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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뽓에서 프놈펜으로 돌아와 하루를 더 묵고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엡리업행 버스를 탄다. 씨엡리업은 한 번 기본 곳이기도 하거니와 여행 이후 처음으로 한국인 숙소를 찾아갈 예정이어서 여느 때보다 편한 마음이 된다. 숙소에 짐을 풀고 로비에 나가봐도 그 말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서 꽤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주인도, 다른 한국인 여행자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공원 쪽으로 나가본다. 거리는 제법 큰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도로도 말끔이 포장되어 있다. 음.. 여행 많이 다닌 인간들이 여기는 너무 변해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공원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그리 크지도 예쁘지도 않다. 인간이 참 간사한 게 내 기억 속의 그 공원은 한번쯤은 책이라도 들고 뒹굴거리고 싶은 공원의 전형처럼 기억되어 있는데 막상 보니 조금 실망스럽다. 그래도 벤치에 조심스럽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놀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시킨다.
아까 거리에서 잠깐 눈이 마주쳐 하이하고 지나쳤던 동양남자다. 서른 너댓이나 되었을까..여행자 같지는 않은 게 세상이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서 있다. 앉아도 되겠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여행자 대화가 시작된다. 일본인이냐고 물었더니 타이완 차이니즈란다. 사업차 이곳에서 9달을 살았는데 9년은 된 것 같단다. 어딘가 나른해 뵈는 인상이 그런대로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레드피아노를 아냐고 묻는다. 물론 안다-안젤리나 졸리도 다녀간 씨엡리업의 유명한 카페다-고 했더니 자기가 살테니 맥주나 한 잔 하러 가잖다. 잠깐 망설여지긴 했지만 아직 대낮인데다 여긴 길도 알고 있고, 술값이야 뭐 사기당해야 맥주일테고.. 하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반 음주욕구반에 따라 나선다. 뚝뚝을 타고 카페에서 내려 맥주를 시킨다.
의심점1. 뚝뚝을 타고 가는데 내릴 때 1달러를 주는 게 보인다. 보통 그 거리면 현지에서 오래 살았다면 1/4정도만 주는 게 정상이다. 뭐 그냥 돈 많은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순식간에 맥주 2병이 비워진다. 어.. 이건 거의 한국남자랑 먹는 수준인데 싶을 만큼 속도도 빠른데다 꼬박꼬박 잔도 채워 주지.. 매번 건배도 하자고 하지.. 게다가 안주도 먹겠냐고 물어보지.. 아 타이완이랑 우리랑 그냥 문화가 비슷한가 보다 싶다가도 너무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결국 둘이서 거의 한시간만에 앙코르비어 큰병 6병을 죄다 비우고 나니 이번엔 노래 좋아하냔다. 노래야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앙코르와트에 가라오케라니 신기해서 한국노래도 있냐니까 중국노래, 영어노래, 캄보디아 노래 다 있단다. 그래.. 가보자 가봐.. 설마 뭔일이야 있겠어.. 내가 나이가 몇갠데.. 정 안되도 주머니에 칼도 있겠다^^너하나 정도는 내가 무력제압이 가능하겠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줄래줄래 따라간다.
의심점2. 술값을 낼 때 내껀 내가 내겠다고 하니 극구 사양하면서 남자가 술값을 내는 게 동양의 문화 아니겠는냐고 하는데 내 보기에 뭐 동양이 다 그런거 같진 않다. 그러나 그냥 대만은 그런가보다 한다.
다시 뚝뚝을 타고 카라오케로 옮기는데 거의 100m도 안되는 거리다. 그냥 걷지 하면서 돈을 낼려고 하니 이번에도 지가 낸다. 이번에도 1달러다^^ 웨이터들은 어디나 비슷한지 아님 이 아저씨 여기 단골인지 매우 친한 척을 하고 수선을 피우더니 방으로 안내를 한다. 가라오케는 한국의 노래방처럼 생겼는데 룸이 제법 큼직한 게 어찌 보면 변두리 룸살롱처럼 생긴 게 분위기가 묘하다.
의심점3. 웨이터들이 내가 들어서니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이 아저씨야 대만사람이니 일단 나한테 한 거라고 봐야 하는데 내가 한국인이요하고 써 붙인 것도 아닌데 어찌 알았을까 싶긴 했지만 씨엡리업에 한국사람이 워낙 많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일단 과일 안주가 들어오고 술이 탁자위에 놓인다. 드디어 이 시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니 어디선가 들리는 또렷한 한국말 <오.징.어. 드.실.래.요.> 잠시 귀를 의심하다 이 아저씨를 쳐다보니 대략 난감한 얼굴이다. 내가 정색을 하고 묻는다. 가만있어 봐요. 지금 한국말 했죠. 한국말 할 줄 알아요?. 그러더니 다시 영어로 딴소리다. 한국말 아는 거 같으니까 한국말로 물을께요. 당신 한국 사람이예요? 했더니 그제서야 한국말을 한다. 한국 사람은 아니고 화교인데 한국에서 열여덟살까지 살았단다. 그때 기억이 안 좋아서 한국말은 하기 싫다고 하면서 주섬주섬 증명서 같은 걸 꺼내 보인다. 순간 술이 확 깬다. 사기꾼이구나 싶다. 마음 한켠으로 이 말이 사실이면 좀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 묻는다. 당신 사기꾼이에요? 다시 대답은 영어다. 내가 뭘 사기를 치겠느냐면서 여기 술값? 하더니 미리 계산하겠다고 웨이터를 부른다. 그래서 먼저 계산을 시킨 후 여기는 막힌 공간이라 내키지 않는다고 일단을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밖에서 한 잔 더하자고 하곤 가방을 들고 나오다 그 사람이 화장실에 간 사이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와 버린다. 덕분에 공짜술만 엄청 먹었다^^담날 정신을 차리고 곰곰 생각해보니 그 자식이 나한테 사기를 친 게 아니라 내가 그 자식한테 사기를 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봐도 올릴 사진은 없고 안 올리자니 서운하고 그래서 골랐다. 앙코르톰의 부조인데 웬지 약오르지? 하는 거 같은 느낌이라 하나 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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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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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의심을 만드는 것인가? 서울이라면 올타쿠나 했을 상황인것을...부가 정보
ko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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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동행이 한두명만 더 있었어도 퍼져서 마셔버리는 건데. 사실을 말해보슈. 그 남자 안 생긴 거 맞지?부가 정보
일산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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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황당한 시추에이션인데^^ 곰곰 생각하면 할수록 웃길거 같아. 정말부가 정보
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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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 속내가 진정 뭐였을까.....궁금하군...^^::..황당해할 그 친구 표정 생각하니 정말 웃기는군....ㅎㅎㅎ..부가 정보
xo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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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앙코르를 갈 여인들을 위해 그 인간의 몽타쥬라도 퍼뜨려야 되는 거 아냐? 다들 공짜술 마시려 몽타쥬 들고 찾아 헤메는 풍경^^부가 정보
j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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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글치.. 환경이 의심을 만드는데 한 표. 남자에게 홀려 여권이랑 여행경비 날리고 여행은 중도하차했다는 전설이 될 수는 일 아니겠수?<쿠>안생겼으면 따라도 안갔수.. 뭐 잘생겼다기보단 약간 나른하게 생긴게 뭐 내 타입이었다고나 할까 ㅋㅋㅋ앞에서 밝혔듯이 여행이 죄요.
<일산주민> 둘이 있을때 그런 일이 생기면 정말 퍼져서 마셔버리자구.. 음
<투덜> 내가 젤 궁금한게 바로 그거라니.. 정말 호감이었으면 좀 아까운데 쩝. 영어로 떠드느라 고생한 내 시간 돌리도..
<조커> 20년 젊은 황철민 이사장처럼 생겼어.. 뭐 몽타쥬 따로 그릴 거 없이 황이사장 20년 전 사진을 돌리슈^^ 글고 그 인간도 사람인데 또 당하겠어. 수법을 바꾸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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