의심받는 김건희 상고심은 선고 바로 전날에 갑자기 전원합의체로 넘겨 선고 예정일조차 잡지 않고 있다. 이상민이나 한덕수 재판도 마찬가지다. 특검법은 상고심을 3개월 이내에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조 씨는 이를 보란 듯이 어기며 내란범 감싸기를 계속하고 있다. 내란 최후 보루 조희대를 탄핵하고 처벌하자는 대한국민의 요구가 정당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조희대가 이처럼 지나친 정치 행보를 하는 까닭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자신이 대통령 자격 없음을 선고한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아집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헌법에 따른 선거 절차를 통해 대한국민이 선출했다는 사실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셈이다.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을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과 전혀 다르지 않다. 자신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최후 보루로 착각하고 있는 점도 쏙 빼닮았다.

 

대한국민은 당연한 말하지만 당연한 행동을 하지 않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말은 뻔드르르하지만 행동이 엉뚱한 자를 대한국민은 가차 없이 심판한다. 조희대가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에 위헌 위법이라고 발언했다는 주장과 다음날 출근길에 기자들 앞에서 했던 ‘절차를 살펴보겠다’라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대한국민은 똑똑히 알고 있다. 그래서 대한국민은 그를 탄핵하고 양심과 정의를 존중하는 법정에 세우려 한다.

 

조선일보는 아직도 대법원장이 가진 대법관 제청권이 곧 임명권이라도 되는 양 생떼를 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대법원장은 제청권을 행사하고 국회는 동의권을 행사하며 대통령은 임명권을 행사하라는 말이다. 대법원장은 제청권을 행사하고 동의나 임명받지 못하면 다시 제청권을 행사하면 된다. 이것이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삼권분립 정신이다.

 

대법원장이 휘두르는 제왕적 권한에 대해 꾸준한 문제 제기가 있다. 전 대법원장이었던 양승태 사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지만 놀라우리만치 사법부는 변하지 않았다. 행정부나 입법부는 선거를 통해 교체되지만 사법부는 자신들이 쌓은 철옹성에서 안주하며 사법부 독립만을 되뇌었다. 결국 정당한 견제와 감시를 벗어난 독점 권력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게 되었다. 국민을 위한 사법 독립이 국민 주권으로부터도 독립인 듯 행세하다 덜컥 들통났다. 대한국민이 나서 대한민국 사법부를 철저하게 개혁해야 한다.

 

대한국민이 헌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선출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조희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다. 스스로 대법원장직을 사퇴하면 된다. 내란을 막아낸 대한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에 대한 도전은 대한민국을 지켜낸 대한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이를 선동하는 반민족 반민주 범죄집단 조선일보도 대한국민이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내란 잔재인 조희대 대법원장과 조선일보를 엄하게 벌해 대한민국을 우뚝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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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환원 위해 설립한 오류애육원, 누가 가로챘나

이득신 시민기자

dsshine23@naver.com

제 27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2019년)

<저서>

살아남은자의 도시(공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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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들판

  • 입력 2026.09.22 07:50

  • 수정 2026.09.22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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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송석홍과 원장 송석도에 대한 가족 증언

개인 농장에서 아이들을 강제노역 시킨 운영진

시설 지원금을 원장 농장 운영 등 사적으로 편취

파견된 관선이사가 눌러앉아 다른 불법 저질러

최근엔 노인복지로 눈 돌려 삼농복지재단 설립

오류애육원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름 하나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송석도. 오류애육원을 오랫동안 운영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류애육원을 이야기할 때면 송석도를 설립자로 기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재단 홈페이지도 그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송석도의 조카인 송통영 씨의 기억은 다르다. 통영 씨가 기억하는 오류애육원의 시작에는 그의 아버지 송석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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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애육원은 큰아버지 송석도가 처음 만든 게 아닙니다. 제 아버지가 시작했습니다. 오류애육원의 시작은 1951년 4월, 한국전쟁 한복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아버지는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 몇 명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장소가 경기도 부천군 오류면(현재 서울 구로구 오류동)이었습니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고향에서 밀어냈죠. 집을 잃은 사람들은 떠돌았고, 아이들은 부모를 잃었을 때였습니다. 국가의 구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그때 아버지 송석홍에게 미군 측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난민들을 수용할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송석홍이 돌보고 있던 전쟁고아들과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시설을 만들고, 미군은 그곳에 필요한 구호물자를 지원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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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통영 씨가 기억하는 오류애육원의 출발이다. 오류애육원이 들어선 토지의 출발점도 남다르다. 통영 씨에 따르면 그의 할아버지 송후용과 아버지 송석홍은 이승만 정부 당시 농지개혁 과정에서 각각 약 3천 평의 농지를 불하받았다. 가족은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어엿한 고아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농장을 운영하던 가족들이 전쟁으로 갈 곳을 잃은 아이들 몇 명을 거두어 먹이고 재우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 소식을 듣고 미군이 난민수용소를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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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자 성인 난민들은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아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그때 남겨진 전쟁고아들을 계속 돌보기 시작한 곳. 통영 씨는 그곳이 바로 오류애육원의 실질적인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났다고 아이들까지 갈 데가 생긴 것은 아니잖아요. 어른들은 돌아갔지만 아이들은 남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계속 돌본 겁니다.” 미군이 지어준 막사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오류애육원은 고아원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오류애육원의 최초 설립자가 송석홍이라는 당시의 법인 등기부 등본(송통영씨 제공)

통영 씨가 말하는 오류애육원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그의 가족사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그의 할아버지 송후용은 일제에 저항했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통영 씨는 할아버지를 “머리가 비상하고 영리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당시 최고 학부를 졸업한 지식인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 집안의 아들이었던 송석홍 역시 사회와 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송석홍은 해방 이후 정치에 뛰어들었고, 경기도 부천군 오류면을 지역구로 하는 경기도 의원을 지냈다. 당시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독재정권과 맞섰다는 것이 통영 씨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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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아버지 송석홍과 달리 큰아버지인 송석도는 그다지 영특하지 않았고 배움도 길지 않았다. 또한 아버지 송석홍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의 측근으로 활동했다고 기억한다. 정권과 야당의 충돌이 격화되던 시기였다. 야당 인사에 대한 탄압과 불법적인 연행과 감금 등이 이어졌고, 송석홍 역시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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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이라 아버지는 오류애육원의 운영을 자신이 직접 맡는 것이 시설에도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사장은 고모부인 정현철에게 맡겼고, 원장은친형인 송석도가 맡았다. 통영 씨는 이것이 오류애육원을 특정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만들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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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설립 초기부터 사회에 돌려준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오류애육원의 토지부터 그랬습니다. 시설이 들어선 땅은 원래부터 가족이 소유한 고아원 부지가 아니었습니다. 농지개혁을 통해 불하받은 농지에서 출발했고, 시설 운영 역시 미군의 구호와 지원에 크게 의존했던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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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가족들이 처음부터 그것을 자신들의 재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설을 만들고 가족들이 이사로 참여한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한 가족이 운영했지만 한 가족의 사적이익을 위한 시설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설립 당시 가족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그랬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고, 전쟁이라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생겨난 사회적 시설이었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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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애육원의 운영을 둘러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전쟁 이후 고아원에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구호물자가 들어왔다. 통영 씨는 당시 한국에 4H운동을 보급하는 데 관여했던 찰스 앤더슨을 중요한 인물로 기억했다. 미군 측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 대상으로 분류한 통조림과 가공식품 등이 고아원으로 들어오기도 했으며, 각종 의류와 신발도 함께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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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씨는 당시 원장이었던 송석도가 일부 구호물자를 암시장에 내다팔았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 때문에 설립자인 송석홍이 형인 송석도를 여러 차례 지적하고 제재하기도 했다. 한 고아원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인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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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당시 어떤 물자가 들어왔고, 누구에게 배분됐으며, 그것이 실제 아이들에게 얼마나 전달됐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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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통영 씨가 이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한 대목은 이것이다. 오류애육원을 오랫동안 운영한 사람과 오류애육원을 처음 만든 사람이 반드시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송석도는 오류애육원의 이사장과 원장을 맡아 오랫동안 시설 운영에 관여했다. 그의 이름이 시설의 역사와 함께 기억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송석도는 설립자가 아니라 이후 원장으로 시설 운영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호칭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시설을 만들었는가. 누구의 땅에서 시작했는가. 어떤 돈과 물자로 운영됐는가. 그리고 그 시설을 처음부터 누구의 소유라고 생각했는가.

 

오류애육원(현재 오류마을) 송석도 원장의 개인 농장에 강제노역으로 동원된 원생들.

송통영 씨의 기억 속에서 송석도의 삶은 오류애육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해방 직후 송석도는 부천군 고척면 일대에서 목장을 운영했다. 당시 그곳에서 일했던 큰아버지 송석도는 일제 패망으로 일본인이 남기고 간 목장을 거의 무상에 가깝게 넘겨받아 운영했다는 것이 통영 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인근 안양천의 오염으로 목장 운영이 어려워졌고, 결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용인에 있는 농장으로 옮겨갔다. 이후 이 농장은 오류애육원 아이들의 배움의 길을 가로막으며 주말과 방학이면 그곳에 노동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끌고 갔다. 원생들을 강제노역으로 몰아넣은 삼애농장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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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에는 이렇게 여러 공간이 겹쳐 있다. 그리고 독재정권과 야당 정치의 충돌. 오류애육원의 역사를 제대로 복원하려면 이 모든 장면을 따로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 고아원의 역사는 흔히 원장의 이름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질문은 조금 다르다. 누가 처음 아이들을 데려왔는가. 누가 밥을 먹였는가. 어디에서 나온 돈과 물자로 시설을 운영했는가. 누가 그 돈과 물자를 관리했는가. 그리고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물자가 실제로 아이들에게 돌아갔는가. 오류애육원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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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통영 씨의 증언은 지금까지 알려진 오류애육원의 설립자와 운영자에 관한 기억에 질문을 던진다. 오류애육원의 역사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끝낼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한국전쟁이 남긴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이들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미군의 구호물자가 있었고, 정부의 농지개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한 가족이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을 만들었다. 그 시작점에 누구의 이름을 써야 하는가. 송통영 씨는 그 답을 아버지 송석홍의 이름에서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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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애육원의 시작이 미군이 지어준 막사였다면, 그곳에 처음 제대로 된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송통영 씨는 일신제강과 한일시멘트 등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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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를 출연하여 건물을 지은 것으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송석도가 자기 돈을 내서 지은 건물이 아닙니다. 기업들의 도움으로 건물이 들어선 겁니다. 당시 오류애육원은 전쟁 직후의 임시적인 난민수용 공간이었지만, 이후 아이들을 수용할 제대로 된 건물이 필요했고, 기업들이 건축에 필요한 자재와 비용을 지원하면서 시설은 조금씩 모습을 갖춰갔습니다. 시설의 토지는 농지개혁을 통해 마련됐고, 초기 운영에는 미군의 구호와 국가의 지원금이 있었으며, 정식 건물의 건축에는 기업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오류애육원은 특정 개인의 노력과 재산으로 만들어진 시설처럼 이야기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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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통영씨는 당시 공식적인 직책을 맡지는 않았지만 오류애육원의 운영을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시설 운영을 둘러싼 오해와 갈등이 커지자 그는 한발 물러섰다. “괜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오류애육원 운영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것은 오류애육원이 마치 송석도의 자선사업으로 포장된 시초가 되었다. 더욱이 1975년 설립자인 아버지 송석홍이 오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이 오류애육원의 역사에서도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와 사후의 시설 운영이 크게 달라졌다고 기억한다. 특히 송석도가 재단의 재산을 처분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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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재단 재산을 자기 재산처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설립 당시 돈 한푼 출연하지 않았던 큰아버지 사적편취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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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통영 씨가 말하는 핵심은 ‘소유’였다. 오류애육원은 처음부터 가족의 사유재산으로 만든 시설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법인 소유의 토지와 재산이 마치 특정인의 개인재산처럼 취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산을 처분하고 개인적인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 통영 씨의 주장이다. 오류애육원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은 용인의 농장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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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통영 씨는 당시 아이들이 농장에 끌려가 사실상 강제노역에 가까운 일을 했다고 증언했다. 아이들은 농장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퇴소할 때가 되면 소 한 마리를 주겠다는 약속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소 대신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던 정착금까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지급돼야 할 돈이 시설 운영자의 사적인 이익으로 전용됐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그는 이를 단순한 운영 상의 실수로 보지 않았다. 시설에서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의 노동력과 권리가 운영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애농장에서 원장 송석도에 의해 오류애육원 아이들이 옥수수로 소 사료를 만드는 일에 동원된 모습.

송통영 씨는 오류애육원과 용인 농장 사이의 돈의 흐름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농장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오류애육원에 지급되는 돈으로 충당하는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그가 특히 기억하는 것은 사료용 우유였다. 농장에서 동물에게 먹이는 분홍색 우유가 있었는데, 이것을 오류애육원에 판매해 아이들에게 먹였다는 것이 송통영 씨의 주장이다. 아이들이 먹어야 할 우유가 동물용 사료로 대체되었고, 그 판매대금은 송석도 개인에게 돌아갔다. 왜 복지시설에 들어온 자원이 시설 밖 개인사업의 비용으로 전용됐는지, 아이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물품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됐는지를 따져야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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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농장으로 보내졌고 노동을 해야 했다. 구타와 폭력은 상습적이었다. 그 결과 아이들이 시설에서 반복적으로 탈출했다고 그는 기억한다. “아이들이 왜 도망갔겠습니까.” 통영 씨에게 아이들의 탈출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오류애육원은 보호받아야 할 집이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곳을 떠난 아이들이 범죄자가 되는 일도 반복되었다. 아이들을 농장에 투입하는 문제를 두고 통영 씨는 큰아버지 송석도에게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그의 지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운영에 참여했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 깊이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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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애육원 출신 원생들의 모임인 ‘잔디회’ 역시 시설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송통영 씨에 따르면 잔디회는 아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축적한 재산이라는 취지로 재단 측에 10억 원을 요구했다. 그리고 재단 측은 그 가운데 5억 원을 지급했다. 통영 씨에게 이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설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시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책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아원 출신 원생들이 자신들의 노동과 삶이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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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송석도가 사망한 이후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운영진과 이사진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과 분쟁이 이어진 것이죠. 그 과정에서 관선이사가 선임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관선이사로 들어온 인사들이 이후 정식 이사로 자리를 잡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해당 법인이 주인이 모호한 재단이면서 많은 재산이 있다는 것을 간파한 자들이 눌러 앉으며, 재단을 정상화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들이 오히려 재단 운영에 계속 관여하며 사적으로 이익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물론 어머니마저 이사진에서 배제됐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가족 간의 갈등이 아닙니다. 아버지 송석홍이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만든 복지법인이 누구에 의해 농락되었느냐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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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통영 씨가 기억하는 재단의 문제는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1년에도 재단 운영을 둘러싼 비리 문제가 불거졌고, 오류애육원 출신 원생들의 모임인 잔디회가 재단을 고발하는 일이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서 운영진들이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재단 소유 토지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통영 씨에 따르면 당시 재단 토지 매각대금 가운데 약 32억 원이 발생했고, 그중 3억 원의 행방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송통영 씨가 강조하는 것은 액수 자체가 아니다. 수십 년 전 전쟁고아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의 재산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관리되고 처분됐는가 하는 문제다. 오류애육원은 이후 이름을 바꾸게 된다. 오류마을. 그리고 새로운 복지사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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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농복지재단이 만들어지고 삼농실버마을이라는 노인복지시설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면 시대 변화에 맞춰 복지사업의 영역이 확장된 것처럼 보인다. 고아원을 운영하던 법인이 노인복지사업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재단 홈페이지에도 정부의 지원금을 통해 새로운 시설을 건축했다는 취지의 설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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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송통영 씨의 기억은 다르다. 정부 지원을 받는 복지시설이라면 그만큼 행정기관의 관리와 감독이 뒤따르는데, 그런 감독을 피하기 위해 법인의 재산을 개인재산처럼 취급하면서 시설 신축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운영진들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송통영 씨의 아버지 송석홍에 의해 설립된 법인은 수십 년 뒤 그 시설의 재산을 둘러싸고 각종 비위문제, 노동력착취와 정착금 사적 차용, 토지 처분과 회계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던 곳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른들의 재산과 권력을 둘러싼 공간으로 변질된 것이다.

 

현재의 삼농복지재단 모습

송통영 씨가 지금 와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오랫동안 침묵했다고 했다. 가족 문제였기 때문이다. 큰아버지 송석도가 운영했던 시설이었다. 자신 역시 한때 그 시설의 운영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그래서 더 말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이유를 송통영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버지가 사회에 환원한 복지법인이 운영진들의 사적인 이익과 각종 의혹의 공간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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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애육원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송통영 씨의 답은 분명하다. 아버지 송석홍의 것도, 큰아버지 송석도의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곳의 주인은 아이들이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 가난 때문에 시설로 보내진 아이들.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없었던 아이들. 그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남아야 할 것도 재단의 재산이 아니라 아이들의 권리여야 한다. 오류애육원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은 결국 건물의 역사를 쓰는 일이 아니다. 누가 땅을 가졌는지, 누가 이사장이었는지, 누가 원장이었는지만 기록하는 것도 아니다. 그곳에서 살았던 아이들이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빼앗겼으며, 얼마나 일했고, 왜 도망쳤고, 퇴소한 뒤 무엇을 받았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아이들의 몫을 가져갔다면, 그것이 누구였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송통영 씨는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아버지가 시작했던 복지의 역사가 어디에서부터 다른 길로 들어섰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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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신 시민기자 dsshine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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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당 부산시당 창당대회…“창당의 힘으로 내란세력 청산하자!”

 

김성훈 통신원 | 기사입력 2026/09/2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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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당 부산시당 창당대회가 지난 20일 오후 5시 부산노동복지회관에서 열렸다. 

 

  © 국민주권당

 

대회는 부산광역시당 규약 채택, 부산광역시당 위원장 선출, 부산광역시당 운영위원 선출 순으로 진행되었다. 

 

부산광역시당 위원장으로 김종민 창당추진위원장이 단독 입후보하여 선출되었다. 

 

이어서 창당 축하 행사가 이어졌다. 

 

박준의 국민주권당 상임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창당 활동 보고 영상, 모범 당원 수상이 진행되었다. 

 

이후 암 투병 중에도 촛불 광장을 지키고 있는 김진태 당원을 부산시당 고문으로 위촉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으로 각 당원이 어떤 마음으로 창당 과정에 함께했는지, 앞으로 어떤 정당이 되었으면 좋겠는지를 담은 영상을 함께 시청한 후 김종민 부산시당 위원장의 결의 발언이 있었다. 

 

김종민 위원장은 “부산에 있는 지인 한 명을 더 찾기 위해 전국 당원 동지들이 함께 해주셨기에 오늘 이 영광스러운 자리가 있게 되었다. 우리 당원 동지들의 애국의 마음이고, 애당의 마음이 모인 것”이라며 “이렇게 모인 1,000명의 당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부산을 바꾸고, 대한민국 정치를 뿌리째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민주와 평화, 국민주권의 길에 부산시당이 언제나 가장 앞장에서 싸워 나가자”라면서 “창당의 힘으로, 내란세력 청산하자!”, “창당의 힘으로, 국힘당을 해산하자!”, “창당의 힘으로, 파병 압력 막아내고, 자주 국가 건설하자!”라고 외쳤다.

 

부산시당 창당을 축하하는 「국민주권찬가」 노래 공연으로 대회가 마무리됐다.

 

한편, 국민주권당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7월 1일에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통합됨에 따라 정당법상 5개의 시‧도당이 있어야 한다는 정당 존립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부산광역시당 창당을 결의했다. 

 

이후 7월 26일 발기인대회를 시작으로 약 두 달 만에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집하면서 부산광역시당 창당의 요건을 갖추었다.

 

▲ 김종민 부산광역시당 위원장.  © 국민주권당

 

▲ 부산광역시당 고문으로 위촉된 김진태 당원.  © 국민주권당

 

▲ 공로상을 받은 당원들.  © 국민주권당

 

▲ 「국민주권찬가」 를 노래하는 당원들.  © 국민주권당

 

  © 국민주권당

 

아래는 김종민 위원장의 결의 발언 전문이다.

 

김종민 부산광역시당위원장 결의 발언

 

당원 동지 여러분 고맙습니다.

국민주권당을 지켜냈습니다. 국민주권당 부산광역시당을 창당했습니다.

동지들 앞에 이렇게 인사해 보고 싶었습니다.

국민주권당 부산시당 위원장 김종민입니다.

7월 1일 광주전남이 통합되면서, 국민주권당이 등록 취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습니다. 3개월 안에 하나의 시‧도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얘기에, 부산이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당원들과 함께 결심하고, 발기인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그때 제가 1,000 당원을 반드시 모으는 기적을 창출해 보자고 발제한 기억이 납니다.

그 기적을 우리가 이뤄냈습니다.

그 기적은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당원 동지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물로 이뤄진 것입니다.

1,000 당원을 많은 사람이 고민할 때, 한 동지가 어머니를 권리당원으로 가입시키면서 첫 포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제안할 지인들의 명단을 정해 그들에게 연락을 해서, 우리에게 방법을 알려주신 동지도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밥집 사장님에게 당원 가입서를 받아주시고, 단골 가게와 일하는 곳에 찾아오는 고객에게 제안한 동지도 있었습니다.

2시간을 통화한 끝에 설득하여 당원 가입을 받아낸 동지, 제안하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어마어마한 당원을 모집한 극 I(내향적인 성격)의 동지, 거절받으면 어떨까 망설였지만, 다른 동지들에게 자극받아 당원을 모집한 동지. 

이 모든 상황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였습니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의 당원 동지들이 함께 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부산에 오셔서 우리에게 힘을 주셨고, 토요일 함께 하지 못해, 광주에서 혼자 부산을 찾아오신 동지도 있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지인 한 명을 더 찾기 위해, 전국 당원 동지들이 함께 해주셨기에 오늘 이 영광스러운 자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당원 동지들의 애국의 마음이고, 애당의 마음이 모인 것입니다.

이렇게 모인 1,000명의 당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부산을 바꾸고, 대한민국 정치를 뿌리째 바꾸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지금 정세는 우리에게 투쟁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헌정질서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위협한 내란세력을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완전 청산해내야 합니다.

또한, 민생을 외면하고 적폐의 거점이 된 국민의힘 해산을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트럼프의 파병 압력을 막아내고, 미국의 내정간섭을 막아내고 자주로운 국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수없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마다 역사를 바꿔왔던 부산 시민의 후예답게

촛불 광장의 목소리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국민주권당답게 투쟁해 나갑시다.

민주와 평화, 국민주권의 길에 부산시당이 언제나 가장 앞장에서 싸워 나갑시다.

창당의 힘으로, 내란세력 청산하자

창당의 힘으로, 국힘당을 해산하자

창당의 힘으로, 파병 압력 막아내고, 자주 국가 건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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