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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로 가는 길에 바라본 ,프놈펜 시내는 한나라의 수도라기보단 그저 지방도시 같다. 한나라의 수도에 시내버스도 미터택시도 없고, 길도 중앙도로 몇 개를 제외하면 대충 비포장도로다. 그나마 아침에 두어시간 내린 폭우로 군데군데 도로가 잠겨 있다. 그래도 우리를 태운 툭툭은 물웅덩이를 이리저리 피해 한 삼십분을 달린 끝에 킬링필드 앞에 내려준다. 킬링필드로 불리는 이곳은 프놈펜에서 약 15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쯔엉아익이라는 곳으로1980년에 발견된 폴폿 정권의 집단학살지인데 이곳에만 약 8,900여구의 시신이 집단 매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킬링필드에 들어서면 일단 위령탑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80m 높이의 위령탑 가득히 유골이 전시되어 있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한편으로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맘이 복잡해진다.
킬링필드내의 위령탑
위령탑 가득 유골이 들어있다. 정작 캄보디아인들은 영혼이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무슨 마음으로 유골을 저리 쌓아 둔 것일까
위령탑 근처의 들판에는 여기저기 웅덩이가 패여 있고 적게는 수십 구에서 많게는 수백 구까지 시신이 발견된 곳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그나마 아직 수습되지 않은 혹은 수습하지 않은 옷가지며 뼈들이 바닥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나마 학살지 여기저기에 유남히 까만 캄보디아 아이들이 관광객들을 따라다니며 “핼로핼로원투쓰리스마일.. 핼로핼로원투쓰리스마일..” 하며 표정도, 억양도 없이 계속 중얼거리는데 -통역하자면 사진을 찍혀줄테니 돈을 달라는 소리다- 거짓말 안 보태고 그 소리 그대로 따다가 단편영화 사운드로 쓴다면 어지간한 괴기영화 한편쯤은 사운드만 가지고도 제작이 가능하겠다 싶은 게 영 오싹하다. 그나마 학살의 현장을 이렇게라도 남겨두고 교훈을 삼으려는 것일까.. 시간이 조금 더 되었다 뿐이지 만만치 않은 학살의 역사를 가졌으나 어느 한곳도 제대로 보존은커녕 진상조차 밝혀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문득 겹쳐진다.
아직 수습하지 않은 뼈들이 땅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한때 집단 매장지였던 웅덩이에 이제 나팔꽃이 핀다.
무거운 마음으로 킬링필드를 나와 찾아간 곳은 뚜얼슬랭 박물관이다. 말이 박물관이지 이곳역시 학살의 현장이다. 이곳은 원래 뚜얼슬랭 고등학교였던 곳을 크메르루즈가 21보안대 건물로 사용한 곳으로 전 정권의 관리들에 대한 심문장소와 고문장소, 그리고 나중에는 정적들을 숙청하기 위한 곳으로 이용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크메르루즈의 통치 기간인 1975년 4월에서 1979년 1월까지 2만명이 들어가서 불과 6명이 살아 나온 악명 높은 장소였단다. 뚜얼슬랭 박물관 입구에 도착하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는 내리는데 철조망이 쳐진 건물의 스산함이라니.. 들어가니 심란함이 하늘을 찌른다. 사진 위주로 전시된 전시관에는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시신들의 사진을 필두로 이곳에 끌려와서 찍힌 듯한 사람들의 사진이며 심지어 사형집행 직전의 사진까지 온갖 사진들이 건물 한층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전시야 이후 정권이 했겠지만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야 가해자 당사들일텐데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생생한 사진을 낱낱이 찍어 놓았을까.. 옆건물로 옮기자 고문실로 쓰인 곳이 나온다. 교실크기의 반 정도 되는 방에는 철제 침대와 고문 도구가 놓여 있고 벽에는 그 침대 위에서 죽어간 시신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런 고문실이 일층에만 7-8개가 있고 그것도 모자라 이층으로 이어진다. 더는 보지 못하고 그냥 건물을 나온다.
뚜얼슬랭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고문실. 시신의 사진이 걸려있다.
나머지 건물들도 그저 우울하고 음산하기만 하다. 방 하나에 한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있을 만큼 벽돌로 칸을 나눠 둔 감금실이며, 한때는 유골들로 캄보다아 지도를 채워 전시했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이제는 그저 캐비넷에 담아둔 유골들을 돌아보다가 마지막 방에 이르자 살아나온 사람들의 지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는 방이 나온다. 끌려 온 사연도 가지가지지만 대부분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다 모진 고문 끝에 운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죽어간 사람들도 살아있다면 그저 보통사람들로 늙어 갔겠거니 싶은 게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살아나온 사람들, 왼쪽 아래가 끌려간 당시고 큰 사진이 현재의 모습이다.
박물관을 나오자 비는 어느새 그쳐 있다. 일행들도 마음이 무거운지 말이 없다. 그저 다른 소리나 하다가 밥을 먹고 일행들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온다. 혼자 있는 오후 내내도 마음이 편치 않다. 프놈펜에서의 우울한 첫날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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