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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요즘 내 신체 상태는 적어도 중상급이다.
근데 문제는 의욕이다.
한 3년 전까지만 해도 몸은 아파도 '매닉'이란 별명을 스스로 붙일만큼
의욕이 차고 넘쳤다.
무슨 일을 해도 의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가령 오락하기, 친구랑 수다떨기, 드라마 보기 등은 쓸데없는 일로 생각됬다.
그 시간에 책 읽기, 공부하기, 일하기 등 의미가 있거나,
미래에 가치가 있거나, 돈이 되거나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냥 늘어진다.
머릿 속에는 이걸해야지, 저걸해야지 하면서도 실행률 바닥이다.
특히 주말에는 널부러져 자거나 재방송 드라마를 보기 일쑤다.
솔직히 드라마가 이렇게 재밌는 줄은 몰랐다.
작년에는 회사를 놀면서 역대 유명했던 드라마들을 거의 죄다 다운로드해서 봤다.
순위를 뽑아볼라치면,
1위 발리에서 생긴일
2위 다모
3위 미안하다 사랑한다
정도, 그 외에도 몇편 더 있지만 생각이 안 난다.
이런 저런 드라마 얘길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하면, 언제적 드라마를 들춰쌌느냐고 놀리지만,
나에게 드라마란 "앗 이런 신세계가!" 하고 감탄을 연발할만 한, 연애보다 재밌는 새로운 발견이다.
그래서 작년 회사를 쉬면서, 피자매 일 열심히 하고, 회사 다니면서 못했던 활동들을 해보자고 한 결심이
드라마 보기에 홀딱 빠지는 바람에 무너져버렸다고 하면 조금 과장이지만,
어쩄든 드라마가 나의 무기력에 일정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아니할 수 없다.
가만 보기만해도 재밌는데 뭣때문에 고생을 하며 쏴돌아다니느냔 말이다.
가히 드라마 중독의 징후다.
이래저래 대안없이 다니던 회사를 다시 다니면서
드라마 중독에서 조금은 헤어났지만,
하루 7-8편 최대 기록을 갱신하며 새벽까지 드라마를 보던 그때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내가 프리즌 브레이커니 하는 외화시리즈를 시작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서울리데리티 친구들에게 모임을 성격을 좀 바꿔보자고 했다.
번역 프로젝트 팀 보다는 언어교환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네트워크 성격의 모임으로 가자고.
그렇게 되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온라인 소통 공간이다.
진보넷 블로그야 말로 현재로선 가장 이상적인 공간인 것 같다.
될 수 있으면 외국에서 온 친구들도 진보 블로그를 쓰도록 권장하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언어.
영어판 인터페이스만 되어 있어도 좀 권해보겠는데,
예전에 G8반대행동할때 서울리데리티 블로그를 만들고 친구들더러 사용하라고 해보니
로그인부터 글쓰기까지, 뭔지 몰르니까 나한테 전화를 한다.
물론 christian같은 이는 아주 훌륭하게 진보넷 블로그를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 당장 불편하니 조금 해봤다가 마는 식.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어찌 해야하나...
살살페스티벌에 다녀오며
퍼뜩 또는 곰곰히 생각하게 된 것 몇 가지.
* 몰입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재미가 없다.
나는 '살페'와 '새만금 방조제 반대'에 몰입하지 못하고, '휴가', 임금노동으로부터의 '쉼'에 몰입했다.
물론 폭우를 피해 활력소에서 진행되었던 살페는 정말 재밌었다!
* 두려움이 영혼을 잠식한다.
해창 갯벌에서 번개가 내 머리 꼭대기에 칠 거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 시각 보라돌은 텐트 안에서 쿨쿨 잤다고 한다. 그런 왕배짱이 정말 부럽다.
* 역할에 대한 고민
어떤 일이나 자발적으로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다.
나는 일에 선을 긋는 것을 꽤나 잘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분명하게 내 의사를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살페에서는 그러면서도 미안했다.
왤까... 난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살페 다음날 아침 일찍 빗속을 택시를 타고 부안으로 향하면서, 마음이 적지않게 불편하다.
도움만 받고 돕지 못한 것이 불편한 걸까. 그래서 쓸데 없는 변명만 늘어놓게 되는 걸까.
내가 남을 돕는 일도 있고 남이 나를 돕는 일도 있는거다.
둘 다 언제나 사심없이 기쁘게 할 수 있기를...희망사항
숙식에 대해 이것저것 돌봐주고,
번개와 불편한 잠자리에서 구해준 도영에게 마음으로 부터 뜨겁게 고맙다...
그가 만들기로 한 웹포스터를 내가 대신 만들 때, 약간은 "대책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오해를 정정한다.
이런 재미있는 페스티벌을 준비한 다른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
폭우와 뇌우도 페스티벌을 망치지 못했다.
그 노고에 감동 또 감동.
저도 거한님의 생각에 어느정도 동의는 하지만, "넌 관념부터가 마초적이다"라고 환원하기 보다,
정치적으로 페미니스트가 되려는 남자의 가능성과 한계, 발화의 방법 등을 더불어 생각하고 싶어요.
페미니스트이려면 '여성'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하며, 그것이 얼마만큼 가능하며
그게 얼마나 효과적이고, 자신을 어느 위치에 설정해야 할지... 등등
글쓰기와 전략의 문제를 '성희롱'으로 비화되는 것,
돕의 사과문도 참 섯부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논쟁하고 토론하면 될 것을 경직되고 사과하고,
그래서 사태가 개인적 마초성으로 비화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게다가 그저 개인 블로그에 개인적인 생각을 쓴 것일뿐.
케샨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돕헤드님의 [민중은 여성이다] 에 관련된 글.
돕의 연작에 대해 뭐 그리 호들갑인가 싶지만,
그의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전유와 전복을 시도할 때에는 여러가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본다. 때론 전유와 전복은 유쾌하다. 특히 억압된 자가 억압한자가 만든 가치와 기호를 전유해서 유희할 때는 더욱. 하지만 그 와중에 전유하고 전복하려는 대상의 다양성과 그들이 위치해 있는 미세한 맥락, 변화, 역동성은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정치화되며 화석화되고, 과장되어 일반화되기도한다. 돕이 클리토리스에 빗댄 여성은 그런 맥락속에서 정치적으로 "신비화"되어 있다고 본다. (에드워드 사이드에 따르면 서양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재현체계를 만들어내고 신비화했듯, 그리고 대항세력이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신비화하는 것을 경계했듯.) 돕의 글에 나타나는 화자는 클리토리스의 쾌감이라는 생물학적 여성들의 경험적 사실을 자기 것으로 전유하려는 어떤 생물학적인 남자이다.
그것이 그의 말대로 자신의 남성성에 대한 반성에서 기인되었다고 하자.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남성성을 전복하고 해체시키는 방법으로 “여성”이 되려고 한다. 그리고 마치 여성이 된 듯, 그는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가져다 쓴다. 여기에 함정. 그의 “여성”이란 “내가 지향하는 새로운 주체성”, “ 내가 만들고 싶은 나 자신의 모습” 이라는 말에서 암시되듯, 그 속에서 현실의 여성은 사라진다. 여기서 “현실의 여성”이라 함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었든,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든, 구성되면서 변해가든, 이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무수히 많고 다양한 실체적 존재. 이들이 클리토리스에서 느끼는 것은 그 수만큼 다양할 것이고, 클리토리스를 미워하거나 예뻐하는 방법도 무수하게 존재할 터. 또 클리토리스에 대한 감정도 매우 복잡할 것.
다양성으로의 열림으로 향해가야 할 전유와 전복의 방식이 현실의 여성을 내쫓고 안에서 문을 닫는다. 여성의 신비화로 인한 소외는 계속된다. 그가 생물학적 남자라는 사실은 확실히 이러한 혐의를 가중시키기는 하나, 결정적이지는 않다. 만약 어떤 생물학적 여성이 칼럼에 여성에게 강요되는 질 삽입 오르가즘을 비판하고 클리토리스 자극을 통한 쾌감을 자기 경험에 비춰 옹호하는 글을 썼다고 하자. 물론 그 여자의 글쓰기 방식에 따라 읽히는 방식도 달라지겠지만, 클리토리스 쾌감을 느끼지 않는 여성들은 소외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것이다. (모든 글에는 분명 소외가 존재한다. 소외 없는 글은 없지 않을까!)
그 여성 글쓴이가 오히려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들과 수다를 떨 때에 무의식적으로 “글은 그렇게 썼지만 삽입 섹스를 할 때의 오르가즘도 정말 좋아”라고 말을 한다면, 나는 오히려 그 여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고 의사소통이 된다고 느낄 것 같다. 그 여성은 이데올로기적 규정이든, 전복적 의도이든, 자기의 외부 또는 내부에서 자기를 규정하려는 것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현실적인 존재로서 여자로 느껴질 테니까. 그러한 여유, 삶 속에서 자기를 규정하지 않는 풀어헤침, 전복한 것을 또 뒤집어보기, 반성한 것을 반성하기, 의식한 것을 의식하기, 자신의 모순을 바라보기가 가능할 것 같기 때문이다. (정치적 글은 이렇지 못하고, 문학적 글은 이게 가능하다. 그래서 문학이 좋다!)
헤드윅이 성기를 절제하면서까지 여성의 몸이 되기를 갈망한 것은, 그의 섹슈얼리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현실적 섹슈얼리티에 충실한 현실적 인물로 보인다. 영화가 갖는 정치성은 재현된 사회와 그를 둘러싼 맥락이 그의 존재의 전복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글쓴이 돕헤드는 자신에게 스스로에게 없는 쾌감의 이름을 붙이려한다. 그래서 결과는, 물신적이며 정치적이고, 돕에겐 미안하지만 상투적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 돕의 글에 여성을 전유하려는 남성의 시선을 발견하고 불편한 소외감을 느꼈다면, 그건 그 글의 상투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의 후속 글은, 여성을 자신이 바라는 민중상을 구축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충분하기 때문.
물론 여기서 정치적인 것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누구나 다 정치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문제는 그 방법이다. 자신의 지금의 남성을 해체하려 한다면, 여성까지 해체해야 한다. (어떤 이는 섹슈얼리티까지 해체해야한다고 할 거다. 그러면 얘기가 넘 복잡해지고...) 그 둘은 서로를 구성하는 과정에 있지 않은가. 마친가지로 여성성을 이용해 민중성을 그리려면 자기가 빗대려는 여성성이 무엇인지 부단히 스스로 물어보고 점검해야 하지 않은가. "삶은 여자다"라고 선언한 니체가 왜 개마초인지..., 역대의 훌륭하다던 남성 철학자, 사상가, 운동가들이 무수히 여자를 삶아먹은 그 역사를 생각하면 돕의 글에 대한 반응이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을까. 돕의 의도가 진정 그렇지 않았을지언정, 사회와 역사적 맥락에서 그나 나나 자유롭지 않으니...
개인적으로 돕 개인을 비판할 생각은 추어도 없다.
그가 솔직하든, 덜하든, 잘 드러내든, 숨기든, 의사 소통이 되든, 안 되든, 어쨌든 그는 그다. 보여지는 그이고, 그를 잘 못보는 사람은 잘 안 보이는 그이고, 더 잘 보는 사람은 더 잘 보이는 그일 뿐이다.
문제는 진정성이 아닌 방법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토요일엔 서울리데리티 모임을 띵까고,
이주분들이 하는 방글라데시 연극을 보러 마석엘 갔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한글 자막을 띄우고 한 연극이었는데,
그 자막 번역을 나, 붑사마, 돕헤드, 디디가 나누어 했다.
물론 마지막 수정, 정리, 파워포인트 작업은 금요일에 내가 전부 해야했다.
처음 일을 받을 때는 붑사마의 뒤치닥거리를 왜 내가 하나 하고
짜증도 많이 냈었다. 가뜩이나 교통사고 이후 회사일도 밀리고
컨디션도 안 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왕짜증이 폭발 직전이었다.
하지만 토요일 연극을 보면서 쌓였던 짜증은 많이 해소되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가구공장에서 잔업까지 하면서 바쁜 와중에
틈틈히 연극 준비를 하고 연습한 배우들과 스텝들의 열의와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할때는 그저 일로만 여겨졌던 자막작업도 나름 보람으로 다가왔다.
더 재밌었던 것은, 영화처럼 화면에 자막을 붙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연극 무대 옆에 건 스크린에 자막을 쏴,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일일이 키를 누르며
대사를 맞춰야 하는 왕 아날로그방식의 일인지라,
붑사마가 직청직해를 통해 자막 키를 누르면, 나는 옆에서 "이 대사 자막 두번, 이건 세번" 하는
식으로 자막의 갯수를 속삭여주어야 했던 것. 다행히 약간의 버벅거림을 제외하곤
실로 완벽한 씽크가 아닐 수 없었다.
연극 자체엔 몰입할 수 없었지만 제법 신선한 체험이었다.
일요일은 비가 오는 바람에 산행을 취소하고 집에 틀어밖혀
위화의 신작 "형제"를 읽었다. 3권으로 되어 있는 이 긴 장편 소설을
벌써 하룻만에 1권을 읽어치우고, 오늘 또 서점에 가서 2권을 살 예정이다.
"살아간다는 것"과 "허삼관 매혈기"을 읽고 범상치 않은 작가라 여겼는데,
이번 형제 1권도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공리가 나오는 "인생"을 영화로 봐서 그런지, 아니면 위화의 소설의 문체의 효과인지,
그의 소설을 보면 중국 문화혁명기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마치 책위에 영상으로 재현되는 것처럼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 번역도 왠만한 국내 소설가 뺨치도록 언어를 풍부하고 감칠맛 나면서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다.
대단한 번역가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그런지, 중국어와 일어 번역은 다른 언어 번역에 비해서 매끄러운 편이다.
영어나 다른 유럽어의 번역을 읽다보면 아무리 훌륭하다 이름난 소설도
어색한 문어체와 번역투가 눈에 걸려 제대로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미국 베스트셀러 미스테리 작가들의 소설의 경우, 급조한 번역티가 너무 심하게 나서
소설에 빠져들어가는 데 엄청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가급적 영어는 원서를 보려고 하는데, 한권을 감상하는데 시간이
번역본의 몇 배 가량이 걸리는 것이 문제다.
요즘은 한글로 된 소설을 주로 읽고 있다.
요 몇 개월간은 영어 소설을 몇개 읽었는데,
이야기 구조에 빠지면 재미가 있지만, 역시 영어인지라 시간도 걸리고 은근히 스트레스도 된다.
왜 스스로 스트레스를 주어가며 책을 읽나, 하는 생각으로
한 달 전부터 성석제 소설을 시작해서 주로 한글 소설을 읽고 있는데,
하도 오랫동안 소설을 읽지 않은지라,
어느 소설을 읽어야 할지 서점에 가면 고르기가 쉽지 않다.
이 글을 읽는 친구들에게
훌륭한 한국 작가와 작품을 추천해주길 바람.
트랜디 한 거 빼고.
사회복무제 도입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대체복무제가 오늘쯤 발표가 날 지 모르겠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오늘 기사를 검색해보니... 두둥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는 쏘옥 빠지고
여성, 신체등급 5급이하, 중학교 미졸업자, 혼혈, 귀화자 등 소수자들도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준단다"!!! 그것도 22개월씩이나!!
"고맙기도 하여라~
젖같은 울 나라를 위해 병역의 의무를 못한게 내 인생의 한이었는데..."
역시 애 안 낳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었어.
근데 왜 다들 잠잠한 거지?
나같이 약간의 매닉증세와 스트레스로 상기되기 쉬운 사람에게는
비오는 날이야 말로 푹 가라앉을 수 있는 좋은 날이다.
사나흘 하루종일 비가 오면 기분이 튬튬해지는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던 옛 사람, 묻어두었던 옛 일들이
사무실 커피향기처럼 은은하게 퍼져온다.
하지메가 일본으로 아주 살러 간다고 해서 정말 아쉬웠다.
커다란 눈에 짙은 눈섭 완소미남형(이라기 보다 "하지메짱"에 어울리는 귀여운 얼굴 ^^)에
내가 좋아하는 아담 사이즈...
서울리데리티를 함께 하면서, 단순한척 하지만 생각이 많고
노는 걸 좋아하지만 의무와 책임에도 충실한 사람인 걸 알았다.
올해 새로 태어난 딸내미 린이를 안고 수유 놀이방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어제도 기념 부채에 그림을 그려주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붑사마도 감동되었는지, "우리도 하나 가질까, 내가 키울게"하는 바람에,
"시 꺼"라고 쏘아주었지만...
비오는 날이야 말로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정리하고 쓰기에는 좋은 날이지만,
책상 위에 오늘 처리해야 하는 수북한 일감들을 바라보니
압박 밀려온다... - -;
요즘 기가 허하다.
기가 허하니 남들 에어컨 바람이 다 춥다는데
사무실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졸고 앉았다.
일주일전 시작한 요가는 아직 별 효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요가 선생은 기가 아래에 쌓이지 못하고 위로 자꾸 위로 상승하는 바람에,
목도 아프고 어깨도 결리는 거라고 한다.
그럴때는 들어마시는 숨을 강하게 내쉬는 숨은 자연스럽게 놔두라고 한다.
요즘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을때 의식적으로 가슴을 내밀고 허리를 꽂꽂하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확실히 목 디스크는 안 좋은 자세에서 생기는 게 맞다.
가슴을 내밀고 턱을 당기면 허리에 힘이 실리는 대신 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35평생을 굽은 등에 거북이 목처림 쭉빼놓고 살아온지라,
허리에 힘을 주는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잘때에는 부깽사마의 조언대로 수건을 말아서 목에 받치고 자려고 노력한다.
장시간 야근과 컴 업무로 인한 "경추부 염좌"라는 진단을 받고
산재처리를 한 것이 어언 4년이 넘었다. 한마디로 목이 삔거다.
약 두달 동안 11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을 정도로 빡세게 일한 적이 있다.
어느날 일어나니 등에 담이 잔뜩 걸려서 목이 안 돌아가는 거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교정지를 한참을 보고 있는데,
아주 기분나쁜 둔중한 통증이 내 어깨와 목을 짓누르며
급기야 회사를 조퇴하기에 이르렀다.
병원에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의사 말이,
살짝 ㄷ자처럼 되어 있어야 할 목뼈가 / 이렇게 뻗어있다며,
"한번 치면 확 날라간다. 조심해라" 하는 거다.
당시 순진하고 겁많은 나는 탁 치면 확 날라간다는 말에 쫄아서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 후로 약 한달간을 하얀 목보호대를 목에 찬 채로 지내야했다.
목보호대를 차고 일하고, 밥먹고, 심지어 사내MT에 가서
퀸의 "I want to break free"를 부르며 장기자랑도 했다.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던 사장님,
급기아 "올해의 우수 사원"이라며 연말에 표창까지 주셨다.
목이 부러져라 일하라!는 것이 사장님이 나에게 표창을 한 깊은 뜻이리라.
또 그때는 바야흐로 붑사마를 막 만나 유치짬뽕 닭살연애를 시작하려던 무렵이었으니,.
물리치료실에 누워 붑사마가 보낸 유치짬뽕 닭살 크리스마스 이카드를 떠올리며
아픈 목을 부여잡고 '이눔이 나를 좋아하는 게로구나"며 므흣해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겨울이라 목보호대를 한 위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명동성당 앞에서 그를 만났다.
하지만 처음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부시시한 머리에 허연 목보호대를 하고 뻣뻣하게 서서
아침이라며 고구마를 찌어 바치는 내가 얼마나 괴기스러웠을까.
여튼 지금껏 약 4년은 삔 목과 함께한 세월이었다.
오늘처럼 기가 허하거나 피곤하면
목과 어깨가 알아서 가장 먼저 반응이 온다.
대부분 사무 노동자들이 이런 증상들을 하나 둘 씩은 다 가지고 있다.
장시간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들기고 신경을 쓰다보니 생기는 직업병이다.
주변에 목디스크를 수술하거나 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솔직히 하루 8시간 이상 똑같은 자세나 동작으로 일을하면 몸 어딘가에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히 분화되어 컨베이어 벨트에 결박된 공장 노동자들,
컴퓨터에서 자판을 두드리거나 서류를 파야하는 화이트 컬러들,
하루종일 운전대만 잡고 앉아 있어야 하는 택시운전사, 전동차 기사, 버스 기사들,
공사장 인부들, 가사 노동자들, 대규모 농장 노동자들,
영양돌솥밥의 무거운 돌그릇을 나르는 종업원들,
평균수명이 가장 낮다는 글쟁이, 기자들, 강훈련으로 고달픈 운동선수들 등등
다들 한군데씩은 삐걱거릴게다.
현대의 직업 중 일하면 저절도 몸도 함께 건강해지는 직업은 무엇일까?
갑자기 궁금해지누나.
일단 이번주 토요일은 친구들이랑 소박하게 의정부까지만 가자.
다음에는 동두천에 있는 소요산까지 가보면 어떨까?
자전거도 타고 산도 타고
너무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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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렛나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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