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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벼룩시장에 참여하세요~
불법 사람? 불법 노조?
지금 전국에는 하루에도 한 지역에서만 몇 십 명씩 이주노동자들을 잡아가는 살인적인 인간사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비극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지난 2007년 2월 그 끔찍했던 여수 보호소 화재 참사를 기억하십니까? 단지 생계를 위해 타국에 와서 노동을 한 대가치고는 너무나 혹독한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불법”사람이기를 거부하고 노동자로서의 인권과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전면합법화와 고용허가제에 반대하여 힘겨운 2004년 명동성당 농성투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이주노조가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노조의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 노조 위원장 아노아르를 불법 연행해 청주 보호소에 1년여를 감금했습니다. 그러나 이주활동가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마침내 2006년 2월에 고등법원으로부터 이주노조가 합법적인 조직임을 인정하는 판정을 받아내게 됩니다.
그러나 정부는 2007년 여름부터 또다시 대대적인 이주노동자 단속에 나섰고, 이주노조를 완전히 말살시키기 위해 11월 까지만 위원장을 비롯한 핵심 활동가들 대부분을 연행, 추방하였습니다. “불법”이란 말로 이주노동자를 마음대로 쓰고 버리면서, “불법”이란 말로 이들의 노동기본권인 단결권마저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현재 남은 이주노조 활동가들은 2007년 12월 5일부터 현재까지 영하의 매서운 날씨 속에서도 종로 기독교 회관에 마련된 농성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외로운 추방의 길
이주 활동가들에게 추방이란 엄청난 고통입니다.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생업도 포기한 채 투쟁에 매달린 이들에게 추방은 타국에 와 일한 보람도 없이 발가벗겨진 채 허허벌판으로 내쫓김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을 쉽게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쪽에서와 같이 그쪽에서도 같은 삶, 같은 투쟁, 같은 지원과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빈 자리를 메울 이주 활동가들에게 힘을 주는 것입니다. “추방되면 끝이다”라는 두려움에 움츠러들지 않고, 표적단속에 꿋꿋이 맞서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입니다.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벼룩시장
그 동안 이주노동자 운동의 변두리를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이 모여, 이주노동자 운동을 후원하기 위해 조그마한 벼룩시장을 열었습니다. 쓰지 않지만 깨끗한 물건들을 모아 필요한 이들에게 판매해서 그 수익금을 표적단속으로 강제출국 당한 활동가를 돕고 이에 항의하기 위해 추운 날씨 속에서 농성중인 이주노동자를 후원하는 데 쓰게 됩니다.
<참여방법>
물건을 기증하실 분들은,
1. 매주 토요일 오후 2시-6시반에 홍대입구역 4번출구 근처의 <스트레인지 프룻 Strange Fruit> 카페로 물건을 들고 오시면 됩니다.
2. 물건의 부피가 크거나(예, 자전거, 책상 등) 지방에 거주하시는 분들, 혹은 토요일에 시간이 안 나시는 분들은 벼룩시장 카페(http://cafe.daum.net/s-market)에 가입한 후 기증물품에 대한 정보를 올려 직거래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직거래 대금은 물건을 사는 사람이 후원계좌로 바로 송금합니다)
3. 단체나 사무실 등에서 물건을 모아주시고 연락을 주시면 저희가 가지러 가겠습니다.
물건을 사고 싶으신 분들은,
1. 매주 토요일날 <스트렌지 프룻> 카페에 오시거나,
2. 게시판에 올라온 물건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찜하신 후 직거래하시고 후원계좌로 물건대금을 입금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581202-01-314308 이미영(합법화모임)
문의: 016-270-9811(비루)
벼룩시장 온라인 카페: http://cafe.daum.net/s-market
스트렌지 프룻 카페 오는 길
오시는 방법>
1)홍대 입구역 5번출구로 나오셔서 오른쪽에 농협끼고 직진하시다가
2)걷고싶은 거리가 나오면 왼쪽방향으로, 끝까지 오신 후
3)산울림 소극장 방향(오른쪽)으로 조금만 올라오시면
4)왼쪽에 우리 돌곱창 지하, <스트렌지 프룻>입니다.
올해의 투쟁 화두는 "대운하 반대"가 되지 않을까?
2003 파병반대
2004 이주노동자 농성
2005 닐뤼리맘보
2006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2007 역시 닐뤼리
2008 대운하 반대
일과 놀이를 만들어내고,
공부할 거리를 찾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일은
웅덩이에 고인물을 흐를 수 있게 도랑을 내는 일이다.
그 물이 어디로 흘러가건, 흘러가는 물은 썪지 않고
나를 쉼없이 전과는 다른 장소로 옯겨놓는다.
하지만 지금 현재 나는 순환되고 있지 않다.
*
여전히 개발주의적 발전주의적 사고방식은 나를 지배한다.
그것은 젖먹이 때부터 길들여진 생각의 습관.
어머니, 아버지때부터 일본으로 막노동을 떠나신 할아버지 때부터
근대라는 시간의 패러다임을 살아온 나와 이들에겐,
3차원인 세상에서 4차원, 5차원은 그저 허구일 뿐.
굴딱지 같은 견고한 세상과 그만큼 지긋지긋하게 견고해진
나의 에고와 껍질, 안온하면서도 답답한 그 현실.
먹고살만 해서 안온하고,
내 삶의 잉여를 채우지 못해 답답한...
*
회사와 집이라는 차원 속에서 그들의 삶은 나와 별개이다.
회사와 집을 둘러싼 사회라는 차원 속에서 그들의 삶은 나와 연관되어 있다.
이 연관성을 예전에는 매체를 통해, 그 다음에는 친구를 통해, 친구의 친구를 통해 맺어왔다.
지금은 직접 맺을 수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떠난 삶의 잉여에서 빚어진 이 인연들의 깊이는 얼마일까?
*
먹고사는 문제가 지나치게 과장되었슴을 인정한다.
하지만 소박함으로 돌아가 중심을 잡는 일이란 또 얼마나 어려운지.
*
2차선도 안되는 도로위에 사람과 오토바이와 창문이 떨어지고 매연이 뿜어져나오는 택시와 버스들이 서로 얼키고 설킨 가운데, 릭샤를 타고 네거리 어느 한쪽에서 오도가도 못했던 경험. 예전에는 식수원으로 쓰였을 동네의 커다란 연못이 온갖 쓰레기와 배설물들로 오염되어 방치되어 있는 것. 그것이 방글라데시에 관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기억이고 그래서 방글라데시 그 자체이다.
*
어렸을때 그의 기억은 참으로 행복했다. 지금의 그를 보면 참 맑은 시절을 보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도 돌아갈 수도 없다.. 그는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롭고 보다 질서정연해 보이는 나라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멸시와 차별을 받으면서 돈을 벌며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더이상 예전과 똑같이 그립고 예전과 똑같이 매연과 무질서와 부패와 가난으로 가득한 그 나라를 견디지 못할 거라고 한다. 과거를 미화하는 정신의 작용으로 그의 어린시절은 아름다왔던 걸까? 아니면 보다 상위의 가치체계에 포섭되면서 내려다보게된 그 삶이 평가절하되었던 걸까?
*
빨갛게 녹슨 병뚜껑이 달린 병에 망고 짱아치를, 아스크림통이었을 낡은 플라스틱통에 기름에 절인 쇠고기를 가져올 것이다. 나를 위한 새해선물. ..
추방되었다는 미누씨가 그 미누씨인가?
이슈가 터질때마다 광화문에서 만나고 하던 그 네팔의 미누씨?
몰랐다.
지하철 운행중 용변을 보려다 맞은편 기차에 치어 사망했다는
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참 기가막히다.
일을 빙자해서 기본적 인권이 방기되는 일은 주변에도 허다하지...
디디의 말에 따르면, 논쟁할때 열오르면 지긋이 양 손을 무릅에 올려놓고 요가 명상모드로 돌입하신다는
그분, 이진경 선생의 인터뷰가 프레시안에 실렸다.
몇 개 주옥같은 구절이 있어 인용해본다.
대부분의 시민운동은 주류화되었다고 평가하며 마이너들의 연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운동하는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귀속시켜서 운동의 전망을 찾아내는 일이 흔해졌다. 이런 게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 이해관계를 가로지르고 계급적 경계를 횡단하는 연대를 통해 공통성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이미 갖고 있는 공통의 속성이 공통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이너들 간의) 공통성을 구성해 나가는 연대가 이후 운동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있는 공통성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공통성을 구성해 나가는 일... 맞는 말이다.
있는 공통성을 찾는 거면, 언제까지고 각자의 이해에 매달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주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는 영원히 연대하지 못하고 처해진 상황대로 구도대로 적대해야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개념에서 공동의 적(가령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본주의)을 상정하는 것도 효과없다고 본다. 그걸 읊는 건 세뇌에 가깝다. 각자 생활의 불만에서 시작하되 결국엔 자기의 이익을 내어주더라도 원하게 되는 그런 공감의 상태, 이기심이 자연스럽듯이 이타심도 자연스럽게 되는 그런 상태, 양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운동... 그런 걸까?
그리고 사람들이 다른 종류의 삶에 눈뜨지 못하면 개발주의와의 싸움에서 언제나 패배할 거라는 것.
하지만 다른 종류의 삶...두렵다. 그게 두려우면 나는 이미 보수화되었다는 건데...
무나, 하지만 니가 어쩔꺼냐? 넌 이미 소수자인것을... 아무리 보수화되어도 보수 사회가 너를 받아주지 않는...
http://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71128114339
마숨, 라주, 까지만
할딱 거리는 이주노조를 끈질기게 끌고온 이들이
오늘 아침 모두 출입국에 잡혀갔단다.
너무 어이가 없다.
몇 주 전에도 검, 나딤 등이 잡혀갔었다.
정말 암울하다...답답하다...
드디어 이를 싸그리 치료해야 할 시점이 왔다.
강남 U치과 견적 160만원,
회사 근처 D치과 견적 205만원(실충치 제외)
요즘 치과들은 의료보험이 되는 충치 떄우는 데 쓰는 아말감이 몸에 좋지 않다며
의료보험 안 되는 레진(치아 색깔나는 재료)을 권한다.
그 결과 충치 하나 때우는데 5만원을 호가...
어렸을때 의료보험으로 이 때우면 정말 몇 천원 안 했는데,
정말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이다.
그나저나 공포 공포 공포...
옛날 사람들은 이도 안 때우고 어떻게 평생을 밥먹고 살았나?
1. 옛날 사람들은 요즘처럼 단 것을 많이 먹지 않았다.
2. 충치가 있어도 그냥 참고 살았다.
수명이 길지 않은 관계로 이 못쓰게 되는 때가 바로 운명을 다하는 때가 아니었을까.
(참으로 자연스럽도다~)
3.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충치를 질병으로 인식한것은 현대의학에 와서이고, 돌에 이끼가 끼듯 치석이 끼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결국 의료의 자본화와 연결.
벗,
아무리 이렇게 생각해본들
내 충치를 사랑할 수는 없는일.
갑자기 강박적으로 이를 닦던 친구의 모습 인서트...
그가 팍팍 이해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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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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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매닉님저는 연세대학교에서 HCI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연구원으로 현재 팀블로그에 대해서 연구중입니다. 해서 팀블로그 사용중이신 분들에게 팀블로그 사용경험을 바탕으로 설문을 좀 부탁드리고 싶은데, 가능할런지요? 제 이메일(sunseed@yonsei.ac.kr)으로 연락부탁드리겠습니다.
팀블로그 사용자 분들이 아직 많지 않으신데다, 아랫집 팀 블로그가 훌륭히 운영되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워서 매닉님의 설문이 아주 소중하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연말 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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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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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dear dongji,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or you and mahb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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