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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전인가.. 없는 시간을 쪼개어 휴가를 갔었더랬다. 앙코르와트를 돌아보고 나서 그래도 휴가의 한자락은 해변에서 보내야지 하는 생각에 방콕에서 비교적 가까운 꼬사멧섬으로 홀로 갔다는 거 아닌가. 뭐 바다 빛깔도 고왔고, 대나무로 만들어진 방갈로도 운치 있었지만 문제는 도무지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틀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내다가 나오는 날 다시 혼자는 해변에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어찌어찌 또 해변에 와 버린 것이다. 사실 내 인도차이나 여행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인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의 작가 유재현의 <시하눅빌 스토리>라는 소설 제목에 끌린 바 크긴 하나 오기 전 그 소설을 결국 못 읽었으니 그 핑계를 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캄보디아는 갈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핑계나 대기로 한다.
오쯔띠알 해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첫날은 바다를 지척에 두고도 그냥 숙소에서 TV나 보고 지낸다. 일행과 시간을 맞추다보니 너무 바쁘게 다닌 탓이지 아님 선풍기나 에어컨 탓인지 딱히 감기는 아닌데 목도 아프고 몸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아직 제대로 된 여행자가 못 되서 그런지 쉬는 것도 잘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각 같아선 맘에 드는 작은 마을을 만나면 며칠이고 쉬어가고 싶은데 막상 작은 마을이 현실로 다가오면 괜히 답답해지면서 여기서 뭐하고 지내지 하는 마음에 금세 짐을 싸게 되는가 하면 도시에선 자꾸만 움직여야 하는데 하는 초조함이 든다. 다행히 해변에서야 그리 답답할 것도 많이 움직일 것도 없어 그냥 쉬기에는 가장 적당한 장소이지만 그도 하루가 지나니 좀이 쑤신다.
결국 햇빛을 피해 아침부터 바다로 나가본다. 그저 해변이나 걷다가 햇살이 퍼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 올 생각이었다. 해변에는 제법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다. 오쯔띠알 해변은 자국민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몇군데 되진 않지만 여태까지 가본 동남아 해변에서 늘 서양 여행자만 득시글거렸는데 여름 휴가라도 온 듯한 가족들을 보니 마음이 편안하다. 더러는 버리바리 싸온 음식들을 풀어놓고 먹고 있는가하면 더러는 아이들과 함께 모래성도 쌓고, 모래 찜질도 하며 한가한 시간을 즐긴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같이 갔던 여름휴가가 겹쳐지면서 이내 행복한 기분이 된다.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
해변에서 노는 어른들
결국 제법 긴 해변을 끝에서 끝까지 걷고도 숙소로 들어가기가 싫어져 그냥 비치 의자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하지만 해변에는 행복한 가족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거의 일분에 한 번 꼴로 무언가 사라거나 돈을 달라거나 하는 사람들과 마주쳐야 한다. 여기는 물건을 사라고 보채는 상인들이 거의 아이들인데 서너살짜리로 보이는 꼬마부터 제법 큰 아이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그나마 팔찌 등의 조악한 약세사리나 불량 식품 비슷한 먹을거리를 들고 다니는 아이는 좀 나은 편이고 캔이나 병 따위를 모으는 아이들이나 그냥 구걸하는 아이들도 여럿 있다. 안쓰러운 마음도 잠시 좀 지나니 누군가 다가온다 싶으면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그래도 그냥 가는 경우는 없고 옆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는 가는데 결국 30분쯤 뒤에는 똑같은 아이와 또 부딪치게 된다.
이렇게 앉아서 하루종일 사람구경이나 한다.
그러다 해가 진다.
해변에서 하루를 빈둥거리다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에 들어선다. 마침 옆자리에선 캄보디아 아저씨들이 술자리를 벌이고 있다. 옆자리 남자들은 여느 캄보디아 사람들과는 달리 배까지 나온 아저씨들이다. 그 옆에서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남자애 하나가 맥주캔이 비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그 아이는 내가 들어가고 술자리가 끝나기까지 이삼십분을 기다려 캔 2개를 더 챙긴다. 그러더니 종업원들의 눈을 피해 주섬주섬 남은 음식들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뭐 남긴 게 없는 듯 손가락으로 음식 찌꺼기 몇 개를 집어먹고 만다. 마침 입맛이 없어 밥을 깨작이고 있던 나는 이거라도 먹으라고 하려다 왠지 미안한 마음에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아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왜 처음부터 접시 하나 더 달라고 해서 밥 덜어줄 생각을 안했는지 후회하고 있는 사이에 또다른 여자애 하나가 다가오더니 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다. 고개를 끄덕였더니 까만 비닐봉지에 남은 밥을 담아서 간다.
오죽하면 아이들을 저렇게 내몰까 싶어 안쓰럽다가도 애들을 이용하면 물건이 더 잘 팔리니 저러겠지.. 그러니 저 물건을 사주면 저애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저런 애들을 더 많이 만들게 되는 거야.. 라며 영악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건 좀 아니다 싶다. 그냥 좀 못사는 거 하고 밥을 못 먹어 배가 고픈 거 하곤 가난의 차원이 다른 거다. 그 애가 배가 고플 거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멍하니 있다가 계산을 하고 그 애가 사라진 쪽으로 따라가 본다. 뭐 어찌할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지만 다시 만나게 되면 밥이라도 한 끼 먹이고 싶다. 하지만 그 애는 보이지 않고 어둠이 내려앉은 해변 가득 또다른 그애들이 여전히 무언가 팔러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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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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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글이 오르면 자랑쟁이가 되려고 했었는데, 막상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아이들이 떠오르네. 프놈펜 글을 읽고 댓글을 못단 것도...에휴, 그래서 구걸하는 아이들이 없는 도시나 관광지가 아닌 곳은 천국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우.부가 정보
언니야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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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은 막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이리 고운 모래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세상이 참 넓다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 드네 언니야...따뜻한 나라에 있는 때로는 적적하겠지만 그 곳에 있는 언니가 부러워...부가 정보
ko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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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경하는 저 의자, 태국에서 보트트립하다 내려준 섬에도 똑같은 거 있었다. 앉으면 5백원 내라고 해서 땡볕아래 개겼다.음음, 바보같았어.부가 정보
일산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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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생활비가 1달러인 가난한 나라 아이들에 대한 방송프로를 본게 생각나네... 그곳의 날씨와 추운 한국의 날씨 만큼이나 1달러의 가치는 너무나 달랐어. 과연 다른세상은 가능할까? 쿠 근데 쿠에게도 1달러가 하루 생활비인가^^ 너무 알뜰했는데^^부가 정보
김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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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가뜩이나 외로울텐데 가슴시린 풍경을 혼자 감당하려니 착찹하겠어. 이럴 땐 누군가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야. 일산방향을 향해 소리질러 "야 이 나쁜놈들아~!!" 이번 주말에 비교적 큰 규모의 일산반상회가 예정돼 있는데 한정식과 수제맥주로 코가 삐뚤어지기로 했거든.부가 정보
j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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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캄보디아내내 앙코르와트만 빼고-거긴 캄보디아 아님- 여러가지로 복잡했음. 맘 복잡해서 어떻게 촬영까지 하고 다녔는지 참.. 생뚱맞게 그 촬영테잎이 보고 싶어지네<언니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없다. 뭐 한때는 적적했지만 지금은 한국사람들이 발에 차이는 카오산에 있으니 또 한적한 게 그립네..개구리 올챙이적 생각못하는 거지 뭐
<쿠> 저거 태국산일거유.. 이 나라 만들 수 있는 공산품이 없다니..언니의 여행은 심하게 알뜰했나보이.. 어찌 살았수? 난 갈수록 개념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유
<일산주민> 그래도 여행자거리에서 1달러는 돈도 아니라는.. 1달러가 꽤 큰돈일거라는 착각을 순식간에 없애주기도 하는 것 같아.. 실제로 얼마쯤 되는 돈일까 모르겠어.
<김박사> 말이라도 고맙네.. 언제 정말 착찹하면 함 시도해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한정식이야 뭐 그렇다치고 수제 맥주라니 이젠 맥주까지 만들어 마신단 말인가.. 거의 경지에 이르렀군 쩝 나도 가고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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